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 구성원들이 남궁서준에게 손을 대려고 할 때, 정태웅과 천현수가 튀어나왔다.“너희 이부에서 누가 감히 죽으려고 나대는 것이냐!”서울 6부 중 이부의 구성원으로서 자연히 정태웅과 천현수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두 사람이 나서자 이부 구성원들은 망설이고 있었다.그들은 이전에 정태웅과 천현수가 화진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세웠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뭘 멀뚱히 서 있어! 설마 내 명령을 듣지 못했단 말이냐!”신재윤은 부하들이 머뭇거리다가 큰 소리로 화를 냈다.“부통령님, 암부 3대 지휘사는 화진의 기둥인데 정말 손을 써야 하나요?”한 교위가 나서며 물었다.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자 챙하는 소리와 함께 신재윤이 허리에서 칼을 뽑았다.“감히 두 역적을 감싸는 것이냐! 죽고 싶은 거야?”신재윤의 칼이 내질러지자 교위의 피가 자리에서 튀었다.신재윤이 자기 사람까지 죽이는 모습을 보자 남궁서준은 혀를 차더니 허공을 박차고 나왔다.화진 제일의 소년후로서 비록 절정의 실력을 갖춘 것은 아니었지만 절정의 실력보다 나은 면도 있었다. 특히 무적의 검의가 그랬다.윤구주가 전에 얘기했다시피, 남궁서준은 천년에 한 번도 보기 힘든 검도의 귀재였다. 그는 조만간 진짜 육지 검선급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었다.남궁서준이 검을 내지르자, 주위의 모든 것이 그의 검기에 휩싸였다.남궁서준의 검은 신재윤을 죽이겠다는 마음으로 내지른 것이라 무서운 칼날이 자신을 향해 오는 모습을 보며 신재윤은 자연스럽게 두려움에 떨었다.신재윤은 이제 막 신급에 발을 들여놓았고 모든 내공은 신씨 문벌에서 각종 단약과 비법으로 쌓아 올린 것이었다.하여 진정한 실력은 오직 실력으로만 쌓아 올린 신급 고수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설령 신재윤이 진짜 신급이라고 해도 어쩌겠는가?신씨 문벌의 중신급 강자도 남궁서준의 단 한 칼에 당하지 않았는가.하물며 신재윤은 비교도 되지 않았다.“살려줘! 살려줘!”신재윤이 남궁서준의 공포스러운 검의를 바라보고 뒤로 물러서며 도움을 청했다.“도련
신씨 일가의 두 절정 선조가 등장하자 신씨 일가 사람들은 모두 흥분했다.오늘, 그들은 원래 정양문에서 절정 선조들을 맞이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선조 님, 정의를 구현해 주세요!”“저놈이, 저희 사 장로는 물론 신재윤까지 죽였습니다.”신씨 일가의 신급 노인이 땅 위에 놓은 두 구의 시체를 가리키며 말했다.머리가 희끗희끗한 신씨 일가의 절정 선조가 싸늘히 시체를 보며 말했다.“쓸모없는 놈들.”욕을 먹고 있어도 신씨 일가 사람들은 감히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아무리 쓸모없는 놈들이라고 해도 신씨 일가의 피가 흐르고 있겠지.”다른 한 절정 선조가 천천히 얘기하고는 오른손을 휘둘렀다. 갑자기 나타난 불꽃이 신재윤과 다른 한 신급 노인의 시체 이로 떨어졌다.쾅 하는 소리와 함께 두 구의 시체가 불타올랐다.두 시체를 태운 뒤 신지해는 그제야 눈을 가늘게 뜨고 남궁서준을 바라보았다.“어린 나이게 검기가 이렇게 짙다니! 소인은 이미 여러 해 동안 이렇게 놀라운 실력을 갖춘 후배를 본 적이 없어!”남궁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른손을 뻗었다.챙!등 뒤에 있던 금빛 유용검이 그의 손아귀에 떨어졌다.검을 수중에 넣은 소년의 살기가 불타올랐다.도도히 검기를 내뿜는 모습은 벌써 소년 검신이 된 것만 같았다.남궁서준이 검을 뽑는 순간 갑자기 호탕한 웃음소리가 등 뒤의 허공에서 들려왔다.“신씨 일가 괴물아! 둘이 나이를 합치면 400도 다 되어가는데 십 대 아이를 괴롭히려고? 이 소문이 퍼지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는 거 아니야?”소리는 음산했다.소리의 주인은 빛과 같은 속도로 잔영이 되어 이쪽을 향해 날아왔다.짙은 절정의 기운이 풍기며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흔들었다.또 절정 강자의 출현이었다.이번에 나타난 절정 강자는 하나는 키가 크고 하나는 작았다.키 큰 사람은 얼굴이 딱딱했고 몸은 말랐다.작은 사람은 미륵불처럼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새로운 절정 고수 두 명이 나타나자 제일 뒤쪽에 서 있던 공씨 일가의 모두가 일제히 무릎
