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보다 위험한 사랑

전쟁보다 위험한 사랑

에:  웃음광란완성
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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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월녀와 유봉진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죽마고우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인정하는 한 쌍의 선남선녀다. 유봉진을 보필하기 위해 신중하게 계략을 세우고 그의 앞길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해 동릉의 유일한 전쟁의 신으로 만들어준 추월녀. 정을 나눈 두 사람이 부부가 되리라 믿었건만 어느 날 갑자기 볼품없는 여인 하나가 유봉진의 삶에 뛰어들었다. 유봉진은 처음에 이렇게 말했었다. “산골에서 굴러먹던 계집이라 네 시중을 들 자격조차 없다.” 그런데 후에는 말을 바꾸었다. “저 계집은 심성이 순박하여 아무것도 모르니 월녀 네가 이해하거라.” 하지만 추월녀는 점점 깨달았다. 그녀를 쳐다보는 유봉진의 눈빛은 덤덤해졌지만 그 여인을 향한 눈에는 다시 태어난 듯한 열정이 담겨있다는 것을. 그러던 어느 날 유봉진이 시무룩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월녀야, 이렇게 지내는 게 좋으냐? 난 너에게 조금 질린 듯하구나.” 추월녀는 그날 밤 바로 혼서를 찢어버리고 홀연히 떠났다. 유봉진이 이를 악물고 울부짖었다. “날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가볍게 웃기만 하는 추월녀. “아니요. 저 없이 살아갈 수 없는 건 대군 나리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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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제1화

“읍.”

방문이 열리더니 두 사람이 비틀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취기 가득한 얼굴로 현관에서 키스를 나누었고 거친 숨소리와 야릇한 분위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아.”

남자에게 안기게 된 신예린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작고 여린 신예린이 건장한 남자에게 안겨 있는 모습은 사람들의 음심을 자극했다.

그들은 곧장 침대로 향했다. 신예린은 침대 위로 옮겨졌고 거대한 몸이 그녀를 깔아뭉갰다.

남자의 눈꼬리가 빨갰다. 지금 이 순간, 평소 절제미가 느껴졌던 그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튀는 것만 같았다.

이성의 끈을 놓은 모습이었다.

신예린은 손가락이 하얘질 정도로 침대 시트를 힘주어 꽉 쥐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아주 잠깐 빛났다.

흔들리는 불빛 아래, 그들의 가쁜 숨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

“예린아.”

“예린아!”

신예린은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깼다. 그녀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또다시 그 꿈을 꾸게 되었다. 벌써 한 달이나 지났는데도 매일 밤 그 장면이 꿈에 나왔다.

그날은 여도준의 생일날이었다. 신예린은 들뜬 마음으로 여도준을 찾아갔는데 여도준은 그녀뿐만 아니라 같은 과의 다른 친구들도 불렀고 그중에는 예쁘기로 소문난 강효은도 있었다. 두 사람은 바짝 붙어 앉아서 아무렇지도 않게 스킨십을 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신예린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의 반응이 궁금한 것처럼 말이다.

신예린과 여도준은 같은 과지만 반이 달랐고 과 동기들은 신예린이 여도준을 2년 가까이 좋아했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다. 심지어 여도준 본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단 한 번도 그녀를 거절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 친구들의 반응을 살펴보니 이미 다들 강효은의 존재를 알고 있는 듯했다. 오직 신예린만 바보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여도준은 강효은과 썸을 타면서 어장 관리를 했다.

호기심 가득한 친구들의 시선에 상처를 받은 신예린은 웃음거리가 되어버린 자신의 짝사랑을 이젠 끝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날 기분이 좋지 않았던 신예린은 술을 많이 마셨고 화장실에 갈 때 취기에 비틀거리다가 다른 사람과 부딪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한 남자의 그윽한 눈매를 보게 되었다.

남자는 여도준보다 훨씬 더 잘생겼고 더 남자다웠다.

술에 취해 무모해진 신예린은 남자의 멱살을 잡으면서 작게 숨을 내뱉었다.

“나랑 잘래요?”

