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소유욕과 정복욕이라는 본능이 있다. 그 모든 것이 뼛속 깊이 숨겨져 있다가 때가 되면 겉으로 드러나며 날뛴다.연정훈은 병약한 상태라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양혁수의 목소리를 듣고 나니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연정훈은 안시연을 제압한 후에 안시연 베개 옆에 놓여 있던 휴대폰을 보았다. 메시지가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었다.그 보낸 사람은 바로 양혁수였다. 아무리 너그럽고 품위 있는 사람이라도 이 상황을 참아낼 수는 없었다.연정훈은 손바닥으로 안시연의 얼굴을 가리며 안시연이 휴대폰 화면을 보지 못하게 했다. 강하게 밀어붙여 안시연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더니 갑자기 키스했다.입술과 이가 부딪쳤다.안시연은 놀란 소리를 내며 눈을 크게 떴다. 안시연은 몸부림치려 했지만, 손은 이미 눌려 있었고 몸을 비틀자 오히려 연정훈의 욕망을 더욱 자극했다.연정훈은 안시연의 저항을 억누르며 강제로 안시연의 입술을 벌려 키스를 했다.결국 달콤한 맛을 느꼈다.작은 사탕 한 조각이 전신의 세포를 깨우듯 강한 자극을 주었다.연정훈은 점점 더 강하게 안시연의 부드러운 입술과 혀를 거칠게 다루며 키스했다.안시연은 정신을 차리고 얼굴을 돌려 피하려 했지만, 연정훈은 안시연의 입술에서 목으로 옮겨갔다.귀와 머리카락이 스치는 순간, 안시연의 얼굴은 터질 듯 붉어졌고 동시에 안시연은 연정훈의 얼굴과 가슴에서 빠르게 배어 나오는 땀을 느낄 수 있었다.연정훈은 미친 것 같았다. “정훈 씨! 그만 해요!”안시연은 소리쳤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연정훈의 손에 강하게 붙잡혔다. 안시연은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냈다.연정훈은 이미 오래전 이성을 잃었고 안시연의 소리를 들을수록 연정훈의 온몸에 피가 더욱 격렬하게 끓어올랐다. 안시연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연정훈은 안시연의 옷을 모두 벗겨버렸다.안시연은 부끄러움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동시에 연정훈의 급박한 심장박동이 더욱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만약 연정훈이 안시연의 곁에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연정훈은 처음으로 안시연이 자신을 이를 악물고 욕하는 모습을 보았다.안시연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연정훈은 더욱 격렬한 감정에 휩싸였고 안시연의 허리를 꽉 움켜쥐며 멈추지 않았다.안시연은 입을 벌리고 헐떡이면서 문득 중요한 사실이 떠올랐다.연정훈이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첫 번째를 제외하고 그들은 매번 안전 조치를 취했었다.안시연은 반복해서 머리를 흔들며 연정훈에게 그만두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그만 해요…”하지만 이미 늦었다.몇 초 동안 안시연의 시야가 흐려졌고 연정훈의 거친 숨소리가 안시연의 귀에 선명하게 들리며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안시연은 참아왔던 눈물이 자극 때문에 흘러내렸다.침대 머리맡의 불빛이 약간 밝아지고 안시연은 시각을 되찾았지만, 생각은 정리되지 않았다.연정훈은 잠시 멈추고 두 사람의 체온을 느끼며 안시연의 볼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짠맛이 났다. 연정훈은 짠맛을 느끼고서야 비로소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했다.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선을 넘었다는 걸 느꼈다.몸을 지탱하며 일어나려 했지만, 눈앞이 어두워졌다. 연정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을 질책했다.이런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다니 나이를 헛먹은 셈이다.안시연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혼란스러워했다. 연정훈은 안시연의 이마에 머리를 대어 잠시 진정시킨 후, 천천히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수건을 적셔와 안시연의 몸을 부드럽게 닦아주려고 했다.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자, 안시연은 사지에 다시 힘이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안시연은 가장 먼저 휴대폰을 확인했고 통화 시간이 몇 초에 불과한 것을 보고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그와 동시에 안시연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겨우 억누르며 연정훈을 심하게 질책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짐승남.