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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チャプター

제11화

5년 후.공항 터미널 안을 서준우는 굳은 표정으로 빠르게 걸어가고 있었다.뒤에서는 비서가 캐리어를 밀면서 간신히 따라붙었다.하지만 서준우를 쫓아가는 사람은 비서뿐만이 아니었다.“잠깐만 기다려!”다급한 목소리가 터미널 안에 울려 퍼졌다.서준우는 걸음을 멈추기는커녕 오히려 더 빠르게 걸었다.임지연도 서준우가 자신을 멀리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래도 다 된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던 결혼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5년 전만 해도 두 사람은 곧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조금만 지나면 자신이 서준우의 아내가 될 거라고 믿었다.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임지연은 여전히 약혼녀일 뿐이었다.서준우가 언젠가는 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기다려 주길 바라면서, 계속 남자의 뒤를 따라다녔다.하지만 지난 5년 동안 줄곧 쫓아가는 쪽은 임지연이었다.그동안 H시에서 XS그룹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진 반면, JS그룹의 사정은 점점 어려워졌다.두 집안의 정략결혼은 임씨 가문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다.XS그룹이 손을 내밀어 준다면 상황을 충분히 바꿀 수 있었다.그래서 서준우가 지난 몇 년 동안 임씨 가문에 냉담한 태도를 보였는데도, 집안에서는 한 번도 파혼을 생각하지 않았다.공항에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갔다.소란스러운 터미널 안에서 임지연의 목소리도 금세 사람들 소리에 묻혔다.하지만 막 비행기에서 내린 한 여자가 그 목소리를 들었다.걸음을 잠시 멈춘 여자는 무심코 소리가 난 쪽을 바라봤다.사람들 사이로 누군가의 뒷모습이 반쯤 보였을 뿐이었다.바로 김소아였다.김소아는 캐리어를 끌면서, 유리창 너머로 익숙하면서도 낯선 하늘을 바라봤다.5년 만이었다.잠시 묘한 기분이 들었다.지난 5년 사이 김소아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자신의 일을 가지고 있었고, 마음에도 훨씬 여유가 생겼다.생각해 보면 그 시작에는 서씨 가문과 서준우에게 받은 돈도 있었다.그 돈마저 없었다면, 낯선 나라에서 혼자 버티는 일은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덕분에 형편 때문에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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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서준우는 자신의 신분도, 보답하겠다고 했던 말도 모두 잊어버렸다.김소아는 자신이 대신 내 준 병원비와 하루치 아르바이트비가 아까웠다.결국 서준우를 그대로 데려와서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게 했다.약속했던 보답이라도 받자는 생각이었다.그렇게 시작된 생활이 3년이나 이어졌다.두 사람은 가장 힘든 시절을 서로 의지하며 버텼고, 어느새 서로에게 마음을 주게 됐다.서준우는 김소아를 사랑한다고 했다.돈을 많이 벌어서 꼭 결혼하겠다고도 했다.한창 뜨겁게 사랑하던 때에는 김소아의 손을 잡고 타투 숍까지 찾아가서, 쇄골에 그녀의 이름을 새겼다.막 새긴 타투 주변은 붉게 부어 있었다.아프지 않냐는 말에도 서준우는 김소아를 바라보며 아무렇지 않은 듯 웃었다.부모님을 차례로 잃은 뒤 김소아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그때는 두 사람이 평생 이렇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하지만 한 가지를 잊고 있었다.자신만 바라보던 그 서준우는 기억을 잃은 뒤의 서준우였다.그에게는 원래 돌아갈 곳이 따로 있었다.결국 서준우는 기억을 되찾았다.김소아를 데리고 서씨 가문으로 돌아가서 큰 저택에서 살기 시작했다.하지만 더 이상 예전의 서준우는 아니었다.갑자기 울린 핸드폰 소리에 김소아는 생각에서 벗어났다.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한 순간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강주원이었다.다 지난 일이었다.지금의 김소아에게는 이미 자신만의 삶이 있었다.전화를 받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아야, 도착했어?]김소아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가 상대가 볼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웃었다.“응. 무사히 도착했어. 넌?”[여기 일이 조금 꼬여서 며칠 더 있어야 할 것 같아.]강주원이 한숨을 내쉬었다.김소아는 살짝 웃었다.“큰일이야?”[아니, 별건 아니야. 걱정하지 마. 길어도 일주일이면 돌아가.]잠시 후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이어졌다.[대신 새 회사 첫 출근은 혼자 해야겠네. 미안해서 어쩌지?]김소아의 귓불이 살짝 붉어졌다.“말은 잘해.”전화를 끊은 김소아는 더 머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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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왜?”