윤구주가 이름을 얘기했지만 30년 전에 폐관한 오래된 절정 선조들은 그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선조 님, 저 사람이 화진의 제일 인왕, 구주 전신입니다.”공씨 일가의 한 신급 노인이 입을 열었다.“구주 전신?”그 호칭을 듣자마자 공시 일가의 절정 선조는 냉소를 지으며 음산한 눈으로 윤구주를 힐끗 쳐다보았다.“쟤가? 스무 살 남짓한 꼬맹이가 화진의 제일 인왕에 어울려?”누가 들어도 무시하는 듯한 말투였다.“죽으려고!”남궁서준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윤구주를 모욕하는 것이었다.무적의 검의를 가지고 있는 남궁서준이 공씨 일가의 절정 선조를 향해 공격하려고 했지만 윤구주나 나서서 말렸다.윤구주는 공씨 일가의 절정 선조를 무덤덤하게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백 년 전, 곤륜 금기령, 절정은 세상에 나오면 안 된다. 혹시 기억하십니까?”“하하하! 웃기는구나!”“스물 넘은 애송이가 감히 우리에게 백 년 전의 일을 묻는 것이냐?”신씨 일가의 절정 선조가 쿡쿡거리며 웃었다.“그러네! 백 년 전에 너는 어느 모태 안에 있었는지도 모르지 않아?”또 다른 절정 선조가 비꼬며 물었다.“신 노인이 하는 말도 맞아. 곤륜 금기령이 벌써 백 년이 지났는데 네 놈이 곤륜 금기령을 들먹이는 것이냐? 설마, 네가 우리 고인물들보다 곤륜역에 대해 더 잘 아는 것이냐?”음기가 감돌고 검은 옷으로 모든 얼굴을 가린 제혈군도 참지 못하고 물었다.“맞습니다. 제가 선조님들보다 곤륜역을 더 잘 압니다.”윤구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는 자신의 과거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그러나 그의 측근들은 윤구주가 곤륜역에서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이를테면 그의 봉왕팔기 신통 그리고 그가 수련한 은 모두 곤륜역에서 가장 높은 공법이었지만 눈앞에 있는 오래된 각 문벌의 절정 선조들을 모르고 있었다.그들이 아는 거라고는 곤륜역이 화진 무술의 성지이고 금지 구역이라는 것이었다.들어가면 살아서 나올 수 있는 사람이 드물었고 세계 최고의 강자들도 곤륜역의
윤구주의 온몸에서 진역 결계의 기운이 뿜어져 나올 때, 현장에 있던 세 문벌의 절정 선조들의 안색은 하나같이 창백해졌다.세 문벌의 절정 선조들도 이미 유명해진 지 오래된 괴물들이었고 하나같이 진정한 절정에 이른 고수들이었으니 자연히 진역 결계에 대해 알고 있었고 4상 절정에 이르러야만 해당 결계를 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진역 공간은 이방 결계와도 비슷했다.이 결계 안에서는 시전자보다 내공이 높지 않으면 영원히 이 안에 갇힌 채, 누구도 벗어날 수 없었다.그게 바로 진역 결계의 무서운 점이었고 또한 4상 절정의 무서운 점이었다.절정 구중천!그 누가 윤구주가 4중 천의 진역 결계를 펼칠 줄 알았겠는가.“네 이놈, 너 도대체 누구야. 어떻게 그런 젊은 나이에 당대 절정에 이른 것이냐?”신씨 일가의 절정 선조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놀란 모습으로 윤구주를 바라보며 물었다.흰옷을 입은 윤구주가 뒷짐을 지고 섰다.“선조 님, 그가 바로 6년 전, 무력으로 문벌, 세가, 종문을 진압하고 봉왕팔기 신통을 만들어내며 곤륜에서 봉왕한 윤인왕입니다.”신씨 문벌의 노인이 엉겁결에 소리 질렀다.‘6년 전? 무술로 천하를 통일?’“설마... 