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o / 그대가 무정하면 나는 떠나리 / Capítulo 11 - Capítulo 20

Todos los capítulos de 그대가 무정하면 나는 떠나리: Capítulo 11 - Capítulo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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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조운사 뒷산.부용이 달여 온 약탕을 들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심청하는 책상 앞에 앉아 붓을 놀리며 쉴 새 없이 글을 베끼고 있었다.부용은 약탕을 내려놓고 열려 있던 창문부터 꼭 닫았다.그러고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낭자도 이제는 몸을 좀 아끼셔야 합니다. 아직 몸조리도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왕생경은 언제든 베낄 수 있는데, 무엇이 그리도 급하십니까?"심청하는 깨어난 뒤부터 부용에게 더는 자신을 ‘아씨’라 부르지 말라고 했다."지난 일은 모두 한바탕 뜬구름이 되었다. 앞으로는 의술로 사람을 살리는 심 의원으로 살아갈 테니, 너도 나를 심 낭자라 부르거라."그날 쓰러진 뒤 심청하는 고열에 시달렸고, 며칠이 지나도록 열이 좀처럼 내리지 않았다.다행히 오랫동안 심청하를 따라다닌 부용이 약초를 조금 알아 직접 캐다 달여 먹인 덕분에 간신히 목숨은 건질 수 있었지만 큰 병을 한 차례 앓고 난 심청하는 몰라보게 야위었다.부용이는 심청하가 이토록 제 몸을 돌보지 않는 모습을 차마 두고 볼 수 없었다.그 말을 들은 심청하는 순순히 붓을 내려놓고 약탕을 받아 마셨다."조금이라도 일찍 끝내야 마음이 놓일 것 같구나.""결국 그 아이에게 죄를 지은 사람은 나다."날짜를 헤아려 보니, 불경을 모두 베껴 마칠 즈음이면 몸조리도 거의 끝날 터였다.그때면 마침 새해라 절을 찾는 이들도 대부분 평범한 백성일 테니, 권세가들의 눈을 피해 불경을 부처님 앞에 올릴 수 있었다. '부디 그 아이가 다음 생에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기를...'또한 스승을 위해 장명등도 밝혀야 했다.'진작 했어야 할 일이었는데, 지난 몇 년간 정신없이 살아오느라 이곳을 찾을 기회조차 내지 못했구나...'충의후부.소해정은 이미 충의후부로 들어와 다시 서운원에 머물고 있었다.그때 후작부인이 태아를 보양하라며 귀한 제비집을 직접 가져와 소해정에게 먹이고 있었다.후작부인은 소해정이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아이만 무사히 낳아다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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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설날 아침, 심청하는 눈앞에 수북이 쌓인 불경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마침내 다 베꼈다.'심청하는 수수한 옷으로 갈아입고 불경을 품에 안은 채 절로 향했다.조운사에 들어온 지도 제법 되었지만 이렇게 밖으로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쬐고 있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든 햇빛이 눈밭에 반사되어 눈을 제대로 뜨기조차 어려웠다.멀지 않은 곳에서는 어린 승려가 낙엽을 쓸고 있었다.멀리서부터 절 안에서 풍겨 오는 향냄새가 코끝에 닿자 마음이 편안해졌다."스님, 왕생전(往生殿)은 어디에 있습니까?"흰옷을 입은 심청하는 얼굴에 분 하나 바르지 않은 데다, 유산 후 몸조리를 거치며 전보다 더욱 야위어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듯 가냘파 보였다.그런 심청하의 머리칼 끝에 햇살이 내려앉아 금빛으로 반짝이자, 어린 승려는 순간 보살이라도 본 듯 넋을 잃었다."스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우리 낭자께서 왕생전이 어디냐고 물으시지 않습니까."부용이 눈앞에서 손을 흔들자 그제야 어린 승려가 정신을 차렸다.