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나가 다시 한번 말했다.밀라나는 어릴 때부터 오냐오냐 자랐다.그녀는 서방 제2 제국 황실 공작의 딸이었다.어렸을 때부터 유럽 교황청에서 생활한 그녀는 아시아 국가를 무시했고 그래서 아주 거만했다.밀라나는 말을 마친 뒤 고개를 돌려 눈앞의 윤구주를 분노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당신이 누구든 상관없어요. 구주왕이라고 해도 말이에요. 우리 국제중재기구에 불경을 저지른다는 건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리는 것과 다름없어요! 화진은 동방의 용이라고 불리지만 아무리 강해도 세계를 적으로 돌리면 결국 망하게 될 거예요.”밀라나의 말을 듣던 윤구주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그는 천천히 왼손을 들었고 기다란 그의 손가락은 허공에 멈췄다.손을 들어 올린 순간, 윤구주의 훤칠한 몸에서 눈부신 흰빛이 뿜어졌다.그 흰 빛은 바로 윤구주의 적선의 빛이었다.흰빛이 나타나자 어마어마한 살기가 밀라나를 둘러쌌다.“조금 전 그 말만으로도 당신은 죽어 마땅해.”윤구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허공에서 살짝 움직였다.그 순간 무시무시한 적선기가 지현으로 변했다.그 공격은 신도 없앨 수 있고 악마도 벨 수 있었다.그 모습을 본 순간 옆에 서 있던 레이는 깜짝 놀라서 외쳤다.“구주왕, 안 됩니다... 밀라나는... 밀라나는 제2 제국 프로이트 공작의 하나뿐인 딸입니다!”그러나 윤구주는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이 세상에 감히 그를 위협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촤악!빛나는 지현이 밀라나의 가슴팍을 꿰뚫었다.제2 제국 황실 출신의 밀라나는 그렇게 윤구주의 일격에 목숨을 잃었다.눈보라가 휘몰아쳤고, 운이 좋지 않았던 밀라나의 시체는 눈보라 속에서 쓰러졌다.그녀는 입을 벌리고 있었고 눈은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였다.그런데 몇 초 사이, 그녀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눈보라 속에서 죽었다.제2 제국의 엄청난 천재가 윤구주의 일격에 죽을 줄은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게다가 상대는 국제중재기구의 일원이었다.윤구주는 밀라나를 죽
국제중재기구 출신의 두 사람이 떠난 뒤 윤구주는 다시 설국 금전으로 돌아왔다.아수라장인 설국 금전 안에서 세나미는 멍하니 서 있었다.조금 전 세나미는 국제중재기구의 사람들이 윤구주를 제압할 수 있기를 바랐다.그러나 윤구주가 파란 머리카락의 여자를 일격에 죽이는 걸 본 순간, 그녀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앞으로는 설국을 위해 나서줄 사람이 없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금전 안, 윤구주는 안으로 들어간 뒤 세나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공기 취급했다.윤구주는 과거 설국 국주가 앉았었던 의자에 앉은 뒤 세나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이리 와.”마치 하인을 부르는 듯한 태도였다.그에게 목숨을 저당 잡힌 세나미는 겁에 질린 채 윤구주의 곁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세나미가 얌전히 자신의 앞으로 걸어오자 윤구주가 갑자기 말했다.“겉옷 벗어.”‘뭐라고?’그 말을 들은 순간 세나미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고개를 들었다.겉옷을 벗으라니?“이 악마... 뭘 하려는 거야?”세나미는 두려운 얼굴로 윤구주를 바라보면서 본능적으로 두 손으로 가슴을 가렸다.윤구주는 짜증 난 표정이었다.“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고 벗으라면 벗어!”“싫어! 죽일 거면 그냥 죽여. 하지만 날 모욕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어!”세나미는 분노 때문에 눈이 벌게졌다.