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은 윤구주가 싸울 때 봉왕팔기 중 하나만을 쓸 수 있는 줄 알았다.그러나 사실 윤구주는 8가지 모두 쓸 수 있었다.만약 8가지 다 쓰게 되면 어떤 무시무시한 결과가 있을지 아직 아무도 본 적이 없었다.10개국 간의 전쟁에서도 윤구주는 8가지를 함께 쓴 적이 없었다.그런데 지금 윤구주가 드디어 두 번째 기술 뇌왕인을 시전했다.하늘에 나타난 먹구름과 함께 수많은 벼락이 윤구주의 곁을 맴돌았다. 원래도 신처럼 보였던 윤구주는 더욱 신처럼 보였다.“두 가지를 잇달아 쓰다니... 세상에, 저자는 악마인 걸까?”아래에 있던 고대 문벌 신급 절정의 강자 천희준은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는 절망에 빠진 얼굴로 허공에 떠 있는 윤구주를 바라보았다.다른 네 명도 안색이 아주 좋지 않았다.윤구주가 잇달아 두 번째 기술을 시전하자 무시무시한 살기가 그들을 눌러 와서 힘들었다.“팔기지, 술현지!”다섯 사람이 충격에 빠져 있을 때, 그들을 질식하게끔 한 목소리가 윤구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뭐야? 하나 더 시전한다고? 세 가지를 시전한 거야?’윤구주가 술현지를 시전하자 아래 있던 사람들은 전부 넋이 나갔다.윤구주가 잇달아 세 가지 공격을 시전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이 공간 전체가 윤구주에게 통제당하고 있었다.이 공간 안에서 윤구주는 무적 같았다.세 번째 술현지가 시전되자 윤구주의 몸은 번개와 현기로 완전히 둘러싸였다. 그는 허공에 떠 있는 채로 인간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는 싸늘한 시선으로 아래 있던 다섯 명의 신급 절정 강자들을 훑어보았다.“내게 도전하고 싶었던 거 아니었어? 종문, 세가, 문벌로 날 압박할 생각 아니었나? 내가 말해주지. 지금 이 순간부터 날 막는 자들은 전부 죽일 거야. 그리고 내 형제를 해치려는 자는 온가족을 죽여주겠어. 이제 당신들도 죽어!”카리스마 넘치게 말한 뒤 윤구주는 두 손으로 아래를 눌렀다.“세 기술을 융합한다. 없애 버려!”금지술 천주로 만들어진 30미터 넘는 거대한 검이 추락했다. 동시에 하늘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눈앞의 허공에 떠 있는 윤구주에게로 향했다.오직 꼬맹이만이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주먹을 꽉 쥐고 중얼거렸다.“전 꼭 형님 같은 신화가 될래요!”다섯 명의 신급 절정 강자를 죽인 뒤 윤구주는 허공에서 내려왔다.그는 눈앞의 시체들에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말했다.“가서 민규현을 찾자!”그는 그렇게 말한 뒤 의수 감옥 안으로 들어갔다.뒤에 있던 정태웅 등 사람들은 서둘러 그를 따랐다.음산한 의수 감옥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가 느껴졌다.그곳에는 감방이 아주 많았지만 전부 텅 비어 있었다.안에 말라붙은 핏자국과 피가 묻은 쇠사슬만이 있어 마치 연옥 같은 느낌을 주었다.그리고 그걸 제외하고 경비원 한 명도 없었다.이러한 상황에서 정태웅과 천현수는 민규현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민규현은 보이지 않았다.“형님은 이곳에 없는 건가?”정태웅이 벌게진 눈으로 물었다.천현수가 막 입을 열려는데 윤구주의 시선이 갑자기 한 벽 쪽으로 향했다.“여기 있어!”윤구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움직였다. 순간 견고하던 화강암 벽이 그대로 부서지고 비밀의 방이 모두의 눈에 들어왔다.그 방은 이상할 정도로 컸고 안에서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가 났다.윤구주는 사람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고 피투성이인 사람이 왼쪽 벽에 걸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그는 암부의 호존 민규현이었다.민규현은 피투성이에 두 손, 두 발이 사슬로 묶여 있었다.그리고 견갑골과 가슴에는 문씨 일가의 독특한 무기 단혼정이 박혀 있었다.“형님!”민규현을 본 순간, 정태웅과 천현수가 외쳤다.사슬에 묶여 있던 민규현은 힘겹게 피투성이인 두 눈을 떴다. 그는 정태웅과 천현수, 윤구주를 보았다.“저하...”그가 힘없이 불렀다.“형님! 어떤 개자식이 형님을 이렇게 만든 겁니까?”정태웅은 눈이 벌게졌다.민규현이 대답하기도 전에 갑자기 음산한 목소리가 방 안에서 들려왔다.“구주야, 드디어 왔구나!”구주라는 호칭이 들렸다.방 중앙에서 검은
