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전 금욕주의

이혼 전 금욕주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0
By:  홍피코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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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서 한 결혼은 아니었다. 서로의 조건이 맞았고, 집안의 이해관계가 맞았고, 뜻밖에도 몸까지 지독하게 잘 맞았다. 그렇게 삼 년. 한성그룹이 무너지자 서인은 깔끔하게 이혼을 제안했다. “우리 이혼해요.” “그러죠.” 재산도, 집도, 언론 발표도 십 분 만에 정리됐다. 그런데. “그러면 섹스는?” “안 하죠.” “아예?” “이혼할 건데요.” 권재하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씨발.” “왜 욕해요?” “섹스도 오늘로 끝이네요.” 이혼 발표까지 두 달. 같은 집, 각자의 침실. 그리고 섹스 금지. 두 사람은 아직 몰랐다. 결혼보다 어려운 게, 이혼도 아닌 금욕일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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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1화

지독하게 가라앉은 열기 속에서, 권재하의 움직임은 여유로울 만큼 나른하고도 잔인했다.

“…….”

서인은 엉망으로 흐트러진 숨을 삼키며 눈을 감았다. 제멋대로 떨리는 입술을 진정시키려 깨물자, 재하의 낮게 가라앉은 시선이 그 버릇을 놓칠 리 없다는 듯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깨물지 말라고 했죠.”

나긋한 경고와 함께, 재하의 손가락이 짓누르듯 벌려놓은 입술 사이를 파고들었다.

젖은 점막을 헤집고 들어오는 손가락의 감각에 서인은 저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렸다.

하지만 다음 순간, 본능적인 열락이 이성을 집어삼켰다.

서인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단단한 손가락을 자연스럽게 입안으로 받아들였다. 부드럽게 얽혀드는 혀끝으로 감싸듯 천천히 빨아내자, 재하의 숨소리가 미세하게 거칠어졌다.

귓가에 질척한 물소리가 울렸다.

지독하게 배덕하고 음란한 감각이었다.

“……버릇이야, 정말.”

낮게 읊조린 재하가 손가락을 빼내려 했다.

그 찰나, 서인은 심술궂게 이를 세웠다.

날카로운 이빨 끝에 단단한 살점이 짓눌렸다.

“하…….”

재하가 짧은 탄식과 함께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러나 피하기는커녕, 다시 내려온 눈빛이 한층 진득하게 어두워져 있었다.

“깨물지 말라고 했을 텐데.”

나직한 경고와 함께 재하가 서인의 골반을 단단히 붙잡아 제 앞으로 끌어당겼다.

끈적한 열기로 젖은 살이 맞부딪혔다.

재하는 제 아래를 묵직하게 채우고 있던 단단한 성기를 천천히 빼냈다. 그리고 대답할 틈도 주지 않은 채 다시 깊숙이 꽂아 넣었다.

“아아, 흣……!”

서인의 전신이 크게 들썩였다.

한 번에 밀려든 쾌락이 척추를 타고 뇌리까지 치솟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부서지고, 붙잡을 곳을 찾던 손이 다급하게 재하의 팔을 움켜쥐었다.

재하는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듯 묵직하고 거칠게 허리를 움직였다.

살과 살이 부딪히는 눅눅한 소리.

젖은 곳을 거듭 파고드는 움직임.

안쪽을 짓이기듯 몰아치는 템포에 서인의 정신이 속절없이 흐트러졌다.

몇 번의 거친 허릿짓이 이어진 순간,

“아아…….”

서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왈칵 쏟아진 뜨겁고 묽은 애액과 함께 온몸이 바르르 떨렸다. 힘이 풀린 허벅지가 재하의 허리를 감싼 채 제멋대로 경련했다.

그 민감하고 무방비한 반응을 놓칠 리 없었다.

재하는 멈추지 않고 허리를 깊숙이 묻은 채 상체를 숙였다. 그의 시선이 서인의 하얗고 가늘게 떨리는 허벅지 사이로 떨어졌다.

그리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아래로 완전히 내려갔다.