안시연은 침대에 누워 이불을 꽉 잡았다. 몸이 진정되자 오히려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감각들이 안시연을 짜증 나게 했다. 남긴 흔적은 안시연의 화를 더욱 돋우었다.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연정훈은 차가운 타일 바닥 위에서 안시연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마에 핏줄이 뛰는 것을 느꼈다.그러나 몸은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장실 문이 열렸다. 안시연은 끈이 달린 잠옷 위에 실크 가디건을 걸치고 나타났다. 안시연은 고개를 치켜들며 말했다.“의사를 불렀어요.” 소문이 나길 바랐다.연정훈은 얼굴이 굳어지며 눈을 감고 말했다. “나를 일으켜 줘.”안시연은 연정훈으로부터 받은 고통 때문에 분노가 치밀었지만,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연 대표님, 그냥 앉아 계세요. 이런 상황에서 움직이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대요.”그 말이 끝나자 안시연은 문을 덜컥 닫았다.연정훈은 바닥에 앉아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안시연이 이렇게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밖에서 안시연은 자신이 한 행동에 뿌듯해하며 그 순간을 되새기며 기분이 좋았다. 연정훈이 찬 바닥에 앉아 떨면서 정신을 차리기를 바랐다. 방을 나가려던 안시연은 갑자기 하체에서 무언가 흐르는 감각을 느꼈다. 순간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안시연의 얼굴은 빨갛게 물들었다. 연정훈을 다시 한번 속으로 저주했다. 옆방에서 서둘러 정리한 후 방을 나서자마자 벨이 울렸다.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시연 씨!”부승희의 목소리가 들렸다.안시연은 깜짝 놀라며 문으로 달려갔다. 문을 열 때 약간 긴장했다. 비록 연정훈의 수치스러운 상황이 안시연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다.그러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어쩔 수 없이 용기를 내어 문을 열었다.그러나 문을 열자마자 안시연은 깜짝 놀랐다. 문 밖에는 부승희가 손을 주머니에 넣고 멋지게 서 있었다. 그 뒤에는 이승우, 부승원, 한우빈이 일렬로 서 있었다. 연정훈과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모여 있었다. 그 옆에는 안경을 낀 젊은 남자가 하얀 가운을 입고 서 있었다.이승우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안녕하세요.”안시연은 놀랐다. 이 늦은 밤에 어떻게 그들이 이렇게 모두
거실에서.연정훈은 직사각형 테이블에 앉아 차가운 얼굴로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나왔고, 이승우가 친절하게 도와주겠다고 나서자 거절했다. “난 괜찮아. 너희 없어도 돼.”연정훈은 비꼬듯 말했다.이승우는 하얀 의사 가운을 입은 율건을 밀어내며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너는 왜 의사까지 밀어내냐? 율 박사는 최고의 전문가인데도 믿지 못하겠어?”율건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마른기침하며 말했다.“연 대표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부승원이 말했다.“문제가 있다면 빨리 치료해야지.”한우빈도 이어서 말했다.“우리는 너와 가족 같은 사람이야. 다들 소문내지 않을 거야.”연정훈은 답이 없었고 그저 냉소적인 웃음을 지었다. “…하.”안시연은 끝에 서서 이들이 연정훈을 궁지로 몰아넣는 모습을 지켜보며 속으로 기뻐하고 있었다.그러다가 갑자기 부승희가 사람들 사이를 뚫고 안시연을 율건 앞으로 밀어붙였다. “율 박사님, 먼저 환자를 쉬게 하고 보호자가 상황을 설명하게 하세요.”안시연은 당황했다.“???”연정훈은 어이없었다.“…”모든 사람의 눈이 커졌다.“맞아요. 여기 보호자가 있잖아요?”이승우의 입꼬리는 내려가지 못했다. “어서 보호자에게 사건을 자세히 설명하라고 하세요!”안시연은 여전히 혼란스러워했지만, 이미 자리에 앉혀진 상태였다.말하려는 순간에 부승희가 잠시 기다리라며 부엌에서 씻어 놓은 딸기 한 접시를 들고 와서 손을 든 채로 말했다“말씀해도 좋습니다.”부승원과 다른 사람들이 차례로 앉았다.안시연은 당황해서 머뭇거렸다.안시연은 단순히 연정훈이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 자신이 나설 생각은 없었다.안시연은 연정훈을 잠깐 바라보았다.연정훈은 분노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고 안시연이 자신을 바라보자, 콧방귀를 끼며 턱을 쳐들었다. “말해 봐, 목격자.”안시연은 침묵했다.“…”안시연은 이를 악물고 자세를 곧추세웠다.그런 것쯤은 말하면 된다. “율 박사님, 질문해 주세요.”율건은 종이
