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말 못 하는 과부로 빙의했지만, 풍류와 자유가 체질: Bab 11 - Bab 20

30 Bab

제11화

대체 어쩌다 이렇게 덜컥 결혼까지 해버린 걸까?강사리는 빗으로 긴 머리를 한 가닥 한 가닥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거울 속에 비친 지독하게 화사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이곳에 온 이래로 제 얼굴을 이렇게 제대로 직시한 것은 처음이었다.그 지옥 같은 암자에서는 고작 세숫대야 물에 얼굴을 비추어 보는 게 전부였는데, 그것마저 미라처럼 흐릿한 데다 숨만 쉬어도 물결이 끊임없이 일렁이는 바람에 제 이목구비조차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뿐사뿐 창가로 걸어갔다.긴 탁자 위에 세워진 팔뚝 굵기만 한 대홍색 초는 붉은 피 같은 촛농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겹겹이 쌓여 흘러내린 촛농들은 초의 몸통 위에 덩어리져 붙은 채, 마치 한 몸처럼 기묘하게 얽혀 타들어 가고 있었다.그 순간, 돌연 등 뒤에서 용광로처럼 펄펄 끓는 사내의 뜨거운 체온이 그녀를 와락 감싸 안았다.뒤이어 틈을 주지 않고 목덜미와 뺨 위로 타오르듯 뜨거운 입맞춤이 쏟아졌다.흔들리는 촛불의 잔상이 강사리의 커다란 눈동자에 붉게 일렁였고, 그녀의 메마른 심장 밑바닥에서부터 난생처음 느껴보는 묘하고 야릇한 정조가 피어올랐다.인생사 두 번째로 맞이하는 신혼 첫날밤이 결국 이렇게 격하게 시작되고 있었다.그녀가 깊은 사색에 잠길 틈도 없이, 시야가 휙 바뀌더니 이내 부드러운 침상 위로 내던져졌다.최원헌은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몸 위를 덮쳐오며 이마를 지그시 맞대었다.분홍빛으로 수줍게 달아오른 그녀의 부드러운 뺨을 거친 손가락으로 연신 부벼대며 만져대는 남자의 눈빛은 애달픔으로 가득했다.사내 역시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오만 가지는 되는 듯 입술을 달싹였으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귀는 망가진 상태였다. 그는 자신이 지난 수년 동안 얼마나 지독하게 그녀를 연모하고 그리워해 왔는지, 그리고 마침내 온갖 역경을 뚫고 그녀를 제 여인으로 만드는 결실을 맺게 되었는지 말해주고 싶었다.최원헌은 한 손을 뻗어 은고리에 걸려 있던 화려한 대홍색 침상 휘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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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하늘빛이 미세하게 밝아오며 새벽안개가 최씨 저택을 부드럽게 감쌌다.붉은 칠을 한 대문 밖에서는 하인들이 바삐 마당을 쓸어내고 있었고, 정원 안의 꽃과 나무 위에는 미처 마르지 않은 새벽이슬이 방울방울 맺혀 있었다.가문의 어른들이 모이는 경헌당에는 이미 최씨 가문의 종친들이 서열대로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그러나 약조된 시각이 한참 지나도록 새 신부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자, 여기저기서 볼멘소리로 예의범절에 어긋난다며 수군덕대기 시작했다.노부인의 안색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어두워졌다.그녀는 곁에 서 있던 시녀에게 눈짓을 주어 당장 가서 독촉하라 명했다.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신혼방으로 향했던 시녀가 사색이 된 상태로 급히 뛰어 들어왔다.“그게… 둘째 도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둘째 부인께서 본래 북방 변방에서 오시느라 체력이 몹시 허약해지신 데다, 어제 혼례를 치르느라 과로하신 탓에 몸져누워 일어나지 못하고 계신다 하옵니다.”좌중에 모인 종친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묘한 눈빛들을 주고받았다.말이 좋아 과로지, 필시 전장에서 사람이나 죽이던 거친 장군 놈이 새 신부를 가련하게 여기지 않고 침상 위에서 밤새도록 험하게 굴려대며 첫날밤의 고초를 톡톡히 겪게 한 게 틀림없었다.