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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무정하면 나는 떠나리

그대가 무정하면 나는 떠나리

By:  타로Completed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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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하야, 네 덕분에 내 몸이 나았구나. 생각해 둔 포상이라도 있느냐?” 그 말을 들은 심청하는 잠시 침묵하다가 장공주 앞에 경건히 무릎을 꿇었다. "소녀는 화리 성지를 받고 싶습니다." 장공주는 바닥에 무릎 꿇은 여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경성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충의후부 세자가 세자비를 얼마나 지극히 아끼는지.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 다른 여인을 들이는 것마저 마다할 정도였다는 것을. "혹시 민구영이 너를 힘들게 한 것이냐?" 심청하는 잔잔하고 흔들림이 없는 눈빛으로 가볍게 웃었다. "힘들었다고 할 정도는 아닙니다. 다만 소녀가 너무 속이 좁은 것뿐이지요." 그 사람은 분명 목숨을 걸고 맹세했었다. 평생 심청하 하나만을 사랑하며, 단 한 사람만을 부인으로 두겠다고. 그런데도 뒤에서는 심청하 몰래 아름다운 외실과 정을 나누었고, 심지어 그 외실의 아이를 그녀의 무릎 아래에서 키우게 하려 했다. 장공주는 심청하의 마음이 이미 굳어 있음을 보고,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좋다. 내가 허락하마." 심청하는 고마운 눈빛으로 심청하를 바라본 뒤,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렸다. "부디 다른 이들에게 화리 사실을 알리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닷새 뒤면 그녀는 충의후부를 떠나고, 경성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스승의 마지막 뜻을 이어받아, 한가로운 유랑 의원으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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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마마, 정말 이 약탕을 드시려는 것입니까?"

텅 빈 방 안에 시녀 부용의 망설이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심청하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배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평평한 아랫배 속에는 이미 작은 생명이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

'몇 년 동안 수많은 약탕을 마신 끝에 어렵게 얻은 아이였는데... 당연히 괴롭지.'

'하지만... 됐다'

심청하는 그릇을 들어 한 번에 마시려 했다.

그릇이 입가에 닿기도 전, 길고 가지런한 손이 그것을 빼앗아 갔다.

"마시기 싫다면 억지로 마시지 않아도 된다."

사내는 그저 평범한 보신과 회임을 돕는 약탕이라 생각했다.

약그릇을 부용에게 건네자, 눈치 빠른 어린 시녀는 조용히 방을 나갔다.

민구영은 몸을 숙여 심청하를 품 안에 가두듯 끌어안고, 두 손으로 그녀의 손을 감싸 쥐었다.

"손이 어찌 이리 차가운 것이냐? 창문도 닫지 않고 있었구나. 날씨가 점점 추워지니 풍한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거라."

말을 마친 민구영은 곧장 일어나 창문을 닫았다.

그러다 뒤돌아선 순간, 연지를 바르지 않은 심청하의 입술이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것을 발견했다.

"안색이 어찌 이리 창백한 것이냐?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느냐?"

사내의 눈빛에 담긴 걱정은 거짓처럼 보이지 않았다.

심청하는 잠시 그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는 것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없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찌 이런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쓰겠는가.

사랑한다면 어찌 심청하 몰래 다른 이와 정을 나눌 수 있겠는가.

그녀는 입술을 살짝 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사촌 아가씨처럼 아름다운 분이라면 같은 여자인 저도 절로 호감이 생길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부군께서는 정말 그 아이를 첩으로 들이지 않으실 생각입니까?"

두 사람은 혼인한 지 삼 년이 되었지만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심청하는 시어머니의 차가운 눈초리를 수도 없이 견디며, 날마다 자식을 얻는다는 약탕을 억지로 삼켰지만 끝내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그러던 두 달 전, 시어머니는 어디서 데려왔는지도 모를 사촌 아가씨를 민구영의 첩으로 들이려 했다. 민씨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민구영은 거절했다.

"어머니께서 또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이냐? 내일 당장 사람을 보내 그 아이를 돌려보내겠다."

"나 민구영은 평생 심청하 한 사람만을 부인으로 둘 것이다. 첩은 절대로 들이지 않는다."

민구영은 진지한 눈빛으로 심청하를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흔들림 없는 확신과 뜨거운 마음이 담겨 있었다.

