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 절체절명의 순간, 갑자기 소리가 들려왔다.“그만! 우리 부모님 건드리기만 해봐!”이윽고 소채은이 뒤뜰에서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뒤에는 윤구주도 있었다.조도철은 그녀를 보자 이내 핏발 선 눈빛으로 노려보았다.“이 천한 년! 드디어 나타났구나!”소채은은 조도철을 아랑곳하지 않고 서둘러 달려가 소청하의 부상을 살펴보았다.그에게 큰 지장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소채은은 비로소 일어났다.“대체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그러자 조도철이 눈시울을 붉혔다.“뭐 하는 거냐고? 너 이 천한 계집애가 내 아들을 죽였는데, 어디서 지금 고개를 빳빳이 들어?!”“허튼소리 하지 마세요! 누가 그래요? 내가 조성훈을 죽였다고!”소채은도 덩달아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아직도 감히 변명을 늘어놔? 어젯밤 연회에서 우리 아들이 널 찾았잖아.”그 말에 소채은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래서요?”“인정한 거로 받아들일게, 여봐! 이 빌어먹을 년 잡아라!”말이 떨어지자 조씨 가문의 경호원이 나서려고 했다.“멈춰요! 그 쪽 아드님께서 저를 납치했었거든요? 나도 아직 가서 따지지 않은 걸 그쪽에서 지금 되레 나한테 따진다고요?”소채은은 결국 참지 못하고 그날의 일을 말했다.그러나 조도철은 여전히 냉담한 태도로 일관했다.“납치했는지 안 했는지, 나는 몰라! 난 그냥 내 아들이 널 로얄 호텔로 데려갔다가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밖에 알지 못해! 그러니 너를 찾아서 원수를 갚아야지 내가 누굴 찾아가겠어?”“함... 함부로 모함하지 마세요! 저는 조성훈을 죽인 적이 없습니다!”소채은은 계속 해명하려 들었다.하지만 그것이 조도철의 귀에 들어갈 리가 있겠는가? 그는 여전히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천한 년, 내가 네 말을 믿을 것 같아? 빨리 저년 안 잡고 뭐 해 다들!”그러자 곁에 있는 우람한 경호원 한 명이, 바로 달려들어 소채은을 잡았다.그 순간 검은 그림자가 번쩍하더니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조씨 가문의 경호원이 갑자기 날아가 땅바
그러자 윤구주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개를 들어 말했다.“또 덤빌 사람 있습니까?”모든 상황을 지켜봤는데 조도철이 어찌 감히 또 달려들겠는가.그의 표정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너, 너 도대체 누구야! 누군데 우리 조씨 가문 일에 참견하는 거야!”윤구주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다시 한번 말하지만, 당신은 제 이름을 알 자격이 없습니다.”그때, 또 다른 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그래? 그럼 나 조신하가 한번 봐야지. 오늘 누가 이렇게 미친 듯이 구는지!”이윽고 진짜 총과 실탄을 장착한 미색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밖에서 돌진해 들어왔다!무려 일렬로 쭉 서서 말이다!저택 안에 들어온 후, 그들은 일제히 손에 든 총기를 들고 윤구주와 소채은 등 사람을 향해 겨누었다.그리고 선두에 선 사람은 바로 창용 부대의 중령 조신하였다.중무장한 군인들일 나타나자 소청하 부부는 놀라서 감히 소리도 내지 못했다.물로 소채은도 잔뜩 놀라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조도철은 조신하가 부대를 데리고 들어온 것을 보고 서둘러 다가가 일렀다.“둘째야, 마침 잘 왔다. 얼른 저 짐승 자식을 잡아!”조신하는 윤구주를 바라보았을 뿐인데, 알 수 없는 기운에 압도당해 심장이 덜컹거렸다!‘이 자식 뭐야? 왜 온몸에 카리스마가 진동하지? 창용 부대의 중령인 나보다 더 센 것 같은데?!’이내 조신하는 깊은숨을 들이쉬고 입을 열었다.“묻는 말에 잘 대답해, 네가 내 사람들을 건드렸나?”윤구주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데요?”“겁도 없군! 하지만, 오늘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네 주먹이 세냐, 내 총이 세냐 이거야.”조신하는 허리에 있는 총을 직접 뽑았고, 곧이어 새까만 총구가 윤구주를 향했다.그러자 윤구주가 피식 웃더니 차가운 눈동자로 조신하를 바라보며 고개를 돌렸다.“정말 한번 붙어 보고 싶어요?”그의 횃불 같은 두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는 조신하는 왠지 모를 두려움이 마음속에서 밀려왔다!이런 강한 카리스마에서 전해져오는 공포감은 천군만마보다