그 뒤는 뻔했다. 두 사람은 함께 호텔로 향했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술에 취해 미친 짓을 저지른 신예린은 다음 날 아침 자신이 다른 남자와 나체로 침대 위에 누워있는 걸 본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헐레벌떡 호텔을 떠났다.

신예린은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그 일을 얘기하지 못했고 그 남자가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 일을 줄곧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지금도 거의 매일 밤 같은 꿈을 꾸었다.

서로 얽힌 나신과 거친 숨소리, 그리고 남자의 그윽한 눈매까지...

“예린아, 어서 일어나. 왜 넋을 놓고 있어? 개강하자마자 지각하고 싶어서 그래?”

송지유의 목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신예린은 꿈속에서 보았던 장면들을 머릿속에서 지운 뒤 황급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세수를 마친 뒤 신예린은 가방을 들고 송지유와 함께 교실로 향했다.

“뭐가 그렇게 급해?”

신예린은 송지유의 발걸음을 따라가기가 벅찼다.

“오늘 해부학 수업 있는 거 잊었어?”

송지유가 말했다.

“너 요즘 진짜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아무것도 기억 못 하잖아.”

신예린은 그제야 학교에서 거금을 들여 아주 뛰어난 해부학 교수님을 모셔 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 교수님은 세계 최고의 의대인 존 헤일리 의대를 졸업한 뒤 바로 교수가 되었는데 의대 역사상 가장 젊은 교수라고 한다.

그 교수님은 개인적인 일 때문에 제때 학교에 도착하지 못했고 학교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해부학 수업을 한 달 뒤로 미뤘다. 연휴가 끝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 그들이 들어야 할 첫 수업이 바로 그 교수님의 수업이었다.

“예린아, 그거 알아? 오늘 아침에 그 교수님을 만난 애가 있대.”

송지유가 약간 신난 어투로 말했다.

“그 교수님 엄청 잘생겼대. 우리랑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사람이라고 하던데. 그것 때문에 지금 학교 완전 난리 났어. 그 교수님 수업을 선택하지 않은 학생들 모두 후회하고 있대.”

송지유는 신예린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우리 빨리 가자. 늦으면 우리 자리가 없을지도 몰라.”

신예린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미 3학년이었고 심지어 해부학 수업은 1교시였다. 사실 일부 학생들은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룸메이트에게 대리 출석을 부탁할 때가 있었고 그 탓에 실제로 교실은 텅 비어 있어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출석 체크를 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교실 앞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로 북적이는 교실을 본 신예린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평소라면 절대 볼 수 없는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송지유는 이런 상황을 이미 예상한 듯했다.

“잘생긴 데다가 학벌도 좋으니 아이돌이 따로 없네.”

그녀는 신예린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만요. 들어갈게요. 청강하러 오신 분들은 저희 수강생들에게 자리를 좀 양보해 주시겠어요?”

어렵게 빈자리를 찾아서 앉자 송지유는 뭔가를 발견하고 질린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침부터 재수가 없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앞에 여도준과 강효은이 앉아 있었다.

일부 중요한 수업들은 같은 과 학생들이 모두 함께 큰 교실에서 수업을 들었는데 해부학 수업에서 그들과 마주칠 줄은 몰랐다.

그들은 아주 다정한 사이 같아 보였다. 여도준이 귓속말을 하자 강효은이 수줍은 표정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신예린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걸 발견한 송지유는 한숨을 쉬었다.

“네가 요즘 정신이 빠진 사람처럼 구는 것도 이해가 가. 2년 동안 짝사랑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랑 사귄다는데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지.”

그 말에 신예린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송지유를 바라보았다.

“둘이 사귄다고?”

“어. 여도준 생일날부터 사귀기 시작했대. 그 표정 뭐야? 설마 지금 안 거야?”

신예린이 대답했다.

“응. 방금 알았어.”

“그러면 그동안 정신줄을 놓고 다닌 이유가 뭐야?”

개강한 지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가기 때문에 송지유는 신예린의 상태를 알 수밖에 없었다.

“...”

신예린은 술을 마시고 다른 사람과 잤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고, 그녀가 대꾸하지 않자 송지유는 신예린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말했다.

“그래, 알겠어. 네 말을 믿을게.”

“...”

그건 사실이었다.

