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친정 아빠인 줄 알고 시아버지를 곤돌라에 태운 상간녀: Chapter 1 - Chapter 10

10 Chapters

제1화

“아무 문제도 없겠어? 위에 계신 분은 우리 박 대표님 손님이라고.”작업반장 성기호의 외침이 거센 바람에 찢겨서 사방으로 흩어졌다.하지만 아무도 성기호를 신경 쓰지 않았다.작업용 곤돌라는 기준치를 한참이나 초과한 속도로 하늘로 치솟았다.시아버지 박진해는 갑작스러운 무중력감에 온몸에 힘이 풀리면서, 녹슨 철판 위에 그대로 두 무릎을 꿇었다.“아버님, 괜찮으세요?”나는 황급히 달려가 시아버지를 부축했다.시아버지의 얼굴은 이미 시퍼렇게 질려 있었다.입술과 손이 떨렸고, 심지어 동공까지 떨리고 있었다.그 떨림은 심장 통증이 발작할 때만 나타나는 특유의 전신 경련이었다.바람이 사방에서 들이치면서 작업용 곤돌라가 격렬하게 흔들렸다.“비상 정지! 비상 정지 버튼 눌러!”나는 작업 바구니 구석에 있는 빨간 버튼을 두드렸다.한 번 눌렀지만, 반응이 없었다.두 번을 눌러도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쪼그리고 앉아서 살펴보니 제어 케이블이 싹둑 잘려 있었다.나는 난간을 붙잡고 아래를 향해 비명을 질렀다.“심아린! 너 미쳤어?”30미터 상공에 매달린 나는 심아린이 파라솔 아래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여유롭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시아버지의 호흡은 마치 풀무질을 하듯 거칠어졌다.나는 이런 소리를 중환자실에서 단 한 번 들은 적이 있었다.심장 우회 수술을 받고 사흘째 되던 날, 간신히 목숨을 건진 그 밤이었다.나는 휴대폰을 꺼내서 박연우에게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몇 번 울리기도 전에 박연우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나는 거의 울부짖듯 소리쳤다.“연우야! 빨리 사람 보내서 작업용 곤돌라 멈춰! 아버님 심장병이 도지셨어!”전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아린이한테 들었어.][네가 그 가난한 아버지 데리고 공사장에 와서, 행패를 부리고 떼를 쓴다며?][바람 좀 쐬게 하는 게 뭐가 그렇게 큰일이야?][또 쓸데없이 난리 치면 다음 달 생활비는 꿈도 꾸지 마.]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전화가 끊어졌다.아래에서 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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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진짜 재수 없네. 내 신발까지 더러워졌잖아.”심아린은 허리를 굽혀 신발 바닥을 보더니, 혐오스럽다는 듯이 땅에 문질렀다.시아버지는 위에서 그 모습을 똑똑히 지켜봤다.시아버지의 몸이 심하게 경련하기 시작했고,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아버님, 제가 내려가서 여분의 약을 가져올게요.”내가 곧장 몸을 돌려 곤돌라 바깥쪽의 철제 와이어를 붙잡으려고 했다.그러자 시아버지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시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내 손목을 죽어라 움켜쥐었고, 그 힘은 일흔 살의 환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시아버지는 내가 위험을 무릅쓰길 원하지 않았다.그런데 바로 그때, 날카로운 전자 경보음이 아래에서 울려 퍼졌다.심아린의 손에 검은 리모컨이 하나 더 있었다.“무중력이 어떤 건지 체험하게 해줄게.”곤돌라의 제동 장치가 원격으로 해제되었다.철창 전체가 30미터 상공에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자유 낙하를 하기 시작했다.순간 오장육부가 목구멍까지 치솟는 것 같았다.귓가에는 바람 소리와 쇠사슬이 미친 듯이 흔들리는 날카로운 금속음만 가득했다.그러다 10미터에서 갑자기 급정지했다.관성 때문에 나와 시아버지는 자루처럼 허공으로 튕겨 올랐다.시아버지의 이마가 철제 난간에 거세게 부딪혔다.순식간에 피가 솟구쳤다.