민구영이 심청하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자, 따뜻한 숨결이 그녀의 목덜미에 닿았다.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거라. 설령 우리에게 끝내 자식이 생기지 않는다 해도, 훗날 아이 하나를 들이면 될 일이다."

"어머니께는 내가 직접 말씀드리겠다."

심청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민구영의 품에 안긴 채 가만히 있었다.

"너는 늘 눈 내리는 풍경이 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느냐? 닷새 뒤면 큰 눈이 내린다 하니 내 너를 데리고 창오산에 가서 설경을 보게 해주겠다. 기분을 풀고 오자꾸나."

"힘들면 별원에서 쉬었다가 설이 지난 뒤에 돌아오면 된다."

심청하는 눈꼬리가 붉어지고, 코끝이 시큰거려 차마 견디기 힘들었다.

보라. 민구영은 언제나 이렇게 심청하를 먼저 생각했다.

심청하가 곤란하지 않도록, 어떻게든 잘해주려 애썼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을 사랑했던 사람이 어째서 그녀를 배신한 것일까?

심청하는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낮게 대답했다.

"좋습니다."

'만약 그가 정말 소해정을 떠나보낸다면... 그렇다면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한 번의 기회를 주겠다.'

심청하는 그리 생각했다.

민구영은 심청하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들고,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먼저 저녁을 들자꾸나."

식탁 앞에서 민구영은 새우를 집어 들고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민구영이 오직 심청하에게 먹이기 위해 막대한 은자와 조정의 인맥까지 동원해 남해에서 빠른 말로 가져온 것이었다.

문제는 백 근이 넘는 새우가 저택에 도착했지만, 살아남은 것은 한 근도 되지 않았다.

허니 한 마리에 금 열 냥을 주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경성 사람들은 모두 민구영이 부인을 얼마나 총애하는지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여인의 웃음을 위해, 천 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살아 있는 새우를 보내온 사내.

그런데 새우 한 마리의 껍질을 막 벗겼을 때, 하인이 밖에 누군가 찾아왔다고 아뢰었다.

민구영은 고개조차 들지 않고 거절했다.

"지금 세자비를 위해 새우를 벗기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느냐? 급한 일이 아니라면 식사가 끝난 뒤 다시 와서 아뢰거라."

잠시 망설이던 하인의 입에서 "서"라는 한 글자가 나오는 순간, 민구영의 손에 들려 있던 새우는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죄책감 어린 눈으로 심청하를 바라보았다.

"서 대인이 맡은 사건이 정말 급한 모양이다. 잠시 다녀오겠다. 금방 돌아올 것이다."

심청하가 고개를 끄덕이자 민구영은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그는 뒤돌아보지도 않았고, 심청하를 위해 계속 새우를 벗겨주라고 사람을 남기지도 않았다.

민구영이 식사 자리에서 심청하를 두고 떠난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예전에 말했다.

"우리는 매일 세 끼 식사를 나누고, 사계절을 함께하며 평생 서로 곁을 지켜야겠다."

