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그 겨울,나는 그를 기다리게 되었다: Bab 21 - Bab 30

37 Bab

제 21화 숲을 가른 활

오후의 햇살이 창문을 비스듬히 타고 들어왔다.따스한 빛이 낡은 나무 바닥 위에 길게 내려앉았고, 창가에 놓인 작은 화분의 잎사귀 끝에는 옅은 금빛이 맺혀 있었다.세린은 식탁에 앉아 약초를 손질하고 있었다.마른 잎을 하나씩 살피고, 상한 부분을 잘라내어 작은 바구니에 담았다. 손끝이 움직일 때마다 은은한 풀 향이 집 안에 퍼졌다.맞은편 창가에는 진안이 서 있었다.그는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세린은 한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진안.” “말하시오.”“또 나가려고요?”진안이 천천히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그래.” 짧은 대답이었다.세린은 손에 들고 있던 약초를 내려놓았다.“어제 그 길로 가는 거죠?” “그렇소.”“아직도 그 사람을 찾고 있어요?”진안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그의 시선이 다시 창밖으로 향했다.“확인할 것이 있소.”“뭔가 찾았어요?” “아직은.”세린의 눈썹이 살짝 내려갔다.“그런데 혼자 가려고요?”“혼자가 편하오.”“진안은 항상 그렇게 말하잖아요.”“틀린 말은 아니오.”세린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그래도 조심해요.”진안이 그녀를 바라봤다.“걱정하지 마시오.”“그 말을 하는 사람이 제일 걱정되는데.”세린이 작게 중얼거리자 진안의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곧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왔다.그는 의자에 걸어둔 외투를 집어 들었다.허리에 검을 찼다.세린의 시선이 검으로 향했다.“검까지 가져가요?”“필요할 수도 있소.”그 한마디에 세린의 표정이 굳었다.진안은 그런 그녀를 잠시 바라봤다.“오래 걸리지 않을 거요.”“정말이죠?” “그래.”세린은 더 말하지 않았다.진안이 문을 향해 걸어갔다.문을 열자 오후의 바람이 머리카락 끝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는 밖으로 나가기 전 잠시 뒤를 돌아봤다.세린과 눈이 마주쳤다.“문을 잠그시오.” “네.”“내가 돌아올 때까지 혼자 나가지 말고.”세린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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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2화 사라진 발자국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창밖으로 내려앉은 달빛이 마당과 지붕을 희미하게 적셨다. 바람은 느리게 처마 끝을 스쳐 지나갔고, 멀리 숲에서는 밤의 고요를 깨뜨리지 않을 만큼 작은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다.세린은 식탁 앞에 앉아 약초를 하나씩 정리하고 있었다.낮 동안 말려둔 잎을 손끝으로 살피고, 상태가 좋은 것들은 한쪽에 가지런히 모았다.하지만 손길은 평소보다 느렸다.자꾸만 시선이 식탁 한쪽으로 향했다.그곳에는 낮에 진안이 가져온 화살이 놓여 있었다.날카롭게 벼려진 화살촉.곧게 뻗은 화살대.그리고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손에 쥔 채 돌아온 진안.세린은 낮에 들었던 그의 짧은 말을 떠올렸다.숲에서 날아왔소.그 짧은 말이 이상할 만큼 마음에 걸렸다.세린은 화살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정말 아무 일도 아닌 걸까.”그때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세린이 고개를 돌렸다.진안이 방에서 나와 있었다.그의 시선이 식탁 위로 향했다.“아직 안 잤소?”“조금 더 정리하려고요.”진안은 대답하지 않고 화살을 바라봤다.세린도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저거…… 정말 아무것도 아니죠?”“그렇게 말했소.”“그런데 누가 진안을 향해서 화살을 쐈잖아요.”진안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다.“그래서?”세린은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무섭지 않아요?”“두렵지는 않소.”너무 담담한 대답이었다.세린은 그를 바라보다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진안은 정말 이상해요.”“어째서 그렇소.”“그런 일을 겪고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요.” 진안은 잠시 말이 없었다.그는 식탁 앞으로 다가가 화살을 집어 들었다.손가락이 화살대를 천천히 훑었다.“두려워할 이유가 없소.” “왜요?”“상대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세린의 표정이 굳었다.“그게 더 무서운 거 아닌가요?”진안은 대답하지 않았다.화살촉을 바라보던 그의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깊어졌다. 특별한 표식은 없었다.겉으로는 평범한 화살이었다.하지만 이상했다.화살이 날아온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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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화 평온한 시간

