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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남동생에게 심부름을

Author: 은지수
“너 그 손에 난 상처는 어떻게 치료해야 하지?”

신채린은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늘어뜨린 채 팔에 있는 상처를 내려다보며 무표정하게 말했다.

“병원에 가야 해요.”

“너희 위어드도 병원에서 진찰을 받아?”

신채린은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병원에도 룰이 있는데 주인님은 산 사람이니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선하윤은 이 던전이 끝나면 신채린을 병원에 데려가 치료해 주기로 했다.

침실에서 나올 때 그녀는 문 잠금장치가 비로소 풀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챘다.

아무래도 이 문은 7일을 버티지 못할 것이다.

던전 둘째 날.

아침 7시 40분, 엄마는 이미 아침을 다 차렸고 선하윤은 다시 한번 건강식품만 먹겠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그녀는 화장실에 들어가 세안했다.

욕실 커튼이 닫혀 있었는데 안에서 문득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던전을 탈출하려면 스스로 던전을 탐험해야 한다.

커튼을 젖히자 남동생이 욕조 안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었다.

그녀는 남동생의 손가락 사이에서 떨어지는 핏물과 꿈틀거리는 벌레는 싹 다 무시한 채 착한 누나 흉내를 내며 관심 조로 물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왜 우는 거야?”

이 던전에서는 무릇 인물의 감정이 불안정해지면 변이가 일어난다.

남동생이 고개를 들자 두 눈두덩이에 벌레가 파먹은 듯한 끔찍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누나가 날 떠날까 봐 너무 무서워요. 계속 집에 남아 있을 거죠? 우리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잖아요. 난 누나 없으면 안 돼요.”

선하윤은 남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끈적하고 검은 액체가 묻어나자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사람은 결국 성장하게 돼 있어. 너도 조만간 어른이 될 거야. 나중에 어른이 되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야지.”

룰의 마지막 조항.

[함부로 약속하지 마세요. 가족들이 당신에게 기대를 품게 될 것입니다. 기억하세요. 집은 따뜻한 안식처이며 가족들은 언제나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릴 것입니다.]

남아 있겠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위어드의 함정에 빠질까 두려워서였다.

이때 남동생이 머리를 살짝 들었다.

“모두 다 성장한다고요?”

“응.”

“그럼 나도 크고 싶어요.”

남동생에게 용돈으로 헬로 머니를 20장 쥐여주자 눈물범벅이던 남동생이 피식 웃었고 선하윤도 그제야 화장실을 나왔다.

다만 화장실 문을 열자마자 엄마가 입구에 떡하니 서 있었다. 발끝이 문지방에 바짝 붙은 채로...

둘은 하마터면 얼굴을 맞댈 뻔했다.

선하윤은 황급히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밥 먹어.”

선하윤은 식탁에 앉아 숟가락으로 상자 안의 건강식품을 휘저었는데 맨 밑에서 고기를 몇 가닥 발견했다.

정말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었다.

엄마의 검은 눈동자에서 갑자기 붉은 빛이 번뜩였다.

“남동생한테 왜 집 나가겠다고 한 거야?”

선하윤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애가 울길래 그냥 달래준 것뿐이에요.”

모호한 대답에 엄마는 결코 넘어가지 않았다.

곧장 엄마가 젓가락으로 탁자를 쾅 내리쳤다.

“너 혹시 오래전부터 집 나가고 싶었던 거니? 대체 우리가 너한테 못 해준 게 뭔데? 왜 자꾸 밖으로 나갈 생각만 하는 거야?”

“아빠가 매일 열심히 일하시니 저도 돈을 벌어서 집에 보탬이 되고 싶어요.”

선하윤은 눈을 비비며 진심 어린 태도로 보이려고 애썼다.

일은 집에서도 할 수 있고 밖에서도 할 수 있다.

한편 엄마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기름진 고기를 먹었다. 기름기가 엄마의 입가에 잔뜩 묻었다.

선하윤은 좀전의 고기 조각을 골라내고 밥을 몇 숟가락 먹은 뒤, 시간을 맞춰 서재로 달려가 온라인수업을 들었다.

오늘은 아침 내내 아빠가 보이지 않았다.

서재 문 앞에는 컴퓨터 수리 도구가 놓여 있었고 온라인수업 선생님은 수업 속도를 올렸다.

선하윤은 열심히 강의를 들으며 필기했다. 하지만 12시가 다 되어갈 무렵까지 선생님은 수업을 끝낼 기미가 없었다.