그 사람이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라는 말이야?”신씨 일가의 두 절정 선조는 일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은 후 안색이 변했다.비록 여러 해 동안 절정 고수들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이는 그들이 화진에 큰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3대 서열에 큰 일이 생길 때마다 그들의 자식들이 비술 전음을 통해 자신들의 절정 선조들에게 소식을 전하기 때문이다.6년 전, 윤구주가 무술로 화진 3대 서열을 진압하고 화진 무술을 대통일 했을 때, 신씨 일가 자식들의 소식을 듣고 두 사람은 입가에 경련이 일었었다.“젠장! 그 전설 속의 화진 신화가 바로 너였단 말이냐?”신씨 일가 절정 선조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윤구주를 바라보았다.당대 신화!이것은 폐관된 절정 선조들이 윤구주에 대한 일
소리가 들리며 검은 깃발이 나타났고 깃발 뒤에는 검은 갑옷을 입은 거대한 군대들이 있었다.“흑기 금위군!”이 광경을 본 모든 사람이 놀랐다.흑기 금위군은 황성 3대 금위군 중 하나였다.이 금위군들은 서울을 전문적으로 보호하는 조직이었다.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금위군 하나하나가 대무사 이상의 실력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전력은 서울에서 제일간다고 할 수 있었다.이 순간, 우상 육도진이 흑기 금위군을 끌고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흥! 뭐야, 육씨 영감이네.”정태웅은 육도진과 그의 뒤에 있는 흑기 금위군을 보자마자 날카롭게 말했다.“설마 육씨 영감이 이 문벌 사람들을 위해 온 건가?”천현수의 눈매가 싸늘하게 변했다.“육씨 영감이 죽음을 자초하면 오늘 함께 죽여도 괜찮겠어.”두 사람이 이야기하며 일행 맨 앞으로 섰다.마치 화진 우상이 말 한마디만 잘못하면 정태웅과 천현수가 바로 손을 쓰려고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윤구주도 화진 우상을 싸늘하게 바라보았다.육도진이 허우적허우적 흑기 금위군을 데리고 오더니 이내 윤구주에게 큰절했다.“소인이 저하를 뵙습니다! 저하, 용서해 주십시오.”그는 먼 곳에서 절을 하고 있었는데 마치 윤구주에게 가까이할 용기가 없는 듯 해 보였다.“무슨 죄가 있는 것이냐?”윤구주가 100미터쯤 떨어진 육도진을 덤덤히 바라보았다.“소인, 조속히 저하를 뵈어야 했는데 상황이 허락되지 않아 그럴 수 없었으니 그 또한 죄 중의 하나이옵니다. 둘째, 소인은 전하께서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마땅히 온 세상과 함께 풍악을 울려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 또한 소인의 죄이옵니다. 셋째, 소인이 어리석었습니다. 저하가 당시 공표한 금령을 이 문벌들이 어기게 했으니 그것도 제 죄이옵니다.”화진의 우상이 윤구주에게 자신의 죄목을 하나하나 말하는 것을 들으며 네 문벌의 절정 선조들뿐만 아니라, 공씨, 제씨, 신씨, 옥씨 문벌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얼떨떨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육도진은 화진의 우상이었다.그런데 윤구주에게
“소인은 당연히 저하를 지원하러 왔지요.”윤구주는 듣자마자 웃음을 터트렸다.“네가? 날 도와준다고? 나 윤구주는 천하를 종횡무진하며 10국을 짓밟는 데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었던가?”“맞습니다. 저하는 천하를 아우르는 분이십니다. 당연히 이 소인의 도움은 필요 없겠지요. 하지만...”육도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잠시 말을 멈췄다.“왜? 내가 사대 문벌을 모두 없애버릴까 봐 두려워?”