시아버지의 눈이 뒤집히며 새하얀 흰자위만 드러났다.그리고 시아버지의 몸이 축 늘어지며 의식을 잃었다.아니, 시아버지의 입술이 시커멓게 변하고 있었다.“아버님, 정신 차리세요!”나는 거의 패닉에 빠져서 시아버지의 뺨을 미친 듯이 두드렸다.나는 곤돌라 안에 무릎을 꿇었다. 무릎이 녹슨 철판에 부딪히면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제발, 빨리 내려줘!”“지금 당장 이혼 서류에 서명하고, 그 자리 당신한테 넘겨줄게.”“원하는 건 뭐든 다 해줄게...”심아린은 내 말을 듣고 득의양양하게 웃었다.“진작에 꺼졌어야지.”“하지만 오늘 고공 롤러코스터 체험은 아직 안 끝났어. 위에서 얌전히 버텨.”심아린은 손목시계를 힐끗 보았다.“30분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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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나는 엎어지다시피 곤돌라를 빠져나온 뒤 시아버지를 끌어내려 바닥에 눕혔다.시아버지의 이마에서는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하지만 그 피의 색은 더 이상 선홍색이 아니었다.검붉다 못해 거의 새까맣게 보일 정도였다.두 명의 의료진이 마침내 달려왔다.선두에 있던 의사가 쪼그려 앉아서 시아버지의 경동맥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먄사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동공이 완전히 산대됐습니다. 심인성 급사입니다.”“죄송합니다. 이미 사망하셨습니다.”내 손은 여전히 심폐소생술을 하던 자세 그대로 허공에 굳어 있었다.주변의 모든 소리가 갑자기 사라진 것 같았다.그러다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아주 멀리서 들리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바로 귓가에서 들리는 소리였다.그 소리는 내 목구멍에서 터져 나온 것이었다.“아!”나는 점점 차가워지는 시아버지의 몸을 끌어안고 목이 터져라 울부짖었다.심아린은 3미터 밖에 서서 코를 막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죽었으면 죽은 거지. 뭘 그렇게 악을 써? 돼지 멱따는 소리도 아니고, 진짜 재수 없네.”심아린은 시아버지가 정말 죽은 것을 보고도, 얼굴에 두려움은커녕 오히려 경멸과 혐오가 가득했다.심아린은 옆에 있던 작업자들에게 명령했다.“우리 공사장에서 죽다니, 완전히 생떼를 쓰는 거잖아.”“너희 몇 명은 현장에서 제일 더러운 낡은 천막 가져와서 이 늙은이 덮어. 내 눈을 더럽히지 말고.”“그리고 견인차 하나 불러서 빨리 화장터로 보내 태워버려.”직원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심아린은 나를 다시 볼 생각도 없이 몸을 돌려 립스틱을 바르기 시작했다.20분 후, 검은색 마이바흐가 공사장 정문에 멈춰 섰다.박연우가 차에서 내렸다.말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있었다.손에는 티파니 블루 종이백까지 들고 있었다.심아린이 박연우에게 달려가 그의 품에 뛰어들었다.“이제야 왔어? 당신이 진짜 몰라서 그렇지. 당신 아내가 그 가난뱅이 아버지까지 데리고 공사장에 와서 난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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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아버지!”박연우는 피가 흥건한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시아버지의 어깨를 붙잡고 마구 흔들었다.“아버지, 눈 좀 떠보세요! 저 좀 보세요.”그제야 심아린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심아린은 다가와 천막 아래를 들여다봤다.“이 사람은 그냥 그 시골...”심아린의 목소리가 갑자기 멈췄다.그 순간 심아린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조성철을 보았다.그건 부하가 평범한 사람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다.