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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워온 재벌 후계자를 버리기로 했다

주워온 재벌 후계자를 버리기로 했다

By:  꼬마어Completed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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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원 줄게. 일주일 안에 출국해서 다시는 내 아들 앞에 나타나지 마.” 김소아의 맞은편에 앉은 한미정은 노골적으로 경멸 어린 시선을 보냈다. 예전 같았으면 김소아는 눈시울을 붉히며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저 준우 씨랑 돈 때문에 만나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은 그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한미정은 예상 밖의 대답에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비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주제 파악은 할 줄 아는구나.” 마지막 ‘주제 파악’이라는 말에 유난히 힘이 들어갔다. 김소아와 서준우는 애초부터 사는 세계가 다르다는 뜻이었다. 김소아는 말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수표를 받아 든 뒤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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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100억 원 줄게. 일주일 안에 출국해서 다시는 내 아들 앞에 나타나지 마.”

김소아의 맞은편에 앉은 한미정은 노골적으로 경멸 어린 시선을 보냈다.

예전 같았으면 김소아는 눈시울을 붉히며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저 준우 씨랑 돈 때문에 만나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은 그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한미정은 예상 밖의 대답에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비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주제 파악은 할 줄 아는구나.”

마지막 ‘주제 파악’이라는 말에 유난히 힘이 들어갔다.

김소아와 서준우는 애초부터 사는 세계가 다르다는 뜻이었다.

김소아는 말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수표를 받아 든 뒤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집은 지나치게 넓었다.

여기 살고 있는 김소아조차 종종 길을 헷갈릴 정도였다.

그나마 익숙한 건 거실 테이블 위에 놓인 사진 한 장뿐이었다.

사진 속 서준우는 김소아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고개를 숙이면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에는 다정함이 가득했다.

김소아는 사진을 가만히 쓸어보다 문득 3년 전의 그 비 오는 밤을 떠올렸다.

그날, 골목 어귀에서 서준우를 발견했다.

온몸은 피투성이였고 눈빛은 초점 없이 흐려져 있었다.

“누구세요?”

김소아가 묻자 서준우는 멍하니 고개를 저었다.

“저... 기억이 안 나요.”

빗물과 피가 뒤섞이면서 머리카락을 타고 떨어졌다.

그렇게 김소아는 기억을 잃은 남자를 집으로 데려왔다.

두 사람이 함께 지내던 곳은 작은 단칸방이었다.

벽지는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고 수도관에서는 물이 샜다.

겨울에는 이불을 세 겹이나 덮어야 겨우 추위를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가난했던 그 시절, 두 사람은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했다.

서로 의지하며 버텼고, 어느새 서로에게 유일한 사람이 됐다.

김소아가 야근하는 날이면 서준우는 세 시간씩 건물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기다렸다.

단지 함께 집에 가고 싶다는 이유로.

생리통이 심해서 식은땀을 흘릴 때면 밤새 잠도 자지 않고 배를 문질러 줬다.

김소아가 몇 번이나 들여다보고도 비싸서 포기했던 목걸이를 사 주겠다며, 몰래 아르바이트를 하루에 다섯 군데씩 뛰기도 했다.

굳이 힘든 점을 하나 꼽자면, 밤마다 좀처럼 김소아를 놓아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김소아가 얼굴을 붉히며 그만하라고 하면 서준우는 귓불을 살짝 깨물며 웃었다.

“자기야, 너무 사랑해서 그래.”

서로 가장 뜨겁게 사랑하던 때에는, 김소아의 손을 잡고 타투 숍까지 찾아가서 쇄골에 그녀의 이름을 새겼다.

타투이스트가 아프지 않겠느냐고 묻자, 서준우는 김소아를 바라보며 웃었다.

“아파야 좋죠. 그래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안 잊을 테니까.”

김소아는 두 사람이 영원히 이렇게 행복할 거라고 믿었다.

서준우가 기억을 되찾기 전까지는.

그제야 알았다.

서준우는 길거리를 떠돌던 가난한 남자가 아니었다.

