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못 하는 과부로 빙의했지만, 풍류와 자유가 체질

말 못 하는 과부로 빙의했지만, 풍류와 자유가 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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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리는 그저 편하게 살다 가고 싶은, 줏대 없는 재벌 3세다. 한량인 재벌 2세 아버지는 그녀가 창업에 손대는 것만 빼면 무엇이든 다 허락해 주었다. 다른 사고는 일절 치지 않는 그녀였지만, 단 하나, ‘미남’을 밝히는 버릇만큼은 고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호화 크루즈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유흥을 즐기던 중 해저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가 그녀를 덮쳤다. 선박이 난파되는 대참사 속에서 그녀는 대옹(大雍) 왕조의 말 못 하는 과부에게 빙의하게 된다. 그녀는 하늘이 그동안 자신의 행실이 너무 방탕해 이곳에 떨어뜨려서 정신을 차리게 만들려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로 조정의 권력을 쥐고 흔드는 섭정왕과 하룻밤 불장난 같은 인연을 맺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최원헌: 수년 동안 마음 깊이 품어왔던 그녀를 마침내 아내로 맞이했다. 그녀가 예전의 그녀가 아님을 알면서도, 그에게는 오직 그녀뿐이다. 소승기: 그저 하룻밤 스쳐 지나가는 인연으로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매일 밤 남모르게 밀회를 갖고, 일부러 그녀의 부군을 멀리 발령 보내며 매일같이 살을 맞대다 보니… 결국 미련을 버리지 못한 쪽은 그였다. 배소연: 고고하고 청렴하기로 이름난 배 승상은 처음에 강사리를 가소롭게 여겼다. 훗날 소승기가 그에게 “그녀가 무엇을 원하든 다 줄 셈인가?” 하고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물론입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저는 무엇이든 줄 것입니다.” 소묵정: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혹한 황자. 그가 인질까지 잡아가며 협박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그녀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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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제1화

"쿵..."

묵직하게 바닥을 치는 소리가 고요하고 칠흑 같은 마당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강사리의 곁에 있던 주학이 깜짝 놀라 깨어났다. 그녀는 곤히 잠든 강사리를 흔들어 깨우고, 천천히 손을 뻗어 침상의 휘장을 걷어 올렸다.

깨어난 강사리는 손가락 하나 보이지 않을 만큼 캄캄한 방 안을 보며 경계심에 주학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 그러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밖을 살폈다.

암자에는 사람도 적고 겨울이라 날도 추워, 두 사람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었다.

이 야심한 시각에 사람을 깨울 정도의 소리라면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주학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안심시켰다. 그리고 이내 밖에서 들려오는 침입자의 거친 숨소리와 발소리를 확인한 뒤에야, 강사리도 그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주학은 조심스럽게 침상에서 내려와 옷걸이에 걸린 겉옷을 몸에 걸쳤다. 그리고 돌아서서 이불을 강사리에게 덮어준 뒤, 숨을 죽인 채 문 쪽으로 향했다.

강사리는 귀를 바짝 세웠지만 역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아, 두 손으로 이불을 꽉 쥐었다.

빙의한 후로 근 2년 동안 외지인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 엄동설한 한밤중에 누군가 침입하다니.

도둑일까?

아니면 치한일까?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으니 공포심은 한없이 커져만 갔다.

그녀가 이불 깃을 필사적으로 움켜쥐는 찰나,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정면에서 훅 불어왔다. 그녀는 서둘러 이불을 감싸 쥐고 조용히 몸을 웅크렸다.

괴한이 문을 열었음을 직감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두운 방 안에 등잔불이 켜지며, 주학이 모습을 드러내며 문을 닫았다.

휘몰아치던 밤바람이 문에 막히자, 강사리는 서둘러 침상에서 기어 나와 바닥에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살짝 보아도 매우 귀하고 고급스러운 비단 재질이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옷에 새겨진 은은한 문양이 빛을 받아 흐르듯 일렁였다.

그는 원탁에 한 손을 짚고 허리를 숙인 채, 싸늘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훑어보았다.