윤구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화진 제일의 구주왕으로서 윤구주는 육도진의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속셈을 들킨 육도진은 몸을 움찔하더니 얼른 자세를 숙였다.“저하, 화진 문벌의 서열을 봐서라도 먼저 네 문벌을 용서해 주십시오. 어쨌든 네 문벌은 모두 역사가 오래된 문벌입니다. 비록 죄를 범했으니 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저하가 네 문벌을 모두 도살하려고 한다면 천하의 기타 문벌들이 아마 의기투합하여 반대할 것입니다.”육도진이 마음속의 말을 전부 꺼냈다.공씨, 제씨, 옥씨, 신씨 네가의 고대 문벌은 이전 서울의 여씨, 황씨, 당씨 세 가문과는 완전히 달랐다.네 문벌은 역사가 유구한 문벌이었고 수백 년 동안 계승하면서 내려온 화진 내의 유서 깊고 덕망 높은 문벌이었다.그런 문벌이 윤구주에 의하여 전부 몰살당한다면 남은 기타 문벌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이게 육도진이 걱정하는 점이었다.또한 오늘 육도진이 흑기 금위군을 데리고 온 진정한 이유이기도 했다.“그래서 육 우상의 뜻은 오늘 네 문벌을 두둔하겠다는 건가?”윤구주는 담담히 말을 이었지만 목소리에 묻어나는 살벌한 기운은 육도진의 몸을 떨게 했다.“아닙니다. 소인이 어찌 그러겠습니까. 그저 저하가 잠시 방심해서 큰 화를 입을까 봐 걱정되어 그럽니다.”“하하하! 하하!”육도진의 말을 들은 윤구주가 갑자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그 웃음소리는 마치 우뢰와 같아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고막을 아프게 했다.“큰일? 육도진 네가 감히 나한테 그런 말을 해?”벼락같은 말은 일국의 우상의 목을 금세 쉬게 했다
“저하, 정말 이 네 문벌에 기회를 주실 수 없으시겠습니까?”육도진은 여전히 네 문벌을 대신해서 사정하고 있었다.“영감, 한마디만 더 하면 오늘 당신까지 죽일 거야.”윤구주의 목소리가 얼음처럼 차가워지며 살기가 바로 한 나라의 우상을 덮었다.육도진은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급히 뒤로 물러섰고 동시에 입이 막힌 듯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육도진은 윤구주가 농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만약 정말 여기서 더 이상 이 신왕을 화나게 한다면 그는 오늘 정말로 여기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었다.“하...”한숨을 쉰 육도진은 결국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오늘 일은 더 이상 수습할 여지가 없었다.할 수 있는 일은 자신에게 화가 미치지 않도록 묵묵히 옆에 서 있는 것뿐이었다.윤구주도 육도진이 물러서고서야 비로소 고개를 돌려 진역 결계안에 갇혀 있는 공씨, 제씨, 옥씨, 신씨 4대 문벌의 사람을 싸늘한 눈길로 쳐다봤다.“6년 전, 만약 문벌, 세가, 종문에서 다시 반란이 일어난다면 내 손으로 직접 처리할 거라고 말했지. 오늘이 그 시작이다.”윤구주의 말이 떨어지자 장벽과도 같은 진역 결계 안에서 지독하고 위압적인 힘이 풍기더니 모두를 덮쳤다.그 힘은 산과 파도처럼 밀려왔다.4대 문벌에서 경지가 조금 낮은 제자들은 일곱 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지기 시작했다.“망했다.”“진역 위압이야!”외마디 비명이 공시 문벌 정정 선조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그는 고함을 지르며 두 손을 흔들었다. 홍강의 기세가 부처의 손바닥처럼 변하며 윤구주의 진역 결계를 깨뜨리려고 했다.하지만 그 손바닥은 진역 결계에 닿는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결계는 조금도 손상되지 않은 반면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무서운 힘은 공씨 일가 절정 선조로 하여금 피를 뿜게 했다.“이것이 진정한 4상 절정의 위력인가?”신씨 일가의 선조도 놀란 눈으로 앞을 뒤덮고 있는 결계 공간을 노려보았다.“제씨! 신씨! 뭘 기다려! 이 사중천의 진역 결계는 우리 몇 사