“……재하 씨, 잠깐…….”

당황한 서인이 그를 밀어내려 팔을 뻗었지만, 재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제 입술로 그 흔적을 고스란히 쓸어내렸다.

끈적하게 젖은 살을 탐욕스럽고 진득하게 훑는 감각에 서인은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달콤하고 진한 액체의 맛을 음미하듯 천천히 입술을 떼어낸 재하가 번들거리는 입가를 손등으로 쓸었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맛있네요.”

그 한마디에 서인의 머릿속에서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이성의 끈이 완전히 끊어졌다.

수치심보다 흥분이 먼저 치솟았다.

겨우 가라앉던 몸이 다시 달아올랐다.

“흐…… 더, 더 해줘요. 재하 씨.”

서인은 제멋대로 떨리는 두 팔을 뻗어 재하의 단단한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애원하듯 몸을 비틀며 더 넣어달라고 헐떡이는 목소리에는 이미 이성이 남아 있지 않았다.

재하에게 매달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못 참겠네, 정말.”

재하의 입꼬리가 비틀리듯 올라갔다.

그는 다시 서인의 위로 묵직하게 올라탔다.

이번에는 그에게도 여유가 없었다.

희고 가늘어 부서질 듯한 서인의 몸 위로 단단한 핏줄과 굴곡진 근육이 얽힌 재하의 육신이 짓누르듯 겹쳐졌다.

조각한 듯 서늘한 얼굴 위로 땀방울이 떨어졌다.

늘 오만하리만큼 흐트러짐 없던 얼굴이 흥분으로 일그러지는 모습은 지독하게 관능적이었다.

“후…… 씹.”

낮게 가라앉은 욕설이 귓가를 때렸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감각마저 집어삼켜졌다.

서인은 눈앞이 새하얘지는 절정과 함께 온몸을 팽팽하게 조였다.

재하 역시 억눌린 신음을 삼키며 깊숙이 허리를 묻었다.

그리고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두 사람의 거친 숨만 침실 안을 가득 채웠다.

***

폭풍처럼 몰아쳤던 열기가 지나가자 방 안은 기이할 만큼 고요해졌다.

흐트러진 시트와 아무렇게나 떨어진 옷가지, 아직 식지 않은 서로의 체온만이 조금 전까지 이 침대 위에서 벌어진 일을 증명하고 있었다.

재하는 잠시 거친 호흡을 고르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서인은 그대로 누운 채 눈을 감고 있었다. 하얗게 달아오른 피부 위로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았다.

재하는 침대 협탁에 놓인 부드러운 수건을 집어 들었다.

서인의 뺨에 흐른 땀과 몸에 남은 흔적을 손수 닦아냈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탐욕스럽게 몸을 탐하던 남자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사무적인 손길이었다.

다정한 말도 없었다.

입맞춤도 없었다.

서인 역시 바라지 않았다.

재하는 수건을 내려놓고 아무 말 없이 옆으로 누웠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불과 몇 분 전까지 서로의 몸속까지 헤집어놓았던 두 사람 사이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적당한 거리가 생겼다.

한동안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서인은 천천히 눈을 떴다.

몸에는 아직 희미한 열감이 남아 있었다. 반면 절정의 끝에서 산산이 흩어졌던 이성은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오고 있었다.

그러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내일 오전의 약속이었다.

법무법인 세경.

오전 열 시.

예약은 이미 끝나 있었다.

이제 그 전에 반드시 해야 할 말 하나만 남았다.

서인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재하는 팔 하나를 눈 위에 걸친 채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조금 전까지의 흐트러진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느릿하게 오르내리는 단단한 가슴과 아직 마르지 않은 땀방울 정도가 그 흔적이라면 흔적이었다.

참 빠르게도 멀쩡해지는 인간이었다.

서인은 그 익숙하고도 낯선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재하 씨.”

“네.”

잠든 줄 알았는데 대답은 바로 돌아왔다.

서인은 망설이지 않았다.

