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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봄밤, 젖어들다: Chapter 1 - Chapter 10

30 Chapters

제1화

예기치 못한 사고로 아이를 잃고 한 달이 지난 후 온서연은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었다....새벽 한 시.온서연이 또다시 악몽에 시달리다가 깨어났다.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아이가 꿈속에서 서성이고 있었다.화장실에 다녀오던 온서연의 눈에 침대 머리맡을 밝히는 빛이 들어왔다. 남편 육경찬의 휴대폰이었다.온서연은 홀린 듯 휴대폰을 집어 들어 잠금을 풀었다.‘공주는 잠꾸러기’라는 닉네임을 가진 이가 사진 몇 장을 보내왔다.턱을 괸 채 울상 섞인 눈빛으로 바 구석에 앉아 있는 젊은 여자 사진이었다. 그 앞에 형형색색의 술병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뒤이어 메시지들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그 여자한테 다 털어놓겠다며? 유산한 지도 벌써 한 달이나 지났는데 언제까지 기분 맞춰줄 거야?]온서연은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육경찬과 결혼한 지 이제 고작 석 달이었다.서둘러 대화 기록을 훑어봤다. 일상적인 대화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화제가 다름 아닌 온서연이었다.[나 사랑한다면서? 그럼 증명해 봐. 와이프 버리고 나랑 보름 동안 해외여행 갈 수 있어?]이 메시지가 온 날짜가 마침 그들의 결혼식 당일이었다.온서연은 그날을 생생히 기억했다. 육경찬이 미안한 얼굴로 그녀를 품에 안으며 회사에서 급한 해외 출장 명령이 떨어져 도저히 거절할 수 없다고 사과했었다.그녀는 육경찬의 커리어를 위해 신혼여행까지 취소했다.그 보름 동안 육경찬은 끼니때마다 연락을 거르지 않는 지극정성을 보였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시간 관리의 달인이 아닐 수 없었다.[그 여자 임신했다며? 이혼 안 할 생각이야?][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설마 애 태어날 때까지 기다리라는 건 아니지?][미안해. 나 때문에 정말 그 여자를 유산시킬 줄은 몰랐어. 몸 좀 회복되면 그때 이혼 얘기해.][경찬아, 사랑해. 기다릴게...]글자 하나하나가 보이지 않는 짐승이 되어 온서연의 살점을 뜯어내는 듯했다.휴대폰을 쥐고 있던 온서연은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고 참을 수 없는 통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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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배도현이 온서연을 부축해 차에 태웠다.검은색 벤틀리가 외부의 모든 소음을 차단했고 차 안이 따뜻하고 고요했다.온서연이 주변을 슬쩍 살폈다. 차 안에 그 어떤 여자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사모님은 무슨 일을 하세요?”배도현의 덤덤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졸업 전에 방송국 뉴스 앵커 제안을 받았어요.”“강영 방송국 말인가요?”“네. 하지만 연말에야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서 카메라 앞에 설 기회가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 주로 인터뷰 취재를 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몸이 좀 안 좋아서 며칠 휴가를 냈고요.”“취재라...”배도현이 그 단어를 곱씹었다.“몸은 좀 어떠세요?”온서연이 대답했다.“거의 다 나았어요. 다음 주엔 휴가를 끝내고 출근할 생각이에요.”배도현이 더 이상 묻지 않자 차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그때 온서연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 절친 문나영의 전화인 것을 확인하고는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서연아, 저녁에 시간 있어? 나랑 술자리 하나만 같이 가자. 나 취하면 네가 흑기사 좀 해줘.”온서연이 웃으며 말했다.“또 너희 아빠 회사 핑계 대고 네 짝사랑남한테 스폰서 붙여주려는 거지?”문나영이 투덜거렸다.“아니거든? 