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말 못 하는 과부로 빙의했지만, 풍류와 자유가 체질: Bab 21 - Bab 30

30 Bab

제21화

“노부인께서 농이 과하십니다. 저희 집 사리가 만약 둘째 부인 같은 성격이었더라면, 결코 그리 허망하게 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왕씨 부인은 맞은편의 노부인을 향해 번득이는 적개심을 드러내더니, 이내 강사리를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둘째 부인께서는 참으로 솔직하고 화끈한 성격이시군요. 모쪼록 최 장군과 약속하신 대로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은애하며 백년해로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그녀는 노부인의 가증스러운 만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청을 빠져나갔다.노부인은 순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허둥지둥댔다. 하지만 저 오씨의 얼굴만큼은 죽은 강사리와 소름 끼치도록 똑같았으니, 세상에 어찌 이리도 빼다 박은 듯한 얼굴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허나 그 성질머리만큼은 확실히 판이하게 달랐다.“노부인, 저를 살려주옵소서...”바닥에 박혀 있었던 황리의 머리 밑으로 시뻘건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신음하며 간신히 노부인을 향해 가느다란 손을 뻗었다.“오씨! 대체 무슨 해괴한 짓거리를 벌이는 게냐! 내 저택의 노비를 함부로 죽이려 들다니, 대체 누구를 믿고 이리 당돌하게 구는 게야!”노부인은 상좌 옆의 자그마한 찻상을 손바닥으로 쾅 내리쳤다. 분노가 극에 달해 이마의 핏대가 불거졌다.“노부인, 그리 노여워하지 마옵소서. 이토록 안하무인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자가 감히 윗상전의 안방을 무단으로 침범한 것도 모자라, 잘 자고 있는 안주인의 이불까지 확 들추어냈사옵니다. 대체 이것이 어느 집안의 막돼먹은 법도란 말입니까?”주학은 싱글벙글 웃는 낯으로 손에 쥔 채찍을 꽉 쥐더니, 그대로 뒤로 홱 잡아당겼다. 황리의 몸뚱이가 바닥을 쓸며 밀려난 덕에, 그녀의 머리 밑에 고여 있던 혈흔도 강제로 말끔히 닦여 나갔다.“대체 어떤 인간이 뒷배를 봐주었기에 이런 하극상을 일삼는단 말입니까? 내막을 모르는 이가 보면 저 사람이 장군의 부인이고, 저희 언니가 몸종 시녀인 줄 알겠사옵니다...”강사리는 가볍게 한쪽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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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마침 의원을 부르러 나갔던 시녀가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왔다.“증 의원님, 어서요! 저희 노부인께서는 안방에 계십니다!”“사람들이 이리 빽빽하게 에워싸고 있으면 숨을 못 쉬오. 다들 좀 물러서시게...”백발의 늙은 의원은 인사불성이 된 노부인의 상태를 보더니 다급히 그녀를 평평한 곳에 눕히고 맥을 짚었다.허나 맥을 짚어 내려갈수록 의원의 안색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분노가 심장을 탓에, 만약 한 걸음만 더 늦었더라면 그대로 황천길로 가버렸을 터였다.의원은 다급히 은침을 꺼내어 그녀의 머리에 사정없이 꽂아 넣기 시작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노부인의 머리통 전체가 은침으로 빼곡하게 뒤덮였는데, 그 꼴이 흡사 성난 고슴도치 같았다.그 끔찍한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니, 강사리는 자기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그래서 슬그머니 주학의 몸에 밀착하더니, 팔을 꽉 움켜쥐고 알 수 없는 눈짓을 보냈다.그러고는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주학의 품 안으로 픽 쓰러져 버렸다.“어머나 세상에! 저희 언니가 근심이 극에 달해 그만 기절하셨사옵니다! 