“우리 이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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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

홍성표
홍성표
작가님 빨리 다음편 주세요
2026-09-10 21:4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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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Chapters
1화
지독하게 가라앉은 열기 속에서, 권재하의 움직임은 여유로울 만큼 나른하고도 잔인했다.“…….”서인은 엉망으로 흐트러진 숨을 삼키며 눈을 감았다. 제멋대로 떨리는 입술을 진정시키려 깨물자, 재하의 낮게 가라앉은 시선이 그 버릇을 놓칠 리 없다는 듯 집요하게 파고들었다.“깨물지 말라고 했죠.”나긋한 경고와 함께, 재하의 손가락이 짓누르듯 벌려놓은 입술 사이를 파고들었다.젖은 점막을 헤집고 들어오는 손가락의 감각에 서인은 저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렸다.하지만 다음 순간, 본능적인 열락이 이성을 집어삼켰다.서인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단단한 손가락을 자연스럽게 입안으로 받아들였다. 부드럽게 얽혀드는 혀끝으로 감싸듯 천천히 빨아내자, 재하의 숨소리가 미세하게 거칠어졌다.귓가에 질척한 물소리가 울렸다.지독하게 배덕하고 음란한 감각이었다.“……버릇이야, 정말.”낮게 읊조린 재하가 손가락을 빼내려 했다.그 찰나, 서인은 심술궂게 이를 세웠다.날카로운 이빨 끝에 단단한 살점이 짓눌렸다.“하…….”재하가 짧은 탄식과 함께 고개를 뒤로 젖혔다.그러나 피하기는커녕, 다시 내려온 눈빛이 한층 진득하게 어두워져 있었다.“깨물지 말라고 했을 텐데.”나직한 경고와 함께 재하가 서인의 골반을 단단히 붙잡아 제 앞으로 끌어당겼다.끈적한 열기로 젖은 살이 맞부딪혔다.재하는 제 아래를 묵직하게 채우고 있던 단단한 성기를 천천히 빼냈다. 그리고 대답할 틈도 주지 않은 채 다시 깊숙이 꽂아 넣었다.“아아, 흣……!”서인의 전신이 크게 들썩였다.한 번에 밀려든 쾌락이 척추를 타고 뇌리까지 치솟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부서지고, 붙잡을 곳을 찾던 손이 다급하게 재하의 팔을 움켜쥐었다.재하는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듯 묵직하고 거칠게 허리를 움직였다.살과 살이 부딪히는 눅눅한 소리.젖은 곳을 거듭 파고드는 움직임.안쪽을 짓이기듯 몰아치는 템포에 서인의 정신이 속절없이 흐트러졌다.몇 번의 거친 허릿짓이 이어진 순간,“아아…….”서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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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재하의 팔이 천천히 내려왔다.검은 눈동자가 드러났다.그 시선이 서인의 얼굴에 닿아 잠시 머물렀다.놀랐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고요했고, 그렇다고 예상했다고 하기에는 침묵이 조금 길었다.그러나 그것도 고작 몇 초였다.“그러죠.”서인은 눈을 한 번 깜빡였다.그게 전부였다.왜냐고 묻지 않았다.갑자기 무슨 소리냐며 몸을 일으키지도 않았고, 한 번 더 생각해보라는 흔해빠진 말조차 없었다.조금 전까지 제 몸을 그토록 탐욕스럽게 탐하던 남자는 삼 년을 함께 산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자 너무도 간단하게 결혼의 끝을 받아들였다.이상할 건 없었다.그게 권재하였다.“언제요.”“가능하면 빨리요.”“이번 달 안에?”“법적으로 정리하는 건요. 발표는 조금 미뤘으면 해요.”그제야 재하가 몸을 일으켰다.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은 넓은 등이 희미한 조명 아래 드러났다. 그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바지를 집어 들었다.