윤구주는 소채은을 향해 살짝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내 걱정은 하지 마!”“어떻게 걱정을 안 해! 너 바보야? 왜 살인을 인정해?”소채은은 초조한 마음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하지만 윤구주는 오히려 그녀를 위로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걱정 마, 난 아무 일도 없을 거야.”말을 끝내고 그는 조신하와 조도철을 향해 걸어갔다.“잘 들어요, 조성훈은 내가 죽였습니다. 소씨 가문 사람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요! 복수하고 싶거든 나를 찾아오셔야 할 겁니다.”윤구주가 살인을 자백하자 조도철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말했다.“이 짐승 새끼, 정말 네가 내 아들을 죽였어?”그러자 윤구주가 서둘러 대답했다.“그래요, 바로 접니다.”“네가 감히 내 아들을 죽여? 반드시 네 목숨으로 빚을 갚아야 할 거다!”조도철은 핏발 선 눈동자로 윤구주를 향해 달려들었으나 조신하에 의해 저지되고 말았다.“형님, 안심하세요! 성훈이의 목숨은 제가 반드시 갚아주겠습니다. 이렇게 단번에 죽이는 건 너무 쉽잖아요.”이 말을 들은 조도철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그를 달래고 난 뒤, 조신하는 고개를 돌려 이내 윤구주를 바라보았다.“믿는 구석이 있나 보지? 네가 감히 내 조카를 죽여?! 잘 봐, 이번에는 내가 너를 어떻게 죽이는지! 다들 얼른 이 새끼 데려가!”말이 떨어지자 주위에 싸늘한 총기를 든 군인들이 즉시 윤구주를 붙잡아 데려가려 했다.그가 끌려가려는 것을 눈치채고, 소채은이 덥석 달려들었다.“무고한 사람 데려가지 마세요! 조성훈은 이 사람이 죽인 게 아닙니다!”소채은은 윤구주를 잡아당기며 울었다.하지만 이내 그녀는 군인들에 의해 밀쳐지고 말았다.그렇게 윤구주는 허무하게 조신하의 수하들에게 끌려갔고 그가 잡혀가는 것을 바라보며 뒤에서 소채은이 울부짖었다.“구주야... 구주야...”윤구주가 떠나간 뒤에도 그녀는 한참이고 땅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아냈다.그러자 옆에 있던 소청하 부부가 서둘러 달려와 그녀를 부축했다.“채은아, 울지 말고 어서 일어나!”
“창용 부대의 조신하요?”주세호는 당연히 조신하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표태훈의 말처럼, 조신하는 창용 부대의 중령이다. 주세호가 아무리 돈이 있다 하더라도 직접 군부대에 있는 사람과는 맞서지 못했다.그러나 그것도 잠시, 주세호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창용 부대의 사람이 저하를 잡다니? 허허! 이번에 꽤 볼만한 구경거리가 생겼군요! 표 집사님, 즉시 제 전세기를 타고 남부 군관구로 가서 박창용 사령관을 찾으세요!”“동시에 박 사령관님께...”주세호는 표태훈의 귀에 속삭이며 몇 마디 했다.그 말을 들은 표태훈이 깜짝 놀라 놀라서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습니다, 제가 얼른 처리하도록 하죠!”이때, 주세호가 또 웃었다.“창용 부대라... 이번에 조신하가 어떻게 무너지는지 잘 봐야겠어!”...조씨 저택. 윤구주는 어두운 지하실에 갇혀있었고 정문 앞에는 진짜 총과 실탄을 찬 창용 부대의 군인이 서 있었다.시커먼 지하실 안에서 윤구주는 조용히 무릎을 감싸고 앉아있었다.그가 조신하에게 순순히 붙잡혀준 것은 바로 손을 쓰지 않기 위해서였다.그가 만약 손을 쓴다면, 이 한 소대의 군대는 말할 것도 없고, 설령 10배가 넘는 인력이 온다고 하더라도 윤구주를 막아내지 못할 것이다!스스로 이곳에 갇힌 이유에 관해 묻자면, 윤구주는 이 조씨 가문이 도대체 얼마나 능력이 있는 가문이 알아보기 위해서였다.그렇게 시간은 1분 1초가 지나간다.얼마쯤 지났을까, 발걸음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바로 조신하와 조도철이었다.입구의 경비병은 조신하를 본 후 곧장 군례를 올렸다.“그 자식은?”조신하가 물었다.“안에 있습니다!”“문 열어!”“예!”와르르! 철문이 열리자 조신하는 조도철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지하실 안에서 윤구주는 여전히 조용히 앉아있었다.두 사람은 들어오자마자 그에게도 시선을 돌렸다.“이 짐승 새끼, 네가 어떻게 죽는지 똑똑히 지켜보라고! 감히 내 아들을 죽이다니, 내가 반드시 너에게 열 배, 백 배로 갚아 줄 거야!”
