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을 죽이기 전에 하나 물어보겠다.” “유명전, 아홉 대전의 염라, 사대 명부. 전해지기로는 사대 명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최소 사상급 이상의 절정 고수여야 한다더군. 너희들은 어느 명부에서 온 것이냐?” 윤구주가 천천히 물었다. 그의 입에서 유명전의 아홉 대전의 염라와 사대 명부가 언급되자 그 두 명의 사상급 절정 고수들은 일제히 얼굴이 굳어졌다. “이런 젠장, 이 꼬마 녀석이 어떻게 유명전의 사대 명부를 알고 있는 거지?” 외눈 노인이 경악하며 말했다. 외눈 노인의 말처럼 유명전은 이미 백 년 전부터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이번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문씨 세가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겨우 20대 초반인 윤구주가 어떻게 유명전의 사대 명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일까? 윤구주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너희들이 알 필요 없다. 너희들은 어느 명부에서 왔는지만 대답하면 된다.” 눈동자 속에 붉은색 부적 문자가 떠다니는 사상급 절정 고수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알려줘도 상관없다! 우리는 제4명부, 나사 명부에서 왔다!” “오! 겨우 제4명부의 하찮은 졸개들이었군.” 이 말에 세 명의 유명전 절정 고수들은 일제히 폭발했다. “네가 감히 우리를 모욕해?” 윤구주는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모욕할 게 뭐 있냐? 당연한 것을 말했을 뿐이야.” 윤구주는 유명전의 사대 명부가 서열에 따라 분류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첫 번째가 가장 강력했다. 전해지기로는 제1명부인 윤전 명부에는 구오 최강의 절정 고수가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만약 오늘 제1명부에서 사람들이 왔다면 윤구주도 신중하게 행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가 마주한 건 유명전 사대 명부 중 가장 약한 제4명부, 나사 명부에 불과했다. “물어볼 것은 다 물었다. 이제 너희는 죽을 차례다.” 윤구주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눈앞의 유명전 절정 고수들은 삼중천 절정 고수 한 명과 사상 절정 고수
자칭 엄호의 사상 절정 외눈 노인이 영도 결계를 선보인 순간 하늘에서 하얀 눈송이가 흩날리기 시작했다.“사상급 절정 고수 둘에 삼중천 절정 고수 하나인데 차라리 셋이 동시에 덤비는 게 좋겠다! 그래야 내가 덜 귀찮을 테니!” 하얀 옷을 입은 윤구주가 당당하게 말했다.“이 거만한 놈, 오늘 네가 어떻게 죽는지 두고 보자!”낫을 든 삼중천 유명전 절정 고수는 윤구주의 오만을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그는 방금 전 윤구주가 김씨 절정 고수를 련화도화로 태워버린 것을 보고 이미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윤구주의 화련금안이라는 신통력을 두려워한 탓에 감히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뒤에는 두 명의 사상급 절정 고수가 있었기 때문이다.절정 고수는 구중천으로 나뉜다. 상3품, 칠살, 팔부, 구오 절정. 중3품, 사상, 오악, 육도 절정.하3품, 일중천, 이중천, 삼중천 절정. 각 품계는 절대적인 경계선이다. 하3품과 중3품은 그 경지에 겨우 한 걸음 차이지만 이 한 걸음이 매우 크다. 어떤 노마는 이 반걸음을 뛰어넘는 데 십 년, 수십 년, 심지어 백년이 걸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 낫을 든 유명전 절정 고수도 이삼중천으로 도약하는 데 40년이 걸렸다. 하3품에서 중3품으로 도약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이는 재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가장 중요한 것은! 사상급 절정 고수에 도달하면 진정한 진역 결계를 펼칠 수 있다는 점이다! 진역 결계는 절정 고수에게 하나의 작은 세계 같은 존재다. 결계 안에서는 공격 속도와 위력이 두 배로 증가하며 저등급의 절정 고수는 정신력까지 제압당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중3품 이상 절정 고수의 공포스러운 힘이다!그때, 그 삼중천 절정 고수 노인이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몸이 그림자처럼 빠르게 윤구주를 향해 돌진했다. 손에 든 낫을 휘두르자 하늘에서 거대한 검은 낫의 환영이 나타나 윤구주를 향해