J시에서도 손꼽히는 재력가 집안인 서씨 가문의 후계자이자, 금융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당시 경쟁 세력의 계략에 휘말려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 충격으로 기억을 잃은 채 거리를 떠돌게 된 것이었다.

기억을 되찾은 뒤 서준우는 김소아를 데리고 거대한 집으로 들어왔다.

욕실 하나만 해도 김소아가 예전에 살던 집보다 열 배는 컸다.

하지만 그날 이후 서준우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이름조차 들어 본 적 없는 명품 맞춤 정장을 입었고, 값비싼 시계를 찬 채 수백억 원대 계약을 논의하는 사람이 됐다.

밤새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도 많았다.

김소아는 애써 스스로를 달랬다.

그저 일이 바빠서 그런 거라고.

그러던 어느 날, 연예 뉴스에는 온통 서준우와 JS그룹의 딸 임지연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다.

사진 속 서준우는 직접 차 문을 열어 주고 있었다.

서로 마주 보며 웃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김소아는 차마 눈을 떼지 못했다.

댓글에는 하나같이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는 말뿐이었다.

그날 밤 김소아는 혼자 창가에 앉아서 밤새 달을 바라봤다.

그리고 마침내 인정했다.

눈보라를 뚫고 퇴근길에 데리러 오던 서준우.

막노동까지 하며 자신에게 목걸이를 사 줬던 서준우.

쇄골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던 서준우.

그 사람은 기억을 되찾은 날 이미 사라졌다.

지금의 서준우와 자신은 애초부터 살아온 세계가 달랐다.

서준우가 있는 곳에 김소아가 설 자리는 없었다.

그에게는 자신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온, 그만큼 눈부신 사람이 더 잘 어울릴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더 버틸 이유도 없었다.

이제는 놓아주자.

서준우도, 자신도.

그날 밤에도 넓은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서준우는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김소아는 예전처럼 새벽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다음 날 아침이 밝자 곧장 대사관 비자 발급 센터로 향했다.

급행으로 신청하면 비자를 일주일 안에 받을 수 있었다.

센터를 나왔을 때는 이미 정오였다.

김소아는 근처에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문을 여는 순간, 걸음이 멈췄다.

창가 자리에 앉은 서준우가 휴지로 임지연의 입가를 다정하게 닦아주고 있었다.

그 눈빛은 너무도 다정했다.

예전 단칸방에서 김소아를 바라보던 눈빛과 똑같았다.

순간 가슴이 꽉 조여들었다.

김소아는 그대로 돌아서려다 입구에 놓인 화분을 건드리고 말았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서준우가 고개를 들었다.

김소아를 발견한 순간, 눈빛에 남아 있던 온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서준우가 천천히 다가왔다.

“나 미행했어?”

김소아가 입을 열기도 전에 차가운 말이 이어졌다.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은 사업 얘기하다 찍힌 거라고 설명했잖아.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건데?”

김소아는 뭔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목이 막힌 듯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어제 한미정이 했던 말이 다시 귓가에 맴돌았다.

“준우와 지연이 결혼은 두 집안에서 진작에 얘기가 끝난 일이야. 준우도 지연이를 좋아하고...”

사업 얘기라더니.

정략결혼도 사업에 포함되는 걸까?

“준우 씨, 그렇게까지 화내지 마.”

임지연도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 사이를 중재하듯 말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같이 앉아요.”

김소아가 거절하기도 전에 임지연이 팔을 잡아서 식탁으로 데려갔다.

김소아는 얼떨결에 자리에 앉았다.

맞은편에는 차갑게 굳은 서준우의 얼굴이 보였다.

“소아 씨는 뭐 드실래요?”

임지연이 메뉴판을 내밀었다.

“여기 요리가 꽤 괜찮아요.”

메뉴판은 온통 알아볼 수 없는 외국어로 적혀 있었다.

김소아는 난처함을 숨기며 메뉴판을 다시 밀어 놓았다.

“배 안 고파요.”

“그럼 수프라도 드세요.”

임지연이 해산물 수프를 한 그릇 떠서 앞에 놓았다.

“맛있어요.”

국물 위에 떠 있는 새우를 보는 순간 속이 뒤틀렸다.

김소아는 해산물 알레르기가 심했다.