임지연은 눈물이 고인 채 서준우를 바라봤다.“왜 계속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는데?”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처음에는 준우 씨도 동의했잖아. 나랑 결혼하겠다고 했잖아.”분명 먼저 결혼의 가능성을 열어 준 사람은 서준우였다.5년 전.설레는 마음으로 웨딩드레스를 입은 임지연은 아버지의 팔을 잡은 채 서준우에게 걸어갔다.평생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남을 거라고 믿었다.하지만 서준우의 한마디가 모든 걸 무너뜨렸다.결혼식 당일이었다.주례가 임지연을 아내로 맞이하겠느냐고 묻자, 서준우는 한참 동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임지연이 몇 번이나 재촉한 뒤에야 고개를 들었다.눈빛은 이미 단호했다.그리고 모두가 듣고 있는 앞에서 말했다.“싫습니다.”잠시 후 다시 분명히 말했다.“임지연 씨와 결혼하지 않겠습니다.”서준우는 손에 들고 있던 반지를 내려놓았다.가슴에 꽂혀 있던 신랑 부토니에까지 떼어 낸 뒤 그대로 결혼식장을 떠났다.서씨 가문은 순식간에 상류층의 웃음거리가 됐다.오랫동안 준비한 결혼식이 당일에 무산됐다는 이야기가 한동안 끊이지 않았다.임씨 가문도 그대로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그 뒤 두 집안은 여러 사업에서 계속 부딪쳤고, 밀리는 쪽은 늘 임씨 가문이었다.상류층에서의 입지가 흔들릴 정도로 상황이 나빠지고 나서야, 임씨 가문에서 한발 물러섰다.당시에는 서준우가 결혼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뿐이라고 하면서, 다시 정략결혼 이야기를 꺼냈다.혼약은 그대로 유지됐다.대신 결정권은 전부 서준우에게 넘어갔다.서준우는 예전에 김소아를 외면했던 것처럼 임지연을 외면했다.과거 김소아가 모욕을 당할 때 모른 척했던 것처럼, 이제는 임지연이 어떤 대우를 받아도 개입하지 않았다.김소아가 겪었던 일을 임지연도 똑같이 겪게 하고 싶었다.임지연은 서준우를 좋아했고 집안의 절박한 사정도 걸려 있었다.그래서 지금까지 모두 참았다.그래도 서준우가 직접 손을 댄 적은 한 번도 없었다.오늘이 처음이었다.그것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결국 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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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김소아가 서준우와 다시 마주친 건 H시로 돌아온 지 일주일째 되던 날이었다.입사 절차를 마치고 수석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상사인 이진아가 계약서 하나를 내밀었다.“상대 쪽에서 이번 협상은 꼭 소아 씨가 맡아 달래.”이진아가 계약서를 김소아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거 정말 큰 프로젝트야. 이것만 따내면 우리 지사도 H시에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어. 무조건 성사시켜야 해.”김소아는 얼떨결에 계약서를 받아 들었다.“저를 지목했다고요?”이상했다.김소아는 원래 H시 출신이었지만, 예전에는 하루하루 생활비를 걱정하며 살던 평범한 사람이었다.서준우와 서씨 가문을 알게 된 뒤에도 자신을 제대로 눈여겨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이후 Y국으로 떠나 2년 동안 건축을 공부했고, 졸업 후 3년 만에 신입 디자이너에서 수석 디자이너 자리까지 올라왔다.업계에서 조금씩 이름을 알리고 있기는 했다.하지만 상대 회사에서 직접 지목해서 협상을 맡길 정도는 아니었다.더구나 자신은 귀국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국내에는 아직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김소아는 잠시 생각하다 이진아를 바라봤다.“제가 맡는 거라면 상대 회사가 어딘지는 알아야 할 것 같은데요.”이진아가 바로 대답하지 않자 다시 물었다.“어느 회사예요?”이진아가 활짝 웃었다.“XS그룹.”김소아는 말없이 계약서를 내려다봤다.어느 정도 예상했던 이름이었다.그래도 직접 듣고 나니 잠시 말이 나오지 않았다.이진아는 그런 기색을 눈치채지 못한 듯,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소아 씨, XS그룹에 이런 인맥이 있었으면 진작 얘기하지 그랬어? 이 정도면 내가 자리를 비켜 줘야겠는데?”웃으면서 김소아를 바라봤다.“굳이 수석 디자이너로 있을 필요가 있어?”김소아는 고개를 저었다.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그런 인맥 없어요.”잠시 후 차분히 덧붙였다.“설령 있더라도 제 실력으로 디자인 총괄 자리까지 올라가고 싶어요.”이진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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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미리 준비했던 말들은 어느새 머릿속에서 모두 사라져 있었다.서준우는 한동안 김소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정말 많이 달라져 있었다.그리고 많이 성장해 있었다.어쩌면 지난 5년 동안 제자리에 멈춰 있던 건 자신뿐인지도 몰랐다.“대표님.”직원들끼리 의견을 나눈 뒤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서준우를 불렀다.“어떻게 진행할까요?”김소아도 자연스럽게 그쪽을 바라봤다.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가 금세 떨어졌다.