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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os los capítulos de 이혼 전 금욕주의: Capítulo 11 - Capítulo 20

23 Capítulos

11화

서인은 그대로 방으로 올라갔다.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서로 얼굴을 제대로 볼 시간조차 없었다.둘 다 아침 일찍 나갔고 늦게 들어왔다. 같은 집에 살아도 하루 종일 마주치지 않는 날이 있었고, 운이 좋으면 아침 식탁에서 십 분 남짓 얼굴을 보는 게 전부였다.금욕을 시작한 뒤 두 번째 주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금요일에는 서인이 평소보다 일찍 집에 들어왔다.거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보던 재하가 현관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오늘은 일찍 왔네요.”“저녁 약속이 취소됐어요.”“왜요?”“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대요.”재하가 다시 화면을 보며 물었다.“누가요?”“도윤 씨요.”트랙패드를 움직이던 손이 잠깐 멈췄다.“차도윤 변호사랑 저녁도 먹는 사이가 됐습니까?”서인은 구두를 벗다 말고 재하를 봤다.“사적인 약속 아니었어요.”“저녁 약속이 사적인 게 아니면 뭡니까?”“이혼 서류 때문에 따로 확인할 게 있었어요. 겸사겸사 저녁 먹기로 한 거고.”재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런 건 사무실에서도 볼 수 있지 않나.“서인이 그를 잠깐 바라봤다.“재하 씨.”“네.”“내가 아니라면 아닌 거예요.”잠깐 조용해졌다.재하가 먼저 시선을 거뒀다.“알겠습니다.”대답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노트북 화면을 한 번 넘긴 뒤 재하가 덧붙였다.“그래도 조심해요.”“뭘요?”“우리 아직 발표 안 했잖아요. 괜히 둘이 있는 사진이라도 찍히면 설명하기 귀찮아집니다.”맞는 말이었다.앞으로 두 달 동안은 밖에서 정상적인 부부로 보여야 했다. 이혼을 맡은 변호사와 단둘이 저녁을 먹는 사진은 쓸데없는 추측을 만들기에 충분했다.“그건 그렇네요.”“네.”“앞으로 조심할게요.”서인은 가방을 내려놓고 주방으로 향했다.“밥은요?”“아직요.”“저녁 먹을래요? 간단하게.”재하가 노트북에서 눈을 들었다.“그래요.”서인이 냉장고를 열었다.“와인도 하나 있는데.”“뭔데요?”“선물 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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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서인은 그대로 위층으로 올라갔다.재하는 다시 메일을 읽었다.조금 전까지 어디를 읽고 있었는지 찾는 데 몇 초가 걸렸다.***주말 아침이었다.서인은 늦게 눈을 떴다.커튼 사이로 들어온 빛이 침대 끝까지 번져 있었다. 휴대전화를 집어 들자 10시가 조금 넘었다.한성 재무팀에서 밤새 수정한 자구안이 와 있었다. 매각 대상 자산과 상환 일정을 다시 맞춘 자료였다.몇 군데 숫자를 확인하고 의견을 달아 회신했다. 마지막 메일까지 보내고 나니 11시가 가까웠다.그제야 노트북을 덮었다.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커피 향이 먼저 올라왔다.재하는 주방에 있었다.운동을 마치고 막 돌아온 모양이었다. 땀에 젖은 검은 티셔츠가 몸에 얇게 들러붙어, 넓게 벌어진 어깨와 가슴에서 허리로 좁아지는 윤곽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서인은 그쪽을 잠깐 보고 냉장고를 열었다.“밥은?”“아직.”재하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파스타 해먹으려고요.”“나도 먹을래요.”“그래요.”재하는 익숙하게 냉장고 안을 훑었다. 마늘과 파슬리를 꺼내고 찬장에서는 페페론치노를 찾아냈다.그걸 본 서인이 말했다.“알리오 올리오네요. 재하 씨가 해주는 거 맛있는데.”