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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hat ng Kabanata ng 봄밤, 젖어들다: Kabanata 11 - Kabanata 20

30 Kabanata

제11화

온서연은 또다시 열여덟 살 때의 꿈을 꾸었다.수능이 막 끝난 직후, 온서연을 맞이한 건 아버지가 밖에서 낳은 아들을 데리고 찾아와 이혼해달라며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빌던 내연녀였다.그날 집 안에 있는 부술 수 있는 물건은 모조리 박살이 났다.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천벌을 받을 인간이라며 악다구니를 퍼부었다.아버지는 오히려 어머니가 예전부터 딴마음을 품고 있었으며 자신을 거짓으로 대했다고 비난했다.온서연은 방에 덩그러니 앉아 차마 듣기 힘든 쌍욕이 오가는 바깥의 소란을 들으며 지난 세월의 가정생활을 애써 떠올려 보았다.그 안에서 한 줌의 진심이라도 찾아내 보려는 몸부림이었다.하지만 두 사람이 싸워댄 끝에 온서연의 귓가에 들려온 말은 이러했다.“당신이 유책 배우자인데 왜 내가 서연이를 키워야 해?”“서연이 당신이 낳았잖아. 당신이 안 키우면 누가 키워?”알고 보니 두 사람이 그렇게 핏대를 세우며 싸운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결국 방 두 개에 거실 하나 딸린 집은 온서연에게 남겨졌다.어쨌든 온서연은 이미 다 컸으니 혼자 살 수 있을 테고 양측에서 매달 제때 생활비만 쥐여주면 그만이라는 식이었다.부모는 미련 없이 짐을 싸서 떠났고 온서연은 난장판이 된 집에 홀로 남겨졌다.그날 밤 온서연은 무인 지대 탐험팀에 지원했다.광고에 적힌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는 문구가 시선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온서연이 속으로 생각했다.‘여기서 더 나빠질 결과가 뭐가 있겠어? 기껏해야 죽기밖에 더하겠어? 어차피 장례식에 찾아올 사람도 없는데.’그녀는 그렇게 무작정 길을 떠났다.역시나 인적이 드문 그 루트는 위험천만했고 온서연은 갑작스럽게 몰아친 모래폭풍에 일행에서 뒤처지고 말았다.배낭을 멘 채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밤낮으로 사흘을 걷고 또 걷고 마지막 남은 물 한 방울까지 털어 마신 온서연은 마침내 흩날리는 누런 모래 먼지 속으로 쓰러졌다.그 후로 귓가에 늘 그 남자의 부름이 맴돌았다.“온서연, 온서연.”“입 벌려서 물 좀 마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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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육경찬이 곧장 온서연을 침실로 끌고 가더니 그녀의 옷을 벗기려 들었다.“어디 또 다쳤어? 많이 맞은 거야? 병원은 갔고?”온서연이 육경찬의 손을 쳐냈다.“어젯밤에 도와달라고 전화했을 땐 받지도 않았으면서.”그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그건... 내가 말했잖아. 어제 야근하느라 휴대폰 무음으로 해놨었다고. 이리 좀 와. 또 다친 데 없는지 보게.”“없어. 그냥 위협만 좀 당한 거라 심하게 다치진 않았어.”육경찬이 버럭 화를 냈다.“그렇게 위험한 취재를 왜 네가 맡아? 다른 남자 동료랑 바꾸면 안 돼?”온서연이 미간을 찌푸렸다.“내 일인데 위험하다고 어떻게 남이랑 훌쩍 바꿔? 그럼 앞으로 누가 나한테 취재를 맡기겠어? 게다가 윤예린이 새로 온 팀장인데 처음 배정한 일부터 거절하면 앞으로 어떻게 얼굴 보고 지내?”그가 목소리를 높였다.“그럼 일 그만둬. 얼굴 보고 지내긴 뭘 지내? 네 목숨이 중요해, 일이 중요해? 내가 벌어다 주는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굳이 회사를 다녀야겠어? 그래, 지금 당장 때려치워!”육경찬이 온서연의 휴대폰을 꺼내 손에 억지로 쥐여주었다.“전화해서 지금 당장 그만둔다고 해.”온서연이 육경찬을 몇 초간 가만히 응시했다.예전이었더라면 육경찬이 정말로 그녀를 걱정해서 화를 내는 것이라 철석같이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그녀는 화면 잠금을 풀고 연락처에 들어가 윤예린의 번호를 찾은 뒤 다시 휴대폰을 육경찬의 손에 쥐여주었다.“그 여자 번호야. 네가 직접 전화해서 나 그만둔다고 말해.”육경찬이 멈칫했다.“내가? 내가 뭐라고 말해?”온서연이 어깨를 늘어뜨렸다.“뭐든 상관없어. 네가 나더러 그만두라고 한 거니까 핑계도 알아서 지어내. 