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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잔인한 환생: Chapter 11 - Chapter 20

27 Chapters

제11화

호화로운 방 안, 한 여자의 끊이지 않는 울음 섞인 신음이 들려왔다. 가녀린 어깨를 떨며 매달려 보았지만, 서준혁은 조금의 배려도 없이 분풀이라도 하듯 더욱 거칠게 그녀를 몰아붙였다.서준혁의 낮은 신음이 터져 나오고 나서야 임유라의 울음도 멎었고 방 안엔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만 가득 찼다.잠시 후, 임유라가 그의 어깨를 밀어내며 붉어진 눈으로 교태를 부렸다.“너무해요, 나 진짜 힘들었단 말이에요!”서준혁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다.“네가 먼저 유혹했잖아.”임유라는 간지러운지 몸을 뒤틀며 웃음을 터뜨렸다.“몰라요, 아무튼 미워요.”서준혁이 그녀의 묘한 매력에 다시금 목울대를 울렁이며 다음 행동을 하려던 찰나, 밖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댕...순간 둔탁하고 깊은 울림이 서준혁의 가슴을 세차게 강타했다. 전신은 마비된 듯 경직되었고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해일처럼 밀려들어와 뇌리를 때리는 굉음과 함께 눈앞이 아득해지더니 마치 죽음의 문턱에 선 듯한 압도적인 공포가 그를 통째로 집어삼켰다.‘어떻게 된 일이지...’서준혁은 본능적으로 가슴을 움켜쥐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고 하얗게 질린 얼굴 위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깜짝 놀란 임유라가 다급히 물었다.“오빠, 갑자기 왜 그래요!”서준혁은 고개를 저으며 그녀를 밀치고 일어나 앉았다.“아무것도 아니야.”블라인드 틈새로 스며든 달빛이 창밖의 붉은 단풍을 비추자, 그의 의식 속으로 한가을의 잔상이 파고들었다.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설마 한가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하지만 이미 끝난 사이인데 이제 그 여자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 않은가.’서준혁은 냉소하며 그 생각을 떨쳐내려 했지만,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치는 심장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빌어먹을!’결국 서준혁은 요동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옷을 챙겨 입으며 한가을에게 전화를 걸었다.“준혁 오빠, 이 늦은 시간에 어디 가요?”임유라가 불만 섞인 눈으로 서준혁의 손을 붙잡았다.“갑자기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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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뭐라고요?”서준혁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사람을 잘못 보신 거 아닙니까? 아내와는 어제도 만났고 지금 우린 해외에 있는데, 아내가 죽었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수화기 너머의 경찰은 인내심 있게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서준혁 씨, 시신은 어젯밤에 이미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부검의와 감식팀이 확인했고 데이터베이스 대조 결과로도 한가을 본인이 맞을 겁니다. 시간 내서 방문해 확인해 주십시오.”경찰의 단호한 목소리에 서준혁의 안색이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했다. 가슴 속에서 불길한 예감이 휘몰아치자 목소리가 자꾸만 엇갈렸다.“말도 안 돼요! 절대 그럴 리 없어요!”경찰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사무적인 안내를 반복한 뒤 전화를 끊었다.툭.손에서 미끄러진 휴대폰이 바닥에 부딪혔지만 서준혁은 혼란에 빠져 멍하니 제 손바닥만 바라봤다.