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창문을 두드리던 눈보라가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새벽녘까지 거칠게 울부짖던 바람도 어느 순간 잠잠해졌고, 마을에는 오랜만에 고요한 아침이 찾아왔다.세린은 이른 시간에 눈을 떴다.창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하얀 눈이 마을을 전부 덮고 있었다.지붕도, 담장도, 나무도.어제까지만 해도 갈색이었던 길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세린은 잠시 그 풍경을 바라봤다.눈이 내린 뒤의 마을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마치 세상이 잠시 숨을 죽인 것 같았다.세린은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발을 내딛자 푹신한 눈이 발목까지 올라왔다.“많이도 내렸네.”세린은 작은 한숨을 내쉬며 삽을 들었다.눈을 치우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뒤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세린이 고개를 돌렸다.진안이 문가에 서 있었다.아직 몸이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니었지만, 처음 발견했을 때와 비교하면 눈에 띄게 상태가 좋아져 있었다.세린은 삽을 내려놓았다.“왜 나왔어요?”진안은 주변을 바라봤다.“눈이 그쳤소.”“그건 저도 알아요.” “…….”“아직 몸 안 좋잖아요.”“움직일 수 있소.”“움직일 수 있는 거랑 움직여도 되는 건 다른 거예요.”진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세린은 그를 바라보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일단 거기 서 있어요.”“명령이오?”“부탁이에요.”진안은 잠시 세린을 바라봤다.그리고 아무 말 없이 마당 한쪽에 서 있었다.세린은 다시 삽을 들었다.한 번, 두 번.눈을 밀어낼 때마다 하얀 눈이 한쪽으로 쌓였다.진안은 그런 세린을 조용히 바라봤다.작은 체구로 자신이 하기에도 번거로운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고 있었다.얼굴에는 추위 때문에 붉은 기운이 올라와 있었다.한참 뒤 세린이 이마에 맺힌 땀을 소매로 닦았다.“휴…….” 진안이 말했다.“그만하시오.”세린이 고개를 들었다.“왜요?” “몸이 상하겠소.”“저는 괜찮아요.”“아까 그대가 했던 말과 같군.
Last Updated : 2026-09-06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