재하는 별말 없이 재료를 들고 조리대로 갔다.서인은 냉장고 안쪽으로 손을 뻗었다.평소 마시던 탄산수가 다른 병들 뒤로 밀려 있었다. 허리를 숙여 팔을 넣었지만 손끝에 닿은 병목이 미끄러지며 다시 안쪽으로 굴렀다.서인이 냉장고 선반을 짚고 조금 더 몸을 숙였다.그때 바로 뒤로 재하가 다가왔다.서인의 등 뒤에 선 재하가 왼손으로 열린 냉장고 문 위쪽을 짚었다. 오른팔은 서인의 어깨 너머로 길게 뻗었다.탄산수를 대신 꺼내려는 것뿐이었다.문제는 자세였다.냉장고 안쪽을 들여다보느라 허리를 숙인 서인과, 그 위로 몸을 낮춘 재하 사이에는 애초에 거리를 둘 만한 공간이 없었다.운동으로 열이 오른 재하의 가슴이 서인의 등에 닿았다.땀에 젖은 티셔츠가 얇은 가운에 눌렸다. 단단하게 잡힌 가슴의 굴곡이 천 두 장을 사이에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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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뒤에서는 다시 칼질 소리가 났다.서인은 찬장을 열어 접시 두 장을 꺼냈다.결혼한 해에 집들이를 했을 때 선물받은 접시였다. 손님들에게 내놓으라고 받은 고가의 식기였는데, 정작 손님보다 두 사람이 더 자주 썼다.하나씩 식탁 위에 놓았다.팬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얇게 저민 마늘이 기름에 닿자 작은 소리와 함께 향이 퍼졌다.“배고파요?”재하가 면을 건지며 물었다.“조금.”“금방 돼요.”“네.”팬 위로 면이 한 번 크게 뒤집혔다.서인은 식탁에 기대 탄산수를 한 모금 더 마셨다.***오후에는 재하가 집을 나섰다.주말의 우진 본사는 평일보다 지나치게 조용했다.다음 주 투자심의위원회에 올릴 해외 법인 인수안 때문에 재무담당 임원과 법무팀장만 출근해 있었다.회의는 두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환율 변동분까지 넣으면 이쪽 수익률은 다시 봐야 합니다.”재하가 자료 한 장을 넘겼다.“낙관치 말고 보수적으로 다시 잡죠.”“네. 월요일 오전까지 수정하겠습니다.”“법무 검토는요?”“조건부 승인 가능합니다. 현지 계약서에서 두 조항 정도만 조정하면 됩니다.”재하는 표시된 부분을 눈으로 훑었다.몇 가지를 더 짚고 회의를 끝냈다.임원들이 빠져나가고 문이 닫혔다.조용해진 회의실에서 재하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업무 연락 사이로 메시지가 수십 개 쌓여 있었다.대학 시절부터 이어진 한국인 친구들의 단체방이었다. 대부분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었다. 유학을 마친 뒤 한국으로 돌아와 가업에 들어간 놈도 있었고, 자기 사업을 시작한 놈도 있었다.다음 달 결혼하는 친구가 청첩장을 올려놓은 모양이었다.[결국 하네][양가에서 날짜 잡아준 지 몇 년 됐냐][2년][오래 버텼다][이제 도망가면 신문에 난다][축하한다]신랑이 웃는 이모티콘을 하나 보냈다.잠시 뒤 메시지가 다시 올라왔다.[유부남들한테 진지하게 묻는다][뭔데][결혼할 만하냐][그걸 이제 물어보냐][권재하한테 물어봐]재하가 화면을 내리던 손을 멈췄다.곧바로 답이 달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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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집에 돌아온 건 6시가 조금 넘어서였다.위층으로 올라가자 드레스룸 쪽에서 드라이어 소리가 들렸다.재하는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서인이 먼저 샤워를 마친 모양이었다. 가운 차림으로 화장대 앞에 앉아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왔어요?”드라이어 소리 사이로 목소리가 묻혔다.“네.”재하는 재킷을 벗어 걸었다.넥타이를 풀고 시계를 내려놓은 뒤 셔츠 단추를 풀었다.거울 한쪽에 서인이 비쳤다.한 손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걷어 올리고, 다른 손으로 드라이어를 움직였다. 바람이 닿을 때마다 희고 가느다란 목선이 나타났다 다시 검은 머리카락 아래로 가려졌다.