강사리는 숨이 턱 막혀 두려움에 몸을 움츠렸다. 그녀는 맨발로 침상에서 내려와 주학의 등 뒤로 숨었다.

그의 시선이 스치듯 지나간 것만으로도 온몸에 오한이 일어, 그녀는 주학에게 다급히 손짓했다.

"누군지 물어보거라. 여기에는 왜 왔는지도."

그녀는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했기에, 교류는 오직 수어로만 가능했다.

주학은 한눈에 보아도 상대가 보통 인물이 아닌, 신분이 고귀한 자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두 손을 모아 예를 갖춘 후에 강사리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그 순간, 소승기가 갑자기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미처 피하지 못한 주학은 그대로 날아가 벽에 박혀 버렸다.

약효 때문에 이미 이성을 잃은 그는 중심을 잡지 못한 채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의 눈빛에 서늘함이 스치며, 소매 안쪽에서 암기를 꺼내 막 던지려던 찰나, 건너편에 수수한 잠옷 차림의 여인이 보였다.

그녀는 하얀 얼굴을 쏙 내밀고 있었는데, 가느다란 눈썹과 사슴 같은 눈망울, 오뚝한 코가 매우 매혹적이었다.

윤기 나는 검은 머리카락은 등을 타고 흘러내렸는데, 촉촉하고 커다란 눈동자에는 공포가 가득해 보였다.

시선을 아래로 내려 그녀의 하얗고 고운 발을 바라보던 소승기는 이내 암기를 거두고는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다 흘러 들어오게 되었소. 무례를 범했군."

강사리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온몸을 짓누르던 무시무시한 압박감이 사라진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황급히 주학을 부축해 일으켰다.

다시 그 사내를 보니, 짙은 눈썹과 별처럼 빛나는 눈, 높은 콧날에 눈꼬리가 살짝 올라간 봉황 같은 눈을 지니고 있었다.

기품이 남달랐고 피부는 옥처럼 고왔으며, 관자놀이 옆으로 흘러내린 몇 가닥 머리카락 뒤로 흑발이 흩어져 있었다.

허리띠를 찬 몸은 탄탄했고 신수도 훤칠했다.

과거 주색에만 빠져 살던 시절에도 이 정도의 미남은 본 적이 없었다. 2년 동안 강제로 수양해 온 몸인데도 순간 묘한 충동이 일었기에, 강사리는 마음속으로 자신을 질책했다.

생사가 오가는 판국에 남자에게 정신이 팔리다니, 도대체 무슨 수양을 했단 말인가?

그녀는 주학을 부축한 채 조심히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았다.

그녀가 처음 이곳에 빙의했을 때 절벽에서 혼절해 있던 주학을 구해준 적이 있었다.

무공을 할 줄 아는 주학조차 바깥세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본 그녀는 자신 같은 몸으로는 사흘도 못 버티리라 직감했었다.

결국 그녀는 꼬리를 내리고 암자로 돌아왔고, 그때부터 날마다 불상 앞에 공양을 올리며 얌전히 지내온 것이었다.

소승기는 그녀의 의도를 간파하고 손에 쥔 암기를 그녀의 뺨에 스치듯 날렸다.

암기는 그녀의 등 뒤 문틀에 깊숙이 박히며 가늘게 떨렸다.

주학이 잽싸게 그녀를 끌어당겼지만, 강사리는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한 채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소승기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말 못 하는 벙어리인 줄만 알았는데, 귀까지 먹은 귀머거리라니.

"죽고 싶지 않다면 내 말대로 하거라."

그 오만한 명령에 분노한 주학이 몸을 날려 그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그의 몸에 닿기도 전에 그가 풍기는 무시무시한 살기에 가로막혀, 마치 줄 끊어진 연처럼 바닥으로 툭 쓰러졌다.

강사리는 겁에 질려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살면서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

빙의하기 전에는 매일 호화로운 술자리를 전전하며 돈을 물 쓰듯 쓰기만 했을 뿐이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그녀는 앵두 같은 입술을 살짝 벌린 채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얀 발가락이 긴장으로 인해 바닥을 꽉 움켜쥐었다.