“한성 때문에?”“네.”역시 설명은 필요 없었다.오늘 하루 종일 한성그룹의 이름이 경제면을 도배했다.아침까지만 해도 악성 루머라던 유동성 위기설은 점심 무렵 계열사 차환 실패 가능성으로 구체화됐고, 장이 닫힐 즈음에는 신용등급 하향 검토와 채권단 공동관리라는 살벌한 단어까지 따라붙었다.그제야 서인은 알았다.아버지가 지난 몇 달 동안 숨겨온 ‘조금 어려운 상황’이 실은 한성 전체의 숨통을 죄고 있었다는 것을.그리고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붙잡은 동아줄이 어디인지도.정확히는 권재하가 아니라,그의 뒤에 있는 우진그룹이었다.“아버지가 연락했죠?”바지를 입던 재하의 손이 아주 잠깐 멎었다.“네.”“언제요.”“오늘 오후.”“뭐라고 하셨어요?”“본인이 말씀 안 하셨습니까?”“제가 들은 얘기랑 재하 씨한테 한 얘기가 같은지 모르잖아요.”재하가 피식 웃었다.“도와달랍니다.”예상했던 대답이었다.그런데 막상 그의 입을 통해 듣자 속이 서늘하게 식었다.서인은 침대 위에 흐트러진 시트를 가슴께까지 끌어올렸다.조금 전까지 아무렇지 않게 서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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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발표는 언제쯤 생각합니까?”재하의 목소리에 서인은 생각을 거뒀다.“두 달 뒤요.”“이유는?”“지금 바로 터뜨리면 우진이 한성을 버렸다는 확인 사살이 되잖아요. 적어도 채권단 협상 끝날 때까진 기다리고 싶어요.”재하는 잠시 계산하듯 눈을 내리깔았다.“두 달.”“길어요?”“아뇨.”무심한 대답이었다.“그 정도면 맞춰드리죠.”역시 빨랐다.서인은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았다.“그동안은 여기 있을게요.”재하가 눈을 들었다.“여기?”“네. 갑자기 본가나 호텔로 옮기면 기자들이 먼저 눈치챌 테니까.”한성그룹이 휘청이는 시점이었다.그 와중에 한성의 장녀가 남편과 살던 집을 나왔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 어떤 기사가 붙을지는 뻔했다.경영 위기.사위인 권재하의 지원 거절.그리고 이혼.사실이 어떻게 생겼든 사람들은 가장 자극적인 순서대로 이야기를 엮을 것이다.지금은 굳이 먹잇감을 하나 더 던져줄 필요가 없었다.“그러세요.”재하는 별다른 이견 없이 받아들였다.“공식 일정도 예정된 건 그대로 참석하고요.”“네.”“양가에도 당분간은 발표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그 말에는 재하가 잠시 서인을 바라봤다.“장인어른도?”“네.”“이혼하자고 한 건 압니까?”“아뇨.”“알면 난리 나겠는데.”“그러니까 모르셔야죠.”서인이 태연하게 대답했다.아버지가 지금 이혼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보지 않아도 알았다.당장 우진에 사과하라고 할 것이다.어떻게든 결혼을 붙들라고 할 것이고, 필요하다면 딸의 자존심쯤은 기꺼이 담보로 내놓을 사람이었다.그러고 싶지 않았다.아니.그럴 생각이 없었다.한성이 망하면 망했지, 그 대가로 이 결혼을 붙잡을 생각은 없었다.“알겠습니다.”재하가 말했다.그뿐이었다.왜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느냐고 묻지도 않았다.다시 생각해보라고 하지도 않았다.서인이 결정했다면 그것으로 끝이었다.“그럼 정리하면.”서인이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법적인 절차는 바로 시작하고.”“네.”“발표는 두 달 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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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안 하죠.”서인은 간단하게 대답했다.재하의 눈이 미세하게 움직였다.“아예?”“……그럼 가끔 해요?”잠깐의 침묵.“그건 좀 병신 같긴 하네.”“그렇죠?”“네.”동의는 빨랐다.그런데 대화는 끝나지 않았다.재하는 여전히 서인을 보고 있었다.서인이 먼저 물었다.“왜요.”“뭐가요.”