눈앞의 노인이 그저 환영이라는 말에 정태웅은 넋이 나갔다.윤구주의 시선이 마침내 천천히 노인에게로 향했다.“문창정 씨, 오랜만이네요.”문창정.그 음산한 이름이 윤구주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사람들은 전부 경악했다.그 노인은 화진 4대 고대 무술 중 최고인 문씨 일가의 사람이었다.이름을 불리자 노인은 킥킥 웃으며 말했다.“그래. 아주 오랜만이구나. 난 네가 우리 문씨 일가의 기린화독에 당해서 틀림없이 죽음의 바다에서 죽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다시 너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윤구주는 화를 내지 않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죽지 않아서 아주 실망했나요?”“실망이라니, 그럴 리가. 그저 아쉬울 뿐이야.”문창정이라고 불린 노인이 중얼거렸다.윤구주는 싸늘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놀랄 필요 없어. 난 확실히 아쉬움을 느꼈으니까. 넌 우리 화진의 용이야.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문씨 일가는 용인 널 잡지 못했지.”검은 안개에 둘러싸인 문창정은 그 말을 할 때 참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다.마치 정말로 아쉬운 듯 말이다.“왜 절 해치려고 한 건지 말해봐요. 왜 저한테 독을 먹였죠?”윤구주는 오랫동안 품고 있던 의문을 물었다.아주 오래전 윤구주와 문씨 일가는 사이가 아주 좋았다.당시 곤륜에서 왕이 되었을 때 화진의 4대 고대 무술 세가 중 최고였던 문씨 일가는 가장 처음 나서서 윤구주를 응원했다.그리고 윤구주와 문아름의 혼인은 그와 문씨 일가 정략결혼의 기반을 닦았다.그러나 윤구주는 자신이 가장 믿었던 문씨 일가가, 그가 가장 사랑했던 여자가 그를 배신하고 그에게 독을 먹일 줄은 몰랐다.그렇지 않으면 천하무적이던 윤구주가 어떻게 쉽게 기린화독 같은 치료하기가 아주 까다로운 독에 당했겠는가?검은 안개에 둘러싸인 문창정은 탄식했다.“그건 아직 알려줄 수 없어. 내가 유일하게 알려줄 수 있는 거라곤, 네가 무력으로 10개국을 항복시키고 화진 무도의 전례 없는 태평성대를 이룬 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널 두려워했다는
그러나 그들 중 좋은 결말을 맞이한 자는 없었다.문창정의 말에 암부 3대 지휘사 중 가장 똑똑하다고 인정받는 천현수조차 침묵했다.오직 윤구주만이 뒷짐을 지고 서서 말했다.“그것이 문씨 일가가 독으로 절 죽이려고 한 이유였나요?”“이건 이유의 일부일 뿐이야. 물론 진짜 이유는 아직 알려줄 수 없어!”안개에 둘러싸인 문창정이 탄식하며 말했다.“구주야, 내 말 들어. 아직 멈출 수 있단다. 네가 멈춘다면 난 지금 바로 명령을 내려 암부의 죄를 씻어줄 거야. 그리고 과거 널 따랐던 사람들이 남은 인생을 평화롭게 보낼 수 있도록 해줄게.”문창정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윤구주를 바라보면서 그를 설득했다.“멈추라고요? 어떻게 멈추라는 거죠?”윤구주가 갑자기 차갑게 웃으며 물었다.“모습을 숨기는 거야. 세상 사람들이 구주왕이라는 이름을 잊게 한다면 나 문창정은 우리 문씨 일가의 천 년 된 명예를 걸고 절대 널 건드리지 않겠다고 맹세할게. 동시에 네 곁의 사람들도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을게! 가장 중요한 건 문아름 걔가 너와 화해할 수도 있다는 거야. 구주야, 날 믿어. 네가 숨어 지낸다면 난 문아름과 네가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살 수 있도록 할게.”문창정의 말을 들은 윤구주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뭘 웃는 거야?”윤구주가 미친 듯이 웃어대자 검은 안개에 둘러싸인 문창정이 물었다.“정말 노망이 들었나 보네요. 당신은 그 독사 같은 지독한 여자를 너무 중요시하네요.”그 말에 검은 안개에 둘러싸인 문창정은 안색이 바뀌며 살짝 화가 난 듯 말했다.“왜? 싫어?”“당신 때문에 전 독에 당했고 제 형제들은 죽었어요. 그리고 저와 함께 생사를 함께했던 이들도 죽었죠. 심지어 당신은 군형 삼마를 보내 제가 사랑하는 여자를 죽이려고 했어요. 그중 하나만으로도 제가 당신을 죽이고 당신의 가족까지 죽일 이유는 충분해요. 그런데 지금 감히 저한테 숨어 지내라고 한 건가요?”윤구주의 말은 칼처럼 문창정의 마음을 파고들었다.“흥! 이 자식, 좋은 말