“영도 결계, 얼음의 화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하늘에 떠 있던 눈송이들이 바늘처럼 작은 화살로 변했다! 그리고 땅에서 떠오른 얼음 조각들 또한 작은 얼음 화살로 변했고 낫은 기운을 내뿜으며 윤구주를 향해 날아갔다. 이 영도 결계는 외눈 노인이 남극 빙하 아래 만년의 한기를 흡수해 만들어낸 것이다! 비록 한 줄기 바늘 같은 한기일지라도 북극의 매머드 코끼리도 얼어붙게 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이 한기의 공포스러운 정도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순간! 빽빽한 얼음 화살이 소나기처럼 윤구주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 사상급 절정 고수 또한 손을 놓치지 않고 공격을 시작했다. 결코 윤구주를 조금도 방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손에 든 작은 탑을 빠르게 회전시키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점점 커져 마침내 한 길 넘는 크기로 변했다. “혈계탑, 눌러라!”부르릉! 거대한 탑이 허공에 떠오르자 하늘에 어두운 붉은 기운이 뒤틀리며 펼쳐졌다. 그리고 그가 입에서 주문을 외우자 그 탑은 마치 산처럼 윤구주를 향해 내리눌렀다! 두 명의 사상급 절정 고수가 함께 공격하니 그 위력은 확실히 비범했다! 한편, 낫을 들고 있던 절정 고수 역시 이를 악물며 낫을 휘둘러 수많은 환영을 만들어내어 윤구주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이때 윤구주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야 재미있어지네!”말이 끝나자 윤구주는 손을 땅을 향해 내리찍었다. 쾅! 윤구주의 손바닥에서 백옥처럼 맑고 빛나는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 빛은 윤구주의 발아래로 퍼져 나갔고 그와 동시에 땅에서 엄청난 균열이 생겨났다. 그 균열은 축구 경기장 절반 정도 크기의 거대한 틈으로 변했다! 이 균열이 생겨난 후 윤구주는 손을 내밀어 외쳤다. “일어나라!” 쾅! 축구 경기장 절반 크기의 대지가 윤구주에 의해 강제로 들어 올려졌다! 들려진 대지는 외눈 노인의 얼음 화살을 모두 막아냈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대한
사상 절정 술법과 함께 손으로 법결을 짓자 굵은 팔뚝만 한 검은 마기가 외눈 노인의 몸에서 흘러나왔다.“사상 환용술!”외눈 노인의 목소리가 떨어지자마자 검은 기운이 점차 모여들더니 이내 세 개의 머리를 가진 사악한 용으로 변모했다.악룡은 사납게 포효하고 있었다. 용의 세 머리는 마치 거대한 연자방아처럼 위압감을 주는 크기였다.용이 모습을 드러내자 절정의 술법을 펼치던 노인이 손을 뻗으며 강렬한 명령을 내렸다.“가라!”훅!검은 마기로 이루어진 세 머리의 악룡이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윤구주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했다.하지만 윤구주는 피하지도 물러서지도 않고 주먹으로 공기를 가르며 내질렀다.절정에 이른 주먹의 기운이 폭발하듯 뻗어나가며 윤구주의 주먹이 악룡의 머리를 강타했다.“끼오오오!”세 머리의 악룡은 윤구주의 강력한 일격에 뒤로 밀려나며 크게 휘청거렸다.그러는 와중에 외눈 노인은 윤구주의 등 뒤에서 기습을 감행했다.외눈 노인은 차가운 얼음의 기운을 응집해 날카로운 긴 검을 만들어냈다.긴 검이 땅에 꽂히는 순간, 윤구주가 서 있던 자리가 순식간에 얼음으로 뒤덮였다.이때 윤구주는.그 한기 가득한 긴 검이 머리 위에 다다르는 찰나 윤구주의 순식간에 몸을 움직여 피했다.빛보다 빠른 속도였다.무시무시한 한기의 긴 검이 땅에 꽂히자 윤구주가 서 있던 자리는 순식간에 완전히 얼어붙었다.그러나 윤구주는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사라졌나?”외눈의 절정 고수가 놀라워하는 가운데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셋이 합을 이뤘는데도 고작 이 정도인가?”이것은 외눈 노인에 대한 모욕이었다.이것도 대놓고 하는 모욕이었다.이 사람들은 그 유명한 삼대 유명전 절정들이었다.그중 두 명은 유명전 명부의 사상 절정 고수들이었다.하지만 세 사람이 합심하여 공격했음에도 윤구주의 옷깃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이봐, 네가 진짜 능력이 있다면 피하지 마!”외눈 노인은 분노에 차 목소리를 높였다.방금 그 일격은 윤구주를 완전히 없앨 수 있다고 확신했었
“강씨 노인이 사상 절정의 고수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의 공격에 윤구주에게 무너졌단 말인가?”“세상에, 육도를 초월한 실력의 자란 말인가?”“아니!”“그럴 리가!”“아직 이렇게 젊은 자인데!”사상 절정의 노인은 눈을 크게 뜨며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노인은 전혀 몰랐다. 윤구주가 얼마나 강력한 존재인지를!윤구주가 손을 휘두르자 하얀빛의 천주 대검이 번쩍이며 노인의 머리 위로 내려왔다.“이제 네 차례다.”윤구주는 손을 들어 한 명을 가리켰고 그 거대한 검은 휘몰아치며 그 노인을 향해 돌진했다!눈에 붉은 부적이 새겨진 절정 고수는 금술 대검이 다가오자 경악하며 뒤로 물러섰다.동시에 빠르게 두 손을 합쳐 외쳤다.“진역 결계!”콰쾅!붉은빛 방벽이 노인의 몸을 단단히 둘러쌌다.