궁에서 황제가 불러도 심청하를 위해 새우 껍질을 모두 벗긴 뒤에야 떠났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손도 씻지 않은 채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폐하의 부름보다도 중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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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마마, 정말 이 약탕을 드시려는 것입니까?"텅 빈 방 안에 시녀 부용의 망설이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심청하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배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평평한 아랫배 속에는 이미 작은 생명이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몇 년 동안 수많은 약탕을 마신 끝에 어렵게 얻은 아이였는데... 당연히 괴롭지.''하지만... 됐다'심청하는 그릇을 들어 한 번에 마시려 했다.그릇이 입가에 닿기도 전, 길고 가지런한 손이 그것을 빼앗아 갔다."마시기 싫다면 억지로 마시지 않아도 된다."사내는 그저 평범한 보신과 회임을 돕는 약탕이라 생각했다. 약그릇을 부용에게 건네자, 눈치 빠른 어린 시녀는 조용히 방을 나갔다.민구영은 몸을 숙여 심청하를 품 안에 가두듯 끌어안고, 두 손으로 그녀의 손을 감싸 쥐었다."손이 어찌 이리 차가운 것이냐? 창문도 닫지 않고 있었구나. 날씨가 점점 추워지니 풍한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거라."말을 마친 민구영은 곧장 일어나 창문을 닫았다.그러다 뒤돌아선 순간, 연지를 바르지 않은 심청하의 입술이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것을 발견했다."안색이 어찌 이리 창백한 것이냐?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느냐?"사내의 눈빛에 담긴 걱정은 거짓처럼 보이지 않았다.심청하는 잠시 그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는 것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없었다.사랑하지 않는다면 어찌 이런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쓰겠는가.사랑한다면 어찌 심청하 몰래 다른 이와 정을 나눌 수 있겠는가.그녀는 입술을 살짝 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그 사촌 아가씨처럼 아름다운 분이라면 같은 여자인 저도 절로 호감이 생길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부군께서는 정말 그 아이를 첩으로 들이지 않으실 생각입니까?"두 사람은 혼인한 지 삼 년이 되었지만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심청하는 시어머니의 차가운 눈초리를 수도 없이 견디며, 날마다 자식을 얻는다는 약탕을 억지로 삼켰지만 끝내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그러던 두 달 전, 시어머니는 어디서 데려왔는지도 모를 사촌 아가씨를 민구영의 첩으로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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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밤이 깊어 심청하가 이미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민구영은 돌아오지 않았다. 시녀를 물린 한 뒤에도 심청하는 마음 한구석이 계속 불안해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다. 심청하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망토를 챙겨 들고, 호위병들의 눈을 피해 나섰다. 홀린 듯 발걸음을 옮긴 끝에 도착한 곳은 서운원이었다. 방에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소해정의 앙탈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라버니... 살살하십시오... 아이가 다치면 안 됩니다.""몸이 불편하다며 나를 찾은 게 네가 아니었느냐? 곁에 있어 달라 부른 것도.""이렇게 하니 불편함이 싹 가시지? 응?"촛불 아래 겹쳐진 두 사람의 모습이 심청하의 눈에 들어왔다.심청하의 마음은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망토를 움켜쥔 손에 서서히 힘이 들어갔고, 몸은 멈출 수 없이 떨렸다.알고 보니 이것이 그가 말한 서 대인 쪽의 급한 사건이었던 것이다.알고 보니, 하인이 실수로 내뱉은 그 "서"는 서 대인이 아니라 서운원의 "서"였던 것이다.알고 보니...그들에게는 이미 아이가 있었다.그렇다면 심청하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그날 보았던 장면과 지금 눈앞의 두 사람이 천천히 겹쳐졌다.닷새 전, 심청하는 공주에게 침을 놓던 중 피를 보고 속이 울렁거려 참지 못하고 토했다.공주는 기어이 태의를 불러 심청하의 맥을 짚게 했고, 그 결과 회임 소식을 알아냈다.