문창정의 말을 들은 윤구주는 차갑게 코웃음 치더니 오른손을 움직였고, 그 순간 노인의 분신은 재가 되어 감쪽같이 사라졌다.문창정의 분신이 소멸한 후 정태웅, 천현수는 그제야 서둘러 민규현에게 다가가서 그의 사슬을 풀어주었다.탁탁!정태웅은 사슬을 풀어주는 순간 네 개의 검은색 혼정이 그의 가슴팍에 박힌 걸 발견했다.정태웅이 손을 뻗어 못을 뽑으려고 하는 순간, 윤구주가 갑자기 말했다.“정태웅, 그만둬!”“저하, 왜 그러십니까?”정태웅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물었다.“그건 단혼정이야. 사람의 혼을 억누르고 원기를 금지하는 용도지. 지금 그걸 뽑는다면 민규현은 원기를 다 잃고 그 자리에서 죽을 거야.”윤구주가 요점을 말했다.‘뭐?’윤구주의 말을 들은 정태웅은 깜짝 놀랐다.그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민규현의 몸에 박혀있는 네 개의 단혼정을 보았다.검은색의 못은 음산한 한기를 내뿜고 있었다.엄지손가락 굵기의 단혼정이 민규현의 몸에 박혀 있었다.네 개의 단혼정을 본 정태웅은 눈이 빨개져서 말했다.“저하, 어떡합니까? 규현 형님이 이 단혼정에 시달리는 걸 그냥 지켜봐야 하는 겁니까?”“걱정하지 마. 일단은 민규현을 데리고 돌아가. 내가 치료해 줄 거야!”윤구주가 민규현을 치료해 줄 수 있다고 하자 정태웅과 천현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두 사람은 양쪽에서 잔뜩 시달려서 피투성이가 된 민규현을 부축했다.그들이 감옥에서 나오려고 할 때, 민규현은 갑자기 본능적으로 몸을 떨면서 윤구주의 옷자락을 잡았다.“저하...”그는 힘없이 윤구주를 불렀다.“부상이 심각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푹 쉬는 게 좋겠어.”윤구주가 그를 설득했다.그러나 민규현은 고개를 저었다.그는 이를 악물더니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며 말했다.“저하, 청룡 형님이... 살아있습니다. 살아있어요!”청룡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윤구주는 민규현의 뜻을 이해했다.그는 민규현의 피 묻은 두 손을 잡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널 치료하고 나면 너
“걔는 원래 사람을 식량으로 삼고 불을 재료로 삼아. 조금 전 대전으로 인해 여기 많은 사람들이 죽었잖아. 그 기운을 맡고 모습을 드러낸 거야.”윤구주가 설명했다.정태웅이 ‘걔’가 대체 뭔지 물어보려고 할 때, 갑자기 아주 우렁찬 짐승의 울부짖음이 들려와 고막이 아플 정도였다.그리고 곧 사람들은 먼 곳의 숲속에 갑자기 불빛이 번쩍하더니 화염을 입에서 내뿜는, 작은 산처럼 우람한 몸집의 무시무시한 괴물이 그들의 앞에 나타난 걸 눈이 휘둥그레져서 보았다.그것은 머리가 소 같고 눈은 방울 같았다.온몸은 검은색 비늘에 덮여 있었고 몸의 반은 도마뱀 같았다.그리고 거대한 몸은 마치 작은 산 같았다.그것은 사람들 앞에 나타났을 때 입에서 불을 내뿜고 있었고, 온몸에서 이루 형언하기 어려운 파멸적인 기운을 내뿜었다.“세상에, 저건 무슨 괴물이죠?”붉은색 치마를 입은 재이는 엄청난 덩치의 괴물을 보게 되자 겁을 먹고 연신 뒷걸음질 쳤다.옆에 있던 용민, 철영도 이렇게 무시무시한 것을 살면서 처음 보았다. 그들 역시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반대로 꼬맹이 남궁서준은 검의가 점점 더 짙어졌다.윤구주가 입만 열면 곧바로 그것을 공격할 듯 말이다.“설마 저게 바로... 용하 산맥 전설 속의 신수 원귀?”천현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고개를 들어 눈앞의 불을 내뿜는 거대한 그것을 바라보았다.‘뭐지?’“설마 이것이 바로 화진의 용맥을 보호하는 신수야?”천현수의 말을 들은 정태웅은 소리를 질렀다.“그럴 거야. 고서에 적힌 내용에 근거하면 이 신수는 아주 신통하대. 하늘과 땅의 불을 삼킬 수 있다고 하지. 우리 화진의 용맥을 지키는 그 신수가 맞구나!”천현수는 계속해 말했다.“천현수 지휘사님, 사람들을 잡아먹는 신수라면 아주 강하지 않나요?”용민이 덜덜 떨면서 천현수에게 물었다.“내가 아는 거라곤 그동안 용하 산맥에 아무도 들어가지 못했다는 거예요. 신급 절정 수준의 강자도 쉽게 들어가지 못해요. 들어가면 틀림없이 죽기 때문이죠. 살아서 나온 사람은 아무
