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오빠가 홧김에 집을 나갔던 그 날, 나는 비를 맞으며 오빠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굵은 빗줄기와 함께 무심하게 떨어지는 전깃줄이 나를 덮쳤고 그 자리에서 두 팔을 잃고 말았다. 의사가 꿈이던 나는 그날 이후로 평생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환자가 되었다. 수없이 자살 시도를 했지만, 그때마다 가족들이 나를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냈다. 오빠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이렇게 빌게... 제발 죽지 마, 제발...” 엄마는 직장도 관두고 오롯이 내 곁을 지켰다. “엄마한텐 네가 전부야. 너 죽으면 난 어떡하라고!” 아빠는 내 치료비를 벌기 위해 밤낮없이 일했고 심지어 멀리 해외로 파견 근무까지 자원하셨다. 온 가족의 헌신 속에서 나는 삶이 점차 나아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겨우 발로 손을 대신해 살아가는 법을 익혔을 때, 우연히 그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그냥 죽게 놔두는 건데.” 그날 저녁, 나는 홀로 옥상으로 올라갔다. 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치는 가운데 나는 코를 훌쩍일 뿐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view more다음 날, 나의 장례식이 치러졌다.하늘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고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저 하늘마저 눈물을 다 흘린 듯했다.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참석했는데 대부분 엄마 쪽 친척들과 아빠의 옛 동료들이었다.그들은 검은 옷을 입고 엄숙한 표정으로 나지막이 이야기를 나누었다.엄마는 마치 하룻밤 사이에 스무 살은 늙은 듯 수척하고 창백한 모습이었다.한편 아빠는 밤새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절차는 억압적이면서도 길게 이어졌다.엄마는 거의 전 과정을 아빠에게 의지해야만 간신히 서 있을 정도였다.눈물이 메마른 두 눈은 붉게 부어올라 초점 없이 앞을 응시했다.아빠는 그런 엄마를 꽉 껴안았다.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있었지만, 자세히 보면 엄마 어깨에 걸친 손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화장후 장지로 안치될 때. 임진주의 아버지도 왔다.그는 우산을 쓰지 않고 가랑비가 어깨를 적시도록 내버려 두었다.손에는 새하얀 국화와 백합으로 엮은 소박한 조화가 들려 있었다. 그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가왔다.아저씨는 곧장 오빠에게 향했다.오빠는 그를 보자 몸이 굳어졌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양옆에 늘어뜨린 두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아저씨는 조화를 조심스럽게 내 묘 앞에 놓고는 오빠를 향해 몸을 돌렸다.“진주 깨어났어.”오빠가 벌컥 고개를 들고 두 눈에 한 줄기 빛이 스쳤다.“좀 어때요? 많이 회복됐나요?”아저씨는 잠시 망설이다가 복잡한 눈빛으로 오빠를 바라보았다.“몸은 큰 문제가 없지만... 널 기억하지 못해. 의사 말로는 충격 후의 선택적 기억상실이거나 심적으로 견디기 힘들어서 그런 거일 수도 있대.”그의 목소리는 더 낮아졌고 지친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진주는 그날 밤 왜 뛰쳐나갔는지, 어떻게 교통사고가 났는지, 그리고 너까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해.”오빠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입술을 달싹였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어쩌면 이 또한 다행이야. 가영이 같은 운명을 겪을까 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잖아.”아저씨는 시선을 돌리고 저
아빠는 마치 누군가에게 정면으로 주먹을 한 방 맞은 것만 같았다.몸이 심하게 흔들렸고 문틀에 기대서야 겨우 지탱할 수 있었다.그의 시선은 거실 중앙의 냉장용 유리관에 고정되었다.엄마는 퉁퉁 부은 눈을 겨우 떴고 얼굴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 자국이 가득했다.아빠를 보자 엄마의 입술이 격하게 떨렸다.“왜 이제 와, 왜? 가영이 죽었어. 우리 딸 죽었다고! 가영이가 이제 우릴 떠났어. 다신 못 봐.”엄마는 아빠에게 달려들어 옷깃을 움켜쥐고 목 놓아 통곡했다. 마치 가슴속의 모든 것을 쏟아내려는 듯이 엉엉 울었다.한편 아빠의 눈은 공포에 질려 커졌고 안구에 순식간에 끔찍한 핏줄이 돋아났다.그는 입을 쩍 벌린 채 통곡하는 아내를 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냉장용 유리관을 바라보았다.“세훈아, 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 저 안에 누가 있다는 거야?”오빠는 풀썩 무릎을 꿇더니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이마를 바닥에 힘껏 내리쳤다.그는 아무 대답 없이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를 미친 듯이 쥐어박을 뿐이었다. 눈물이 모든 걸 대신했고 답은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었다.아빠 얼굴에 남은 마지막 핏기마저 사라지고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렸다.