내가 아프다거나 이직하고 싶다거나, 아니면 임신했다거나. 마음대로 둘러대 봐.”그가 휴대폰을 꽉 쥔 채 한참이나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온서연, 내가 나서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아닐 건 또 뭔데?”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잠시 머뭇거리던 육경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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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도라지꽃?”온서연의 마음 깊은 곳에서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끝없이 펼쳐진 그 광활한 사막으로 다시 돌아간 것만 같았다.이 세상에 오직 그녀 자신과 그 다정하고 묵직했던 목소리만 남겨진 기분이었다.“온서연.”“온서연.”온서연이 다가오는 배도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머릿속에 오직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깜빡한 게 있어요.”온서연은 다급하게 외치고는 별장 안으로 뛰쳐 들어갔다.이미 다 싸둔 캐리어를 괜히 열었다 닫았다 하며 늑장을 부리다가 다시 밖으로 나왔을 때 배도현이 문나영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서연이 다 준비됐나 보네요. 두 사람 얼른 가봐요. 그럼 전 더 방해하지 않을게요.”문나영이 도라지꽃 다발을 들고 다가오며 싱글벙글 웃었다.“배도현 씨 제법 젠틀하네. 너 데리러 오면서 내 꽃까지 다 사 오고.”“너한테 준 거라고?”온서연의 질문에 문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응. 들어와서 차라도 한잔하고 가라고 했더니 다음 기회에 마시겠다면서 이 꽃을 주더라고.”온서연은 알 수 없는 안도감에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그녀가 캐리어를 끌고 차 쪽으로 다가가 짐을 실으려 하자 배도현이 먼저 다가와 거들었다.“고마워요.”온서연도 굳이 거절하지 않고 호의를 받아들였다.오늘 배도현이 몰고 온 차는 벤틀리였다. 조수석에 올라탄 온서연이 무의식적으로 차 안을 쓱 훑어보았다.여전히 여자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윤기준이 윤태성한테 6억을 줬어.”배도현이 불쑥 던진 말에 온서연이 상념에서 깨어났다.“아, 그럼 검사 센터에 들어간 돈도 만만치 않겠네요?”그가 앞만 주시한 채 운전하며 대답했다.“응. 2억은 족히 넘겠지.”“그렇게 거액의 돈을 쏟아부었는데 순순히 진실을 말해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회사로 돌아가서 동료들이랑 상의 좀 해봐야겠어요. 어쩌면 잠입 취재를 하는 편이 진상을 밝혀낼 가능성이 더 클지도 모르니까요.”배도현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왜요?”“내가 그 두 배를 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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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그 순간 온서연은 누군가에게 정수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안색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고 영혼이 빠져나간 듯 공허하고 절망적인 모습으로 문밖에 서 있었다. 문을 열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온서연과 육경찬이 잠자리를 가진 것은 그때 한 번뿐이었고 그 후 바로 임신이 되었다.한 번에 임신이 돼서 몸 상태가 참 좋다고 육경찬을 놀린 적도 있었다.하지만 신혼 첫날밤, 육경찬은 윤예린과 함께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날 밤 온서연과 함께 있었던 사람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이어서 윤예린이 애교를 부리며 육경찬에게 이혼을 재촉했고 육경찬은 중요하지 않은 사람에게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면서 윤예린을 다정하게 달랬다.