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윤구주는 같잖다는 듯이 웃었다.과거 윤구주는 17세 때 육신의 힘으로 절정 후삼품 서열에 올라섰다.그러나 안타깝게도 눈앞의 설국 절정 강자 길든은 윤구주의 무시무시한 점을 몰랐다.“내가 묻잖아. 이놈아, 넌 대체 누구야?”설국의 절정 강자 길든은 윤구주가 꺼림칙하게 느껴졌다.“길든 할아버지, 이 사람이 바로 화진의 왕, 구주왕이에요.”이때 세나미가 서둘러 윤구주의 신분을 밝혔다.‘뭐라고?’“화진의 왕, 구주왕이라고?”그 말을 들은 순간 길든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네, 네, 네가 바로 화진의 구주왕이라고? 그럴 리가! 소문에 따르면 구주왕은 죽음의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던데!”길든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설국의 절정 강자 길든 또한 윤구주를 두려워하는 게 티가 났다.“아뇨, 죽지 않았어요. 이 사람은 정말로 구주왕이에요. 길든 할아버지, 꼭 조심하셔야 해요!”세나미는 계속해 길든을 걱정했다.세나미가 다시 한번 윤구주의 신분을 확인시켜 주자 눈앞의 설국 절정 강자 길든은 안색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네가 바로 6년 전 전투에서 우리 사형을 죽였던 것이냐?”길든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당신의 사형이라고?”윤구주는 눈살을 찌푸렸다.“그래. 내 사형은 광사열륭이라고 불렸었지.”그 이름을 들은 순간 윤구주의 머릿속에 불현듯 6년 전 설국에 도착했을 때 그가 가장 처음 죽였던 절정 강자가 떠올랐다.그 사람은 노란색 머리에 몸은 호랑이처럼 건장했으며 얼굴은 사자와도 같았다.
흰옷을 입은 윤구주는 마치 산처럼 제자리에 우뚝 서서 꿈쩍하지 않았다.다른 사람에게 있어 눈앞의 육신을 단련한 초극 절정 강자는 괴물일지 모르지만 윤구주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싸우고 싶어? 그렇다면 내가 놀아주도록 하지!”윤구주의 말을 들은 길든은 거칠게 울부짖었고, 그의 백발은 마구 휘날렸다.“건방진 놈! 너도 죽어!”그 말과 함께 검이 휘둘러졌다.길든은 자신의 거대한 검을 힘껏 휘둘렀고 무시무시한 무홍의 기운이 길든의 공격으로 인해 아주 긴 검은색 검망이 되었다. 검은색 검망은 하늘을 뒤덮을 듯한 기세로 윤구주를 뒤덮으려고 했다.그 공격은 오악 절정과 엇비슷한 수준이었다.육신을 단련한 무도 절정 강자다운 실력이었다.길든이 검을 휘두르는 순간, 주변 기운이 싸늘한 검기로 바뀌었고 그 검기로 인해 옆에 서 있던 세나미는 피부가 콕콕 쑤시는 통증까지 느꼈다.세나미는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윤구주는 길든이 자신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걸 보더니 같잖다는 듯이 피식 웃으면서 주먹을 뻗었다.검으로 주먹을 상대하려고 하다니, 게다가 윤구주의 주먹은 조금 전 주먹과 마찬가지로 너무도 평범했다.그러나 그의 주먹으로 인해 공간 전체가 시간이 멈춘 듯했다.쿵!윤구주의 주먹이 길든의 검망과 부딪쳤다.두 힘이 부딪치는 순간, 공기 속에서 격렬한 폭발음이 들려왔다.쿠구궁!엄청난 충격파로 인해 길든은 몸을 심하게 떨었다. 그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흰 옷을 입은, 마치 신과 같은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주먹으로 검을 막아? 심지어... 내 공격을 막아냈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잠깐의 놀라움 뒤, 길든은 몸이 멀리 날아감과 동시에 갑자기 공격을 바꾸었다.“한풍참!”분노에 찬 목소리와 함께 길든의 뒤에 있던 무홍의 기운이 갑자기 서로 교차하면서 놀랍게도 소용돌이들을 만들어냈다.그 소용돌이들이 나타나자 길든은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고, 크기가 제각각인 소용돌이들이 사방에서 윤구주를 향해 달려들었다.윤구주는 꿈쩍하지 않고 서서 차가운
