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원들은 장공주부에 도착하자마자, 장공주가 말한 위치를 따라 신속히 수색을 벌였고 곧바로 그 명부를 찾아냈다.명부에는 수많은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각 표국마다 맡은 책임자의 이름이 정확히 기록돼 있었고, 임원표국의 책임자란에 적힌 이름은 바로 '서진'이었다.관원들은 장공주 저택의 하인들을 불러 서진이라는 인물을 물었다. 그곳엔 기억하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예전에 장공주가 총애하던 남첩 중 한 명으로, 당시 특별히 공주의 사랑을 받았던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모습을 감추었는데, 그가 표국 책임자로 발령되었다는 것은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천옥. 서진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장공주는 단번에 그 얼굴을 떠올렸다. 미모가 뛰어나 이름처럼 성별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고, 머리도 비상해 장공주의 표국 운영을 도맡아 많은 이익을 남겨줬던 인물이었다. 지금 남제 전역에 세워진 수많은 표국도 사실 서진의 제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그녀는 어느 날 새로운 남첩을 들이게 되었고, 서진을 저택 밖으로 내보내며 바깥에서 재물을 벌어오게 하였다. 그 후로 그는 단 한 번도 공주부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번 사건이 불거지지 않았다면, 그녀도 서진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공주마마께선 서진이란 자의 가문이나 배경을 알고 계십니까?”관원이 물었다.장공주는 수많은 남첩을 거느려왔지만, 절대 멍청하게 아무나 받아들이진 않았다. 신분이 불분명하거나 출처가 의심스러운 자는 절대 가까이두지 않았다. 그들은 집안 배경이 출중한 자들이 대부분이었다.서진을 처음 들인 것이 오래전이라 세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당시 자신이 직접 신원을 조사했던 것을 생각하면 문제가 없었던 인물임이 분명했다.하지만 관원들 입장에선 당혹스러웠다. 출생지도, 부모의 이름도 알 수 없는 자라니, 수사가 난관에 부딪혔다.장공주는 그런 사정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이제 날 풀어줘도 될 듯한데?”하루도 더 이 천옥에 있고 싶지 않았다.그러자 관원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네 말은, 임원표국이 적국과 내통했다는 것이냐?”장공주 소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관원의 목소리는 무표정하고 냉랭했다.“그렇습니다.”그 확언이 떨어지자, 소기는 바로 받아쳤다.“그렇다면 그 임원표국은 내 소유가 아니다!”“……”관원의 얼굴이 굳었다.“공주마마께선, 그저 아니라 하신다고 해서 모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이미 증거는 확보돼 있습니다. 증거 없이 공주마마를 천옥까지 모셔올 저희가 아니란 소립니다.”“그러니 경솔히 말하지 마시고, 신중히 입을 여시지요. 이곳에서의 형벌은 결코 가볍지 않으니 말입니다.”천옥, 이곳은 고문이 일상인 장소였다.하지만 장공주는 물러서지 않았다.“이 일은 나와는 무관하다. 내 명의로 운영되는 표국이 여럿 있긴 하나, 결단코 적국과 연루된 곳은 없다.”그녀는 그저 자신의 목숨이 아까워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지금의 그녀는 남제의 공주였다.원하면 뭐든 가질 수 있는 신분에서, 어찌 어리석게도 그런 짓을 하겠는가?왕자들이 반란이라도 일으키면 황위라도 노릴 수 있지만, 공주의 신분인 자신이 얻을 건 아무것도 없었다.만약 여기가 서여국이었다면 모를까. 이곳 남제에선 그녀가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었다.관원은 그녀의 부정적인 답변을 들은 후 사람을 불렀다.물증과 인증을 가져오기 위함이었다. 소기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관원을 바라보았다.‘증거라니, 대체 무엇이?’그때, 붉은 옷자락을 휘날리는 인물이 방으로 들어섰다.피라도 머금은 듯한 그 기세에, 그녀의 눈썹이 꿈틀였다. 낯선 얼굴이었다.“공주 마마!”“신은 강림이라 합니다.”“임원표국의 내통 정황은 바로 신이 밝혀낸 바입니다!”강림은 어깨를 으쓱이며,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듯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소기는 마음속으로 그 이름을 되뇌었다.‘강림… 들어본 적 없는데.’그러나 곧 들이밀어진 인장, 장부, 통신 내역을 보는 순간, 그녀의 표정이 단숨에 굳어졌다.