재하는 셔츠를 벗었다.등을 돌리자 오른쪽 등을 비스듬히 가르는 오래된 흉터가 드러났다.거울 너머로 서인의 눈이 잠깐 그곳을 스쳤다.익숙한 것을 보듯 짧았다.드라이어 바람이 머리카락을 흩뜨렸고, 재하는 벗은 셔츠를 옷걸이에 걸었다.샤워실로 향하려던 걸음이 그 자리에서 멈췄다.서인이 젖은 머리를 한쪽 어깨 뒤로 넘겼다.바람에 가운 깃이 살짝 밀렸다.왼쪽 가슴 위.쇄골 아래에서 가운 안쪽으로 이어지는 희고 부드러운 살 위에 붉은 자국 하나가 보였다.옅은 흔적은 아니었다.손가락 한두 마디만 한 자국이 피부 위에 붉게 올라와 있었다. 가운이 흔들릴 때마다 반쯤 드러났다 가려졌다.재하의 시선이 거기에서 멈췄다.“이거 왜 이래요?”서인이 드라이어를 끄고 거울을 봤다.“뭐가요?”재하가 제 가슴께를 손끝으로 짚었다.“여기.”서인은 머리카락을 걷고 가운 깃을 조금 당겼다.그제야 발견한 듯 붉은 부분을 손끝으로 눌렀다.“아. 이거?”“네.”“몰라요. 어디서 긁혔나.”재하는 그 자리를 한 번 더 내려다봤다.목 바로 아래도 아니고, 바깥으로 드러난 어깨도 아니었다.딱 옷 안쪽에 숨을 자리였다.“위치가 절묘하네.”“뭐가요?”“다른 남자랑 벌써 섹스하고 온 줄 알았네요.”서인의 손이 멈췄다.잠깐의 정적.거울 속에서 서인이 재하를 봤다.이윤재.재하의 머릿속에 이름 하나가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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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식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갈비찜은 적당히 데워져 있었고, 와인은 한 병을 다 비우지 않았다. 서인은 한성의 자구안 이야기를 조금 했다. 오전에 회신한 자료에서 매각 대상이 하나 더 늘었다는 얘기였다. 재하는 들으면서 필요한 말만 했다. “그쪽은 매수자 있어요?” “두 군데요. 아직 조건 보는 중이고.” “급하게 팔면 가격 많이 빠질 텐데.” “알아요. 그래도 현금화 순서는 앞쪽이에요.” “그럼 경쟁 붙이는 게 낫겠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대화는 그 정도였다. 식사를 마친 서인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올라갈게요.” “네.” 빈 잔을 싱크대에 내려놓은 서인이 주방을 나갔다.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차츰 멀어졌다. 재하는 식탁에 남아 와인을 한 모금 더 마셨다. 잔 가장자리에 묻은 와인이 입술을 적셨다. 삼키고 나서도 이상하게 입안이 말랐다. 재하는 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욕실에 들어온 재하는 샤워기를 틀었다. 뜨거운 물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하루 종일 굳어 있던 목덜미와 어깨가 물을 맞으며 느슨하게 풀렸다. 재하는 눈을 감은 채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겼다. 내일 오전에 확인해야 할 인수안과 월요일 투자심의위원회, 아직 넘어오지 않은 현지 법무법인의 수정 계약서까지. 머릿속에는 평소처럼 일이 차례대로 떠올랐다. 그 사이로 전혀 상관없는 향 하나가 스며들었다. 달고 서늘한 향. 재하는 눈을 감은 채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켰다. 욕실의 습기와 물 냄새뿐이었다. 그런데 코끝에는 조금 전 맡았던 향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냉장고 앞에서 서인의 뒤로 몸을 숙였을 때였다. 열린 문 안쪽에서는 찬 공기가 흘러나오는데, 바로 앞에 닿은 몸만 따뜻했다. 얇은 가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등에 맞닿았던 가슴. 고개를 돌린 순간에는 젖은 머리카락 몇 올이 턱 아래를 스쳤다. 목덜미 가까이에서 막 씻은 피부의 깨끗한 향이 났다. 샴푸인지 바디워시인지. 