노부인은 평생 두 아들을 키워냈기에, 며느리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차지 않았다.자식들이 장가만 갔다 하면 마누라만 끔찍이 챙기느라 정작 뼈 빠지게 키워준 어미는 안중에도 없으니 속이 터질 노릇이었다.그녀는 눈을 매섭게 내리깔며 손에 쥔 염주를 더 빠르게 돌려댔다.“지금 당장 의원을 불러오너라. 대외적으로 우리 최씨 가문이 목숨을 구한 은인의 누이를 박대한다는 소문이 돌면 안 되니 말이다.”명을 받은 시녀의 얼굴에 곤혹스러운 기색이 스쳤다.둘째 도련님께서 ‘과로’를 운운하신 건 명백히 신부를 감싸기 위한 핑계였거늘, 노부인께서 굳이 의원까지 불러 신방을 들쑤시겠다는 건 대놓고 아들의 체면을 깎아내리겠다는 심보였다.이러다 과거 큰 도련님 시절처럼 고부 갈등이 또다시 피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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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어머니, 채리가 이제 막 도성에 올라온 터라 표준어를 아예 못합니다. 앞으로 제가 틈틈이 가르칠 테니 염려 마십시오.”최원헌은 결국 준비해 둔 거짓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그렇지 않으면 말을 아예 못 하는 그녀의 신분이 과거의 강사리와 겹치는 부분이 너무 많은 탓에 아무리 포장을 한들 얼마 못 가 들통날 게 뻔했기 때문이다.뒤에 앉아 있던 종친들 역시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적통 본가의 집안일에 굳이 선을 넘어가며 딴지를 걸 만한 배짱을 가진 이는 아무도 없었다.최원헌은 노부인이 여전히 찻잔을 받지 않은 채 그저 눈을 감고 염주만 돌려대자, 겉옷 자락을 홱 걷어 올리며 강사리의 곁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어머니, 불효한 소자를 벌하여 주십시오. 채리의 오라버니는 전장에서 제 목숨을 구하고 전사하였나이다. 제가 그 형님의 임종 자리에서 채리의 눈에 눈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겠다고 피로 약조했사오니, 부디 좋게 봐주시옵소서.”그제야 노부인은 염주를 돌리던 손을 멈추고 천천히 눈을 떴다.“그 계집에게 눈물 한 방울 안 묻히겠다고, 널 뼈 빠지게 키워준 어미 눈에는 피눈물을 묻히겠다는 게냐?”바닥에 꿇어앉아 있던 강사리는 이 살벌한 대치 상황을 보며 묘한 기분을 느꼈다.과거 최원랑에게 시집왔을 때도, 시어머니는 이런 식으로 찌질하게 굴며 자신을 옭아맸었다.강사리의 냉철한 머리로는 도무지 이 노인네의 사고방식이 이해가지 않았다.자신이라면 이 시기에 대가문 안주인답게 대인배처럼 인자하게 자비를 베풀 텐데 말이다.어차피 며느리는 말도 못 하고 귀도 먹은 장애인이라 절대 시어머니에게 말대꾸를 하거나 대들 수도 없을 테고, 그러면 가문의 살림 권력을 뺏길 일은 더더욱 없는데 그냥 없는 사람 취급하면 서로 좋지 않은가?하지만 인간이란 본래 쓸데없는 곳에서 제 알량한 권력과 신분을 증명하고 싶어 안달 나는 법이었다.강사리는 연약함을 어필하기 위해 슬쩍 입술을 깨물었다.그녀의 몸이 이내 모진 바람에 꺾이기 직전의 나뭇가지처럼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하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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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이 새벽에 여길 대체 왜 왔단 말인가?!강사리는 온 힘을 다해 그를 밀쳐내려 했으나,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오히려 역으로 그의 억센 손에 손목을 붙잡히고 말았다.강사리는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격통에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는 말 못 하는 벙어리였기에 아무리 아파 죽을 지경이어도 밖으로 새어 나가는 소리는 없었다.그녀는 필사적으로 바둥거리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최원헌은 전쟁터를 누비던 무장이라 일반인보다 내공이 훨씬 깊은 자였다.그런데 방 한가운데에 이토록 거물급 괴물이 침입할 때까지 낌새조차 채지 못했다는 건, 눈앞에 선 이 사내의 무공이 최원헌을 아득히 초월했다는 증거였다.