윤구주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면 신수 원귀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겁에 질린 모습이었다.끊임없이 뒤로 물러나는 원귀를 보던 윤구주는 웃으며 말했다.“왜? 이제 내가 기억나? 기억났으면 얌전히 무릎이나 꿇어.”원귀는 윤구주의 말을 듣더니 누구보다도 순순히 윤구주의 앞에 납작 엎드렸다.거대한 원귀의 머리가 푹 숙여졌다.원귀의 코와 입에서 뿜어져 나오던 화염은 당장이라도 꺼질 것 같았다.원귀는 낮게 앓는 소리를 냈는데 마치 애원하듯 가련한 모습이었다.윤구주는 몸을 움직여 원귀의 머리 앞에 나타나더니 손을 뻗어 그것의 거대한 머리를 토닥이면서 말했다.“좋아. 이번에는 아주 얌전히 구네. 안 때릴게!”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다시 한번 큰 충격을 받았다.당당한 용호 산맥의 신수가 윤구주의 앞에서는 한없이 고분고분했다.누가 봐도 놀랐을 것이다.“됐어. 난 볼일이 있으니 먼저 가봐야겠다.”윤구주는 손을 뻗어 원귀의 거대한 머리를 만지더니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윤구주가 떠나자 신수는 그제야 눈을 깜빡이면서 드디어 갔다는 표정을 지었다.윤구주는 신수 원귀에게 더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나머지 사람들은 놀라서 얼떨떨한 상태로 윤구주와 함께 자리를 떴다.그날 밤, 윤구주는 민규현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화진의 모든 문벌을 적으로 돌리겠다고 선전 포고했다.오늘 밤, 그는 봉왕팔기를 연달아 세 번 썼고 다섯 명의 신급 절정 강자를 죽였다.그는 이것이 단지 시작일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화진은 무력으로 나라를 세웠다.태초부터 그랬다.무도가 번성한 화진에는 수많은 강자가 숨어 있었고 절정에 이른 자는 500살까지 살 수 있었다.그 500년 사이에 세상에 또 얼마나 많은 뛰어난 인재들이 나타나겠는가?특히 문벌, 세가, 종문에서 천재가 많이 나왔다.예나 지금이나 천하의 강자는 모두 문벌, 세가, 종문에서 나왔다.오직 윤구주만이 예외였다.윤구주는 곤륜에서 왔었으니 말이다.그러나 윤구주는 그 모든 것이 당연히 두렵지 않았다.그
그러나 이제 막 함께 모여서 움직이려고 할 때 이 무시무시한 사사들의 포위 공격을 받을 줄은 몰랐다.삼천 명의 사사는 과거 화진의 최고 문벌이었던 윤신우가 이끄는 자들이었다.황씨, 당씨 일가는 그 사실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밤하늘 아래 윤신우는 고고하게 서 있었다.그의 뒤에는 열 명의 윤씨 일가 노인이 서 있었다.그 노인들이 내뿜는 기운을 보면 모두 신급 중상급인 듯했다.그 밖에도 윤씨 일가의 윤창현, 윤정석도 윤신우의 곁에 서 있었다.삼십 년 전, 과거 서울 최고의 미남이라고 불렸던 윤신우는 황씨 일가의 신급 강자인 노인의 질문을 무시하고 덤덤한 눈빛으로 용하 산맥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구주 쪽은 끝난 것 같아.”“그러네요, 형님! 하하하하! 빌어먹을 문씨 일가의 늙은이는 겨우 신급 절정 강자 다섯 명으로 우리 조카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나 보죠? 열 명, 스무 명 더 보내도 아무 소용 없었을 텐데 말이에요.”윤창현은 검은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미친 듯이 웃었다.“창현아, 넌 틀렸어.”윤신우가 갑자기 말했다.“틀렸다고요? 뭐가 틀린 거죠?”윤창현은 이해할 수 없었다.윤신우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문씨 일가의 그 늙은이가 얼마나 음험한데. 그 늙은이가 우리 아들의 실력을 모를 리가 없지. 그가 오늘 신급 절정의 강자 다섯 명을 보낸 건 분명 의도가 있어.”“의도요?”윤창현은 그 말을 듣자 더욱 어리둥절해졌다.“형님, 전 잘 모르겠어요. 문씨 일가의 그 늙은이가 무엇 때문에 신급 절정 다섯 명을 죽으라고 구주에게 보낸다는 거죠?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니라면 말이에요.”“아니, 그 늙은이는 머리가 잘못된 게 아니야.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모든 문벌이 우리 아들을 적으로 돌리게끔 하기 위해서야. 문벌이 반란을 일으키면 세가, 종문 또한 똑같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겠지. 그렇게 되면 화진 무도는 혼란에 빠지게 될 거야. 그러면 화진의 무대 대통합의 국면에도 영향이 미칠 것이고 더욱 중요하게는 우리 아들이 세상의 모든 무인을
