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hat ng Kabanata ng 계약서는 두 장, 집은 하나: Kabanata 21 - Kabanata 30

30 Kabanata

제21화. 같이 산다는 말

“같이 사시는 두 분은 이쪽에 앉으세요.”구청 회의실 앞에서 이름표를 나눠 주던 여자가 말했다.서아는 종이를 받다 말고 도현을 봤다. 도현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방이 두 개인 집에서 넉 달째 살고 있으니 같이 사는 게 맞았다.그런데 피해자 모임 사람들 앞에서 들으니 단어가 다른 뜻으로 들렸다.“저희 그런 사이 아니에요.”서아가 먼저 말했다.여자가 당황해서 손을 저었다.“아, 예. 저는 같은 호실이라고 적혀 있어서…….”“같은 집 피해자예요.”도현이 이름표 두 개를 받아 들었다. 말투는 평소와 똑같았지만 서아 쪽은 보지 않았다.회의는 한 시간 반 동안 이어졌다. 김상식 명의 건물 네 채에서 확인된 임차인만 열세 명이었다. 배당요구 종기, 피해자 결정 신청, 금융지원 같은 말이 오갔다. 서아는 중요한 날짜 옆에 별표를 쳤다.도현은 평소처럼 모르는 용어에 밑줄을 그었다. 질문도 두 개나 했다. 다만 쉬는 시간에도 서아에게 물을 건네지 않았다.회의실을 나오자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우산은 하나였다. 올 때는 자연스럽게 붙어 걸었는데, 돌아갈 때는 도현이 손잡이를 서아 쪽으로 밀었다.“쓰세요.”“도현 씨는?”“지하철역 바로 앞이잖아요.”“같이 쓰면 되지.”“그런 사이 아니라면서요.”서아가 걸음을 멈췄다.“그 말이 왜 여기서 나와?”“말 그대로인데.”“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굳이 설명할 필요 없잖아. 피해자 모임에서 연애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게 싫었다고.”도현이 우산을 접었다. 빗방울이 셔츠 어깨에 금세 점을 찍었다.“연애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게 싫은 거야, 나랑 연애하는 게 싫은 거야?”“우리가 언제 연애했는데?”말이 나가자 서아도 아차 싶었다.키스를 두 번 했다. 한 번은 싱크대 앞에서, 한 번은 현관문에 기대서. 새벽에 도현의 방에서 잠들었다가 해 뜨기 전에 제 방으로 돌아온 날도 있었다. 퇴근 시간을 묻고, 먹을 것을 남겨 두고, 상대가 늦으면 현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그래도 누구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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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받지 않을 돈

서아는 다음 날 점심시간에 통장을 확인했다.이자 빠져나갈 날짜를 착각한 탓이었다. 잔액을 보고도 처음에는 숫자를 잘못 읽은 줄 알았다.5,000,000원.보낸 사람 이름은 강도현이었다.메신저를 열자 오전 아홉 시에 온 문장이 있었다.― 급한 것부터 막아. 차용증은 저녁에 쓰자.며칠 전 퇴근 뒤 서아는 월세방 세 곳을 보고 돌아왔다. 한 곳은 창문을 열면 바로 주차장 배기구였고, 한 곳은 보증금이 오백만 원 부족했다. 마지막 고시원은 사진과 달리 복도 끝에 공용 샤워실이 있었다.도현에게는 “그냥 볼 만했어”라고만 했다. 그런데 식탁에 펼쳐 둔 메모에는 숫자가 남아 있었다. 이사비, 중개보수, 새 보증금, 두 달 뒤 들어올 성과급까지.그가 그걸 봤다는 사실이 돈보다 먼저 화가 났다.서아는 회사 비상계단으로 들어가 전화를 걸었다. 도현은 세 번 만에 받았다. 뒤에서 프린터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돈 뭐야?”― 봤네.“봤네?”― 이번 달 대출 이자랑 이사비 부족하다고 했잖아.“그래서 네가 왜 보내?”― 회의 들어가야 돼. 저녁에 얘기해.전화가 끊겼다.서아는 송금 버튼을 눌렀다. 하루 이체 한도가 걸렸다. 은행에 전화하니 대기 인원이 열일곱 명이었다.“아, 씨.”점심은 그대로 끝났다.저녁 아홉 시 반, 서아는 식탁 위에 오백만 원 입금 내역을 출력한 종이를 내려놨다. 도현은 노트북으로 지방 현장 도면을 보고 있었다.“이 돈 빼.”“오늘 못 보낸다며.”“내일 은행 가서 보낼 거야.”“급한 것부터 막고 보내.”“내가 달라고 했어?”도현이 안경을 벗었다.“안 할 것 같아서 보낸 거야.”“그게 더 빡친다고.”“왜.”“왜냐고?”서아는 입금 내역을 그의 앞으로 밀었다.“내 돈 날린 것도 쪽팔려 죽겠는데, 사귀자고 한 지 하루 만에 네 돈까지 받아? 내가 무슨 사람 같아.”“누가 그냥 준대? 빌려주는 거라고.”“연 이자는?”“없어.”“상환일은?”“네가 되는 대로.”“그게 그냥 주는 거야.”도현이 입술 안쪽을 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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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엄마가 알아버렸다