“할 말 있어 보이는데.”“생각 중입니다.”“뭘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해요?”재하의 시선이 잠시 아래로 떨어졌다.얇은 가운 사이로 드러난 목선.아직 붉은 흔적이 남은 쇄골.그리고 다시 얼굴.“아까워서.”“뭐가요.”재하가 조금 전까지 두 사람이 엉켜 있던 침대를 턱짓했다.“섹스.”서인이 헛웃음을 흘렸다.“설마 계속하고 싶어요?”“그건 아닌데.”“그럼요?”“이건 존나 잘 맞았잖아.”반박하기 어려운 말이었다.서인은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인정해요.”“그렇죠?”“그래도 안 해요.”“압니다.”“이혼할 사이에 계속 자는 건 이상하잖아요.”“네.”“그럼 이것도 오늘까지.”잠깐의 정적 끝에 재하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죠.”이번에도 쉬웠다.결혼을 끝내는 것도.잠자리를 끝내는 것도.서인은 욕실 문을 열었다.“씨발.”낮게 떨어진 욕설에 손이 멎었다.서인이 돌아봤다.“왜 욕해요?”“그냥 좀.”“뭐가요.”재하가 고개를 들었다.조금 전 이혼하자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미세하게 불만스러운 얼굴이었다.그 사실이 우스워 서인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섹스도 오늘로 끝이네요.”서인은 기가 막혀 웃었다.“그게 이혼보다 아쉬워요?”재하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대답했다.“지금은.”그 대답이 너무 권재하다워서 서인은 헛웃음을 흘렸다.“참으세요.”“그래야죠.”“두 달밖에 안 돼요.”“그러게요.”“저는 별문제 없을 것 같은데.”재하의 눈이 아주 잠깐 가늘어졌다.“그래요?”“네.”“나도.”“그럼 문제없네요.”“그러게.”서인은 미련 없이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딸깍.문이 닫혔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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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서인은 휴대폰을 내려다본 채 대꾸했다.“그런가 보네요.”“깜찍하게.”끝이었다.재하는 잠깐 서인을 바라봤다.정작 흔적을 남긴 본인은 관심조차 없는 얼굴이었다.그도 별말 없이 다시 태블릿으로 시선을 돌렸다.서인 역시 아무렇지 않게 오늘 일정을 넘겼다.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저 먼저 나갈게요.”“그러세요.”현관까지 걸어가던 서인은 생각난 듯 멈췄다.“아, 재하 씨.”“네.”“오늘 저녁 늦어요.”“알겠습니다.”“먼저 주무세요.”평소처럼 나온 말이었다.재하도 평소처럼 대답했다.“네.”서인은 구두를 신고 현관문을 열었다.“다녀올게요.”“다녀와요.”문이 닫혔다.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서인은 휴대폰을 확인했다.법무법인 세경에서 온 메시지가 떠 있었다.[한서인 고객님, 금일 오전 10시 상담 예약 확인드립니다.]서인은 메시지를 읽고 화면을 껐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그 안으로 들어가 지하 주차장 버튼을 눌렀다.문이 닫히기 직전까지도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오전 9시 55분.서인은 법무법인 세경이 입주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예약 시간보다 5분 빨랐다.차에서 내리기 전 휴대폰을 확인했다.부재중 전화 일곱 통.전부 아버지였다.서인은 한동안 화면을 바라봤다.전화가 다시 울렸다.[아버지]여덟 번째였다.이번에는 받았다.“네.”― 너 지금 어디냐.인사도 없었다.서인은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밖이에요.”― 회사 아니야?“조금 있다 갈 거예요.”― 지금 당장 본사로 와.목소리가 다급했다.평소라면 화부터 냈을 사람이었다.오늘은 달랐다.그 차이가 한성의 상황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 서인은 입술을 다물었다.