“여도준이 좀 잘생긴 데다가 성적이 좋은 건 맞지만 그걸 제외하면 잘난 점 하나 없지 않아? 저런 쓰레기 같은 놈을 좋아할 필요는 없어. 여도준보다 잘생기고 공부 잘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널렸거든. 새로 온 교수님도 그렇잖아. 여도준 따위는 비교도 안 되지. 예린아, 차라리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건 어때?”

신예린은 망연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누구?”

송지유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새로 온 교수님은 어때?”

송지유는 못 하는 말이 없었다.

신예린은 송지유의 이마를 찰싹 때렸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갑자기 교실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왔다. 교수님 오셨어.”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교실 안이 삽시에 떠들썩해졌다. 다들 기린처럼 목을 쭉 빼고 교수를 기다렸고 신예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단순히 그 교수가 얼마나 잘생겼는지가 궁금했을 뿐이다.

정말 그렇게나 비현실적으로 잘생겼을까?

아주 늘씬한 남자가 교실 문 앞에 도착했다.

그는 키가 매우 컸고 얼굴도 준수했다. 날카로운 턱선, 쭉 뻗은 콧대에 높은 코끝, 매력적인 입술... 그윽한 눈동자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듯했고 점잖으면서도 고고한 분위기는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송지유는 옆에 앉은 신예린이 헛숨을 들이키는 걸 들었다.

“예린아, 내가 말했지. 진짜 잘생겼다니까.”