서아는 캐리어를 다 채우지 못했다.여름옷을 반쯤 넣었을 때 현관 초인종이 울렸다. 밤 열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도현이 인터폰을 확인하더니 서아의 방을 돌아봤다.“어머니셔.”“뭐?”화면 속 엄마는 장바구니를 두 개나 들고 있었다. 서아는 머리를 쥐어뜯을 뻔했다.“왜 연락도 없이 와.”“내가 어떻게 알아.”“일단 네 방에 들어가 있어.”“신발은.”현관에는 남자 구두와 운동화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숨길 시간이 없었다.초인종이 다시 울렸다.“윤서아, 자니?”서아가 문을 열었다. 엄마는 딸 얼굴보다 뒤에 선 도현을 먼저 봤다.“안녕하세요.”도현이 허리를 숙였다.엄마의 시선이 거실을 훑었다. 두 개의 머그컵, 현관에 붙은 생활비 정산표, 열린 작은방 안의 캐리어. 바닥에는 도현이 붙였다 뗀 테이프 자국이 아직 남아 있었다.“누구야?”“엄마, 그게…….”“집 고쳐주시는 분은 밤에도 사니?”지난번 거짓말을 기억하고 있었다.엄마는 장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놨다. 멸치가 든 통이 장바구니 안에서 옆으로 쓰러졌다.서아는 결국 식탁에 앉아 처음부터 말했다. 계약서가 두 장이었다는 것, 집주인이 잠적한 것, 대출 이자가 계속 빠져나가는 것, 경매가 시작됐다는 것.도현은 맞은편에 앉지 않았다. 싱크대 옆에 서서 필요한 대목만 보탰다.엄마는 중간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게 더 무서웠다.“얼마라고?”“일억 삼천.”“대출은?”“칠천이백.”엄마의 손이 식탁 아래로 내려갔다. 일할 때 앞치마에 손을 닦던 버릇처럼 손바닥으로 무릎을 계속 문질렀다. 반찬가게에서 오래 일한 손톱은 짧고 두꺼웠다.“왜 말을 안 했어.”“말하면 엄마가 뭘 할 건데.”“뭐라도 했겠지.”“엄마 적금 깨서 주려고 했겠지. 가게 보증금 빼겠다고 했겠지.”“내가 네 엄마잖아.”“그래서 말 못 했어.”엄마가 입을 다물었다.서아는 눈물이 날 것 같아 냉장고 쪽을 봤다. 손잡이에 엄마가 지난번 가져온 장아찌 봉지가 걸려 있었다. 그때도 서아는 괜찮다고 했다.“어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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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우리 집을 보러 온 사람들