"물을 떠 오거라."

그는 두 주먹을 꽉 쥔 채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충동을 억누르고는 손가락으로 강사리를 가리키며 말을 덧붙였다.

"이 여인은 남겨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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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챕터
제1화
"쿵..."묵직하게 바닥을 치는 소리가 고요하고 칠흑 같은 마당에 울려 퍼졌다.그 소리에 강사리의 곁에 있던 주학이 깜짝 놀라 깨어났다. 그녀는 곤히 잠든 강사리를 흔들어 깨우고, 천천히 손을 뻗어 침상의 휘장을 걷어 올렸다.깨어난 강사리는 손가락 하나 보이지 않을 만큼 캄캄한 방 안을 보며 경계심에 주학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 그러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밖을 살폈다.암자에는 사람도 적고 겨울이라 날도 추워, 두 사람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었다.이 야심한 시각에 사람을 깨울 정도의 소리라면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주학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안심시켰다. 그리고 이내 밖에서 들려오는 침입자의 거친 숨소리와 발소리를 확인한 뒤에야, 강사리도 그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주학은 조심스럽게 침상에서 내려와 옷걸이에 걸린 겉옷을 몸에 걸쳤다. 그리고 돌아서서 이불을 강사리에게 덮어준 뒤, 숨을 죽인 채 문 쪽으로 향했다.강사리는 귀를 바짝 세웠지만 역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아, 두 손으로 이불을 꽉 쥐었다.빙의한 후로 근 2년 동안 외지인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이 엄동설한 한밤중에 누군가 침입하다니.도둑일까?아니면 치한일까?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으니 공포심은 한없이 커져만 갔다.그녀가 이불 깃을 필사적으로 움켜쥐는 찰나,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정면에서 훅 불어왔다. 그녀는 서둘러 이불을 감싸 쥐고 조용히 몸을 웅크렸다.괴한이 문을 열었음을 직감한 것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어두운 방 안에 등잔불이 켜지며, 주학이 모습을 드러내며 문을 닫았다.휘몰아치던 밤바람이 문에 막히자, 강사리는 서둘러 침상에서 기어 나와 바닥에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이를 바라보았다.그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살짝 보아도 매우 귀하고 고급스러운 비단 재질이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옷에 새겨진 은은한 문양이 빛을 받아 흐르듯 일렁였다.그는 원탁에 한 손을 짚고 허리를 숙인 채, 싸늘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훑어보았다.강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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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강사리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 않아 입모양을 읽으려 애썼다. 하지만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고 몸마저 떨리는 탓에 쉽지 않았다. 그녀는 급히 주학의 곁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앞뒤 잴 것 없이 일단 약한 모습부터 보여 동정표를 사려는 심산이었다.원래부터 강사리는 이런 인간이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판국에 체면이니 자존심이니 하는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주학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본 강사리는 그녀의 옷자락을 붙잡고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밖으로 도망치려 했다.그때 주학이 그녀를 부축해 일으키며 수화로 다급히 손짓했다."