어제는 분명 정시에 수업이 끝났었는데...

컴퓨터 화면 오른쪽 하단에 표시된 시간은 11시 30분,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자 종료까지 5분이 남은 11시 55분이었다.

[당신은 서재에서 온라인수업을 들어야 합니다. 수업 시간은 아침 9시 30분부터 12시까지, 오후 2시 30분부터 저녁 5시까지입니다. 온라인수업 중에는 조용히 해야 합니다. 나머지 시간에는 서재가 없습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나머지 시간에 서재가 없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끊임없이 수업을 이어갔다.

화면 속 선생님은 꼭 마치 선하윤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이에 선하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것’이 시간을 조작하며 선하윤의 인지 능력을 혼란시켜 규칙을 위반하게 만들고 서재에서 죽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서재 문 앞에 놓여 있던 수리 도구가 힌트였다.

수업 속도에 따르면 5분이면 정확히 두 번째 챕터의 열 번째 지식을 모두 배울 수 있었다.

어제 오전 수업에서는 정확히 열 개의 지식을 배웠었으니까.

오늘 수업은 두 번째 챕터까지 진행되었고, 두 번째 챕터는 총 12개의 지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번째 챕터가 모두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정확한 방법은 열 번째 지식을 배우는 순간 수업을 끝내고 나가는 것이다.

던전에서는 룰 오브 괴담이 무조건 죽는 길만 남겨놓을 리가 없다.

룰을 지키기만 하면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선생님이 열 번째 지식에 대한 설명을 마치자 선하윤은 과감하게 일어서서 책을 들고 서재를 나섰다.

다만 그녀가 일어나는 순간, 화면 속 선생님은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수업이 끝났는데 의외로 엄마는 점심을 준비하지 않았다.

식탁 위에는 쪽지가 한 장 놓여 있었다.

[우리 딸, 아빠는 회사에서 야근하고 엄마도 오늘 외출해야 해. 네가 수업 중이라 방해하지 않았어. 배고프면 나가서 점심 사 먹어. 동생 것도 잊지 말고 사다 줘.]

쪽지 하단에는 엄마라고 적혀 있었다.

쪽지와 함께 놓여 있던 것은 헬로 머니 50장이었다.

이때 남동생이 방에서 달려 나와 턱을 식탁에 괴고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누나, 배고파요.”

엄마의 쪽지에는 밖에 나가서 점심을 사 먹으라고 적혀 있었다.

이 던전의 이름은 [스위트홈]이고 찾아낸 룰 역시 이 집에만 적용되는 내용들이었다.

함부로 집 밖으로 나간다면 알 수 없는 위험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

엄마가 남긴 쪽지에서는 밖에 나가라고 했지만 이 쪽지는 결코 룰에 해당되지 않았다.

이건 단지 위어드가 사람을 유혹하는 작은 속임수였다.

선하윤은 쪼그리고 앉아 온화한 말투로 남동생에게 말했다.

“네가 나가서 밥 사 올래?”

“네?”

남동생은 마지못해 입을 삐죽였다.

“누나가 동생 챙겨줘야지 나더러 밥 사 오라고 하면 어떡해요?”

“한 번만 도와주라.”

이에 남동생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만약 누나가 장난감으로 새끼손가락을 준다면 부탁 들어줄게요.”

그의 얼굴에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잔혹한 미소가 드리워졌다.

남동생의 룰에서는 그가 가족들에게 이러한 ‘작은 장난감’을 요구할 수 있도록 허용되어 있었다.

만약 누나가 거절하거나 밥을 안 주면 더 이상 서로 사랑하는 가족이 아니게 되므로 누나를 먹어치울 권리를 얻게 된다.

“누나가 돈 더 줄게.”

“...”

‘왜 전혀 안 먹히지?’

위어드인 그에게 헬로 머니의 유혹은 너무나 컸다.

남동생은 검지를 턱에 대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래도 엄마가 나한테 몰래 말했는데, 누나더러 밥 사 오라고 말이에요.”

“엄마 쪽지에는 점심을 밖에서 사 먹으라고만 했지, 누구더러 나가라고 구체적으로 지목하지는 않았잖아.”

남동생은 누나의 말이 나름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 이렇게 해. 누나가 헬로 머니 1000장 더 줄 테니 네가 좋아하는 거로 사 먹어. 덤으로 누나한테 포장 안 뜯은 건강식품 하나만 사다 줘.”

그때 발코니에 있던 할머니가 약간 흥분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헬로 머니... 끄흐흐... 나 줘... 내가 사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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