한때 설국의 군신이자 설국 미래의 황후였던 그녀가 윤구주의 앞에서 옷을 벗는 치욕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그러나 윤구주는 더 설명해 주지 않았다.그가 손을 올려서 손가락을 움직이자 기운 하나가 세나미 가슴 쪽의 혈 자리에 닿았다.그 혈 자리를 눌린 세나미는 순간 온몸에서 힘이 빠져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이 악마,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만약 날 모욕한다면 귀신이 되어서도 절대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야!”세나미가 필사적으로 울부짖어도 윤구주는 신경 쓰지 않았다.그는 손가락을 움직였고 그 순간 기운 하나가 세나미의 옷을 찢
그녀는 거의 1분 가까이 넋을 놓고 있다가 한참 뒤에야 파란색 눈동자를 크게 뜨고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지금... 지금 생사인을 그냥 없앤 거야?”“그러면 내가 뭘 하려는 건 줄로 알았는데?”윤구주는 고개를 돌려 세나미에게 되물었다.세나미는 순간 얼굴이 빨개졌다.그녀는 윤구주가 자신의 미모에 반해서 옷을 벗으라고 한 건 줄 알았다.그런데 그는 사실 그녀의 생사인을 풀어줄 생각이었을 뿐이었다.그녀가 괜한 생각을 한 걸까?세나미는 그런 생각이 들자 얼굴이 화끈거렸다.“일단 옷부터 입어.”윤구주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세나미는 그제야 자신이 나체임을 깨닫고 서둘러 바닥에 널브러진 옷들을 주워서 입었다.그런 뒤 그녀는 가만히 옆에 서 있었다.움직이지도 못하고 도망치지도 못했다.윤구주가 비록 그녀의 생사인을 풀어주기는 했지만 그녀를 죽이는 건 여전히 그에게 아주 쉬운 일이었다.그러니 그녀는 감히 도망칠 수가 없었다.“왜... 왜 날 죽이지 않는 거야? 왜 날 놓아주려는 거야?”세나미는 용기를 내서 윤구주를 바라보며 물었다.“난 처음부터 널 죽일 생각이 없었거든.”윤구주의 말은 사실이었다.흑여산맥에서 세나미가 화진의 유목민들을 놓아주고 그들에게 물과 식량을 나눠주는 걸 본 순간부터 윤구주는 이미 측은지심이 생겼다.설국은 처단해야 했지만 세나미는 처단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국적이 다르니 입장이 다른 건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당신이 날 죽이지 않았다고 해도 난 당신에게 고마워할 생각이 없어. 난 오히려 당신을 증오해!”세나미는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세나미는 설국인이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윤구주의 손에 죽었다.심지어 윤구주는 설국의 국주의 목까지 베었다.가족의 원수이며 설국의 원수인 윤구주를 그녀가 어떻게 원망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윤구주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말했다.“날 증오하는 건 상관없어. 날 죽일 실력이 된다면 언제든 날 찾아와서 복수해. 하지만 지금은 한 가지 해줘야 할 일이 있어.”윤구주는 그렇게 말
맞는 말이었다.윤구주는 비록 설국인들을 많이 죽였지만 사실 그가 죽인 사람들 중 죽어 마땅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흑여산맥 국경 지역에서 설국의 10만 병사들은 화진의 백성들을 박해했다.그들이 어떤 의도로 그랬는지 설국의 군신인 세나미가 모를 리가 없었다.그리고 그의 아버지 세나스도 마찬가지였다.그동안 세나스는 계속해 설국의 병력을 키우며 6년 전의 패배로 얻은 치욕을 씻으려고 화진과 전쟁을 치를 생각이었다. 세나미는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리고 윤구주가 만약 설국 국주를 죽이지 않고 두 나라가 전쟁을 하게 된다면 죽거나 다치는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윤구주의 말을 들은 세나미는 충격을 받았다.“나는 항상 죽어 마땅한 사람들만 죽였어. 내가 조금 전 얘기한 사람들 중 죽이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있었나? 만약 내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언제든 날 찾아와 복수해. 하지만 명심해. 