그는 황급히 한 걸음 물러서며 살짝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아미타불. 앞으로 가시다가 오른쪽으로 돌아 동쪽으로 가시면 됩니다."심청하는 품에서 작은 병 하나를 꺼내 어린 승려에게 건넸다."매일 잠들기 전에 손가락에 바르십시오. 동상에 아주 효과가 좋습니다."어린 승려는 비밀이라도 들킨 듯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황급히 손을 등 뒤로 감췄다.그러자 부용이 심청하의 손에서 병을 냉큼 받아 어린 승려의 손에 쥐여 주었다."우리 아씨께서 직접 만드신 귀한 약이니, 부디 스님은 그 성의를 마다하지 마십시오."말을 마친 부용은 심청하를 이끌고 자리를 떠났다.왕생전에서 나온 두 사람은 다시 심이열을 위해 장명등을 밝혔다.모든 일을 마치고도 아직 날이 일렀다.신이 난 부용은 심청하를 이끌고 절 안의 신불을 하나하나 찾아가 절을 올렸다.그러고는 평안을 기원하는 부적 하나를 받아 심청하에게 건넸다."새해는 새로운 시작이지 않습니까. 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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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민구영은 그동안 성문을 오간 모든 기록을 샅샅이 뒤지고, 경성의 객잔도 빠짐없이 확인했으나 심청하에 관한 흔적은 하나도 찾지 못했다.심청하는 마치 허공으로 사라진 듯, 아무리 찾아도 흔적조차 잡히지 않았다.그러다 문득 집에 있던 화리 교지가 떠올랐다.심청하는 궁에 들어간 적도 없는데 대체 어디서 화리 교지를 얻었단 말인가?'장공주마마다!'그 교지는 분명 장공주가 마련해 준 것이고, 그렇다면 장공주는 심청하가 어디로 갔는지도 알고 있을 터였다.민구영은 곧장 장공주부로 달려가 다급히 대문을 두드렸고, 장공주는 새로 물들인 손톱을 느긋하게 매만지며 말했다."나는 진작에 그대가 찾아올 줄 알았다."민구영은 눈을 내리깔고 공손히 말했다."부디 제 부인의 행방을 알려 주십시오.""부인이라? 이미 두 사람의 화리를 허락하는 교지가 내려지지 않았느냐?""청하는 신의 마음속에 유일한 부인입니다.""허, 참으로 지극한 정이로구나.""그렇다면 나 역시 궁금해지는구나. 그토록 심청하를 아꼈다면서, 어째서 그 아이는 회임한 사실을 알고도 그토록 단호하게 떠난 것이냐?""회임이라니요...?"민구영은 홱 고개를 들어 장공주를 바라보았다. 두 눈이 경악으로 크게 벌어지고 머릿속은 새하얗게 비어 버린 채 귓가에서 웅웅 소리만 울렸다.'청하가 회임했다고?''언제부터였지?'장공주는 충격에 빠진 민구영을 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어라? 몰랐느냐?"그가 어찌 알았겠는가. 알았다면 소해정의 뱃속 아이를 절대로 남겨 두지 않았을 것이다.걷잡을 수 없는 후회가 밀려와 민구영을 집어삼켰고, 마음속에는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이 차올랐다.마치 삶에서 소중한 무언가가 영영 사라져 버린 듯했다.심청하는 떠나기 전 그에게 달거리가 시작됐다고 했다.'그런데 회임이었다면, 그렇다면...'민구영은 차마 더 생각할 수 없었다.그는 줄곧 심청하의 창백한 안색이 달거리 때문이라고만 여겼지, 심청하가 회임했으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대체 나는 무슨 짓을 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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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경성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심청하는 알지 못한 채, 밭에 심어 둔 약초를 정성껏 손보고 있었다.허지찬은 창가에 턱을 괴고 엎드린 채 밖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심청하를 바라보다가 흥미롭다는 듯 눈빛을 반짝였다.손에 물 한 방울 묻혀 본 적 없어 보이는 여인이 약초를 돌보는 솜씨만큼은 제법 능숙했다.처음에는 심청하가 자신의 내력을 캐물을까 걱정했지만, 함께 지내는 동안 심청하는 첫날 이름을 물어본 것 외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그렇게 하루하루가 흘러 정월대보름이 되었을 무렵, 허지찬은 이미 침상에서 내려와 걸어 다닐 만큼 회복되어 있었다.