심청하는 서둘러 저택으로 돌아가 드디어 두 사람에게 아이가 생겼다고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저택으로 돌아온 심청하는 곧장 서재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본 것은 소해정이 두 사람이 함께 수없이 그리운 마음을 담아 글을 쓰던 책상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그리고 심청하의 부군이라는 자는 소해정의 가느다란 허리를 받치고 있었다.소해정은 눈물을 머금은 채 앙탈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오라버니... 살살 하십시오... 아픕니다..."하지만 민구영은 오히려 더욱 거칠게 했다.이마에 맺힌 옅은 땀, 붉어진 뺨, 욕망으로 가득 찬 눈빛.그 모든 것이 심청하에게 말해주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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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민구영은 날이 밝아올 무렵에야 돌아왔다. 그는 조용히 부용에게 심청하를 깨우지 말고 조금 더 자게 두라고 당부했다.그리고 몰래 침상 곁으로 다가가 심청하의 이불을 여며주고, 살짝 입을 맞추었다.그 손길은 마치 심청하가 조금만 건드려도 부서질까 두려운 사람인 듯, 한없이 조심스럽고 다정했다.심청하는 밤새 잠들지 못했다. 자신이 얼마나 오래 울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그녀는 민구영이 자신에게 등을 돌린 채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흰 속옷 위에 선명하게 찍힌 붉은 연지 자국과 등에 길게 남은 가느다란 손톱자국이 너무나 눈부시게 선명했다.심청하는 고개를 돌리고,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목덜미로 스며드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얼마나 잤을까, 흐릿하게 잠들어 있던 심청하는 아랫배를 찢는 듯한 통증에 결국 눈을 떴다.그러다 온몸이 차갑게 떨려와 따뜻한 물이라도 마시려 몸을 일으켰다.그러자 움직인 탓인지 붉은 피가 바짓단을 타고 흘러내렸고, 얼마 전 새로 깐 융단 위로 번져갔다.심청하는 멍하니 그 붉은 흔적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눈앞이 흐려졌다.그녀의 아이... 결국 지켜내지 못했다.부용은 놀라 손에 들고 있던 물동이를 떨어뜨렸다."마마... 아... 아이가..."부용은 황급히 담요를 가져와 심청하에게 덮어주고 급히 나가 의원을 부르려 했다.그러자 심청하는 손을 뻗어 그녀를 붙잡은 채,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부용아... 가지 말거라. 나, 나는 그냥... 달거리가 온 것뿐이다."배 속의 통증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창백한 얼굴과 핏기 없는 입술은 심청하를 마치 시들어가는 꽃처럼 보이게 했다.부용은 마음이 아파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마마, 어찌 이렇게까지 자신을 괴롭히십니까."심청하는 창백한 미소를 지었다."아프지 않다. 참으면 지나갈 것이다. 너는 어서 흑설탕 물을 끓이고, 달거리 천을 가져오거라."아프지 않다.참으면 지나갈 것이다...심청하는 이 고통을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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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장공주는 무심한 기색을 거두고, 무릎 꿇은 여인을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얼굴은 귀한 분을 발라 병색을 감추고 있었지만, 눈가의 붉은 실핏줄은 심청하의 좋지 않은 몸 상태를 숨기지 못했다."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처음 너를 보았을 때, 너는 옅은 자주색 치마를 입고 있었지. 마치 나의 담장 위에 피어난 한 그루의 자주꽃 같았다.""태의들은 모두 내 몸이 허약하니 천천히 보양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너만은 나서서 내가 중독되었다고 말했지.""그때의 너는 누구보다 밝고 두려움이 없었다.""자주꽃은 햇빛을 좋아하고 키우기도 쉽다. 본래는 보잘것없는 들꽃에 불과했지만, 씨앗을 어디에 뿌리든 금세 온 산을 뒤덮을 만큼 강인하게 피어나는 꽃이지.""경성의 모든 사람이 너를 업신여겼지만, 너는 두 손과 은침 하나로 스스로를 증명했다.""청하야, 혹시 충의후부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이냐?"심청하는 소해정이 회임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울지 않았다.민구영이 자신을 속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장공주의 그 한마디에 심청하는 코끝이 시큰해지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하마터면 명문가 안주인으로서 지켜온 마지막 체면마저 놓아버릴 뻔했다.처음 창오산에서 민구영의 목숨을 구한 뒤, 심청하는 수년 동안 매일 약선 요리를 직접 만들어 민구영의 몸을 보살펴, 마침내 원래부터 허약했던 그의 몸을 건강하게 돌려놓았다.민구영을 위해 심청하는 걸음을 멈추고, 기꺼이 경성에 남아 그의 부인이 되었다.원래 심청하가 바라던 삶은 스승님의 유지를 이어받아 사방을 떠돌며 세상을 누비는 것이었다.