나 오늘 밤에 걔가 나오는 드라마 투자자들 싹 다 불렀어. 뭐 한울 그룹이니, 조안 그룹이니... 아휴, 만나서 얘기해. 얼른 준비하고 있어. 저녁에 데리러 갈게.”온서연은 배도현을 힐끗 돌아보고는 다시 한번 물었다.“장소는 어디야? 더 템포?”“응, 맞아. VIP 룸이야.”“알았어.”온서연은 승낙한 뒤 전화를 끊었다.“솔빛 아파트에 도착했어요.”배도현이 차를 세우고 온서연에게 시선을 돌렸다.“감사합니다, 대표님.”딸깍 소리와 함께 안전벨트가 풀렸다.온서연이 속을 알 수 없는 배도현의 눈빛에 넌지시 던지려던 미끼를 거두어들였다.“집 안으로 모시지는 않을게요. 좀 쉬고 싶기도 하고 저녁에 또 나가봐야 해서요. 다음에 제가 커피 한잔 대접할게요.”배도현이 눈썹을 살짝 치켜세우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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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바로 그때 배도현이 단호하게 손을 거두었다.“하지만 전 남의 가정에 끼어드는 취미 같은 건 없어요.”온서연의 치마 밑이 허전해졌다. 배도현이 그녀의 앞에서 보란 듯이 수도꼭지를 틀어 흐르는 물에 손을 꼼꼼하게 문질러 씻어냈다. 그리고 티슈를 뽑아 느릿느릿 물기를 닦았다.구깃구깃해진 휴지를 쓰레기통에 툭 던져 넣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가버렸다....다음 날.온서연은 정오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배달 음식을 시킨 뒤 주방으로 가 꿀물을 한 잔 타 마셨다.씻고 나온 그때 육경찬이 들어왔다. 손에 그녀가 시킨 배달 음식이 들려 있었다.“이제 일어났어?”“응. 어제 늦게 잤거든.”온서연이 물었다.“넌 어젯밤에 어디서 잤어?”육경찬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회사. 어젯밤에 밤새워 야근했더니 엄청 피곤하네.”예전이었더라면 온서연은 그를 걱정하면서 얼른 들어가 쉬라고 한 뒤 혼자 장을 봐서 밥을 차렸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육경찬을 힐끗 쳐다보기만 했다.“아, 회사 나가면 피곤한 건 당연하지 뭐.”육경찬이 미간을 찌푸렸다. 온서연에게서 어딘가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흘렀다.“오늘 저녁에 부사장님 아들 돌잔치가 있어. 너도 같이 가자.”온서연은 순간 마음이 아렸다.“나 아이 잃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남의 애 돌잔치에 가라고?”육경찬이 한숨을 내쉬며 다가가 온서연을 끌어안았다.“이젠 한 달도 더 지났어. 계속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안 돼. 삶은 계속되어야 하잖아. 서연아, 우리 앞으로 아이 또 가질 수 있을 거야. 내가 약속할게.”온서연의 눈빛이 차갑게 얼어붙었다.예전에 육경찬의 이런 듣기 좋은 말들을 철석같이 믿은 바람에 이토록 비참한 꼴을 당한 것이었다.하지만 이제 육경찬이 쳐놓은 다정함이라는 덫에서 빠져나오자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부사장 구선재는 가정적이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구선재가 마련한 자리에는 다들 항상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참석하곤 했다.연말에 회사의 부사장으로 승진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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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배도현이 한참 동안 온서연을 빤히 쳐다보더니 그녀의 손에 술잔을 쥐여주었다.“이게 부드러우니까 한번 맛봐요.”온서연이 조명 아래서 잔을 유심히 살폈다가 잔의 방향을 살짝 돌렸다.그러고는 배도현의 입술이 막 닿았던 자리에 자신의 붉은 입술을 포개어 가볍게 한 모금 마셨다.그 모습에 그가 침을 꿀꺽 삼켰다.온서연이 잔을 배도현에게 돌려주며 불쑥 말했다.“경찬이가 잔을 가지러 간 지 한참이 지난 것 같은데.”바로 그때 와인 셀러 안의 스피커를 통해 육경찬의 다정하고 비위 맞추는 듯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당연히 보고 싶지. 오늘 술자리가 있어서 그래. 좀 늦게 갈게, 응?”“착하지? 지금은 정말 자리를 비울 수가 없어. 오늘 밤엔 꼭 갈게. 약속해.”