한 집안의 주인을 모시는 사람의 태도였다.“이... 이럴 수가...”심아린의 얼굴에서 핏기가 서서히 빠져나갔다.“분명 아버님은 해외에 계신다고 했잖아...”박연우가 고개를 돌렸다.그리고 손을 들어 심아린의 뺨을 후려쳤다.평범한 따귀가 아니었다.온몸의 힘을 모조리 실은 한 방이었다.30년 동안 재벌가 도련님으로 살아온 박연우의 더러운 성질과, 지금까지 억눌러왔던 공포와 후회가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다. 심아린의 몸이 그대로 1미터나 날아갔다.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심아린의 입에서 피 묻은 이빨 하나가 튀어나왔다.“내 귀...”심아린은 왼쪽 귀를 감싸고 비명을 질렀다.손가락 사이로 피가 흘러나왔다.고막이 터진 것이다.하지만 박연우는 심아린을 돌아보지도 않았다.박연우는 곧장 조성철에게 말했다.“구급차 불러! 최고의 전문의 전부 불러! 우리 아버지 아직 살릴 수 있어!”그러나 조성철은 움직이지 않았다.조성철은 땅에 무릎을 꿇은 채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얼굴은 시아버지의 유해보다도 더 무섭게 굳어 있었다.“늦었습니다.”“이미... 작은아버님께서 아셨습니다.”‘작은아버지가...’그 말을 듣는 순간, 박연우의 모든 움직임이 멎었다.마치 누군가 세상의 시간을 통째로 멈춰버린 것 같았다.박연우의 입술이 소리 없이 꿈틀거렸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박시훈은 시아버지의 친동생이자 박씨 가문의 진정한 막후 실권자였다.동남아 상계에서 붙은 별명이 바로 ‘살아 있는 염라대왕’이었다.소문에 따르면 과거 누군가가 시아버지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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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아직 완공되지 않은 50층짜리 전망탑이었다.꼭대기는 아직 지붕이 씌워지지 않아서 사방에서 바람이 들이쳤고, 노출된 콘크리트와 철근만 있었다.박시훈은 사람을 시켜서 의자 하나를 옥상에 가져다 놓게 했다.그리고 직접 나를 부축해서 옆 소파에 앉히고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넸다.“네가 많이 놀랐겠구나.”“오늘은 내가 형을 대신해서 집안을 정리하겠다.”박연우와 심아린은 바닥에 강제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심아린의 얼굴은 돼지머리처럼 퉁퉁 부어 있었고, 한쪽 귀에서는 여전히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하지만 심아린은 아직도 발버둥을 쳤다.“박 대표, 제발 나 좀 살려줘. 내 뱃속에는 당신 아이가 있어.”심아린은 마지막 동아줄이라도 붙잡은 사람처럼 박연우의 팔을 필사적으로 끌어안았다.박연우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그때 박시훈이 옆에 놓인 서류봉투 하나를 집어 들었다.그리고 안에 들어 있던 서류를 한 장씩 꺼내서 바닥에 던졌다.첫 번째는 심아린의 실제 학력 증명서였다.고등학교 중퇴에 해외 유학 경력은 아예 없었다.이른바 케임브리지 경영대학원 MBA졸업장은 1,600만 원을 주고 암시장에서 산 가짜 증명서였다.두 번째는 성형외과 수술 기록이었다.턱, 콧대, 광대, 눈꼬리까지 얼굴 전체를 뜯어고쳤고, 총비용은 1억 4,000만 원이었다. 아직 2,400만 원의 잔금도 갚지 않은 상태였다.세 번째는 대출 독촉 기록이었다.인터넷 대출, 신용카드, 고리대금을 합쳐 4억 원이 넘었고, 매번 박연우의 이름으로 보증을 세웠다.“네가 3년 동안 애지중지해 온 첫사랑은...”박시훈은 박연우를 보며 여전히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빚만 4억 원 넘게 지고 있는 유흥업소 여자였어.”순간 박연우의 얼굴이 얼음장처럼 굳어졌다.심아린은 마지막 발악을 했다.심아린은 배를 감싸안은 채 악을 쓰듯 외쳤다.“나, 박연우 아이를 가졌어요. 박씨 가문의 핏줄이에요! 그러니까 당신들은 나한테 손대면 안 돼요!”박시훈이 마지막 서류 한 장을 꺼내서 바닥에 던졌다.