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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or: 골든
나는 뒤돌아 방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다만 그때 임진주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반가워요, 가영 씨. 세훈이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오늘 드디어 이렇게 만났네요.”

그녀는 쇼핑백에서 라이트 그레이 머플러를 꺼내 내 어깨에 살포시 둘러주었다.

“출장 갔다가 본 건데 캐시미어라 엄청 부드러워요. 가영 씨는 피부가 하얘서 이 색깔이 잘 어울릴 거예요.”

머플러에서 은은한 향기가 풍겨왔다.

나는 꼼짝 않고 서서 무의식적으로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고마워요, 언니.”

오빠와 엄마는 옆에서 긴장한 표정으로 우리를 지켜보았다.

한편 나는 고개를 숙이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나려 했다.

“미안해요.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 이만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다들 맛있게 식사하세요.”

임진주는 내 어깨에 가볍게 손을 걸쳤다.

“전에도 몇 번 왔는데 늘 엇갈렸잖아요. 오늘은 누가 뭐래도 우리 가영 씨랑 얘기 좀 더 나눠야겠는데요?”

그녀는 해맑게 물었다.

“안 그래, 세훈아?”

오빠가 나를 바라보았다.

“가영아, 약속은 다음 날로 미루면 안 될까?”

나는 알겠다고 나직이 답했다.

세수하고 소파에 앉았을 때, 임진주는 이미 엄마의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녀는 능숙한 솜씨로 음식을 만들며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간만에 엄마의 얼굴에 웃음꽃이 만개했다.

임진주는 과일 접시를 내려놓으며 내 옆에 앉았다.

“가영 씨는 눈이 참 예쁘네요. 웃는 모습도 많이 보여주면 좋겠어요.”

나는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릴 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

이윽고 임진주의 부모님이 도착했다.

두 분은 단정한 옷차림에 정중한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그들이 가져온 선물 또한 탁자 한쪽을 가득 채웠다.

점심 식사 시간이 되어 음식이 차려졌을 때, 나는 대뜸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는 방에 가서 먹을게요. 다들...”

문득 임진주가 나를 붙잡으며 의자를 본인 쪽으로 끌어당겼다.

“내 옆에 앉아요, 가영 씨.”

엄마도 오빠도 할 말을 머뭇거렸고 결국 나는 다시 그 자리에 앉았다.

처음에는 다들 간단한 인사치레나 결혼식의 대략적인 계획만 논의했다.

한편 임진주는 우리가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인 양 자연스럽게 반찬을 집어 주었다.

내가 발가락으로 익숙하게 숟가락을 집어 든 순간, 그녀의 부모님은 얼굴에 띤 미소가 그대로 굳었다.

두 분 모두 수저를 든 손이 멈칫거렸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식탁 위에는 임진주의 말소리만 맴돌았다.

식사를 마친 후, 그녀의 아버지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세훈이는 참 좋은 아이야. 우린 예물에 대해 딱히 바라는 게 없어. 너희 둘만 행복하게 잘 살면 돼.”

아저씨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시선을 천천히 나에게로 옮겼다.

“하지만 결혼 뒤에는 둘만의 가정을 꾸리는 데 집중해줬으면 좋겠구나. 네 동생은 부모님이 계시니 언제까지 네가 일일이 보살펴주고 우선순위에 둘 순 없잖아.”

오빠의 등이 꼿꼿하게 펴졌다.

“아버님, 가영이는 제 동생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제가 끝까지 책임져야 해요.”

문득 아저씨가 손을 들며 그의 말을 잘랐다.

“너 곧 우리 진주랑 결혼할 거잖아. 어떻게 가영이를 평생 책임져?”

“할 수 있어요!”

“그럴 거면 이 결혼 관둬!”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아니요! 우리 오빠 언니랑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나는 텅 빈 소매를 내려다보며 다시 한번 말했다.

“오빠는 이제 언니랑 행복하게 살아. 난 엄마, 아빠가 챙겨주시잖아.”