벌레만도 못한 설국이 감히 정말로 우리 화진과 전쟁을 할 생각이라면 사상자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을 거라는 걸 말이야. 어쩌면 백만 명, 천만 명일 수도 있어. 심지어 나라 전체가 사라질 수도 있겠지.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너도 잘 알 거야.”윤구주의 말은 칼이 되어 세나미의 마음을 사정없이 후벼팠다.이 순간 설국의 군신인 세나미는 넋을 놓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그녀는 그제야 윤구주가 한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비록 윤구주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사람이고 설국인을 2, 3만 명 가까이 죽이고 설국 국주의 목까지 베었지만, 윤구주의 말대로 설국과 화진이 전쟁을 하게 된다면 죽는 사람은 절대 2, 3만 명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어쩌면 백만 명, 천만 명... 심지어 모든 설국인이 죽을 수도 있었다.윤구주의 엄청난 실력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6년 전 설국의 백만 대군이 윤구주로 인해 낭파산에서 죽었던 걸 떠올린 순간 세나미는 정신이 문득 들었다.그녀는 멍하니 그곳에 서 있다가 갑자기 뭔가를 깨달았다.그녀
윤구주가 설태현의 목을 벤 뒤로 설국의 종은 계속해 울었다.그렇게 종은 1박 2일을 울렸고 그러다 이 순간 갑자기 멈췄다.그리고 대신에 힘이 느껴지는 종소리가 들려왔다.그 종소리는 설국 금전 조정에서 국가 대사를 의논함을 의미하는 종소리였다.설국 수도의 거리 양쪽에 있던 수많은 백성들이 그 종소리를 들었다. 그 종소리가 설국 수도에 널리 울려 퍼졌을 때 백성들은 모두 고개를 들어 금전을 바라보며 의논했다.“어떻게 된 일이지? 우리 금전의 종소리가 멈췄어. 대신에 조정에서 국가 대사를 의논하는 의미를 종소리가 울리는데?”“설마 우리 화진을 침략했던 그 악마가 떠난 걸까?”“모르겠어.”백성들이 의논하고 있을 때 황성의 한 대학사부 밖에는 설국의 문무 대신들이 모여 있었다.눈앞의 대학사부는 화진의 재상부와 비슷했다.설국의 대학사는 유니스라고 불렸다.유니스는 설국 백관의 우두머리이자 세 명의 국주의 중용을 받았던 원로로서 설국에서의 지위가 높았다.이때 금전에서 우렁찬 소리가 대학사부에 울려 퍼졌다.“대학사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우렁찬 소리와 함께 백발에 건장한 체구를 가진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그가 바로 설국의 원로 유니스였다.유니스가 나타나자 그곳에 있던 문무 대신들 모두 예를 갖추었다.“대학사님을 뵙습니다.”유니스는 그 자리에 있던 문무 대신들을 쓱 훑어보더니 천천히 말했다.“다들 왔습니까?”“네, 대학사님.”“대학사님, 설국이 재앙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다른 나라에서 알려졌습니다. 더욱 괘씸한 것은 지금까지 그 어떤 나라도 지원하러 오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이때 군복을 입은 설국의 장군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분노에 차서 말했다.“그리고 그 밖에도 우리와 가장 가까운 판인국과 연국에서는 우리의 대사관을 폐쇄했습니다.”한 신하가 입을 열었다.유니스는 두 사람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들면서 비참하게 웃으며 말했다.“약한 나라에는 외교가 없다는 말이 있죠.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설국은 아주 작은 나라였다.게다