막 거절하려는데 서준우의 핸드폰이 울렸다.

서준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를 받으러 갔다.

훤칠한 뒷모습 위로 고급스러운 정장이 눈에 들어왔다.

잡지에서 본 적이 있는 그 옷은 예전에 살던 집을 통째로 사고도 남을 만한 엄청나게 비싼 가격이었다.

“어서 먹어 봐요.”

임지연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

“김소아 씨 형편으로는 평소에 이런 비싼 음식 먹어 볼 기회도 없잖아요.”

김소아가 고개를 들었다.

임지연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설마 준우 씨랑 잠깐 만났다고 서씨 가문에 들어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죠?”

임지연은 손끝으로 잔 가장자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준우 씨가 기억을 잃지 않았으면, 김소아 씨 같은 사람은 애초에 준우 씨 근처에도 못 갔어요.”

김소아는 냅킨을 꽉 움켜쥐었다.

가난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모욕당해도 되는 건 아니었다.

“임지연 씨, 저희는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데 왜 이런 말씀을...”

“어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지연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그러면서 손으로 해산물 수프 그릇을 일부러 엎었다.

뜨거운 국물이 임지연의 손등을 덮치면서 김소아의 손에도 그대로 튀었다.

소리를 들은 서준우가 급히 돌아왔다.

곧바로 임지연의 손을 잡았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임지연은 눈시울을 붉혔다.

“내가 잘못했어. 준우 씨랑 둘이 밥 먹는 걸 봤으니 김소아 씨 입장에서는 화가 날 만하잖아...”

서준우의 시선이 곧장 김소아에게 향했다.

“김소아, 내가 몇 번이나 설명해야 해?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내가 그런 게 아니라, 지연 씨가...”

“됐어!”

서준우가 말을 끊었다.

“내 눈으로 직접 봤는데 뭘 더 말해? 너 언제부터 이렇게 말이 안 통했어?”

서준우는 임지연을 감싸안고 그대로 식당을 나갔다.

임지연은 그의 어깨 너머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김소아를 향해 보란 듯이 미소를 지었다.

김소아는 그 자리에 서서 떨리는 손을 내려다봤다.

붉게 덴 피부 위로 벌써 물집이 올라오고 있었다.

바늘로 찌르는 듯 욱신거렸다.

하지만 서준우의 눈에는 임지연의 살짝 붉어진 손등만 보이는 듯했다.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예전의 서준우는 김소아가 조금만 다쳐도 견디지 못하던 사람이었다.

3년 전, 김소아가 요리를 하다 손을 뎄을 때는 눈시울까지 붉힌 채 한밤중에 약국으로 뛰어갔다.

돌아오자마자 직접 약을 발라 주면서 몇 번이고 물었다.

“소아야, 많이 아파?”

