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태자가 날 버려? 좋아, 그럼 용상에 올라주지: Chapter 21 - Chapter 30

30 Chapters

제21화

“태자가 짐처럼 너를 이렇게 대했느냐?”황제는 말을 뱉으면서 그녀를 품에 안는다는 명목으로 커다란 손을 제멋대로 그녀의 몸 위로 훑어내렸다. 거침없는 손길이 닿을 때마다 연정은 파르르 떨었다. 황제를 밀쳐내려 했지만, 돌아온 것은 더욱 강한 구속뿐이었다.“어째서? 태자는 되고 짐은 안 된다는 것이냐?”황제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억눌린 분노와 깊이 묻어둔 욕망이 뒤섞여 있었다. 연정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노골적인 점유욕만 남아 있었다. “너는 짐의 여자다. 짐이 무슨 짓을 하든, 견뎌야 할 것이다.”황제는 말을 하면서 연정의 옷을 한 겹씩 벗겨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처음으로 실망감과 상처를 받은 눈빛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폐하, 어찌 이리 신녀를 모욕하는 것이옵니까.” “태자전하께서 신녀를 물에서 구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다면, 그것이 결코 신녀의 뜻이 아니었음도 아실 텐데 어찌 이러시는 것이옵니까. 분명 신녀는 폐하와 태자전하께 폐를 끼치지 않겠다고 수차례 다짐하고 또 다짐했사옵니다.”말할수록 서러워지는지, 눈물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아름다운 얼굴로 흐느끼자, 보는 사람의 마음을 미어지게 했다. 그녀는 줄곧 황제와 태자 사이의 원한에 휘말린, 가장 무고하고 비참한 피해자였고,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황제가 동작을 멈추었다. 연정의 눈물과 호소에 분노가 사그라들었다. 그는 손을 들어 연정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었다. 오랜 세월 무예를 닦고 활을 쏘아 거칠어진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자, 강한 힘을 들이지 않았음에도 붉은 자국이 남았다.황제는 비로소 연약함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이토록 연약한 아이가 물에 빠졌으니, 분명 겁이 났을 거다.’“물에 빠져서 태자와 친밀하게 굴었던 것은 용서하겠다.” “하지만, 네가 먼저 태자에게 매달려서는 안 되었다.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태자와 얽히고설키다니, 더럽혀질 명예를 고려하긴 한 것이냐?”연정은 비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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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연정은 침범하듯 몰아치는 황제의 입맞춤을 수동적으로 받아내며 강제로 그와 얽혔다. 순식간에 남성적인 숨결이 그녀를 휘감았다.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연정은 황제 같은 사내를 더 선호한다는 것이었다. 성숙하고, 당당하며, 오만하고, 안하무인인 사내 말이다. 권세에 찌들어 제멋대로인 독단적인 모습이 연정에게는 치명적인 매력으로 다가왔다. 아쉬운 점은 그 권세가 몸을 섞는다고 옮겨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한참 후, 연정은 어서방 탁자 위에 앉아 온몸에 힘이 풀린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황제의 품에 기대었다. 한바탕 일을 치르고 난 뒤의 색기 어린 모습이었다. 그녀의 곁에는 천자를 상징하는 용 문양의 옥새가 놓여 있었다.황제는 품 안의 가녀리고 부드러운 소녀를 삼켜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코끝에 매혹적인 향기가 가득했다. 이토록 격렬한 감정에 휩싸인 것은 처음이었다. 황제는 자기도 모르게 연정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소유욕과는 무관한, 오직 연민과 애정이 담긴 입맞춤이었다. 다시 고개를 숙여 연정의 눈가에 맺힌 눈물에 입을 맞추니 짭짤한 맛이 났다. 황제는 행동을 멈추고 연정을 내려다보았다. 서로의 이마가 맞닿았고, 그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왜 우느냐? 벌을 내리지도 않았는데 벌써 울다니, 참으로 응석받이로구나.”