윤구주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조신하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이 개자식아! 네가 뭔데 감히 우리 총사령관님 성함을 마음대로 불러? 난 지금 바로 너를 이 자리에서 총살할 수도 있어, 알아?”“날 쏴? 정말 그럴 수나 있고?”윤구주가 피식 냉소하자 조신하는 그만 폭발하고 말았다.창용 부대의 중령으로서 지금 윤구주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그는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여봐! 이 새끼 바로 죽여!”그의 명령에 따라 밖에서 몇 명의 경비병이 들이닥쳤고 동시에 새까만 총구가 일제히 윤구주를 겨눴다.“짐승 새끼, 이건 너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거야, 나를 탓할 이유가 없다고!”이윽고 경비병들이 총을 쏘려는 찰나, 윤구주가 갑자기 이렇게 소리 질렀다.“산과 강이 있기에 장대한 뜻을 걱정하지 않고 전사하여 모래밭에 나라를 세우니, 시체와 귀신이 끊임없이 쌓여 있다! 곧이어 사방에서 피의 안개가 일더니, 창용이 구주를 울리는구나!”그의 목소리는 천둥처럼 울리며 현장에 있던 조신하와 총을 쏘려는 경비병의 귀에 들어왔다.괴상한 시구 같은 것이 귀에 들어오자 경비병은 어리둥절해 있었다.이어 한 경비병이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입을 열었다.“우... 우... 우리 창용 부대의 군가입니다! 저자가 어떻게 우리 창용 부대의 군가를 알고 있습니까?”그렇다. 윤구주가 방금 읽은 것은 바로 창용 부대의 군가인데, 당시 그가 직접 작사한 것이었다.갑자기 들려온 군가에 창용 부대 경비병들은 물론 조신하까지 전부 어리둥절해서 안색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너, 너 어떻게 우리 창용 부대의 군가를 알아? 도대체 정체가 뭐야?”조신하가 성난 목소리로 묻자 윤구주가 피식 웃었다.“말했잖아, 너는 아직 내 이름을 알 자격이 없다고! 딱 한 가지만 말할게, 박창용더러 날 보러 오라 전해. 어쩌면 너도 죽음을 면할 수 있을지 몰라.” 조신하는 갑자기 심장이 두근두근 떨리기 시작했다.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앞에 있는 윤구주를 죽어라 노려보며 그의 정체를 어떻게
주세호가 100여 명을 데리고 조씨 저택 전체를 포위했다는 소식을 듣자 조도철의 얼굴빛이 더욱 확 변했다.옆에 있던 조신하도 말이다!“젠장! 주세호 미친 거 아니야? 우리 조씨 집안이 무슨 DH 그룹과 원한 맺은 일이 있다고 갑자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포위를 해?!”조도철이 또 한 번 포악하게 울부짖었다.“형님 겁내지 마세요! 제가 있는 걸 알면 누구도 감히 저희 조씨 가문을 건드리지 못할 겁니다.”“가자! 나가보자!”조신하가 이렇게 말하자 조도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들은 이 캄캄한 지하실을 떠났다.한편 조씨 저택 대문 입구.새까만 복장 차림의 사람들이 조씨 저택을 물샐틈없이 에워쌌다.그리고 그 선두에 선 사람은 강성 제일의 갑부 주세호였다.그때, 조씨 저택 대문이 우르릉하며 천천히 열렸다.뒤이어 조신하를 필두로 조도철, 그리고 진짜 총과 실탄을 든 경비병들이 따라 나왔다.경비병들이 나오자 이들은 일제히 손에 든 총기를 들고 주세호와 모든 경호원들을 겨냥했다.하지만 주세호는 꿈쩍도 하지 않고 여전히 고개를 빳빳이 들고 서 있었다.“강성 제일의 갑부이신 주 회장님께서 무슨 바람으로 갑자기 저희 조씨 저택을 찾아오신 건지... 그것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저희 집을 포위하시면서 말이죠.”조도철은 밖으로 걸어 나오자마자 입을 열었다.그러자 주세호가 냉담하게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조도철 씨, 이왕 직접 온 거 이유라도 말씀드리죠. 혹시 소씨 저택에서 사람 한 명 잡아 왔습니까?”이 말을 들은 조도철이 피시 냉소했다.“사람을 잡아 왔다니요? 주 회장님께서 무슨 얘기를 하시는지 당최 모르겠군요!”“시치미 떼지 마십쇼! 저도 더 숨기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잡은 사람은 바로 나 주세호의 은인이에요! 더군다나 나 이 주세호가 생애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시지요! 한마디 충고하겠는데 눈치가 있으면 빨리 그자를 풀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곧 파국을 맞게 될 겁니다!”곧이어 조도철이 하하 웃기 시작했다.“아