오백만 원을 도현에게 돌려보낸 다음 날이었다. 이삿날은 닷새 남았다. 계약 해지와 보증금 반환 요구를 서면으로 남긴 뒤 신청한 두 사람의 임차권등기는 사흘 전 등기부에 기입됐다. 변호사의 확인을 받고 이삿날까지 잡은 상태였다.토요일 아침 아홉 시, 낯선 남자가 현관문을 두드렸다.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손바닥으로 쾅쾅 쳤다.“302호 계십니까? 집 좀 봅시다.”도현이 문을 반쯤 열었다.“누구신데요.”“경매 나온 거 보고 왔어요. 내부만 금방 보면 돼요.”남자 뒤에는 중년 여자와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뒤의 두 사람도 문틈 너머를 대놓고 훑었다.“약속하신 적 없는데요.”“점유자가 협조를 해야 낙찰도 잘되고 돈도 받지. 다 서로 좋은 일이야.”“현황조사 나온 집행관도, 감정평가사도 아니시죠?”“아니, 뭘 그렇게 까칠하게 굴어. 방 상태만 본다니까.”도현이 문을 닫으려 하자 남자가 운동화 앞코를 끼웠다.“여기 불법 점유 중이라는 얘기도 있던데?”거실에 있던 서아가 현관으로 나왔다.“발 빼세요.”“아가씨는 세입자예요?”“아가씨 아니고요. 연락도 없이 남의 집 문부터 미는 사람이 할 질문은 아닌 것 같은데요.”중년 여자가 남자 뒤에서 집 안을 훑었다. 빨래건조대에 널린 서아의 속옷이 보였다. 서아가 몸으로 시야를 막았다.“방 두 개 맞네. 남녀가 같이 사나 봐.”그 말이 작게 들렸지만 못 들은 척할 수는 없었다.도현이 남자의 운동화 앞코를 제 발로 밀어냈다.“다시 문 두드리면 경찰 부릅니다.”“낙찰받으면 어차피 나가야 할 사람들이 유세는.”“받고 나서 오세요.”문이 닫혔다. 도현이 걸쇠까지 걸었다.서아는 휴대전화로 현관 매트의 흙자국과 인터폰 화면을 찍었다. 손이 떨려 첫 사진은 흔들렸다. 피해자 단체방에 상황을 올리자 최은정에게 바로 전화가 왔다.― 또 오면 문 열지 말고 신고해요. 일반 입찰 희망자한테 내부 보여줄 의무 없어요. 집행관이나 감정평가사면 신분증이랑 공문부터 확인하고.“네. 그럴게요.”― 혼자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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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마지막 밤

이삿짐 상자가 거실 벽을 따라 쌓였다.서아 것에는 `주방`, `옷`, `회사 샘플`이 적혔고, 도현 것에는 숫자만 쓰여 있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 붙어 있던 `서재`, `주방`, `도면` 메모 대신 번호가 남았다.“십이 번은 뭐야?”“책.”“십일 번은?”“책.”“왜 굳이 번호를 써.”“목록 따로 있어.”“피곤하게 산다.”“냉장고 달걀에도 날짜 쓰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둘은 나흘 만에 제대로 대화했다. 대전 이야기가 나온 뒤 필요한 말만 주고받았다. 종량제 봉투 더 사지 마. 가스 해지했어. 이삿짐차는 열 시에 와.내일이면 그 말도 끝이었다.서아가 싱크대 아래에서 처음 쓴 생활계약서를 찾았다. 물이 튀어 종이 가장자리가 울어 있었다.`1. 각자 방에 허락 없이 들어가지 않는다.``4. 냉장고 왼쪽은 서아, 오른쪽은 도현이 쓴다.``7. 계약 종료 즉시 각자 퇴거한다.`둘은 이사 관련 확인서와 배당요구 접수증을 각자 서류 상자 맨 위에 넣었다.도현이 어깨 너머로 종이를 읽었다.“칠 번은 잘 지키겠네.”“그러게.”서아는 종이를 버리려다 접어서 가방 옆주머니에 넣었다.“대전 언제 가?”“모레.”“숙소는?”“현장 근처 오피스텔.”“좋겠다. 사기당한 집보다는 낫겠네.”도현이 테이프를 끊다 말고 서아를 봤다.“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뭘.”“네 두고 도망가는 사람처럼.”“내가 언제 그랬어.”“계속 그러고 있잖아.”서아는 빈 서랍을 닫았다. 잘 맞지 않는 레일이 덜컹거렸다.“그럼 아니야?”“나도 집 구해야 돼. 돈 벌어야 하고.”“알아.”“모르는 얼굴인데.”그가 며칠 전 서아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줬다.서아가 바닥에 앉았다. 상자에 가려진 창으로 해 질 무렵 빛이 들어왔다.“네가 또 없어질까 봐 그래.”도현의 손에서 테이프가 길게 풀렸다.“아빠도 돈 문제 생기고 지방 간다고 했어. 일 잡히면 부른다고. 그게 마지막이었어.”“나 네 아버지 아니라고 했잖아.”“알아. 머리로는.”도현이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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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방 두 개가 비었다