이만 방으로 모셔 눕혀야겠습니다.”주학은 강사리를 번쩍 안아 들고 처소로 복귀했다.방을 나서기 전, 강사리는 눈을 살짝 떠 주학에게 아까 자신의 방에 황리를 들여보냈던 그 한심한 안방 시녀도 함께 끌고 가 인적이 드문 곳에서 영혼까지 탈탈 털어버리라고 은밀히 손짓했다.상전을 보호할 줄도 모르는 하인 놈 따위는 곁에 남겨두어 봐야 하등 쓸모가 없었다.명색이 지체 높은 최씨 가문의 둘째 부인이라는 상전이 거처하는 안방에, 한낱 노비가 무단으로 난입해 들어온 것도 모자라 이불까지 들추다니,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가관이었다.만약 전생의 집안 보모나 가사도우미가 이딴 짓거리를 벌였다면 그 자리에서 즉시 해고 사유감이었다.다만 이 고대 사회에서는 ‘당일 해고’라는 현대적인 복지 시스템이 통하지 않으니, 법대로라면 당장 다른 집에 노비로 팔아넘기는 것이 답이었다.하지만 지독하게도 인자하고 마음씨 고운 강사리가 인신매매라는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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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소승기는 말을 뱉고 나서야 그녀가 자신의 말을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는 강사리의 가느다란 허리를 한 손으로 움켜쥐더니, 순식간에 몸을 뒤집어 그녀를 자신의 아래에 두었다.잔뜩 겁에 질려 하얗게 질린 강사리의 안색을 내려다보던 소승기는 이내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참으로 겁도 없고 머릿속에 든 것도 없는 철부지가 따로 없었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의 사람을 불러들였다.강사리는 침상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이불을 가슴팍까지 끌어 올린 채, 문이 열리며 우르르 밀고 들어오는 한 무리의 가솔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대체 이게 무슨 난리인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가장 마지막으로 걸어 들어온 이는 흰 수염을 가슴까지 늘어뜨린, 제법 신선 같은 모습의 늙은 의원이었다.그는 들어오는 내내 연신 구시렁거리며 침상 앞까지 다가오더니 눈짓을 보냈다. .“여인의 손을 밖으로 꺼내십시오.”강사리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나, 소승기가 무뚝뚝한 낯으로 이불 속에 숨겨져 있던 자신의 손을 강제로 끄집어내는 모습만큼은 똑똑히 보았다.하인이 재빠르게 손목 밑에 푹신하고 도톰한 고침을 받쳤고, 흰 수염 노인은 수염을 비비꼬며 강사리의 맥을 짚기 시작했다.그제야 강사리는 ‘아, 이 인간들이 자신의 병을 고쳐주려고 의원을 부른 것이구나’ 하고 알아차렸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기쁨이 밀려와 슬그머니 소승기를 훔쳐보았다.마침 하인들이 달라붙어 그의 의복을 정성껏 입혀 올리는 중이었다.만약 저 영감탱이가 정말로 자신의 막힌 목구멍을 뚫어 말문이 트이게 해줄 수만 있다면, 어젯밤 새끼 늑대에게 밤새도록 험하게 시달린 것도 불행 중 다행인 셈이었다.진짜 말 한마디 못 하고 벙어리로 사느라 가슴이 답답해 죽기 일보 직전이었기에, 강사리는 자신의 입으로 소리를 낸다는 게 대체 어떤 감각이었는지조차 까맣게 잊어버린 상태였다.하지만 흰 수염 노인은 맥을 짚는 내내 미간을 찌푸렸다가, 이내 수염을 만지작거리기를 반복했다.그 불길한 몸짓에 강사리의 심장은 불안함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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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사실 강사리는 아픈 게 아니라 무서웠다.한참을 울어 대다가 눈물이 잦아들어 다시 눈을 떴을 때, 어안이 벙벙하게도 방 안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온몸의 마비가 풀려 자신의 몸이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챈 강사리는 이내 머리에 박힌 은침들을 확 뽑아내려 했다.