김소아가 먼저 시선을 거뒀다.서준우를 그저 거래처 대표로 대할 뿐이었다.서준우는 잠시 침묵했다.계약을 빌미로 김소아를 곤란하게 만들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결국 직접 계약서에 서명했다.그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김소아도 안심했다.이진아와 함께 XS그룹 사람들을 배웅한 뒤 회사로 돌아가려던 순간이었다.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김소아 씨, 잠깐만.”김소아의 걸음이 멈췄다.두 사람 사이의 묘한 분위기를 눈치챈 듯, 주변에 있던 직원들은 하나둘 인사를 건네고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넓은 로비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잠시 침묵이 흘렀다.먼저 입을 연 건 서준우였다.“소아야.”목소리가 조금 잠겨 있었다.“그동안... 잘 지냈어?”김소아는 담담히 서준우를 바라봤다.잘 지냈다.서씨 가문에서 받은 돈 덕분에 유학도 무리 없이 마칠 수 있었고, 생활도 안정적으로 이어 갈 수 있었다.지금도 당시 받은 돈 중 상당한 돈이 남아 있었다.하지만 굳이 서준우에게 그걸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서 대표님.”김소아가 차분히 물었다.“다른 용건이 있으세요?”서준우의 표정이 곧바로 굳어졌다.‘대표님’이라는 호칭이 두 사람 사이에 선을 긋는 것 같았다.서준우는 입을 열었지만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눈가가 조금 붉어졌다.“소아야, 우리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소아가 조용히 말을 끊었다.“서 대표님.”시선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이제 우리라는 말은 쓰지 마세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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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소아야, 이 타투를 새길 때 정말 아팠어.”서준우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한층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눈가도 붉어졌고 몸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난 계속 널 사랑했어.”서준우는 김소아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네가 왜 나를 원망하는지도 알아. 그때는 내가 널 제대로 지켜 주지 못했고, 끝까지 네 편이 되어 주지도 못했으니까.”잠시 숨을 고른 뒤 쇄골의 타투를 가리켰다.“그래서 다시 새겼어.”하지만 그런 모습에도 김소아의 표정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많이 아팠어?”그 말에 서준우의 눈빛이 순간 밝아졌다.하지만 이어진 말에 금세 다시 표정이 굳어졌다.“그런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김소아의 목소리는 차분했다.“서준우, 내가 다시 새기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런 걸로 마음을 증명해 달라고 한 적도 없어.”시선이 잠시 타투에 머물렀다.“난 이제 그런 증명도 필요 없어.”서준우의 얼굴은 하얗게 굳어졌다.김소아의 담담한 눈빛에는 조금의 미련도 남아 있지 않았다.서준우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예전처럼 김소아의 손을 잡으려던 순간이었다.“이쯤 하시죠.”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서준우가 뻗은 손목을 누군가 단단히 붙잡았다.고개를 돌리자 흰 셔츠 차림의 남자가 서 있었다.강주원이었다.서준우는 갑자기 나타난 남자를 경계하듯 바라봤다.차분한 얼굴이었지만 눈빛은 싸늘했다.“주원아?”김소아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밝아졌다.“언제 왔어? 왜 말도 안 했어?”서준우를 바라볼 때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강주원은 그제야 손을 놓았다.김소아를 향한 표정도 한결 부드러워졌다.“방금 도착했어.”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먼저 보고 싶어서 바로 왔지.”그러면서도 서준우를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았다.김소아를 자연스럽게 자신의 뒤쪽으로 오게 하면서 서준우와 거리를 벌렸다.서준우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지면서 물었다.“당신 누구야?”그러자 강주원이 무심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제가 누구인 게 서 대표님과 무슨 상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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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서준우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그런 뜻이 아니야.”목소리가 다급했다.“소아야, 그때는 내가 잘못했어. 널 지켜 주지 못했고, 그래서 네가 실망해서 떠난 것도 알아.”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어 갔다.“내가 정말 잘못했어.