그 대화들이 온서연의 머릿속에서 윙윙거리며 맴돌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3개월 전 결혼식을 올렸던 골드 호텔 입구에 서 있었다.오늘 이 호텔에 마침 결혼식이 있었다.신랑 신부가 입구에서 하객들을 맞이하고 있었고 사람들이 오가며 축하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사진을 찍던 사진작가가 온서연을 한참이나 불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자 결국 직접 다가와 그녀를 톡톡 쳤다.“저기요, 길 좀 비켜주시겠어요? 신랑 신부님이 친구분들과 사진을 찍으셔야 해서요.”온서연이 사진작가를 멍하니 보며 물었다.“녹화본은 얼마나 보관되나요?”“네?”“호텔 CCTV 영상 말이에요. 얼마나 보관되냐고요.”사진작가는 의아해하면서도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보통 한 달을 넘기지 않아요. 뭐 잃어버리셨어요? 호텔 매니저에게 가서 물어보세요. 누가 주워서 프런트에 맡겼을 수도 있으니까요.”“그렇구나. 한 달...”온서연은 누구에게 물어봐도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잃어버린 건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이제야 알 것 같았다. 육경찬이 왜 그토록 잔인하게 아이를 지우려 했는지.아무리 사나운 호랑이라도 제 새끼는 잡아먹지 않는 법이다.하지만 그게 제 핏줄이 아니라면 잘못돼도 상관이 없었다....배도현이 장황했던 화상 회의를 간신히 끝내고 서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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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병원.온서연이 병실로 들어서자 창백한 얼굴의 여자가 침대 머리맡에 기댄 채 멍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다소 빛바랜 외투를 입은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온서연과 악수를 나눴다.“기자님, 저는 허유나의 남편 하준호입니다. 기자님 전화를 받고 저희 둘 다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화연 푸드가 극악무도한 짓을 저질렀으니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예요.”온서연의 시선이 허유나에게 향했다. 얼굴에 기쁜 기색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아내분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 않네요. 유산은 여성의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기는 일인 만큼 질문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드릴게요.”하준호가 다급히 손사래를 쳤다.“아니에요, 괜찮아요. 지금은 화연 푸드의 악행을 폭로해서 우리가 배상금을 받아내는 게 가장 중요해요.”“아내가 지금은 감정이 좀 예민해져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겁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죠. 물어보시고 싶은 거 다 물어보세요.”온서연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육경찬도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눈앞의 남자에게 혐오감이 일었다.어느새 병상으로 돌아간 하준호가 아내 곁에 앉아 옷매무시를 다듬었다.“기자님, 시작하시죠.”온서연이 카메라와 녹음 펜을 켰다.“그날 화연 푸드에서 어떤 음식을 드셨는지 기억나시나요?”허유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준호가 허둥지둥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당연히 기억하죠. 제가 다 적어놓았어요. 갈비찜, 탕수어, 바지락 볶음, 새우 숙회, 곰탕... 의사 선생님이 제 아내가 상한 식재료를 먹어서 유산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아이를 이렇게 허무하게 잃었어요...”온서연이 또 물었다.“화연 푸드 측에 배상을 청구하신 후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온 적이 있나요?”“딱 한 번 연락 왔는데 태도가 아주 거만하더군요. 무슨 일이 있어도 배상금은 한 푼도 못 준다면서 괜한 트집 잡지 말라고 하더라고요.”