‘한가을이 죽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정말 죽었다면 어제 내가 본 사람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그때 집사가 다가와 당황한 서준혁의 기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대표님...”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준혁이 집사의 멱살을 움켜쥐었다.“말해 봐, 어제저녁에 한가을이 단풍 숲으로 들어가는 걸 분명히 본 게 맞지?”서준혁의 안색은 소름 끼칠 정도로 하얗게 질려 있었지만, 눈만큼은 핏발이 서서 무섭게 번들거렸다.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 그를 보고 집사가 겁에 질려 대답했다.“네! 제 눈으로 직접 봤습니다. 근무 중이던 보안요원들도 다 봤고요!”원하는 답을 들었음에도 서준혁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으로 요동쳤다. 그는 다급하게 다시 물었다.“그래서 찾았어?”집사는 잠시 침묵하다가 전전긍긍하며 대답했다.“아직 소식이 없습니다.”서준혁은 집사를 거칠게 밀쳐내며 포효했다.“이 좁은 곳에서 왜 아직도 못 찾은 거야? 너희들 다 장식이야? 이 무능한 것들!”집사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입을 꾹 다물었다.“대표님, 발견했습니다!”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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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차가운 철제 침대 위 시신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해 있었고 코를 찌르는 악취가 진동했다. 성별조차 분간하기 힘들 정도였지만 서준혁은 단번에 그것이 한가을임을 알아차렸다.시신의 팔뚝 안쪽에 구름 모양을 닮은 연갈색 흉터가 있었기 때문인데, 그것은 과거 제경시 지진 때 얻은 상처였다. 충분히 수술로 없앨 수 있었음에도 한가을은 그 상처를 지우지 않고 남겨두었었다.한가을은 이 흉터를 볼 때마다 열일곱 살의 서준혁이 얼마나 용감하게 자신을 감싸주었는지를 떠올린다고 말하곤 했다. 서준혁이 아니었다면 흉터는커녕 폐허 더미 아래에서 이미 숨을 거두었을 거라며 말이다.부패한 시신 위에서 유독 이 흉터만은 온전히 남아 있었고 한때 사랑의 증표였던 그것은 이제 서준혁의 가슴을 후벼 파는 칼날이 되어 돌아왔다.서준혁은 제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동공이 미친 듯이 일렁였고 실어증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입만 뻥긋거릴 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눈물만 흘렸다.옆에 있던 법의관이 증거물 봉투를 쟁반 위에 올려두며 말했다.“귀중품은 범인이 다 털어간 모양이고 이 실팔찌만 겨우 남았습니다.”물에 불어 시커멓게 변한 팔찌를 본 순간, 서준혁은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이건 지극히 평범한 붉은 실로 엮인, 더없이 소박한 팔찌였지만 서준혁의 추억이 빈틈없이 담겨있었다.열일곱 살 겨울, 두 사람이 정식으로 사귀기 시작했을 때 학교에는 낭만적인 전설이 하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카락 한 가닥을 팔찌에 엮어 선물하면 사랑의 신의 축복을 받아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한가을은 그 오랜 세월 동안 서준혁이 만들어준 팔찌를 보물처럼 간직했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차고 있었다.하지만 그는...서준혁의 오른팔에는 값비싼 시계만 채워져 있을 뿐, 한가을이 정성껏 엮어주었던 팔찌는 임유라와 외도하던 날 호텔 욕실에서 끊어져 하수구에 버려진 지 오래였다.그때 법의관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시신은 하수구에서 발견되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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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열일곱 번의 자상...임신 2개월...서준혁은 경악하며 눈을 부릅떴고 충격은 곧 처절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변했다.“열일곱 번이나 찔렸어, 너무 아팠어...”“서준혁, 왜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 거야!”