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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200번째 결점: Chapter 1 - Chapter 8

8 Chapters

제1화

그 말을 들은 고태준은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고태준은 어쩔 줄 몰라 하는 유채원을 한번 바라보더니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너 지금 또 무슨 심술이야?”“이제 결혼할 사람이면 채원이처럼 좀 어른스럽게 굴 수 없어? 결혼 문제를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고.”어른스럽지 못하다. 고태준이 내게 찾아낸 196번째 단점이었다.우리는 대학 시절부터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금까지 9년을 사귀었다.하지만 유채원만 있으면 고태준은 언제나 내가 내 자리를 내줘야 할 이유를 찾아냈다.유채원이 사람들에게 인기가 더 많으니 나 대신 자기 친구들 모임에 나가야 한다고 했다.유채원이 더 활발하니 나 대신 커플 인터뷰에 참여하는 게 낫다고 했다.영어를 더 잘한다는 이유로, 고태준과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해외 연수 자리까지 유채원에게 양보하라고 했다.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주변 사람들은 고태준과 유채원이 연인인 줄 알았다.정작 여자친구인 나는 남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큰일 나는 사람처럼 숨어 지내야 했다.내가 부족해서 그런가 싶어 스스로를 바꾸려고 애썼다.고태준의 차 조수석에 앉고 싶어 억지로 살을 뺐다. 굶다가 위출혈까지 생겼고, 허벅지가 유채원의 팔보다 가늘어질 정도로 말랐다.그렇게 9년이 지났지만 고태준의 조수석은 여전히 유채원의 자리였다.그제야 깨달았다.누군가를 특별히 아끼는 데는 이유가 필요 없다는걸.우리 사이에 냉랭한 기운이 흐르자 유채원이 재빨리 끼어들었다.“태준아, 화내지 마. 하린이가 배고파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나 봐. 혼인신고는 나중에 해도 되잖아. 일단 밥부터 먹자!”유채원은 한쪽 팔로 내 팔짱을 끼고 다른 손으로 고태준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우리 셋은 식당으로 들어갔다.고태준은 늘 그랬듯 자신과 유채원이 먹을 커플 세트 메뉴부터 주문했다. 그다음에야 내 몫으로 단품 하나를 시켰다.예전에는 이해할 수 없어서 나도 고태준과 커플 세트를 먹겠다고 떼를 쓴 적이 있었다.그때 고태준은 내가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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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식사가 끝날 때까지 누구도 방금 있었던 일을 다시 꺼내지 않았다. 식당을 나왔을 때는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구청은 이미 문을 닫은 뒤였다.고태준은 시계를 내려다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다음부터 고집부릴 거면 때와 장소 좀 가려. 우리도 일부러 쉬는 날 시간 내서 너한테 맞춰 준 거야. 네가 떼쓰는 거 받아 주려고 온 게 아니라고.”“채원이처럼 철 좀 들었으면 정작 해야 할 일도 못 하는 상황은 없었겠지.”197번째 단점, 철이 없다.나는 그 말을 마음속에 조용히 새겼다. 나는 목이 메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오늘은 두 사람의 휴일이지, 내 휴일이 아니었다.나 역시 밤새워 야근한 끝에 간신히 하루를 쉬게 됐다는 사실을 누가 기억할까.고태준은 늘 유채원이 계획을 더 잘 세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날짜를 정할 때도 내 의견은 묻지 않았다.그토록 기다렸던 기념일 여행도 마찬가지였다.나는 공항에서 8시간을 기다리며 고태준에게 전화를 108통이나 걸었다.날이 완전히 어두워진 뒤에야 고태준이 느긋하게 답장을 보내왔다.‘채원이가 그저께 출발하는 게 더 좋겠다고 해서 우리 그때 이미 다녀왔어. 오늘은 시차 적응 중이야.’‘네가 시간이 없었던 걸 누구 탓해?’그저께 나는 고태준에게 서프라이즈로 줄 커플 반지를 고르고 있었다. 여행 중에 건네줄 생각이었다.고태준에게 시간이 있느냐는 연락이 와서 바쁘다고 답했다. 그러자 알겠다는 답장 하나가 왔다.그렇게 고태준은 내 절친과 함께, 원래 우리 둘이 떠나기로 했던 기념일 여행을 다녀왔다.나에게는 아무 말도 없이.나는 얄궂은 마음에 반지는 다음 기념일에 선물하자고 생각했다. 자신이 놓친 게 무엇인지 알면 후회할 테니까.하지만 어느새 연애 9년 차가 되었다. 고태준은 그동안 단 한 번도 나와 기념일을 함께 보낸 적이 없었다.반지 상자는 아직도 여행 가방 속에 들어 있었다. 아무 말 없는 무덤처럼.유채원이 고태준의 팔을 툭 때렸다.“우리 하린이한테 그렇게 화내지 마. 혼인신고가 뭐 별거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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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나는 신혼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침대 옆 여행 가방을 열어 짐을 싸기 시작했다.