설국 금전.천 년 가까이의 역사가 있는 대전은 엉망이었다.게다가 금전의 지반은 땅 밑으로 우묵하게 내려앉았다.백옥이 깔린 금전의 지면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균열과 틈이 생겼다.이 순간, 유니스 대학사는 설국의 문무백관을 이끌고 금전 밖에 도착했다.커다란 금전을 바라보면서 유니스는 갑자기 눈빛이 혼탁해지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우리 설국이 재앙을 맞이했군요.”길게 한숨을 내쉰 뒤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백옥 계단으로 올라갔다.대신들은 그의 뒤를 따랐다.댕.댕.댕우렁찬 종소리는 아직도 끊이지 않았다.유니스는 설국의 문무 대신들을 이끌고 금전을 올랐고 곧 그들의 앞에 한 여자가 나타났다.세나미였다.“세나미 아가씨야...”“세나미 아가씨께서 살아계셨어!”세나미를 본 대신들은 모두 흥분했다.세나미는 이때 유니스가 문무 대신들을 데리고 온 걸 보고 빠르게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드디어 오셨군요!”유니스는 서둘러 말했다.“세나미 씨, 다치지는 않았습니까?”“네, 괜찮아요.”세나미가 말했다.“그런데 세나미 씨께서는 그 악마에게 납치당한 것 아니었습니까? 왜 그가 그냥 풀어준 거죠?”일부 대신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세나미가 말했다.“절 풀어준 이유는... 그가 우리 설국에 아주 중요한 일을 전하기 위해서예요.”“아주 중요한 일이요?”“그 악마는 우리 설국인들을 수도 없이 죽였어요. 심지어 국주님의 목까지 베었죠. 그런데 또 뭘 하려는 거죠?”유니스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세나미가 말했다.“여러분도 아시죠? 화진의 구주왕 말입니다.”그녀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문무 대신들은 모두 침묵했다.구주왕.설국에 있어서는 너무도 익숙한 이름이었다.지금 때문만이 아니라 6년 전 구주왕이 설국을 항복시켰기 때문이다.“그가 천하무적의 구주왕이면 뭐 어떤가요? 이 세상에 그를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겠어요?”유니스는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유니스 대학사님, 제 말을 들어주세요.
“구주왕, 당신은 우리 국주를 죽였어요. 게다가 우리 설국의 금전까지 점유했죠. 대체 뭘 어쩔 생각입니까?”이때 유니스 대학사가 앞으로 나서며 매섭게 말했다.윤구주는 그를 천천히 바라보며 말했다.“난 설국의 모든 것을 정상으로 되돌리고 싶어.”“정상으로요?”대신들은 놀랐다.“맞아.”윤구주는 말을 이어갔다.“난 죽어 마땅한 설국인들에게 다 벌을 주었어. 지금 설국은 국주의 자리가 비었지. 그래서 나는 설국의 새로운 국주를 정할 생각이야. 그래야만 설국은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뭐라고?’“우리 설국의 새로운 국주를 정하겠다고 한 겁니까?”“그... 그럴 수 있나요?”윤구주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대신들은 모두 화들짝 놀랐다.이곳을 설국이고 윤구주는 심지어 설국인이 아니었다. 그런데 윤구주가 무슨 자격으로 설국을 대신하여 설국의 국주를 정한단 말인가?“구주왕! 우리 설국의 일에 화진인인 당신은 끼어들지 마세요. 그리고 우리 설국의 국주는 당연히 설국 백성들의 인정을 받는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우리 설국의 국주를 정한다는 거죠?”유니스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난 윤구주니까. 난 설국의 존망을 정할 수 있어. 내가 설국의 존재를 허락한다면 설국은 존재할 수 있고 내가 설국을 망하게 할 생각이라면 설국은 망할 거야.”패기 넘치는 말이 윤구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윤구주는 자신이 한 나라의 존망을 정할 수 있다고 했다.얼마나 놀라운가?“이... 이... 정말 너무 하는군요!”유니스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씩씩댔다.윤구주는 그를 아예 무시해 버렸다.“내가 당신을 괴롭힌다고 해도 당신이 뭘 어쩔 수 있지? 내가 지금 명령을 내린다면 화진의 병사 수십만 명이 이곳으로 몰려와서 설국을 공격할 거야. 믿기지 않는다면 어디 한 번 해보든가.”윤구주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현재 화진의 병사들 수십만 명이 낙일성으로 향하고 있었다.윤구주가 명령을 내린다면 그들은 곧바로 설국을 평정할 수