“설마 겨우 이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는 거야?”윤구주가 갑자기 비웃었다.“화진 놈, 건방 떨지 말고 내 공격을 어디 한번 감당해 봐!”길든은 고함을 지르더니 두 손으로 검을 쥐고 휘둘렀다.그런데 윤구주가 갑자기 말했다.“당신에겐 더 이상 기회가 없어!”윤구주는 그렇게 말한 뒤 손을 뻗었고, 무시무시한 파멸의 기운이 그의 손바닥에서 퍼져나갔다.곧이어 은색의 긴 창이 윤구주의 손 위에 생겼다.그것은 용혼한위총이었다.용혼한위총이 나타나자 그것에서 하늘과 땅마저 파괴할 듯한 힘이 느껴졌다.“창?”윤구주의 손에 용혼하위총이 들리자 설국의 절정 강자 길든은 동공이 심하게 떨렸다.엄청난 위기감이 순간 그의 몸을 감쌌고 길든은 미처 고민할 새도 없이 바로 물러났다.그는 뒤로 물러서면서 큰 검을 휘둘렀고 검은색 무홍의 기운 사이에 검기가 섞이며 그의 주변으로 아주 거대한 검은색 보호막을 만들었다.길든은 그 보호막으로 윤구주의 용혼한위총을 막으려고 했다.그러나 막을 수가 있을까?당연히 불가능했다.윤구주가 용혼한위총을 사용한 이유는 첫 번째 관군후 의지의 힘을 위해서였다.당시 전호병은 용혼한위총을 들고 흉노족들을 물리쳐서 그들이 다시는 화진 땅을 침략하지 못하게 했다.지금 윤구주 또한 마찬가지였다.창은 은빛으로 반짝이면서 설국의 절정 강자 길든을 향해 날아들었다.푹.창은 마치 용처럼 길든의 앞에 놓인 검은색 보호막을 들이받았다. 그 순간 굉음과 함께 길든을 보호해 주던 보호막이 파괴되었다.“뭐야?”보호막에 균열이 가면서 파괴되자 옆에 있던 세나미는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길든 할아버지, 조심하세요...”세나미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지만 이미 늦었다.윤구주의 용혼한위총은 길든이 만든 보호막을 파괴한 뒤 무시무시한 기세로 길든의 가슴팍을 꿰뚫었다.길든이 어떻게 그 치명적인 일격을 감당할 수 있을까?그는 빠르게 뒤로 물러나면서 피했다.그러나 그가 몸을 움직이려고 하자마자 윤구주가 들고 있던 창을 멀리 던졌다.쉭!용혼한위총은 잔영
단지 시작일 뿐이라는 말에 세나미는 완전히 절망에 빠졌다.그녀는 화진을 건드린 대가가 이렇게 클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녀는 절대 화진을 건드릴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이젠 내가 물어볼 테니 넌 대답만 해. 날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윤구주는 설국의 절정 강자 길든을 죽인 뒤 차가운 얼굴로 고개를 돌려 세나미를 바라보았다.안타깝게도 설국의 군신 세나미는 감히 반항할 수가 없었다.“말해. 여기서 설국 수도까지 얼마나 걸려?”윤구주가 설국 수도에 관해 묻자 세나미는 화들짝 놀랐다.“뭘 하려는 거야?”“쓸데없는 얘기는 하지 말고 내 질문에 대답이나 해.”윤구주는 그녀와 쓸데없는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윤구주의 말에 세나미는 전전긍긍한 채로 대답했다.“이곳은 낙일성이란 곳이야. 수도까지는 300여 킬로미터 남아있어.”“300여 킬로미터? 별로 멀지 않네.”윤구주는 그렇게 얘기한 뒤 낙일성으로 시선을 돌렸다.눈앞의 이 성은 설국의 큰 성으로 이곳에서 사는 주민들이 수백만 명에 달했다.비록 수백만 명의 인구를 가진 큰 성은 화진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주 추운 지역에 있는 설국을 놓고 봤을 때는 인구가 가장 많은 성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윤구주는 낙일성을 쭉 둘러보다가 갑자기 두 눈을 번뜩이며 신념술을 사용했다.신념술을 사용하자 그의 신념들이 마치 그물처럼 사방을 향해 퍼져갔다.신념술을 쓰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그러나 윤구주가 신념술을 사용한 이유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천지의 원기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다.오직 순수한 원기만이 윤구주가 구음만상결을 수련하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화진은 공업 대국이다 보니 설국과 달리 원기의 오염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었다.반대로 설국은 워낙 추운 지역인 데다가 공업도 그다지 발전하지 않았다. 그래서 윤구주는 이번에 단순히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서 설국에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도 있었다.신념술이 낙일