그런데 그 순간, 눈보다 빠른 소승기의 매서운 손길이 그녀의 손목을 가차 없이 낚아챘다.강사리는 그제야 이 무정한 사내가 침상 안쪽에 버젓이 누워 자신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그녀는 억울함에 시무룩하게 입술을 삐쭉거리며 다시 눈물을 짜내려 했고, 동시에 붙잡히지 않은 다른 쪽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소승기는 아예 그녀의 양손을 한꺼번에 움켜잡았다.서리 찬 냉혹한 얼굴로 미간을 팍 찌푸린 것이, 불쾌감이 극에 달한 기색이었다.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참지 못하고 한마디를 뱉었다.“도대체 몇 살이기에 이리 어린아이처럼 구는 것이오?”어차피 그래 봐야 귀머거리라 자신의 말을 듣지 못한다는 사실이 떠오른 그는, 강사리의 양손을 머리 위로 확 들어 올려 고정해 버렸다.“함부로 움직이지 마시오.”강사리는 입술을 대발 내민 채 반항하듯 손을 빼내려 버둥거렸다.사람 머리를 이따위 고슴도치 모양으로 만들어 놓다니, 만약 이걸 맞고도 병이 안 나으면 아주 두고 볼 것이다.그녀의 얼굴에 드러나는 감정 표현이 워낙 다채로워, 소승기는 난생처음 입꼬리를 아주 살짝 올렸다.그러고는 이내 침상에 다시 똑바로 누워 잠을 청했다.강사리 역시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머리 전체에 은침을 빼곡히 꽂은 기괴한 몰골을 하고서도, 밀려오는 졸음에 눈이 가물가물 감겼다.이제 막 단잠에 빠져들려던 찰나, 머리 위에서 누군가 무지막지하게 손을 놀려대는 감각이 생생히 전해졌다.그녀가 깜짝 놀라 다급히 눈을 떠보니, 흰 수염 노인네가 똥 씹은 얼굴로 침을 거두어 가고 있었다.보아하니 대낮도 아니고 이 깊은 야심한 밤중에 잠도 못 자고 강제로 동원된 탓에, 영감 역시 원망이 머리끝까지 차오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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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여인을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거라.”강사리는 이 잔혹한 사내가 비밀을 지키려고 자신을 살인하려는 줄 알고 잔뜩 겁먹고 있던 참이었다.마침 그의 입술을 뚫어지게 보며 말을 해독해 낸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탁탁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하지만 소승기가 어떤 인간인가.찰나의 기색도 놓치지 않는 예리한 사내답게, 그는 순식간에 침상 위를 이동하더니 강사리의 턱을 거칠게 치켜 올렸다.그러고는 미간을 팍 찌푸리며 추궁했다.“설마 이제 귀가 들리는 것이오?”강사리는 그의 서슬 퍼런 기세를 보니 또 단단히 오해를 샀음을 직감했다.그녀는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급히 손을 뻗어 그의 차가운 입술을 꾹 눌렀다.그러고는 자신의 눈을 가리키며, 귀로 들은 게 아니라 눈으로 입모양을 본 것이라는 수신호를 필사적으로 보냈다.“...그나마 완전히 돌대가리는 아닌가 보군.”소승기는 그제야 경계를 풀며 그녀를 놓아주었다.하지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단단한 손날이 강사리의 목덜미를 사정없이 후려쳤다.침상 위에 서 있던 강사리의 몸은 찰나의 순간 실 끊어진 인형처럼 부드럽게 툭 쓰러졌다.강사리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사방에 천광이 대낮처럼 환하게 밝았다. 침상 주변에는 여러 명의 시녀들이 달라붙어 그녀의 몸을 정신없이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의식이 돌아옴과 동시에 목덜미에서 전해지는 욱신거리는 통증에 강사리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그 개차반 같은 염라대왕 놈은 그냥 곱게 가마 태워 보내주면 어디가 덧나는 걸까?왜 매번 사람을 기절시켜서 배달시키는 걸까!이 짓거리도 몇 번 더 당했다간 멀쩡한 목뼈가 부러져 나갈 판이었다.주학은 귀찮게 구는 시녀들을 방 밖으로 대충 쫓아냈다.그녀는 강사리가 연신 목을 주무르는 꼴을 보더니, 어젯밤 침구에서 잠을 잘못 자서 담이라도 걸린 줄 알고 손짓 발짓으로 가문의 전황을 전해왔다.