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제집 안방까지 손쉽게 들어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방 안이 워낙 암흑이라 강사리는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도무지 볼 수 없었다.그저 사내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위압감이 숨통을 꽉 틀어쥐어, 가슴이 답답해 장기가 끊어질 것만 같았다.소승기는 지금 당장이라도 강사리의 손목뼈를 가루로 만들어버릴 기세로 힘을 주고 있었다.귀먹고 말 못 하는 가련한 계집이니, 제가 무슨 말을 한들 알아들을 리 만무했다.도성을 떠난 지 고작 두 달 남짓이었거늘, 그새를 참지 못하고 다른 사내에게 시집을 가버리다니.그것도 감히 최씨 가문의 며느리로 모습을 바꿔치기하는 대담한 짓까지 저지르며 말이다.참으로 가당치도 않았다.소승기는 귀와 눈이 극도로 예민한 자였기에, 어둠 속에서도 강사리가 고통에 부들부들 떨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그는 냉정하게 그녀의 손목을 툭 쳐내듯 놔버렸다.어찌 됐든 제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거늘, 이미 다른 사내의 품에 안겨 유부녀가 되었다면 그것으로 끝이니 굳이 미련을 둘 필요는 없었다.“부인…?”한참을 기다려도 신부가 돌아오지 않자, 최원헌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눈을 가리고 있던 머리끈을 거칠게 풀어헤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는 중정을 향해 나직하게 다시 한번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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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강사리는 최원헌을 마지못해 놓아주려다가, 문득 자신의 손목을 보고 굳어버렸다.얇은 소맷자락 아래로 시퍼런 피멍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역시나 꿈이 아니었다!소승기, 그 저승사자 같은 자가 어젯밤 진짜로 신방에 기어들어 와 그녀를 붙잡았던 게 틀림없었다.강사리의 시선이 멈춘 곳을 따라 눈길을 돌린 최원헌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눈처럼 하얗고 고운 신부의 살결 위로 끔찍할 정도로 짙은 자줏빛 멍이 들어찬 게 아닌가.그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대체 언제 그녀를 이 지경까지 험하게 다루어 상처를 입혔단 말인가?이렇게나 심하게 멍이 들었으니, 신부가 독기가 바짝 올라 제 어깨를 사정없이 깨물 만도 했다.두 사람의 오해는 그렇게 톱니바퀴처럼 어긋난 채 굳어져 버렸다.신부의 처참한 몰골을 확인한 최원헌은 차마 욕구를 더 채울 엄두가 나지 않아 서둘러 침상에서 내려왔다.그리고 의복을 대충 정돈한 뒤 황급히 약주를 찾아 들고 다시 돌아왔다.그는 약주를 비벼 열을 올린 뒤 멍 자국 위에 조심조심 가져다 대고는, 내공을 이용해 약력이 피부 깊숙이 스며들도록 문질렀다.그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자신이 어젯밤 이 정도까지 세게 움켜쥔 기억은 없었다.손목을 한 바퀴 두른 피멍은 마치 시꺼먼 흑옥 팔찌를 차고 있는 것 같았다.“많이 아프오?”최원헌은 보는 자신이 더 쓰라린지 연신 신부의 손목을 부드럽게 매만지며 호호 입김을 불어댔다.강사리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소승기 그 자식이 손목뼈를 아예 통째로 망가뜨리려고 작정을 했었는데, 안 아프면 그게 인간이겠는가?“…미안하오. 다음번에 내가 또 눈이 뒤집혀 이런 식으로 굴면… 참지 말고 내 몸 어디든 마음껏 깨물어버리시오.”제 몸에 남을 그녀의 이빨 자국마저 훈장처럼 여기겠다는, 머릿속에 온통 마누라만 가득 찬 장군의 눈물겨운 발상이었다.두 사람이 대충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일어날 무렵, 시기 좋게 문밖에서 시녀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둘째 도련님, 경헌당의 황리 언니가 인사를 올리러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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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어머니, 채리가 어제 종일 몸이 좋지 않아… 미처 가르치지 못했습니다.”