사람을 살리고 병을 고치는 의원으로, 어디에 나타났다 사라질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명의로 살아가는 것.혼인한 삼 년 동안, 경성의 권세 있는 가문들은 어려운 병증이 생길 때마다 심청하를 찾아왔고, 심청하 역시 약상자를 들고 직접 왕진을 나갔다.심청하는 뛰어난 의술 하나로 충의후부에 수많은 좋은 명성을 안겨주었다.하지만 심청하가 바라보던 사람은 변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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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사람들 뒤에 줄을 선 민구영을 바라보던 심청하는 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심청하는 몇 번 눈을 깜빡이며 올라오는 눈물을 억눌렀다. 요즘 들어 너무 자주 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심청하는 울고 싶지 않았다.주인장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양고기 국 한 그릇을 가져왔다. 심청하는 코끝을 살짝 훔치고 조금씩 맛을 보았다.훗날 경성을 떠나면, 이렇게 맛있는 양고기 국도 다시는 먹지 못할 것이다.그토록 맛있던 밤과자도 다시는 맛볼 수 없을 것이다.별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맛있는 음식을 음미하던 심청하가 고개를 들었다.소해정이었다.심청하는 소해정을 한 번 바라보았을 뿐, 다시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먹었다.자신이 무시당했다는 것을 깨달은 소해정은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그날 서재에서 형님을 봤습니다."심청하는 잠시 멈칫했다.'그게 뭐 큰일이란 말인가.'"형님도 그 서재에서 오라버니와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낸 적이 있습니까? 아마 형님은 재미가 없었나 봅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오라버니께서 저를 그렇게 찾으실 리 없지요.""매번 형님과 함께한 뒤면, 몰래 제 처소로 찾아왔었지요."심청하가 고개를 들었다."언제부터였지?"소해정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심청하의 아픈 곳을 찔렀다고 생각한 것이다."모르셨습니까? 바로 형님 탄일 날부터였습니다."문뜩 생각이 떠올랐다.심청하의 탄일, 시어머니는 연회 자리에서 그녀를 꾸짖었다. 현숙한 부인이라면 마땅히 먼저 부군에게 첩을 들이도록 해야 하며, 충의후부의 후사를 생각해야 한다고 했었다.민구영은 심청하를 감싸주지 않았다. 그저 분위기를 무마하며 탄일이 지난 뒤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을 뿐이었다.그날 식사는 너무 불쾌했다.무엇을 입에 넣어도 쓰게만 느껴졌다.밤이 되자 민구영은 직접 심청하를 위해 장수면 한 그릇을 끓여 왔지만 심청하는 화가 나 그 면을 엎어버렸다. 그리고 홧김에 민구영에게 내일 당장 첩을 들이라고 말했었다.심청하는 민구영을 내쫓았고, 그날 밤 민구영은 돌아오지 않았다.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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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에 심청하는 장공주부에서 보내온 답례를 받았다.장공주가 폐하에게 청해 받아낸 화리 윤허 교지였다.교지와 함께 통행증도 두 장 들어 있었다.심청하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진심 어린 미소를 지었다.자경원으로 돌아오자 부용이 기혈을 보하는 약탕 한 그릇을 내왔다."마마, 이제 막 유산하셨으니 밖에 나가시면 안 됩니다."심청하는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며 말했다. "부용아, 아이는 없었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기억하거라. 난 그저 달거리를 한 것뿐이다."'애초에 생겨서는 안 될 아이였다. 허니 아예 찾아온 적이 없었던 셈 치자.'심청하는 고개를 돌려 약탕을 단숨에 들이켰다.부용의 눈에 어린 안쓰러움을 보고 싶지 않았다.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민구영은 이튿날 오후가 되어서야 돌아왔다.그때 심청화는 짐을 정리하는 중이었다.버릴 것들은 전부 버렸다.그가 준 것은, 이제 단 하나도 남겨 두고 싶지 않았다.그리고 민구영은 품에서 아직 온기가 남은 밤과자를 꺼내 들고 웃으며 말했다."어서 와서 밤과자를 먹거라. 어제는 주인장이 다 팔았다고 해서 사지 못하지 않았느냐. 오늘은 일부러 아침 일찍 가서 줄까지 섰다."심청하는 기대 어린 민구영의 눈길을 받으며 밤과자 하나를 집어 살며시 베어 물었다.그는 심청하가 다시 한번 역시 부군이 제일 좋다고 말해 주길 바랐다.하지만 심청하는 한 입만 베어 물고 내려놓았다.민구영은 다급히 맛이 없느냐고 물었다.심청하는 고개를 끄덕였다."맛이 변했습니다."변한 것은 과자의 맛이 아니라, 그것을 사 온 사람이었다.예전의 밤과자에는 사랑이 담겨 있었지만, 지금 남은 것은 거짓뿐이었다.아무리 밤과자를 품에 넣고 먼 길을 달려왔어도, 이미 예전의 그 맛일 수는 없었다.민구영은 밤과자를 하나 집어 맛보더니 말했다. "별로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은데. 조금 식었을 뿐이다.""되었다. 