유약하고도 순종적인 연정의 모습에 황제의 분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는 잘못한 것이 없었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것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다. 잘못한 것은 태자였다. 연정이 황제의 사람이 된 것을 알면서도 분수를 모르고 넘봤기 때문이다. 황제는 태자에게 처음으로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연정은 황제를 바라보았다. 아기 사슴 같은 눈망울은 물기를 머금은 채 서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폐하, 신녀를 책임져 주시겠다고 하지 않으셨사옵니까. 고생하지 않고 평탄한 삶을 살게 해주겠다 하셨으면서… 이제 신녀를 괴롭히는 이는 폐하뿐이옵니다.”소위 괴롭힌다는 말의 의미는 자명했다. 그녀의 얼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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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황제가 자신의 유년기 결핍을 태자에게 지나치게 보상하려 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 탓에 태자는 안하무인이 되어 감히 황제의 권위마저 무시하게 되었다. 연정은 황제가 태자에게 보내는 첫 번째 경고였다.“앞으로 태자와는 거리를 두도록 해라. 만일 선을 넘는다면… 너는 뼈도 추리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그는 마지막 몇 글자를 끊어서 내뱉었다. 살기가 섞인 위압감에 연정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연정은 황제가 진심임을 알고 있었다.“예, 분부대로 하겠사옵니다.”연정이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나른하게 늘어지는 목소리는 그 자체로 유혹적이었고, 귓가를 자극했다. 황제의 입맞춤이 그녀의 몸 곳곳에 쏟아졌다. 바닥의 핏자국과 어우러진 붉은 매화처럼 그녀의 몸 곳곳에 야릇한 흔적을 남겼다.한참이 지나서야 모든 것이 끝났다. 황제는 용상에 앉아 있었고, 연정은 그와 마주 본 채 그의 곤룡포를 걸치고 그의 다리 사이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극도로 가까웠고, 서로의 숨결은 뒤섞였으며, 살갗이 맞닿은 감각은 중독적이었다.“진정으로 짐과 함께할 것이냐?”황제가 평온한 어조로 물으며 곤룡포 아래 그녀의 매끄러운 살결을 끊임없이 어루만졌다. 세상 그 어떤 고급 비단보다도 부드러운 감촉이었다. 연정은 자신은 태자 일을 마음에 두면서 정작 그녀에게는 묻지도 못하게 하는 황제의 터무니없는 모습이 참으로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여인들이 질투심이 많다고 하지만, 사내의 질투심 또한 그에 못지않았다. 인간은 간사했고, 남의 것을 뺏어 먹을 때가 가장 맛있는 법이었다.“폐하, 천하의 모든 백성은 마땅히 폐하를 진심으로 따라야 하옵니다. 신녀 또한 예외는 아니옵니다.”참으로 교묘한 대답이었다. 겉으로는 황제를 따르겠다는 말이었지만, 실상은 신하로서 천자라는 지위를 따를 뿐이라는 뜻이었다.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 말이면 충분했다. 황제는 그 이상의 감정은 신경 쓰지 않았다. 천자로서 그가 필요한 것은 절대적인 복종과 권위였다.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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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어서방 안은 극도의 환락에 젖어 있었다.한편, 태자는 동궁에서 눈을 감은 채 나무통 안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면서 마음도 서서히 평화를 되찾는 듯했다. 하지만 연정의 모습만큼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그때, 누군가의 그림자가 조용히 방 안에 나타났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한쪽 무릎을 꿇고 태자에게 서신 한 통을 바쳤다. 태자는 눈을 뜨고 서신을 받아 단숨에 내용을 훑어 내려갔다.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서신을 꽉 움켜쥐어 완전히 구겨버렸다.