율건은 안시연이 고의로 연정훈을 난처하게 만드는 것을 알아채고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있음을 확신했다.율건은 웃음을 억누르며 말했다. “평소에는 괜찮았는데 오늘은 왜 쓰러지셨나요?”안시연은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대답했다.“정훈 씨가 열이 나서 방금 주사 맞았어요.”이승우가 즉시 말을 받았다.“열이 났는데도 쉬지 않았다고요?”안시연은 당황했다.“…”안시연은 얼굴이 확 달아오르며 눈을 크게 떴다.“정훈 씨가 스스로 나서신 거예요!”모두가 감탄했다.“오!”안시연은 침묵했다.“…”연정훈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연정훈은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갑자기 위장이 소란을 피웠다.꼬르륵하는 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모두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율건은 의사라는 신분을 방패 삼아 대담하게 물었다. “대표님, 공복 상태에서 관계를 하신 건가요?”연정훈은 어이없었다.“…”안시연은 그 죽을 생각하면 더욱 화가 났다. 안시연이 힘겹게 연정훈을 집으로 데려와 죽까지 끓여 주었는데 연정훈은 먹지도 않고 괴롭히기만 했다.안시연은 숨을 깊게 들이쉬며 말했다.“정훈 씨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요.”율건은 눈썹을 추켜세웠다.부승희는 마침내 말을 꺼낼 기회를 잡았다. “이건 너무하네요. 그래도 뭐라도 먹였어야죠.”부승희의 직설적인 말에 안시연은 당황하여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부승원이 말했다.“이러면 기절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죠.”한우빈이 이어서 말했다.“기계라도 이 정도면 고장 날 텐데요.”이승우는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안시연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시연 씨, 당신을 만나기 전엔 우리 대표님 이렇게 나약하지 않았어요. 운동도 꾸준히 하고 몸이 정말 건강했거든요!”부승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안시연의 허리에 손을 대며 장난쳤다.“이 시간에 이렇게 입고 환자 곁에 있어도 괜찮나요?”안시연은 부승희의 갑작스러운 접근에 놀랐다.“승희 씨!”“괜찮아요. 다 여자잖아요.”부승희는 안시연에게
율건의 안색이 어두워지자, 안시연도 덩달아 긴장한 듯 몸을 움츠렸고 결국 부승희가 먼저 정적을 깨면서 물었다.“왜 그러세요? 임신했어요?”그 순간, 안시연은 연정훈과 허공에서 시선을 마주쳤고 지난 한 달 동안 밤낮없이 사랑을 나눴던 것이 떠올라 머릿속이 하얘졌다.‘정훈 씨가 매번 피임을 한 걸로 기억하는데, 설마...’그녀는 오늘 밤 그의 과감했던 행동 때문이었는지 그동안의 위험했던 순간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면서 마음이 더욱 복잡해졌다.그러나 연정훈은 괜한 걱정을 하는 안시연을 보면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오늘 밤을 제외하고는 위험한 행동을 한 적이 없는데 왜 저렇게 걱정이 가득한 표정인 거야!’율건은 아무 말 없이 계속 뜸을 들였고 곧이어 이승우를 포함한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집중되었다.이때 참다못한 이승우가 율건을 재촉하기 시작했다.“율 박사님, 빨리 말해봐요!”율건은 가볍게 기침을 내뱉고는 천천히 말했다.“아가씨의 맥박이...”안시연은 긴장한 나머지 두 손을 꽉 쥐었다.“매우 건강합니다.”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안시연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고, 연정훈은 화를 참기 위해 어금니를 꽉 깨물었으며, 이승우는 대뜸 언성을 높였다.“그럼, 왜 한숨을 내쉰 거죠?”“사실은 아까 승희 아가씨가 했던 말이 일리가 있는 말이거든요.”“그게 무슨 뜻이죠?”“시연 아가씨의 맥박을 체크해보니 확실히 보양을 많이 한 것 같네요.”아직도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한 안시연은 그의 한마디에 다급하게 손을 뺐다.“율 박사님, 전문가가 맞으세요?”이에 이승우가 그를 대신해서 입을 열었다.“왜 그의 실력을 의심하는 거죠? 우리 율 박사가 20년 동안 남녀 사이만 연구했다고요.”그러나 안시연은 아직 20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율건이 20년 동안 그 방면을 연구했다는 이승우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에이, 거짓말이요?”이때 부승희가 그녀의 옆구리를 찌르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정훈 오빠가 시연 씨의 기를 보충해 주려다가 기절한 거