임정설이 일으킨 이씨 가문의 기세조차 마물들에게 잠식당해 사라지고 있었다.청해는 말 그대로 처참한 상태였다. 이젠 자기 몸 하나 제대로 지킬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나마 임정설이 죽을 각오로 지켜주지 않았다면 진작에 목숨이 끊겼을 터였다. 결국, 화진의 국주가 자신의 목숨을 지켜준 것이다. 이 순간만큼은 죽는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음 생이 있다면... 화진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줘. 그게 아니라면. 그냥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게 해줘... ”청해는 하늘을 향해 처절하게 외쳤다. 임정설은 고개를 번쩍 들고 한 번 더 울부짖었다. 그 울음은 황자의 기운을 불러왔고 서요산 일대의 천기와 섞여 거대한 진룡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황도기운과 진룡을 하나로 모든 요마를 베어낸다! ”그 역시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대로 더는 버틸 수 없다면 풍무기처럼 자신의 마지막 의지를 국운에 녹여야 할 것이다. 진요탑 안. 이 일대 세계 전체가 마기에 잠식되어 만물은 스스로 죽음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런 데 무명은 더 이상 흥분할 수 없었다. “하하! 인황이 뭐라고? 도를 얻은 건 나다. 나는 이미 진정한 길의 끝을 보았다. 내 의지는 구천 현천을 관통한다. 하늘도 날 감당할 수 없어. ”그 순간 하늘과 땅이 동시에 울컥하며 뒤틀렸다. 무언가 말도 안 되는 존재가 깨어나는 기운이었다. 이 작은 진요탑 속 공간조차 그걸 담아낼 수 없어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무명이 눈을 치켜떴다. “또 뭘 하려는 거야? 설마... 윤구주 너 나를 봉인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네 실력으론 날 봉인 못 해. 아니, 가능하다 쳐도 목숨을 걸어야만 가능하지. 하지만 지금 넌 그 목숨을 걸어도 겨우 나를 세 손가락만큼 다치게 할 수 있을 뿐이야. 그 정도 피해라면 기꺼이 감수하지. 와봐, 날 얼마나 벨 수 있나 보자고. 병이 오면 장수로 막고, 물이 오면 흙으로 막는 법이지. 그러니 한번 보자고 구주왕이라는 놈의 마지막 발악이 어떤지. ”무
“인간마가 세상에 나왔는데, 대체 누가 막을 수 있겠냐. 왜 그 무게를 전부 화진이 짊어져야 하는데? 이건 너무 불공평해.”청해는 처음으로 곤륜영역에 혐오감을 느꼈다.그리고 그제야 윤구주가 말했던 위선의 신이라는 말이 단순한 수련의 이야기가 아님을 이해했다.그들은 입만 열면 도덕과 정의를 떠들지만, 정작 하는 짓은 불의 그 자체였다. 위선적이기 짝이 없었다.“아아아!청해무극! 지은살결!!”청해는 모든 정원을 끌어 올렸고, 심지어 음혼까지 태워버렸다.음혼이 하늘의 뇌격을 불러오자, 그의 기운 속에는 놀랍게도 정의로운 황기가 피어올랐다.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는 도에 들어선 것이다.그 수련은 폭발하듯 치솟아 극점 신경 후기에 이르렀고, 잠시나마 이성설과 맞먹는 기세를 뿜어냈다.“카! 이제야 좀 신 같은 포스가 나오네!”백호는 멀리서 엄지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하지만 청해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백호는 원래 미친놈이었으니까.누구든 이 상황이면 절망했을 전황.하지만 백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율로 들떠 있었다.그는 전투를 위해 태어났고, 결국 전장에서 죽을 운명이었다.그게 백호가 택한 길 죽음을 향한 도였다.세 사람 모두 이미 죽을 각오로 싸우고 있었다.살아남을 생각 따윈 없었다.마물들과 함께 미쳐 날뛰며 생사의 끝자락을 오갔다.진요탑.풍무기는 전사했다.이제 남은 건 윤구주 단 한 사람.그가 인간마와 맞서야 할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윤구주! 풍무기는 죽었다. 이젠 네 차례야! 혼을 꺼냈다고 해서 날 이길 수 있다는 뜻은 아니야. 내 육신이 남아있는 이상, 나는 이미 성인의 경지에 올랐다. 지금의 반성 상태만으로도 네 인황 따위가 감당할 수는 없어. 그래, 네 선술은 순수하겠지. 그래서 네 육신엔 손댈 수 없지만 혼을 지워버리면 넌 끝이야. 마도무영,도파무극! 혈음마도, 현세에 나타나라!”그의 손에 한 자루의 절세마도가 출현했다.그 칼끝에서 피의 바다가 솟구치고, 살기는 윤구주의 황기조차 압도했다.이런 마도를 길러내기 위