신예린은 책상에 납작 엎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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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아즘
현아즘
재미나고 흥미롭고 아름다운글
2025-12-18 16:26:00
2
0
박태순
박태순
이렇게 완결하다니 작가가 조금 무책임한것 같아요 ㅠ
2025-12-06 22:14:27
3
0
주은경
주은경
다음 연재. 꼭 부탁해요~재미있게 복ㆍ있는데 이렇게. 결말이 나면 넘 아쉽네요 ...
2025-11-27 00:45:29
2
0
주은경
주은경
너무 재미있게 보고있는데. 아쉽네요 완결이라서...아쉬워요 ...
2025-11-20 18:11:50
2
0
찌이인
찌이인
너무 뜬금없이 완결이네
2025-11-15 08:19:01
3
0
284 챕터
제1화
추월녀가 선우원영을 처음 본 건 선우원영이 그녀의 정혼자인 유봉진을 암살하려 할 때였다.선우원영의 암살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 잡히고 말았지만 유봉진은 벌을 내리기는커녕 오히려 여인과 다른 기개를 지녔다고 여겼다.“네가 선우재덕의 여식이냐?”유봉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남루한 행색의 어린 계집을 쳐다보았다.“고개를 들라. 얼굴 좀 보자.”유봉진은 동릉의 전쟁의 신이었고 병사들은 그의 명령이라면 무조건 복종했다. 하지만 눈앞의 여인은 그의 불같은 호통에도 조금도 기죽지 않고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거라. 내가 눈 하나 깜짝한다면 대진 영웅의 여식이라 불릴 자격이 없을 것이다.”선우원영의 굳건한 기개와 오만한 태도는 유봉진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었다.유봉진은 그녀의 턱을 잡고 꾀죄죄한 얼굴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감히 내 앞에서 방자하게 굴다니, 죽음이 두렵지 않은 모양이구나.”“놓지 못할까!”선우원영은 뿌리쳐도 소용없자 씩씩거리며 그를 노려보았다.“빌어먹을 놈, 죽일 테면 죽여 보거라.”욕설을 들었는데도 유봉진은 화를 내지 않고 씩 웃었다.“날 욕한 여인은 네가 처음이다. 아주 흥미롭군.”추월녀는 저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조마조마해졌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어보면 그녀가 제삼자가 된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이후 유봉진의 행동은 그녀의 불안감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녀가 정말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에 얽힌 것이었다.선우원영에게서 선우재덕의 잔당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유봉진은 선우원영을 옥에 가두고 직접 심문했다.그 무렵 선우재덕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유봉진은 도성으로 돌아가려고 군대를 정비하고 있었다.책사인 추월녀는 승전 후 딱히 할 일이 없어 매일 책을 읽거나 바느질하며 시간을 보냈다.그녀와 유봉진의 혼례는 다음 달 초하루로 정해져 있었다. 이는 부모님이 생전에 정해준 혼약이었다.어릴 적부터 추월녀와 유봉진은 잘 어울리는 한 쌍으로 칭송받으며 남들의 부러움을 받으면서 자라왔다.추월녀는 혼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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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선우원영이 추소하의 아래쪽 그곳을 찌른 것이었다.추월녀가 달려갔을 때 추소하는 침상에 누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의원이 이미 상처를 싸맸고 벗어놓은 바지는 온통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옆에 있던 의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장군께서 아무래도... 후사를 보지 못하실 듯합니다.”추월녀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정신이 멍해졌다.국공부는 대대로 나라에 충성했고 선대 국공의 세 아들은 모두 전장에서 장렬히 전사했다.큰아들 충용후가 추월녀의 아버지인데 전사할 때 슬하에 추월녀와 추소하 둘 뿐이었다.둘째와 셋째 작은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전장에 나가 목숨을 잃었다. 둘째 작은아버지는 혼인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전쟁터로 떠났고 셋째 작은아버지는 혼인조차 하지 못했다.하여 추소하가 국공부에 남은 유일한 사내였다.그런데 선우원영의 칼날이 국공부의 대를 완전히 끊어놓고 말았다. 평소 충직하고 성실했던 큰 오라버니의 삶을 송두리째 망쳐놓았다.추월녀가 바닥에 떨어진 단도를 주워들고 뛰쳐나갔다.“아씨! 진정하십시오, 아씨.”자운선이 다급하게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추월녀는 선우원영을 찾아 헤맬 필요도 없었다. 유봉진이 이미 선우원영을 잡고 뜰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놓아라!”선우원영이 오만한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유봉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빌어먹을 놈, 놓으란 소리 못 들었느냐?”유봉진은 그녀의 발길질에도 꿈쩍도 하지 않더니 추월녀가 손에 든 칼을 보자마자 낯빛이 확 변했다.“월녀야...”