이삿짐차 두 대가 같은 골목에 들어왔다.기사들이 차에서 내려 주소를 확인하다가 서로를 봤다.“302호가 두 집이에요?”서아와 도현이 동시에 대답했다.“네.”처음 이사 오던 날과 똑같았다. 그날은 트럭 두 대가 집 안으로 짐을 밀어 넣었고, 오늘은 반대였다.서아의 짐부터 빠졌다. 책상, 작은 서랍장, 날짜가 붙은 반찬통. 냉장고 문에서 마지막 자석을 떼자 오래 가려져 있던 자리가 네모나게 희었다.도현이 현관 앞에서 상자를 받아 기사에게 넘겼다.“이건 깨지는 거야.”“써 있는데.”“아저씨가 방금 밑에 깔려고 했어.”“내가 말할게. 너도 네 짐 봐.”둘은 계속 서로에게 할 일을 시켰다. 멈추면 다른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마지막으로 작은 화분 하나가 남았다. 서아가 입주 첫날 사 온 스투키였다. 햇빛도 제대로 못 받았는데 죽지 않고 버텼다.처음에는 서아 방 창틀에 있었고 비가 새던 날부터 도현 방으로 옮겨졌다. 누가 물을 줬는지는 늘 서로 모른 척했다. 화분 받침 밑에는 관리비를 나누려고 끄적인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그건 네 거지?”도현이 물었다.“같이 물 줬잖아.”“네가 사 왔어.”“네 방에 더 오래 있었고.”“화분도 재산분할 해야 돼?”“우리가 결혼했냐?”서아가 화분을 안았다.“내가 가져갈게.”서아는 화분을 현관 옆에 잠깐 내려놓았다.짐이 빠진 작은방은 생각보다 좁았다. 침대가 있던 자리만 먼지 테두리가 잡혔고, 벽지 아래쪽은 누렇게 변해 있었다. 서아는 물티슈를 들고 쪼그려 앉았다.도현이 손목을 잡아 일으켰다.“청소비 냈어.”“그래도 이건 닦고…….”“가.”“왜 쫓아내.”“네 차 기다리잖아.”밖에서 기사가 경적을 짧게 울렸다.서아는 빈방을 한 번 더 봤다. 울고 싶지는 않았다. 이 집 때문에 이미 너무 많이 울었다. 그런데 자꾸 코가 매웠다.현관에서 신발을 신는데 도현이 무릎을 굽혔다. 풀린 운동화 끈을 묶어 주려는 줄 알고 서아가 발을 뺐다.“뭐 해.”“이거.”그가 신발장 아래에서 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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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혼자 사는 연습

혼자 사는 집에서는 아무것도 제자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냉장고에 넣어 둔 즉석밥은 그대로 있었고, 검은 양말이 빨래에 섞이는 일도 없었다. 샤워를 삼십 분 해도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없었다.서아는 처음 한 달 동안 그 자유를 악착같이 누렸다.보일러를 스물여섯 도로 올렸다. 침대 위에서 과자를 먹었다. 설거지는 아침까지 미뤘다. 새벽 두 시에 드라이어도 돌렸다.그러다 옆집에서 벽을 세 번 두드렸다.“죄송합니다.”서아는 드라이어를 끄고 혼자 웃었다.웃고 나니 조용했다. 예전 집에서는 이 시간이면 도현이 벽을 두 번 두드렸다. 시끄럽다는 뜻 한 번, 이제 자겠다는 뜻 한 번. 둘이 정한 적도 없는데 어느 날부터 그렇게 됐다.서아는 벽에 손등을 댔다가 내렸다. 옆집 사람까지 놀라게 할 필요는 없었다.이사 일주일 뒤 마지막 전기료가 빠져나갔다. 도현은 생활비 모임통장 잔액을 십 원 단위까지 나눠 보낸 뒤 `정산 끝`이라고 썼고, 서아는 `응`이라고 답했다. 둘이 함께 보던 계좌는 그날 닫혔다.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경매 절차는 사람들이 처음 말한 것보다 오래 걸렸다.서아는 임차권등기 완료 서류와 배당요구 접수증, 대출 연장 서류를 챙겨 다녔다. 배당요구는 종기 전에 끝냈지만 보정과 확인 연락은 계속 왔다. 피해자 결정 통지서를 받은 날에도 회사에서는 순두부찌개 신제품 관능평가가 있었다.결정서를 받았다고 돈이 들어오는 건 아니었다. 바뀐 것은 지원대출 상담 창구와 안내 절차 정도였다. 서아는 결정서를 새 투명 파일에 넣고 겉면에 제 이름과 사건번호를 적었다.“대리님, 이거 끝맛이 너무 텁텁하지 않아요?”신입사원이 물었다.서아는 세 번째 컵의 국물을 삼켰다.“전분 줄이고 고춧가루 입자 바꿔봐요. 매운맛만 세게 하면 싸구려 같아.”“네.”그래도 서아는 매일 출근했고 기획안 마감도 맞췄다. 월급날이면 대출 이자와 월세가 같이 빠져나갔다. 통장 잔액은 여전히 보기 싫었지만 화장실에 숨어 확인하지는 않았다.엄마에게도 한 달에 한 번 진행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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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돌아가고 싶은 사람