이사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아 내 물건은 많지 않았다.9년 동안 간직했던 반지 상자마저 쓰레기통에 버리니 가방이 한결 가벼웠고 더 비어 보였다.막 가방을 닫았을 때 현관에서 전자 도어록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유채원 아가씨 납시오! 모두 길을 비켜라!”바다의 짭조름한 공기와 함께 유채원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하린아, 왜 먼저 왔으면 왔다고 말을 안 해? 나랑 태준이가 바닷가에서 얼마나 기다렸는데.”나는 유채원의 타박하는 눈길은 무시하고 문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너 어떻게 들어왔어?”“태준이가 이사 첫날부터 내 지문을 등록해 줬어. 방금 들었지? 나만의 도어록 알림음, 완전 멋있지 않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안은 쓸개를 씹은 것보다 더 썼다.이사한 지 한 달이 되었지만 고태준이 내게 준 건 열쇠 한 개가 전부였다.열쇠를 두고 나온 날이면 고태준이 퇴근해 문을 열어 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새집에 들어온 첫날부터 고태준은 유채원의 지문을 등록해 두었던 것이다.그것도 모자라 우리의 신혼집에 유채원의 전용 알림음까지 설치하다니.내가 더 묻기도 전에 유채원이 흥분한 얼굴로 오늘 산 예물들을 꺼냈다.“하린아, 태준이는 신경 쓰지 마. 나 대신 생리대 사러 갔어. 우리 먼저 반지나 껴 보자.”유채원은 내 약지에 금반지를 밀어 넣었다.처음부터 끝까지 유채원의 손에만 맞춰 보았던 반지가 내 손가락에 들어갈 리 없었다.손가락 마디가 쓸려 아파서 나도 모르게 유채원의 손을 쳐 냈다.유채원은 비틀거리다 내 손목을 움켜잡았다. 결국 우리 둘 다 바닥으로 넘어졌다.유채원은 엉덩방아를 찧었고, 나는 이마를 부딪쳐 피부가 찢어졌다.그때 고태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다급한 나머지 목소리까지 갈라졌다.“심하린, 너 지금 뭐 하는 거야?”고태준은 달려와 유채원을 조심스럽게 일으켜 세웠다.예전에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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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끝내 고태준은 구급차도 불러주지 않았다.나는 정신을 잃기 직전까지도 헛된 기대를 품었다.내가 유채원에게 사과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고태준이 구급차 한 대쯤은 불러 줄 거라고 믿었다.하지만 고태준은 그러지 않았다.한밤중에 눈을 떴을 때 나는 여전히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핏자국은 이미 말라붙어 있었다.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직접 택시를 잡아 병원으로 갔다.응급실 의사는 내 상처를 치료하면서 혀를 찼다.“이제 나이도 적지 않으신데 남자친구라도 사귀어야죠. 그렇지 않으면 한밤중에 다치면 혼자서 다 감당해야 하잖아요.”“아까도 어떤 여자가 생리통 때문에 왔는데, 남자친구가 공주님처럼 안고 응급실 침대까지 데려다주더라고요. 의사들한테 제대로 치료 못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면서 의사 면허까지 들먹였다니까요.”나는 입꼬리를 억지로 올렸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사는 몰랐다. 내게도 남자친구가 있고, 하마터면 결혼까지 할 뻔했다는 사실을.다만 내 약혼자는 다친 나를 한밤중에 내버려 둔 채 다른 여자의 기사가 되러 갔을 뿐이었다.나는 이마를 다섯 바늘 꿰맨 뒤 병원 로비에서 밤을 지새웠다.아침 첫 환자들이 몰려들 무렵, 나는 쑤시는 몸을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문을 열자 단란한 세 식구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유채원은 소파에 앉아 대추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고태준은 그 옆에 바짝 붙어 커다란 손으로 유채원의 배를 문질러 주었다.예비 시어머니 김명희는 기운을 보충하라며 따뜻한 반찬을 한 상 차려 놓고 유채원의 그릇에 국을 가득 담아 주었다. 안색은 어떤지, 배는 괜찮은지 연신 묻고 있었다.내가 들어오는 순간, 김명희의 웃음 가득한 얼굴이 금세 차갑게 굳었다.“대체 낯짝도 얼마나 두꺼우면 내 귀한 수양딸을 다치게 해 놓고도 다시 기어들어 와?”김명희는 유채원을 유난히 아꼈다. 며느리보다 더 귀한 존재였다.그런데 내가 며느리가 될 사람이었기에 유채원은 수양딸 자리에 머물러야 했다.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김명희는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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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그 말을 들은 고태준은 전화를 걸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그럴 리가요. 