추월녀는 칼을 들고 빠른 걸음으로 두 사람에게 다가간 후 망설임 없이 선우원영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추월녀, 뭐 하는 짓이냐?”유봉진이 한 손으로 추월녀의 손목을 잡고 다급하게 외쳤다.“말로 하거라.”“이 여인이 제 오라버니의 인생을 망쳤습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고 오라버니를 칼로 찌른 걸 똑같이 갚아줄 겁니다.”추월녀가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자 유봉진이 다급하게 말했다.“오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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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그 눈빛에 추월녀는 칼로 도려내듯 마음이 아팠다.오랜 세월을 함께 해왔고 다음 달이면 혼례를 올릴 예정이었지만 만난 지 고작 보름도 채 안 된 여인을 위해 그녀에게 살의를 품었다.유봉진의 눈에 스쳐 지나간 살기를 본 순간 오랜 정과 의리는 갑자기 덧없는 것이 돼버렸다.추월녀는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뜨렸다.“대군 나리께서는 이 여인을 위해 복수라도 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내가 못할 것 같으냐?”유봉진이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싸늘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자운선이 당황해하며 재빨리 달려왔다.“대군 나리, 이 일은 아씨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선우원영이 먼저...”“저리 썩 꺼지지 못할까!”유봉진은 자운선을 매몰차게 걷어찼다. 그 바람에 자운선은 바닥에 넘어져 붉은 피를 토해냈다.“운선아.”조급해진 추월녀가 큰 소리로 말했다.“정신 좀 차려 보거라.”자운선은 어릴 적부터 그녀의 곁을 지켰다. 비록 시녀였지만 두 사람은 자매처럼 가까웠고 추월녀는 그녀를 가족처럼 여겼다.추월녀의 다급하고 불안한 모습에 유봉진의 분노도 조금 가라앉았다.추월녀가 이토록 당황하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본능적으로 위로를 건네려던 그때 품 안의 선우원영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빌... 빌어먹을 놈. 너무... 아프구나.”그 말을 끝으로 선우원영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유봉진은 그녀의 창백한 얼굴과 가슴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피를 보고 있자니 추월녀에 대한 연민이 확 사라졌다.“이미 칼로 찔렀으니 앞으로 그 누구도 이 일을 언급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입 밖에 꺼냈다간 절대 용서치 않겠다. 월녀 넌... 운선이를 데리고 가서 치료해주거라.”그러고는 기절한 선우원영을 안고 황급히 가버렸다.그의 다급한 발걸음과 불안한 뒷모습만 봐도 품 안의 여인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 수 있었다.그러나 지금 그녀는 다른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그날 추월녀는 자운선을 방에 눕히고 잘 돌보라고 시킨 후 줄곧 추소하의 곁을 지켰다.해 질 무렵 추소하가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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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평소 알고 지내던 진왕 대군이면서도 또 아닌 것 같기도 했다.과거의 유봉진은 의기양양하고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았지만 오늘 밤 추월녀 앞에서는 사랑 때문에 상처를 입은 사내의 모습을 보였고 심지어 의욕마저 잃은 듯했다.추월녀는 그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유봉진은 예전에도 고민이 있을 때면 그녀를 찾아왔다. 기분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그녀에게 털어놓았다.오늘 밤에는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인 게 분명했다.유봉진은 독주를 연거푸 몇 잔이나 들이켠 후에야 추월녀를 보면서 나지막이 물었다.“추 장군이 다친 곳은 어떠하냐?”“많이 좋아졌습니다.”추월녀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싸늘한 얼굴에 어떤 표정도 드러나지 않았다.유봉진은 그 상처가 결코 나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추월녀의 손을 잡았다.“월녀야, 이만 화 풀거라. 그날은 내가 잘못했다. 너에게 화를 내선 안 됐었는데.”사실 지난 세월 동안 유봉진은 추월녀에게 꽤 잘해줬다. 화가 아니라 말투가 조금만 세게 변해도 바로 사과하곤 했다.심지어 그녀 앞에서 위압감도 드러내지 않았다. 사흘 전 그날만 빼고는.추월녀는 시선을 늘어뜨리고 손을 빼내려 했다. 그런데 유봉진이 그녀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월녀야, 제발... 화내지 말거라. 나도 내가 왜 이리 변했는지 모르겠다.”“어떻게 변했는데요?”추월녀는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얼굴과 눈에 고통스러운 기색이 가득했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했다.그는 동릉의 전쟁의 신 진왕 대군이다. 크고 작은 전투를 셀 수 없이 치렀고 겪어보지 못한 풍파가 없었다. 태산이 눈앞에서 무너져도 꿈쩍하지 않을 그런 사내였다.그런 그가 이리 괴로워한 적이 있단 말인가?“월녀야, 내 마음속에는 너밖에 없다.”유봉진이 갑자기 말했다.