구분할 생각도 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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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재하의 손이 그대로 멎었다. 잡으면 그만이었다. 몇 번 움직이면 오래 걸릴 일도 없었다. 손가락이 천천히 말렸다. 그러다. “……씨발.” 재하는 손을 떼었다. 젖은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찬물이 턱 끝에서 떨어졌다. 수전을 잠갔다. 쏟아지던 물줄기가 끊겼다. 욕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 침실로 돌아왔을 때는 멀쩡했다. 재하는 머리를 대충 말리고 잠옷을 입었다. 협탁 위에 있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읽지 않은 메일 몇 개를 확인하고 침대에 앉았다. 그때 복도에서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서인의 방이었다. 메일을 넘기던 엄지가 멎었다. 문 하나. 복도 하나. 그 정도 거리였다. 재하는 화면을 한 번 위로 밀었다. 다음 메일이 열렸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 월요일 아침. 서인은 평소보다 먼저 집을 나갔다. 재하가 아래층으로 내려왔을 때 식탁 한쪽에는 비어 있는 커피잔 하나만 남아 있었다. 아주머니가 잔을 치우려다 말했다. “사모님 오늘 일찍 나가셨어요.” “그런가요.” “아침도 거의 못 드시고 가셨어요.” 재하는 커피를 따르며 시계를 확인했다. 7시 40분. “요즘 많이 바쁘신가 봐요.” “그렇죠.” 커피잔을 들었다. 맞은편 자리는 비어 있었다. 재하는 그대로 한 모금 마셨다. 비서에게 온 일정표를 확인했다. 오전 임원회의. 점심 약속. 오후 투자심의위원회. 저녁에는 선친 기념재단 이사회까지 있었다. 화면을 내렸다. 커피는 아직 뜨거웠다. *** 서인이 점심을 먹은 건 오후 2시가 가까워져서였다. 오전 내내 이어진 회의가 예상보다 길어졌다. 점심시간은 이미 지나 있었고, 오후 일정까지는 40분 정도 남아 있었다. 비서가 사다 놓은 샌드위치 포장을 뜯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차도윤이었다. 서인은 한 손으로 포장지를 접으며 전화를 받았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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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금요일 오후. 서인은 사무실에서 마지막 메일을 보내고 노트북을 덮었다. 시계는 5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책상 한쪽에는 비서가 가져다 놓은 검은색 드레스 커버가 걸려 있었다. 오늘 저녁 일정은 우진문화재단 후원 행사였다. 한성의 자구안 협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뒤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지만, 오래전부터 잡혀 있던 공식 일정까지 바꿀 수는 없었다. 서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행사장은 청담동의 작은 갤러리였다. 정식 만찬보다는 후원자와 재단 관계자들이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자리라 규모는 크지 않았다. 서인이 도착했을 때 이미 사람들이 제법 모여 있었다. 검은 드레스 위로 얇은 숄을 걸친 채 몇 사람과 인사를 나눴다. “한 전무님.” 재단 이사가 반갑게 다가왔다. “오랜만이에요.” “그러게요. 잘 지내셨어요?” “나는 똑같죠. 그런데 권 대표는?” “회사에서 바로 온다고 했어요.” “웬일이래. 오늘은 따로 오나 봐요?” 서인이 웃었다. “오늘 타이밍이 좀 안 맞았네요.” “그래도 금방 오겠죠?” “네. 거의 다 왔다고 했어요.” 그때 입구 쪽이 조금 소란스러워졌다. 서인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돌렸다. 권재하였다. 짙은 네이비 슈트에 넥타이는 없었다. 