오늘 혼인신고 하기로 약속했는데 하린이가 해외에 파견되었다고요? 그것도 5년이나?”“당신 지금 저한테 거짓말하는 거죠? 지금 하린이가 옆에 있는 거 맞죠!”“하린이한테 전해주세요. 한 시간 안에 안 나타나면 앞으로 혼인신고 같은 건 꿈도 꾸지 말라고요!”고태준의 성난 목소리를 듣던 동료는 잠시 침묵하더니 참지 못하고 물었다.“고태준 씨, 정말 하린이랑 약속한 거 맞아요?”고태준이 멈칫했다.“무슨 뜻이에요?”동료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오랫동안 참아 온 말을 한꺼번에 쏟아 낼 기세였다.“하린이한테 제대로 물어본 적 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고태준 씨랑 그 여우 같은 유채원이 둘이서만 정한 거 아닌가요?”“하린이 시간은 되는지, 고태준 씨랑 혼인신고 하고 싶은지는 물어봤어요?”고태준은 표정이 굳었지만 여전히 고집을 부렸다.“채원이가 하린이보다 꼼꼼해서 맡긴 건데 뭐가 잘못됐어요? 고작 그 일로 심술을 부린다는 게 말이 돼요?”“그리고 하린이 나랑 혼인신고 하기 싫을 리가 없잖아요. 9년이나 기다렸는데.”“고태준 씨도 하린이가 9년이나 기다린 건 알잖아요.”동료의 목소리가 단숨에 높아졌다.“그래서 고태준 씨는 하린이한테 어떻게 했어요?”“그 9년 동안 기념일을 하린이랑 보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어요?”“유채원이 더 꼼꼼하다고요? 그럼 채원이 그 여우년은 하린이 일정을 한 번이라도 배려했어요?”“하린이가 그렇게 기대하던 기념일 여행도 채원이가 그저께 가자니까 둘이 그때 떠났잖아요. 하린이는 공항에서 8시간이나 혼자 기다렸다고요.”“지난주 혼인신고도 마찬가지예요. 채원이가 당신들 두 분이 쉬는 날로 잡았다고 하더라고요. 하린이도 그날 쉬는지는 생각해 봤어요?”“하린이는 하루 휴가 내려고 일주일 내내 야근했어요. 다크서클이 판다처럼 내려올 지경이었는데, 고태준 씨는 그때 뭐했어요?”동료의 말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고태준의 가슴을 파고들었다.이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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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고태준은 미친 듯이 가속 페달을 밟으며 집으로 달렸다.그는 짐을 챙겨 비행기 표를 예약하고 당장 심하린을 찾아갈 생각이었다.용서를 받지 못해도 좋았다. 모든 걸 제대로 설명하고 싶었다.적어도 자신의 마음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심하린 한 사람뿐이었다는 걸 알아주기를 바랐다.고태준이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심하린이었다고 말이다.그런데 침실에 들어서는 순간, 그는 눈앞의 광경에 놀라 뒷걸음질 쳤다.원래 휑하던 안방은 온통 다른 여자의 물건으로 가득 차 있었다.유채원의 하이힐과 가방, 화장품이 방 곳곳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마치 처음부터 유채원의 방이었던 것처럼.침대 위 이불이 볼록하게 솟아 있었다. 그 안에 있는 사람도 유채원이었다.“태준아, 왔어? 어때? 하린이랑 혼인신고 잘했어?”유채원은 원래 심하린이 누워야 할 침대 자리에서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물었지만 눈빛에는 긴장과 경계심이 어렸다.예전 같았으면 고태준은 피곤해서 잠깐 쉬고 있나 보다 하고 넘겼을 것이다.하지만 심하린을 잃고 나서야 유채원의 속셈이 똑똑히 보였다.고태준은 유채원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차갑게 물었다.“네가 왜 나랑 하린이가 쓰는 침대에 누워 있어? 방 안에 있는 이 물건들은 또 뭐야? 내가 안방에서 나가라고 하지 않았어?”매서운 목소리에 유채원이 흠칫 몸을 떨었다.유채원은 금세 눈물을 보이며 힘겹게 일어나는 척했다.“미안해.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배가 아직 아파서 잠깐 누워 있었어. 이 물건들은 어머니가 옮겨 주신 거야. 나도 안방에서 나가려고 했지. 그런데 생리통이 안 나아서 어머니가 며칠만 더 있으라고 하셨어.”“내가 바보로 보여?”고태준은 가슴을 들썩였다.“벌써 일주일이 지났어. 네 생리는 진작 끝났잖아. 내가 모를 줄 알았어?”“넌 애초에 나갈 생각이 없었던 거야. 하린이가 와서 네가 아직 우리 신혼집 안방에서, 그것도 내 침대에서 자고 있는 걸 보게 하려고!”“하린이가 오해해서 나랑 헤어지면 네가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 거잖아!”유채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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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고태준은 울고불고 매달리는 유채원을 무시한 채 집 안에서 유채원의 흔적을 모조리 치웠다.유채원도 짐과 함께 집 밖으로 내쫓았다.도어록에 등록된 지문까지 남김없이 삭제했다.