“노부인이 깨어나자마자 큰부엌에 명을 내려 마님 처소로 가는 삼시 세끼 밥줄을 끊어버렸사옵니다! 게다가 앞으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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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강사리의 입술 사이로 야릇한 신음이 흘러나오는 순간, 소승기의 몸이 순식간에 굳어지며 체내를 흐르던 기운도 천천히 멈추었다.도대체 이 무슨 요상망측한 치료법이란 말인가?허나 황당하게도, 이 음양의 내력 교류는 정말로 제대로 먹혀들고 있었다.그 순간, 그의 머릿속으로 불길하고 불쾌한 가정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만약 이 계집이 최씨 저택으로 돌아간 후, 그 애송이 같은 서방 놈과 침상 위에서 살을 부비며 이딴 식으로 ‘치료’를 빙자한 짓거리를 벌인다면...?찰나의 생각만으로도 소승기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조바심과 정체 모를 독점욕이 무지막지하게 치밀어 올랐다.그는 강사리의 가느다란 몸이 감당해 낼 수 있을지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자신의 분노를 담아 내력의 강도를 거칠게 끌어올렸다.문밖에서 밤을 지새우며 대기하고 있던 하인들은 안방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음성을 듣는 순간 일제히 두 눈을 번쩍 빛냈다.하오나 이내 이곳이 타인의 목숨을 파리 목숨 취급하는 냉혈한 염라대왕의 침소라는 사실이 퍼뜩 떠올라, 황급히 표정을 가다듬고는 최대한 인적이 드문 곳으로 걸음을 옮겨 숨을 죽였다.고결하고도 혹독했던 그 하룻밤 동안, 내실 안의 여인은 때로는 억울함에 목을 놓아 대성통곡을 했고, 때로는 가늘고 가련한 신음 소리를 냈으며, 때로는 서러움에 겨워 울부짖기를 반복했다.새벽녘의 동살이 희끄무레하게 터 오를 때야 비로소 그 격렬했던 파란이 잦아들었다.내실 안에서 가볍게 울리는 전령 방울 소리가 들려오자, 문밖에서 대기하던 이들은 일제히 고개를 깊숙이 숙인 채 조심스레 안방으로 들어섰다.소승기는 이미 의관을 정제하고 완벽한 자태로 서 있었으나, 침상 위의 꼴은 눈 뜨고 봐주기 어려울 만큼 어지럽게 뒤엉켜 있었고, 공기 중에는 질척하고 달콤한 향취가 농도 짙게 떠돌고 있었다.무도 영감은 침구 세트를 꺼내 들고 다가갔다가, 침상 위의 여인이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이불을 목 끝까지 두껍게 감싸 쥐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이불 밖으로 드러난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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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두 사람은 일제히 문쪽을 향해 시선을 옮겼는데, 문을 거칠게 밀치고 들어온 이는 다름 아닌 최원헌이었다.그는 강사리가 이 깊은 밤까지 잠들지 않고 깨어 있는 모습을 보더니 순간 멍하니 굳어졌다.“부인, 어찌 아직까지 자지 않고 있었소?”먼지 섞인 검은색 경장 차림을 보아하니, 노숙까지 하며 먼 길을 달려온 기색이 역력했다.그럼에도 특유의 꼿꼿하고 훤칠한 자태만큼은 가려지지 않아, 그야말로 기개가 당당해 보였다.“언니께서 서방님이 대체 어디로 가셨던 거냐고 물으십니다. 소식 한 자락 남기지 않으시고 말입니다.”주학이 재빠르게 강사리의 대변인을 자처하며 통역해 올렸다.강사리는 지금 목구멍에서 아주 미약한 쇳소리만 겨우 짜낼 수 있을 뿐, 온전한 글자는커녕 단어조차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는 상태였기 때문이다.“내가 분명 사람을 시켜 의원을 찾아 떠난다고 구두 전갈을 남겼거늘, 아무도 부인에게 전하지 않았단 말이오?”최원헌은 그날 밤 그녀와 격렬하게 살을 부비며 얽혀 있을 때, 그녀의 목구멍에서 가녀린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을 똑똑히 들었었다.마침 귀신같이 천하의 의원이 나타났다는 첩보를 입수하자마자, 혹여 처의 병을 고칠 수 있을까 싶어 만사를 미뤄두고 은밀한 걸음으로 길을 나섰던 터였다.집을 떠나며 처소 하인들에게 ‘부인께서 깨어나시거든 수일간 출타한다고 전하라’고 분명 엄명을 내렸었다.