연정훈은 안시연이 율건과 대화하는 동안 계속 그녀를 주시했다.그녀는 계속 손을 등 뒤에 놓고 부자연스럽게 입술을 깨물면서 눈꺼풀까지 떨었다.연정훈은 율건이 안시연에게 친절함을 넘어 상냥한 태도를 보이자, 단번에 그가 그녀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이때, 심상치 않음을 느낀 부승원이 윤건을 잡아끌었고, 안시연은 결국 한숨을 내쉬면서 약국에서 피임약을 배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사람들이 다 가자, 방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연정훈은 자기한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곧장 방으로 들어가는 안시연을 보면서 온순했던 첫 만남이 떠올라 화가 났지만, 다 큰 남자가 여자를 혼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다른 사람을 만나도록 내쫓는 건 더욱 말이 안 되었기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얼마 뒤, 현관문 벨 소리에 연정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고 부승희가 주문한 음식과 의문의 약봉지를 보고는 곧장 문을 닫고 방 쪽을 응시했다.한편, 안시연은 기진맥진해서는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잠이 들 뻔하다가 갑자기 들리는 발걸음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았다.곧이어 연정훈은 약을 그녀의 손 옆에 버리고 나갔다.그의 행동에 상처를 받은 안시연이 한숨을 내쉬었고 이내 방 안에 있던 주전자에 물을 끓이면서 약봉지를 뜯었다.연정훈도 자기가 저지른 일에 그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현실에 거실을 나온 이후로 기분이 좋지 않았고 약봉지를 뜯는 소리에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그녀는 약을 다 먹은 후, 오늘 밤에 있었던 일들을 다시 떠올리다가 방을 정리하고 문 앞에 서서 연정훈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빨리 음식 먹어요. 당신이 또 쓰러지면 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연정훈이 아무 대답이 없자, 안시연은 또다시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다시는 연정훈 때문에 울지 않기로 마음먹었던 그녀였지만, 조용한 방 안에 누워 조금 전 일들을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얼마나 지났을까, 연정훈이 방 안으로 들어가 그녀를 뒤에서 감쌌고, 그녀는 눈물을
연정훈은 자기한테서 받은 위자료로 혼수 준비를 하겠다는 안시연의 한마디에 화가 치밀어 올라 밤잠을 설쳤다.다음 날 아침, 눈을 뜬 그는 텅 빈 침실에 앉아 있다가 탁자 위에 놓인 아침밥을 보고 내심 기뻐했지만, 어제 먹다 남은 음식을 데운 것임에 머리가 다시 지끈거렸다.이때, 방문을 두드리던 소리가 나더니 진수빈이 들어왔다.“진 비서가 여기는 어떻게 들어왔지?”“아가씨께서 비밀번호를 알려주면서 대표님을 뵈러 올라가라고 하셨어요.”연정훈의 안색이 급격히 수그러들었다.“그녀가 진 비서한테 올라가라고 했다고?”“네! 조금 전 우연히 아가씨를 만났는데 출근 준비 때문에 바쁜 와중에도 대표님을 걱정하시더라고요.”진수빈은 계속 그의 표정을 살피면서 말을 꺼냈다.“대표님, 오늘...”“금방 준비하고 내려갈 테니까 아래에서 기다려.”그녀는 안경을 고쳐 쓰면서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오늘 하루는 쉬시는 게 어떠십니까? 시연 아가씨도 점심에 돌아와서 밥을 차려주겠다고 하셨거든요.”연정훈은 어젯밤 자기가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을 것 같았던 그녀가 손수 점심을 차려주러 오겠다고 했다니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진수빈은 그의 마음이 조금 움직인 것을 눈치채고는 한마디 덧붙였다.“대표님께서 검토하실 자료들은 제가 서재에 놓을 테니 괜찮아지시면 보세요.”연정훈은 진수빈의 말에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고, 그녀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정인 과학기술.아침 일찍 도착한 양혁수는 안시연이 오기만을 기다렸고, 그녀는 어젯밤 일로 어색한 나머지 그를 보자마자 두피가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이때, 양혁수가 그녀에게 다가오면서 한마디 했다.“장난 아니던데요?”안시연은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애써 진정시킨 후, 오는 길에 산 아침을 테이블 위에 놓으면서 물었다.“아침 먹었어요?”“날 주려고 산 거예요?”“많이 사서 나눠 먹어요.”“설마 이게 입막음 비용인 건가요?”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속으로 연정훈을 욕했고, 이내 컴퓨터를 켜면서 말했다.“빨리