찰나의 순간, 지난 며칠간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와 머릿속에서 미친 듯이 되감기 시작했다. 한가을이 했던 한마디 한마디가 유리 파편이 되어 서준혁의 살점에 깊숙이 박혔다.이 순간 서준혁의 머릿속에서 이성이라는 끈이 완전히 끊어져 버렸다. 그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다 선반에 부딪혀 바닥에 주저앉은 채 넋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가을아... 그럴 리가 없어. 그럼 내가 며칠 동안 본 건 대체 누구란 말이야? 7일간의 혼령 환생이 정말이었던 거야? 내가 너를... 내가...”그는 횡설수설하며 울부짖다가 자신의 뺨을 사정없이 내리쳤다.“미안해, 가을아! 내가 죽일 놈이야! 난 인간도 아니야!”그 모습을 보자 경찰과 법의관이 다급히 그를 말리며 위로했다. “서준혁 씨, 진정하세요. 이미 돌아가신 분은 다시 살아날 수 없으니, 부디 기운 차리시기 바랍니다.”“저희 측에서도 반드시 온 힘을 다해 범인을 검거하여, 고인의 한을 풀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하지만 서준혁의 귀에는 이제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엔 오직 지난 며칠 동안 한가을에게 대못을 박았던 잔인한 기억들만이 가득 차 있었다.처음부터 한가을의 말은 단 한마디도 거짓이 없었다. 그러나 서준혁은 그녀를 믿지 않았고 도리어 그녀의 벌어진 상처에 수없이 칼을 꽂아 넣었다.열일곱 번의 자상이라니.평소 작은 상처에도 몸을 사리던 한가을이 그 지옥 같은 시간을 어떻게 견뎌냈을지 생각하자 서준혁의 안색이 종잇장처럼 변했다.고성에서의 그 오후, 한가을이 단풍 숲에 가자고 제안했던 건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그런데도 서준혁은 거절은 물론 비수를 꽂는 말들만 내뱉어버렸다.그때 한가을이 느꼈을 슬픔은 얼마나 깊었을까.서준혁은 심장이 으깨지는 듯한 충격에 가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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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한가을 이 천박한 년아, 이혼했으면서 어디서 가련한 척이야. 준혁 오빠가 널 불쌍하게 여길 줄 알아? 똑똑히 알아둬, 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쓰레기일 뿐이야!][내가 너라면 쪽팔려서라도 다신 오빠 안 만나. 어차피 오빠가 지금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나고, 넌 이미 지나간 과거라고!]모욕과 조롱이 섞인 십여 개의 메시지 아래로 수많은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하나같이 차마 두 눈 뜨고 볼 수 없는 추잡한 사진들이었다.순간, 서준혁은 숨이 멎는 듯했다. 심장 끝에 난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예리한 칼날이 푹 찔러 들어와 마구잡이로 헤집어 놓는 것 같았다.그는 핏발 선 눈을 부릅떴다. 이마와 관자놀이에 핏대가 터질 듯 솟아올랐지만, 극도로 감정을 억누르며 메시지를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모든 기록을 다 확인한 순간, 가슴속에 켜켜이 쌓여있던 분노가 통제를 잃고 화산처럼 폭발했다.“이 몹쓸 년! 감히 뒤에서 가을이를 자극해!”서준혁은 여태껏 자신이 불륜을 철저히 숨겨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임유라 그 미친년이 제 발로 한가을에게 외도 사실을 까발리고, 심지어 그런 사진들까지 잔뜩 보냈을 줄이야.사건이 벌어졌던 그날 밤, 임유라는 두 사람이 침대에서 뒹구는 사진을 스무 장도 넘게 보냈다. 그러니 가을이가 그렇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폭발할 수밖에.이것이 비극의 도화선이었음이 틀림없었다. 그날 밤 한가을이 자신의 외도를 알지 못했다면 두 사람이 그렇게 싸울 일도 없었을 것이고 한가을이 목숨을 잃는 일도 없었을 터였다.전부 임유라 그 끔찍한 년 때문이었다.순간, 서준혁의 눈빛은 섬뜩할 만큼 음침해졌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짙은 살의가 싹텄다.그리고 한가을이 떠나기 전 그에게 보냈던 마지막 메시지는 그 살의를 정점으로 끌어올렸다.차단당했음을 알리는 그 붉은색 느낌표가 서준혁의 시야를 붉게 물들였다. 