조신하는 차갑게 얼어붙었다.“그래서요?”“좋습니다, 후회하지 않으시면 됐어요. 이봐! 여기 조씨 저택을 전부 포위하도록 해!”주세호의 명령에 백여 명의 경호원들이 일제히 조씨 저택 대문을 에워쌌다!뒤이어 그들이 포위 공격하려 하자, 조신하도 포악하게 외쳤다.“경비대! 준비해! 오늘 밤, 누가 감히 한 발짝이라도 나서는 자가 있으면 전부 사격하라.”와르르! 경비병들은 기관단총을 들고 주세호 쪽의 경호원들을 겨누었다! 대치가 시작된 것이다!하지만 주세호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왜냐하면 그는 오늘 조씨 가문이 반드시 멸망할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구태여 다른 이유도 없었다. 그들은 구주의 왕을 지하실에 가두지 않았는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절차다.바로 이때였다. 파란 하늘에서 전투기 엔진 소리가 하늘을 가로질렀고, 마치 고막이 부서질 것 같은 엄청난 굉음이 울렸다.굉음이 들려오는 순간 주세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왔다!”이 말이 나오자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먼 하늘에서 10여 대의 최신형 젠31 전투기가 마치 비룡처럼 하늘 위에서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창용 부대의 중령인 조신하는 굉음을 내는 이 엔진 소리를 듣자, 순식간에 안색이 굳어졌다.“이... 이건... 젠31 전투기? 뭐야? 창용 전투기 부대가 출동한 거야?”조신하가 충격 속에 머무는 동안, 하늘에서 16대의 젠31 전투기가 굉음을 내며 강성을 향해 날아왔다!그 시각, 수많은 강성시민들도 전투기 무리를 목격했다!“전쟁인가? 왜 갑자기 이렇게 많은 전투기 무리가 강성시 하늘 위에 나타났을까?”모든 이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는 가운데 “젠31 전투기 군” 16대가 “팰컨10” 헬기 5대를 보호하며 점차 모습을 드러냈다.그리고 그중 한 대에 붙어있는 “창용” 문양은 남부 창용 부대 총사령관의 전용기였다!조신하는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었다.“뭐야? 저건 총사령관님의 전용기잖아!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어떻게 총
“헐, 우리 사단장님이시잖아? 참모장에 후방 지원부 부장까지?!”“맙소사, 저 마지막에 내리신 분은 총사령관님 아니셔?!”조씨 저택 앞에 서 있던 경비병들은 팰컨 10 헬기에서 내려온, 장교 훈장을 어깨에 멘 대관들이 잇달아 내려오자 다들 어리둥절해졌다.조신하는 다리가 풀려 바닥에 넘어질 뻔했다.‘사단장? 참모장? 후방 지원부 부장에 총사령관님까지... 모두 직접 오신 거야?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인 거지?!’조신하가 완전히 놀라 황당해하고 있을 때, 멀리서 군복차림의 우람한 박창용이 몇몇 장교 장교들을 데리고 이쪽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그 뒤에는 DH 그룹의 집사, 표태훈이 있었다.먼 곳의 박창용은 키가 195㎝의 거구였는데, 팔도 어찌나 긴지, 그의 얼굴은 호랑이와 표범을 섞어놓은 듯 아주 용맹해 보였다.박창용, 본명은 박용이었다.일찍이 그는 남부 창용부대에서 가장 활약이 뛰어나고, 가장 길들이기 어렵고, 또 가장 카리스마 있는 군인이었는데 결국 윤구주에 의해 굴복당하고 말았다.그렇게 그는 윤구주 수하의 4대 장군 중 한 명이 되었다!호는 창용이었다.말하자면, 박창용의 일생은 윤구주가 만들어준 것이다!그는 박창용이 살면서 가장 감사해하는 사람이기도 했다.현재의 박창용은 남부 창용부대의 백만 “범”과 “늑대”의 군사를 관장한다.화진 8대 부대의 총사령관이 그가 뜻밖에도 직접 여기에 나타났다는 것을 누가 짐작할 수 있었겠는가.박창용이 사람을 데리고 가까워져 올수록, 조신하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고 이내 서둘러 달려갔다.“총사령관님께 충성! 사단장님께 충성! 참모장님께 충성! 후방 지원부 부장님께 충성!...”“사령관님들이 어찌 이곳 강성에 귀한 걸음을 하게 되셨는지...”전전긍긍하며 군례를 올리고 서 있는 조신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그런데 누가 알았을까.조신하가 막 입을 열자, 가장 앞서가던 84사단 사단장 도균성이 발로 그의 복부를 걷어차는 바람에, 조신하는 그대로 땅에 고꾸라지고 말았다.“무슨 낯으로 감히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
백호는 아직도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어느덧 이백오십 계단까지 올라왔다. 이 단계부터는 실체화된 술법이 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바람, 불 번개와 같은 속성의 영기가 점점 강해졌다. 여기서부터는 육신 횡련의 수련자는 강력한 체질로 버티고 술도 재능이 뛰어난 수련자는 천지 영기를 다루는 능력으로 버텨야 했다. 한마디로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갈리는 구간이었다. 어느 한 분야라도 특출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백호는 술도에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강인한 육체 하나로 견디고 있었다.웅!성수의 피가 진동하며 백호의 몸을 지탱했다. 각종 속성의 영기가 몰아쳤지만 백호는 성수혈의 힘을 빌려 억지로 앞으로 나아갔다.