“오후에 갈게요.”― 오후가 문제가 아니야. 권 서방이 연락을 안 받아.서인의 표정이 아주 조금 굳었다.“아버지.”― 내가 어제 분명히 얘기했는데 아무 대답도 없잖아. 네가 말 좀 해. 우진에서 급한 불만 꺼주면—“제가 하지 말라고 했어요.”전화기 너머가 조용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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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부탁드려요.”“잘 챙겨볼게요.”도윤이 펜을 들었다.“권재하 씨도 이혼에는 동의하셨고요?”“네.”“협의이혼으로 진행하시고.”“네.”“재산 분할은 혼전계약서대로. 위자료 청구도 없고요.”“맞아요.”“공동명의 재산은요?”“없어요. 결혼하고 나서도 각자 관리했어요.”“현재 거주 중인 집은 권재하 씨 명의고요.”“네.”펜 끝이 움직였다.도윤이 서류를 한 장 넘겼다.“정리가 잘돼 있네요.”“그렇죠?”“두 분 사이에 따로 다툴 만한 부분도 거의 없고요.”서인이 카페라떼를 한 모금 마셨다.“사이가 좋아서요.”도윤의 입가에 옅은 웃음이 번졌다.“그 말은 조금 의외네요.”“왜요?”“이혼 상담하면서 자주 듣는 말은 아니라서요.”“그래도 사실인데요.”“그렇겠죠.”“안 믿어요?”“아뇨.”도윤이 웃었다.“서인 씨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죠.”그는 이유를 더 묻지 않았다.대신 서류를 가지런히 정리했다.“잘 끝내고 싶은 거죠?”“뭐를요?”“결혼이요.”도윤의 말투는 가벼웠다.“싸우지 않고, 서로 곤란해지는 일도 없이.”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네.”“서인 씨답네요.”“제가 원래 그렇게 평화주의자였어요?”“평화주의자라기보다는.”도윤이 웃었다.“끝낼 때까지 책임지는 편이었죠.”서인은 별다른 대답 없이 카페라떼를 한 모금 더 마셨다.“발표는 두 달 뒤로 미루는 거고요?”“네.”“법적인 절차와 대외 발표는 별개라 문제는 없어요. 그사이에 내용이 새어나가지 않게 양쪽에서만 조심하시면 되고요.”“그건 재하 씨랑 얘기 끝났어요.”“당분간 같은 집에서 지내신다고 했죠?”“두 달 동안은요. 제가 갑자기 나오면 기자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그렇겠네요.”도윤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공식 일정도 그대로 소화할 거예요.”“두 분이 함께 참석하는 일정도요?”“네.”“알겠어요. 그 부분까지 고려해서 진행할게요.”도윤이 몇 장의 서류를 서인 쪽으로 돌려놓았다.“절차 자체는 어렵지 않아요. 권재하 씨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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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제정신이야?”예상했던 첫마디였다.서인은 회장실 소파에 앉으며 가방을 옆에 내려놓았다.맞은편에는 한성그룹 회장 한정호가 서 있었다.“앉으세요, 아버지.”“내가 지금 앉게 생겼어?”“저는 앉을게요.”서인은 정말 앉았다.한정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알아요.”“아는데 이혼을 해?”“네.”“하필 지금?”“지금이라서 하는 거예요.”한정호가 헛웃음을 터뜨렸다.“너 미쳤구나.”서인은 대꾸하지 않았다.아침부터 두 번째 듣는 말이었다.“권 서방한테 지원하지 말라고 한 것도 사실이야?”“네.”“왜!”“한성 일이니까요.”“우진이 남이야? 권 서방이 네 남편인데!”“곧 아니게 될 거고요.”한정호의 표정이 굳었다.“그걸 진짜 하겠다는 거야?”“네.”“이 상황에?”“그래서요.”“그래서?”한정호가 헛웃음을 터뜨렸다.“네가 지금 뭘 해놓은 건지는 알아?”서인은 말이 없었다.“어제까지만 해도 우진에서 검토하던 지원안이 있었어.”그가 손가락으로 책상을 내리쳤다.“오늘 아침 전부 보류됐어.”“…….”“신규 자금 지원도, 지급보증도, 공동사업 선투자까지 전부.”한정호가 서인을 노려봤다.“네가 권 서방한테 그딴 말을 해서!”“제가 부탁한 건 맞아요.”“부탁?”한정호의 목소리가 터졌다.“네가 우진 손을 직접 잘라놓은 거야!”