서아는 인터폰 화면을 세 번 확인했다.도현이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봤다.“안 열어?”스피커에서 조금 찌그러진 목소리가 나왔다.서아가 현관문을 열었다.“여긴 어떻게 알았어?”“이사한 날 네가 보내 줬잖아.”“그걸 아직 기억해?”“응.”“무섭네.”“회사 앞에서 기다리는 것보다는 낫잖아.”도현의 머리는 전보다 짧아졌고 얼굴과 목은 현장 햇빛에 타 있었다.서아는 화분을 내려다봤다.“그건 왜 네가 갖고 있어?”“네 트럭에 실으려다가 내 상자에 들어갔어.”“반년 동안?”“키웠어.”“물을 너무 줬네. 잎이 물렀잖아.”“죽지는 않았어.”서아가 화분을 받아 들었다. 문 앞에서 계속 이야기할 수는 없어 몸을 비켰다.“들어와.”도현은 신발을 가지런히 벗고 방을 둘러봤다. 침대 하나와 작은 식탁, 옷장으로 꽉 찬 원룸이었다.“생각보다 괜찮네.”“생각보다가 뭐야.”“고시원 갈 줄 알았으니까.”“돈 없지 눈 없냐.”서아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냈다. 마실 만한 컵이 하나뿐이라 제 머그에 물을 따라 건넸다.도현이 두 손으로 컵을 받았다.“연락 왜 안 했어?”“내가 묻고 싶은데.”“네가 정리되면 한다며.”“그걸 진짜 기다렸어?”“응.”“시키는 건 더럽게 안 들으면서.”“그건 들으라고 한 말 같았으니까.”서아는 식탁 반대편에 앉았다. 둘 사이에 스투키 화분을 놓았다. 잎 하나가 옆으로 축 처져 있었다.“정리됐어?”도현이 물었다.“아니. 돈도 다 못 받고, 소송도 남았고. 아마 몇 년 걸릴 수도 있대.”“왜 연락 안 했어?”“하려고 했어.”“언제.”“네가 벨 누르기 직전.”서아가 창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관리비 삼천칠백 원 때문에.”“그건 라면값이라고 했고.”“라면을 얼마나 처먹었으면 삼천칠백 원이나 돼.”도현이 웃었다. 웃음이 끝난 뒤에도 둘 다 바로 말하지 않았다. 창밖에서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옆집 문 닫는 소리가 났다.“나 서울에 집 구했어.”도현이 먼저 말했다.“어디?”“회사 근처. 보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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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이번에는 천천히