양지원은 양석진이 예전엔 어떤 사람이었는지 희미하게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그가 살이 찐 건지 빠진 건지 분간하기 어려웠다.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저릿함은 그가 분명히 살이 빠졌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게 했다.잠시 멍하니 서 있는 사이 양석진과 그의 일행이 어느새 그녀 앞에 다다라 있었다.그녀는 손을 꽉 움켜쥔 채 순간 말을 잃었고 그의 뒤에 서 있는 예전에 본 적 있던 용 국장의 얼굴을 보고서야 겨우 정신을 가다듬었다.용 국장 역시 그리 나이가 많지 않았고 서른네다섯쯤 되어 보였고 또래들 사이에서는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었다.하지만 양석진을 마주하면 그는 어딘가 빛을 잃는 듯했다.그가 먼저 운명 같은 우연이라며 말을 꺼냈다. 대운산을 사용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정말로 이곳에서 회의가 잡혔고 그 책임자가 다름 아닌 양석진이었다.“양 대표님, 우연의 일치네요. 막 완공된 이 대회장의 첫 번째 사용자가 바로 당신 가족입니다.”양지원은 미소를 머금은 채 최대한 차분히 그를 바라보았다.‘오빠’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그녀는 끝내 입을 다물고 대신 직함을 부르며 입을 열었다.“먼저 들어가서 쉬세요. 오늘은 더우니까요. 조금 후에 제가 임원분들을 모시고 천천히 둘러보시게 해드릴게요.”양석진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더는 머무르지 않고 돌아섰다.“2시에 출발하죠.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좋아요.”양지원은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안은 채 돌아서 앞장섰다.그 일행은 의외로 조용히 정리되어 있었고 마치 더는 움직이거나 말하고 싶지 않은 듯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쉬었다.15분도 채 지나지 않아 홀은 금세 고요해졌다.양지원은 아래층에 홀로 앉아 차를 마셨지만 입안에는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두 사람은 서둘러 스쳐 지나갔고 양석진은 그녀에게 단 한 마디를 남겼다.비록 이제는 서로 마주하는 일이 드물었지만 그녀의 시간과 기억은 여전히 십 년 전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그가 모든 것을 그녀를 중심으로
[청년기]“내일 돌아오는 거예요?”대운산으로 향하던 길 양지원은 집에 있는 양혁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그녀는 감기에 걸린 지 이틀째였다. 아무것도 할 기운이 없었고 그나마 양혁수와 이야기하는 순간만이 마음을 조금 편하게 해주었다.“가능하면 돌아가려고 해.”몇몇 선생님들의 불만이 떠오르자 그녀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집에서는 좀 얌전히 지낼 수 없을까? 너 때문에 맨날 선생님 앞에서 얼굴을 못 들겠어.”한창 말썽꾸러기 시절을 지나 양혁수는 이제 누구에게도 귀여움을 받지 못하는 나이에 접어들었다.몇몇 선생님이 함께 교육을 맡으면 그는 종종 머리를 치켜들고 반항했다.“저 정도면 엄청 얌전한 편 아닌가요? 같이 농구도 하잖아요.”양지원은 눈동자를 굴리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무더운 여름날 예민한 성격의 선생님들이 누가 그런 말썽꾸러기와 농구장에 나가고 싶겠는지 의문스러웠다.“알겠어. 어쨌든 조금만 얌전히 있어 줘.”“알겠어요. 엄마는 밖에서 몸조심하고 집에 오시면 제가 생일 챙겨드릴게요.”양지원은 말끝에서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세상 어딘가에서 여전히 자신을 걱정해 주는 이 작은 녀석이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통화가 끝나자 차의 속도도 서서히 줄어들었고 비서가 조용히 말을 건넸다.“양 대표님, 먼저 접대소에서 잠시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용 국장 쪽 점검팀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양지원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대운산 관광 프로젝트는 오래전에 시작되었지만 그녀는 그동안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위쪽에서 이 지역을 외교 관련 주요 회의 장소로 활용하고 싶다는 연락이 들어왔다. 그건 분명 반가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행궁’을 조성하려면 결국 관계자들의 사전 점검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양지원은 직접 사람들을 이끌고 일주일 전 이곳에 도착해 현장을 둘러보며 세세한 부분까지 하나하나 점검했다.최근 날씨가 너무 더워서 에어컨이 있는 곳과 뜨거운 태양 아래를 오가다 보니 체력이 많이 지쳐갔다.비서는 그녀의 얼굴 색