“명문 규수라더니, 수단이 이토록 저열하고 역겨울 줄이야.”그는 이를 악물며 말을 내뱉었다. 그는 연정이 자신에게 복수하려고 일부러 아바마마와 그런 일을 벌였다고 여겼다. 예전에 연정은 장난스럽게 그의 손을 잡고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기 때문이다.“만약 전하께서 저를 저버린다면, 반드시 복수할 것이옵니다.” 태자는 웃으며 물었었다. “어떻게 복수할 것이냐?” 그녀가 답했다. “저를 영원히 잃게 할 것이옵니다. 다른 사내의 품에 안길 것이옵니다.”태자는 본능적으로 연정이 자신에게 시집오기 싫어서 황제의 침상에 올랐으며, 자신에게 영원한 상실감을 안기려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서신은 연정의 결백을 증명하고 있었다. 어화원에서 도명주를 부축하던 자신을 보며 슬퍼하던 그녀의 눈빛, 그리고 본능적으로 피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마음이 무척 상했겠구나.’태자는 가슴 한구석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는 거칠게 숨을 내쉬었고, 호흡에서도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그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한참을 진정하고 나서야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도씨 가문은 유전적인 심질환이 있었고, 어려서부터 귀한 약재를 써서 다스린 덕분에 수년간 발작이 없었다.“궁을 떠날 것이니, 너는 따라오지 말고, 이곳에 남아 그녀를 지켜라.” “예, 분부대로 하겠사옵니다.”검은 옷의 남자가 답했다. 태자가 손을 젓자 남자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잠시 후, 그 서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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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거대한 행렬이 서서히 출발했다. 드높게 솟아오르는 아침 해를 등지고 궁문을 나선 그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높은 말 위에 오른 태자는 뒤따르는 긴 행렬과 물자를 돌아보았다. 어둡게 가라앉은 눈에는 그 광경이 그저 눈이 시릴 만큼 따갑게 비칠 뿐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손에 든 영락(瓔珞)을 내려다보았다. 연정이 생애 처음으로 만들어 준 선물이었다. ‘이번엔 내 잘못이다. 그 아이를 오해하지 말아야 했다. 그 아이를 내세워 이익을 취하려 해서도 안 됐다. 다행히 연정은 이 모든 사실을 알지 못한다. 공을 세우고 돌아가서 다시 청혼을 시도해야겠다. 정 안 된다면…’ 태자의 표정이 점차 매서워졌다. 그는 영락을 소중히 품에 넣고, 저 높이 떠오른 해를 쳐다보았다. ‘아바마마께서도… 결국 언젠가는 세상을 뜨실 거다.’일행은 서둘러 진주로 향했다.*한편, 백관들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황제가 사라진 뒤였다. 황제의 뒷모습을 향한 상덕의 외침만이 공허하게 울렸다. “폐하, 거동하시옵소서.” “폐하, 조심히 가시옵소서.”황제는 어서방으로 돌아와 의복을 갈아입고 난각에 들어섰다. 그곳에는 연정이 잠들어 있었다. 연정은 그가 떠날 때와 같은 자세로 웅크린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비단 이불이 허리께까지 흘러내려 둥그스름한 어깨와 가느다란 목덜미가 드러났는데, 그 위에 남은 야릇한 흔적들은 지난밤의 광기 어린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폭포 같은 머리카락이 베개 위에 흐드러져 있어 그녀의 작은 얼굴을 더욱 창백하고 투명하게 보이게 했다. 반쯤 가려진 모습이 더 유혹적이었다.황제가 다가가 연정의 얼굴을 덮은 검은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귀 뒤로 넘겼다. 불그스레한 그녀의 예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입술은 빗물을 머금은 꽃잎처럼 살짝 부어 있었다. 누군가 꺾어가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황제는 잠시 망설였고, 그의 눈에는 욕망이 소용돌이쳤다. 