잠금요탑 밖, 무너졌던 마기가 흩어지자 서요산 검종 제자들 사이에서 울음이 터졌다. 500년 만에 다시 햇살을 본 그 순간 꾹꾹 눌러왔던 감정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서요산은 그 오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도움 없이 혼자서 마를 억눌러왔다. 그 현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났다. “무명이 죽은 건가? ”장인대진인이 순간 멍해졌지만 곧 신념술로 본 광경에 얼굴이 굳어졌다. 귀물들이 미친 짐승처럼 날뛰며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산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이제부터가 진짜다. 무슨 일이 있었든 간에 윤구주가 무명의 목에 칼을 들이댄 건 확실해. 지금이 바로 마지막 승부의 시점이다.”말이 끝나자마자 흩어진 마기가 다시 거칠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마기가 응집되더니 거대한 마영체가 형성됐다. 그 거대한 그림자는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고 대지를 집어삼키려는 듯 광폭하게 움직였다. 그건 이제는 환상이 아니었다. 그 자체로 재앙이었다. 잠금요탑 위로 백장 크기의 마존이 강림했다. “윤구주! 네가 이 정도였다고? 실력만큼은 서요산 시조랑 비교해도 꿀리지 않겠군. 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미 흐름은 정해졌다. 대세는 되돌릴 수 없어. 그 시조가 도력이 하늘을 찌르고 능력이 천하를 뒤흔든다 해도 결국 날 죽이지 못했지. 결국엔 구천을 떠돌며 외도계에서 날 베어낼 무언가나 찾고 있겠지. 외도계엔 나를 죽일 보물이 있을지도 몰라도 이곳 인간계 구주의 오방 안에서는 절대 없어. 너도 마찬가지야, 넌 여기서 끝이다. 죽어라!! 윤구주. 마의 경계는 끝이 없고 마의 바다는 만 리를 삼킨다! ”하늘이 찢기고 무한한 마해가 대지를 뒤덮었다. 잠금요탑은 순식간에 요산으로 변했고 주변은 온통 사기와 혼란으로 뒤덮였다. 무명은 드디어 자신의 사혼체를 드러내며 윤구주와 마지막 일전을 준비했다. 윤구주의 손에 들린 참마검이 떨리기 시작했다. 풍무기의 상태가 이미 한계라는 증거였다. “구주야, 내 양혼신체는 거의 다
‘선술? 크하하하!’무명이 미친 듯 웃었다.“네가 황자면 뭐 어쩌라고? 결국에는 한순간 스쳐 지나가는 인간 세상의 유성일 뿐이지.”“나는 무명이다.하늘은 이미 내 발 아래 있다.세상의 법? 그런 건 내가 정하는것이다.”“윤구주! 과연 네놈이 날 어떻게 상대할지 두고 보겠다!”‘원신출체도 못 한 놈이 선술을 깨달았다고? 어이없네.’무명의 눈에는 윤구주란 놈은 선술의 겉껍데기나 훔쳐본 수준에 불과했다.입만 산 허세쟁이 꼬맹이였지 그딴 놈은 애초에 눈에 들어올 가치조차 없었다.게다가 진짜 선술을 논하려면 그 참마검조차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하는 주제에.하지만 윤구주는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신의 경지에 머물던 시절,우연히 소요산에 들렀을 때 그때 이미 선술의 근본을 깨달았지.”윤구주의 눈이 빛났다.“지금, 네게 그걸 보여주마.”“구기신통 , 등선!”부우우우웅!!윤구주의 몸을 감싸고 있던 하얀 기운이 순식간에 실체의 불꽃으로 응결되었다.기운이 ‘기’에서 ‘힘’으로 승화된 것이다.무명의 눈동자가 순간 가늘어졌다.이게 뭔지 무명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이제 윤구주는 몸 자체에서 영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솔직히 말해서 마음만 먹으면, 주변 땅의 기운조차 자기 위주로 바꿔버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윤구주는 이제 한 종파의 시조로 불릴 자격이 있는 존재였다.더 이상 강자를 넘어서 자신만의 도를 세우고, 전설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무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저건, 설마 성력?!”그 힘은 그렇게 압도적이진 않았지만 문제는 진짜였다. 가짜가 아닌, 순도 100%의 성력이었다.“말도 안 돼...저놈이 어떻게...”무명의 내면이 갈기갈기 찢어졌다.수행자에겐 한 단계 한 단계가 천벽과도 같다.특히 성의 경지에 이르기 까지는 그야말로 하늘과 하늘 사이를 걷는 자들만이 갈 수 있는 길이 였던것이다그리고 지금 윤구주는 그 문턱을 스스로 넘고 있었다.“무명! 넌 반성자일뿐! 육신만 있었으면 성인이 됐을지도 몰라.하지만 지금 넌 가짜