그 절망적인 순간, 한가을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그는 차마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그는 단 한 번도 한가을을 차단한 적이 없었다. 답은 하나, 임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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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집사의 뒤로는 십여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버티고 서 있었다. 정면 돌파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임유라는 쥐 죽은 듯 방으로 물러나 밤에 창문을 통해 도망칠 기회만 엿보았다.밤이 깊어가는 동안 임유라는 가시방석에 앉은 듯 초조하게 견뎠다. 시간이 어서 흐르길 원하면서도 서준혁이 너무 빨리 들이닥치지는 않을까 두려움에 떨었다.새벽 3시경이 되어서야 임유라는 문에 귀를 대고 잠시 동태를 살폈다. 아무런 기척이 없음을 확인한 그녀는 조심스럽게 침대 시트를 꼬아 밧줄을 만들고는 창문 밖으로 내렸다.2층 방에서 내린 시트는 다행히 바닥에 닿았고 뛰어내리는 과정에서 넘어지긴 했지만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그러나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강렬한 조명이 그녀를 비추었고 곧이어 검은 구두가 그녀의 손등을 사정없이 짓밟았다.“아악!”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든 임유라는 눈앞의 남자를 확인하는 순간 핏기가 싹 가셨다.“준혁 오빠...”하지만 서준혁은 대답 대신 발에 힘을 주어 그녀의 손을 더욱 잔인하게 짓눌렀다.순간, 우두둑 소리와 함께 임유라의 손뼈가 처참히 으스러졌고 찰나의 순간 뼛속을 파고드는 끔찍한 고통이 솟구쳤다.임유라는 비명을 내지르며 미친 듯이 애원했다.“준혁 오빠, 내가 잘못했어요! 제발 용서해 줘요! 너무 아파요!”서준혁은 손을 진흙탕 속에 짓이기려는 듯 발에 더욱 체중을 실으며 음산하게 내뱉었다.“아파? 너도 아픈 걸 알아? 가을이가 그날 밤 겪어야 했던 고통은 지금 네가 느끼는 것의 백 배는 더해!”“준혁 오빠, 내 말 좀 들어봐요! 오빠를 너무 사랑해서, 그래서 가을 언니한테 그런 문자를 보냈던 것뿐이에요!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임유라는 처절하게 눈물을 쏟았지만 서준혁의 동정심은커녕 오히려 혐오감만 더욱 부추길 뿐이었다.“임유라, 네가 무슨 변명을 지껄이든 오늘 널 그냥 두지 않아!”서준혁은 돌연 몸을 숙여 임유라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억지로 고개를 쳐들게 했다.“가을이가 겪은 고통을 똑같이 맛보게 해주지! 죽는 것보다 못한 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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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안 돼! 살려줘!”임유라가 발악하며 서준혁의 바짓가랑이라도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모든 것은 헛수고였다.서준혁이 자리를 뜬 후, 어젯밤 임유라를 유린했던 사내가 서재로 들어섰다. 이번에 그의 손에는 예리한 칼이 쥐어져 있었다.임유라는 가슴 부위에만 무려 열일곱 번이나 칼에 찔렸고 사지가 기괴하게 뒤틀린 채 두 눈을 부릅뜨고 절명했다.서준혁은 그녀의 시신을 내려다보았지만, 어떠한 기쁨도 슬픔도 느끼지 못한 채 무미건조하게 명령했다.“시궁창에 처넣어!”시신은 곧바로 치워졌고 현장도 말끔히 청소되었지만, 진동하는 비릿한 피 냄새마저 지울 수는 없었다.임유라를 처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진범이 잡혔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서준혁은 즉각 귀국했다.그는 당연히 흉악무도한 인상의 살인마일 거라 예상했지만, 막상 마주한 진범은 끔찍한 범행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순박하고 평범한 모습이었다.그는 자신이 서준혁의 심기를 어떻게 건드렸는지도 모르는 듯, 바닥에 짓눌린 채 극심한 공포에 질려 벌벌 떨고 있었다.그날 밤 한가을이 겪었을 참상을 떠올리자, 서준혁의 심장은 날카로운 장미 덩굴에 관통당한 듯 형언할 수 없는 고통으로 찢겨나갔다.그는 깊은숨을 내쉬며 미리 준비해 둔 뼈를 바르는 뾰족한 칼을 집어 들고 한 걸음씩 다가갔다.