“우진 손 아니면 못 버티는 회사면 이미 문제가 있는 거잖아요.”“한서인!”탁.한정호가 휴대폰을 책상 위로 내리쳤다.“너 지금 회사 망하는 게 장난 같아?”“장난 같았으면 여기 안 왔어요.”“너 때문에 채권단 분위기까지 달라졌어!”서인의 눈빛이 가라앉았다.“저 때문에요?”“우진에서 손 뗐다는 얘기 돌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다들 한성이 끝났다고 생각할 거야!”“그럼 우진이 계속 돈을 넣어줘야 끝난 회사가 아닌 건가요?”“지금 말장난하자는 거야?”“아뇨.”서인은 여전히 차분했다.“현실적인 얘기 하는 거예요.”“현실적인 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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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아.”그뿐이었다.비서가 오히려 서인의 눈치를 살폈다.“객실을 하나 더 요청할까요?”“아뇨.”“괜찮으시겠어요?”“방이야 크겠죠.”“네?”“스위트룸이라면서요.”“아…… 네.”“그럼 됐어요.”서인은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권재하와의 메시지창을 열었다.[일정 바뀌었대요.][어떻게요.][1박 2일.][알겠습니다.]서인은 한 줄을 더 보냈다.[방 하나래요.]답장은 곧바로 왔다.[그러네요.]끝이었다.서인은 화면을 잠시 내려다봤다.그러고는 휴대폰을 잠갔다.“상무님.”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정말 객실 추가 안 해도 되세요?”“네.”“그래도 혹시 불편하시면—”“괜찮아요.”서인은 태연하게 일정표를 다시 넘겼다.“침실 두 개짜리겠죠.”“확인해볼까요?”“아뇨.”서인은 그대로 회의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아니어도 상관없고요.”방 하나쯤이야.안 자면 그만이었다.이혼하기로 한 뒤 처음 맞는 주말이었다.토요일 오전 10시.서인은 차창에 기대 태블릿 화면을 넘겼다. 채권단 회의 이후 수정된 자구안이었다.비핵심 계열사 매각과 보유 부동산 처분. 유통 부문 구조조정까지.어제 회장실에서 한바탕 뒤집어놓은 것치고는 달라진 게 별로 없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우진의 지원을 포기하지 않았고, 서인은 그 돈 없이 한성을 살릴 방법을 찾고 있었다.옆자리에서는 재하가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기사까지 셋이 탄 차 안은 조용했다. 가끔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와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섞였다.휴대폰이 울린 건 고속도로에 올라선 뒤였다.비서였다.서인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네.”“오늘 일정 변경된 부분 있어서 다시 전달드리겠습니다. 오후 1시 리조트 도착 후 오찬, 3시 후원 기업 관계자 간담회, 5시 포토월 촬영, 6시 30분 만찬입니다.”“내일은요?”“오전 9시 추가 간담회 그대로고요. 11시 체크아웃 예정입니다. 포토월만 부부 동반 참석자 별도 촬영이 추가돼서 조금 길어질 것 같습니다.”“알겠어요.”통화를 끊은 서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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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외모뿐 아니라 말씀도 아주 좋으십니다.”“이럴 때라도 잘해둬야죠.”재하가 웃으며 서인을 바라봤다.“와이프한테 점수 좀 따게.”자연스럽게 시선이 서인에게 모였다.서인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와인잔을 내려놓으며 우아하게 웃었다.“이미 충분히 따셨어요.”“다행이네.”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재하도 낮게 웃었다.가볍게 오가는 말에는 망설임이 없었다.집에서는 서로 존댓말로 필요한 말만 하는 두 사람이었지만, 밖에서는 달랐다.