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여는 가족을 대신해 죄를 갚기 위해 황제의 침전궁녀가 되었다. 황제는 그런 그녀가 황궁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지켜만 볼 뿐, 한 번도 연민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질투 많은 숙비가 그녀에게 독을 먹여 벙어리로 만들었을 때조차 방관했다. 강만여는 모든 것을 묵묵히 참아냈다. 끝없는 조롱과 모욕, 그녀는 점차 무디어지고 무감각해졌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연차를 채워 출궁해 황제와 다시 마주치지 않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출궁 사흘 앞두고, 차갑고 무정하던 황제가 갑자기 돌변했다. 그녀를 놓아주려 하지도 않고, 자꾸만 집착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천하도 너도 모두 짐의 것이다. 어디를 가든 짐의 손바닥 안을 벗어날 수 없다.” ———— 기양은 아버지와 형을 죽인 냉혹하고도 잔인한 황제였다. 그는 비록 후궁이 많았지만, 진심으로 끌리는 여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강만여 또한 5년이라는 세월을 그의 침전궁녀로 있었지만, 그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가랑비에 어깨가 젖듯, 그는 강만여에게 스며들었고 언젠가 자신을 떠날 거란 생각을 전혀 못 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출궁 일이 정해지고, 그는 자신의 것으로 생각했던 강만여가 다른 곳에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황제는 자신의 마음을 깨달았다. 아무리 그가 온 천하를 쥐고 흔들 수 있는 황제라지만, 그녀의 마음만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View More강만여의 얼굴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곤 공포에 질린 얼굴로 황제를 바라보았다. 이건 절대로 농담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목적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강만여는 차가운 눈밭 위에 간절한 마음을 담아 용서를 구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또 조아렸다. 그러나 황제는 서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볼 뿐, 자신의 말을 철회하지 않았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던 강만여는 결국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손짓으로 그에게 말했다. 어머니만 살려준다면 다시는 이 궁을 나갈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폐하, 명하신대로 데려왔습니다."호진충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황제는 말없이 손짓으로 그에게 물러가라고 지시했다. 호진충은 등불을 바닥에 내려놓은 채 눈치껏 물러갔다.강만여는 황제와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무릎을 꿇으며 인사를 올렸다. 황제는 앙상한 그녀의 모습을 보며 복잡한 기분이 들어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그만 일어나거라.”강만여는 망설이며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그대로 망부석이 된 듯 움직이지 않았다. 황제는 그런 그녀가 불쾌한 듯 미간을 찡그렸다.“설마 내가 널 잡아먹을까?”뒤늦게 자신의 태도를 자각한 그녀가
강만여는 간만에 달콤히 잠들었는데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번쩍하고 눈을 떴다."문 좀 열어보거라."그녀는 곧바로 단검을 찾았다. 이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내시의 것이었다. ‘설마… 뇌삼춘?’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휩쓸었다. 매상이 했던 경고와 함께 자소가 스스로 얼굴을 그었다는 것까지,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키고 더 단단히 단검 그러쥐었다.하지만 문득 뇌삼춘이라면 굳이 문을 두드리며 당당히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역시나 이때, 뜻밖의 말이 들려왔다."문 좀
황제의 뜻밖의 반응에 호진충은 매우 반색하며 서둘러 외출 시중을 들었다. 그런 다음 새우처럼 허리를 굽혀 황제의 길을 앞장섰다.황제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제법 눈치가 빠르구나. 손 총관보다 낫네."너무나도 바라고 바라던 한마디, 호진충의 눈이 반달처럼 휘었다. 그동안 손량언 밑에서 버텨온 세월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꼈다. 모두 강만여가 존재한 덕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는 다시금 이 행운의 여신을 놓쳐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손량언과 소복자는 황제가 갑자기 외투를 입고 나오는 것을 보자 놀라 물었다.
하지만 그 외모와 대비되게 그는 아주 냉혹한 심장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 형제 모두 살해하고 궁을 피바다로 만들어 황위에 오른 잔인한 황제, 그게 바로 기양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그의 작은 소문만 들어도 두려움에 떨었다. 손량언은 그가 아주 어릴 적, 두어 살 무렵부터 시중을 든 사람이었지만 여전히 눈 마주치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날카로운 시선에 어쩔 바를 모르며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소인이 잘못 판단한 것 같습니다. 바로 가지러 가겠습니다."손량언이 떨리는 목소리로 허리를 숙이며 황제의 눈치를 살폈다.그
이건 너무 위험한 짓이었다. 향예가 호진충에게 말했다."아무리 그래도 그런 위험까지 감수할 순 업사옵니다! 숙비마마가 어떤 분인지는 누구보다 이총관님이 잘 아시잖아요! 혹시라도 들키면 저도 목숨 부지 못합니다!"그러자 호진충이 여유롭게 말했다."쓸데 없는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설마 그정도도 처리 못해줄까? 만약 성공한다면 이번엔 널 건청궁으로 옮겨주마, 어떠냐?"그러자 향예의 눈이 번뜩였다."참말이옵니까?"그러자 호진충이 허세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누군지 몰라? 건청궁의 이총관이니라, 겨우 이깟일로 너를 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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