“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우리의 혼례도 예정대로 치를 것이다. 다음 달에 혼례를 올리면 난 너만을 사랑할 것이다.”과거의 추월녀였다면 이 말을 듣고 감동에 휩싸였을 것이다.하지만 그날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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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그러니까 대군 나리의 뜻은 저와의 혼인을 무르시겠다는 말씀입니까?”추월녀의 표정은 여전히 차분하고 침착했다. 하지만 소매 속에 감춘 주먹을 아무도 모르게 꽉 쥐었다.날카로운 손톱이 손바닥 살갗에 박혀 따끔거렸지만 심장의 고통 때문에 손바닥의 작은 아픔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정혼자는 괴로운 표정으로 다른 여인을 좋아하게 되었으니 예전처럼 그를 위로해달라고 했다.‘세상에 정말 별의별 일들이 다 있네. 어이가 없어서 원.’혼인을 무르겠냐는 추월녀의 질문에 유봉진은 갑자기 심장이 칼로 도려내듯 아팠다.“그럴 리가. 난 절대 혼인을 무르지 않을 것이다. 너와 평생을 함께하겠다.”흥분한 유봉진이 다시 추월녀의 손을 붙잡았다. 이번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힘주어 잡았다.추월녀의 손톱이 원래 손바닥을 향해 있었는데 그가 움켜쥔 순간 손톱 전체가 살갗에 깊숙이 박혀버리고 말았다.분명히 몹시 아팠지만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듯 유봉진을 보면서 차분하게 물었다.“그럼 이 밤에 무슨 말씀을 하려고 찾아오신 겁니까?”“월녀야, 제발 이리 차갑게 대하지 말거라.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감정이 고작 이 정도의 작은 파도에도 휩쓸려갈 만큼 보잘것없었단 말이냐?”유봉진은 그녀의 손을 잡은 채 술병을 들더니 단숨에 반병이나 들이켰다.그러고는 술병을 탁자에 내던진 다음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고 눈을 감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고통스러운 표정이었다.“나도 내가 어이하여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 계집은 얼굴도 못생겼고 몸도 왜소해서 너에게 한참 미치지 못하는데 밤마다 눈을 감으면 그 계집의 눈이 떠오른다. 커다란 눈망울이 오만함으로 가득 차 있더구나. 나를 보고도 오만방자하게 구는데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리석은 계집이다.”분명 듣기 거북한 욕설을 내뱉고 있었으나 그의 입가에는 어느새 미소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하지만 유봉진은 자신이 웃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한 채 여전히 괴로워했다.“어쩌면 그동안 내가 만났던 여인들과 달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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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추월녀는 유봉진을 보며 아무 말 없이 덤덤하게 웃기만 했다.그녀가 예전처럼 위로해주지 않자 유봉진은 다소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그는 추월녀가 위로의 말이라도 몇 마디 건넬 줄 알았다. 어쨌거나 그동안 그녀에게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으니까.사내들은 대부분 마음이 쉽게 변했지만 유봉진은 적어도 그러지 않았기에 세상의 그 어떤 사내보다 훨씬 낫다고 자부했다.추월녀는 끝내 화를 내지 않았다.유봉진은 추월녀의 성격이 좋아 그가 무슨 짓을 하든 마음을 진정하고 나면 결국 그를 용서해줄 것이라고 믿었다.“기운 내거라. 잘 될 것이니 조금만 기다려다오.”그러고는 그제야 만족한 듯 떠나버렸다.그의 뒷모습이 문밖으로 사라진 순간 추월녀의 입가에 머금었던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몸을 돌려 자운선의 방으로 들어갔는데 자운선이 침상에 앉아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왜 그러느냐? 몸이 아직 아픈 것이냐?”추월녀의 눈빛이 변하더니 재빨리 그녀에게 다가갔다.자운선은 고개를 내저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아씨, 방금 다 들었습니다. 대군 나리께서...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어찌 아씨를 이리 대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사실 그날 선우원영이 유봉진을 빌어먹을 놈이라고 했는데도 유봉진은 그 호칭이 익숙한 듯 화도 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자운선은 두 사람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았다.추월녀조차 유봉진에게 함부로 하지 못하는데 이것만 봐도 진왕 대군이 선우원영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 수 있었다.“아씨, 대군 나리께서 마음을 돌릴 거라고 믿으십니까?”뜻밖에도 창밖을 내다보는 추월녀의 눈빛이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대군 나리께서 선우원영을 잊든 말든 더 이상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자운선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아씨...”“상대가 돌아와 가끔 자신을 봐주기를 기다리면서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자는 없다. 