청하가 맛없다고 하면 맛없는 것이다."심청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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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출발을 하루 앞둔 밤, 심청하는 민구영에게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작은 상자 하나를 건넸다.민구영은 호기심이 동한 듯 연거푸 무엇이냐고 물었다."새해 선물이니 지금은 열어 보시면 안 됩니다. 창오산에서 돌아오신 뒤에 보십시오."상자 안에는 두 사람의 화리 교지가 들어 있었다. 이제 다시는 서로 마주하지 않겠다는 증표이기도 했다.'이것을 보게 되면 그이는 어떤 심정일까?''한순간이라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할까?'민구영은 기대에 찬 눈을 반짝이며 열쇠를 받아 들고 웃었다. "부인의 분부, 삼가 따르리다."웃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심청하는 그가 훗날 이 상자를 열 때에도 지금처럼 환하게 웃을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이튿날은 모처럼 날이 맑았다.햇살이 온 대지를 비추자 눈밭 위로 눈 부신 빛이 반사되었다.심청하는 오랜만에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어 따스한 햇살을 손바닥 가득 받아 냈다.'좋다.''드디어 온전히 나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구나.'마차가 천천히 나아가고 경성이 점점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던 심청하는 장공주부가 있는 쪽을 향해 조용히 한마디를 남겼다. "부디 평안하시길."창오산의 별원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어느덧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함박눈이 소리 없이 흩날리기 시작하자 민구영은 지난해 두 사람이 함께 담가 두었던 목서주를 꺼내 심청하와 함께 눈을 감상했다.술항아리의 봉인지에는 '해마다 변함없이, 평생 헤어지지 않기를'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민구영은 그 글자 하나라도 훼손될까 조심스럽게 봉인지를 떼어 냈다.그리고 심청하에게 술 한 잔을 따라 주었다."청하야, 이 봉인지들을 모두 모아 두어야겠다. 훗날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 주며 우리가 함께 걸어온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그는 술잔을 들어 심청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해마다 오늘 같은 날이 이어지고, 평생토록 헤어지지 않기를 위하여."촛불 아래에서 바라본 민구영의 눈은 더없이 맑고 진실해 보였다.마치 밤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처럼, 그 눈 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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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심청하는 부용을 데리고 창오산 정상에 있는 조운사로 향했다.내일 아침이 되면 별원의 하인들도 심청하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터였다.그러면 민구영 역시 틀림없이 사방으로 심청하를 찾아다닐 것이다.가장 위험한 곳이 오히려 가장 안전한 법이라 했으니, 조운사야말로 몸을 숨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심청하는 그곳에서 세상을 떠난 아이를 위해 왕생경(往生經)을 필사할 생각이었다. 다음 생에는 좋은 어머니를 만나 이 세상에 태어나 따스한 햇살도 보고, 누군가의 사랑도 듬뿍 받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폭설이 막 그친 뒤라 두껍게 쌓인 눈에 햇빛이 반사되어 눈을 제대로 뜨기조차 어려웠다. 심청하는 유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몸으로 밤새 길을 재촉하느라 한숨도 눈을 붙이지 못한 채 버티고 있었다. 멀리 조운사에서 풍겨 오는 향냄새가 코끝에 닿자 그제야 심청하는 마음이 조금 놓였다. 혹여 오는 길에 붙잡혀 다시 끌려갈까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가.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다.'"아씨, 다 왔습니다." 신이 난 부용이가 앞쪽의 대문을 가리키며 사람들을 따라 들어가려 하자 심청하는 부용을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을 피해 뒷문으로 가자꾸나." 심청하는 스승의 유품을 꺼내 조운사의 뒷문을 두드렸다. "스님, 번거로우시겠지만 이것을 혜원 대사님께 전해 주시겠습니까? 옛 벗이 찾아왔다고 말씀드려 주십시오." 어린 승려는 심청하를 위아래로 한차례 훑어보다가 말했다."아미타불. 주지 스님께서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심청하는 놀라움을 애써 눌렀다. 스승은 늘 조운사의 혜원 대사가 좀처럼 만나기 힘든 고승이라 했지만, 설마 이 절의 주지일 줄은 몰랐다.'혹시 오늘 내가 찾아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걸까?'