이 붉은 방벽은 오직 사상 절정의 고수들만이 펼칠 수 있는 진역 결계였다.결계가 나타나자 윤구주의 금술 대검은 완전히 억제당하고 말았다.“이봐, 소년! 나는 술법의 길을 통해 절정에 오른 자다! 30년간 세상을 누볐다. 오늘 네가 이 혈패 결계를 뚫을 수 있을지 지켜보마!”이 술법 절정의 노인은 자신의 결계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 있었다.그의 붉은 결계는 사방 몇 장에 걸쳐 퍼지며 그를 완벽히 감싸고 있었다.이 결계 안에서 그는 완벽한 주인이었다.“진역 결계라고?”“흥!”“좋아. 누가 더 강한지 어디 한번 보자!”“진역 결계!”“콰쾅!”윤구주의 몸에서 황금빛 광채가 순간적으로 터져 나왔다!그 빛은 순식간에 머리 위의 문씨 가문 조상을 모신 이 땅을 황금빛으로 뒤덮었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 황금빛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확장되어 수천 평의 저택뿐만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두 개의 산까지도 완전히 뒤덮어버렸다.그 순간!황금빛이 세상을 덮자 하늘의 구름이 정지했다!공기를 스치는 바람조차도 멈춰버렸다!하늘을 가로지르며 울던 새들조차 돌처럼 굳어버린 듯 공중에서 멈춰버렸다!이것이 바로 윤구주의 ‘진역 결계’였다!그 결계의 범위는 얼마
손에 죽음의 낫을 든 절정이 막 도망치려던 순간 윤구주는 냉소를 지었다.“내 손에 걸린 이상, 신이라 해도 오늘은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윤구주는 허공으로 손가락을 뻗어 힘껏 움켜쥐었다.순식간에 수천 장에 달하는 황금빛 진역 결계가 번쩍이며 그 속에서 무수한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이것이 바로 결계살이었다.“죽어라!”윤구주는 다섯 손가락을 움켜쥐었다.그 금빛들은 절정 삼중천의 노인의 몸을 꿰뚫었다.비명과 함께 그 노인은 즉시 현장에서 사망했다.그리고 지금.네 명이었던 유명전의 절정 고수들은 순식간에 윤구주에게 셋이나 목숨을 잃었다.남은 단 한 명, 외눈의 사상 절정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몸을 떨며 항복의 뜻을 비쳤다.윤구주는 죽음의 낫을 든 노인을 쓰러뜨린 후 천천히 고개를 돌려 외눈 절정을 바라보았다.“제발... 저를 죽이지 말아 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제가 잘못했습니다! 잘못을 인정하겠습니다!”죽음의 문턱에 선 유명전의 사상 절정은 윤구주 앞에서 비참하게 목숨을 구걸했다.어쩔 수 없었다.그 역시 죽기 싫었다.비록 그가 유명전의 사람이었으나 그 역시 죽음이 두려웠다.더군다나 수백 년 동안 고생하며 절정에 도달한 고수였기에 더욱 죽고 싶지 않았다.윤구주는 냉랭한 눈빛으로 외눈 노인을 내려다보며 말했다.“내가 너를 살려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말해봐라!”그 사상 절정 외눈 노인은 그대로 무릎을 꿇어 윤구주의 발밑에 고개를 조아렸다.“제가 유명전의 모든 비밀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말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저를 죽이지 말아 주십시오!”그 말을 들은 윤구주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말하거라, 오늘 여기서 나를 기다리라고 시킨 자가 문씨 세가가 맞느냐?”윤구주가 물었다.“맞습니다... 문 선배가... 아, 아니! 문창정이 시켰습니다!”죽음 앞에서 이 사상 절정은 마침내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윤구주는 사실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왜냐하면.윤구주가 태화루에서 벌인 대대적인 학살 소식이 문씨 세가
“유명전 본거지를 모른다 해도 최소한 제4 나사 명부의 위치는 알고 있을 거라 믿어도 되겠지?”윤구주는 계속해서 물었다.눈앞의 외눈 노인은 제4 나사 명부의 객경이었다.그가 제4명부의 위치조차 모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외눈 노인은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을 깨닫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저하, 제4명부의 본거지는 흑산에 있습니다...”그 순간!외눈 노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기괴한 웃음소리가 갑자기 공간을 가르며 들려왔다.“강연훈, 네가 정말 감히 말하려는 것이냐?”이 말과 함께 여섯 개의 그림자가 유령처럼 문씨 집안 조상의 집터 주변에 나타났다.총 여섯 명!그들은 모두 절정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으며 그중에는 사상 절정을 뛰어넘는 기운을 가진 자들도 있었다.특히 중앙에 서 있는 청동 가면을 쓴 남자는 특히나 절정의 기운이 육도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아... 염군...”외눈 노인은 그들을 보자마자 겁에 질려 몸이 얼어붙었다.