유니스가 그렇게 얘기하자 다른 설국 대신들도 맞장구를 쳤다.“맞습니다. 여성이 어떻게 우리 설국의 국주가 된단 말입니까?”“비록 세나미 씨는 세나스 각하의 딸이긴 하지만 국주가 된다는 건 어림없는 일입니다.”설국 대신들이 불만을 토로하자 윤구주는 단호히 말했다.“다들 똑똑히 들어. 난 오늘 당신들에게 통보하러 온 거야. 의논하러 온 게 아니라고. 알겟어?”그의 말 한마디에 그 자리에 있던 설국 대신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구주왕, 선 넘지 마세요! 우리 설국에서 감히 행패를 부리는 겁니까? 우리나라의 위엄과 체면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까?”대학사 유니스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위엄? 금전에도 감히 들어오지 못하는 쓸모없는 것들이 감히 나라의 위엄을 입에 담아?”윤구주가 유니스를 바라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전, 전, 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전 설국을 대표하여 항의합니다. 세나미 씨가 국주가 된다면 전 차라리 죽겠습니다.”유니스는 죽겠다면 위협했다.그런데 뜻밖에도 윤구주는 피식 웃었다.“죽겠다고? 그러면 내가 그 소망을 들어주지.”윤구주가 손가락을 튕기자 지현이 마치 총알과도 같이 날아가서 대학사의 가슴팍을 꿰뚫었다.피가 금전에 흩뿌려지면서 유니스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유니스가 윤구주의 손에 죽자 금전에 있던 설국 대신들은 모두 간담이 서늘해졌다.세나미는 앞으로 나서더니 윤구주를 향해 분노에 차서 고함을 질렀다.“왜, 왜 또 사람을 죽인 거야? 나랑 약속했잖아. 다시는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고.”“저자가 스스로 죽음을 자초했는데 왜 날 원망하는 거지? 그리고 이렇게 고집불통인 노인네가 여기 남아있으면 설국의 미래에 방해만 될 뿐이야.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윤구주는 말을 마친 뒤 남은 설국 대신들을 바라보았다.“이젠 당신들 차례야. 얘기해 봐. 내 말대로 할 의향이 있는지.”윤구주가 그렇게 얘기하자 설국 대신들은 모두 겁을 먹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다
선조가 구중현천으로 승천하고 종주였던 풍무극은 죽음을 맞이하며 도마저 끊겼다. 요마도 모두 제거되었으니 이제 서요산은 과연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서요산의 사람들이 방황하고 있을 때 윤구주가 진요탑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구주야!”장인 대장인과 서요산 제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심하게 다친 몸을 이끌고서도 윤구주를 맞이하려고 했다.하지만 눈앞의 윤구주는 눈빛이 텅 비어, 마치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꼭두각시처럼 생기가 없었다. 만약 진인들이 신념으로 윤구주의 기운을 감지하지 못했더라면 이미 마인에게 빙의된 것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아마 전설 속의 원신출교를 쓴 것 같아.”그때 도착한 임정설은 그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신출교는 성인의 경지에 이른 자만이 가능한 일이다.”장인 대장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수련이 부족한 사람이 억지로 원신출교를 하면 심각한 후유증이 따라오기 때문이다.바로 그때 윤구주의 양혼이 하늘 위로 떠 올랐고 수천 자에 달하는 양혼 성령의 기운이 화진의 절반을 덮었다.“장인 대장인, 지금은 고민할 때가 아닙니다. 당장은 서요산의 미래를 정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일단 지금은 진을 세워 저를 호위해주시고 제 원신을 육체로 돌아가게 한 뒤 얘기합시다. 운이 나쁘면 나중에 혼수에 들어가야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 무명 마인처럼 사도로 들어서야 할지도 모르니까요.”장인 대장인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요산의 존재 여부는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모든 제자는 들어라! 수령진을 세워 구주왕을 호위하라!”멀리서 이 말을 들은 백호는 윤구주가 죽은 줄 알고 울부짖으며 달려와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무덤이라도 파려는 기세였다.“이 자식! 그렇게 내가 죽길 바랐냐?”윤구주의 음성이 들려오자 백호는 또 깜짝 놀라서 얼어붙었다...그 후 며칠 동안 서요산은 윤구주를 보호하며 호법을 세웠다. 그 목적은 단 하나, 서요산의 영기 흐름을 안정시켜 윤구주의 원신이 무사히 육체로 되돌아가게 하기 위함이
