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강만여는 가족을 대신해 죄를 갚기 위해 황제의 침전 궁녀가 되었다. 황제는 그런 그녀가 황궁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지켜만 볼 뿐, 한 번도 연민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질투 많은 숙비가 그녀에게 독을 먹여 벙어리로 만들었을 때조차 방관했다. 강만여는 모든 것을 묵묵히 참아냈다. 끝없는 조롱과 모욕에 그녀는 점차 무디어지고 무감각해졌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연차를 채워 출궁해 황제와 다시 마주치지 않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출궁 사흘 앞두고, 차갑고 무정하던 황제가 갑자기 돌변했다. 그녀를 놓아주려 하지도 않고, 자꾸만 집착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천하도 너도 모두 짐의 것이다. 어디를 가든 짐의 손바닥 안을 벗어날 수 없다.” 기양은 아버지와 형을 죽인 냉혹하고도 잔인한 황제였다. 그는 비록 후궁이 많았지만, 진심으로 끌리는 여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강만여 또한 5년이라는 세월을 그의 침전 궁녀로 있었지만, 그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가랑비에 어깨가 젖듯, 그는 강만여에게 스며들었고 언젠가 자신을 떠날 거란 생각을 전혀 못 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출궁 일이 정해지고, 그는 자신의 것으로 생각했던 강만여가 다른 곳에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황제는 자신의 마음을 깨달았다. 아무리 그가 온 천하를 쥐고 흔들 수 있는 황제라지만, 그녀의 마음만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View More기양은 갑자기 강만여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당장 그녀를 품에 안고 싶었다. 손량언이 황제 일행이 도성 근처에 도착했다며 마중 나가겠냐고 물었으나, 기양은 다른 사람을 보내라는 말만 남기고 급히 왕부로 달려갔다. 그는 바람과 눈을 뚫고 아능로 들어갔다. 병풍을 돌아 회랑을 지나, 꽃무늬 문을 거쳐 후원으로 향했다. 강만여가 머무는 마당에 들어서자, 눈앞에 장관이 펼쳐졌다. 마당의 배나무에 눈이 소복이 내려앉아 꼭 꽃이 다시 핀 것 같았다. 나무 아래, 그녀가 흰 여우 털이 달린 붉은색 망토를 입고 불룩한 배를 감싼 채 하얀
기망은 하소연이 통하지 않자, 황제 자리로 기양을 유혹했다. “네가 언제 황제 노릇을 해보겠느냐? 이번 기회에 황제 기분 좀 내봐.” 기양은 콧방귀를 뀌며 관심 없다고 했다. 결국 기망은 최후의 수단으로 눈물 작전을 펼쳤다. 콧물 눈물 다 짜며 울어대자, 기양은 어쩔 수 없이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기양은 기망을 위한 여행 경로까지 친절히 짜주며, 강만여가 아이를 낳기 전에는 반드시 돌아오라고 당부했다. 준비를 마친 기망은 조회에서 황후와 함께 전국을 시찰하며 민심을 살피러 갈 것이니, 국정은 당분간 소요왕에게 맡기겠다
서청잔은 지금의 충족한 삶이 만족스러웠고, 억지로 감정의 공백을 메울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저 인연이 오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정안 태비는 제일 늦게 나가며 기양에게 단호하게 일렀다. “첫 석 달이 가장 중요하니 조심해야 한다. 피 끓는 청년처럼 탐욕스럽게 굴어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기양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네, 조심하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태비는 강만여에게도 당부했다. “이번엔 꼭 내 말을 들어야 한다. 저 녀석이 고집부리게 두지 말고, 말을 안 들으면 내게 말해라. 내가 혼내줄 테니.” 강만여
“그거면 됐다.” 기양은 안심했다. “회임해서 속이 울렁거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람을 시켜 식단을 조절해 주마. 집안에 늘 상큼한 과일과 채소, 간식을 준비해 두라 일러둘 테니, 생각날 때면 먹거라. 너도 조심해야 한다. 이제 함부로 돌아다니거나 술을 마셔선 안 돼.” 말을 마친 그는 곁에 서 있는 서청잔과 심장안을 돌아보았다. “너희 둘, 다시는 이 아이를 데리고 술 마시러 가면 안 된다, 알겠느냐?” 두 사람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점에 도착하자마자 왕비 마마께서 술 냄새를 맡
기양은 참지 못하고 신음을 내며 몸을 돌려 눕더니, 그녀의 허리를 낚아채 자신의 위에 앉혔다. 그녀는 수줍은 듯, 피하려 했다. “아, 안 돼요, 이런 건 모른단 말이에요…” “모르면 어떠냐, 이 스승님이 가르쳐주마.” 기양은 그녀의 허리를 잡고 달콤하게 꼬드겼다. “배워두면 다 쓸데가 있는 법이지. 좋은 학생은 다양한 교육을 받아야 하는 법이야.” “싫어요, 좋은 학생 안 할래요.” “나쁜 학생도 배워야 한단다. 착하지, 스승님 말 들어야지…” “아…” “음…” “그래, 바로 그거다. 착한 아이구나, 깨달음이 빠
강만여는 날짜를 계산해 서청잔에게 서신을 썼다. 경성에 도착하면 고씨 부인에게 자신의 어머니와 정안 태비 그리고 우란야 어머니께 소개해 주라고 말이다. 모두 연배도 비슷하고 성격도 온화하니 분명 잘 통할 것 같았다. 그래야 고씨 부인도 집에서 혼자 심심하지 않고 경성 생활에 빨리 적응할 수 있을 것이기에. 서청잔은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여 경성에 도착하자마자 고씨 부인을 세 사람에게 소개했다. 처음엔 잘 어울릴지 걱정했으나 웬걸, 네 사람은 만나자마자 놀라울 정도로 취향이 잘 맞았고 금세 둘도 없는 자매처럼 친해졌다. 한가할 때
기양은 서청잔이 그렇게 떠난 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작별의 슬픔을 겪지 않아도 되고, 서로 눈물 콧물 짜며 생이별하는 장면을 연출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게다가 서청잔은 혈육까지 찾았고, 혼자 외롭게 돌아가는 것보다 훨씬 잘된 일이기에 그 나름대로 보람이 있었다. 그래도 마음이 좋지 않았던 강만여는 기양의 팔을 베고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청잔이 고씨 부인을 저렇게 아낄 줄 알았으면, 차라리 고소성에 있을 때 친부모인 것을 인정하게 하고, 가문을 잇게 권할 걸 그랬어요. 그래야 배다른 형제에게 가업을
기양이 왕부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정오를 훌쩍 넘긴 시각이었다. 강만여가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고 있다는 말에,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꽃이 만발한 회랑을 지나자, 봄날 오후의 햇살이 계단 앞에 따스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기양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강만여는 창가의 평상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고, 몸에는 얇은 담요가 덮여 있었으며 손에는 책 한 권이 느슨하게 들려 있었다. 창살 사이로 들어온 햇빛이 그녀의 백옥 같은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고, 칠흑 같은 머리카락은 어깨 위로 흩어져 있었다. 옅은 숨소리, 완만한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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