아침 햇살이 마당 위로 천천히 번지고 있었다.밤새 머물던 서늘한 기운은 아직 땅 가까이에 남아 있었지만, 담장 너머로 스며든 햇빛은 그 위에 얇은 온기를 덧입히고 있었다.세린은 말 위에 올라탄 채 고삐를 가볍게 잡고 있었다.말의 갈기가 아침 바람을 따라 부드럽게 흩날렸다.세린은 한 손으로 그 갈기를 정리해 주었다.“괜찮아?” 말이 낮게 투레질했다.세린은 작게 웃었다.“많이 좋아졌네.”그 말은 처음 만났을 때와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몸 곳곳에 상처가 남아 있었고, 걷는 것조차 힘겨워했다.세린은 그 말을 발견한 날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차가운 길가에 홀로 서 있던 모습.거칠게 떨리던 숨.눈빛마저 힘없이 가라앉아 있던 모습.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세린은 결국 말을 데려와 마구간에 눕히고 상처를 씻겨 주었다.약초를 달이고 붕대를 갈아주며 며칠을 보냈다.그러다 진안을 만났다.눈 덮인 길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던 남자.그를 집으로 데려온 뒤부터 세린의 하루는 완전히 달라졌다. 진안의 상처를 돌보고, 그를 숨기고, 마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는 동안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그 탓에 이 말에게는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했다.세린은 그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그래서 오늘은 직접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마구간에서 말을 데리고 나왔다.말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또각. 또각.말발굽이 마당의 흙을 가볍게 두드렸다.세린은 걸음걸이를 유심히 살폈다.한쪽 다리를 피하던 모습도 거의 사라져 있었다.“아프지는 않아?”말은 대답 대신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그렇구나.” 세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때 집 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세린이 고개를 돌렸다.진안이 문밖으로 나왔다.그는 마당에 서 있는 세린과 말을 바라봤다.그리고 곧 시선이 말의 다리로 향했다.진안은 아무 말 없이 가까이 다가왔다.세린은 고삐를 조금 당겨 말을 멈췄다.“많이 좋아졌어요.”진안은 대답하지 않고 말의 걸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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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4화 먼 길을 향하여

햇살이 마당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세린은 말의 앞에 서서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봤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상처 때문에 제대로 걷지 못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단단하게 땅을 딛고 선 네 다리가 한층 안정되어 있었다.세린은 조심스럽게 다리를 살폈다.붓기도 거의 가라앉았다.상처가 남긴 흔적만 희미하게 자리하고 있었다.“정말 많이 좋아졌네.”세린이 말의 목을 쓰다듬었다.말은 그녀의 손바닥에 머리를 살짝 기대왔다.세린은 작게 웃었다.“그래도 아직 완전히 나은 건 아니니까 조심해야 해.”오늘 세린이 가려는 곳은 가까운 마을이 아니었다.집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넓은 마을.그곳에는 이 근방에서 가장 큰 마구간이 있었다.말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는 사람도 있었고, 상처 치료에 필요한 약재도 구할 수 있었다.처음에는 가까운 곳에서 간단히 확인할 생각이었다.하지만 며칠 동안 말을 돌보지 못했던 만큼, 이번에는 제대로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다.세린은 안장끈을 다시 확인했다.고삐도 손으로 잡아당겨 보았다.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그때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세린이 고개를 돌렸다.진안이 집 밖으로 나왔다.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말에게 향했다.그리고 곧 세린에게로 옮겨왔다.“준비가 끝난 것이오.” “네.”세린이 고개를 끄덕였다.“오늘은 이 말을 멀리 있는 마을의 마구간에 데려가려고요.” 진안의 눈빛이 조금 굳었다.“멀리 있는 곳이라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오.”“알아요.” “굳이 그곳까지 가야 하오?”세린은 말의 갈기를 천천히 정리했다.“제대로 확인하고 싶어요.”진안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세린은 잠시 손을 멈추었다.“며칠 동안 이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도 못했잖아요.”“당신이 해야 할 일은 아니오.”“그래도 제가 처음 데려온 말이에요.”세린은 부드럽게 웃었다.“끝까지 확인해주고 싶어요.”진안의 시선이 말의 다리로 향했다.그는 잠시 말의 상태를 살폈다.“아직 무리해서 달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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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5화 노을이 닿는 곳