인간 세상에서의 수련은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구주왕의 명성을 얻는 것이었고 이 모든 것은 인황번을 제작하기 위함이었다.그때부터 이미 윤구주의 스승들은 그에게 목표를 정해주었다.언젠가 윤구주가 혼자 힘으로 무명의 마인을 죽일 수 있게 되면 그때야말로 진정으로 출사의 날이 온 것이다.인황번은 백성들의 마음을 모아 인간계의 황제 기운을 더하고 ‘반드시 죽이고 반드시 이긴다.’는 굳건한 신념이 실체화된 에너지로 변하여 무명 마인을 향해 쏟아진다.일격으로 마를 처단하는 기술, 이 기술은 인간계에서 가장 강력한 절기라고 할 수 있다.무명의 마기가 무너지며 인황번은 바로 음신사체를 강타했다.만장의 무지갯빛이 무명 마인의 신혼을 단숨에 관통했다.이 모든 과정에서 막강한 반선인 무명은 아무런 반항도 할 수 없었다.“윤구주, 나는 인정 못 해. 왜 화진에서 너 같은 괴물이 나온 거냐. 하늘이 불공평하다.”무명 마인은 수백 년 동안 쌓은 도행을 믿고 있었기에 신혼이 관통당했음에도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그러나 그 마지막 포효가 끝난 후 신혼은 한순간에 무너졌다.윤구주의 말이 또 맞았다.무명은 끝내 도에 들지 못했고 따라서 ‘의지’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몸과 신혼이 무너지면서 의식도 함께 흩어졌다.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신혼을 쓸어가듯 흩어지게 만들며 결국 티끌조차 남기지 않았다.“무명은 평생을 수련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구나.”서요산의 선조가 탄식하며 말했다.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대재앙이 오늘에서야 비로소 해결되었고 그로 인해 산조의 오래된 근심도 마침내 완전히 사라졌다.“선조 님, 정말로 ‘구중현천’이라는 게 존재하나요? 그 위에는 대체 뭐가 있죠?”윤구주가 호기심에 물었다.그 질문에 선조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말했다.“윤구주, 보아하니 이번 여정에 꽤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군. 무명 같은 마인을 처단하는 그 큰 업적을 세우고도 오히려 구중현천이 더 흥미롭다니.”“무명을 죽이는 건 예정된 일이었어요.
그는 다시 한 번 서요산 검종의 선조에게 봉인당할 가능성이 있지만 윤구주의 손에 패배할 가능성은 절대 없었다.딱히 다른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수백 년 동안 수련해 왔는데 고작 윤구주 하나 제대로 제압하지 못한다면 애초에 수련 따위는 하지 않는 편이 낫다.“그래? 근본도 없고 이름도 없는 네가 날 죽이겠다고? 넌 자격 없어.”윤구주는 손가락을 펴 검을 형성했고 만법귀일하더니 선기가 검으로 응집되었다.그가 만들어낸 한 자루의 주선검은 허공을 가르며 떠올랐고 그 검의 날카로움은 서요산 선조조차 압도했다.무명의 마기는 검의 기세에 의해 모두 흩어져 사라졌다.마기가 사라지자 무명의 진면목이 드러났다.소위 반선이라는 자도 결국엔 그저 음신사체일 뿐이었다.예전에 윤구주와 싸웠던 그 사악한 사술들과도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었다.“너 같은 자가... 감히 신선이 되겠다고? 이 길은 너는 오를 자격이 없어.”윤구주가 검을 휘두르니 막강한 선력이 무명을 완전히 억눌렀다.이로써 승부는 분명해졌다. 무명은 잠시 놀라더니 갑자기 미친 듯이 웃어댔다.“네가 날 이긴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데? 넌 날 죽일 수 없어!”“수련이 부족하다면 네가 아무리 선도를 미리 깨달았다 해도 경지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넌 날 죽일 힘이 없어.”“서요산 늙은이, 너도 날 다시 봉인하려는 생각은 접어. 