이때 임진주가 벌컥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빠, 지금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안 돼요! 가영 씨는 이제 저한테도 동생이라고요!”

아저씨도 언성이 높아졌다.

“너 대체 어쩌려고 그래? 네 앞날은 생각 안 해? 평생 가영이한테 뒤처져서 살 거야?”

그는 임진주의 손목을 거칠게 잡았다.

“가자! 더 있을 필요 없어. 집에 가.”

부모님께 반쯤 끌려가듯 문으로 향하는 임진주, 그녀는 뒤돌아보며 눈물을 쏟았다.

한편 오빠는 담뱃갑을 꺼내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라이터가 몇 번 탁 소리를 내더니 마침내 담뱃불을 지폈다.

나는 유리문 너머로 그를 바라보았다.

등을 굽힌 채 담배를 피우는 저 남자,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라 바람에 흩날렸다.

그 순간, 나는 축 늘어진 옷소매를 내려다보다가 속이 뒤집힐 듯한 메스꺼움을 느꼈다.

갑자기 이런 나 자신이 정말 너무나도 싫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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Último capítulo

  • 내가 죽은 뒤, 가족의 눈물   제8화

    다음 날, 나의 장례식이 치러졌다.하늘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고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저 하늘마저 눈물을 다 흘린 듯했다.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참석했는데 대부분 엄마 쪽 친척들과 아빠의 옛 동료들이었다.그들은 검은 옷을 입고 엄숙한 표정으로 나지막이 이야기를 나누었다.엄마는 마치 하룻밤 사이에 스무 살은 늙은 듯 수척하고 창백한 모습이었다.한편 아빠는 밤새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절차는 억압적이면서도 길게 이어졌다.엄마는 거의 전 과정을 아빠에게 의지해야만 간신히 서 있을 정도였다.눈물이 메마른 두 눈은 붉게 부어올라 초점 없이 앞을 응시했다.아빠는 그런 엄마를 꽉 껴안았다.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있었지만, 자세히 보면 엄마 어깨에 걸친 손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화장후 장지로 안치될 때. 임진주의 아버지도 왔다.그는 우산을 쓰지 않고 가랑비가 어깨를 적시도록 내버려 두었다.손에는 새하얀 국화와 백합으로 엮은 소박한 조화가 들려 있었다. 그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가왔다.아저씨는 곧장 오빠에게 향했다.오빠는 그를 보자 몸이 굳어졌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양옆에 늘어뜨린 두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아저씨는 조화를 조심스럽게 내 묘 앞에 놓고는 오빠를 향해 몸을 돌렸다.“진주 깨어났어.”오빠가 벌컥 고개를 들고 두 눈에 한 줄기 빛이 스쳤다.“좀 어때요? 많이 회복됐나요?”아저씨는 잠시 망설이다가 복잡한 눈빛으로 오빠를 바라보았다.“몸은 큰 문제가 없지만... 널 기억하지 못해. 의사 말로는 충격 후의 선택적 기억상실이거나 심적으로 견디기 힘들어서 그런 거일 수도 있대.”그의 목소리는 더 낮아졌고 지친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진주는 그날 밤 왜 뛰쳐나갔는지, 어떻게 교통사고가 났는지, 그리고 너까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해.”오빠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입술을 달싹였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어쩌면 이 또한 다행이야. 가영이 같은 운명을 겪을까 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잖아.”아저씨는 시선을 돌리고 저

