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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공포의 노크

Author: 은지수
아홉 번째 룰은 세 문장으로 나뉘어 있고 블랙캣을 죽이는 처벌 방식 역시 매우 의심스러웠다.

자세히 관찰해보니 집 안에는 부엌에만 쓰레기통이 있었다.

한편 엄마는 하루 세끼를 부엌에서 준비한다.

고양이를 싫어하고 털 한 올만 보아도 오염이 심해지며 혹여나 고양이의 사체를 본다면 더 심각한 이질화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블랙캣이 남겨둔 앨범을 펼친 순간, 선하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숨결마저 가빠졌다.

사진 속에는 블루 앤 화이트 교복을 입은 소녀가 있었는데 거실에 걸린 가족사진의 소녀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가족사진 속 인물들의 얼굴은 칼로 긁힌 상태였다.

이는 ‘그것’이 선하윤에게 집 안에 있는 각 인물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걸 의미했다.

첫 시작은 학교 단체 사진이었고 뒤로 넘길수록 사진 각도가 점점 이상해졌다.

죄다 각 구석에서 찍은 스냅 사진들이었으니까.

학교 난간에 엎드려 있는 사진, 운동장에서 운동하는 사진, 고개를 숙이고 숙제를 하는 사진,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사진, 심지어는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기 직전의 사진까지 있었다.

혹시 소녀의 짝사랑 상대가 찍은 사진들일까?

맨 마지막 장은 셀카 사진인데 사진 속 여자아이는 활짝 웃고 있었고 남자아이는 반쪽 얼굴만 드러냈다.

큰 키에 댄디 컷 머리, 운동복 차림과 어우러진 날카로운 눈빛, 팔에는 문신까지 있었다.

여자아이는 왼손으로 블랙캣을 안고서 남자아이 어깨에 기대었다.

선하윤은 그 사진을 자세히 관찰했다. 사진의 뒷배경인 꽃밭에는 한 사람의 실루엣이 숨어 있었다.

다만 실루엣이 흐릿해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선하윤은 문득 연애편지를 떠올렸다.

곰돌이는 누구일까?

사람 이름일까, 고양이 이름일까?

그 연애편지가 워낙 서정적이라 섬세한 문구와 사진 속 불량소년을 도저히 연결 짓기가 어려웠다.

소녀에게는 또 다른 많은 비밀이 있나 보다.

밤이 드리워지면 불을 끄고 잠을 잔다. 어둠이 집안 전체를 삼켜 버릴 것만 같았고 창문이 없다 보니 방 안에서 손을 뻗어도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신채린은 옷장 옆 침대 머리맡에 서 있었고 선하윤은 그제야 편하게 침대에 누웠다.

그녀는 이제 충분히 자서 에너지를 보충해야 한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뒤 선하윤은 어김없이 문을 안으로 잠갔다.

밤에 관한 룰은 오직 세 가지만 언급됐다.

[자정부터 아침 8시까지는 침실에서 나갈 수 없습니다. 정말 화장실에 가고 싶다면 절대 뒤돌아보지 마세요.]

[밤에 화장실에 갈 때는 거울을 보지 마세요.]

‘웃겨 정말, 내가 밤에 화장실에 갈 일이 있을까?’

[밤은 아름답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다면 발코니에 가서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세요. 창밖에서 누군가 당신을 쳐다보는 것 같다면 걱정하지 마세요. 창문을 열면 할머니가 엿보는 자를 쫓아낼 것입니다.]

이 룰은 분명 오염된 함정이다.

낮에 헬로 머니로 할머니를 매수한 뒤, 할머니는 분명 이렇게 말씀하셨다. 밤에는 쉬어야 하니 절대 방해하지 말라고.

여기에 일곱 번째 룰을 더 결부해 보면...

[그들을 보고 싶지 않다면 침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세요. 그들은 당신을 방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그들’은 아빠와 엄마뿐만 아니라 ‘그것’까지 포함한다.

그제야 실마리가 풀린 선하윤은 더 이상 잡생각 따위 하지 않았다.

“채린 씨, 밤에는 절대 침실에서 나가지 마. 만약 이상한 움직임이 보이면 즉시 나 깨워.”

직감이 말해주길 이 밤은 결코 평화롭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내일 아침 7시 30분에 정확히 시간 맞춰서 깨워 줘.”

내일은 온라인수업이 있어서 절대 지각하면 안 된다.

“네, 주인님.”

신채린은 잠을 잘 필요가 없으니 선하윤의 곁을 지켰다.

곧이어 선하윤이 이불을 덮고 단잠에 빠졌다.

잠을 자는 동안 그녀는 긴장을 풀며 더는 복잡한 룰 따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밤중의 노크 소리에 잠을 깨고 말았다.

선하윤은 눈을 뜨고 나지막이 말했다.

“채린 씨, 옆에 있어?”

“네, 주인님.”

신채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은 새벽 1시 15분이에요.”