“오늘 네가 어떻게 죽는지 보자!”다섯 명의 절정 선조가 동시에 윤구주를 향해 날아갔다.윤구주는 양손을 짊어진 채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윤구주 뒤에서 갑자기 거센 파도가 하늘로 치솟았다.“우리 왕을 상대하려고? 벌레 같은 놈들에게 그런 자격이 있을까?”쾅!삼 척짜리 호랑이 그림자가 하늘을 찌를 듯이 나타났다.호존, 민규현이었다.이미 절정 2중천을 돌파한 민규현은 바로 자신의 호마공을 선보였다.하늘에서 호랑이 환영들이 한 주먹으로 뭉쳐 천둥처럼 다섯 명의 절정 선조를 내리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이 주먹은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였다.한 방에 팔방이 떨렸고 뿐만 아니라 주먹의 힘은 대지를 흔들었다.쾅!권강이 떨어지자 5명의 절정 선조는 일제히 몸이 뒤로 밀려났다.“빌어먹을! 또 절정 고수야? 그것도 2중천 절정인 것 같은데?”음기가 감도는 제혈군이 민규현을 바라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절정에 다다르려면 백여 년의 내공이 없이는 안 됐다.하지만 오늘, 30년간 폐관한 다섯 절정 선조는 나오자마자 윤구주에 이어 민규현을 만나게 되었는데 어찌 마음이 심란하지 않겠는가.민규현의 2중천 절정의 내공을 본 육도진도 눈가에 경련이 일었다.“망했다. 민 지휘사마저 절정을 돌파했으니 오늘 네 문벌은 정말 멸족할 것 같구나.”육도진이 말하는 사이에 민규현은 이미 5명의 절정 선조를 향해 호마공을 시전했다.절정은 강했지만 중천이 더 높을수록 훨씬 더 강했다.불과 한 단계 차이밖에 안 나는 것으로 보여도 실제로는 하늘과 땅차치였고 근본적으로 뛰어넘을 수 없는 격차였다.제씨 문벌의 절정 선조 제혈군은 귀도의 술을 수련하며 60년 전에 이미 절정에 발을 들여놓았다.하지만 60년 동안 그는 여전히 절정 1중천의 경지에 있었다.그것만 봐도 절정 2중천에 발을 들이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임을 알 수 있었다.하늘을 나는 민규현은 마치 호랑이가 인간계로 내려온 것 같았다.삼척의 호랑이 잔영이 그의 뒤에서 발톱을 치켜세웠고 검푸른 발톱은 공간을
단 한 걸음,그 한 걸음만 넘기면, 그는 곧 성급 바로 직전 경지에 이른다.그리고 그 마지막 문턱을 박살내는 순간 반쯤 성인이 된 경지, 반성급이다!지금 이 자리, 그 반성급 경지에 선 자는 바로 인마라고 불리는 무명이었다.“과연... 화진의 인황, 구주왕이라 불릴 자격은 있군. 하지만 너도 알겠지. 지금 네 수준으론 몸을 직접 이 판에 던지지 않는 이상 나랑 맞붙을 자격조차 없어. 네가 그 잘난 원신출체를 어떻게 하겠다는지 구경이나 해보자고. ”무명이 입꼬리를 비틀며 코웃음쳤다.팔기귀일에 도달한 윤구주의 전투력은 이미 황의 지경을 뛰어넘었다.하지만 무명과의 경지 차이는 여전히 너무 컸다.실력은 분명 엄청났지만 격이 다르였다.지금 상태로도 보통의 황자의 경지까지 초월한 상태지만 무명을 상대하긴 아직 한참 부족했다.심지어 무명이랑 싸울 실력은커녕 참마검조차 손에 제대로 못 잡는 게 현실이었다.“팔기로 부족하다면... 제구기는 어때? 구기:적선!”부우우우웅!윤구주의 온몸을 하얀 선기가 감싸는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웃고 있던 무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뭐라고? 이건 네 따위가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잖아! ”그 순간, 무명조차 숨을 삼켰다.이건 상식의 틀을 깨부수는 광경이었다.근대에 들어서면서 도에 대한 수련는 사실상 약해졌다.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세상에 흐르는 천지영기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봉신전쟁 당시, 상상을 초월하는 영기가 소모됐고 그 전쟁이 끝난 후 곤륜구역은 세상의 영기 90%를 신계에 봉인해버렸다.