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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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두 경호원이 심아린을 들어 올려서 철창 안에 밀어 넣었다.안전벨트도 없었고, 난간도 없었다.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밧줄 하나만 철창 꼭대기에서 늘어져 있었다.“잘 잡아.”박시훈이 말했다.그리고 윈치 버튼을 눌렀다.철창이 곧바로 건물 가장자리 밖으로 밀려났다.50층 높이의 건물 바깥에 그대로 매달렸다.아래에는 150미터 깊이의 허공이 펼쳐져 있었다.그리고 그 밑에는 새까맣게 일렁이는 바다가 있었다.심아린의 비명은 거센 바닷바람에 갈기갈기 찢겨나갔다.박시훈이 손가락을 떼자 윈치의 제동 장치가 풀렸다.철창이 곧바로 추락하기 시작했다.50미터, 80미터, 100미터, 그리고 해수면 약 20미터 높이에서 갑자기 멈춰 섰다.관성 때문에 심아린의 몸이 철창 바닥에서 튀어 올랐다가 다시 철판 위로 거세게 떨어졌다.심아린의 바지는 한껏 젖어 있었다.구토물이 철망 틈새를 타고 아래로 흘러내리면서 그대로 바다에 떨어졌다.윈치가 다시 작동했고, 철창은 50층으로 끌려 올라왔다.심아린은 구석에 몸을 웅크린 채 온몸을 경련하고 있었다.박시훈이 무전기를 들어 올렸다.박시훈의 목소리는 확성기를 통해서 철창 안으로 선명하게 전달됐다.“늙은 사람도 버티던 놀이인데, VIP라는 네가 벌써 토하면 어떡해?”“다시.”두 번째 추락이 시작되었다.이번에는 훨씬 더 빨랐다.추락이 멈추는 순간, 심아린의 머리가 철제 난간에 부딪히면서 눈가가 그대로 찢어졌다.세 번째는 이미 비명조차 지를 힘도 없었다.그저 죽음을 앞둔 작은 짐승처럼 끊어질 듯한 신음소리만 흘러나왔다.철창이 마지막으로 끌려 올라왔을 때 심아린은 철판 위에 엎드려 있었다. 몸 아래에는 커다란 붉은 핏자국이 번져 있었다.심아린이 목숨줄처럼 여기던 ‘뱃속의 아이’도 그렇게 사라졌다.박시훈은 사람을 시켜서 심아린을 철창 밖으로 끌어내 박연우 앞에 내던졌다.심아린의 모습은 더 이상 사람의 몰골 같지 않았다.부어오른 얼굴에 푹 꺼진 눈두덩이, 온몸의 피와 토사물.박연우는 심아린을 보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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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누구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박연우가 심아린을 바라봤고, 심아린도 박연우를 바라봤다.잠시 동안 서로의 눈을 마주쳤다.그러다 박연우가 손을 뻗어서 심아린의 어깨를 힘껏 밀쳤다.심아린의 몸이 통로 가장자리에서 휘청거렸다.그 순간, 심아린의 손이 재빨리 박연우의 옷깃을 움켜잡았다.“감히 날 밀어? 그럼 너도 같이 죽는 거야.”심아린은 있는 힘껏 옷깃을 잡아당겼다.두 사람의 몸이 동시에 균형을 잃었다.그리고 유리 통로 위에서 나란히 쓰러졌다.심아린은 유리판에 엎드린 채 긴 손톱으로 유리 틈새를 죽어라 움켜쥐었다.심아린 위에 엎드린 박연우는 여자를 넘어서 기어가려고 했다.그때 심아린이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가짜 손톱을 붙인 손가락으로 곧장 박연우의 왼쪽 눈을 찔렀다.박연우가 비명을 질렀다.박연우는 눈을 감싸 쥔 채 통로 위에서 뒹굴었다.그러다 다리를 힘껏 내질렀다.발끝이 심아린의 가슴 한가운데를 정확하게 걷어찼다.심아린의 몸이 통로 가장자리로 미끄러졌다.심아린은 열 손가락으로 유리판 가장자리를 필사적으로 붙잡았다.손톱이 하나씩 부러졌다.박연우가 기어 왔다.이제 박연우에게 남은 눈은 하나뿐이었다.박연우는 심아린의 손가락 위에 발을 올렸다.첫 번째 발길질에 약지가 부러졌다.두 번째 발길질에 중지가 부러졌다.그리고 세 번째...심아린의 손이 결국 통로 가장자리에서 완전히 떨어졌다.심아린의 몸은 허공에서 몇 바퀴나 돌면서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쾅!심아린의 몸이 아래의 건축 폐기물 더미 위로 떨어졌다.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박연우는, 한쪽 눈을 반쯤 뜬 채 기어서 통로 끝에 도달했다.그리고 그곳에 놓인 서류를 집어 들고, 남은 한쪽 눈으로 훑어보았다.박연우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그 웃음소리는 점점 커졌다.“작은아버지.”