완부옥은 납치당한 후 곧바로 의식을 잃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 채 깨어났을 때, 낯선 밀실 안에 갇혀 있음을 알게 되었다.희미한 촛불만이 어렴풋이 공간을 비추고 있었고, 그녀는 철창 안에 가두어져 있었다.그리고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이 꽤 있었다.그녀는 이내 그들이 모두 자신의 동문들이라는 걸 알아챘다.결국 모두가 이곳으로 끌려온 것이었다.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힘겹게 몸을 일으켜보려 했지만, 결국 다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아이를 품고 있는 그녀는 그저 몸을 웅크린 채 철창 안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다른 이들은 대부분 아직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몇몇은 팔이 묶인 채 피를 뽑히고 있었다.선혈이 흐르는 비릿한 냄새가 가득했다.그때, 완부옥은 깜짝 놀라며 멀리 떨어진 곳을 바라보았다.사부인 심성도 이곳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이 밀실엔 수많은 철창이 이어져 있었고, 사부가 갇힌 철창은 꽤 먼 곳에 있었다.쇠사슬에 손발이 묶인 채 축 늘어진 사부의 모습은 마치 이미 숨이 끊어진 사람처럼 보였다.수많은 풍파를 겪어온 완부옥은 놀라면서도 당황하지 않았다.재빨리 다시 눈을 감고 의식을 잃은 척했다.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누군가 밀실 안으로 들어왔다.이내 발걸음 소리가 그녀 곁으로 다가왔다.“이 여자는 아이를 품고 있던데,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으려나?”“그걸 따질 시간 없어. 우선 피부터 써보자.”이윽고 완부옥의 팔이 거칠게 끌려 나왔다.순간 칼날이 스쳐 지나가는 듯한 날카로운 고통이 느껴졌다.그러나 이 정도 아픔쯤은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이들은 그녀의 피를 채취하려 하고 있었다.남제 황성.장공주 소기는 요즘 여자 사숙 운영에 전념하느라 다른 일에는 거의 손을 놓고 있었다.궁 안에 있는 태후조차 자주 찾아뵙지 않았다.과거엔 태후가 그녀의 혼사를 걱정했지만, 지금은 그저 무사히 지내기만을 바랄 뿐이었다.그동안 황제는 몇 차례 미복을 나가 탐관오리들과 부패한 황족 자제들을 직접 적발해 왔다.그중엔 황
소욱의 미간에 짙은 노기가 서렸다. 애써 화를 누르며 강림에게 물었다.“정말로 이 일의 배후가 장공주가 맞느냐.”소기는 그의 친누나였다.남제를 위해 대하에 화친으로 시집가 온갖 고초를 겪은 것도 소욱은 잘 알고 있었다.그녀가 남제로 돌아온 이후, 그는 어떤 대가도 치르게 하지 않았다.남첩을 두고, 악명이 자자하며 백관들이 줄줄이 상소를 올려 장공주 작위를 폐해야 한다고 외쳐도, 소욱은 끝까지 그녀를 감싸왔다.그래서 소기가 동산국과 내통했다는 말은 도저히 믿기 힘들었다.강림은 은칠을 바라보다가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지금까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임원표국의 배후는 분명 공주마마가 맞으십니다.”소욱은 이내 봉구안을 바라보았다.“네 생각은 어떠하느냐.”봉구안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직접 공주마마께 여쭤보는 게 좋겠습니다. 혹시 다른 내막이 있을지도 모릅니다.”현재로서는 어떤 상황인지 단정 지을 수 없었다.장공주를 믿는다고 해도 강림이 가져온 명백한 증거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게다가 봉구안은 알고 있었다. 소욱이 장공주에게 갖는 마음은 다른 왕족들과는 달랐다.그에게는 장공주에 대한 미안함과 어린 시절부터 쌓여 온 남다른 정이 있었다.설령 그녀가 큰 죄를 지었더라도 소욱은 마지막까지 돌이킬 기회를 주고 싶어 했다.소욱은 곧 결단을 내렸다.“내 말을 전하라. 장공주 소기를 체포하여 임원표국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도록 하라!”“예, 폐하!”강림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폐하, 저희 강가의 결백을 위해서라도, 이 사건을 끝까지 추적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소욱은 허락했다.이번 기회에 소기 또한 강림이 찾아낸 증거를 직접 보아야 더는 발뺌하지 못할 것이었다.모두 물러간 뒤, 봉구안은 차 한 잔을 따라 소욱에게 건넸다.“공주마마께서 외적과 내통했을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봉구안은 그를 위로하고자 말했다.소욱은 쓴웃음을 지었다.“황실이라는 곳은 매일 음모와 술수가 끊이질 않네. 