양지원은 화려한 의상에 휩싸인 채 기분이 한껏 들떠 있었다.그녀는 오빠의 팔에 살며시 팔짱을 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우리 오빠는 당연히 멋져요. 키도 크고 잘생기기까지 했는걸요.”진병수는 이마를 짚은 채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양석진은 길을 걸으며 양지원에게 사진을 찍지 말라고 했지만 현장에 도착하자 그녀의 간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 두 세트를 함께 찍기로 했다.예복을 입고 양지원과 함께 거울 앞에 서자 주위에서 감탄의 말들이 흘러나왔다.그는 마음속에서 불안이 스멀거리자 양창수의 애매한 미소를 피하려 애써 시선을 돌렸다.결혼사진을 찍는 자리였지만 양지원에게는 가족사진을 남기는 느낌에 더 가까웠다. 그녀는 예쁜 옷을 입었으니 기념으로 사진을 남기고 싶었고 중간에 진병수에게도 함께 찍자며 부탁했다.“자, 신부가 신랑에게 키스해 주면 좋겠네요.”사진사가 말하자 양석진의 눈빛이 흔들렸고 양지원은 황당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저기요. 이분은 제 오빠예요.”사진사는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아. 깜빡했네요.”양창수가 장난스럽게 끼어들었다.“키스하는 게 뭐 어때? 얼굴에 하는 거면 괜찮아.”진병수도 거들었다.“나는 괜찮은 것 같은데.”“안 돼. 그건 너무 이상해.”양지원이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손명우가 조용히 제안했다.“카메라 각도를 조절해서 찍으면 돼.”양지원과 양석진은 동시에 외쳤다.“안돼.”순간 현장은 조용해졌다.“...”양지원은 웃으며 옆에 앉은 오빠를 바라보았다.“오빠, 우리 둘 진짜 잘 맞는 것 같아요.”그녀는 그의 팔을 감싸며 바르게 자세를 고쳤다.“오빠, 우리 사진 한 장 찍어요. 처음 오빠를 만났을 때도 가족사진 찍느라 소파에 나란히 앉았잖아요.”양석진은 잠시 시선을 피했다가 감정을 억누르며 부드럽게 말했다.“맞아. 그렇게 하는 게 제일 좋지.”두 남매는 동시에 고개를 들었고 찰칵하는 카메라 셔터 소리와 함께 그 순간이 고정되었다.수많은 사진 중 그 사진은 양지원이 가장 아끼는 사진이 되었
배가 콕콕 쑤시는 걸 제외하면 양지원은 꽤 신나게 놀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미소가 가득했다.위층으로 올라가려는데 양석진이 양창수를 뒤뜰로 불렀고 늦여름이라 뒤뜰에는 매미 소리가 귀를 울렸다. 양창수는 계단에 뚝 멈춰 섰다가 올 것이 왔음을 직감했다.뒤뜰에서 양석진이 말했다.“지원이 이제 어리지 않으니 지원이 앞에서 아무 말이나 쉽게 내뱉지 말았으면 해.”“내가 뭘 또 아무 말이나 했다고 그래요?”양석진은 시시콜콜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너 자꾸 까불면 바로 입대시켜 버린다?”양창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마음대로 하세요.”양창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며 위층을 슬쩍 보다가 양석진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말했다.“내가 헛소리했다 치죠.”그리고 몸을 휙 돌려 자리를 떠났다.양석진은 뒤뜰에 홀로 남아 사라지는 양창수의 뒷모습을 지켜봤다.의미심장한 양창수의 시선은 마치 오래된 전등처럼 깜빡깜빡하며 양석진의 마음을 괴롭혔다.양석진은 입술을 꾹 다물고 한참 그 자리에 서 있었다.그러다가 위층에서 양지원이 저를 부르자 천천히 위층으로 올라갔다.양석진은 그날 밤 또 불면증에 시달렸다. 하룻밤 내내 뜬눈으로 지새우는 건 양석진에게 있어 흔한 일이 되었다.어느 날부터인지, 양석진은 감히 누구에게도 고백하지 못할 감정이 생겼고 아무리 억눌러도 아무도 없는 새벽이 되면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양석진도 이게 무슨 감정인지, 본인이 뭘 하고 싶은 건지 잘 몰랐다.그저 양지원만 떠오를 뿐이었다.어쩌면 양지원도 나이가 좀 더 들고, 각자 연인이 생기면 이런 감정이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했다.그리고 그러한 가능성이 현실이 되기를 양석진은 늘 기도했고 한편으로 두려움을 느꼈다.그날 뒤로, 양석진은 며칠 동안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양지원의 걱정을 사지 않기 위해 최대한 집을 비우는 것을 택했다.그 시간이 점차 길어지고 더 이상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양석진은 바로 진병수의 연락을
양석진은 아무 내색하지 않고 양지원을 이끌어 조용한 곳으로 이동했다.“누가 너 괴롭혔어?”“아니요!”배는 자꾸 쿡쿡 쑤셔오고 멀리서 진병수가 모르는 여자를 껴안고 있는 걸 보면 양석진도 본인이 없는 곳에 저렇게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더 배가 아팠다.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아빠도 늘 여자들을 만나고 다녔다.양지원은 저런 행동에 큰 반감을 느꼈고 양석진도 같은 부류라고 생각하면 화가 났다.그런 생각을 하는데 양석진이 옆으로 다가와 낮은 소리로 물었다.“혹시 생리 시작한 거야?”“...”양지원이 아무 대답이 없자 양석진은 바로 눈치를 챘다.“여기 가만히 앉아 있어.”그리고 룸을 나선 양석진은 따뜻한 꿀물을 한 잔 가지고 돌아왔다.마침 두 사람을 지나치던 진병수는 꿀물과 화가 잔뜩 난 ‘공주님’을 번갈아 보며 혀를 쯧쯧 찼다.‘이게 동생이야? 딸이야?’따뜻한 꿀물을 마시자 몸이 녹아내렸고 양지원은 소파에 푹 기대앉았다.그리고 양석진의 시선이 느껴지자 입을 삐죽거리며 물었다.