결국 연정은 황제의 입맞춤으로 잠에서 깼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황제의 품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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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연정은 손을 멈추고 더는 만지지 않았다. 그녀는 황제의 몸과 그가 주는 쾌락을 좋아했지만, 더는 버티기 힘들었다.황제는 그대로 연정을 품에 안았다. 두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친밀하고 행복한 부부처럼 조용히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한참 뒤, 황제의 호흡이 서서히 안정되었고, 연정은 이미 그의 품에서 다시 잠들었다. 그는 연정을 조심스럽게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 뒤에야 몸을 돌려 나갔다.밖으로 나와 용상에 앉은 황제는 평소의 위엄을 되찾고 직접 책봉 교지를 써 내려갔다. “태사의 적녀 연정을 빈으로 책봉하고, 봉호는 신(宸)으로 하며 영수궁에 거처하게 하라.” “네가 직접 처리하거라.”황제는 관심을 가진 여인에게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상덕은 놀란 티를 감추고 황급히 대답했다. “예, 분부 받들겠사옵니다.”그는 공손히 두 손으로 성지를 받았다. 상덕은 눈치 없이 신빈의 행방을 물을 수 없었다. 그날 밤의 일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인 데다, 오늘 아침 황제를 깨우러 갔을 때 난각 안의 소리까지 들었기 때문이다. 신빈의 입궁은 이미 확정된 일이었다. 번거로운 절차보다 중요한 것은 그녀를 하루빨리 궁에 들이는 일이었다.상덕은 직접 사람들을 이끌고 궁무사로 가 기록을 남겼다. 옥첩에 올릴 날짜를 택하고 영수궁을 청소하라는 명도 내렸다. 이어 성지를 내리는 내관들을 이끌고 동서 육궁에 두루 알렸다.*상덕이 사람들을 이끌고 봉의궁에 도착했을 때, 육궁의 비빈들은 황후에게 문안 인사를 올리고 흩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하늘의 뜻을 받들어 황제는 조서를 내리노라. 태사 소씨의 딸 연정은 성품이 온유하고 품격이 단정하며 용모가 우아하고 현숙하다. 이에 신빈으로 책봉하고 영수궁 주전에 거처하게 하라.”간결 명쾌한 성지는 누가 봐도 황제가 직접 쓴 것이었다. 관례대로 한림원에 초안을 맡겼다면 최소 하루는 걸렸을 터였다. 난해하고 화려한 어구로 천자의 위엄을 드러냈겠지만, 황제가 친히 쓴 조서만큼 무게와 의미가 실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황제가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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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그녀는 근 이 년 동안 황제에게 가장 총애를 받은 순빈이었다. “본궁은 신빈의 출신이 고귀하고 삼공주의 배동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네. 성내는 물론이고 궁중에서도 그 명성이 아주 대단했다지? 본궁은 벌써부터 얼굴을 뵙고 싶어 견딜 수가 없네.”“아쉽게도 본궁은 출신도 미천하고 아이 하나 두지 못했으니… 그랬다면 진작 상서방에 들러 신빈의 고고한 자태를 뵙고 올 수 있었을 텐데.”순빈은 얼굴 가득 공격성 없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달걀형 얼굴에 둥근 눈을 가진 명랑한 인상이라 더욱 친근하고 진심처럼 보였다. 하지만 많은 이가 그녀의 말에 숨은 비유와 눈빛에 어린 야유를 알아차렸다. 그녀는 복경공주를 무시하며 연정을 높임으로써 연정과 가비 사이를 이간질하려 했다. 동시에 은근슬쩍 연정이 상서방에 있었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상서방은 공주들이 주로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태자와 황자가 공부하는 곳이었다. 연정과 태자의 옛일을 들춰 도황후를 불쾌하게 만들려는 의도였다. 도황후가 신빈을 더 미워하게 말이다. 과연 도황후의 얼굴에 걸려 있던 미소가 반쯤 사라졌고, 순빈을 보는 눈빛도 차가워졌다. 곁에 있던 가비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자기 딸의 배동이었던 아이가 후궁이 되었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저열한 이간질까지 일일이 반응할 수 없어 상덕 앞에서는 티를 내지 않았다.“순빈마마, 신빈마마께서는 현재 태사 부저에서 휴식을 취하고 계시며, 내일 진시에 황후마마께 문안 인사를 드리러 오실 예정이옵니다.” 