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밀라노 공항에 착륙했다.약혼식이 끝난 지 5시간이 지난 뒤였다.기내 안내음이 울린 직후, 내 핸드폰이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핸드폰 화면에 뜬 4개의 번호는 각각 아빠, 엄마, 하지연, 그리고 주호민이었다.나는 곧바로 전화를 받지 않고, 그저 캐리어를 끌고 탑승구를 빠져나왔다.공항 밖으로 나와서 근처 편의점에다 잠시 자리를 잡았다.전화는 계속 울리다가 자동으로 끊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벨이 울렸다.슬프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더 이상 미련이 남아 있지 않았다.굳이 하나 후회되는 게 있다면, 대형 스크린의 영상을 본 가족들의 표정을 직접 보지 못했다는 것뿐이었다.몇 분 뒤 나는 마음을 추스른 뒤 가장 먼저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통화가 연결되자마자 엄마의 날카로운 고함이 귓가를 때렸다.[하지아,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너 미쳤어?][이런 것들을 사람들 앞에서 틀어놓으면 어떻게 될지 생각은 해봤어?]나는 창밖으로 낯선 외국의 거리를 바라봤다.귀가 따끔거릴 만큼 날카로운 목소리였다.다행히 먼 거리와 6시간의 시차 덕분에 나는 조금씩 마음이 놓였다.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평소 엄마가 하지연을 감싸며 내게 하던 말을 그대로 돌려줬다.“그냥 장난 좀 한 건데, 뭘 그렇게 따져요?”그 한마디가 엄마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엄마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높아졌다.[장난? 이런 장난이 어디 있어? 집안일을 밖에 드러내면 어떡해!][우리가 네 가족이고, 지연이는 네 동생이야! 네가 이렇게 하고도 우리한테 미안하지도 않아?]나는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오히려 헛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예전에는 엄마 아빠가 지연이랑 같이 나한테 장난칠 때도 그냥 게임이라고 했잖아요.”“왜 당신들은 해도 되고, 나는 하면 안 돼요?”엄마가 잠시 말을 멈췄다.늘 순종적이던 내가 이렇게 대놓고 반박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하지만 나는 엄마가 정신을 차릴 틈조차 주지 않고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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