그와 내연녀의 통화 내용이 토씨 하나 빠지지 않고 스피커를 타고 연회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통화 내용을 귀에 담는 온서연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했지만 눈빛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그녀가 빤히 쳐다보자 배도현이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온서연 씨가 확실히 흥미로운 여자이긴 하네요.”온서연이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이 정도 흥미면 대표님께서 저 사람을 한동안 찬밥 신세로 만드시기엔 충분한가요?”배도현이 와인을 한 모금 머금었으나 목울대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 한 모금을 입안에 머금고 삼키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눈치 빠른 온서연이 먼저 배도현의 목을 끌어안고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배도현은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어떻게 나오는지 기다리는 듯했다.온서연은 남자의 입술 위를 맴돌며 부드럽게 빨아들이다가 새끼 고양이처럼 그의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면서 서서히 입술 사이를 파고들었다.순간 배도현이 그녀의 목덜미를 거칠게 감싸 쥐더니 입안의 와인을 강압적으로 밀어 넣었다.그런데 온서연이 미처 다 받아내지 못한 바람에 붉은 와인이 입가를 타고 턱을 지나 목덜미까지 흘러내렸다.그녀의 입술 사이로 참기 힘든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배도현이 들고 있던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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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대표님은 참 먹을 복도 많네요.”온서연이 찬사를 보내더니 문득 이렇게 말했다.“사실 방금 생각난 건데 우리 집에도 한 병 있거든요. 예전엔 잘 몰랐는데 오늘에서야 집에 있는 그 와인이 보르도 샤또 르 팽이라는 걸 알았네요. 이참에 따서 맛봐야겠어요.”온서연이 서재로 걸어가 스피커폰을 켜고 휴대폰을 책상 위에 두었다. 그러고는 레드 와인을 꺼내 병을 따고 잔에 따랐다.와인을 따르는 소리가 배도현의 귓가에 또렷하게 전해졌다.곧이어 온서연이 한 모금 마시더니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밤에 마신 거랑 좀 다른 것 같네요.”배도현의 목소리가 한결 가라앉았다.“디캔팅해야 해요.”그녀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아, 엄청 번거롭군요. 얼마나 디캔팅해야 오늘 밤과 같은 맛이 날까요?”“20분이요.”온서연이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그런데 전 졸려서 20분이나 못 기다리겠어요. 만약 대표님께서 어느 날 이 와인이 드시고 싶어지시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제가 디캔팅하고 기다릴게요.”“우리 집에도 있다고 분명히 말씀드렸는데요.”온서연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들었어요. 그럼 제가 미리 말씀드릴게요. 대표님이 도착했는데 와인이 디캔팅이 덜 되어 있으면 안 되니까요.”배도현의 숨결이 찰나의 순간 흐트러졌다.“온서연 씨, 지금 본인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긴 해요?”그녀가 되물었다.“그럼 대표님은 오늘 밤 본인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아시나요?”휴대폰 너머로 침묵이 흐르자 온서연이 웃음을 띤 목소리로 말했다.“배도현 씨, 잘 자요.”상대가 또 몇 초간 침묵하다가 말했다.“다시는 육경찬 씨의 휴대폰으로 제게 전화하지 마세요.”그러고는 온서연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온서연은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배도현의 번호를 검색한 다음 친구 추가를 했다.육경찬의 휴대폰에서 통화 기록을 지우고 휴대폰을 거실에 가져다 놓은 뒤에야 침실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한밤중, 육경찬이 온서연을 깨웠다.“여보, 나 위가 너무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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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온서연이 시선을 내리깐 채 멈추지 않고 계속 차를 음미했다. 