잠시 나갔다 올 테니 여기 계십시오. 해치지는 않겠다고 하였습니다."그제야 강사리는 십년감수했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목숨은 건졌구나 싶었다.이렇게 허무하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가만 보면 이번 생에는 조용히 수양이나 하라고 하늘이 도와주는 것 같았다.다음 생에서는 돈을 펑펑 쓰고, 잘생긴 남자를 끼고 살고 싶었다. 그녀는 침상으로 돌아와 앉아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탁자를 짚고 앉은 사내를 바라보니, 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줄곧 그녀를 매섭게 쏘아보고 있었다.강사리는 사내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안색은 비정상적으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눈동자 역시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거칠게 들썩이는 가슴은 마치 먹이를 노리고 잔뜩 웅크린 맹수 같았다. 그녀의 직감이 이 남자는 아주 위험하다고 경고했기에,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마음을 다스리며 수양하러 온 처지에, 남자를 봤다고 정신을 못 차려 전생의 전철을 밟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전생에서 남자들을 품에 끼고 화려하게 놀다가, 크루즈 여행 중 해저 지진을 만나 수장당한 그녀였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이 뜬금없는 가상 세계에 타임슬립해 말 못 하는 과부가 되어 있었으니…주학이 물 양동이 두 개를 메고 방으로 들어와 욕조에 부었다.강사리가 아무리 남녀관계에 개방적이었다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머리를 굴려보니 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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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그는 그녀가 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직막하게 한마디 내뱉었다.하지만 강사리는 입모양을 읽을 줄 알았다. 그의 말은 짧고 명료했기에, 강사리는 단번에 그 뜻을 알아차렸다.그녀가 뭘 두려워하겠는가.2년이나 금욕을 해왔는데, 오히려 그녀가 이성을 잃고 짐승처럼 돌변할까 봐 그게 더 무서웠다.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살을 지지는 듯 뜨거웠다.강사리는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린 채, 한참 동안 어떻게 할지 몰라 허둥대는 그를 바라보았다.설마 스물네 살 먹도록 숫총각인 건 아니겠지?옷차림이 예사롭지 않은 걸 보면 귀한 신분 같은데, 남녀상열지사를 가르쳐 줄 통방 시녀조차 없었단 말인가?그녀가 슬며시 그의 허리춤으로 손을 뻗자, 소승기는 그 손길을 느끼고 차분한 눈빛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이내 상체를 일으켜 그녀의 손을 꽉 맞잡았다."내가 하겠소."그는 말해놓고서야 그녀가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렸다.소승기는 덤덤하게 제 허리띠를 풀었고, 옷자락은 자연스럽게 양옆으로 흘러내렸다.그가 손을 휙 휘두르자 침상 바깥의 가림막이 스르륵 내려왔다.이윽고 그가 허리를 숙여 그녀의 위를 덮쳐왔다.물기를 머금은 촉촉한 눈망울과 앵두처럼 붉은 입술이 마치 자석이라도 된 것처럼 그를 끌어당겼다.그는 서서히 다가가 입을 맞추었다.두 입술이 맞닿는 순간, 강사리는 온몸이 녹아내릴 것만 같은 치명적인 열기를 느꼈다.그녀는 바로 그를 밀쳐냈지만, 그의 온몸이 숯불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다는 것은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이 느낌을 지금까지 어떻게 참았나 싶을 정도로 뜨거웠다.그가 다시 그녀의 입술을 부드럽게 머금었다. 이제껏 맛본 그 어떤 것보다도 달콤하고 말랑했다.강사리는 아픔에 다시 밀어내려고 했지만, 그가 반응이 없자,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의 입술을 콱 깨물어버렸다.그제야 소승기가 고개를 들고 그녀에게 물었다."내가 아프게 했소?"그러고는 곧바로 그녀가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참으로 미칠 노릇이었다.