푹 하는 소리와 함께 날 선 흉기가 심장을 무자비하게 꿰뚫었다. 입이 틀어막힌 범인은 고통스러운 신음만 흘렸고 이마에 굵은 핏대가 솟구치며 당장이라도 안구가 튀어나올 듯 끔찍한 몰골을 했다.반면 서준혁은 평온한 안색으로 정확하고 잔혹하게 칼을 꽂아 넣고 또 꽂아 넣었다. 온몸에 피가 튀어도 그저 지극히 일상적인 일을 하는 사람처럼 무덤덤할 뿐이었다.그는 범인을 무려 백칠십 번이나 찔렀고 끝내 짓이겨진 핏덩이가 된 살점에서는 역겨운 피 냄새가 진동했다. 시체를 치우기 위해 들어선 경호원들마저 그 참혹한 지옥도를 보고는 흠칫하며 안색이 변했다.챙그랑, 날카로운 칼이 바닥에 떨어졌다. 서준혁은 지친 듯 두 눈을 감으며 손을 휘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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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그녀가 회귀한 시점은 대지진 직후였다. 원래대로라면 바로 이 해에 그녀와 서준혁이 연인으로 발전했었다.하지만 눈앞의 서준혁은 분명 어딘가 달랐다. 얼굴은 앳된 소년의 풋풋함을 띠고 있었지만, 풍기는 기운과 눈빛에서는 묘하게 낯익은 어른의 느낌이 났다.‘설마, 서준혁도 회귀한 건가? 대체 어쩌다 죽었길래?'한가을을 바라보던 서준혁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는 자신이 다시 살아날 줄은, 그것도 이렇게 까마득한 십 대 시절로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아직 아무런 비극도 일어나지 않았고 자신과 한가을 사이에는 어떠한 벽도 없었다. 이번 생에는 반드시 그녀를 몇 배로 아끼고 사랑하며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가을아, 몸은 좀 어때?”서준혁이 다가왔다. 그리고 예전처럼 자연스레 그녀를 품에 안으려 두 팔을 뻗었다.퍼뜩 정신을 차린 한가을은 황급히 뒤로 물러서더니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로 쏘아붙였다.“서준혁. 우리가 이럴 정도로 각별한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내 휴식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서준혁의 몸이 찰나에 굳었다. 발걸음을 멈춘 그는 한가을의 얼굴을 오랫동안 응시하더니 비통한 어조로 말했다.“가을아, 너도 다시 돌아온 거지? 그치?”한가을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울먹이며 참회하기 시작했다.“내가 죽일 놈이었어. 내가 짐승보다 못한 놈이었어! 네가 변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서야 네가 했던 모든 말이 진실이었다는 걸 알았어. 그때 왜 널 믿지 못하고 그렇게 상처만 줬는지 후회스러워 죽을 것 같아! 네가 떠난 뒤로 난 매일 고통 속에서 살았어. 차라리 그때 죽은 게 나였어야 했는데! 난...”그의 말에서 한가을은 대강의 정황을 파악했다.경찰이 시신을 발견해 서준혁에게 연락을 했던 모양이었다.한가을은 잠시 멍해졌다. ‘서준혁도 슬퍼할 줄 알았단 말인가? 심지어 무너져 내리기까지? 하지만 이제 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서준혁이 입혔던 상처는 지워지지 않으며 그는 그들 사이의 아름다운 기억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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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서준혁은 병상 앞으로 달려들어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비굴할 정도로 매달렸다.“가을아, 우리 다시 시작하자! 이번 생엔 정말 너만 사랑할게!”한가을은 더 이상 대꾸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고 간호사 호출 벨을 눌렀다.“여기 미친 사람이 있어요! 잠 좀 자게 해주세요!”곧바로 달려온 간호사들은 서준혁을 보고 깜짝 놀랐다.“서준혁 학생,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아까 링거 맞고 있지 않았어요?”서준혁은 간호사들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한가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애원했다.“가을아, 제발 나 좀 봐줘...”한가을은 다시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차갑게 내뱉었다.