그날 밤, 오두막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이런 곳에 찾아올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허지찬의 표정은 금세 굳어졌다. '혹시 그자들이 나를 찾아 여기까지 온 건 아니겠지?''지금 몸 상태로는 두 사람을 지켜 줄 수 없는데...'부용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스님, 그때 그분이시군요!"어린 승려는 손에 찬합을 들고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그날 심 낭자께서 주신 동상 연고 덕분에 손이 많이 좋아졌습니다."그러고는 찬합을 앞으로 내밀었다."오늘 부엌에서 만든 채소만두입니다. 마침 정월대보름이라 두 분께 조금 가져다드리고 싶었습니다. 지난번 은혜에 대한 답례라고 생각해 주십시오."그 말을 들은 심청하가 안에서 나와 동상 연고 한 병을 더 건넸다.그러자 어린 승려는 황급히 한 걸음 물러났다."저... 저는 약을 받으러 온 게 아닙니다.""다 쓰면 다시 찾아오십시오. 만두는 따뜻할 때 먹어야 하니 오늘은 붙잡지 않겠습니다."어린 승려가 돌아간 뒤, 허지찬은 탁자 위에 놓인 만두를 보며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보름 동안 날마다 생선국과 나물만 먹었더니 이제는 보기만 해도 질릴 지경이었다.그는 곧바로 젓가락을 들어 만두를 집으려 했지만, 눈치 빠른 부용이 제 젓가락으로 허지찬의 젓가락을 가로막았다."우리 낭자께서 아직 손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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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심청하는 원래 봄이 오면 절을 떠나 유람할 생각이었지만, 봄눈이 녹는 이때는 추위가 매서워 결국 조금 더 머물기로 했다.‘그래, 여름이 되면 산을 내려가자.’허지찬은 오두막을 다 지은 뒤로 날마다 심청하를 따라다니며 의술을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계속되는 성화에 못 이긴 심청하는 결국 의서 한 권을 던져 주며 숲 깊숙한 곳에 가서 책에 나온 약초를 모두 찾아오라고 했다.그런데 그가 돌아올 때마다 약초뿐 아니라 절에서는 볼 수 없는 신기한 물건들도 함께 딸려 왔다.부드럽고 바삭한 과자며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오리구이, 심심할 때 볼만한 화첩까지 종종 오두막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심청하와 부용은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묻지 않기로 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허지찬도 모르는 척 능청을 떨었다.그는 심청하를 위해 그네 의자도 하나 만들어 주었다.허지찬은 심청하가 그곳에 앉아 화첩을 읽는 모습을 가장 좋아했다.세월이 고요히 흘러가는 듯 평온한 모습이었다.이렇게 평생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매미 울고 새가 지저귀는 계절이 찾아왔다.심청하가 기지개를 켰다."여름이 왔으니 우리도 이제 산을 내려갈 때가 됐구나.""그런데 어디로 가면 좋을런지요?"다음 날, 탁자 위에는 지도 한 장이 놓여 있었다.허지찬이 지도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스승님, 북국으로 가시지요. 그곳에는 초원도 있고 소와 양도 많으며 청과주도 있다고 들었습니다.""그곳 사람들은 자유롭고 호방하게 산다 합니다. 우리도 함께 초원을 달리며 자유를 느껴 보는 겁니다.""자유라...""예.""좋다. 북국으로 가자꾸나."...충의후부, 서운원.하인들이 방 안에서 피가 가득한 대야를 연달아 들고 나왔다.노부인 한씨는 안절부절못한 채 계속 서성이며 두 손을 모아 보살에게 빌었다."부디 사내아이를 낳게 해 주십시오."그때 하인이 허둥지둥 뛰어나왔다."마님, 소 낭자의 태위가 바르지 않아 아이가 나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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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한씨도 뒤따라 들어와 민구영을 밖으로 밀어냈다."