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안 돼?”서준우는 김소아를 바라봤다.“우리 그때 정말 사랑했잖아.”목소리가 더 낮아졌다.“그런데 어떻게 아무 말도 없이 떠날 수 있어? 나한테 붙잡을 기회조차 안 주고.”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강주원은 결국 헛웃음을 터뜨렸다.그 소리에 서준우의 시선이 즉시 돌아갔다.조금 전 김소아와 자연스럽게 대화하던 강주원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턱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시선을 다시 김소아에게 돌렸다.“소아야...”하지만 김소아가 먼저 말을 끊었다.“서 대표님.”목소리는 다시 차분해져 있었다.“저를 붙잡아 두고 하실 얘기가 이런 것뿐이라면 이제 그만하시죠.”김소아는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방금 전 올라왔던 감정도 다시 가라앉아 있었다.“서로 시간 낭비하지 않으면 좋겠어요.”말을 마친 김소아는 그대로 돌아섰다.강주원도 뒤를 따라가다가 몇 걸음 뒤에서 문득 멈췄다.그리고 여전히 제자리에 서 있는 서준우를 돌아봤다.“5년 전에 소아가 그렇게까지 다치는 동안, 서 대표님은 옆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죠.”강주원의 목소리는 담담했다.“그런데 이제 와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다 없던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잠시 서준우를 바라보다 짧게 웃었다.“정말 뻔뻔스럽네요.”그 말을 남기고 강주원도 돌아섰다.서준우의 눈빛이 거세게 흔들렸다.한동안 그대로 서 있던 그의 얼굴에 서서히 복잡한 표정들이 떠올랐다.맞는 말이었다.미안하다는 말 몇 마디로 끝낼 일이 아니었다.잘못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적어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행동으로 보여 줘야 했다.그리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분명했다.5년 전 김소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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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김소아는 그날 이후 한동안 서준우를 다시 볼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불과 이틀 뒤.집 근처에서 서준우를 발견했다.김소아는 치미는 짜증을 억누르며 핸드폰으로 짧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런 뒤에야 서준우 쪽으로 다가갔다.그래도 일정한 거리는 유지했다.“여기 왜 왔어?”서준우는 그런 반응에도 별다른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피곤해 보였다.눈은 잔뜩 충혈되어 있었고 얼굴에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그런데도 김소아를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밝았다.“소아야...”김소아가 바로 말을 끊었다.“서 대표님.”목소리는 차분했다.“앞으로는 김소아 씨라고 불러 주세요.”잠시 서준우를 바라봤다.“우리 사이가 그렇게 이름을 부를 만큼 가깝지는 않잖아요.”서준우의 표정이 굳어졌다.한참 뒤 억지로 웃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소아야.”결국 다시 같은 이름을 불렀다.“네가 인정하지 않아도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까지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어.”목소리가 조금 더 낮아졌다.“아직 나를 원망하는 것도 알아.”서준우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그래도 내가 정말 잘못했다는 건 보여 줄게.”김소아는 별다른 반응 없이 그를 바라봤다.“그때 널 괴롭힌 사람들.”서준우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전부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잠시 멈췄다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임지연도 마찬가지야.”서준우는 김소아를 바라보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네가 원하는 대로 해도 돼.”서준우가 가까이 다가오려고 하자, 김소아가 자연스럽게 거리를 벌렸다.“할 말이 있으면 거기서 해.”목소리에는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당신들끼리 벌이는 그런 유치한 일에 나까지 끌어들이지 마.”김소아는 잠시 서준우를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정말 예전 일 때문에 미안하다면 그냥...”“난 포기 안 해.”서준우가 급하게 말을 끊었다.김소아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한 듯했다.“소아야, 난 아직도 널 사랑해.”목소리가 조급해졌다.“난 정말 너 없이는 안 돼.”이어 쉴 새 없이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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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김소아와 강주원이 처음 만난 건 5년 전이었다.