유명전, 염라의 아홉 대전, 사대 명부!그리고 명부를 다스리는 자들은 바로 염군으로 불렸다.사대명부 중 한 명의 염군이 직접 이곳에 나타날 줄이야.여섯 명이 모습을 드러내자 윤구주도 천천히 차가운 눈빛을 들어 그들을 바라보았다.“제4명부의 나사염군이로군?”“오래 기다렸다!”중앙에 서 있던 청동 가면을 쓴 남자는 이 말을 듣고 미묘하게 놀란 듯했다.“오, 날 기다렸다고?”“그렇다!”“처음부터 나는 너를 기다렸다!”순백의 옷을 입은 윤구주는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지었다.사실 그가 문씨 장원에 첫 발을 들인 순간부터 이미 이곳에 더 강한 자들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단지 그들이 비술을 사용해 자신들의 절정 혈기를 봉인했기 때문에 윤구주와 같은 괴물 같은 존재가 아니면 그 기운을 감지할 수 없었다.“화진 최고의 왕이자 진용군운을 가진 절대적인 존재라는 소문이 있던데 오늘 직접 보니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 상상도 못 했겠지, 우리가 혈맥을 봉인하고 기운을 감춘
“연꽃 도화라니... 내 몸에 이걸 심었다고?”외눈 노인은 자신의 몸에서 불꽃이 타오르는 것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외눈 노인은 즉시 절정의 기운으로 억눌러 보려 했지만 억제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아아아아!”비명을 지르며 외눈 노인의 몸은 윤구주의 화련금안에 의해 허공에서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졌다.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았다.외눈 노인은 죽었다.그렇게 당당한 사상 절정이 화련금안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었다.부하가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귀면 가면을 쓴 나사염군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쓸모없던 놈이 잘 죽었군!”“다만, 저하가 사용한 것이 옛날 화공노마의 연꽃 도화가 아니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죽었군.”제4명부의 나사염군이 말하자 윤구주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알아봤다니 대단하군.”“물론이지!”“백 년 전, 화공노마의 연꽃 도화는 최고의 금기술로 불렸지. 다행히도 본군은 그 모습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다.”과거를 회상하듯 나사염군의 눈에는 차가운 빛이 감돌았다.한참 생각에 잠긴 나사염군은 이내 서늘한 눈빛을 윤구주에게로 돌렸다.“내 추측이 맞다면, 너는 곤륜구역에서 온 자겠지?”윤구주는 미소를 지으며 부정하지 않았다.“네가 화진의 구주왕이라더니, 과연 무도 성지 곤륜구역의 출신이었군!”“하지만 곤륜구역에서 온 게 무슨 소용이냐? 화진국의 국운은 이미 결정되었고 삼대 서열은 반드시 부흥할 것이다. 혼자서 정말 이 세상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나사염군은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는 윤구주다. 화진을 어지럽히는 자는 누구든 내가 반드시 죽일 것이다!”“삼대 서열이어도 상관없다.”“유명전이어도 상관없다.”“믿지 않겠다면, 직접 시도해 보아라!”윤구주는 당당하게 말했다.“하하하하!”나사염군은 크게 웃었다.“이미 버려진 왕 따위가 감히 이렇게 건방질 수 있다니! 다만 아쉽게도 오늘 본군의 주요 목표는 네가 아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전설적인 열 개 나라를 혼자 상대했다는 화진의 왕이 얼마나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
백호는 아직도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어느덧 이백오십 계단까지 올라왔다. 이 단계부터는 실체화된 술법이 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바람, 불 번개와 같은 속성의 영기가 점점 강해졌다. 여기서부터는 육신 횡련의 수련자는 강력한 체질로 버티고 술도 재능이 뛰어난 수련자는 천지 영기를 다루는 능력으로 버텨야 했다. 한마디로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갈리는 구간이었다. 어느 한 분야라도 특출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백호는 술도에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강인한 육체 하나로 견디고 있었다.웅!성수의 피가 진동하며 백호의 몸을 지탱했다. 각종 속성의 영기가 몰아쳤지만 백호는 성수혈의 힘을 빌려 억지로 앞으로 나아갔다.