여인이 아이를 낳는 곳에 사내가 들어와 있으면 안 된다. 여기는 이 어미가 지킬 테니 너는 어서 나가거라."민구영은 떠밀리듯 산실 밖으로 나왔다.소해정은 구세주라도 본 듯 다급히 외쳤다."이모님, 저 좀 살려 주십시오! 저 낳을 수 있습니다!"한씨의 눈에 잠시 안쓰러운 기색이 스쳤다. 그녀는 눈을 감고 손에 든 염주만 쉼 없이 굴렸다."해정아, 조금만 참거라. 금방 안 아프게 될 것이다."소해정은 거의 미친 사람처럼 몸부림치며 악을 썼다."저를 살려 주지 않을 거라면 충의후부의 장손도 살지 못할 것입니다!""죽어도 같이 죽겠습니다!"산파는 가위를 들고도 차마 손을 대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잘못했다가는 뱃속 아이까지 다칠까 두려웠다."사람을 불러 저 아이를 기절시켜라!"소해정은 독기 어린 눈으로 한씨를 노려보며 소리쳤다."이 늙은 악귀야! 귀신이 되어서도 절대 너년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오늘 나한테 이 짓을 했으니, 훗날 충의후부는 반드시 대가 끊길 것이다. 다시는..."말이 끝나기도 전에 머리를 얻어맞은 소해정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때마침 바람 한 줄기가 스쳐 지나갔다. 한여름인데도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이유 없이 오싹한 한기를 느꼈다."아직도 시작하지 않을 것이냐?"한씨는 다시 눈을 감았고, 손에 든 염주는 전보다 더 빠르게 돌아갔다.모두 충의후부를 위한 일이었다.한 시각 뒤, 소해정의 뱃속에서 아이가 꺼내졌다.산파는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몸을 떨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한씨가 미간을 찌푸렸다."거기서 뭘 멍하니 있느냐? 어서 도련님을 데려가 씻기지 않고!""마...마님... 아이가... 사산되었습니다."한씨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곁에 있던 시녀가 재빨리 붙잡지 않았다면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을 것이다."헛소리 마라! 도련님이 울지 않으면 엉덩이를 두드리고 등을 쳐 봐야 할 것 아니냐!"한씨는 직접 아이를 받아 들고 등을 세게 두드렸다.피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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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날이 채 밝기도 전에 모자는 마차를 타고 조운사로 향했다.어머니가 불상 앞에 경건히 무릎을 꿇고 충의후부의 평안을 빌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자, 민구영의 마음도 조금 흔들렸다.그는 원래 신불을 믿지 않았다. 세상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모두가 부처에게 소원을 빈다고 해서 부처가 그 많은 사람을 일일이 돌볼 수 있겠는가.예전에도 어머니는 여러 차례 갖가지 핑계를 대며 심청하를 조운사에 데려와 자식을 빌려 했지만, 그때마다 민구영이 막았다.심청하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오늘만큼은 이 세상의 신불을 한번 믿어 보고 싶었다.그는 어머니를 따라 좌복에 무릎을 꿇고 소원을 빌었다."이 세상에 정말 신이 있다면, 부디 길을 알려 주십시오. 저의 청하를 찾게 해 주십시오."참배를 마친 뒤 어머니가 시주를 하러 간 사이, 민구영은 절 안을 이리저리 거닐었다.정말 이 세상에 신이 있기라도 한 것인지, 우연히 바닥을 쓸던 어린 승려와 부딪쳤다가 그의 몸에서 오직 심청하만이 만들 줄 아는 약주머니를 발견했다.민구영은 떨어진 약주머니를 주워 코끝에 가져다 대고 깊이 향을 들이마셨다.익숙한 향이었다.그는 벅차오르는 마음을 억누르지 못한 채 어린 승려의 손을 붙잡고 다급히 물었다."이 약주머니, 어디서 났느냐?"어린 승려는 황급히 약주머니를 빼앗아 먼지를 털어 내며 경계했다."이게 무슨 짓입니까?"민구영은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어린 승려의 옷깃을 움켜쥐고 낮게 윽박질렀다."