최원헌은 변명과 동시에 강사리를 부드럽게 부축해 일으켜 세우고는 자신의 옆에 앉혔다.“…”노부인은 싸늘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보더니, 이내 툭 던지듯 말했다.“그리도 몸뚱이가 부실해서야 원. 채아는 너도 잘 아는 아이니, 앞으로 네 방에 들여 수발들게 하거라. 새 안사람의 산고도 덜어줄 겸 말이다.”최원헌은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형님의 아내였던 강사리는 마음에 쏙 들었지만, 형님이 쓰던 첩까지 고스란히 물려받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의자에 기대어 있던 강사리는 속으로 코방귀를 뀌었다.시어머니 특유의 첩 장사가 드디어 시작된 것이었다. 그나저나 이 최씨 집안 꼬라지 또한 참 가관이었다.아무리 막 나가는 고대 세계라지만, 첩을 큰아들 방에서 작은아들 방으로 넘겨주다니,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게 아닌가.옆에 서 있던 주학이 은밀하게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노부인의 수작질을 강사리에게 수화로 통역해 주었다.그 와중에 노부인은 성미가 급해졌는지 채아에게 눈짓을 주어, 강사리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게 만들었다.갈수록 노인네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는 모양새였다.과거 자신이 최원랑에게 시집왔을 때는 반년 동안 애 소식이 없자 핑계를 대며 채아를 들이밀었었는데, 이번엔 결혼 이틀 차에 대놓고 첩을 쑤셔 넣다니… 참으로 대단한 발전이었다.그렇게 애를 잘 들이는 씨받이라면, 왜 진작 최원랑의 자식 하나도 못 낳았단 말인가?애가 안 생기는 건 명백히 종자 자체의 문제이거늘, 왜 자꾸 엉뚱한 밭뙈기 탓만 하며 집착하는지 모를 일이었다.물론 강사리도 시어머니가 이 난리를 치는 건 순전히 밭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며느리인 자신이 마음에 안 들어서 심술을 부리는 것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명색이 종가댁 안주인인데 집안 살림을 도맡아 권력을 쥐고 흔들지도 못하고, 귀머거리에 벙어리라 사교계에 나가 대외 활동을 할 수도 없는 며느리를 좋아할 시어머니는 세상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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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노부인, 저희 언니를 완전히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저리 부실한 것을 어찌합니까? 저희 북방 여인들은 고작 그 정도로 쓰러지거나 엄살을 피우지 않습니다.”주학은 도리어 억울하다는 시늉을 하며 다시 한번 채아를 붙잡아 일으키려는 형세를 취했다.이에 겁을 집어먹은 채아가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뒤로 물러서더니, 시녀들의 등 뒤로 쏙 숨어버렸다.노부인이 그 꼴을 보니 참으로 한심하고 불효막심하기 짝이 없었다.자신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상좌에 버티고 앉아 있거늘, 감히 제 면전에서 저토록 안하무인으로 군단 말인가?머리끝까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과거의 강사리는 입이 있어도 말을 못 하는 벙어리라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랐건만, 새로 들어온 이 ‘채리’라는 여인은 첫날부터 꼬락서니가 전혀 마음에 안 드는 데다가 잔머리 굴리는 것도 예사롭지 않았다.그 순간, 노부인의 미간이 세차게 꿈틀거렸다.자세히 뜯어볼수록 저 얼굴은 소름 끼치도록 낯이 익었다.세상에 이토록 똑같이 생긴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그게 아니라면, 제 아들놈이 감히 천하의 대역죄를 범하고 이미 죽은 형수를 새 신부로 위장해 들여앉혔다는 뜻일 것이다.