문은 잠겨 있어서 침실은 잠시 안전했다.

선하윤도 노크 소리를 들으며 아무런 대꾸도 안 했다.

“우리 강아지, 할머니 문 좀 열어주렴, 끄흐흐... 너 안 자는 거 알아. 발코니에 나와서 얘기 나누자. 할머니가 좋은 물건 보여줄 거 있는데, 끄흐흐...”

쿵, 쿵, 쿵.

노크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문밖의 존재는 결코 낮의 할머니가 아니었다!

“얼른 문 열어, 할머니 피하지 말고... 안 열면 네 비밀 모두 아빠, 엄마한테 이를 거야. 끄흐흐... 네가 방에서 몰래 고양이 키우는 거 다 알거든...”

“너희 엄마 고양이 털 알레르기 있는데 엄마가 알면... 끄흐흐... 그 고양이 바로 죽겠지.”

할머니의 목소리는 마치 낡은 풍선 같았다.

한편 선하윤이 계속 무시하자 문밖의 노크 소리가 어느덧 문을 부수는 소리로 바뀌었다.

쾅, 쾅, 쾅.

굉음은 30분이나 지속되었지만 그녀는 이 환경에 방해받지 않으려 애쓰며 잠을 청했다.

이제 막 잠들었을 때 신채린이 시체처럼 차가운 손으로 그녀를 툭 건드렸다.

이것은 이상한 상황이 생겼다는 걸 뜻한다.

할머니가 왔을 때도 신채린은 그녀를 깨우지 않았는데 지금 깨우다니.

“주인님, 방에 무언가 있습니다.”

별안간 선하윤은 침대 밑에서 무언가가 긁는 소리를 느꼈다.

침대가 미세하게 흔들렸고 어둠 속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나직이 들려왔다.

[블랙캣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집에는 블랙캣이 없습니다. 만약 블랙캣을 보게 된다면 죽여야 합니다. 사체는 쓰레기통에 버리면 아빠가 가져갈 것입니다.]

이 룰에서 블랙캣을 죽이는 것은 선하윤이 이미 오염되었다고 판단했던 부분이다.

또한 블랙캣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에게 애교를 부린다는 것은 블랙캣의 입장을 나타낸다.

어둠 속에서 선하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손바닥에 가득 찬 식은땀을 무시한 채 고도로 집중하며 방 안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문득 검은 실루엣이 침대 밑에서 천천히 기어 나왔다. 주먹처럼 뭉친 상태로 침대 맡에 다가왔는데 꼭 마치 블랙캣처럼 선하윤의 귀 옆에 웅크렸다.

곧이어 가시 돋친 혀가 부드럽게 그녀의 뺨을 핥는 느낌이 들었다.

끈적하고 축축하며 이따금 미세한 고통도 느껴졌다.

이것은 바로 블랙캣의 애교였다.

그때, 문밖에서 물건을 부수는 소리가 들려왔다.

“빌어먹을 고양이 울음소리! 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 집에서는 고양이를 키울 수 없다고!”

엄마의 격노한 목소리와 함께 선하윤의 귓가에서 들려오던 고양이 울음소리도 멈췄다.

침실 문 밑 틈새로 밖이 칠흑처럼 어둡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고 오직 이 소리만 들려왔다.

아빠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유난히 정상적으로 들려왔다.

“엄마가 제정신이 아니잖아. 뭣 하러 엄마 말까지 믿는 거야?”

“종일 자는 척만 하는데 냉장고에 있는 음식이 자꾸 줄어들어요! 당신이 몰래 음식을 갖다 주는 거 아니에요? 약속했잖아요, 어머님만 굶겨 죽이면 우리 모두 자유로워진다고. 대체 왜 이래요? 이제 와서 마음 약해진 거냐고요?”

엄마의 말은 그야말로 섬뜩했다.

“그리고 그 배은망덕한 년, 점심때 빌어먹을 노인네 밥 먹는지 물었잖아! 이 가정을 위해 내가 얼마나 희생했는지 전혀 몰라요, 모른다고요!”

엄마는 말을 이어가더니 뜻밖에도 울음을 터뜨렸다.

다만 그녀의 울음소리는 고양이 울음소리와 똑같았다.

밤중에 엄마에게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선하윤은 그렇게 두 번이나 방해를 받았지만 계속 잠을 청했다. 문을 긁는 소리, 고양이 울음소리, 다투는 소리 모두 차단하고 말이다.

다음 날 아침, 블랙캣은 사라졌고 선하윤의 침대 곁에 고양이 털 한 올이 놓여 있었다.

그 털은 불빛 아래에서 기름진 광택을 띠었다.

그녀는 털을 바로 치웠다.

“채린 씨, 어젯밤에 또 무슨 일 더 있었어?”

신채린은 밤새 침대 맡에 서 있다가 딱딱한 말투로 대답했다.

“누군가 열쇠로 밖에서 문을 열려 했지만 안으로 잠겨 있어서 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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