박연우가 그 서류를 높이 들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저 서명했어요! 저 살았어요!”박연우는 통로 끝에 무릎을 꿇고, 서류를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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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신장 하나와 각막 두 개였다.그 후 심아린은 곰팡이가 핀 침대 위에 누운 채 어둠 속에서 살아갔다.몸을 뒤집는 것조차 혼자서는 할 수 없었다.나는 옥상 가장자리에 서서 저 멀리 바다를 바라보았다.바닷바람이 서늘했다.나는 주머니에서 시아버지의 깨진 파텍 필립 시계를 꺼냈다.유리 표면은 거미줄처럼 갈라져 있었다.초침은 오후 3시 17분에 멈춰 있었다.시아버지의 심장이 멈춘 시간이었다.나는 시계를 크레인 받침대 위에 올려놓았다.박연우가 매달려 있는 바로 그 크레인이었다.앞으로 매일 볼 수 있도록....반년 후, 진성그룹 빌딩 68층 회장실에서 내가 마지막 서류에 서명을 마치자, 비서 주경민이 탁자 옆에 커피를 놓았다.“대표님, 이번 프로젝트의 심장연구센터가 다음 주면 개관식을 열게 됩니다.”“이름은?”“요청하신 대로 ‘박진해 심장연구센터’입니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창밖으로 거대한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수많은 고층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모습이 마치 끝없이 펼쳐진 숲 같았다.이 자리에서는 H시의 절반이 훤히 내려다보였다.하지만 이 풍경을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은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심장연구센터의 준공식 날에는 보슬비가 내렸다.나는 우산을 든 채 붉은 천 앞에 서 있었다.내 뒤에는 시의 주요 인사들과 의학계 원로들, 업계의 거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그 사람들이 차례로 내게 다가와서 악수를 청했다.“젊은 나이에 정말 대단하십니다.”“진성그룹은 대표님 손에서 반드시 한 단계 더 발전할 겁니다.”“돌아가신 회장님께서도 하늘에서 분명 흐뭇해하실 겁니다.”나는 모든 사람에게 미소로 답했다.준공식을 마치고 차에 올라탄 뒤 나는 운전기사에게 말했다.“출발해.”“그리고 아무도 따라오지 못하게 해.”뒤늦게 따라온 주경민이 한참 망설이다 결국 입을 열었다.“두 가지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말해.”“첫 번째는 박연우가 어젯밤 폭우를 밤새 맞아서 상처가 전부 감염됐습니다.”“현장 사람들 말로는 완전히 미쳐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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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시아버지는 박연우가 철이 없다고, 그래도 며느리 하나는 잘 얻었다고 말했다.시아버지가 공사장을 시찰하러 온 날은 원래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기로 되어 있었다.일부러 낡은 옷까지 차려 입었다.내가 공사장에 있는 걸 알기에, 너무 좋은 옷을 입으면 인부들이 불편해할까 봐 걱정한 것이었다.시아버지의 주머니에는 니트로글리세린과 봉투 하나가 들어 있었다.봉투 안에는 미리 준비해 둔 내 생일 선물이 들어 있었다.미리 서명까지 해둔 지분양도서와 손수 적은 생일 카드 한 장이었다.카드에는 딱 한 마디만 적혀 있었다.[연지야, 우리 집에 시집와줘서 고맙다.]나는 그 작은 나무 인형을 안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바깥에는 빗줄기가 더욱 굵어지고 있었다.마당의 은행나무 잎이 빗방울에 맞아서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나는 거대한 기업 제국을 손에 넣었다.시아버지를 해친 사람들은 모두 지옥으로 떨어뜨렸다.그런데 정작 시아버지는 이제 다시는 저 문을 열고 들어오지 못했다.따뜻한 국 한 그릇을 들고 와서 웃으면서 말해주지도 못한다.“연지야, 아빠가 오늘도 네 생각을 하면서 작은 거 하나 만들어봤어.”