상덕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척 태연하게 보고하고는 물러났다. 어전의 사람이 봉의궁을 떠나기 무섭게 순빈이 다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도대체 미색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폐하께서 직접 책봉하시는 영광을 누리는지 모르겠사옵니다. 게다가 봉호도 신이라니요, 모든 봉호 중에서도 으뜸이라 황후마마의 자리를 겨냥한 것 같기도…”순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도황후의 오른팔이었던 정비가 말을 끊었다. “순빈, 출신도 미천하고 학식이 없으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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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함복궁 주전으로 돌아온 순빈은 화를 참지 못하고 찻잔을 내던졌다. “마마, 노여움을 푸십시오. 몸 상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시중드는 궁녀 청대가 다가와 순빈을 달래며, 어린 궁녀에게 바닥의 사기그릇 조각들을 치우고 차를 새로 올리라고 지시했다. 순빈은 창가 평상에 앉아서도 좀처럼 분이 풀리지 않았다.“정비마마께서 마마의 총애를 시기하시는 것이옵니다. 나이 들고 쇠약해진 데다가 폐하의 총애도 없으니 당연히 성격이 나쁠 수밖에요. 일일이 반응할 필요 없사옵니다.” 청대가 다시 다가와 부드럽게 권했다. 순빈은 정육품 태원부 현령의 딸로, 궁에서의 출신은 분명 낮았다. 팔 년 전, 황제가 태원 일대의 민정을 살피러 순시를 나갔다가 우연히 그녀를 발견해 궁으로 데려왔다. 그렇지 않았다면 대진국의 율법상 정오품 이하 관원의 딸인 그녀는 간택에 참여할 자격조차 없었다. 그렇기에 순빈은 입궁 초기에 신분 때문에 늘 고개를 들지 못했고, 때로는 궁인들에게 녹봉을 떼이기도 했다. 그렇게 이 년간 고생스럽게 보내다 우연한 하룻밤의 행운으로 점차 총애를 얻게 된 것이었다.총애를 얻은 후로 순빈은 겉으로는 여전히 가냘프고 매혹적인 모습을 유지했으나, 실상은 뒤에서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안달하며 경쟁심을 불태웠다. 달래기는 쉽지만, 그만큼 자극을 받으면 금세 발끈하는 성미였다.순빈의 안색이 점차 누그러졌으나, 분한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정비는 시야가 너무 좁아서 문제다. 소씨는 예전에 태자와 추문이 났던 여인이지. 그런데 이제 궁에까지 들어와 폐하의 총애까지 받았으니, 결코 얕봐선 안 된다.”“신빈을 견제할 생각은 않고 되려 본궁을 비웃다니! 명백히 본궁의 미천한 가문을 업신여기는 것이 아니더냐!” 순빈은 손에 쥔 손수건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는 내심 어렵게 얻은 총애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까 봐 두려웠다. 만약 가문이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뒷배가 조금만 더 튼튼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온갖 방법을 동원해 남을 이간질하려 애쓰지는 않았을 것이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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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연정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으나, 이내 평소 표정을 되찾았다. 연정은 순빈을 직접 만난 적은 없었지만, 복경공주의 배동으로 궁에 드나들며 그녀가 황제의 총애를 믿고 교만하게 군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었다. 빈 이상의 비빈은 모두 황제의 총애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순빈은 빈 이하의 후궁이 조금이라도 총애를 얻으면 곧장 견제하고, 뒤에서 온갖 시기와 질투를 일삼기로 유명했다. 순빈은 속을 감추지 못했다. 좋고 싫은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황제는 그녀를 꽤 오랫동안 곁에 두었다.연정은 신빈이라는 봉호가 마음에 들었다. 황제가 나름의 양심은 있는 모양이었다. 실리를 챙겼으니, 견제를 좀 받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신첩, 폐하를 뵈옵니다.” 