윤구주의 옷이 하나둘 벗겨지기 시작하면서 그의 다부진 몸이 겉으로 드러났다.그러나 세나미는 바짝 긴장해서 눈을 감고 있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감히 눈을 뜨지 못했다.그럼에도 그녀는 호기심 때문에 몰래 실눈을 뜨고 윤구주를 바라보았다.그리고 곧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윤구주의 몸은 건장하고 완벽했다. 그의 근육들은 매우 선명했고 더욱 무시무시한 것은 그의 등 뒤에 그려진 섬뜩한 용 머리였다.그 용 머리는 강력한 시각적 충격을 안겨주었다. 세나미는 윤구주의 등 뒤에 그려진 용을 본 순간 지레 겁을 먹고 저도 모르게 몸을 살짝 떨었다.“다 봤어?”윤구주가 갑자기 물었다.몰래 훔쳐보고 있던 걸 들킨 세나미는 순간 수치스러움을 느껴 목까지 벌게졌다.그녀는 서둘러 몸을 돌리더니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내, 내가 언제 봤다고 그래?”윤구주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세나미를 더 난처하게 하지 않고 훌쩍 뛰어올라 온천 안으로 들어갔다.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온천은 최고였다.윤구주는 온천 안으로 들어간 뒤 세나미를 향해 말했다.“넌 온천욕 안 할 거야?”‘뭐라고?’“난... 싫어!”세나미는 서둘러 거절했다.그녀는 설국의 군신이며 앞으로 황후가 될 사람인데 어떻게 적과 함께 온천욕을 즐긴단 말인가?게다가 옷도 다 벗어야 하지 않는가?“싫으면 그냥 그 위에 있든지.”윤구주는 귀찮아서 그녀를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그는 눈을 감고 온천욕을 즐겼다.반대로 세나미는 심란한 마음으로 온천 옆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감히 움직이지도 못하고 다른 곳에 갈 수도 없었다.어쩔 수가 없었다.생사인에 당한 이상 도망칠 기회는 없었다.윤구주가 그녀를 죽이려고 한다면 그저 생각 한번 하면 끝이었다.온천에 몸을 담근 윤구주를 본 세나미는 그가 밉기도 하고 또 놀랍기도 했다.그녀는 윤구주가 많은 설국인들을 죽여서 미웠고 또 동시에 그의 엄청난 실력이 놀라웠다. 윤구주의 실력이라면 그녀의 아버지가 군대를 이끌고 온다고 해도 그를 상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윤구주는 가부좌를 틀고 있었고 적선의 기운이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그 기운은 아주 성스러웠다. 절정 강자인 세나미는 그 기운이 나타나는 순간 몸이 큰 산에 짓눌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적선의 기운이 나타나자 온천 위쪽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천지 원기가 사방에서 모여들었다.천지 원기는 엄청난 기세로 모여들더니 곧바로 윤구주의 체내로 흡수되었다.‘젠장, 이 악마는 단순히 온천욕을 하는 게 아니라 수련을 하고 있는 거였어!’세나미는 그 순간 그 점을 인지했다.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난 세나미의 푸른색 눈동자에 놀라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세나미는 윤구주가 정말로 단순히 설국에서 온천욕을 즐기려고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에게 속은 것이 분명했다.사실 윤구주가 한 모든 일은 낙일성의 천지 원기를 흡수하기 위해서였다.흡수는 계속됐다.파도와도 같은 천지 원기가 윤구주의 체내로 끝없이 흡수되었고, 윤구주의 체내에서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그 소리는 고대 코끼리의 울음소리였다.그 소리가 한 번 날 때마다 윤구주의 기세는 더욱 강해졌다.무한한 천지 원기를 흡수하면서 윤구주의 몸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기괴한 검푸른색의 문양이 윤구주의 피부에 생기기 시작하더니 그 순간 피부가 강철이 되었다.그것이 바로 윤구주가 수련하던 구음만상결이었다.구양은 기운이고 구음은 힘이다.윤구주는 두 개의 구주령을 얻었고 마침 두 개를 결합할 수 있었다.쿠구궁!천지 원기를 끊임없이 흡수하자 온천 안의 위압 또한 점점 강해졌다.마지막이 되자 세나미는 더 버티기가 힘들어서 서둘러 온천을 벗어났다.밖으로 달려 나오자마자 그녀는 꺅 소리를 질렀다.고개를 드니 온천 상공에 무시무시한 검은색 먹구름들이 사방에서 몰려와 윤구주의 머리 위에 떠 있었다.심상치 않은 징조를 본 세나미는 완전히 넋이 나갔다.“세상에, 저 악마가 대체 무슨 수련을 하고 있길래 이렇게 날씨가 급변하는 거야?”...윤구주가 미친 듯이 낙일성의 천지 원기를