셔츠 단추를 하나 풀어놓은 탓에 평소보다 목선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조명 아래로 걸어 들어오는 얼굴은 멀리서도 선이 또렷했다. 이마에서 곧게 떨어지는 높은 콧대와 그 아래 단정하게 다물린 입술, 사람을 볼 때마다 느슨하게 휘어지는 긴 눈매까지. 반듯한 차림을 하고 있으면 차가워 보이는 얼굴인데, 오늘은 셔츠 깃이 조금 풀어진 것만으로 인상이 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재하는 입구에서 재단 관계자와 악수하고, 다가오는 사람에게 짧게 인사를 건넸다. 지나가던 여자 둘의 시선이 동시에 그쪽으로 향했다. 한 명은 걸음을 늦추며 한 번 더 돌아보기까지 했다. 서인은 다시 잔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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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잔 부딪히는 소리가 귓가로 밀려들었다. 웃음소리와 샴페인 향, 천장에 매달린 조명의 빛까지 한꺼번에 제자리를 찾았다. 그 한가운데 재하의 손만 여전히 허리에 남아 있었다. 서인이 옆을 돌아봤다. 재하는 이사의 말을 들으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걸고 있었다. 가끔 짧게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옆얼굴을 타고 높은 콧대에 조명이 스쳤다. 허리를 감싼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시선이 마주쳤다. 재하가 눈썹을 살짝 들었다. “왜요?” “뭐가요?” “아까부터 보길래.” 서인은 잠시 그의 얼굴을 봤다. “얼굴 좀 봤어요.” 재하의 입꼬리가 느리게 올라갔다. “마음에 들어요?” “쯧.” 서인이 고개를 돌렸다. 낮은 웃음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그때 누군가 두 사람을 불렀다. “권 대표님, 한 전무님. 사진 한 장만 부탁드릴게요.”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몸을 돌렸다. 재하의 손이 다시 서인의 허리를 감쌌다. 이번에는 조금 더 가까웠다. 찰칵. 플래시가 터졌다. 서인은 카메라를 보며 웃었다. *** 행사는 생각보다 길었다. 사진을 몇 번 더 찍고, 후원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재하는 중간에 재단 이사장에게 붙잡혔다. 서인이 샴페인 잔을 바꾸려던 때, 태림그룹 부회장의 아내인 정혜원이 옆으로 다가왔다. 몇 년 전부터 우진문화재단 후원 행사에서 종종 마주치던 사람이었다. “두 분은 여전히 보기 좋네요.” 서인이 웃었다. “감사합니다.” “결혼한 지 이제 삼 년 됐죠?” “네.” “아직도 신혼 같아.” 마침 돌아온 재하가 그 말을 들었다. “제가 좀 잘합니다.” 서인이 그를 돌아봤다. “뭘요?” 재하가 옆에 서며 태연하게 말했다. “결혼 생활.” 혜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감 좀 봐.” 서인도 잔을 들며 웃었다. “본인 평가가 좀 후해요.” 재하의 손이 다시 서인의 허리에 가볍게 얹혔다. “여보가 별말 없었으면 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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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말이 먼저 나갔다. 서인의 시선이 아주 느리게 재하에게 돌아갔다. 재하도 보고 있었다. 몇 초.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다 재하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그럴 수도 있죠.” 낮은 목소리였다. 서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재하가 태연하게 덧붙였다. “운동.” “…….” “요즘 못 했잖아요.” 서인은 그를 잠시 바라봤다. “그 얘기였어요.” “나도.” 입꼬리가 여전히 올라가 있었다. 뻔뻔한 얼굴이었다. 서인은 혀를 한번 찼다. “누가 뭐래요.” 재하가 낮게 웃었다. 