“이런 가게는 하루빨리 망해야 해요. 안 그러면 얼마나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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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온 기자님, 제가 유산하게 된 전후 사정을 따로 말씀드리고 싶어요. 대신 이 내용은 방송에 내보내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세요.”온서연은 솔직하게 답했다.“그건 약속드릴 수 없어요. 저는 기자고, 뉴스의 본질은 사실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니까요.”허유나는 한참을 망설인 끝에 입을 열었다.“저도 이제 더는 못 참겠어요. 기자님 말고는 누구한테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고요.”“제 남편은 호텔에서 일해요. 3개월 전에 갑자기 승진도 하고 월급도 올랐는데, 집에 거액의 성과금까지 가져왔어요. 계속 캐물었더니 우연히 호텔 지배인과 화연 푸드 사이의 거래를 알게 됐다고 하더라고요.”“호텔 레스토랑에서는 식재료를 해외에서 항공으로 들여온다고 홍보했지만, 실제로는 전부 화연 푸드 쪽 유통망을 통해 납품받고 있었어요. 지배인은 그 대가로 상당한 리베이트를 챙겼고요. 지배인은 남편한테 입 다물고 있으면 연말에 레스토랑 책임자로 올려 주겠다고 약속했대요.”“저는 그런 일에 끼지 말라고 했어요. 식재료에 문제라도 생기면 사람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고 말렸지만 남편은 듣지 않았어요. 그 일로 몇 번이나 싸웠고, 그러다 남편이 저를 밀쳤어요. 그래서 유산했어요.”허유나는 얼굴을 감싸 쥔 채 흐느껴 울었다.“제가 넘어져 피를 흘리는데도 남편은 저를 병원에 먼저 데려가지도 않고 화연 푸드에 먼저 배달 음식을 시키더라고요. 이걸 빌미로 더 큰 돈을 뜯어내려고요.”“일이 커지자 그 지배인이 1억 원을 줬는데, 남편은 그걸로 부족하다면서 화연 푸드에 2억 원을 더 내놓으라고 했어요.”온서연이 물었다.“그렇게 대놓고 협박할 정도라면 손에 결정적인 증거가 있다는 뜻이겠죠? 아니면 화연 푸드 대표도 만만한 사람이 아닌데 남편분이 이렇게 오래 버티고 있을 리 없고요.”허유나는 목소리를 낮췄다.“남편이 그 일을 알고 난 뒤에, 업무상 편의를 이용해서 호텔 곳곳에 몰래 초소형 카메라를 달았어요. 물건을 들여오는 장면부터 상자를 여는 모습, 식재료를 손질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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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온서연은 하준호를 따라 호텔로 갔다.하준호에게는 이미 개인 사무실이 따로 있었다. 그는 컴퓨터를 켠 뒤 배가 불룩한 장식품 안쪽에서 하드디스크 하나를 꺼냈다.“자, 영상은 전부 여기 있어요. 내가 기자님 속인 거 아닙니다. 돈 주면 물건 넘기는 겁니다.”온서연은 곧바로 육경찬의 계좌에서 하준호에게 6천만 원을 송금했다.“직접 보세요. 하드디스크는 그냥 가져가시면 됩니다.”온서연은 컴퓨터 앞에 앉으며 물었다.“3개월 전 객실 복도 영상도 있나요?”하준호가 미간을 찌푸렸다.“요구하는 것도 많네요. 복도 영상은 왜요?”“대답하세요.”“있습니다. 띄워 줄 테니까 알아서 찾으세요.”온서연은 먼저 보도에 필요한 영상들을 정리해 자신의 USB로 다운로드했다. 그 후에야 그녀는 결혼식을 올린 그날 밤의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화면에 웨딩드레스를 입은 자기 모습이 나타나는 순간, 온서연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영상 속 육경찬은 반쯤 취한 온서연을 부축해 객실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종업원 한 명이 우유 한 잔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몇 분 후, 육경찬은 정신을 잃고 축 늘어진 온서연을 안고 다시 복도로 나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앞까지 데려간 뒤 다른 남자에게 그녀를 넘겼다.온서연은 당장이라도 화면 속으로 들어갈 듯 몸을 바짝 내밀었다. 어떻게든 그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다.하지만 애초에 몰래 설치한 카메라라 각도가 좋지 않았다. 