“군신 각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길든 씨가 계시니 그 화진인은 분명 죽었을 겁니다.”한 설국 장수가 말했다.길든은 절정 강자로서 설국 부대에서 신화 같은 존재였고 줄곧 설국 전사들의 선망을 한 몸에 받았다.이번에 세나스는 딸을 구하기 위해 오랫동안 폐관하던 절정 강자 길든을 모셔 왔다. 윤구주를 상대하기 위해서 말이다.그런데 길든이 딸을 찾았다는 말을 들으니 세나스는 그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세나스는 웃어 보였다.“너희 말이 맞아. 화진인이 아무리 강해 봤자 길든이 있는 한 걱정할 건 없지.”애꾸눈인 세나스가 말했다.그는 말을 마친 뒤 고개를 들어 말했다.“내 명령을 전해. 모두 속도를 높여서 최대한 빨리 낙일성에 도착한다.”“네!”세나스가 명령을 내리자 위풍당당한 병사들은 박차를 가해서 낙일성으로 향했다.낙일성 성벽은 아주 높아서 웅장하고 장엄했다.그곳은 한때 낙일성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매일 수만 명의 설국 백성들이 성문에서 그곳을 지나갔다.그러나 오늘 거대한 성문 아래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이러한 상황에 초조한 마음으로 낙일성에 도착하기만을 바라왔던 세나스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다들 멈춰.”세나의 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은 모두 낙일성의 성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군신 각하, 왜 그러십니까?”이때 여러 명의 장수가 달려와서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세나스에게 물었다.애꾸눈인 세나스는 손을 들어 낙일성 성문을 가리켰다.“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한 거야?”“이상한 점이요?”장수들은 그 말을 듣고 성문 쪽을 바라보았다.그들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세나스가 계속해 말했다.“낙일성은 우리 설국에서 수입이 활발히 진행되는 대형 도시야. 매일 수만 명의 상인들이 이곳을 드나들지. 그런데 오늘 좀 봐. 이곳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그런데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한 거야?”세나스의 말에 사람들은 그제야 깨달았다.“그러네요.”’“오늘 어떻게 된 걸까요? 왜 성문에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걸까요?”모든 장수가 의아
“또 사람이 없네요?”“어떻게 된 거죠? 낙일성에 무슨 일이 있던 걸까요? 시민들과 낙일성을 지키는 병사들이 왜 보이지 않죠?”이때 한 장수가 의문을 얘기했다.다른 장수들과 병사들도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바로 이때, 갑자기 짙은 피비린내가 정수리 위에서 풍겨왔다.“아주 짙은 피 냄새야.”“무슨 상황이지?”한 장수는 냄새를 맡고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피비린내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그리고 그는 곧 깜짝 놀라 새된 소리를 질렀다.“군신 각하... 저기를 보세요...”그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비명을 지르며 손을 들어 성벽 쪽을 가리켰다.소리를 들은 세나스와 다른 장수, 병사들은 모두 고개를 들었다.곧이어 피 칠갑을 한 채로 얼어붙은 시체가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그 시체는 이미 얼음덩어리가 된 채 성벽에 걸려 있었다.시체는 얼음과 눈으로 뒤덮여서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세상에, 성벽 위에 왜 시체가 걸려 있는 거죠?”“저건 누구 시체일까요?”병사들과 장수들은 의문을 제기했다.오직 세나스만이 왠지 모르게 성벽에 걸린 시체를 본 순간 강렬한 불안감이 느껴졌다.“여봐라, 저 시체를 내려서 가져와 봐.”세나스가 명령을 내렸다.이때 한 장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훌쩍 날아올라서 성벽 위에 걸려 있던 시체를 가져왔다.시체가 내려오자 세나스는 곧바로 부하들을 데리고 달려갔다.시체는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한 장수가 손을 움직여서 시체를 뒤덮은 얼음을 깨버렸다.그리고 곧 시체의 얼굴이 세나스와 다른 사람들의 눈앞에 드러났다.그는 절정 강자 길든이었다.“어? 길든 선배님이...”한 장수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그의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서둘러 고개를 숙여 시체를 보았다.예상대로 성벽에 걸려 있던 시체는 설국 절정 강자 길든의 시체였다.길든은 죽기 전 겁을 먹은 건지, 억울한 건지 눈을 부릅뜨고 있었던 던 것 같다.그리고 그의 심장 쪽에는 구멍이 크게 뚫려 있었다.다만 그의 피가 완전히 얼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