강사리는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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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강사리는 귀가 들리지 않아 그가 왜 멈추었는지 의아했다. 이내 눈을 감은 채 그의 손을 끌어당겨 더 주물러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입을 틀어막고 하품을 쩍 하자 눈가로 눈물 한 방울이 찔끔 배어 나왔고, 강사리는 욕조 가장자리에 기대어 눈을 가느다랗게 뜬 채 가만히 숨을 골랐다.소승기가 평생 여인을 시중들어 보았을 리 만무했다. 그녀가 잠들자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던 그는 결국 욕조에서 그녀를 안아 올려 커다란 면포로 감싼 뒤, 침상으로 안고 돌아왔다.엉망진창으로 더러워졌던 침상은 그새 새 이불이 깔려져 있었다. 소승기는 그녀에게 이불을 꼼꼼히 덮어주고 난 뒤에야 방을 나섰다.그렇게 잠시 후 잠에서 깬 강사리가 침상 가림막을 걷어 올리자, 둥근 탁자 옆에 앉아 있는 주학의 모습이 보였다.그는 강사리가 깨어난 것을 보자마자 번개같이 달려와 침상 옆에 꿇어앉았다.“몸은 좀 어떠십니까? 다 제 탓입니다. 제가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습니다.”"목숨만 붙어 있으면 그만이지, 뭘 그러느냐."강사리는 대수롭지 않게 손짓했다. 게다가 그 남자가 첫 경험인 듯 서툴고 거칠긴 했어도, 몸매며 기술이며 그야말로 극상급 보물이지 않았나.비록 약 기운 때문에 지나치게 오래 시달리긴 했지만, 솔직히 기분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마지막엔 내력으로 뭉친 근육까지 풀어준 덕분인지, 몸을 살짝 움직여 보아도 별다른 통증이나 불편함이 없었다.정말 신기할 노릇이었다.이토록 완벽한 하룻밤이라니. 그동안 강제 금욕하느라 굶주렸던 배를 아주 한 번에 기름지게 채운 기분이었다.그녀는 주학이 준비해 둔 옷을 받아 입었는데, 가만 보니 늘 입던 낡은 옷이 아닌 완전히 새 옷이었다.강사리는 현재 수절 중인 과부 신세라 평소 생활용품은 전부 시댁에서 받아 썼기에 옷들이 하나같이 칙칙하고 수수한 것뿐이었다. 이 옷은 비록 색은 수수할지언정 원단 촉감이 눈이 번쩍 뜨일 만큼 고급스러워 보였다.강사리가 눈짓으로 물었다.“이 옷은 무엇이냐?”주학이 잔뜩 뿔이 난 얼굴로 입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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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주학은 이미 식어버린 수수빵을 찬합에 대충 쑤셔 넣고는 강사리와 함께 후문으로 나섰다. 두 사람은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험한 바위들을 넘으며 점점 더 깊게 들어갔다.사실 강사리가 이곳에서 도망치지 않고 버틴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바로 이놈의 험악한 산세와 끊긴 길 때문이었다.주학의 손에 끌려다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숨이 가쁜데, 혼자 탈출해서 밥을 빌어먹고 살 생각을 하면 앞날이 캄캄했다.심지어 이 무자비한 고대 사회에서 말 못 하는 여자 혼자 몸을 보전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울 터였다.이럴 바엔 그냥 암자에 얌전히 처박혀 일편단심 부처님만 붙잡고 불공을 드리는 편이 나았다. 그래야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 재벌의 영광을 누릴 테니까 말이다.숲 바닥에는 마른 나뭇가지와 낙엽이 잔뜩 쌓여 있어 발을 내디딜 때마다 부스럭부스럭 요란한 소리가 났다.강사리는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세 걸음씩 미끄러졌고, 그렇게 한 시진을 꼬박 걸었음에도 산닭은커녕 새 새끼 우는 소리 한 번 들리지 않았다.쥐 죽은 듯한 고요 속에서 강사리는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결국 그녀는 평평한 바위 하나를 찾아 대자로 뻗어 누우며 손을 저었다.“더는 못 가겠다...”주학은 강사리가 거의 실신 직전인 것을 보고, 이제 혼자 찾아보겠다며 움직였다.한겨울에는 동물이나, 사람이나 밖에 돌아다니는 생명체가 극히 드물었다.주학 역시 어쩌다 운이 좋아야 겨우 한 마리 낚는 수준이었다.주학이 몇 걸음 옮기지 않았을 때, 별안간 숲 저편에서 은은한 거문고 소리가 들려왔다.이런 귀신 나올 것 같은 오지에 사람이 있다니?주학은 바위에 누워 뺨이 복사꽃처럼 붉어진 채 쌕쌕거리는 강사리를 흘깃 보았다.이런 곳에 그녀를 혼자 둘 수는 없었다. 어떤 음흉한 사내가 나타날지 모르는 법이었다.