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노부인의 눈빛에 잔혹한 냉기가 감돌았다.그녀는 소맷자락을 홱 흔들며 최원헌에게 당장 그 계집을 데리고 물러가라 명했다.만약 정말로 강사리가 맞다면, 제 아들이 감히 하늘을 속이고 천벌을 받을 짓을 저지른 셈이었다.기어이 암자에 불을 지르고 시체를 위장해, 형수를 제 마누라로 바꿔치기 했다는 말이지 않은가.그녀는 살 떨리는 분노에 주먹을 꽉 쥐었다.멀어져 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독사 같은 눈으로 노려보던 노부인은 곁에 서 있던 어멈을 은밀하게 불렀다.“당장 사람을 보내 강씨 가문 식구들을 이 저택으로 들라 해라.”강사리가 암자로 쫓겨나 삼년상을 치르는 동안 지독하게 살이 빠져 피골이 상접했었으니, 오랜 세월이 지나 살이 오르고 안색이 좋아지며 이목구비가 달라 보이는 것일 수도 있었다.하지만 제 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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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전조 시기 명필 왕희의 필적 두 점과 황금으로 정교하게 꼬아 만든 금팔찌 한 쌍, 그리고 금박을 입힌 옥고리 잉어 패옥이옵니다…”최원헌은 집사가 목록을 읊는 속도가 속이 터졌는지, 장부를 홱 뺏어 들었다.대충 훑어보니 고작 몇 장밖에 안 되는 양이었기에, 그는 바로 명을 내렸다.“턱없이 부족하구나. 당장 대창고로 다시 가 부인이 쓸 만한 물건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전부 절반씩 이리로 옮겨오너라.”그는 덧붙여 쐐기를 박았다.“앞으로 대창고에 새로 입고되는 모든 재화는, 무조건 먼저 이리로 가져와 부인께서 직접 눈으로 보시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게 한 뒤에 창고에 넣도록 해라.”지시를 완벽히 마친 최원헌은 지체 없이 강사리의 손을 잡아끌고 제 거처로 돌아가려 했다.이제 갓 신방의 맛을 본 터라 한창 그 짜릿한 맛에 중독돼 안달이 난 장군이었다.조금 전 서재에서 강사리가 보여준 은밀한 도발에 이미 그의 이성 끈은 끊어져 제어가 불가능한 상태였다.하지만 강사리는 순순히 끌려가 주는 대신 그의 손을 붙잡고는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최원헌은 뜬금없는 요구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신부가 가녀린 두 손을 뻗어오자 군말 없이 즉시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추었다.“부인, 어서 오르시오.”강사리는 그의 넓은 등 위로 사뿐히 엎드렸다.그러고는 멀어지기 전, 주학을 향해 창고에 입고되는 보화들을 장부와 일일이 대조해 빼돌리는 놈이 없도록 철저히 감시하라는 눈짓을 보낸 후에야 최원헌의 어깨를 툭툭 치며 방으로 돌아가자고 재촉했다.머리를 굴려보니 노부인 그 고약한 노인네와 지리멸렬하게 기싸움을 벌여봐야 자신에게 떨어지는 실속은 쥐뿔도 없었다.애초에 가문의 살림 권력을 쥐고 골머리를 썩이고 싶지도 않았고, 바깥 사교계에 나가 가증스러운 귀부인들과 가짜 미소를 지으며 친목질을 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그저 수중에 쓸 수 있는 유동 자금이 흘러넘치고, 몸 편하고 마음 편하게 떵떵거리며 사는 ‘재정적 자유’야말로 그녀가 인생에서 유일하게 추구하는 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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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시녀가 방에 들어와 아직 잠을 자고 있는 강사리를 깨웠다.그러고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침상 휘장을 걷어 올린 뒤, 허리를 숙이고 그녀의 어깨를 살포시 밀었다.그 순간, 이불 밖으로 드러난 강사리의 하얗고 고운 목덜미에 붉은 흔적들이 빼곡하게 남아 있는 것이 보였다.어떤 곳은 멍이 든 듯 거뭇하고 보랏빛까지 감돌고 있어, 시녀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얼른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바깥에서 노부인 처소의 어멈인 황리가 버티는 중이라, 어쩔 수 없이강사리의 어깨를 흔들며 나지막하게 불렀다.