이 결과를 진작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그 모습에 배도현의 눈동자에 서늘한 한기가 서렸다.“온서연.”그가 그녀를 부르는 말투에 약간의 짜증이 묻어났다.온서연이 찻잔을 내려놓자 정교한 도자기 잔이 테이블에 부딪히며 맑고 차가운 소리를 냈다.“대표님은 절 위해 뭘 해주실 수 있죠?”그녀는 고개를 들어 배도현의 눈에 서린 차가운 빛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보았다.1초 전까지만 해도 고혹적이던 다도인은 어느새 협상 테이블에 앉은 이성적이고 냉혹한 상대로 변해 있었다.배도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검은 눈동자에 흥미롭다는 빛이 스쳤다.그가 손을 뻗어 온서연의 야윈 턱을 쥐고 자신의 앞으로 바짝 끌어당겼다.“말해 봐요. 날 이용해서 뭘 하고 싶은지.”“육경찬이 모든 걸 잃게 만들어 주세요.”배도현이 실소를 터뜨렸다.“온서연 씨, 본인 남편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긴 해요?”“무슨 뜻이죠?”“내가 아무 이유 없이 내 밑의 유능한 직원을 내칠 리 없다는 건 둘째 치고 육경찬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만 얘기할게요. 올해 고작 스물여섯인데 곧 회사의 부사장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커요.”“평범한 집안에 아무런 배경도 없는 대학생이 졸업한 지 불과 4년 만에 남들은 평생 오르지 못할 위치까지 올라갔단 말이에요. 왜 그런지 알아요?”온서연이 추억으로 인해 숨길 수 없는 감정을 가리려 시선을 내리깔았다.“경찬 씨는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똑똑하고 진취적인 사람이에요. 대학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았고 온갖 대회에서 우승을 휩쓸었죠. 독학으로 2개 국어까지 마스터해서 외교 쪽으로 나갈 뻔도 했고요.”온서연은 캠퍼스에서 기세가 등등하던 육경찬의 모습을 떠올렸다. 머리카락 한 올까지 청춘의 패기로 가득했던 그는 오직 그녀에게만 다정하고 헌신적이었다.“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성격도 섬세해서 눈치도 빠르고 말이나 행동에 빈틈을 보이는 법이 없죠.”배도현이 이어 말했다.“만 명 중 하나 나올까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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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온서연이 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미 다음 날 오전이었다.화장실에서 간단히 씻고 나온 그때 마침 배도현이 들어왔다.“깼어? 아직도 어지러워?”배도현의 갑작스러운 반말에 온서연은 흠칫했다가 느릿느릿 침대로 돌아가며 대답했다.“어지러워요. 토할 것 같아요.”“가벼운 뇌진탕이야. 가드레일에 조금만 더 세게 박았어도 우린 비즈니스 같은 거 할 필요 없이 바로 네 장례식을 할 뻔했어. 아, 말 편하게 해도 괜찮지?”“그러세요.”온서연은 배도현이 그녀의 작은 테이블 위에 아침 식사를 내려놓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가 눈을 내리깔자 검은 눈동자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입가에 미소가 살짝 번졌다.“대표님,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그가 그녀에게 처음 건넨 농담이 꽤 독설적이었다.막 전복죽을 열려던 배도현이 그 말에 숟가락을 내려놓고 그녀를 빤히 응시했다.“온서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잠시 멍해진 온서연은 무슨 뜻인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바로 그때 배도현이 그녀의 뒷머리를 감싸 쥐고 입을 맞췄다.“읍...”온서연의 신음이 남자의 입술에 온전히 삼켜졌다.배도현은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아 자신에게 밀착시키고는 이 감각을 똑똑히 기억하라는 듯 거칠고 사납게 키스했다.갑작스러운 키스에 본래도 어지럽던 온서연의 머릿속이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머릿속이 새하얘진 그녀는 배도현의 가슴팍에 손을 얹은 채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반항을 멈추었다.