준연이와 준열이… 아이들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봉구안은 곧바로 자신의 추측을 소욱에게 전했다.소욱은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과거 약쟁이단이 남제에 발을 들였을 때에도 살아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약을 시험하는 악행을 서슴지 않았다.“하지만 왜 하필 표사들일까?”소욱이 의문을 표했다.봉구안 역시 고민 중이었다.“그러게요… 왜 굳이 표사들인걸까요?”소무는 이야기를 들으며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어리둥절해졌다.그는 약쟁이단 사건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사형, 사수… 두 분이 대체 무슨 이야길 하시는 거예요?”심심하던 차에 신기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호기심이 더해졌다.소욱은 귀찮다는 듯 대답을 피했다.“가서 진한길에게 물어보거라.”하지만 진한길은 말수가 적었다. 그래서 소무는 결국 오백에게 갔다.오백은 이런 이야기를 풀어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입담도 좋은 데다, 마침 심심했던 터라 그는 소무에게 사건의 전말을 조목조목 설명해 주었다.소무는 들을수록 눈이 휘둥그레졌다.“세상에, 이런 일이 있다니? 완전히 미친 거잖아요!”“그중에서도 제일 소름 끼치는 게 그 모용길이라는 자네요. 근데… 진짜로 이 사람이 이백 년 넘게 살았다고요?”“설마 농담 아니죠? 저 놀리시는 거 아니죠?”오백은 단호하게 말했다.“믿든 말든 네 마음이다.”소무는 황급히 비위를 맞추며 자신의 검을 내밀었다.“화 푸세요! 제 검이라도 만져보실래요?”오백은 코웃음을 쳤다.“내가 적연검까지 만져봤는데, 네 검이 뭐 대수란 말이냐.”이야기를 다 들은 소무는 심심풀이 삼아 바깥으로 산책을 나갔다.그가 어느 노점 앞에 멈춰 섰을 때였다. 갑자기 누군가의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번쩍 고개를 돌렸지만, 수상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에이, 착각인가...”소무는 머리를 툭툭 두드리며 대수롭지 않게 자리를 떠났다.……역관 내.소욱은 변방의 정무를 살피고 있었고, 봉구안은 책상 앞에 앉아 강림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있었다.그녀는 강림에게 임원표국을 조사해달라
서왕은 정예군 장군을 바라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약쟁이단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고 있느냐?”장군 왕효가 고개를 끄덕였다.“현재까지 파악된 약인들의 은거지는 세 곳 있습니다.”“보름 전, 폐하와 황후마마께 서신으로 보고드렸으나, 별다른 지시가 없으셔서 추가 조사는 진행하지 않았습니다.”“그러다 어제, 황후마마의 밀서가 도착하여, 전하께서 전력을 다해 협조하고, 왕비마마를 구출하며 약쟁이단의 잔당을 소탕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왕의 가슴이 한결 가라앉았다.“당장 그 세 곳으로 가자!”그는 단 한순간이라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왕효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전하, 한 가지 미리 알려드릴 사항이 있습니다.”“말해라.”서왕은 조급함에 목소리를 낮출 겨를도 없었다.조금만 늦어도 완부옥과 아이가 더욱 위험해질까 두려웠다.왕효는 담담히 말했다.“황후마마의 명으로, 이번 작전은 소인이 지휘를 맡습니다. 전하께서도 하관의 명령을 따라야 하며, 독자적으로 행동하실 수 없습니다.”서왕의 눈빛이 순간 어두워졌다.그의 뒤에 서 있던 호위들은 이 무례한 요구에 분노를 삼켰다. 혹시 왕효가 독단적으로 황후의 명을 사칭하는 것은 아닐지 의심까지 들었다.황후는 어찌 전하에게 남의 지휘를 받으라 명하셨겠는가?하지만 서왕은 조금도 불만을 내비치지 않았다.그는 두 손을 모아 왕효에게 공손히 예를 표했다.“알겠소. 왕장군, 부디 부인과 아이를 속히 구해주시오.”그는 황후마마의 뜻을 이해하고 있었다.황후는 자신이 정에 치우쳐 경솔한 결정을 내릴까 걱정한 것이다.그 누구보다 그의 심정을 이해하는 이가 바로 황후였다. 황제께서도 납치되었던 과거가 있었으니 말이다.황후는 그때와 같은 일을 다시 겪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그 시각 왕효가 또 다른 명을 전했다.“황제 폐하께서 전하께 밀서를 보내셨습니다. 이 영패를 지참하시고 남강왕을 찾아 약쟁이단의 실상을 설명드리라는 내용입니다.”사실 서왕 역시 남강왕에게 이 일을 알릴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