숲에는 아직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부러진 나뭇가지가 가볍게 흔들렸고, 바닥에 내려앉은 낙엽은 발끝에 닿을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조금 전까지 팽팽하게 조여 있던 공기는 어느새 서서히 풀리고 있었다.하지만 세린의 심장은 아직 진정되지 않았다.손끝에 남은 긴장감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세린은 말 옆에 서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말 역시 거친 숨을 내쉬며 가만히 서 있었다.세린은 곧 말의 목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괜찮아……?” 말이 귀를 살짝 움직였다.세린은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조금 전까지 자신을 태우고 숲을 달렸던 말이었다.놀란 기색이 역력했지만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보이지 않았다. 세린은 천천히 말의 앞다리와 뒷다리를 살폈다. 발굽 주변에 이상은 없는지 확인하고, 몸에 새로운 상처가 생기지는 않았는지도 꼼꼼하게 살폈다.손끝이 갈기 사이를 지나갈 때마다 말은 조금씩 긴장을 풀었다.세린은 말의 이마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정말 잘해줬어.”말이 낮게 울었다.그 소리가 이상하게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세린은 잠시 눈을 감았다.조금 전까지 눈앞을 스쳐 지나가던 위험한 순간들이 떠올랐다. 갑자기 울리던 소리.급하게 방향을 틀던 말.숨 돌릴 틈도 없이 이어졌던 긴장.그 모든 것이 아직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숲은 다시 조용했다.세린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조금씩 붉게 물들고 있었다.해가 기울고 있었다.이곳에서 더 머무를 수는 없었다.세린은 고삐를 손에 쥐었다. “가자.”말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세린은 안장에 올라탔다.말의 움직임에 맞춰 몸을 가볍게 움직인 뒤, 조심스럽게 고삐를 잡았다.“천천히 가자.”말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또각. 또각.말발굽이 흙길을 밟는 소리가 숲에 잔잔하게 울렸다. 세린은 한동안 뒤를 돌아보았다.자신이 지나온 길이 나무 사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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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6화 청하

넓은 마을, 청하.세린은 말의 고삐를 느슨하게 잡은 채 천천히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길게 이어진 기와지붕이었다.오랜 세월 비바람을 견뎌낸 듯 기와에는 옅은 빛이 내려앉아 있었고, 처마 끝에는 작은 풍경이 매달려 있었다. 겨울바람이 스칠 때마다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딸랑.그 소리가 마을의 소란스러운 기척 사이로 조용히 흘러갔다.청하는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큰길 하나를 중심으로 여러 골목이 갈라져 있었고, 골목마다 크고 작은 가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비단을 파는 가게도 있었고, 약재를 내놓은 가게도 있었다. 나무로 만든 상자 안에는 말린 과일과 곡식이 가지런히 담겨 있었고, 겨울에 입는 두꺼운 옷과 털가죽도 가게 앞에 걸려 있었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짐을 가득 실은 수레가 돌로 다져진 길을 지나갈 때마다 바퀴가 덜컹거렸고, 상인들은 손님을 부르며 목소리를 높였다.“이쪽으로 와 보시오! 먼 곳에서 가져온 비단이오!”“따뜻한 만두가 막 나왔습니다!”곳곳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따뜻한 음식 냄새도 바람을 타고 흘러왔다.세린은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낯선 곳이었다.하지만 불편하지는 않았다.청하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소리가 가득했다.아이들이 어른의 손을 잡고 길을 걷고 있었고, 나이 든 노인은 가게 앞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젊은 상인은 수레에 쌓인 물건을 하나씩 내려놓았고, 어느 집 앞에서는 여인이 빨래를 걷으며 옆집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평범한 하루였다.그러나 세린에게는 그 평범한 모습 하나하나가 새롭게 느껴졌다. “여기는 여전히 북적거리네.”세린이 작게 중얼거렸다.그때 길가에서 장작을 옮기던 노인이 세린을 알아보았다. “어머, 세린 아니니?”세린이 고개를 돌렸다.“아, 안녕하세요.”노인은 반갑게 웃었다.“오랜만이구나.”“네. 잘 지내셨어요?”“그럼. 너는 잘 지냈고?”“저도 잘 지냈어요.”짧은 인사였다.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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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7화 지나가는 사람들