“부인, 일어나셔야 하옵니다.”강사리는 몸을 뒤척이며 한쪽 눈만 간신히 깜박이며 떴다.제 처소의 시녀인 것을 확인하더니, 이내 이불을 머리끝까지 확 뒤집어쓴 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최원헌의 그 무지막지한 체력은 전생의 소승기와 견주어도 막상막하였다.이러니 가녀린 몸뚱이가 어찌 버텨내겠는가.그 옛날 소승기는 그녀에게 마음이 없던 터라 그저 해독만을 목적으로 취했기에, 볼일이 끝나면 자연히 그녀를 놓아주었었다.반면 이 최원헌이라는 새끼 늑대는 도무지 지칠 줄을 모르고 밤새도록 몇 번이고 자신을 몰아붙이며 요구해 댔다.그가 정사를 치르며 제 몸의 기혈과 경맥을 다스려 주었다고는 하나, 졸리고 피곤한 건 별개의 문제였다.온몸이 쑤시고 노곤해 죽을 맛이었다!안방 시녀가 침상에서 주인을 일으켜 세우지 못하자, 문밖에서 대기하던 황리는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다.그녀는 급기야 법도를 어기고 안방까지 거침없이 밀고 들어왔다.명색이 세도가의 며느리라는 자가 대체 어느 집안 법도이길래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자빠져 자고 있단 말인가!노부인께서 사람을 세 번 네 번이나 보내 청하셨음에도 일어날 기척조차 없으니 기가 찼다.안방 시녀는 본래 최씨 가문의 대를 이어온 노비였기에, 들어오는 황리를 말리는 시늉만 대충 두어 번 할 뿐이었다.황리가 어깨를 밀치자 시녀는 비틀거리며 옆으로 밀려났고, 결국 황리가 안방 침실까지 무단으로 들이닥치는 것을 그저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강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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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강사리는 속으로 피식 비웃었다.안방에 저승사자가 와 있다 한들 자신이 못 들어갈 이유는 없었다.애초에 노부인이 자신을 이리로 불러들인 건 분명 어떤 꿍꿍이를 품고 만반의 준비를 해뒀을 것이다.그렇지 않고서야 감히 미천한 비복 주제에 상전의 이불을 함부로 들추며 행패를 부렸겠는가.그야말로 노비의 세도가 주인을 능멸하는 꼴이니… 강사리는 이내 주학에게 계획대로 움직이라는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문 앞의 시녀들이 분주히 오가던 중, 두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황급히 무릎을 굽혀 읍하며 예를 갖추었다.강사리는 문턱을 가볍게 넘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과연 그 화려한 상좌 위에 앉은 노부인의 맞은편에는 낯선 손님들이 마주 앉아 있었다.강사리는 건성으로 무릎을 살짝 굽혀 인사를 올리더니, 노부인이 미처 고개를 들고 말하기도 전에 홱 몸을 일으켜 옆쪽에 놓인 의자에 털썩 앉아버렸다.그와 동시에 주학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긴 채찍을 단숨에 풀어내더니, 한쪽 구석에서 도끼눈을 뜨고 백안을 까뒤집고 있던 황리를 향해 사정없이 휘둘렀다.뱀처럼 날카롭게 날아간 채찍이 황리의 온몸을 단단히 휘감았고, 주학이 손목에 힘을 주어 홱 잡아당기자 황리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나뒹굴어 꿇어앉혀졌다.“노부인, 저희 북방 사람들 모두 도성 안의 명문가들이야말로 예법과 도리를 아는 지체 높은 가문이라고 생각했사옵니다. 헌데 오늘 와서 보니 전혀 그렇지 않더군요.”주학이 선제공격을 날리며 기선을 제압하자, 노부인과 황리는 그야말로 허를 찔려 번개라도 맞은 듯 멍해졌다.바닥에 처박힌 황리는 처음엔 영문도 모른 채 어안이 벙벙했다가, 이내 무릎을 짓누르는 극심한 통증에 정신을 차리고 비참하게 고함을 질렀다.“노부인, 저를 살려주옵소서!”온몸을 조여오는 채찍의 악력이 어찌나 강한지, 마치 살아 있는 독사가 살갗을 파고드는 듯한 격통이 일었다.노부인은 경악했다.이게 대체 무슨 해괴망측한 상황이란 말인가.귀한 손님이 대청에 버젓이 앉아 있거늘, 법도라곤 약에 쓰려도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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