그때 서준우의 눈에는 오직 김소아만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서준우는 더 이상 김소아를 보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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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100억 원 줄게. 일주일 안에 출국해서 다시는 내 아들 앞에 나타나지 마.”김소아의 맞은편에 앉은 한미정은 노골적으로 경멸 어린 시선을 보냈다.예전 같았으면 김소아는 눈시울을 붉히며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저 준우 씨랑 돈 때문에 만나는 게 아니에요.”하지만 지금은 그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한미정은 예상 밖의 대답에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비웃음을 흘렸다.“그래도 주제 파악은 할 줄 아는구나.”마지막 ‘주제 파악’이라는 말에 유난히 힘이 들어갔다.김소아와 서준우는 애초부터 사는 세계가 다르다는 뜻이었다.김소아는 말없이 눈을 내리깔았다.그리고 수표를 받아 든 뒤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집은 지나치게 넓었다.여기 살고 있는 김소아조차 종종 길을 헷갈릴 정도였다.그나마 익숙한 건 거실 테이블 위에 놓인 사진 한 장뿐이었다.사진 속 서준우는 김소아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고개를 숙이면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눈빛에는 다정함이 가득했다.김소아는 사진을 가만히 쓸어보다 문득 3년 전의 그 비 오는 밤을 떠올렸다.그날, 골목 어귀에서 서준우를 발견했다.온몸은 피투성이였고 눈빛은 초점 없이 흐려져 있었다.“누구세요?”김소아가 묻자 서준우는 멍하니 고개를 저었다.“저... 기억이 안 나요.”빗물과 피가 뒤섞이면서 머리카락을 타고 떨어졌다.그렇게 김소아는 기억을 잃은 남자를 집으로 데려왔다.두 사람이 함께 지내던 곳은 작은 단칸방이었다.벽지는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고 수도관에서는 물이 샜다.겨울에는 이불을 세 겹이나 덮어야 겨우 추위를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가장 가난했던 그 시절, 두 사람은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했다.서로 의지하며 버텼고, 어느새 서로에게 유일한 사람이 됐다.김소아가 야근하는 날이면 서준우는 세 시간씩 건물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기다렸다.단지 함께 집에 가고 싶다는 이유로.생리통이 심해서 식은땀을 흘릴 때면 밤새 잠도 자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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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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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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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떠나기 전에 괜히 눈치채게 해서 일이 틀어지는 건 원치 않았다.김소아는 잠시 침묵하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아직 상처가 남아 있는 발을 조심스레 디디며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 앞으로 향했다.30분 뒤, 두 사람은 서씨 가문 별장에 도착했다.환하게 불이 밝혀진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김소아의 눈에 임지연이 들어왔다.우아한 명품 투피스를 입은 임지연은 서준우의 어머니 한미정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아버지 서영훈도 옆에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누가 봐도 화목한 가족처럼 보였다.“준우 왔구나!”한미정이 반갑게 다가왔다.마치 김소아는 없는 사람처럼 그대로 지나친 채 아들의 팔부터 붙잡았다.“지연이는 한참 전부터 기다렸어.”서준우는 잠시 멈칫하더니 무심코 김소아를 돌아봤다.서운해하거나 애써 속상함을 감추는 모습이라도 보일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하지만 김소아는 그저 담담히 서 있었다.마치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것처럼.“소아 씨도 오셨네요?”임지연이 놀란 척하다 이내 부드럽게 웃었다.“어서 앉아요. 편하게 있어요.”그제야 한미정이 김소아를 힐끗 바라봤다.“왔으면 얌전히 있어. 우리 집안 망신시키지 말고.”김소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식사가 시작되자 한미정과 임지연은 상류층 지인들 이야기를 나눴다. 서영훈과 서준우는 회사 일에 대해서 대화를 이어 갔다.김소아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김소아는 마치 없는 사람처럼 조용히 식사를 했다.한미정이 보란 듯이 던지는 말만 간간이 들려왔다.“결혼은 역시 집안이 비슷해야 해. 세상에는 자기 분수도 모르는 애들이 있다니까.”“지연이랑 준우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서 서로를 잘 알잖아. 