그는 벌떡 손을 들어 자신의 왼쪽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몸은 통제력을 잃고 문틀을 따라 미끄러져 내렸다.“여보!”엄마가 겁에 질린 채 비명을 질렀다.“당신 왜 그래? 나 무섭단 말이야. 이러지 마, 제발!”아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입술은 자줏빛으로 변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는 고통스럽게 몸을 웅크렸다.이에 당황한 엄마가 허둥지둥 아빠의 인중을 누르고 오빠에게 소리쳤다.“빨리 구급차 불러! 너희 아빠 위험하단 말이야.”나는 애가 타서 그들 곁을 미친 듯이 맴돌았다.아빠를 부축해서 가슴을 눌러드리고 싶었지만 내 손길은 번번이 그의 몸을 통과할 뿐이었다.고통으로 뒤틀린 아빠의 얼굴, 어느새 귀밑에 희끗희끗하게 내려앉은 흰머리와 얼굴에 깊게 팬 주름까지...이 모든 게 아빠가 나 때문에
경찰과 장례식장 직원이 다가와 무너져 내린 엄마와 오빠를 내 시신 곁에서 떼어내려 했다.엄마는 내 시신을 꽉 붙잡고 놓지 않았다. 몇몇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야 겨우 엄마를 끌어냈다.그녀는 발버둥 치며 울부짖었다. 마치 새끼를 잃은 어미 짐승처럼...내 시신은 조심스럽게 수습되었다.일부는 이미 바닥에 달라붙어 전문 도구를 사용해 긁어내야만 했다.젊은 장례식장 직원이 참지 못하고 등을 돌린 채 구역질을 해댔다.나는 곁을 맴돌며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수치심이 내 영혼을 짓눌러 고개를 들 수 없었다.나는 이렇게 끔찍한 상황을 처리해 주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죄송해요. 이렇게 번거롭게 해드릴 줄 알았다면 좀 더 깨끗한 방식으로 떠나는 걸 택했을 텐데... 폐 끼쳐드려서 정말 죄송해요.”결국, 나는 어두운색 시체 가방에 담겨 임시로 관 역할을 할 종이 상자에 넣어졌다.장례식장 직원이 화장을 위해 바로 장례식장으로 옮길지 묻자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엄마가 벌떡 일어나 온몸으로 그 종이 상자를 감쌌다.“안 돼! 아무도 내 딸 건드리지 마!”그녀는 포효하며 살벌한 눈빛으로 돌변했다. 삶과 죽음을 익히 보아온 장례식장 직원들마저 무의식적으로 반걸음 물러섰다.엄마는 종이 상자를 꼭 껴안았다. 마치 세상에 단 하나뿐인 보물이라도 된 양...나는 한숨을 쉬며 이마를 가볍게 엄마 얼굴에 가져다 댔다.이것은 엄마가 예전에 나를 달래주곤 하던 방식이었다.오빠가 걸음을 비틀거리며 다가와 장례식장 직원들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죄송합니다만 저희에게 시간을 좀 주세요.”그는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직원들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종이 상자 안의 내게 하는 말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결국, 그들은 임시로 나를 집에 데려가게 해줬다.오빠는 떨리는 손으로 서류 더미에 서명했다.한편 엄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종이 상자를 품에서 놓지 않았다.아빠의 안전을 위해 이들 모자는 오빠가 결혼한다는 핑계를 대고 아빠를 집으로 불러
무슨 이유인지 내 의식은 사라지지 않고 마치 유령처럼 가족들 곁을 맴돌았다.엄마의 행동을 막고 싶었지만, 헛되이 그들의 몸을 통과할 뿐이었다.내 시신은 잔인하게 사람들 앞에 드러났다.연한 하늘색 원피스는 흙먼지와 피 얼룩으로 뒤덮여 있었다.머리카락은 흐트러져 얼굴의 반 이상을 가렸고 창백한 턱과 목덜미만 겨우 보였다.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누군가 소리쳤다.“빨리 구급차 불러!”옆 사람이 그를 말리며 고개를 저었다.“이미 숨이 끊어진 지 오래야.”“젊은 아가씨가 어쩌다가...”“이 집 막내딸이라던데 두 팔을 잃었대.”엄마는 몸을 숙여 천을 걷어 올린 자세 그대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그녀의 두 눈은 바닥에 놓인 나의 생기 없는 시신을 뚫어지라 응시했다.그러더니 온몸에 힘이 쫙 풀린 듯 그대로 쓰러졌다.뒤에 서 있던 오빠도 얼굴에 핏기가 완전히 가셨다.그는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 엄마를 부축했다.엄마는 그의 품에 기대어 머리가 힘없이 뒤로 젖혀진 채 두 눈은 초점을 잃어서 흐릿해졌다.가슴은 격렬하게 오르내렸지만, 날숨만 있고 들숨이 없었다.오빠가 겁에 질려 소리쳤다.“엄마, 정신 차려요! 잘못 본 거예요. 이거 가영이 아니에요. 집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다니까요.”그는 엄마에게 말하는 듯했지만 어쩌면 자신을 설득하는 말 같기도 했다.이윽고 그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고 논점도 흐려졌다.오빠는 고개를 숙여 엄마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곧이어 어깨가 걷잡을 수 없이 들썩였다.엄마는 갑자기 오빠를 밀치더니 다시 바닥으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떨리는 손으로 내 뺨을 가린 머리카락을 걷어냈다.내 머리통은 한쪽이 찌그러져 있었고 입가에는 검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엄마는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손가락으로 내 뺨을 쓸어내리며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져 내 이마를 적셨다.“가영아! 엄마 좀 봐. 엄마 여기 있어. 다 엄마 잘못이야. 널 혼자 두고 가는 게 아닌데. 너 없이 어떻게 살아... 가영아, 우리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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