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여는 가족을 대신해 죄를 갚기 위해 황제의 침전궁녀가 되었다. 황제는 그런 그녀가 황궁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지켜만 볼 뿐, 한 번도 연민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질투 많은 숙비가 그녀에게 독을 먹여 벙어리로 만들었을 때조차 방관했다. 강만여는 모든 것을 묵묵히 참아냈다. 끝없는 조롱과 모욕, 그녀는 점차 무디어지고 무감각해졌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연차를 채워 출궁해 황제와 다시 마주치지 않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출궁 사흘 앞두고, 차갑고 무정하던 황제가 갑자기 돌변했다. 그녀를 놓아주려 하지도 않고, 자꾸만 집착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천하도 너도 모두 짐의 것이다. 어디를 가든 짐의 손바닥 안을 벗어날 수 없다.” ———— 기양은 아버지와 형을 죽인 냉혹하고도 잔인한 황제였다. 그는 비록 후궁이 많았지만, 진심으로 끌리는 여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강만여 또한 5년이라는 세월을 그의 침전궁녀로 있었지만, 그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가랑비에 어깨가 젖듯, 그는 강만여에게 스며들었고 언젠가 자신을 떠날 거란 생각을 전혀 못 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출궁 일이 정해지고, 그는 자신의 것으로 생각했던 강만여가 다른 곳에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황제는 자신의 마음을 깨달았다. 아무리 그가 온 천하를 쥐고 흔들 수 있는 황제라지만, 그녀의 마음만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View More“만청아, 말조심하거라.”강만청의 어머니 주씨가 급히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지만 이미 늦었다. 강연해가 몸을 돌려 강만청의 따귀를 후려쳤다.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함부로 끼어드는 것이냐!”얼굴을 감싸 쥔 강만청은 굴욕에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강만여를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폐하의 침상을 정리하는 계집애의 위세 한번 대단하구나. 나중에 후궁이라도 되면 얼마나 더 기세등등할까? 그때가 되면 모두 무릎을 꿇고 절을 하겠구나.’한시라도 빨리 어머니를 뵙고 싶었던 강만여는 호진충에게
5년 만에 마주한 강만당은 약간 초췌해졌을 뿐, 외모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진왕께서 계속 냉궁에 유폐되어 있었기에 울적했던 강만당은 전보다는 체구가 더 말라붙었고 상복을 입고 있어 더욱 가련해 보였다. 자신과 닮은 그 얼굴을 마주하니, 강만여는 속에서 증오가 끓어올랐다.‘저 얼굴 때문에 나는 5년 동안 고생을 하고,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는데 이제 와서 상복을 입고 진심으로 슬픈 척 행동하다니, 정말 역겹구나.’강만당과 두 이복동생이 그녀에게 다가왔다.넷째 강만청이 입술을 비쭉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자기가 뭐라고 우리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호진충이 입꼬리를 올리며 래녹의 이마를 살짝 쳤다. “네 놈이 꾀가 많구나. 이래서 서 장인의 양자가 되었구나.”래녹도 웃으며 아첨을 늘어놓았다. “호 총관님처럼 폐하의 신임을 받으시는 분과 저 따위가 감히 비교나 되겠습니까?”호진충은 래녹의 아부에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곧바로 문지기를 불러 설영을 궁으로 돌려보낸 뒤, 강만여와 함께 래녹이 모는 마차를 타고 안평백 부로 향했다.설영에게 죄책감이 들었던 강만여는 떠나기 전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렸다. “난 괜찮으니 울지마. 그저 아무
과연 래녹은 말 다루는 솜씨가 뛰어났고 단숨에 미친 듯이 달리던 말을 제압했다. 마차가 멈추자 호진충은 시름을 놓으며 강만여를 살피러 달려갔다.“강 상궁, 다친 곳은 없느냐?”마차 안에서 그녀는 머리 위의 손잡이를 꽉 움켜쥔 채 창백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호진충이 자랑했듯, 마차 내부는 부드러운 솜과 비단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발밑에는 두꺼운 깔개가 깔려 있었다. 마차 천장과 측면에는 몸을 고정할 수 있는 손잡이가 설치되어 있어, 마차가 심하게 흔들릴 때도 떨어질 위험이 없었다. 철저한 보호 장치 덕분에, 설사 부딪
강만여는 입술을 깨물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녀에게 황제의 총애는 아무 의미 없었다.그녀가 원하는 것은 심장안과 자유뿐이다.하지만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설영과 그 식솔들의 목숨을 걸어야 했다.신무문에 도착한 강만여는 심경이 복잡했다.지난 생에는 기양의 옥패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호진충에게 연행되어 진형사에 갔다. 그날 그녀가 탈출에 성공했다면 지금쯤 심장안과 함께 있을지도 몰랐다. 그랬다면 그녀의 어머니도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이다. 호진충이 기양의 수유를 내밀자, 문지기가 바로 문을 열어주었다.“나가자!”호진
그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기양은 설영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분부했다.“잘 돌봐야 할 것이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네 식솔들을 몰살할 것이다.”설영은 공포에 벌벌 떨며 명을 받들었다. 강만여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내가 과소평가했구나. 아무리 애틋한 순간에도 결코 경계를 늦추지 않는구나.’그녀에게 어머니라는 족쇄가 사라진 이상, 이제는 그녀의 가장 친한 동료를 족쇄로 삼으려 했다.만약 그녀가 도망친다면 설영과 설영의 식솔들이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강만여는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한 뒤 호진충과 설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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