거기서 마음껏 영기를 탕진한 것도 모자라 바깥의 산수들까지 무분별하게 빨아들인 탓에세상의 영기는 걷잡을 수 없이 줄어들고 말았다.결국 세상은 고위 수련자가 태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그래서 화진에선 500년에 한 번 황자가 나올까 말까 할 정도이고 황자의 경지에 도달하는 건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었다.임정설이 황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처음부터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윤구주를 돕기 위해 왕
마기가 검종 제자들의 혼백에 침투하자 그 순간 제자들의 몸에서 시커먼 마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이를 목격한 장인 대진인은 망설임 없이 즉시 결단을 내렸다. 오염된 제자들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정화해 버린 것이다.“모든 제자들아, 입문 첫날 내가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서요산은 찬란한 성지 화진 정통의 계승지다. 정은 사악함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정은 사악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은 바로 서요산 제자들이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는 도의였다.입문과 동시에 깨달음을 얻은 그들은 언젠가 반드시 도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저 화진 정통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서였다.그 순간 진요탑 외곽에서는 7대 진인을 중심으로 전 종문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진요탑을 사수하고 있었다.하늘을 뒤덮을 듯한 마기의 기세는 점점 거세져 어느새 검종의 경내 전역을 삼켜버렸다.검종 제자들은 마기를 막아내면서도 동시에 진요탑의 결계를 유지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정도를 지키는 일은 그만큼 고통스럽고 힘든 투쟁이었다.산 아래 상황도 마찬가지로 치열했다.온갖 요괴와 귀신들이 들이닥치는 가운데 임정설은 황운을 등에 업고 이씨 가문의 국운을 모두 모아 홀로 수백만 마기를 막아서고 있었다.백호는 마인으로 완전히 변신해 광란의 충격 속으로 몸을 던졌고, 스스로 마를 품은 채 적진을 난도질했다.청해는 천뢰신술을 펼쳐 수만 개의 천뢰를 무기로 변환시켜 온갖 사도와 악귀를 쓸어내기 시작했다.그 무렵 진요탑 내부에서 풍무극의 기세는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구주야, 내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 내 500년 수련의 혼을 너에게 바치겠다."”풍무극의 준비는 이미 완료되었다.그는 미리 준비해 둔 제천 법기를 꺼냈고 전법이 발동되는 순간 그의 육신은 산산조각 부서졌다.그의 정기와 천지 정기를 모두 품은 찬란한 진신 영혼은 한 자루의 참마검으로 변해 윤구주 앞에 떠올랐다.“풍 종주...” 윤구주는 입술을 깨물었다.슬프고 아쉬
윤구주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국운의 기운이 그의 발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그가 진요탑의 문에 도달했을 무렵 모든 국운이 윤구주에게 집중되었다.윤구주의 주변으로는 천인신광이 펼쳐져 있었다.이 순간만큼은 그가 천지의 주재자 화진의 영겁을 관통한 유일한 존재였다.윤구주는 홀로 진요탑 안으로 들어섰다.겉보기에 거대한 산 같았던 진요탑의 내부는 참혹한 말세의 풍경이었다. 땅은 끝없이 펼쳐진 용암으로 뒤덮여 있었고 하늘에서는 강줄기가 거꾸로 흘러내리고 있었다.