이미 내게서 멀어졌으니 나 또한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9년 동안 품어온 마음을 하루아침에 떨쳐버릴 수는 없겠지만 한 번 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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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유봉진이 마차에서 내릴 때 머리가 약간 헝클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마차 안의 여인과 애정행각을 한 모양이었다.그가 고개를 들어보니 추월녀가 바람 속에 서서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마침 바람이 불어왔다.추월녀가 흰옷을 입고 있었는데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이 변함없이 맑고 깨끗했다.반면 유봉진은 예전에는 자유분방하고 멋스러웠지만 오늘은 선우원영 때문에 다소 초라한 모습이었다.선우원영은 마차에서 내린 유봉진을 뒤따라 발을 젖히고 내렸다. 고개를 들자마자 멀지 않은 곳의 추월녀와 눈이 마주쳤다.추월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본 순간 선우원영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이내 시선을 거두고 마차 옆에 서 있는 유봉진을 노려보았다. 그녀는 두 눈에 분노가 가득한 채 대놓고 빈정거렸다.“흥. 저렇게 아름다운 여인을 곁에 뒀으면서 왜 또 날 건드리는 것이냐?”선우원영은 마차에서 뛰어내린 후 증오 섞인 눈빛으로 추월녀를 째려보았다.“칼 맞은 건 언젠가 반드시 갚을 것이다. 날 건드린 자는 절대 가만두지 않아. 추월녀, 두고 보거라.”그러고는 아무 미련이 없는 표정으로 돌아섰다. 그런데 그때 유봉진이 그녀의 앞을 막아서더니 그녀의 손목을 잡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행군에 차질이 있어서는 안 된다. 억지 부리지 말고 무슨 일이 있으면 도성으로 돌아가서 얘기하거라.”“빌어먹을 놈, 난 이미 분명히 말했다. 난 추월녀가 아니고 너의 권력과 지위를 위해 기꺼이 다른 여인과 함께 네 시중을 들 생각이 없다. 그런 가식적인 감정을 원한다면 추월녀에게 갈 것이지, 왜 나에게 매달리는 것이냐?”선우원영이 힘껏 몸부림쳤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유봉진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놔라! 저 여인을 만졌던 손으로 날 만지지 마라.”하지만 유봉진은 끝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화가 난 선우원영이 갑자기 손을 들더니 유봉진의 뺨을 세게 후려갈겼다.찰싹.주변의 병사들은 놀란 나머지 하나같이 입을 쩍 벌렸고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심지어 자운선조차 놀라서 온몸이 얼어붙었다.유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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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유봉진은 끓어오른 분노를 애써 참으며 선우원영과 함께 도성으로 향했다.한동안 추월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냉랭하게 대하면 그녀가 울면서 다가와 용서를 빌 줄 알았다.하지만 도성에 돌아온 후 그녀는 열흘 동안이나 국공부에만 머물렀고 문밖으로 단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처음에는 유봉진도 무관심했지만 결국 참다못해 호위무사를 보내 상황을 살피게 했다.“월녀가 병이라도 난 것이냐? 아니면 추 장군의 부상이 아직 낫지 않아 직접 간호해야 하는 것이냐?”상황을 살피고 돌아온 호위무사가 즉시 보고했다.“대군 나리, 추 장군의 부상은 이제 거의 나았고 오늘 추 장군께서 입궐하여 폐하를 뵈었다고 합니다.”“입궐해서 아바마마를 뵈었다고?”‘무단이탈한 장군이 무슨 낯짝으로 아바마마를 뵈어?’“추 장군이 다 나았는데도 월녀는 국공부에 틀어박혀 무엇을 한단 말이냐?”‘진왕부로 와서 잘못을 빌지 않고 대체 뭔 생각인 건지.’“내가 운선이를 심하게 걷어차서 아직도 낫지 않은 것이냐?”“운선 낭자도 괜찮아 보였습니다. 오늘 월녀 아씨와 함께 국공부 후원에서 약재를 말렸다고 합니다.”“약재를 말릴 시간은 있고 날 찾아올 시간은 없다는 게냐?”유봉진은 추월녀가 용서를 빌러 오면 그때 몇 가지 요구를 하려 했지만 추월녀가 끝까지 먼저 화해를 청하지 않을 줄은 몰랐다.이레째 되는 밤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직접 국공부로 향했다.추월녀가 막 목욕을 마친 터라 긴 머리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그녀는 손에 작은 상자를 들고 편청으로 들어갔다. 유봉진은 그 모습을 그저 힐끗거리기만 할 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예전에도 종종 그에게 작은 선물을 준비하곤 했으니까. 그때마다 그는 놀라워하며 기뻐했다.하지만 지금 그를 화나게 한 뒤 이런 식으로 달래려 한다고 생각하니 왠지 별로 흥미가 가지 않았다.선우원영의 솔직함에 비하면 추월녀의 이런 수단은 너무나 가식적으로 느껴졌다.“네게 며칠 동안 생각할 시간을 주었는데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달았느냐?”유봉진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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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역시 아직도 이 일 때문에 화가 풀리지 않았구나.”유봉진은 추월녀에게 크게 실망했다.“별것도 아닌 일로 이렇게까지 꽁해 있어야겠느냐?”