주학이 다시 다가와 강사리의 손을 꽉 쥐었다.“근처에 사람이 있습니다. 이곳은 위험하니 같이 가시지요.”강사리는 주학의 손에 이끌려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그런데 그 순간, 알싸한 초피 향이 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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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주학은 등 뒤에서 외쳐 대는 의주의 경고 따윈 가볍게 무시한 채, 강사리를 낚아채서 절벽 아래로 함께 몸을 던졌다.순간 몸이 붕 뜨며 추락하는 느낌에 강사리는 비명을 질렀다.주학이 어떻게든 탈출할 방법을 찾아낼 줄 알았건만, 자칫하면 개죽음을 당하게 생겼다!그녀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이대로 떨어진다면 온몸이 일곱여덟 조각으로 산산조각 나는 게 아니겠는가?인생사 가장 절망적인 죽음이 있다면, 자신이 어떻게 처참하게 죽을지 뻔히 알면서 그 순간을 가만히 기다려야 하는 바로 지금 같은 상황일 터였다.소리를 지르고 싶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니 냉가슴 앓듯 입만 쩍 벌렸다.추락하는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칼바람이 입안으로 사정없이 밀려 들어왔다.바람이 식도를 타고 아랫배까지 곧장 들어오는 바람에, 강사리는 끅끅거리며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황급히 입을 다문 그녀는 속으로 절절하게 기도를 올렸다.'부처님, 이번에 살려만 주시면 평생 암자 문밖으로는 반 걸음도 나오지 않겠습니다. 기어 나오자마자 이 무슨 개고생이란 말입니까. 그냥 얌전히 불공이나 드릴게요.'미처 기도를 끝내기도 전에 등 뒤로 육중한 충격과 함께 둔탁한 통증이 가해졌다.주학이 그녀를 품에 안은 채 거대한 나뭇가지 위로 착지한 것이다.주학은 한 손으로 위태롭게 부러진 나뭇가지를 붙잡은 채, 남은 한 팔로 강사리를 필사적으로 감싸 안고 있었다.이내 주학의 입에서 붉은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부러진 나뭇가지에 사정없이 긁힌 주학의 어깨에서도 붉은 피가 배어 나와 강사리의 뺨 위로 뚝뚝 떨어졌다.강사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뺨에 닿은 축축하고 뜨거운 혈흔이 느껴지자, 그녀는 자신을 놓으라며 주학의 품에서 버둥거렸다.두 사람의 무게를 버티기엔 나뭇가지가 이미 한계를 넘은 상태였기에, 이내 뚝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바닥으로 고꾸라졌다.다행히 그리 높지 않아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주학은 재빨리 강사리를 안전한 곳으로 숨긴 뒤, 입안 가득 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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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주학은 강사리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은 채, 그저 얼굴 가득 짙은 수심을 띠고 고개를 가볍게 두어 번 저을 뿐이었다.평소 워낙 무던해서 매사 수긍하는 성격의 강사리였지만, 이 지경이 되어서도 아무런 대책이 없는 주학을 보며 내심 실망했다.이 여자를 믿고 암자를 냅다 탈출한 게 과연 잘한 짓인지, 잘못한 짓인지 슬슬 회의감이 밀려왔다.“그럼 일단 처소로 돌아가자.”도둑놈들이 24시간 내내 죽치고 있을 리는 없지 않은가.워낙 허겁지겁 도망쳐 나오는 탓에 몸뚱이만 달랑 빠져나왔으니, 다시 몰래 들어가 비상금이랑 패물이라도 챙겨서 다른 지방으로 튀는 게 상책이었다.주학은 제 팔을 붙잡은 강사리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그리고는 강사리의 눈동자에 어린 실낱같은 희망을 마주하고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울적하게 손짓을 해 보였다.“어젯밤 저희가 살던 곳에 불이 났습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잿더미가 되었을 것입니다.”“…”대체 전생에 무슨 대역죄를 지었기에 이토록 집요하게 괴롭힌단 말인가?강사리는 동공지진이 일어나 한동안 눈을 제대로 깜박이지도 못했다.이곳에 온 뒤로 이렇게 막장 드라마처럼 황당한 적은 난생처음이었다.이 엄동설한에, 그것도 사방이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산속 암자에 불을 지르다니.