단 한 걸음,그 한 걸음만 넘기면, 그는 곧 성급 바로 직전 경지에 이른다.그리고 그 마지막 문턱을 박살내는 순간 반쯤 성인이 된 경지, 반성급이다!지금 이 자리, 그 반성급 경지에 선 자는 바로 인마라고 불리는 무명이었다.“과연... 화진의 인황, 구주왕이라 불릴 자격은 있군. 하지만 너도 알겠지. 지금 네 수준으론 몸을 직접 이 판에 던지지 않는 이상 나랑 맞붙을 자격조차 없어. 네가 그 잘난 원신출체를 어떻게 하겠다는지 구경이나 해보자고. ”무명이 입꼬리를 비틀며 코웃음쳤다.팔기귀일에 도달한 윤구주의 전투력은 이미 황의 지경을 뛰어넘었다.하지만 무명과의 경지 차이는 여전히 너무 컸다.실력은 분명 엄청났지만 격이 다르였다.지금 상태로도 보통의 황자의 경지까지 초월한 상태지만 무명을 상대하긴 아직 한참 부족했다.심지어 무명이랑 싸울 실력은커녕 참마검조차 손에 제대로 못 잡는 게 현실이었다.“팔기로 부족하다면... 제구기는 어때? 구기:적선!”부우우우웅!윤구주의 온몸을 하얀 선기가 감싸는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웃고 있던 무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뭐라고? 이건 네 따위가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잖아! ”그 순간, 무명조차 숨을 삼켰다.이건 상식의 틀을 깨부수는 광경이었다.근대에 들어서면서 도에 대한 수련는 사실상 약해졌다.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세상에 흐르는 천지영기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봉신전쟁 당시, 상상을 초월하는 영기가 소모됐고 그 전쟁이 끝난 후 곤륜구역은 세상의 영기 90%를 신계에 봉인해버렸다.거기서 마음껏 영기를 탕진한 것도 모자라 바깥의 산수들까지 무분별하게 빨아들인 탓에세상의 영기는 걷잡을 수 없이 줄어들고 말았다.결국 세상은 고위 수련자가 태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그래서 화진에선 500년에 한 번 황자가 나올까 말까 할 정도이고 황자의 경지에 도달하는 건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었다.임정설이 황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처음부터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윤구주를 돕기 위해 왕
마기가 검종 제자들의 혼백에 침투하자 그 순간 제자들의 몸에서 시커먼 마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이를 목격한 장인 대진인은 망설임 없이 즉시 결단을 내렸다. 오염된 제자들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정화해 버린 것이다.“모든 제자들아, 입문 첫날 내가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서요산은 찬란한 성지 화진 정통의 계승지다. 정은 사악함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정은 사악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은 바로 서요산 제자들이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는 도의였다.입문과 동시에 깨달음을 얻은 그들은 언젠가 반드시 도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저 화진 정통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서였다.그 순간 진요탑 외곽에서는 7대 진인을 중심으로 전 종문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진요탑을 사수하고 있었다.하늘을 뒤덮을 듯한 마기의 기세는 점점 거세져 어느새 검종의 경내 전역을 삼켜버렸다.검종 제자들은 마기를 막아내면서도 동시에 진요탑의 결계를 유지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정도를 지키는 일은 그만큼 고통스럽고 힘든 투쟁이었다.산 아래 상황도 마찬가지로 치열했다.온갖 요괴와 귀신들이 들이닥치는 가운데 임정설은 황운을 등에 업고 이씨 가문의 국운을 모두 모아 홀로 수백만 마기를 막아서고 있었다.백호는 마인으로 완전히 변신해 광란의 충격 속으로 몸을 던졌고, 스스로 마를 품은 채 적진을 난도질했다.청해는 천뢰신술을 펼쳐 수만 개의 천뢰를 무기로 변환시켜 온갖 사도와 악귀를 쓸어내기 시작했다.그 무렵 진요탑 내부에서 풍무극의 기세는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구주야, 내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 내 500년 수련의 혼을 너에게 바치겠다."”풍무극의 준비는 이미 완료되었다.그는 미리 준비해 둔 제천 법기를 꺼냈고 전법이 발동되는 순간 그의 육신은 산산조각 부서졌다.그의 정기와 천지 정기를 모두 품은 찬란한 진신 영혼은 한 자루의 참마검으로 변해 윤구주 앞에 떠올랐다.“풍 종주...” 윤구주는 입술을 깨물었다.슬프고 아쉬