묻지 않느냐. 이 약주머니 어디서 났느냔 말이다?""시... 심 낭자께서 주셨습니다.""심 낭자? 그 사람이 어디 있느냐?"꺼져 가던 민구영의 눈에 다시 빛이 돌아왔다.어린 승려가 뒷산 쪽을 가리켰다."저쪽입니다."민구영은 곧장 손을 놓고 뒷산으로 뛰어갔다.어린 승려는 미처 민구영을 붙잡지 못했다. 사실 심 낭자가 이미 떠났다고 말해 주려 했지만, 민구영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민구영은 앞만 보고 달리고 또 달리다가 작은 오두막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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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천수성.허지찬은 막 발라낸 게살을 보물이라도 되는 듯 두 손에 받쳐 심청하 앞으로 내밀었다."스승님, 이 게살 좀 드셔 보십시오. 지금은 암게가 가장 살이 오를 때라 게딱지 안도 꽉 차고 살도 부드럽습니다. 분명 입맛에 맞으실 겁니다."심청하가 고개를 숙여 한입 맛보자, 부용과 허지찬이 기대에 찬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녀는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응, 아주 괜찮구나. 아주 맛나니 너희도 먹거라."그 한마디에 허지찬은 마음이 꿀에라도 잠긴 듯 달콤해져, 다시 게 한 마리를 집어 들고 살을 발라내기 시작했다.부용도 그를 따라 게살을 발라 보려 했지만 한참을 씨름해도 뜻대로 되지 않자 아예 포기하고 게를 집어 그대로 입으로 깨물었다.그런데 막상 먹어 보니 제법 맛있었다.애초에 허지찬이 자신에게까지 살을 발라 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함께 길을 오는 동안 확실히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었으니, 허지찬의 눈과 마음에는 온통 심청하뿐이었다."스승님, 여기요."심청하가 게 한 마리를 다 먹자마자 허지찬은 재빨리 새로 발라낸 게살을 그녀 앞으로 내밀었다."너는 어찌 안 먹느냐?""스승님부터 드십시오."반짝이는 허지찬의 눈을 바라보던 심청하는 문득 삼 년 전의 민구영을 떠올렸다.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이제는 남이 주는 대로 더 받아먹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익숙해진 뒤 또다시 잃게 될까 두려웠다.심청하는 고개를 저었다."게는 성질이 차니 나는 하나면 족하다."허지찬의 눈에 잠시 상처받은 기색이 스쳤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다."스승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럼 이 반찬이라도 드셔 보십시오.""나는 챙기지 않아도 된다. 너나 먹거라."반찬을 집어 들었던 젓가락이 허공에서 멈췄지만 심청하는 모른 척했다.싹트기 시작한 마음이라면 일찌감치 잘라 내는 편이 나았다.밖에서는 사람들의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고, 원래 구경거리를 좋아하는 부용은 고개를 빼고 밖을 내다보았다."낭자, 이리 와서 보십시오. 저 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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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민구영은 그토록 그리워하던 사람이 바로 이 근처에 있는 것만 같았지만, 아무리 사방을 둘러봐도 보고 싶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염운 비리 사건도 마침내 마무리되어 민구영은 함께 온 부하들에게 죄인을 압송해 경성으로 돌아가게 하고 자신은 그대로 남았다.오래 머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하루라도 늦게 돌아가고 싶었다.경성으로 돌아가면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아버지의 작위를 이어받게 될 터였다.그때가 되면 어머니는 반드시 혼인하고 첩을 들이라 재촉할 것이다.충의후부의 유일한 후계자인 이상 아무리 싫어도 자신의 책임을 피할 수는 없었다.