보이는 건 남자의 귀에 달린 은색 귀걸이뿐이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육경찬은 그 남자가 온서연을 안고 떠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뒤에야 객실로 돌아갔다.온서연은 온몸에 힘이 빠져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어제까지만 해도 온서연은 육경찬이 한 말의 의미가, 신혼 첫날밤의 일은 우연한 사고였고 그것은 자신의 치욕이자 육경찬에게도 수치스러운 일이었기에 그가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아니었다.육경찬은 일부러 그랬다.그녀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 직접 약을 먹여 정신을 잃게 만든 뒤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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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온 기자, 앞으로 잘 부탁해.”“뭘... 부탁하신다는 거죠?”온서연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양서희를 바라봤다.양서희가 웃으며 설명했다.“이번에 유명인 인터뷰를 기획하고 있거든. 배원 그룹은 우리 시에서 가장 큰 기업이야. 마침 배 대표님께서 직접 인터뷰에 응해 주시기로 했어. 이 건은 네가 맡아.”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배도현이 손을 쓴 게 분명했다.이렇게 좋은 기회가 고작 인턴인 자신에게 돌아올 리 없었으니까.“온서연, 기사 원고는 여기 두고 가. 내가 사인만 하면 되니까. 넌 배 대표님과 인터뷰 내용부터 조율해. 난 전화 좀 받고 올게.”양서희가 밖으로 나가자 사무실에는 온서연과 배도현 둘만 남았다.사무실 안에 정적이 흘렀다.온서연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먼저 화제를 꺼냈다.“배 대표님께서 꼭 넣었으면 하는 질문이나 답변이 있으세요? 아니면 특별히 피하고 싶은 질문이 있으시면 미리 준비해 둘게요.”“있어.”온서연이 수첩을 꺼냈다.“말씀하세요.”“누군가가 직접 요리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겠다더니, 반쯤 만들다가 뛰쳐나가서는 술에 푹 취 있더군. 덕분에 내가 도시를 다 뒤져 가며 찾았지.”“겨우 찾아냈더니 날 다른 남자로 착각하고 콧물에 눈물까지 전부 내 옷에 묻혔는데, 아직 제대로 된 설명 한마디 못 들었어.”배도현이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온 기자 생각엔 그런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온서연은 민망한 듯 헛기침을 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하지만 원래 기세 하나는 밀리지 않는 성격이었다. 온서연은 배도현 곁으로 가 앉으며 되물었다.“그럼 배 대표님은 오늘 방송국까지 직접 찾아와 저랑 따지기 전에, 어떻게 하실지 생각도 안 하고 오신 거예요?”“생각했지.”다음 순간 배도현이 온서연을 번쩍 들어 자기 무릎 위에 앉히더니 거칠게 입술을 덮쳤다.온서연은 놀라 그를 밀어내려 했지만, 배도현은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더 깊게 키스했다.몇 번 부딪히고 나니 온서연도 그의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했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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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온서연이 배도현을 따라 1층으로 내려가자 기태윤이 차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온서연 씨, 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온서연은 예의 바르게 인사한 뒤 배도현과 함께 차에 올랐다.이동하는 내내 배도현은 업무 전화를 여러 통 받았다. 보기만 해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람인데, 정작 방송국까지 찾아와 자신에게 따질 시간은 있었던 모양이었다.온서연은 목표를 이루기 전까지는 절대로 이 거물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아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무슨 생각 해?”