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뒤돌아 방으로 도망치고 싶었다.다만 그때 임진주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반가워요, 가영 씨. 세훈이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오늘 드디어 이렇게 만났네요.”그녀는 쇼핑백에서 라이트 그레이 머플러를 꺼내 내 어깨에 살포시 둘러주었다.“출장 갔다가 본 건데 캐시미어라 엄청 부드러워요. 가영 씨는 피부가 하얘서 이 색깔이 잘 어울릴 거예요.”머플러에서 은은한 향기가 풍겨왔다.나는 꼼짝 않고 서서 무의식적으로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고마워요, 언니.”오빠와 엄마는 옆에서 긴장한 표정으로 우리를 지켜보았다.한편 나는 고개를 숙이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나려 했다.“미안해요.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 이만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다들 맛있게 식사하세요.”임진주는 내 어깨에 가볍게 손을 걸쳤다.“전에도 몇 번 왔는데 늘 엇갈렸잖아요. 오늘은 누가 뭐래도 우리 가영 씨랑 얘기 좀 더 나눠야겠는데요?”그녀는 해맑게 물었다.“안 그래, 세훈아?”오빠가 나를 바라보았다.“가영아, 약속은 다음 날로 미루면 안 될까?”나는 알겠다고 나직이 답했다.세수하고 소파에 앉았을 때, 임진주는 이미 엄마의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그녀는 능숙한 솜씨로 음식을 만들며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간만에 엄마의 얼굴에 웃음꽃이 만개했다.임진주는 과일 접시를 내려놓으며 내 옆에 앉았다.“가영 씨는 눈이 참 예쁘네요. 웃는 모습도 많이 보여주면 좋겠어요.”나는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릴 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이윽고 임진주의 부모님이 도착했다.두 분은 단정한 옷차림에 정중한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그들이 가져온 선물 또한 탁자 한쪽을 가득 채웠다.점심 식사 시간이 되어 음식이 차려졌을 때, 나는 대뜸 자리에서 일어섰다.“저는 방에 가서 먹을게요. 다들...”문득 임진주가 나를 붙잡으며 의자를 본인 쪽으로 끌어당겼다.“내 옆에 앉아요, 가영 씨.”엄마도 오빠도 할 말을 머뭇거렸고 결국 나는 다시 그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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