  • 내가 죽은 뒤, 가족의 눈물   제7화

    아빠는 마치 누군가에게 정면으로 주먹을 한 방 맞은 것만 같았다.몸이 심하게 흔들렸고 문틀에 기대서야 겨우 지탱할 수 있었다.그의 시선은 거실 중앙의 냉장용 유리관에 고정되었다.엄마는 퉁퉁 부은 눈을 겨우 떴고 얼굴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 자국이 가득했다.아빠를 보자 엄마의 입술이 격하게 떨렸다.“왜 이제 와, 왜? 가영이 죽었어. 우리 딸 죽었다고! 가영이가 이제 우릴 떠났어. 다신 못 봐.”엄마는 아빠에게 달려들어 옷깃을 움켜쥐고 목 놓아 통곡했다. 마치 가슴속의 모든 것을 쏟아내려는 듯이 엉엉 울었다.한편 아빠의 눈은 공포에 질려 커졌고 안구에 순식간에 끔찍한 핏줄이 돋아났다.그는 입을 쩍 벌린 채 통곡하는 아내를 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냉장용 유리관을 바라보았다.“세훈아, 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 저 안에 누가 있다는 거야?”오빠는 풀썩 무릎을 꿇더니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이마를 바닥에 힘껏 내리쳤다.그는 아무 대답 없이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를 미친 듯이 쥐어박을 뿐이었다. 눈물이 모든 걸 대신했고 답은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었다.아빠 얼굴에 남은 마지막 핏기마저 사라지고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렸다.그는 벌떡 손을 들어 자신의 왼쪽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몸은 통제력을 잃고 문틀을 따라 미끄러져 내렸다.“여보!”엄마가 겁에 질린 채 비명을 질렀다.“당신 왜 그래? 나 무섭단 말이야. 이러지 마, 제발!”아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입술은 자줏빛으로 변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는 고통스럽게 몸을 웅크렸다.이에 당황한 엄마가 허둥지둥 아빠의 인중을 누르고 오빠에게 소리쳤다.“빨리 구급차 불러! 너희 아빠 위험하단 말이야.”나는 애가 타서 그들 곁을 미친 듯이 맴돌았다.아빠를 부축해서 가슴을 눌러드리고 싶었지만 내 손길은 번번이 그의 몸을 통과할 뿐이었다.고통으로 뒤틀린 아빠의 얼굴, 어느새 귀밑에 희끗희끗하게 내려앉은 흰머리와 얼굴에 깊게 팬 주름까지...이 모든 게 아빠가 나 때문에

  • 내가 죽은 뒤, 가족의 눈물   제6화

    경찰과 장례식장 직원이 다가와 무너져 내린 엄마와 오빠를 내 시신 곁에서 떼어내려 했다.엄마는 내 시신을 꽉 붙잡고 놓지 않았다. 몇몇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야 겨우 엄마를 끌어냈다.그녀는 발버둥 치며 울부짖었다. 마치 새끼를 잃은 어미 짐승처럼...내 시신은 조심스럽게 수습되었다.일부는 이미 바닥에 달라붙어 전문 도구를 사용해 긁어내야만 했다.젊은 장례식장 직원이 참지 못하고 등을 돌린 채 구역질을 해댔다.나는 곁을 맴돌며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수치심이 내 영혼을 짓눌러 고개를 들 수 없었다.나는 이렇게 끔찍한 상황을 처리해 주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죄송해요. 이렇게 번거롭게 해드릴 줄 알았다면 좀 더 깨끗한 방식으로 떠나는 걸 택했을 텐데... 폐 끼쳐드려서 정말 죄송해요.”결국, 나는 어두운색 시체 가방에 담겨 임시로 관 역할을 할 종이 상자에 넣어졌다.장례식장 직원이 화장을 위해 바로 장례식장으로 옮길지 묻자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엄마가 벌떡 일어나 온몸으로 그 종이 상자를 감쌌다.“안 돼! 아무도 내 딸 건드리지 마!”그녀는 포효하며 살벌한 눈빛으로 돌변했다. 삶과 죽음을 익히 보아온 장례식장 직원들마저 무의식적으로 반걸음 물러섰다.엄마는 종이 상자를 꼭 껴안았다. 마치 세상에 단 하나뿐인 보물이라도 된 양...나는 한숨을 쉬며 이마를 가볍게 엄마 얼굴에 가져다 댔다.이것은 엄마가 예전에 나를 달래주곤 하던 방식이었다.오빠가 걸음을 비틀거리며 다가와 장례식장 직원들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죄송합니다만 저희에게 시간을 좀 주세요.”그는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직원들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종이 상자 안의 내게 하는 말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결국, 그들은 임시로 나를 집에 데려가게 해줬다.오빠는 떨리는 손으로 서류 더미에 서명했다.한편 엄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종이 상자를 품에서 놓지 않았다.아빠의 안전을 위해 이들 모자는 오빠가 결혼한다는 핑계를 대고 아빠를 집으로 불러