“대군 나리께서는 제 오라버니의 인생이 망가진 일이 그저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그가 추월녀에게 실망한 만큼 추월녀 역시 그에게 극도로 실망했다.과거 공정하고 사사로운 욕심이라곤 없던 유봉진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정말로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하신다면 다음에 선우원영더러 대군 나리를 칼로 찔러보라고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그 장면을 상상하던 유봉진은 순간 아래쪽에 고통이 밀려오는 듯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깊은 무력감이 엄습했다.“됐다. 너도 원영이를 칼로 찌르지 않았느냐. 얼마나 깊게 찔렀는지 모르지? 몸뿐만 아니라 자존심에도 상처를 입었다. 그 한 방 때문에 더는 자신이 완벽한 여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단 말이다...”“언제 완벽했던 적이 있었습니까?”“추월녀!”유봉진이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너와 싸우고 싶지 않다. 지나간 일은 이제 여기까지만 하거라. 그리고 너와 추 장군이 군대를 무단이탈한 일은...”“제가 폐하께 급히 전령을 보내 오라버니를 데리고 도성으로 돌아가 치료받을 수 있도록 윤허해달라 했더니 폐하께서 윤허하셨습니다. 하여 언제든지 떠날 수 있었습니다.”추월녀는 유봉진의 잘생긴 얼굴을 보며 무뚝뚝하게 말했다.“믿지 못하시겠다면 직접 입궐하여 폐하께 여쭤보십시오.”유봉진은 두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노려봤다. 추월녀가 몰래 뒤에서 이렇게 많은 일을 했을 줄은 몰랐다.화가 났지만 그녀가 안고 있는 나무 상자를 본 순간 답답했던 감정이 조금 가라앉는 듯했다.선물을 가져왔다는 건 화해할 마음이 있다는 뜻이었다. 유봉진이 그렇게 옹졸한 사람도 아니고 게다가 오늘 온 목적이 따로 있었기에 더 따지진 않았다.“알겠다. 지나간 일은 다 잊도록 하자. 월녀야, 열흘 후면 우리의 혼례일이지 않느냐. 오늘 너에게 할 말이 있어서 왔다.”추월녀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듣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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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유봉진은 추월녀가 난리를 피울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그녀에게는 분하고 서운한 일이었으니까.하지만 추월녀는 그저 조용히 쳐다보기만 할 뿐 울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조용해서 유봉진은 마음이 더 불편했다.“월녀야, 너도 봐서 알겠지만 원영이는 너와 나를 공유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해서 원래는 너와의 혼인을 무르려 했었다.”유봉진은 이 말이 상처가 되는 말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추월녀가 순순히 받아들였더라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텐데.‘이게 다 네 고집이 너무 센 탓이다. 난 너에게 상처를 줄 생각은 없었느니라.’“원영이가 너를 받아들인 건 최대한의 양보다. 만약 네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나와 너의 혼인을 취소하는 수밖에 없다.”추월녀는 여전히 그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뜨뜻미지근한 시선에 유봉진은 왠지 모르게 짜증이 밀려왔다.“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냐? 네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든 나는 원영이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빙빙 돌리지 말고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그는 더 이상 그녀와 감정 소모를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선우원영이 저택에서 기다리고 있어 빨리 가봐야 했다.선우원영의 성격에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얼마나 난리를 칠지 모른다.“알겠습니다. 그럼 저도 솔직하게 말씀드리지요.”추월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제가 기억하기로 그날 선우원영은 평생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없다면 건드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대군 나리께서 저와 혼인하면 평생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없게 되는데 괜찮겠습니까?”유봉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그것이... 내가 너에게 바라는 두 번째 조건이다.”그녀는 다시 말을 멈추고 그를 조용히 쳐다보았다. 유봉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원영이에게 약조했다. 평생 원영이 이외의 어떤 여인도 건드리지 않겠다고.”“그럼 저와 왜 혼인하십니까? 저를 데려가 홀로 늙어 죽게 하실 건가요?”추월녀는 어이가 없었다.그녀의 말에 유봉진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넌 부부인의 자리를 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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