서인은 그대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리 위에 희미하게 비친 재하의 얼굴에 아직 웃음기가 남아 있었다. 차가 완만한 커브를 돌았다. 이번에는 무릎이 닿지 않았다. *** 주말이 지나자 법원에 갈 날이 가까워졌다. 월요일 오후, 서인은 차도윤의 사무실에 들렀다. 제출할 서류와 이후 절차를 마지막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도윤은 서류를 한 장씩 넘기며 필요한 부분만 짚었다. “이건 당일에 두 분 다 서명하시면 되고요.” “네.” “확인기일은 신청하고 바로 잡히는 건 아니니까 일정 나오면 다시 말씀드릴게요.” 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이 다음 서류를 집으려다 손을 멈췄다. 시선이 서인의 손으로 향했다. “손 베였어요?” “네?” 서인이 손을 내려다봤다. 검지 옆에 가느다란 상처가 나 있었다. 아침에 서류를 넘기다 종이에 베인 모양이었다. “아.” 도윤이 서랍을 열어 작은 밴드 하나를 꺼냈다. 서인 앞에 내려놓았다. “붙여요.” “이 정도 가지고.” “물 닿으면 따가워요.” 그 말만 하고 다시 서류로 시선을 내렸다. 서인은 잠시 밴드를 내려다보다 포장을 뜯었다. “고마워요.” “별말씀을.” 도윤은 이미 다음 페이지를 읽고 있었다. 서인은 밴드를 붙인 뒤 펜을 들었다. “다음은요?” 도윤이 서류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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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수요일 오후.서인은 약속한 시간보다 십 분 먼저 법원에 도착했다.차에서 내리기 전 가방 안을 한 번 확인했다. 신분증과 미리 준비해둔 서류가 차례로 들어 있었고, 도윤이 전날 보내준 확인 사항도 빠짐없이 챙겼다.입구 근처에는 재하가 먼저 와 있었다.“왔어요?”“일찍 왔네요.”“나도 방금.”재하는 혼자였다. 서인이 주변을 한번 둘러보다 물었다.“비서실은요?”“차에 있어요.”“웬일이에요.”재하가 법원 건물을 한번 올려다봤다.“이혼하는 것도 구경시켜야 합니까?”서인의 입가에 짧게 웃음이 걸렸다.맞는 말이었다.두 사람은 나란히 법원 안으로 들어갔다. 평일 오후인데도 건물 안은 제법 붐볐다. 서류봉투를 든 사람들이 민원실과 복도를 오갔고, 안내판 앞에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층을 확인하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서인은 걸음을 옮기며 휴대폰을 꺼냈다.도윤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도착하셨어요?][네. 지금 들어왔어요.][서류 확인하시고 문제 있으면 연락 주세요.][알겠어요.]답장을 보내고 화면을 끄자 옆에서 재하가 물었다.“차도윤?”“네.”“오늘도 친절하시네.”“담당 변호사니까요.”“그러네요.”그게 끝이었다.재하는 더 묻지도 않았고 서인의 휴대폰을 다시 쳐다보지도 않았다.엘리베이터 앞에는 이미 사람들이 여럿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뒤 문이 열리자 앞쪽에 있던 사람들이 차례로 들어갔고, 서인도 그 틈을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재하가 마지막으로 타자 문 앞까지 사람이 찼다.서인은 안쪽 벽에 가까이 섰고 재하는 자연스럽게 그 앞에 자리했다. 한 손에는 서류봉투를 들고 있었다.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한 층 위에서 몇 사람이 내렸지만 그보다 많은 사람이 새로 들어왔다. 앞에 선 남자의 어깨가 서인 쪽으로 밀려오자 재하는 별말 없이 몸을 비스듬히 틀었다. 넓은 등이 사람들과 서인 사이를 가렸다.서인은 잠깐 그 등을 바라보다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아직 여유가 있었다.화면을 끄고 가방에 넣었다.그때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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