수련자에게 있어서 성수의 혈맥이나 법보 등은 모두 신체 외적인 재능으로 간주하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이 꼼수나 편법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천 가지 변화와 만 가지 신통력이 있어도 결국 만법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법기든 혈맥이든 이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천지 영기를 이용한 술법도 결국은 그 힘을 감당할 수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감당하지 못하면 반드시 반작용을 맞게 된다. 따라서 수련의 길에는 애초에 편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성수 혈맥 같은 천지의 보물은 보통 사람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윤구주의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이를 감당하는 건 백호 자신이었다. 성수 혈맥의 힘을 온전히 감당하며 백호는 결국 삼백 계단까지 올라섰다.계단의 꼭대기 근처에는 이미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이 여럿 서 있었다. 서요산 검종은 근대에 들어 삼백 계단을 넘는 인재가 드물었다. 최근 백 년 동안 삼백 계단을 넘은 사람이 고작 열 명 남짓이었고 그중 대부분이 삼백여 계단에서 멈췄다. 그런데 지금 백호는 삼백이십 계단까지 올라선 것이다. 이 정도면 서요산 검종 전체가 떠들썩해질 만한 성과였다.이런 제자가 나타난다면 종문 전체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서요산의 진인들까
“한 사람의 품성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그렇게 많은 수련자를 키워낸다면 결국 천하의 마인을 직접 만들어 내는 꼴이 아니겠어?”청현이 바로 그 실패한 예다. 서요산 검종 종주가 청현의 천재성을 아까워한 나머지 그의 인성을 무시하고 양성한 끝에 결국 역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그럼 저하 서요산에 입문한 무술 무인들은 평균적으로 몇 계단까지 오르는지 아십니까?” 백호가 호기심에 물었다. 윤구주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무술 무인의 정확한 데이터는 모르지만 검종 종주와 잡담할 때 들어보니 검종 제자들의 수준이 갈수록 떨어져서 천 년 전만 해도 평균 삼백 계단 정도였는데 요즘엔 백 계단도 못 오른다고 하더구나. 가끔 삼백 계단을 오르는 자라도 나오면 검종 전체가 몇 년은 떠들썩할 정도라고 했어.”“구백구십구 계단까지 있는 시험인데 천 년 전 전성기에도 겨우 삼백 계단이요?” 백호는 입술을 삐죽이며 서요산 검종의 수준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때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야?” 윤구주는 흥미롭게 백호를 바라보았다. 백호는 당장이라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윤구주의 허락을 구한 뒤 바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계단 두 계단... 오십 계단까지는 아무 어려움도 없었다. 백호는 오십 계단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서요산 검종이 별것 아니라며 놀려댔다. 하지만 육십 계단쯤 올랐을 때 처음으로 압력을 느꼈다. 마치 몸 위에 작은 차 한 대가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백호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백 계단에 도달하자 압력이 갑자기 커졌다. 등에 작은 승용차 대신 소형 트럭이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지만 아직 백호의 한계에도 가지 못했다.“근래 사람들의 평균이 백 계단도 못 넘는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예전의 무인 횡련은 황제도 오를 수 있었지만 요즘 무인 횡련은 죽어라 노력해도 소형 트럭 하나 못 버티는 수준이니 말입니다.”백호는 농담을 던지며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
전에 임정설은 구오 지존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나라를 위해 힘쓰며 수모를 견뎌내고 살아남으려 했다.하지만 이제 황제가 된 그는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그 탓에 이번 관문 앞에서 그는 망설였다.살아 있는 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관문이었다.죽음을 마음에 품은 자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관문이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청해만이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생각했다.‘황제가 되면 곤륜 구역에서 최고 경지에 도달하는 건데. 기뻐해도 모자랄 판에 왜 죽음을 택하려는 거지?’