“아까 그 여자 누구예요?”양석진은 멈칫하다가 바로 상황 파악을 마쳤다.“연예인인데 골치 아픈 일이 생겼다고 하더라고. 사정이 딱해 보여서 병수더러 도와주라고 했었어.”양지원은 바로 시선을 흘렸다.“오빠는 다른 사람한테도 다 이렇게 친절해요?”“그 사람 연예인이 된 이유가 어머니 치료비를 벌기 위해서였어. 그런데 어머니를 결국 지키지 못했다고 하더라고.”양지원은 침묵했다.‘사정이 딱하긴 하네.’“그래도 오빠는 조심해야 해요. 아빠가 오빠를 정치인으로 키우려고 하는데 병수 오빠처럼 헤프게 행동하면 안 돼요.”양석진은 자신에게 훈수를 드는 양지원을 보며 며칠 전 양지원이 벌인 일을 떠올렸고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알겠어.”구석 자리에서 양석진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으니 양지원은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그래서 양석진에게 청아에 대한 얘기를 더 들려달라고 했다.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양창수가 옆자리에 와 있었다.양지원은 양창수의 어깨를 툭 건드리며
손명우는 안경을 고쳐 쓰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날 그냥 보러 온 건 아니고, 드레스샵 깨부순 것 때문이지?”양지원은 조금 계면쩍은 기분이 들어 목을 가다듬었다.진병수는 장난기가 많았고 술잔을 들고 옆으로 앉으며 계속 질문을 던졌다.“뭐야? 우리 지원이가 언제부터 드레스에 관심을 가졌지? 혹시 연애라도 하는 거야?”소파에 앉아 있던 양석진은 제게 걸어오려는 여자를 눈빛으로 제압해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양지원은 그걸 발견하고 득의양양해서 턱을 치켜들었다.‘역시 우리 오빠가 제일 멋있어.’“내가 왜 연애해요?”양지원은 다시 양석진의 옆자리로 앉으며 말을 이었다.“드레스 입는 사람은 꼭 연애하고 결혼할 사람이어야 하는 거예요? 드레스가 예쁘면 그냥 입을 수도 있는 거죠.”“그래도 굳이 창을 깨부술 필요는 없잖아.”진병수는 손명우를 가리키며 말했다.“명우한테 말만 하면 드레스는 얼마든지 입을 수 있어.”손명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가게에 새로 턱시도 모델 많이 들어왔는데 관심 있으면 같이 사진도 찍어줄 수 있어.”양지원은 크게 관심이 생긴 건 아니었으나 손명우를 거절하기 애매했다.그때, 양석진이 디저트를 양지원의 앞으로 당겨주며 말했다.“아직 나이도 어린 게 무슨 웨딩드레스 사진을 찍는다고.”“오빠, 방금 너무 촌스러운 거 알아요?”양지원은 한숨을 푹 내쉬며 옆 사람들한테 말했다.“내 나이가 어려요? 진씨 고모는 내 나이 때 벌써 결혼 1주년이었어요.”“그건 예전 얘기고.”한강시 쪽은 말이 달랐지만 화서시는 한 10년 전만 해도 다들 결혼을 아주 어린 나이에 했었다.“그냥 모델이랑 같이 사진 찍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잖아.”진병수의 말에 양지원은 양석진의 표정을 살폈고 고민하다가 손을 저었다.“어휴, 내가 무슨 모델이랑 사진을 찍어요. 됐어요.”그렇게 사진 촬영은 일단락이 되었다.양지원이 들어온 뒤로 룸 안의 사람들은 행동을 조심하기 시작했다.양석진은 동생 양지원을 끔찍하게 챙겼고 진병수와 손명우는 크게
오토바이를 타고, 쓰레기통 따위로 창을 깨부수는 건 가히 그해의 유행이라 할 수 있었다.양지원은 그런 반항적인 일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기분이 저기압이라 분출한 곳이 필요했다.양석진이 옆에 있었다면 얼리고 달랬을 테지만 양창수는 오히려 불난 집에 부채질했을 것이다.양홍두가 자리를 비우자 두 사람은 입에 모터가 달렸다.“형, 걱정할 필요 없어요. 어차피 드레스샵은 손명우네 가게니 아무 문제 없어요.”양지원은 팔짱을 척 끼고 양석진의 앞으로 걸어갔다.“그냥 드레스뿐인데 아빠가 괜히 오바하시는 거예요. 내가 전에 그 불여우한테 전화했다고 지금 아니꼽게 보시는 거라고요.”양석진이 고개를 돌려 양지원을 향해 말했다.“말 가려서 해.”양지원은 여전히 불만이라는 듯 입을 삐죽였다.‘계속하면 내가 손해니까 참아야지 뭐.’그리고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오빠한테 굳이 이런 일로 마음 쓰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양지원은 어린 시절처럼 양석진에게 딱 붙어 말했다.“참, 내 친구가 오빠한테 편지도 쓰고 선물도 챙겨줬어요.”양석진은 익숙하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난 그런 쪽으로 관심 없으니까 친구한테 다시 그런 걸 보내지 말라고 해. 난 공부에만 집중하고 싶으니까.”평소의 양지원은 양석진이 공부에만 매달리는 것에 불만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아주 흡족한 대답이었다.‘그래, 이게 맞아. 감히 누가 우리 오빠 옆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겠어?’‘꿈 깨라고!’양지원은 기분이 퍽 좋아졌고 제 친구들한테 전화를 돌려 오빠의 말을 전했다.다른 사람은 그냥 알겠다고 넘어갔지만 친구 길예은은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너희 오빠 정말 아무한테도 관심이 없다고? 