불길이 번져서 산을 홀라당 태워 먹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안 되었단 말인가?상대가 아주 작정하고 자신들의 목숨줄을 끊으려 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주학처럼 가녀린 여인이 대체 어쩌다 이토록 악랄하고 잔인한 원수를 갖게 되었을까?강사리는 두 손을 꽉 맞잡았다.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리는 몸뚱이는 시간이 갈수록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그녀는 결국 주학의 팔뚝을 껴안고는, 서로의 체온에 의지해 조금이라도 추위를 이겨내려는 듯 바짝 밀착했다.앞길은 갈수록 암흑천지였고, 도무지 탈출구라곤 보이지 않았다.이제 어쩌면 좋단 말인가?강사리는 소매자락 깊숙이 넣어 두었던 소승기의 옥패를 꺼내 주학의 팔을 다급하게 흔들었다.“우리 같이 이 옥패 주인을 찾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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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최원헌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서둘러 말을 내뱉었지만, 상대의 입 모양을 봐야지만 이해하는 강사리로서는 단 한 문장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그녀는 그저 동그랗고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도움을 청하듯 주학을 바라볼 뿐이었다.주학 역시 설마 했던 최씨 가문의 시동생 놈이 감히 제 형수를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청해올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그녀는 잠시 멍하니 굳어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강사리에게 수화로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강사리도 설명을 듣자마자 머릿속에 번개가 콰광 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이놈이 나한테 청혼을 했다니?서로 말귀도 제대로 안 통해 의사소통도 안 되는 상황인데, 대체 뭘 보고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겠다는 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강사리의 황당한 기색을 눈치챘는지, 최원헌이 절절한 눈빛으로 다급히 말을 이었다.“형수님, 저는 형님께서 숨을 거두시기 직전 임종 자리에서 약조했습니다. 남은 평생 형수님을 곁에서 지키고 극진히 보살피겠노라고 말입니다.”“…”강사리는 문득 최씨 가문의 안주인인 노부인의 얼굴이 떠올랐다.이 남자가 자신을 아내로 맞이하겠다는 게 말처럼 그리 단순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 또한 시집을 가든 안 가든 딱히 밑질 게 없었다.호랑이 굴 같은 최씨 가문으로 기어 들어가는 게, 정체불명의 수배범 주학을 따라 평생 천하를 떠돌며 흙밥을 먹는 것보다는 오만 배 나았으니까 말이다.그녀는 손을 까딱여 일단 그를 밖으로 물린 뒤,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갖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소제, 목숨을 걸고 형수님을 지킬 것이옵니다.”최원헌은 품 안에 소중히 보관해 두었던 문서와 옥패를 꺼내며 덧붙였다.“이 장원은 어머니의 눈을 피해 제가 은밀히 마련해 둔 사유지이옵니다. 예전부터 오직 형수님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있고 싶어 준비해 둔 곳이니, 우선은 여기서 편히 지내십시오. 최씨 가문의 큰며느리 강씨 부인은 이번 암자 화재로 세상에서 사라진 것입니다. 형수님께서는 앞으로 완전히 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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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최 장군이 이토록 정과 의리가 넘치는 대장부일 줄이야. 내 조금 이따 축하주나 한잔 얻어마셔야겠소.”등경은 별다른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고, 자신이 찾던 그 말 못 하는 계집의 얼굴도 보지 못했기에 작별을 고했다.그러고는 소승기의 뒤를 바짝 쫓아갔다.최원헌도 말을 타자, 가마 행렬은 다시 출발했다.도성 거리를 크게 한 바퀴 돌며 위세를 과시한 후에야 행렬은 마침내 최씨 가문에 도착했다.