다시 연애를 시작한 뒤에도 두 사람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금요일 밤은 주로 서아의 집에서 보냈다. 도현의 원룸은 회사와 가까웠지만 창문을 열면 옆 건물 벽만 보였다. 서아의 집은 꼭대기라 계단을 다섯 층이나 올라야 했지만, 창문 한쪽으로 북한산 자락이 조금 보였다.“칫솔 놓고 가도 돼?”도현이 물었다.“한 개만.”“면도기는?”“안 돼.”“왜.”“세면대 좁아.”“네 화장품 반만 치우면 되잖아.”“그럼 오지 마.”“칫솔만 둘게.”일요일 저녁이면 도현은 제 칫솔을 남겨 두고 돌아갔다. 서아는 문이 닫히고 나서도 굳이 컵에서 빼지 않았다.여섯 달 동안 둘은 세 번 크게 싸웠다.첫 번째는 도현이 며칠 입을 옷을 가져와 옷장 한 칸을 차지했을 때였다. 두 번째는 서아가 데이트 비용을 매번 십 원 단위까지 정산해 보냈을 때였다. 세 번째는 도현이 부동산 매물 링크를 보냈을 때였다.`신축 투룸, 역 도보 7분, 보증금 5천/월 95.`그전에도 둘은 매물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데이트를 하다 부동산 유리창 앞에서 멈춰 가격만 읽고 지나갔다. “이건 반지하인데 왜 구십이야”, “관리비 십오만 원에 뭐가 들어가는데” 같은 말만 했다. 함께 살자는 말은 누구도 먼저 꺼내지 않았다.서아는 링크만 읽고 답하지 않았다.그날 저녁 도현이 집에 왔다.“링크 봤어?”“봤어.”“주말에 볼래?”“왜?”“계약 끝나면 같이 살 집.”서아가 썰던 대파를 내려놨다.“누가 같이 산대?”“싫어?”“그 얘기를 왜 링크부터 보내.”도현이 현관 앞에 서서 신발도 벗지 못했다.“먼저 물어보면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서.”“그러니까 또 네가 다 정하고 보여준 거네.”“정한 게 아니라 찾아본 거야.”“보증금 오천은 누가 내는데.”“내가 삼천, 네가 이천.”“봐. 정했잖아.”도현이 입을 다물었다.서아는 칼을 씻어 건조대에 놓았다. 예전 같으면 화부터 냈을 것이다. 이번에는 식탁을 가리켰다.“앉아.”“밥부터 먹고 얘기하면 안 돼?”“대파 다시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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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계약서는 한 장

“등기부 다시 확인하셨죠?”서아가 묻자 중개사가 웃었다.“오늘 아침에 떼서 보여드렸잖아요.”“계약 직전에 한 번 더 볼게요.”“그러세요. 당연히 확인하셔야죠.”도현은 말없이 휴대전화로 등기사항을 다시 열었다. 소유자 이름, 근저당 설정 여부, 주소와 동·호수. 서아는 임대인의 신분증과 계좌 예금주를 한 번 더 맞췄다.긴장한 사람은 오히려 임대인이었다.“제가 뭐, 문제 있는 집을 내놓은 건 아닙니다.”“문제 있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건 아니고요.”서아가 말했다.“저희가 전에 크게 당해서요.”예전에는 전세 사기라는 말을 입 밖에 내면 얼굴부터 뜨거워졌다. 이번에는 먼저 말하고 중개사와 임대인의 반응을 기다렸다.지난 집 배당금은 예상보다 조금 많았지만 보증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입금액은 각자 대출 원금에 넣었고, 임대인과 중개사를 상대로 한 절차는 아직 진행 중이었다.도현이 특약을 읽었다.“잔금과 전입신고를 마친 다음 날까지 현재 권리관계를 유지하고, 소유권 이전이나 새 담보권 설정을 하지 않는 조건 맞죠?”“예, 적어놨습니다.”“보증 가입이 거절되면 계약을 해제하고 이미 지급한 돈을 전액 반환하는 조건도요.”“여기 있습니다.”서아는 마지막 장을 넘겼다.임차인 칸에는 이름이 두 개 들어가 있었다.특약에는 두 사람이 부담한 보증금 액수와 반환계좌, 한 사람이 먼저 나갈 때의 정산 방식도 적혀 있었다.윤서아. 강도현.계약서는 한 장이었다.두 사람은 각자 도장을 찍었다. 도현이 도장에 묻은 인주를 닦는 사이 서아는 제 이름 옆을 손가락으로 눌렀다.손은 떨리지 않았다.계약서를 첨부해 주택 임대차 신고를 마쳤고 확정일자 번호도 확인했다.일주일 뒤 잔금을 보내기 직전, 둘은 새 등기부와 진행 중인 등기신청 유무를 다시 확인했다. 서아는 임대인의 납세증명서와 전입세대확인서, 건축물대장을 차례로 확인했다.이삿짐차 두 대가 다시 한 골목에 섰다.이번 기사들도 주소를 확인했다.“두 분 짐이 같은 집으로 가는 거 맞죠?”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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