네가 애초에 편지를 건네지 않은 건 아니고?”“야, 길예은,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해?”“저번에 너한테 석진 오빠 선물 부탁했더니 그대로 다시 돌려줬잖아. 너희 오빠는 무슨 눈이 그렇게 높아? 정말 우리 중에서 한 명도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는 거야?”길예은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작가의 말:아래 내용은 네 시기로 나뉘어 진행됩니다.소년 — 짝사랑이라는 이름의 시작.청년 — 서른 번째 생일, 그리고 아련한 재회.중년 — 오랜 시간 끝에 처음으로 엮인 둘의 이야기.결혼 후 — 이제는 함께 걷는 달콤한 나날들.각 시기를 함께하며, 두 사람의 감정이 어떻게 깊어지는지 지켜봐 주세요.--------[소년기]양석진과 양지원이 혼인 신고서를 제출한 당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사무실부터 관저까지 하루 종일 끊이지 않는 축복을 받았다.양석진에게 결혼 축하 인사를 건넨 첫 번째 사람이 드물게 보인다는 양석진의 미소를 목격했다는 소문이 전해진 뒤로, 다들 기회를 찾아 양석진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고 그 미소를 직접 확인하려 했다.어느새 저녁 시간이 되고, 나이가 지긋한 기사가 관저로 바라대 주다가 낮에 들었던 소문을 듣고 농담 섞인 말투로 말했다.“의원님, 결혼 축하합니다. 내일에도 같은 시간으로 마중 오면 될까요?”양석진은 꽉 채운 셔츠 단추를 두어 개 풀며 미소를 지은 채 차에서 내렸다.“내일은 휴가입니다.”홀로 차에 남겨진 기사도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예쁜 노을 아래, 양석진이 정원 안으로 걸어가다가 원피스를 입은 양지원이 얇은 외투 하나 걸치고 무언가 휘젓고 있는 게 보였다.그러자 아침에 일어났을 때 마른기침을 몇 번 했다고 양지원이 배즙을 만들어주겠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그런데 뭘 또 정원에서, 그것도 이렇게 큰 가마에 만들고 있는 거야?’양석진이 양지원을 부르려는 찰나, 우지끈하고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양지원이 너무 힘을 주어 젓다가 나무 주걱이 부러지고 만 것이었다.양석진은 재빨리 나무 뒤로 몸을 숨기고 양지원이 이어서 어떤 행동을 보일지 지켜봤다.양지원은 외투를 다시 고쳐 입으며 주변을 살폈고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걸 확인하고는 위층을 향해 외쳤다.“창수 씨! 왜 부러진 나무 주걱을 주신 거예요!”“...”이어 2층 창문이 열리고 양창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양지원의
양혁수는 변여름을 품에 안은 채로 서재 창가에서 예쁜 노을과 노을이 비친 잔잔한 호숫가를 바라봤다.“시연 언니 컨디션은 괜찮아요?”변여름의 질문에 양혁수가 대답했다.“좋아 보이던데. 컨디션도 그렇고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어.”변여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또 양혁수를 쳐다봤고 양혁수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왜 쳐다봐?”“오빠, 행복해요?”양혁수는 최근 몇 달 동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낸 걸 떠올리며 품 안의 변여름을 꼭 껴안았다.“행복하지.”“정말요? 왜요?”“왜긴...”두 눈을 감고 잠시 뜸을 들인 양혁수가 대답했다.“아침에 누가 나한테 해물 제철 탕을 해준다고 했거든.”“...”변여름은 손을 뻗어 익숙하게 양혁수의 두 볼을 잡아당겼다.양혁수는 변여름이 뭘 하든 가만히 받아줬고 또 변여름의 이마에 짧게 키스했다.양혁수의 눈동자에는 오직 변여름만 담겼고 변여름을 향한 사랑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졌다.변여름은 입꼬리를 올린 채로 양혁수의 목에 팔을 걸었고 또 빠르게 떨어지며 말했다.“그러고 보니 오빠, 아직도 나한테 좋아한다는 말도 안 했잖아요.”양혁수는 아주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좋아해.”그리고 고민하다가 말을 고쳤다.“내가 널 좋아해.”변여름은 금세 헤벌쭉해졌고, 첫사랑이고 뭐고 잊어버린 채로 양혁수의 두 볼에 번갈아 뽀뽀했다. 그리고 양혁수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인 듯 품에 안고 떨어지지 않았다.“오빠.”양혁수는 고개를 살짝 숙여 이어질 변여름의 말을 기다렸다.“난 오빠가 너무너무 너무 좋아요.”양혁수는 이런 변여름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나란히 소파에 기대앉았다.‘아, 삶이 이렇게 행복할 수도 있구나.’‘너무 행복해.’한강시에서의 삶은 점점 더 흥미진진해졌다. 몇 년 전만 해도 양혁수는 사람을 자주 만나지 않았지만 변여름과 함께한 뒤로 변백호네 가족이 시도 때도 없이 집을 들락거렸다.변여름은 한강시 연구실에서 고작 6개월의 시간을 보냈지만 벌써 성공적으로 데이터를 확보했다.그래서 남은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