연정이 다가가 무릎을 굽혀 인사했다. 황제가 손을 들어 보이자,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이어 순빈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궁에 처음 들어와 모르는 것이 많사옵니다. 순빈께서 환영해 주시니 앞으로 자주 찾아뵙겠사옵니다. 부디 귀찮게 여기지 않으시길 바랄 뿐이옵니다.” 그녀는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말했다. 마치 순빈이 자신을 반기지 않을까 봐 겁을 먹은 것처럼 굴었다. 나약한 척, 아둔한 척하는 것은 연정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순빈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굳어졌다. 그녀는 웃는 둥 마는 둥 대꾸했다. “무장 집안 출신이라더니 성품은 참 가냘프고 겁이 많군요. 장군 집안의 딸답지 않사옵니다. 참으로 사랑스러우십니다. 폐하께서 입궁하자마자 빈으로 책봉하신 이유를 알겠사옵니다.” 순빈은 온화한 안색을 꾸며내고 있었으나, 말에는 뼈가 있었다. 겉으로는 고상한 척 꾸며대면서도, 질투심을 감추지 못하는 연정을 비꼬았다. 연정은 붉어진 눈시울로 애써 미소를 지었다.“순빈께서 오랫동안 총애를 받으셨으니, 폐하께서 가장 아끼시는 것도 순빈이겠지요.”순빈은 연정이 굴복하며 아첨하는 것에 속으로 흡족했으나, 곧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고는 다시 화가 치밀었다. ‘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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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연정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폐하께서 혹 신첩이 가식적으로 군 것이라 여겨지신다면, 기꺼이 순빈에게 사죄하겠사옵니다. 두 분 사이를 이간질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옵니다.” 고개를 숙이면서 가느다랗고 하얀 뒷목이 드러났다. 참으로 아름다웠다. 억울하면서도 쓸쓸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황제의 보호 본능을 자극했다. 황제가 가냘프고 교태로운 여인을 좋아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니, 일부러 가식적으로 굴었다고 인정할 수는 없었다. 황제의 의심을 받는 것과, 스스로 잘못을 시인하는 것은 엄연히 별개의 문제였다. “소태사는 천군만마를 통솔하며 사방을 누비며 적을 수없이 벤 장군이고, 너의 두 오라비 또한 성정이 강직한데, 어찌하여 너는 이토록 유순한 것이냐?”황제는 연정의 귓가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넘겨 가려진 얼굴을 드러냈다. 황제의 말은 모호했으나, 연정은 황제가 자신이 애처로워 묻는 것이라 여겼다. “신첩은 집안의 막내딸이기에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오라버니, 언니들의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자랐사옵니다. 세상 물정은 모른 채 컸고, 몸이 허약하여 늘 병치레를 했지요. 집안에서 하도 오냐오냐해주신 탓에 도리어 겁 많고 나약하게 자랐사옵니다. 장군 집안의 여식으로 보여야 할 면모를 보이지 못해 송구할 따름이옵니다.”연정은 부끄러운 기색으로 답했고,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유라면 납득이 갔다. 소태사가 여식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니.“여인이 유순한 것은 당연한 이치이니 부끄러워할 것 없다. 다만, 궁에서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하지 마라. 소태사가 마음 아파할까 염려되니 말이다.” “예.” 연정이 순종적으로 대답했다. 황제는 연정의 등을 다독이며 계속 말했다. “내가 이미 너를 신빈으로 책봉하고 영수궁을 하사했으니, 가서 둘러보거라.” “예, 폐하의 은혜에 감사드리옵니다.”인사를 올리고 물러나던 연정은, 도중에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렸다. 황제가 재빨리 팔을 뻗어 부축한 덕에 넘어지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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