수련자에게 있어서 성수의 혈맥이나 법보 등은 모두 신체 외적인 재능으로 간주하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이 꼼수나 편법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천 가지 변화와 만 가지 신통력이 있어도 결국 만법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법기든 혈맥이든 이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천지 영기를 이용한 술법도 결국은 그 힘을 감당할 수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감당하지 못하면 반드시 반작용을 맞게 된다. 따라서 수련의 길에는 애초에 편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성수 혈맥 같은 천지의 보물은 보통 사람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윤구주의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이를 감당하는 건 백호 자신이었다. 성수 혈맥의 힘을 온전히 감당하며 백호는 결국 삼백 계단까지 올라섰다.계단의 꼭대기 근처에는 이미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이 여럿 서 있었다. 서요산 검종은 근대에 들어 삼백 계단을 넘는 인재가 드물었다. 최근 백 년 동안 삼백 계단을 넘은 사람이 고작 열 명 남짓이었고 그중 대부분이 삼백여 계단에서 멈췄다. 그런데 지금 백호는 삼백이십 계단까지 올라선 것이다. 이 정도면 서요산 검종 전체가 떠들썩해질 만한 성과였다.이런 제자가 나타난다면 종문 전체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서요산의 진인들까
“한 사람의 품성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그렇게 많은 수련자를 키워낸다면 결국 천하의 마인을 직접 만들어 내는 꼴이 아니겠어?”청현이 바로 그 실패한 예다. 서요산 검종 종주가 청현의 천재성을 아까워한 나머지 그의 인성을 무시하고 양성한 끝에 결국 역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그럼 저하 서요산에 입문한 무술 무인들은 평균적으로 몇 계단까지 오르는지 아십니까?” 백호가 호기심에 물었다. 윤구주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무술 무인의 정확한 데이터는 모르지만 검종 종주와 잡담할 때 들어보니 검종 제자들의 수준이 갈수록 떨어져서 천 년 전만 해도 평균 삼백 계단 정도였는데 요즘엔 백 계단도 못 오른다고 하더구나. 가끔 삼백 계단을 오르는 자라도 나오면 검종 전체가 몇 년은 떠들썩할 정도라고 했어.”“구백구십구 계단까지 있는 시험인데 천 년 전 전성기에도 겨우 삼백 계단이요?” 백호는 입술을 삐죽이며 서요산 검종의 수준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때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야?” 윤구주는 흥미롭게 백호를 바라보았다. 백호는 당장이라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윤구주의 허락을 구한 뒤 바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계단 두 계단... 오십 계단까지는 아무 어려움도 없었다. 백호는 오십 계단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서요산 검종이 별것 아니라며 놀려댔다. 하지만 육십 계단쯤 올랐을 때 처음으로 압력을 느꼈다. 마치 몸 위에 작은 차 한 대가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백호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백 계단에 도달하자 압력이 갑자기 커졌다. 등에 작은 승용차 대신 소형 트럭이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지만 아직 백호의 한계에도 가지 못했다.“근래 사람들의 평균이 백 계단도 못 넘는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예전의 무인 횡련은 황제도 오를 수 있었지만 요즘 무인 횡련은 죽어라 노력해도 소형 트럭 하나 못 버티는 수준이니 말입니다.”백호는 농담을 던지며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
전에 임정설은 구오 지존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나라를 위해 힘쓰며 수모를 견뎌내고 살아남으려 했다.하지만 이제 황제가 된 그는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그 탓에 이번 관문 앞에서 그는 망설였다.살아 있는 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관문이었다.죽음을 마음에 품은 자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관문이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청해만이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생각했다.‘황제가 되면 곤륜 구역에서 최고 경지에 도달하는 건데. 기뻐해도 모자랄 판에 왜 죽음을 택하려는 거지?’“저하, 국주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듯합니다. 