행사에 함께 참석하고, 사진을 찍고, 부부에 관한 질문을 받는 일은 결혼한 직후부터 계속되어왔다.어떻게 웃어야 자연스러운지.어느 정도의 농담이 보기 좋은지.서로 굳이 맞춰보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삼 년이면 이 정도는 연기라고 부르기도 애매했다.어느 순간부터는 반사에 가까웠다.세 번째 코스가 나왔을 때였다.서인은 접시를 내려다봤다.갑각류 소스가 들어간 요리였다.먹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특유의 비린 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포크를 들려던 순간 옆에서 접시가 움직였다.재하가 자신의 것을 서인 앞으로 밀어놓았다.“여보, 이거 먹어요.”사람들 앞에서만 듣는 호칭이었다.서인이 그를 바라봤다.“당신 건 괜찮아요?”“나는 이쪽도 괜찮아.”재하는 대답하면서 이미 두 사람의 접시를 바꿔놓았다.서인이 새로 놓인 접시를 내려다보다 웃었다.“그럼 잘 먹을게요. 고마워요.”“많이 먹어요.”맞은편에 있던 여성이 그 모습을 보고 미소 지었다.“권 대표님이 한 상무님을 정말 세심하게 챙기시네요.”“그러게요.”서인이 재하를 바라보며 말했다.“저보다 제 입맛을 더 잘 기억할 때가 있어요.”“같이 살다 보면 알게 되죠.”재하가 태연하게 와인잔을 들었다.“갑각류 소스는 안 먹고, 고수도 별로 안 좋아하고.”“고수는 취향이 확실히 갈리잖아요.”“양고기도.”서인이 작게 웃었다.“그것까지 말씀하실 거예요?”“싫어하는 것만 말했나.”재하가 잠시 생각하는 시늉을 했다.“좋아하는 것도 압니다.”“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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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월요일 오전 8시 10분.서인이 주방으로 내려왔을 때 재하는 이미 아침을 먹고 있었다.흰 셔츠에 검은 바지 차림이었다. 재킷은 의자 등받이에 걸쳐져 있었고, 한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일찍 일어났네요.”“오늘 회의가 좀 빨라서요.”서인은 맞은편에 앉아 커피부터 한 모금 마셨다. 휴대폰을 확인하자 차도윤에게 온 메시지가 하나 있었다.[오늘 오후에 법원 쪽 일정 확인해서 연락드릴게요.]짧게 답장을 보내는 사이 재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먼저 갑니다.”“네. 다녀와요.”재하가 재킷을 집어 들고 지나가려던 순간, 서인이 문득 그를 불렀다.“잠깐만요.”“왜요?”서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재하의 앞으로 다가갔다.넥타이가 조금 틀어져 있었다.별생각 없이 손을 뻗어 매듭을 바로잡았다. 넥타이를 가볍게 당긴 뒤 흐트러진 셔츠 깃까지 정리하는 동안 재하는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됐어요.”서인이 손을 떼려던 순간 재하가 고개를 숙였다.시선이 마주쳤다.가까웠다.재하의 시선이 잠시 서인의 얼굴에 머물렀다.서인이 먼저 손을 내렸다.“이제 가도 돼요.”“네.”재하는 아무렇지 않게 재킷을 걸쳤다. 현관으로 향하면서 방금 서인이 바로잡아준 넥타이를 손끝으로 한 번 쓸어내린 뒤 그대로 집을 나섰다.***오후에는 도윤에게 연락이 왔다.예상했던 대로 절차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두 사람의 이혼 의사가 확실한 데다 재산 문제까지 이미 정리되어 있어 복잡하게 끌 것도 없었다.“그럼 다음 주에 법원에서 봐요.”“네.”“제가 시간 확정되면 다시 연락할게요.”“고마워요.”통화가 끝나는가 싶었는데 도윤이 서인을 불렀다.“서인 씨.”“네?”“요즘도 점심 거르면서 일해요?”뜬금없는 질문에 서인이 웃었다.“그건 갑자기 왜 물어요?”“지난번에 챙겨 먹으라고 했는데 왠지 안 들었을 것 같아서요.”“저 그렇게 말 안 듣는 사람 아니에요.”“그럼 오늘은 먹었어요?”서인은 잠깐 대답하지 않았다.오늘 점심은 회의실에서 커피 한 잔으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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