지문을 지우려다가 유채원 전용 출입 알림음도 다시 들었다.처음 유채원의 지문을 등록할 때는 심하린의 절친이니 편하게 놀러 오라고 배려했을 뿐이었다.그런데 그 틈을 타 유채원이 다른 속셈까지 부렸을 줄은 몰랐다.심하린도 그 알림음을 들었다면 얼마나 속이 쓰렸을까.자기 여자친구에게는 열쇠 하나만 던져 주고, 유채원에게는 지문 출입까지 허락한 셈이었다.후회가 밀려오자 유채원을 향한 목소리에도 독기가 실렸다.“하린이 친구라서 나도 잘해 줬던 거야. 널 의심하지 않아서 이런 짓을 할 수 있었던 거고.”“하지만 앞으로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나지 마. 또 찾아오면 네가 남의 연애에 끼어든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회사 본부장한테 알릴 테니까!”김명희가 다시 설득하려 했지만 고태준의 매서운 눈길에 입을 다물었다.“엄마, 이번에는 정말 너무하셨어요. 앞으로 급한 일 없으면 저랑 하린이 신혼집에 오지 마세요.”그제야 김명희가 심하린을 얼마나 괴롭혔는지 떠올랐다. 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자신이 더욱 원망스러웠다.집을 정리한 뒤 고태준은 그제야 자신이 심하린의 파견 근무지가 어디인지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이미 차단당한 뒤였다.심하린에게 메시지를 보내도 빨간 느낌표만 뜰 뿐이었다.이제야 잘못을 깨닫고 돌아가려 했지만 그는 돌아갈 길조차 찾을 수 없었다.고태준은 심하린과 공통으로 아는 친구들에게 닥치는 대로 연락하며, 소식 한 줄만이라도 듣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그 무렵 나는 이미 바다 건너 작은 섬에 자리를 잡았다.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프로젝트라 직접 발로 뛰며 알아봐야 할 것이 많았다.바빴지만 그만큼 보람찼다.지난날의 답답하고 괴로웠던 기억을 잊고 새로운 일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주하영도 나와 함께 이곳에 파견됐다. 오랜 시간 함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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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고태준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렇다고 반지를 억지로 밀어 넣을 수도 없었다.고태준은 당황해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아니야, 하린아. 내가 손이 미끄러져서 그래. 조금만 다시 해 보면 금방 들어갈 거야. 잠깐만 기다려 줘!”그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손을 빼냈다.고태준의 땀이 묻은 반지가 바닥에 떨어지며 맑은 소리를 냈다.“나 9년을 기다렸어, 고태준.”“대학생 때부터 널 좋아했고, 기다렸어. 졸업할 때까지, 우리랑 비슷한 시기에 사귀기 시작한 커플들이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지만 난 여전히 너를 기다렸어.”“내가 뭘 기다렸는지 알아?”나는 고태준이 대답하기도 전에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네가 한 번쯤 뒤돌아서 나만 바라봐 주길 기다렸어.”“유채원을 데리고 다니면서 나랑 비교하고, 나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드는 대신에 말이야.”“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아봐 주길 기다렸어. 내가 유채원보다 훨씬 말라서 조수석에 앉아도 네 시야를 조금도 가리지 않는다는 걸 알아봐 주길 바랐어.”“구급차를 불러 주길 기다렸어. 한밤중에 정신을 차려 혼자 택시 타고 병원에 가게 만들지 말고. 그러면서 너희 둘이 얼마나 애틋한지 봐야 했잖아!”“겨우 상처를 치료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넌 나더러 유채원한테 사과하라고 했지. 네 엄마는 결혼할 함에 드라이버와 스패너 같은 쇠붙이나 넣어 주겠다며 나를 모욕했고.”“고태준, 말해 봐. 내가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유채원이 없어져도 다른 사람이 나타나겠지. 넌 언제든 핑계를 찾아 나를 달래면서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할 테니까.”“하지만 난 이제 안 기다려. 70, 80살이 되어서야 네 여자친구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날을 맞고 싶지 않아.”“이제부터는 내 인생을 살 거야. 가고 싶으면 가고, 하고 싶은 건 하고, 누구와도 비교당하지 않고, 그 누구도 기다리지 않을 거야!”고태준은 내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서 있으며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언제부터인지 고태준의 얼굴은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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