“더 정떨어지기 전에 당장 꺼져. 짜증 나니까!”간호사들도 가세해 서준혁을 타일렀다.“서준혁 학생, 일단 나가세요. 한가을 학생은 안정이 필요해요.”서준혁은 눈물을 닦아내며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래, 그럼 푹 쉬어. 나중에 다시 올게.”병실 문이 닫히자마자 한가을은 자리에서 일어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엄마, 나 이 병원 너무 불편해요. 다른 데로 옮기고 싶어요.”“우리 딸, 무슨 일 있었어?”수년 만에 다시 듣는 엄마의 목소리에 그동안 쌓였던 모든 서러움이 한꺼번에 밀려오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한가을은 흐느끼느라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수화기 너머 엄마는 딸의 울음소리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 다급하게 달랬다.“가을아, 울지 마. 무슨 일인지 엄마한테 다 말해줘. 아빠랑 지금 바로 갈게!”“네. 기다리고 있을게요.”통화를 끝내고 나자 참아왔던 감정이 폭발해버린 한가을은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그것은 과거의 고통을 씻어내는 처절한 의식과도 같았다. 눈이 퉁퉁 붓고 기운이 다 빠질 때까지 울고 나서야 가슴속 응어리가 조금 풀리는 기분이었다.다시 얻은 삶 속에서 그녀는 서준혁과 완벽하게 작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죽음 같은 비극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한가을은 알지 못했다. 그녀가 그렇게 울고 있을 때, 서준혁이 문밖에서 숨죽여 듣고 있었다는 것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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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점심 무렵 전원 수속이 끝났고 한가을이 짐을 챙기고 있을 때 서준혁이 병실로 들이닥쳤다.“가을아, 왜 갑자기 병원을 옮기는 거야? 나 때문이야?”한가을은 그를 무시한 채 못 들은 척 짐 챙기는 데만 열중했다.서준혁은 다급히 다가가 그녀의 손을 붙잡으며 애처롭게 매달렸다.“가을아, 제발 우리 얘기 좀 해. 이렇게 피하기만 하지 말고!”그의 손은 차갑게 식어 있었고 한가을은 가차 없이 그 손을 뿌리쳤다. 그녀의 눈빛은 서늘하기 그지없었다.“서준혁, 너 정말 적당히 좀 해! 지진 때 구해준 건 고맙지만, 그게 날 이렇게 괴롭혀도 된다는 뜻은 아니야. 사례금은 섭섭지 않게 보낼 테니까, 제발 부탁인데 앞으로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서준혁은 충격에 휘청거렸고 금세 눈시울이 붉어지며 호흡이 가빠졌다.“가을아, 어떻게 해야 날 용서해 줄 거야? 너 다시 태어난 거잖아, 그 눈빛은 절대로 못 속여. 제발 우리 대화로 풀자!”한가을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쏘아붙였다.“서준혁, 정신과 상담이라도 받아보는 게 어때? 멀쩡한 사람이 왜 자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그녀의 말에는 온기라고는 전혀 없었다. 마치 한여름에도 녹지 않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그 말에 서준혁은 온몸이 굳어버렸다.이 광경은 기시감이 들 정도로 익숙했다. 전생에서 두 사람의 위치는 딱 지금의 반대였으니까.그때의 한가을도 자신이 죽었었다며 울면서 매달렸고 그날 밤의 일까지 털어놓았지만, 그는 믿어주기는커녕 그녀가 미쳤다며 냉소적으로 비웃었을 뿐이었다.과거에 뿌린 씨앗의 대가를 이제야 직접 치르게 된 셈이었다.이런 감각이 이토록 고통스러울 줄이야.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뺨이 서늘해졌고 서준혁은 하얗게 질린 손가락 마디를 바르르 떨며 슬픔이 일렁이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가을아, 내가 너한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으니 날 미워하는 게 당연해. 하지만 제발 기회를 줘. 안 그러면 난 평생 죄책감 속에서 죽어갈 거야.”하지만 사과한다고 해서 반드시 용서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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