눈물이 나무 인형 위로 한 방울 떨어지더니 곧 소리도 없이 스며들었다.석 달 후 가을이 찾아왔다.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었다.나는 매주 한 번씩 시아버지의 별장에 와서 하룻밤을 묵었다.다른 이유는 없었다.그저 그 은행나무를 보기 위해서였다.시아버지는 이 나무를 40년 동안 키워서,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다 안다고 하셨다.그날 밤, 막 차를 우려내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문을 열자 조성철이 서 있었다.조성철은 머리가 많이 세어서 10년은 더 늙어 보였다.“둘째 도련님께서 전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말씀하세요.”“박연우가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다고 하십니다.”찻잔을 들고 있던 내 손은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무슨 뜻이죠?”“감염이 계속 퍼져서 다리 하나를 절단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도 거의 정신을 놓은 상태라고 합니다. 현장 사람들 말로는 이번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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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심아린은 살 수 있게 해 드릴게요.”“살아 있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할머니는 물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눈물을 쏟았다.할머니가 돌아간 뒤 주경민이 옆에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정말 심아린이 밉지 않으세요?”나는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펼쳤다.“미워.”“하지만 시아버지도 늙은 어머니가 딸을 위해서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으실 거야.”“마음이 누구보다 여린 분이셨으니까.”주경민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박진해 심장연구센터’가 정식으로 운영을 시작한 지 1년이 되었다.그동안 1300명의 심장질환 환자가 무료로 치료를 받았다.그중에서 시골에서 올라온 노인만 400명이었다.그 사람들 역시 시아버지처럼 골든타임을 놓쳐서 목숨을 잃을 뻔했던 사람들이었다.하지만 그 사람들은 시아버지보다 운이 좋았다.그 사람들은 살아남았으니까.연말 자선 만찬에서 치료를 받았던 할아버지 한 분이 무대에 올라 한 마디 하겠다고 했다.몸에 맞지 않는 정장을 입은 할아버지는 긴장해서 손을 비볐다.“한 마디만 할게요.”“박진해 회장님은 저를 본 적도 없지만, 제 목숨을 살려주셨어요.”“그분은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객석에서 박수가 터졌다.나는 첫 줄에 앉아서 박수를 치면서 코끝이 시큰해졌다.만찬이 끝난 뒤, 나는 아파트로 돌아가지 않았다.기사에게 그 별장으로 가자고 했다.마당의 은행나무는 잎이 다 떨어졌다.앙상한 가지만 겨울 밤하늘에 뻗어 있었다.마치 누군가 손을 활짝 펼친 것 같았다.나는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거실의 센서등이 내가 들어온 것을 감지하고 자동으로 켜졌다.탁자 위에는 작은 나무 인형들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포니테일, 정장, 한복, 한 가족이 가지런히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나는 가방에서 새로 깎은 작은 나무 인형 하나를 꺼냈다.내가 직접 배워서 깎은 것이었다.낡은 셔츠를 입은 노인이 작은 망치를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젊은 시절 목수였던 시아버지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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