  • 내가 죽은 뒤, 가족의 눈물   제5화

    무슨 이유인지 내 의식은 사라지지 않고 마치 유령처럼 가족들 곁을 맴돌았다.엄마의 행동을 막고 싶었지만, 헛되이 그들의 몸을 통과할 뿐이었다.내 시신은 잔인하게 사람들 앞에 드러났다.연한 하늘색 원피스는 흙먼지와 피 얼룩으로 뒤덮여 있었다.머리카락은 흐트러져 얼굴의 반 이상을 가렸고 창백한 턱과 목덜미만 겨우 보였다.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누군가 소리쳤다.“빨리 구급차 불러!”옆 사람이 그를 말리며 고개를 저었다.“이미 숨이 끊어진 지 오래야.”“젊은 아가씨가 어쩌다가...”“이 집 막내딸이라던데 두 팔을 잃었대.”엄마는 몸을 숙여 천을 걷어 올린 자세 그대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그녀의 두 눈은 바닥에 놓인 나의 생기 없는 시신을 뚫어지라 응시했다.그러더니 온몸에 힘이 쫙 풀린 듯 그대로 쓰러졌다.뒤에 서 있던 오빠도 얼굴에 핏기가 완전히 가셨다.그는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 엄마를 부축했다.엄마는 그의 품에 기대어 머리가 힘없이 뒤로 젖혀진 채 두 눈은 초점을 잃어서 흐릿해졌다.가슴은 격렬하게 오르내렸지만, 날숨만 있고 들숨이 없었다.오빠가 겁에 질려 소리쳤다.“엄마, 정신 차려요! 잘못 본 거예요. 이거 가영이 아니에요. 집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다니까요.”그는 엄마에게 말하는 듯했지만 어쩌면 자신을 설득하는 말 같기도 했다.이윽고 그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고 논점도 흐려졌다.오빠는 고개를 숙여 엄마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곧이어 어깨가 걷잡을 수 없이 들썩였다.엄마는 갑자기 오빠를 밀치더니 다시 바닥으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떨리는 손으로 내 뺨을 가린 머리카락을 걷어냈다.내 머리통은 한쪽이 찌그러져 있었고 입가에는 검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엄마는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손가락으로 내 뺨을 쓸어내리며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져 내 이마를 적셨다.“가영아! 엄마 좀 봐. 엄마 여기 있어. 다 엄마 잘못이야. 널 혼자 두고 가는 게 아닌데. 너 없이 어떻게 살아... 가영아, 우리 딸