저하도 사랑하던 이에게 배신당했어도 결국 극복해 나갔잖습니까.”백호도 이해하지 못했다.그는 여전히 국주보다는 왕이 더 낫다고 여겼다.“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느냐.” 윤구주가 단호하게 말했다.백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는 어리숙하고 말솜씨도 없기에 생각나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내가 문아름에게 배신당한 건 억울한 일이지만 나는 그녀에게 잘못한 게 없다. 오히려 그녀가 날 배신한 거다. 하지만 국주는 그 반대였지. 그가 그녀를 저버린 거야. 정이 깊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지혜가 지나치면 오히려 상처를 입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쓰라린 후회는 가진 뒤 잃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생사를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윤구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만약 소채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도 제정신이 아닐 거라고 느꼈다.“그럼 복수하면 되지 않나요?” 백호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이때 청해가 눈치를 채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상대가 너무 강해서 못 이기는 거지. 황제에 오르기 전까진 제대로 맞붙을 힘도 안 돼. 오르고 나서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 못 하고.”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그 말이 맞았다.“그럼 우리가 국주님 대신 복수해 드리면 되잖아요? 국주님은 제 왕이기도 하지만 제 윗사람이기도 하잖아요.”백호가 고개를 갸웃했다.“하하! 만약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솔직하다면 이런
인간이 나쁜 짓을 거듭해 양심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윤구주를 따라 명예심이 생기면서 죄책감도 느끼게 된 청해에게 이 원한의 전법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물론 곤륜역 한 신전의 부전주로서 정신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사람은 이 원한의 전법도 가볍게 넘어섰다.이때 전법에 관심을 가졌던 임정설이 무언가를 눈치챘다.“구주야, 서요산의 전법은 우연히 들어온 자를 쫓아내는 동시에 수련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어. 서요산은 의지력이 확고한 자들만 끌어들인다는 것을 미리 들어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서요산이 제자를 선발하는 방식인가 보구나.”“그렇습니다. 매년 화진 무도계 사람들이 서요산에 찾아오지만 성공한 자는 극히 드뭅니다. 실패자들 중 십중팔구는 산기슭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어떤 문턱은 넘지 않는 것이 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죠. 현실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법이니까요. 이 관문을 넘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세 번째 전법이 나타났다.첫 번째와 두 번째 전법은 이곳에 들어온 이들을 돌려보내려고 만든 것이지만 세 번째 전법은 달랐다. 이 전법은 살기로 가득 찬 죽음의 전법이었다.평범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곳까지 온 자들도 앞길의 위험을 보고 함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의 길을 보고도 들어가는 자는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자라서 그런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덕을 쌓는 일이었다.하지만 무도로 도를 깨우치려는 수련자라면 이 관문을 넘기 위해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버텨내야만 수도의 길에 들 수 있고 실패하면 그 후과를 받아들여야 한다.전법 안은 살기로 가득했다. 생기와 영기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할지라도 살기와 죽음의 기운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진법 내부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도계에 이름을 날렸던 강자들의 유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