얼마나 잘 어울려.”이미 수도 없이 들어 본 말이었다.처음에는 서준우도 굳은 얼굴로 말을 끊곤 했다.그런 뒤에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마디 했다.“엄마, 그만하세요.”하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없었다.김소아는 고개를 숙인 채 국물을 떠먹었다.뜨거운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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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김소아는 시선을 내렸다.“어머님이 병문안 오셨어. 나는 괜찮으니까 먼저 가셔도 된다고 말씀드린 거야.”거짓말이었다.곧바로 눈치를 챈 한미정은 걱정하는 말을 몇 마디 건넨 뒤, 볼일이 있다며 병실을 나갔다.둘만 남자 병실 안이 조용해졌다.서준우가 침대 곁으로 다가왔다.“아까 사고는...”목소리는 어색하게 굳어 있었다.“너무 갑작스러워서 나도 미처 반응을 못 했어.”김소아는 가볍게 대답했다.“응. 알아. 괜찮아.”서준우가 잠시 멈칫했다.“화 안 났어?”“안 났어.”서준우는 김소아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서운함이나 화난 기색이라도 찾아보려는 듯했다.하지만 김소아의 눈은 너무도 고요했다.오히려 그 담담한 반응이 서준우의 신경을 거슬렀다.손을 뻗어서 김소아의 얼굴을 만지려 했다.“괜히 삐쳐서 이러지 말고, 나는...”“나 정말 화 안 났어.”김소아는 고개를 돌리면서 손길을 피했다.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분명했다.“좀 쉬고 싶어. 지연 씨도 다쳤잖아. 가서 옆에 있어 줘.”말을 마친 김소아는 눈을 감고 돌아누웠다.서준우가 한동안 침대 곁에 서 있는 기척이 느껴졌다.그러다 한참 뒤에야 병실 문이 닫혔다.그 뒤로 며칠 동안 서준우는 매일 병실에 왔다.침대 옆에 앉아서 서류를 처리하다 가끔씩 물었다.“많이 아파?”그럴 때마다 김소아는 고개만 저었다.하지만 잠들었다 깨어날 때마다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대신 간호사들이 나누는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옆 VIP 병실 임지연 씨 남자친구가 정말 잘해 주더라. 밤새 옆에 있던데?”“XS그룹 후계자라던데. 잘생기기까지 했는데 여자친구한테도 엄청 잘하나 봐.”김소아는 눈을 감았다.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했다.퇴원하는 날에는 서준우가 직접 데리러 왔다.아직 완전히 낫지 않은 발을 조심하면서 차 앞으로 걸어갔다.그런데 문을 열려던 손이 멈췄다.임지연이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김소아를 보자 부드럽게 웃었다.“소아 씨, 저도 가는 길이라 같이 좀 타도 괜찮죠? 제가 멀미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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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그때 행사를 주최한 사람이 간단한 이벤트를 하나 제안했다.커플이 함께 무대에 올라 피아노를 연주하고, 가장 좋은 무대를 보여 준 팀에게 고가의 주얼리 세트를 선물로 주는 이벤트였다.“저 주얼리 진짜 예쁘다.”임지연의 눈이 반짝였다.서준우의 소매를 잡아당기면서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준우 씨, 곧 내 생일이잖아. 소아 씨랑 같이 나가서 저거 받아 주면 안 돼?”주변에 있던 여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지연아, 그건 너무 무리한 부탁 아니야? 소아 씨는 G국어도 못 하는데 피아노 같은 걸 어떻게 쳐. 그냥 지연이 네가 준우 씨랑 같이 하지 그래?”누군가 말을 보탰다.임지연이 서준우를 바라봤다.“괜찮아?”서준우는 별다른 표정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임지연은 김소아를 힐끗 바라보더니 웃으며 말했다.“그럼 준우 씨를 잠깐만 빌릴게요.”두 사람이 무대에 올라갔다.연주가 시작되자 장내가 조용해졌다.임지연의 손가락이 건반 위를 빠르게 오갔다.서준우도 자연스럽게 연주를 맞췄다.두 사람은 마치 오랫동안 함께 연주해 온 사람들처럼 호흡이 잘 맞았다.주변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그러자 김소아 곁으로 임지연의 친구들이 몰려들었다.“김소아 씨, 잘 봐요. 저 정도는 돼야 어울리는 거예요.”한 여자가 비웃으며 말했다.“G국어도 못 하고 피아노도 못 치면서 서준우 같은 남자랑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눈치가 있으면 알아서 사라져요.”“예전에 엄청 가난한 동네에서 살았다면서요? 그런 데서 어떻게 살았대?”“그러게. 아무리 꾸며도 가난한 티는 못 숨기나 봐.”“형편도 안 되는 사람이 괜히 욕심을 내면 자기만 우스워지는 거예요.”주변에서 웃음소리가 터졌다.김소아는 치맛자락을 움켜쥔 채 몸을 돌렸다.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그런데 걸음을 떼는 순간 누군가 일부러 발을 내밀었다.김소아는 그대로 바닥에 강하게 넘어졌다.온몸에 통증이 퍼졌다.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붉은 하이힐 굽이 손목 위로 올라왔다.“어머, 미안해요.”여자는 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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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김소아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입안으로 비릿한 피 맛이 퍼졌다.