가문의 녹을 받아 살아온 만큼 가장으로서 짊어져야 할 몫도 있었다.'청하와 나는 정말 다시는 함께할 수 없는 것일까.''찾을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천수성은 게로 유명한 곳이라 이곳의 게살은 특히 맛이 좋았다. 민구영은 탁자 가득 음식을 주문했다.게를 먹는 것은 처음이었는데도 이상하리만치 손에 익어, 얼마 지나지 않아 접시에는 발라낸 게살이 수북이 쌓였다.‘청하가 여기 있었다면 이 가득한 게살을 보고 무척 좋아했을 테지...’민구영은 무심코 고개를 들어 밖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두 눈을 크게 떴다.'저 뒷모습은...'그건 꿈속에서 수없이 보았던 바로 그 여인이었다!민구영은 혼비백산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루 밖으로 뛰쳐나갔지만, 문 앞에 이르자 관아에서 나온 아전이 길을 막았다."대인, 경성에서 새 교지가 내려왔습니다. 지부 대인(知府大人)께서 관아로 돌아가 뵙기를 청하셨습니다."민구영은 아전을 밀쳐 내고 거리로 달려 나갔지만, 방금 스쳐 지나간 여인은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그는 뒷모습이 비슷한 여인을 붙잡을 때마다 애타게 불렀다."청하야."하지만 억지로 돌아본 얼굴들이 눈앞에 드러날 때마다 또다시 실망할 뿐이었다.아니다.모두 아니었다!어쩌면 자신이 잘못 본 것인지도 몰랐다.마차 안에서 부용은 의아한 듯 휘장을 살짝 걷어 밖을 내다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낭자, 방금 세자저하의 목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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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성 동쪽으로 갈수록 길가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멀지 않은 산비탈에는 거두어 갈 이 없는 시신들이 멍석에 말린 채 수북이 쌓여 있었고, 관병들은 그것들을 한꺼번에 태울 채비를 하고 있었다.그 처참한 광경에 심청하는 가슴이 아파 와 좀처럼 미간을 펴지 못했다."스승님, 저쪽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약을 마시고 있습니다. 가서 한번 보시겠습니까?"그곳에는 임시로 지은 천막이 있었고, 안에서는 몇몇 의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천막 밖에는 커다란 솥 하나가 걸려 있었는데, 안에는 시커먼 약탕이 가득했다.심청하가 천막 안으로 들어가 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 여념이 없었다.처방을 쓰고 있는 노의원에게 다가가자, 그는 의서를 뒤적이며 약방을 고심하고 있었다.심청하는 처방을 한번 훑어본 뒤 붓을 들어 그 위에 굵게 한 줄을 그었다."무슨 짓이냐?""이 약재는 다른 약재들과 상극입니다. 함께 쓰면 오히려 약효가 반대로 나타납니다."노의원은 심청하에게 손을 휘저었다."썩 물러가거라! 젊은 사람이 뭘 안다고... 옮고 싶지 않으면 저리 비켜라. 여기서 진료를 방해하지 말고.""이건 평범한 풍한이 아닙니다. 풍한 처방에서 약재 몇 가지만 더하고 빼는 것으로는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습니다."노의원은 그 말에 발끈했다."어디서 온지도 모를 젊은 계집이 이 늙은이의 의술을 논하려 드는 것이냐?""쓸데없이 이런 곳에 있지 말고 어서 돌아가 혼처나 알아보는 것이 네가 할 일이다.""여기는 너희가 있을 곳이 아니다. 계속 버티면 관병을 부르겠다."허지찬은 노의원이 심청하를 업신여기는 태도에 화가 치밀어, 곧바로 심청하 앞을 막아서며 날카롭게 말했다."제 스승님이 처방이 틀렸다 하시면 틀린 겁니다. 스승님 말씀대로 하십시오."금세라도 충돌이 벌어질 듯하자 심청하는 허지찬을 붙잡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소녀는 미천하나, 백초선옹 심이열의 제자입니다."심이열의 이름은 어디서든 통했다.심청하는 민구영과 혼인했을 때조차 스승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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