고분고분 눈을 감고 그가 멋대로 그녀를 점령하도록 내버려 두었다.한참이 지난 후 문밖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온서연이 피하려 하자 배도현은 그녀를 놔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미친 듯이 파고들며 입을 맞췄다.온서연의 입술 사이로 애원하는 듯한 소리가 새어 나오고 나서야 배도현은 그녀를 놓아주었다.그녀가 숨을 헐떡이면서 물기를 머금은 듯 촉촉해진 두 눈으로 당황해하며 문 쪽을 쳐다봤다.검은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서류를 든 채 공손하게 문가에 서 있었다.온서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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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바람을 피웠다고?”온서연은 유산했다는 말은 차마 꺼내지 못했다. 안 그러면 문나영의 성격에 당장이라도 칼을 들고 쫓아갈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바람을 피웠다는 말만으로도 문나영은 이미 휴대폰을 꺼내 들어 육경찬을 손봐줄 사람을 찾으려 하고 있었다.“짐승만도 못한 자식! 하도 너한테 잘하길래 마음에 들어 했더니 감히 바람을 피워?”“이제 결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결혼식 때 내 앞에서 가슴을 팍팍 치면서 네가 눈물 흘리는 일 절대 없게 하겠다고 맹세했었는데 그게 다 개소리였어?”“나 문나영이 만만해 보여? 감히 내 절친을 건드려? 아주 황천길도 줄 못 서게 만들어버릴 거야!”“나영아, 나영아! 제발 진정해.”온서연이 다급하게 문나영의 손을 붙잡았다.“네가 사람을 시켜서 패준다고 해도 소용없어. 오히려 경계심만 키워줄 뿐이야. 만약 그 틈을 타서 재산을 빼돌리고 증거라도 없애버리면 그땐 정말 나만 억울하게 당하는 거라고.”문나영이 씩씩거리며 숨을 몰아쉬다가 한참 만에야 겨우 진정했다.“넌 어릴 때부터 주관이 뚜렷했으니까 네 말 들을게. 이 일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야?”“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잖아. 그래서 네 도움이 필요해. 그 여자가 누군지 반드시 알아야겠어.”“알았어. 나한테 맡겨.”문나영은 병실을 나설 때까지도 육경찬을 저주하면서 거친 욕을 퍼부었다....깊은 밤.온서연이 비몽사몽 잠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등 뒤로 서늘한 기운이 훅 끼쳤다.악몽에서 화들짝 깨어난 그녀는 누군가 자신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여보... 여보...”육경찬이 그녀를 부르며 목덜미에 마구잡이로 입술을 들이밀었다. 지독한 술 냄새가 두 사람을 덮쳤다.온서연은 단숨에 육경찬의 손을 뿌리쳤다.“이거 놔!”허둥지둥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채 앉기도 전에 다시 육경찬의 품으로 끌려 들어갔다.“온서연, 내가 해냈어. 너랑 함께할 수만 있다면 난 뭐든 다 할 수 있어...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너만 있으면 돼... 서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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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온서연이 부드러운 입술을 달싹였다.“배...”‘도현’이라는 이름을 채 부르기도 전에 입술이 틀어막혔다.배도현이 온서연의 턱을 쥔 채 벌을 주려는 것처럼 미친 듯이 키스를 퍼부었다. 그녀의 몸속 공기를 모조리 빨아들일 기세였다.억압적이고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온서연은 문득 신혼 첫날밤이 떠올랐다.그날 밤, 그녀는 육경찬과 처음으로 밤을 보냈다.하필 그날 그녀는 만취해 있었다. 부서진 기억과 술이 깬 후의 전신 근육통을 제외하면 이 방면에 대한 경험은 사실상 전무했다.온서연의 머릿속에 육경찬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자 수치심이 그녀를 숨 막히게 옭아맸다.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이미 배도현에 의해 밖의 푹신하고 커다란 침대 위로 내동댕이쳐진 후였다.