김소아가 막 Y국에 도착했을 때였다.생활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언어도 통하지 않았다. 혼자 낯선 나라에 와 있다 보니, 한동안은 어디서부터 뭘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강주원은 그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었다.나중에 가까워지고 난 뒤에는 강주원에게 이런 말도 들었다.자신도 Y국에서 오래 살았지만, 현지어도 못 하고 아무 계획도 없이 혼자 외국까지 오고 두 달이 지나도록 기본적인 대화조차 못 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그래도 운은 좋았다.마침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강주원을 만났으니까.두 사람은 결국 거래를 하나 했다.김소아가 적지 않은 돈을 주는 대신, 강주원이 현지 생활을 도와주기로 한 것이다.현지어를 가르쳐 주고, Y국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알려 줬다.갈피를 잡지 못하는 김소아를 지켜보면서, 잘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도 도와줬다.오른손의 부상 때문에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자 왼손을 쓰는 연습도 함께했다.처음에는 글씨 하나 제대로 쓰지 못했다.그러다 조금씩 익숙해졌고, 결국 왼손으로도 완성도 높은 설계도를 그릴 수 있게 됐다.지금의 김소아가 되기까지 강주원의 도움은 분명 엄청나게 컸다.하지만 강주원이 자신을 좋아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처음 고백을 들었을 때도 한참이 지나서야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다.그날 이후 김소아는 일부러 강주원과 거리를 뒀다.강주원도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그렇다고 물러나지는 않았다.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다가왔다.그러다 김소아가 서준우와 있었던 일을 전부 털어놓았다.앞으로도 한동안은 누군가와 연애할 생각이 없다고도 말했다.그제야 강주원도 방식을 바꿨다.더 이상 예전처럼 밀어붙이지는 않았다.그렇다고 포기한 것도 아니었다.“괜찮아, 소아야.”강주원은 그때 그렇게 말했다.“난 그냥 네 옆에 있을게. 네가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누군가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잠시 웃으며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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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장씨, 이씨, 진씨, 왕씨 집안의 아가씨들이 같은 날 오른손을 크게 다쳤다는 소문은 금세 퍼졌다.그리고 바로 그날.평소처럼 회사에 가기 위해 차에 올라탄 김소아는 갑자기 정신을 잃었다.다시 눈을 떴을 때는 낯익은 방 안이었다.김소아는 한동안 주위를 살폈다.그러다 문득 기억해 냈다.5년 전 서준우를 따라 서씨 가문으로 들어왔을 때 사용했던 방이었다.그렇다면 자신을 이곳까지 데려온 사람이 누군지도 뻔했다.김소아는 곧바로 일어나서 문으로 향했다.손잡이를 돌려 봤지만 문은 밖에서 잠겨 있었다.“김소아 씨, 일어나셨어요?”문밖에서 가정부의 목소리가 들렸다.“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바로 대표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김소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급하게 멀어지는 발소리가 들렸다.김소아는 방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밖으로 나갈 수 있는 곳은 전부 막혀 있었다.확인할 건 다 확인했다.김소아는 더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서준우가 대체 뭘 하려는 건지 한번 보기로 했다.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다.잠시 뒤 방문이 열리고 정장을 입은 서준우가 들어왔다.김소아가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자,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익숙한 사람과 익숙한 방.지금 상황만 아니었다면, 순간 5년 전으로 돌아온 듯한 착각이 들었을지도 몰랐다.“소아야...”서준우가 무심코 이름을 불렀다.김소아가 돌아봤다.눈빛에는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서준우는 그 반응을 보지 못한 듯 웃으면서 방 안을 둘러봤다.“이 방, 다시 예전처럼 꾸며 놨어.”김소아를 바라보며 물었다.“기억나? 우리가 여기 살던 때랑 거의 똑같지?”정말 비슷했다.예전에 두 사람이 다투다 떨어뜨려서 모서리가 깨진 액자까지 똑같이 만들어서 같은 자리에 놓아두었다.굳이 묻지 않아도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아무리 똑같이 되돌려 놓는다 해도 두 사람의 감정까지 예전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김소아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날 여기까지 데려온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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