  • 내가 죽은 뒤, 가족의 눈물   제4화

    다음 날 오후, 휴대폰이 울렸다.나는 몇 번 심호흡하고 발가락으로 화면을 쓸어 넘겨 통화를 연결했다.화면에는 아빠의 얼굴이 나타났다.배경은 허름한 공사 현장 같았고 하늘은 뿌옇게 흐려 있었다.아빠는 살이 많이 빠지고 얼굴도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가영아, 밥은 먹었니? 요즘은 좀 어때? 팔은 계속 아파?”나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네, 먹었어요. 저는 아주 잘 지내요. 아빠 너무 야위셨네요. 얼굴도 많이 까매졌고요.”아빠가 손을 저었다.“아빠는 괜찮아. 엄청 튼튼해. 여기 공사가 거의 끝나가. 돈 받으면 우리 가영이 데리고 제일 좋은 물리치료사 찾아가야지.”그때, 카메라 밖에서 누군가 아빠 이름을 크게 부르며 일하러 가라고 재촉했다.“아빠, 얼른 가서 일 보세요. 저는 정말 괜찮아요. 밖에서 몸조심하세요. 아프지 말고 따뜻하게 입고 다녀요...”내가 잔소리처럼 재잘거리는 동안 아빠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그럼 아빠 일하러 갈게. 집에서 엄마 말 잘 들어.”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무릎으로 뺨을 비볐다.눈물이 두 볼을 흠뻑 적셨다.유독 고요한 집안, 엄마와 오빠는 이른 아침부터 병원에 갔다.거실 식탁 위에는 내 몫으로 남겨진 반찬이 뚜껑 아래에 놓여 있었다.나는 자리에 앉아 천천히 한 입씩 음식을 먹었다.밥알 한 톨, 나물 한 점까지 소중한 음식들을 모조리 비워냈다.그리고 방으로 돌아와 발로 옷장 문을 열었다.가장 안쪽에는 연한 하늘색 원피스가 걸려 있었고 가슴팍에는 섬세한 자수까지 놓여 있었다.그건 오빠가 첫 월급으로 내게 선물한 원피스였다.그때 오빠는 이렇게 말했었다.“우리 가영이 이거 입으면 분명 공주님 같을 거야.”이미 한참도 더 된 이야기...나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들여 발과 이빨을 이용해 서툴게 옷을 입었다.원피스의 지퍼는 등 뒤에 있어서 손이 닿지 않았고 그대로 활짝 열린 채였다.거울 앞에 앉아 내 모습을 바라보니 지퍼가 내려간 탓에 원피스는 몸에 헐렁하

  • 내가 죽은 뒤, 가족의 눈물   제3화

    새벽에 거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인기척에 잠이 깬 나는 맨발로 나섰다.“오빠, 어디 가?”허리를 숙이고 부랴부랴 신발을 신던 오빠는 대뜸 동작을 멈췄다.“진주가 몰래 집 나왔대. 방금 연락이 왔는데 원더 파크 쪽에 있다길래 데리러 가야겠어.”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밖에 추워. 옷 많이 챙겨 입어.”그는 몸을 일으켜 나를 바라보았다.“가서 자, 피곤할 텐데.”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언니 데리고 오거든 내가 문 열어줄게.”오빠는 웃으며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알았어.”이어서 문이 조용히 닫혔다.가로등이 하나둘씩 꺼지고 날이 밝아왔지만, 오빠는 돌아오지 않았다.엄마가 일어나 소파에 웅크리고 있는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 물었다.“가영아, 왜 여기서 자고 있어?”“오빠가 진주 언니 데리러 갔는데 아직도 안 왔어요.”엄마는 곧장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한참 신호음이 이어지다 겨우 통화가 연결되었는데 엄마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졌다.“어느 병원인데? 지금 바로 갈게!”엄마는 나를 돌아보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진주가... 교통사고를 당했대.”수술실 밖의 불빛은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얬다.우리가 도착했을 때, 멀리서 오빠가 벽에 기대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옷에는 흙먼지가 묻었고 이마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어제까지만 해도 점잖던 임진주의 아버지는 지금 두 눈이 충혈된 채 죽을힘을 다해 오빠의 옷깃을 움켜쥐었다.“다 너 때문이야, 빌어먹을 놈! 너만 아니었으면 우리 진주가 뭣 하러 밤중에 뛰쳐나가 그 사고를 당했겠어?”엄마가 비틀거리며 다가와 연신 고개를 숙였다.“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엄마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고 눈물이 앞을 가렸다.“다 저희 잘못입니다. 저희가 자식 교육을 잘 못 해서 그런 거예요.”아저씨는 오빠를 홱 밀치고 엄마에게 삿대질했다.“꺼져! 네 아들 녀석이랑 저 불구자까지 싹 다 데리고 꺼져버려! 다신 우리 앞에 알짱거리지 말라고! 진주한테 무슨 일 생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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