긴장한 온서연이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고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예상했던 미친 짓은 일어나지 않았다.배도현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그녀를 보더니 몸을 일으켜 샤워 가운을 걸치고 발코니로 나갔다.침대에서 잠시 멍하니 있던 온서연은 말없이 일어나 옷을 입고 그에게 다가갔다.그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서도 그의 눈에 깃든 짜증을 눈치채기 어렵지 않았다.온서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남자들도 이런 쪽에 결벽증이 있다는 거 이해해요. 사실 도현 씨도 후회할 기회가 있어요. 지금이라도 무를 수 있다고요.”배도현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가볍게 웃었다.“나한테 결벽증이 있다고? 네가 유부녀라는 걸 오늘 처음 안 것도 아닌데.”“그럼...”배도현이 말없이 담배만 피우며 그녀를 고요히 응시하다가 한참 후에 체념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다음에 다시 봐. 일찍 자.”그러고는 침실을 나갔다.온서연이 홀로 침대로 돌아왔다.그녀는 이런 상황이라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거라 생각했지만 배도현의 침대가 너무 푹신해서인지 아니면 이곳이 육경찬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라서인지 졸음이 쏟아져 내렸다.온서연이 깊은 잠에 빠져들 무렵 얼굴이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볼을 비비적거리곤 이불을 여미며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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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미안. 전화 좀 받을게.”윤예린이 탕비실로 걸어가며 다정하게 전화를 받았다.“나 보고 싶어? 그럼 이따 저녁에 나 데리러 올 거야?”민하린이 고준우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거봐. 내가 남친 있을 거라고 했지? 오늘 좀 늦게 퇴근하면 누군지 볼 수 있을지도 몰라.”두 사람이 낄낄거리며 밖으로 나간 뒤 온서연은 사무실에 한참을 더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웅웅.온서연의 휴대폰이 미친 듯이 진동했다. 발신자 창에 뜬 육경찬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온서연, 너 출근했어? 왜 나한테 한마디 상의도 안 했어?”육경찬의 목소리에 다급함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온서연이 몇 초간 침묵하다가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출근하는데 무슨 상의가 필요해? 게다가 너도 내가 집에 틀어박혀서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느니 차라리 밖으로 좀 나돌아다니길 바랐잖아.”“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얼마 전에 교통사고도 났잖아. 좀 더 쉬는 게 어때?”온서연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번졌지만 말투만큼은 한없이 나긋나긋했다.“그렇게 걱정이 돼? 그럼 오늘 퇴근할 때 데리러 와. 내 차는 수리 맡겼거든.”“뭐?”“안 돼? 어젯밤에 계약 잘 성사됐다고 나랑 같이 나가서 축하하고 싶다길래 미리 레스토랑도 예약해 뒀는데.”육경찬이 기억을 더듬는 듯 잠깐 머뭇거렸다.“내가 어젯밤에 그런 말을 했어?”“응, 병실에서 그랬잖아. 그런데 너무 취해 있더라. 아침에 옷 갈아입으러 집에 갔을 때도 안 깨고 자고 있던데.”육경찬이 멋쩍게 웃었다.“내가 어지간히 취했었나 보네. 그런데 어쩌지? 오늘 밤엔 야근해야 해서 같이 축하하긴 힘들 것 같아. 겨우 따낸 계약인데 실수하면 안 되잖아. 레스토랑은 취소하는 게 좋겠어.”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육경찬의 거짓말에 온서연이 옆으로 늘어뜨린 손을 꽉 쥐었다.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기만당했다는 분노가 활화산처럼 끓어올랐지만 온서연은 그 감정을 억지로 짓눌러야만 했다.“온서연? 화났어? 다음엔 꼭 보상할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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