그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더니, 휙 돌아 서늘하게 눈을 치켜떴다.“내가 떠나던 날 아침, 이 처소 안방을 지키고 있던 게 누구더냐?”그의 등 뒤로 주르륵 도열해 있던 하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무리 한가운데에 서 있던 길쭉한 얼굴의 시녀에게로 꽂혔다.그녀의 이름은 운하로, 최원헌의 처소에서 잔뼈가 굵은 일등 시녀였다.강사리는 애초에 말 한마디 못 하는 벙어리인 데다 이 저택 하인들과 살갑게 친목질을 하는 성격도 아니었기에, 이들은 대놓고 강사리를 무시해 왔었다.운하는 상전의 살기 어린 기세에 짓눌려 쿵 하고 무릎을 꿇었다.“도련님! 그날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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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방 안으로 슬그머니 걸어 들어오는 흰 수염 노인의 모습을 보며, 강사리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애써 긴장된 마음을 억눌러야만 했다. 무도 영감 역시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동공지진이 일어나기는 마찬가지였다.허, 참.섭정왕 그놈은 역시 차원이 달랐다.명색이 일국의 섭정이라는 거물이 남의 집 유부녀를 야밤에 보쌈해 오는 도둑질을 태연하게 감행하다니.역시나 소문대로 사악하고 오만방자하며 음침하고 잔혹하기 짝이 없는 염라대왕다웠다.“이쪽은 저의 처이옵니다. 어려서 크게 앓은 뒤로 귀가 먹고 말문이 막혔사온데, 최근 들어 아주 미약하게나마 음성을 흘리는 것을 목격하였나이다. 수고스러우시겠지만 혹여 완치할 방도가 있을지 진맥을 한 번 부탁드리옵니다.”무도 영감은 입술을 꾹 다문 채 흰 눈처럼 하얀 수염을 만지작거렸다.세상 모든 사내들이 다 소승기처럼 의원을 협박해 대는 무지막지한 저승사자는 아니지 않은가.그는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곁에 놓인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우선 진맥부터 짚어본 뒤에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소.”“당연한 말씀이십니다.”최원헌은 다급하게 강사리의 손을 이불 속에서 꺼내어 침 위에 살포시 올려놓았다.과거 섭정왕부의 내실에서는 늘 캄캄한 밤중인 데다 초라한 촛불 하나에 의지해야 했던 탓에, 무도 영감은 강사리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하오나 지금 최씨 저택의 안방은 채광이 아주 밝아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노인은 살며시 눈꺼풀을 치켜들어 맞은편에 앉은 여인의 자태를 관찰했다.살짝 치켜 올라간 눈매에 밤하늘의 은하수를 통째로 박아 넣은 듯 별빛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안광, 오뚝하고 곧게 뻗은 콧날과 앵두나무 꽃잎처럼 붉고 보드라운 입술, 그리고 한겨울의 첫눈보다 더 뽀얗고 매끄러운 백옥 같은 피부까지.온몸에서 선녀 같은 기품과 화려함을 뿜어내는 통에, 과연 저 성질 더러운 염라대왕 놈이 왜 밤마다 체면 구겨가며 도둑고양이처럼 남의 집 안방을 넘나들었는지 단박에 이해가 가고도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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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강사리는 감격에 겨운 듯 눈물을 왈칵 쏟아내고 나서야 마침내 입을 열었다.“저... 소리가... 들립니다...”하지만 자신의 목구멍을 뚫고 나온 자신의 목소리를 들은 강사리는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이 무슨 웅얼거리는 갓난아기 같은 소리란 말인가.단 한 글자도 정확하게 발음되지 않는 데다, 소리 자체가 너무나도 작아서 정작 말을 뱉은 본인조차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 지경이었다.하지만 아무리 모기만 한 소리일지언정, 드디어 어둠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본 셈이었다.