윤구주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국운의 기운이 그의 발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그가 진요탑의 문에 도달했을 무렵 모든 국운이 윤구주에게 집중되었다.윤구주의 주변으로는 천인신광이 펼쳐져 있었다.이 순간만큼은 그가 천지의 주재자 화진의 영겁을 관통한 유일한 존재였다.윤구주는 홀로 진요탑 안으로 들어섰다.겉보기에 거대한 산 같았던 진요탑의 내부는 참혹한 말세의 풍경이었다. 땅은 끝없이 펼쳐진 용암으로 뒤덮여 있었고 하늘에서는 강줄기가 거꾸로 흘러내리고 있었다.불과 물이 충돌할 때마다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거꾸로 흐르는 강물 위에 한 노인이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백발이 성성한 그 인물은 다름 아닌 서요산 검종의 종주였다.밖에서 보이던 강건한 중년의 모습은 단지 화신에 불과했으며, 본체는 수백 년 전부터 이 진요탑에서 마인을 봉인해 왔다.서요산 검종 종주는 극도로 지쳐 있었고 이제는 마지막 호흡으로 버티고 있었다.“드디어 왔구나.” 서요산 검종 종주는 허약한 전음으로 말을 건넸다.“오백 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종주님.” 윤구주는 고개를 숙였다.풍무극은 현 서요산의 종주이자 당대 최고의 영웅, 화진 제일 검으로 불리던 남자였다.원래는 풍속을 다루는 수련자로 젊은 시절엔 검 하나로 화진을 호령한 사내로 알려졌다.그의 검은 아무도 궤적을 볼 수 없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500년 전 마인이 봉인되고 서요산의 조사가 승천한 후, 풍무극은 서요산의 거자로서 종주의 자리를 이어받았다.그날 이후 진요탑에 몸을 묻고 마인과의 싸움을 500년간 지속해 왔다.풍을 다루던 그였지만 지속적인 봉인을 위해 익숙하지 않은 수속까지 수련하며 지금까지 버텨왔다.그가 마도에 빠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이었다.“그래도 괜찮다. 다행히 이 시대에 또다시 인황이 나왔으니. 화진은 연달아 두 명의 인황을 배출했다. 임정설이 인황에 등극한 지금 쇠락하던 이씨 가문의 국운이 다시 살아났다. 그가 천지의
마인이 출현하면 곤륜 구역조차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서요산 검종의 진요탑은 이미 오백 년 동안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이는 곧 그 마인이 오백 년 동안 진요탑 안에 봉인되어 있었음을 의미했다.“우리가 가진 유일한 이점은 저 마인이 지난 오백 년간 수련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 오백 년 동안 분명 무언가를 '깨달았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정도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도가 존재하는 법입니다. 만약 그가 이곳을 벗어나 다시 한번 돌파에 성공하여 진정한 성인의 경지에 오른다면…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 우리 종문의 선대 종주께서 이 마인을 직접 봉인하셨습니다. 하지만 선대 종주께서는 진요탑만으로는 그를 완전히 봉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아셨지요. 그래서 마침내 구천으로 비상하셔서 바깥 세계에 존재한다는 신기를 찾기 위해 떠나신 것입니다.”장인 대진인이 비밀을 털어놓자 임정설은 왜 그 옛날 서요산 검종을 창립한 선조가 갑자기 사라졌는지 이해했다.“구천을 비상했다고? 전설 속 그 이야기 설마 전부 사실이었단 말인가? 이 세상 위에 더 위대한 세계가 있다는 건가?” 임정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들은 바로는 성인이란 육지에서 신선이 된 자를 이르는 말이고 준성은 그보다 한 단계 아래 반쯤 신선이 된 존재라 하더군요. 우리보다 더 풍부한 영기의 세계가 과연 존재하는지는 이 몸 역시 감히 짐작할 수 없습니다.” 장인 대진인은 고개를 저었다.그때였다.진요탑이 거칠게 흔들렸고 모든 호법 제자의 얼굴이 딱딱해졌다.수련이 부족한 제자 몇몇은 그 자리에서 마기의 침식으로 피를 토했다.“모든 제자에게 고한다. 나와 함께 현문을 수호하라.” 장인 대진인이 친히 자리에 앉아 온 종문의 기운을 모아 마인을 억제하기 시작했다.마인은 일시적으로 제압되었지만 산 밖의 요괴들과 악귀들은 마기의 부름을 받아 사방팔방에서 서요산으로 몰려들고 있었다.임정설은 이제 자신이 이곳에 온 진짜 이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