화려한 꽃가마가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앉았다.강사리는 가마가 내려앉는 느낌과 함께, 바깥에서 누군가 가마 문짝을 툭툭 두드리는 요란한 진동을 느꼈다.곧이어 천막의 가림막이 반쯤 걷히더니, 안으로 사내의 두 손이 쑥 밀려 들어왔다.그 손에는 붉은 비단 띠가 쥐어져 있었다.강사리는 직감적으로 그가 바로 최원헌, 혈기 왕성했던 소년 장군이라는 것을 알아 차렸다.그녀는 마치 꿈을 꾸는 듯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결국 이렇게 얼렁뚱땅 시집을 가게 되는 건가?“집에 다 왔습니다.”강사리는 붉은 면사포 아래로 내밀어진 비단 띠를 건네받았다.슬쩍 시선을 내려 그의 손을 바라보니, 손바닥 전체에는 투박하고 두꺼운 굳은살이 박여 있었으나 손가락만큼은 길쭉했고 손톱도 아주 단정하고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강사리가 조심스레 그 손 위로 제 손을 얹자, 최원헌은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손을 반대로 꽉 움켜쥐었다.뜨거우면서도 거친 사내의 손길이 살결에 닿자, 순간 온몸의 세포가 짜릿하게 곤두서며 심장까지 간질거렸다.그는 살짝 힘을 주어 당기는가 싶더니, 갑자기 강사리의 허리를 끌어 안겼다.최원헌이 그녀를 안아서 번쩍 들어 올린 것이다.강사리는 면사포의 붉은 천 너머로 어른거리는 바깥사람들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최씨 가문이라.이 몸, 강사리가 결국 이 집안으로 다시 시집을 와버렸다.한 집구석 문턱을 인생사 두 번이나 밟고 들어가다니, 내일 아침 문안 인사를 올릴 때 노부인의 지독한 얼굴이 얼마나 볼만하게 구겨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만약 정체불명의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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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강사리는 최원헌의 움직이는 입술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대충 눈치로 그의 말을 이해했다.그의 절절한 고백에 제대로 화답해 줄 수는 없었지만, 그의 진심만큼은 기억해 두었다. 변방의 전쟁터에서 대승을 거두고 돌아왔을 때보다도 지금이 훨씬 더 의기양양해 보였다.승전고를 울리며 귀환하여, 마침내 마음속에 품었던 미인을 품에 안고, 일생 가장 화려한 은애를 나누는 신혼 첫날밤을 맞이했으니 소년 장군 최원헌의 인생사 가장 정점을 찍은 순간이었다.강사리는 복잡한 생각을 털어내듯 먼저 술잔을 치켜들고는, 고개를 뒤로 꺾어 합환주를 단숨에 들이켰다.최원헌은 그녀의 거침없는 모습에 깜짝 놀라 다급히 만류했다.“천천히 마십시오. 사레가 들리겠소.”그녀가 잔을 깨끗이 비운 것을 확인한 후에야 그 역시 고개를 들어 제 잔을 단숨에 비워냈다.고개를 뒤로 젖혀 술을 삼키는 와중에도, 그의 두 눈은 단 한 순간도 강사리의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은 채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었다.술기운이 돌기 시작하자, 강사리의 하얗고 뽀얀 피부 위로 붉은 홍조가 번져가며 마치 화사한 꽃들이 피어나는 듯했다.최원헌은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웃더니, 빈 술잔을 받아들며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사리는 술을 전혀 못 하니 절대 먹이지 말라’던 형님의 유언 같은 당부가 진짜였음을 실감한 모양이었다.그가 강사리의 귓가로 바짝 다가왔다.그녀가 제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고 조심스러운 음성으로 속삭였다.“기다려 주시오.”서로의 숨결이 아찔하게 얽히려는 찰나, 최원헌이 고개를 살짝 돌려 그녀의 부드러운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신속하게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그는 백자 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는, 가솔을 불러 앞마당에 자신이 이미 술기운이 과하게 올라 더는 하객들을 맞이할 수 없다 전하라고 명했다. “장군님, 그건 아무래도 법도에 어긋날 것 같습니다.”그러자 어릴 때부터 최원헌을 그림자처럼 보좌해 온 부장 최지가 난감한 얼굴로 그를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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