배도현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온서연은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아까 말씀하신 그... 수이도 프로젝트 말인데요. 그게 뭔가요?”배도현의 목소리가 살짝 차가워졌다.“육경찬이 그 프로젝트에 참여했는지 묻고 싶은 거겠지?”“네.”“말했잖아. 내 옆에 있을 땐 다른 남자 생각하지 말라고.”...차는 로즈 하우스 앞에 멈췄다.배도현이 먼저 내린 뒤 반대편으로 돌아와 온서연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현관에 들어서자 배도현은 아직 주방으로 치우지 않은 신선한 식재료를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네가 산 거야? 언제 샀어?”“네. 아침에 나갈 때부터 어제 못 해 드린 식사를 다시 해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기 비서님께 식재료를 다시 사 달라고 부탁했어요.”배도현이 기태윤을 돌아봤다.온서연이 얼른 덧붙였다.“무슨 일 있으면 기 비서님한테 부탁해도 된다고 한 건 배 대표님이잖아요.”배도현이 낮게 웃었다.“말은 잘하네.”“그럼 먼저 일 보세요. 저는 요리할게요.”배도현이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이번에도 만들다 말고 뛰쳐나가 술 마시러 가는 건 아니겠지?”온서연의 뺨이 살짝 붉어졌다.“안 그래요. 오늘은 제대로 푸짐한 저녁 드시게 해 드릴게요.”“기대할게.”배도현은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 그는 몇 걸음 걸어가다가 멈춰서서 말했다.“수이도 프로젝트는 관광 관련 부처에서 반년 전부터 추진하려던 휴양섬 개발 사업이야. 아직 사업자도, 총책임자도 확정되지 않았어.”“그래서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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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나는 그냥 서연이가 얼마 전에 아이를 잃었는데 이제 곧 결혼 생활도 끝난다는 충격을 받을까 봐 걱정돼서 그래. 거기다 회사에서는 네가 괴롭히고 있고.”“괜히 충격을 못 버티고 극단적인 선택이라도 하면 너도 마음 편할 리 없잖아.”“그래서 내가 조금 잘해 준 건데, 그걸 가지고 네 앞에서 우리 부부가 얼마나 사이좋은지 자랑할 줄은 몰랐네. 내 잘못이지. 앞으로는 선을 지킬게.”“그래야지.”윤예린이 콧방귀를 뀌었다.“알았어, 알았어. 내가 술 한 잔 가져올 테니까 여기서 얌전히 기다려.”육경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 쪽으로 향했다. 윤예린의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그는 답답하다는 듯 넥타이를 거칠게 잡아당겼다.예전엔 이 철없는 아가씨를 달래기 쉬웠다. 아무리 크게 삐쳐도 침대에서 조금만 비위를 맞춰 주면 금세 풀렸다.그런데 온서연과 엮인 뒤부터는 온서연한테 무슨 작은 일만 생겨도 윤예린이 끝도 없이 들볶았다.정말 지긋지긋했다.더구나 얼마 전 발표된 수이도 프로젝트에는 윤태성의 지원이 꼭 필요했다. 그런데 윤예린은 머릿속에 연애밖에 없는지, 육경찬이 몇 번이나 윤태성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뜻을 내비쳐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소귀에 경 읽기나 다름없었다.육경찬은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고개를 돌리자, 계단을 내려오는 문나영이 보였다.문나영은 걸음이 조금 비틀거렸고, 옆에 있던 친구가 그녀를 부축하고 있었다.육경찬은 주변을 훑어봤지만 온서연은 보이지 않았다.‘문나영이 서연을 혼자 집에 두고 자기만 놀러 나온 거야?’육경찬은 휴대전화를 꺼내 온서연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한참 울리고 나서야 연결됐다.“여보세요?”“온서연, 아직 나영이네 있어?”온서연이 짧게 그렇다고 대답한 뒤 물었다.“왜?”육경찬은 문나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의아해했다.“나영이는? 너희 저녁 먹었어? 같이 나와서 밥 먹을래?”“됐어. 나 요즘 막 일 시작해서 인터뷰 일정도 많고, 나영이도 자기 일이 있어. 다음에 먹자.”전화가 끊겼다.육경찬은 어두워진 화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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