고작 임지연이 곤란해진다는 이유로 자신이 이 일을 그냥 참고 넘어가야 하는 걸까?“나는 신고할 거야.”김소아는 다시 한번 분명히 말했다.서준우는 잠시 침묵했다.그러다 갑자기 수표책을 꺼냈다.“그렇게까지 해야겠다면 내가 대신 보상할게.”펜이 수표 위를 긁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김소아는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봤다.서준우가 금액을 적어서 수표를 내밀었다.김소아가 받지 않자, 금액이 적다고 생각했는지 곧바로 수표를 찢었다.그리고 다시 새로운 수표에 숫자를 적었다.한 번.두 번.세 번.금액은 계속 올라갔다.마침내 200억 원이 적힌 수표가 김소아 앞에 놓였다.그 순간 3년 전 비가 오던 밤이 떠올랐다.당시 두 사람은 아주 작은 단칸방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새벽 세 시가 되어서야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온 서준우는 온몸이 비에 젖어 있었다.그러면서도 환하게 웃으며 김소아를 꼭 끌어안았다.“소아야, 나 꼭 200억을 벌 거야.”이어서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당신 다시는 힘들게 안 할게.”그 약속은 결국 이루어졌다.다만 김소아가 상상했던 방식은 아니었다.이제 서준우에게 200억 원은 수표에 아무렇지 않게 적을 수 있는 돈이었다.그리고 그 돈으로 자신을 짓밟은 사람들의 잘못을 없던 일로 만들려 하고 있었다.“200억이면 됐어?”서준우가 다시 수표를 내밀었다.김소아는 떨리는 손으로 수표를 받아 들었다.그러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웃고 있는데 눈물이 흘렀다.수표 위로 눈물이 떨어지며 잉크가 살짝 번졌다.“됐어.”목소리가 잔뜩 쉬어 있었다.“서준우.”김소아는 손에 든 수표를 내려다봤다.“그때 했던 약속, 결국 지켰네.”서준우가 잠시 멈칫했다.미간을 찌푸리는 모습으로 봐서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당연했다.낡은 단칸방에서 김소아를 꼭 안고서, 반드시 큰돈을 벌어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말했던 서준우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그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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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한편 같은 시각.무대에서는 공연이 한창이었지만 서준우는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다.아무 이유도 없이 괜히 마음이 불안했다.자꾸만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결국 뮤지컬이 끝날 때까지 내용은 거의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머릿속에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공연이 끝나자 서준우는 거의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갑작스러운 행동에 옆에 있던 임지연이 당황한 듯 바라봤다.서준우가 그대로 밖으로 나가자 급히 뒤를 따라갔다.“준우 씨, 잠깐만! 무슨 일 있어? 공연이 별로였어?”서준우는 걸음을 잠시 멈췄다.뒤를 돌아 임지연을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아니. 그냥 갑자기 생각난 일이 있어서.”잠시 후 담담하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차 보내 줄 테니까 그거 타고 돌아가.”말을 마친 서준우는 더 이상 임지연의 말을 듣지 않고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임지연은 갑자기 왜 저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혹시 자신이 뭔가 잘못했나 생각하다가도 금세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어차피 정략결혼 이야기는 이미 끝난 일이었다.두 집안의 사업까지 얽혀 있으니 큰 문제가 생길 일도 없었다.서준우 역시 자신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그저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얼마 지나지 않아서 차는 집 앞에 멈춰 섰다.서준우는 잠시 그대로 차 안에 앉아 있다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그리고 습관처럼 익숙한 이름을 불렀다.“소아야.”아무 대답도 없었다.시간이 조금씩 흘러도 집 안은 조용했다.그제야 서준우는 김소아가 자신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은 지도 꽤 오래됐다는 걸 깨달았다.‘언제부터였지?’아마 그날부터였던 것 같았다.자신과 임지연이 함께 있는 사진을 들고 온 김소아가 눈물을 글썽이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던 날.서준우는 귀찮다는 듯 사진을 쓰레기통에 던지며 말했다.“사업 때문에 만난 거라고 했잖아. 아무것도 아닌 일을 왜 자꾸 꺼내?”