심청하는 어린 승려를 따라 뜰을 지나고 긴 회랑을 거쳐 혜원 대사 앞에 이르렀다.노승은 인자한 인상에 붉은 가사를 걸친 채 좌복 위에 단정히 앉아 있었는데, 손에는 침향나무 염주를 쥐고 한 알 한 알 천천히 굴리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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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세자비가 사라진 것을 알아차렸을 때, 별원은 발칵 뒤집혔다.세자가 세자비를 얼마나 아끼는지 모르는 이가 없었기에, 이 사실을 알게 된 그가 얼마나 크게 노할지 생각만 해도 두려웠다. 별원 사람들은 곧 두 무리로 나뉘었다. 별원 집사는 사람을 시켜 말을 달려 경성으로 돌아가 민구영에게 소식을 전하게 했고, 나머지는 별원 주변으로 흩어져 심청하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지난밤 내린 폭설이 모든 흔적을 말끔히 뒤덮어 버린 탓에, 심청하가 어디로 갔는지 짐작할 만한 자취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이 추운 날씨에 모두가 하던 일을 내려놓고 심청하를 찾아 나서게 되었으니, 사람들 마음에는 원망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민구영은 이 모든 사실을 아직 알지 못했다. 그는 지금 소해정의 침상에 누워 있었다. "날이 밝았구나. 해정아, 너는 몸조리를 잘하고 있거라. 훗날 내 아이를 낳아 주면 결코 너를 박하게 대하지 않으마." 소해정은 고운 두 팔로 민구영의 허리를 감싸안고 애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오라버니, 밖이 이리도 추운데 조금만 더 소첩 곁에 있어 주십시오."소해정은 민구영의 손을 끌어다 살살 어루만지며 다시 한번 제 몸으로 그를 붙잡아 두려 했다.민구영은 그 손길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눈을 질끈 감았다 뜬 뒤 끝내 귀찮다는 듯 소해정의 손을 떼어 냈다.민구영의 눈에 순간 짜증이 스쳤다. 소해정의 몸이 매혹적인 것만은 분명했다.평소 같았으면 기꺼이 한바탕 호되게 벌해 주었을 것이다.하지만 어제부터 까닭 없이 마음이 몹시 불안해, 무언가가 곁을 떠나 버릴 것만 같은 예감이 자꾸만 들었다.하여 당장 별원으로 돌아가 심청하를 품에 안아야만 이 불안이 가라앉을 것 같았다."푹 쉬어라. 나는 별원으로 돌아가야겠다."이불 속으로 찬 기운이 스며들었다. 눈앞의 사내가 차라리 욕정을 참을지언정 자신과 다시 정을 나누려 하지 않자, 소해정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변하며 눈에 질투가 스쳤다."오라버니께서는 저와 뱃속 아이를 이렇게 두고 형님 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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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민구영은 비틀거리며 안채로 달려갔다. 방 안의 이부자리는 그대로였고, 화장함 속 장신구도 그대로였으며, 옷장에는 그가 새로 지어 준 겨울옷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여전히 제자리에 있었다.그런데 정작 이곳에 있어야 할 사람만 사라졌다. '대체 어디로 간 걸까?'두 사람이 마음을 맺었던 목서나무 아래까지 정신없이 달려가자 눈 위에 산산이 깨져 널브러진 술병들이 눈을 찌르듯 아프게 들어왔다.민구영은 눈밭에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쌓인 눈을 걷어 내며 술병을 찾았다.급기야 얼굴이 눈에 파묻힐 만큼 몸을 낮췄지만, 희미한 술 향조차 느껴지지 않았다.끝내 바닥에 엎드려 주변을 샅샅이 뒤졌으나 목서주는 단 한 병도 남아 있지 않았다.심청하가 두 사람이 함께 빚은 술을 제 손으로 모조리 깨뜨린 것이다.'어찌 이럴 수 있어.'문득 심청하가 이곳에 오기 전 자신에게 열쇠 하나를 건네며 새해 선물이라고 했던 일이 떠올랐다.민구영은 다시 몸을 일으켜 미친 듯이 충의후부로 향했다.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길까지 미끄러웠지만, 그는 오로지 서두를 뿐이었다. 몇 번이나 넘어지고 다시 일어섰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겨우 충의후부에 도착했을 때는 얼굴 곳곳이 멍들고 부어올라, 문지기마저 하마터면 민구영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민구영은 기다릴 새도 없이 열쇠를 꺼내 들고, 떨리는 손으로 작은 상자의 자물쇠를 열었다.상자 안에서 눈부신 황금빛이 드러나는 순간, 민구영의 눈이 따끔하게 아려 왔다. 그러나 그는 선뜻 손을 뻗지 못했다.두려웠다.교지 아래에는 서신 한 통과 민구영이 직접 심청하에게 건넸던 정표가 놓여 있었다.민구영은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꺼내 펼쳤다. 그 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맹세는 여전히 남아 있으나, 이제 마음을 전할 길은 없습니다. 교지가 이미 내려졌으니 우리의 화리는 이로써 정해졌습니다. 이제 당신과 저는 서로 빚진 것이 없습니다. 오직 이 생에서는 다시는 마주하지 않기를 바랍니다."'어떻게 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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