불과 물이 충돌할 때마다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거꾸로 흐르는 강물 위에 한 노인이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백발이 성성한 그 인물은 다름 아닌 서요산 검종의 종주였다.밖에서 보이던 강건한 중년의 모습은 단지 화신에 불과했으며, 본체는 수백 년 전부터 이 진요탑에서 마인을 봉인해 왔다.서요산 검종 종주는 극도로 지쳐 있었고 이제는 마지막 호흡으로 버티고 있었다.“드디어 왔구나.” 서요산 검종 종주는 허약한 전음으로 말을 건넸다.“오백 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종주님.” 윤구주는 고개를 숙였다.풍무극은 현 서요산의 종주이자 당대 최고의 영웅, 화진 제일 검으로 불리던 남자였다.원래는 풍속을 다루는 수련자로 젊은 시절엔 검 하나로 화진을 호령한 사내로 알려졌다.그의 검은 아무도 궤적을 볼 수 없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500년 전 마인이 봉인되고 서요산의 조사가 승천한 후, 풍무극은 서요산의 거자로서 종주의 자리를 이어받았다.그날 이후 진요탑에 몸을 묻고 마인과의 싸움을 500년간 지속해 왔다.풍을 다루던 그였지만 지속적인 봉인을 위해 익숙하지 않은 수속까지 수련하며 지금까지 버텨왔다.그가 마도에 빠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이었다.“그래도 괜찮다. 다행히 이 시대에 또다시 인황이 나왔으니. 화진은 연달아 두 명의 인황을 배출했다. 임정설이 인황에 등극한 지금 쇠락하던 이씨 가문의 국운이 다시 살아났다. 그가 천지의
마인이 출현하면 곤륜 구역조차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서요산 검종의 진요탑은 이미 오백 년 동안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이는 곧 그 마인이 오백 년 동안 진요탑 안에 봉인되어 있었음을 의미했다.“우리가 가진 유일한 이점은 저 마인이 지난 오백 년간 수련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 오백 년 동안 분명 무언가를 '깨달았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정도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도가 존재하는 법입니다. 만약 그가 이곳을 벗어나 다시 한번 돌파에 성공하여 진정한 성인의 경지에 오른다면…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 우리 종문의 선대 종주께서 이 마인을 직접 봉인하셨습니다. 하지만 선대 종주께서는 진요탑만으로는 그를 완전히 봉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아셨지요. 그래서 마침내 구천으로 비상하셔서 바깥 세계에 존재한다는 신기를 찾기 위해 떠나신 것입니다.”장인 대진인이 비밀을 털어놓자 임정설은 왜 그 옛날 서요산 검종을 창립한 선조가 갑자기 사라졌는지 이해했다.“구천을 비상했다고? 전설 속 그 이야기 설마 전부 사실이었단 말인가? 이 세상 위에 더 위대한 세계가 있다는 건가?” 임정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들은 바로는 성인이란 육지에서 신선이 된 자를 이르는 말이고 준성은 그보다 한 단계 아래 반쯤 신선이 된 존재라 하더군요. 우리보다 더 풍부한 영기의 세계가 과연 존재하는지는 이 몸 역시 감히 짐작할 수 없습니다.” 장인 대진인은 고개를 저었다.그때였다.진요탑이 거칠게 흔들렸고 모든 호법 제자의 얼굴이 딱딱해졌다.수련이 부족한 제자 몇몇은 그 자리에서 마기의 침식으로 피를 토했다.“모든 제자에게 고한다. 나와 함께 현문을 수호하라.” 장인 대진인이 친히 자리에 앉아 온 종문의 기운을 모아 마인을 억제하기 시작했다.마인은 일시적으로 제압되었지만 산 밖의 요괴들과 악귀들은 마기의 부름을 받아 사방팔방에서 서요산으로 몰려들고 있었다.임정설은 이제 자신이 이곳에 온 진짜 이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