“저하, 국주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듯합니다. 저하도 사랑하던 이에게 배신당했어도 결국 극복해 나갔잖습니까.”백호도 이해하지 못했다.그는 여전히 국주보다는 왕이 더 낫다고 여겼다.“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느냐.” 윤구주가 단호하게 말했다.백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는 어리숙하고 말솜씨도 없기에 생각나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내가 문아름에게 배신당한 건 억울한 일이지만 나는 그녀에게 잘못한 게 없다. 오히려 그녀가 날 배신한 거다. 하지만 국주는 그 반대였지. 그가 그녀를 저버린 거야. 정이 깊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지혜가 지나치면 오히려 상처를 입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쓰라린 후회는 가진 뒤 잃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생사를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윤구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만약 소채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도 제정신이 아닐 거라고 느꼈다.“그럼 복수하면 되지 않나요?” 백호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이때 청해가 눈치를 채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상대가 너무 강해서 못 이기는 거지. 황제에 오르기 전까진 제대로 맞붙을 힘도 안 돼. 오르고 나서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 못 하고.”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그 말이 맞았다.“그럼 우리가 국주님 대신 복수해 드리면 되잖아요? 국주님은 제 왕이기도 하지만 제 윗사람이기도 하잖아요.”백호가 고개를 갸웃했다.“하하! 만약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솔직하다면 이런
인간이 나쁜 짓을 거듭해 양심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윤구주를 따라 명예심이 생기면서 죄책감도 느끼게 된 청해에게 이 원한의 전법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물론 곤륜역 한 신전의 부전주로서 정신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사람은 이 원한의 전법도 가볍게 넘어섰다.이때 전법에 관심을 가졌던 임정설이 무언가를 눈치챘다.“구주야, 서요산의 전법은 우연히 들어온 자를 쫓아내는 동시에 수련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어. 서요산은 의지력이 확고한 자들만 끌어들인다는 것을 미리 들어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서요산이 제자를 선발하는 방식인가 보구나.”“그렇습니다. 매년 화진 무도계 사람들이 서요산에 찾아오지만 성공한 자는 극히 드뭅니다. 실패자들 중 십중팔구는 산기슭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어떤 문턱은 넘지 않는 것이 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죠. 현실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법이니까요. 이 관문을 넘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세 번째 전법이 나타났다.첫 번째와 두 번째 전법은 이곳에 들어온 이들을 돌려보내려고 만든 것이지만 세 번째 전법은 달랐다. 이 전법은 살기로 가득 찬 죽음의 전법이었다.평범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곳까지 온 자들도 앞길의 위험을 보고 함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의 길을 보고도 들어가는 자는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자라서 그런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덕을 쌓는 일이었다.하지만 무도로 도를 깨우치려는 수련자라면 이 관문을 넘기 위해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버텨내야만 수도의 길에 들 수 있고 실패하면 그 후과를 받아들여야 한다.전법 안은 살기로 가득했다. 생기와 영기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할지라도 살기와 죽음의 기운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진법 내부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도계에 이름을 날렸던 강자들의 유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