강사리는 최원헌의 목덜미를 와락 끌어안았다.순간 눈시울이 시큰하게 달아올랐다.2년이었다.그녀는 장장 2년이라는 세월 동안 철저하게 귀머거리이자 벙어리로 살아왔다.시냇물이 졸졸 흘러가는 소리도, 산간벽지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울음소리도 듣지 못했다.그녀가 갇혀 있던 세계는 지독하리만치 외롭고 폐쇄적이었다.“앞으로 점점 더 좋아질 것이오.”최원헌은 이내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이 순간 그의 가슴속에서 요동치는 희열과 날아갈 듯한 기분은, 과거 그녀를 처로 맞이해 첫날밤을 치를 때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을 만큼 거대했다.이윽고 의성 무도 영감이 처방한 약을 달여, 이번에 새로 뽑혀 들어온 ‘오복’이라는 이름의 시녀가 쟁반을 받쳐 들고 안방으로 들어섰다.“마님, 약 드실 시간이옵니다.”강사리는 침상 위에서 살을 섞는 치병 외에 ‘진짜 먹는 약’까지 대기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녀는 여전히 모락모락 뜨거운 김을 내뿜고 있는 탕약을 확인하자마자, 본능적으로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최원헌의 품으로 머리를 더 깊숙이 박았다.침 맞는 것도 싫고, 약 먹는 건 더 싫었다!그녀는 그냥 침상 위에서 서방님과 적당히 몸만 비비면 만사 그만인 줄 알았거늘, 대체 왜 입안이 타들어 갈 것처럼 쓴 약을 꾸역꾸역 들이켜야 한단 말인가.“약은 저기 내려두고, 바닥에 널브러진 사기 파편들부터 깔끔하게 치우거라.”최원헌은 처를 품에 안은 채 의자에 걸터앉아, 한 손으로 숟가락을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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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사실 권력의 중심지인 한양 바닥에서는 알려지고 밟히는 것이 주상이 봉한 숙인의 고명이었기에, 딱히 대단할 것도 없었다.막상 궁궐에 들어가고 나면 눈에 띄지도 않을 하층 품계에 불과했으나, 기왕 이렇게 된 거 바깥세상 구경이나 하며 견문이나 넓히는 셈 치면 그만이었다.그나저나 그 인색한 노부인이 친히 자신의 옷까지 한 벌 맞추어 대기시켜 놓았다니?보아하니 이건 강사리가 이 집안에 갓 시집왔을 무렵부터 꿍꿍이를 품고 기획해 둔 함정이 분명했다.족제비가 닭에게 세배하는 꼴이니, 진정 음흉한 수작질이 아니고선 설명이 안 됐다.궁으로 행차하는 당일에는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폭설이 쏟아졌다.주학은 갑자기 몸이 좋지 않아 거동이 힘들다는 핑계를 대며, 이번 궁궐 나들이에는 동행하지 않겠다며 발을 뺐다.강사리는 넌지시 그녀의 진짜 정체를 추궁해 보았다. 대체 과거 얼마나 대단한 신분이었기에 이 삼엄한 구중궁궐 안마당에까지 자신을 알아보는 지인이 존재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최원헌은 강사리의 망토 깃을 꼼꼼히 여며주고 모자까지 정성스레 씌워준 뒤, 그녀의 손을 꼭 쥔 채 처소 문을 나섰다.연말이라 한양 곳곳에서 대궐로 입궁하는 고관대작들의 마차 행렬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기에, 강사리는 법도상 시어머니인 노부인과 동석해야만 했다.최원헌은 강사리를 안아 마차 상석에 곱게 앉힌 뒤, 처소 문간에 꼿꼿이 서서 노부인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눈발이 워낙 굵고 빽빽하게 쏟아진 탓에, 잠깐 사이 그의 머리 위로 하얀 눈꽃이 수북이 쌓여갔다.젊은 장수의 칠흑 같은 머리카락은 높게 묶여 있었다.본래 사대부 가문에서는 장가를 들고 나면 상투를 틀고 관을 쓰는 것이 법도였으나, 강사리는 이 훤칠하고 깔끔한 머리 모습이야말로 소년 장수의 기개와 날 선 분위기를 가장 완벽하게 살려준다고 생각했기에, 혼인 후에도 줄곧 그가 상투를 틀지 못하게 억지를 부려왔다.노부인은 나이가 지긋한 탓에 거동이 느렸고, 두 사람은 마차 안팎에서 한참을 대기했음에도 노부인은 코빼기조차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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