그날 김소아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다만 그 뒤부터 점점 말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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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한미정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지만, 서준우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멍하니 서 있었다.“준우야, 엄마가 말하잖아. 듣고 있어?”한미정이 손을 들어 눈앞에서 흔들어 봤다.하지만 서준우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그저 한 이름만 계속 중얼거렸다.“소아... 소아야...”한미정은 그 이름을 듣자 눈살을 찌푸렸다.눈빛에도 불쾌함이 스쳤다.집안도 배경도 없는 가난한 여자였다.서준우가 기억을 잃은 덕에, 우연히 아들의 곁에 머물며 상류층에 발을 들였을 뿐이었다.명품을 걸친다고 해서 살아온 환경까지 감출 수 있는 건 아니었다.애초부터 서준우와는 사는 세계가 달랐다.그래도 끝까지 붙잡고 늘어지지는 않았으니 그나마 자기 분수는 아는 모양이었다.한미정은 잔뜩 어질러진 거실을 한 번 둘러봤다.그러다 문득 날짜를 계산해 보더니 뭔가 알아차린 듯 눈썹을 살짝 세웠다.서준우를 바라보는 눈빛에 만족스러운 기색이 더해졌다.“걔 드디어 갔어?”한미정이 가볍게 웃었다.“그래도 알아서 떠날 줄은 아네. 잘됐어. 이제 지연이 가족들하고 결혼 날짜나 제대로 정하면 되겠구나.”그 순간 서준우의 표정이 변했다.“아니야.”목소리가 거칠게 튀어나왔다.“그럴 리 없어. 소아가 왜 나를 떠나?”서준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소아는 분명...”자신을 그렇게 사랑했는데.한미정은 아들의 반응에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왜 그럴 리가 없어?”잠시 뜸을 들이다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걔는 내가 준 100억 원도 망설이지 않고 받았어.”100억 원!서준우의 시선이 즉시 한미정에게 향했다.“뭐라고요?”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무슨 100억이에요?”한미정은 순간 말을 멈췄다.잠깐 당황한 기색이 스쳤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돌아왔다.그동안 말하지 않은 건, 서준우가 알게 되면 김소아와 헤어지는 걸 막을까 봐 염려해서였다.하지만 이제 김소아는 이미 떠났다.지금 알게 된다고 달라질 것도 없었다.오히려 돈을 받고 떠난 사실을 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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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문과 창문을 모두 닫은 방 안은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아서 칠흑같이 어두웠다.핸드폰은 아무렇게나 옆에 던져져 있었다.날카로운 벨소리가 적막을 깨뜨렸지만, 서준우는 전화를 받을 생각조차 없었다.화면을 확인하지도 않았다.그런데 상대는 포기할 생각이 없는지 전화가 끊어질 때마다 다시 걸어왔다.한참을 그렇게 버티던 서준우는 결국 미간을 찌푸리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화면에는 임지연의 이름이 떠 있었다.이름을 보는 순간 왠지 모르게 짜증이 치밀었다.서준우는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그리고 곧바로 번호를 차단했다.방 안이 다시 조용해지자 그제야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번에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누군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임지연일 게 뻔했다.서준우는 그대로 전화를 끊고 그 번호까지 차단했다.부드러운 침대에 누워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자꾸만 김소아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예전에는 미처 몰랐다.김소아가 자신의 삶에 이렇게 깊숙이 들어와 있었는지.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얼마 뒤 임지연이 직접 찾아왔다.“준우 씨, 지금 뭐 하는 거야?”임지연은 거침없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얼굴에는 분노와 서운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임지연은 서씨 가문과의 정략결혼을 원했다.그 결혼은 임지연에게 나쁠 게 없었다.서준우는 외모도 뛰어났고 집안도 자신과 잘 맞았다.처음 만났을 때도 예의 바르고 반듯한 사람이었다.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다면, 기억을 잃었던 시절 만난 여자친구를 계속 곁에 두고 있다는 점뿐이었다.하지만 한미정이 알아서 정리하겠다고 했고, 실제로 서준우도 함께 있을 때마다 자신을 더 챙겼다.그래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그런데 어제부터 서준우가 갑자기 연락을 끊었다.메시지에도 답이 없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여기저기 알아본 끝에야 김소아가 말없이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임지연은 서준우가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동안 보여 준 모습만 보면, 김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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