청하의 아침은 느리게 시작되는 듯하면서도 어느 순간부터 빠르게 활기를 띠었다.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아직 골목 사이에 머물고 있었지만, 해가 지붕 위로 올라오자 거리는 하나둘 사람들의 목소리로 채워지고 있었다. 가게마다 닫혀 있던 나무문이 열리고, 상인들은 밖으로 물건을 꺼내 놓았다.따뜻한 국물이 담긴 그릇에서는 하얀 김이 피어올랐고, 갓 구운 빵 냄새와 말린 약재의 향이 차가운 공기 사이로 섞여 흘러갔다.세린은 천천히 길을 걸었다.마구간에 맡겨둔 말은 잘 쉬고 있었다. 며칠 동안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탓에 걱정했지만, 마구간 주인이 말이 안정되었다고 알려주어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당장 돌아가야 할 이유도 없었다.그래서 세린은 오랜만에 청하의 거리를 조금 둘러보기로 했다.그녀는 시장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사람들이 오가는 사이를 지나며 이곳저곳을 살폈다.옷감을 파는 가게 앞에는 겨울에 입을 두꺼운 옷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고, 그 옆에는 작은 장신구를 파는 노점이 있었다. 햇빛을 받은 금속 장식들이 반짝일 때마다 세린의 시선도 잠시 그쪽으로 향했다.“이것도 꽤 예쁘네.”세린이 작은 머리 장식을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하지만 손을 뻗지는 않았다.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약재를 파는 가게가 보였다.세린은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멈췄다.말린 풀과 뿌리, 나무껍질이 종류별로 나뉘어 놓여 있었다.익숙한 약초도 있었고, 평소에는 쉽게 보기 어려운 것도 있었다.세린은 하나씩 살펴보다가 필요한 약재 몇 가지를 골랐다.“이건 얼마예요?”“그건 세 냥이야.”“조금만 깎아주시면 안 될까요?”상인이 웃었다.“세린 아가씨는 여전하구먼.”“제가 자주 오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기억하세요?”“말을 잘 다루는 아가씨가 흔한 줄 아나?”세린도 작게 웃었다.“그럼 조금만 싸게 해주세요.”결국 상인은 조금 값을 내려주었다.세린은 약재를 받아 품에 넣고 다시 길을 나섰다.청하는 넓었다.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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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8화 청하의 겨울

청하의 오후는 햇빛이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있었다.아침부터 차갑게 내려앉아 있던 공기는 여전히 겨울의 기운을 품고 있었지만, 하늘 높이 떠오른 햇살이 지붕과 돌길을 비추면서 거리는 한결 따뜻해 보였다.세린은 천천히 시장을 벗어나 다른 골목으로 향했다.어제와 오늘 사이에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사람들은 여전히 바쁘게 오갔고, 가게 앞에는 물건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누군가는 수레를 끌고 지나갔고, 누군가는 품에 장을 본 물건을 안은 채 집으로 향했다.그 평범한 모습이 세린에게는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졌다.한동안 주변에 신경 쓸 일이 많았던 탓인지, 이렇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 조금은 낯설면서도 좋았다.세린은 골목 끝에 있는 작은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나무로 만든 작은 장식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새 모양의 장식도 있었고, 꽃잎을 닮은 조각도 있었다. 솜씨 좋은 사람이 하나하나 깎아 만든 듯한 것들이었다.세린은 그중 작은 나무 토끼를 집어 들었다.“귀엽네.”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니 생각보다 정교했다.귀 끝에는 작은 무늬까지 새겨져 있었다.가게 주인이 웃으며 말했다.“마음에 드나?”“네. 잘 만드셨어요.”“직접 만든 거라네.”세린은 다시 토끼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다음에 하나 사야겠어요.”“다음에 오면 남아 있을지 모르겠구먼.”세린은 웃으며 가게를 나왔다.그렇게 골목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많은 길에서 조금 물어나 있었다.건물 사이로 작은 물길이 보였다.청하를 가로지르는 물길이었다.겨울이라 물의 흐름은 여름보다 느려 보였지만, 햇빛을 받은 물결은 반짝이며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세린은 다리 위에 올라섰다.난간에 손을 올리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물 위에는 작은 나뭇잎 하나가 떠 있었다.바람이 불 때마다 천천히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다시 물살을 따라 흘러갔다. 세린은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참 조용하네.”혼잣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집에 있을 때는 조용함이 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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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화 돌아가는 길

청하의 아침은 느리게 밝아오고 있었다.겨울의 해는 늦게 떠올랐고, 아직 골목 곳곳에는 새벽의 서늘한 기운이 남아 있었다. 기와지붕 위에 내려앉은 서리는 희미한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빛났고,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은 차가운 바람이 스칠 때마다 맑은 소리를 흘려보냈다.세린은 숙소의 문을 나서며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오늘은 돌아가는 날이었다.청하에 온 목적은 마구간에 맡겨 두었던 말을 데려오는 것이었다.처음 청하에 올 때 타고 왔던 말도 며칠 동안 마구간에서 쉬게 해 두었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이곳에 맡겨 두었던 말은 다리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조금 더 오래 쉬게 했다.이제 두 말 모두 데려갈 때가 되었다.세린은 옷깃을 여미고 마구간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아침의 청하는 어제와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어제는 장터를 오가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수레가 지나가는 소리로 가득했지만, 지금은 하나둘 문을 여는 가게들 사이로 조용한 기척만이 흐르고 있었다. 한 상인이 가게 앞의 눈을 쓸어내고 있었고, 길모퉁이에서는 따뜻한 죽을 파는 노점에서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세린은 그 모습을 천천히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어제 하루 종일 걸었던 거리였다.어쩐지 벌써 익숙해진 것 같았다.하지만 오늘은 다시 떠나야 했다.마구간에 가까워질수록 말 울음소리가 들려왔다.히이잉.ㅈ세린은 그 소리에 걸음을 조금 빨리했다.마구간 문을 열자 따뜻한 건초 냄새와 함께 여러 마리 말의 움직임이 느껴졌다.“어서 오시오.”마구간 주인이 세린을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오늘 말을 데려가려는 게요?”“네. 이제 돌아가려고요.”“그럼 두 마리 모두 준비해 두겠소.세린은 고개를 끄덕이고 안쪽으로 들어갔다.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자신이 청하까지 타고 왔던 말이었다.며칠 동안 제대로 쉬었기 때문인지 처음 왔을 때보다 훨씬 편안한 모습이었다. 세린이 다가가자 말은 귀를 쫑긋 세우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잘 있었어?”세린이 목을 쓰다듬자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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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0화 기울어진 햊빛 아래

청하를 떠난 세린은 두 마리의 말과 함께 익숙한 길을 따라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한 마리는 세린이 직접 올라탄 말이었고, 다른 한 마리는 곁에서 나란히 걸으며 고삐를 잡아 이끌고 있었다. 며칠 전까지 청하의 마구간에서 치료를 받던 말은 이제 제법 편안한 걸음을 되찾았고, 세린이 청하로 올 때 타고 왔던 말 역시 충분히 쉬어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을 따라왔다.세린은 두 말의 상태를 번갈아 살폈다.“조금만 더 가면 쉬게 해줄게.”말이 낮게 숨을 내쉬었다.세린은 그 소리를 들으며 작게 웃었다.청하에서 보낸 며칠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다.처음에는 다친 말의 상태만 확인하고 곧장 돌아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둘러본 청하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었고, 골목마다 작은 가게와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이 가득했다.낡은 기와지붕 위에는 겨울 햇빛이 내려앉아 있었고, 시장에서는 따뜻한 김이 피어올랐다. 작은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은 차가운 빛을 머금은 채 조용히 흘렀고, 바람이 불 때마다 처마 끝에 매달린 작은 풍경이 맑은 소리를 냈다.세린은 그 모습을 떠올리다가 문득 미소를 지었다.돌아가면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청하가 얼마나 넓었는지.시장에 어떤 가게가 있었는지.마구간에서 오랜만에 만난 말이 자신을 알아본 듯 고개를 내밀었던 일도.그리고 길을 걷다가 우연히 보았던 작은 다리와 겨울빛으로 물든 골목의 모습도.세린은 무심코 앞을 바라보았다.“진안도 그런 곳을 좋아하려나…….”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뒤 세린은 조금 멋쩍은 듯 입을 다물었다.왜 하필 진안이 먼저 떠올랐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그저 집에 돌아가면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세린은 고삐를 살짝 움직였다.말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타박. 타박.말발굽이 겨울의 마른 길을 밟을 때마다 낮고 규칙적인 소리가 울렸다.주변은 한낮보다 조용해져 있었다.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차가웠고, 나뭇가지에 남아 있던 희미한 눈가루가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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