내가 이 세상을 뒤엎지 못한다면 차라리 이 세상과 함께 죽어버리겠다.” 마기가 다시 한 번 폭발하듯 분출되고 위험을 감지한 서요산 선조는 즉시 나서려 했다.“윤구주, 저 녀석 지금 자폭하려 하고 있다. 만약 이 자가 자폭에 성공한다면 세상이 멸망하지 않더라도 우리 화진 9주 중 최소 세 개 주의 생명이 몰살될 것이다.”“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화진의 국운 역시 큰 타격을 입게 된다.”이에 소요산 선조도 더는 손을 놓고 있을 수 없게 되었다.“하지만 인간 세계의 시비는 나 윤구주가 직접 심판하겠다. 무명은 인간 세계의 마이니 반드시 내가 처단할 것이다.”윤구주의
임정설과 청해는 하늘의 호천경 하나가 백만 마리의 요괴들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이것이 바로 전설 속...”임정설의 지금까지 믿어왔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신의 경지를 넘는 존재가 진짜로 존재한다고? 인간이 정말 신선이 될 수 있단 말인가?’서요산 검종의 장인 대장인과 제자들이 하늘을 향해 절을 올렸다.“서요산 선조님께 인사 올립니다.”백호는 제자리에서 얼어붙었다.늘 미치광이 같던 그에게 있어서는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 요괴들은 다 어디로 간 거지? 설마 저 거울이 재앙의 근원이었던 건가?”백호는 눈을 부릅뜨며 당장이라도 하늘로 솟아올라 거울을 부수려 했으나 청해가 간신히 그를 막았다.한편 진요탑에서는 서요산 선조의 법신이 강림하며 온몸에 감도는 선기로 무명을 억누르고 있었다.“서요산의 늙은이, 네놈 아직도 죽지 않았어? 구현천도 널 죽이지 못했단 말이냐!”무명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누가 알았겠는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또다시 이 성가신 서요산의 늙은이가 나타날 줄이야.“나는 하늘과 함께 움직이며 하늘의 도를 대신해 정의를 집행한다.네가 죽지 않으면 하늘의 재앙이 끝나지 않는다. 너를 죽이지 않고서야 어찌 구현천도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겠느냐!”선인의 목소리가 온 세상을 뒤흔들었다.그 선기는 무명을 억제하는 동시에, 이번에는 윤구주를 돕기 위한 것이 확실했다.“구주야, 마음껏 싸워라! 만약 네가 이 마귀를 죽이지 못하면 그때는 내가 나서겠다.”이보다 더 확실한 지원군이 있을까. 누구라도 이런 말 한마디면 충분할 것이다.그러나 윤구주는 하늘이 내린 영광을 지닌 자이자 천하의 구주, 오방의 통치자로서 절대적 존재이다.“선조님의 말씀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오늘 선조님께서 오지 않으셨어도 저는 아마 그를 반드시 죽였을 것입니다.”“저 윤구주가 어떻게 이 자를 베어버리는지 지켜보십시오.”윤구주의 기세 넘치는 말에 서요산 선조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임정설이 일으킨 이씨 가문의 기세조차 마물들에게 잠식당해 사라지고 있었다.청해는 말 그대로 처참한 상태였다. 이젠 자기 몸 하나 제대로 지킬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나마 임정설이 죽을 각오로 지켜주지 않았다면 진작에 목숨이 끊겼을 터였다. 결국, 화진의 국주가 자신의 목숨을 지켜준 것이다. 이 순간만큼은 죽는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음 생이 있다면... 화진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줘. 그게 아니라면. 그냥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게 해줘... ”청해는 하늘을 향해 처절하게 외쳤다. 임정설은 고개를 번쩍 들고 한 번 더 울부짖었다. 그 울음은 황자의 기운을 불러왔고 서요산 일대의 천기와 섞여 거대한 진룡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황도기운과 진룡을 하나로 모든 요마를 베어낸다! ”그 역시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대로 더는 버틸 수 없다면 풍무기처럼 자신의 마지막 의지를 국운에 녹여야 할 것이다. 진요탑 안. 이 일대 세계 전체가 마기에 잠식되어 만물은 스스로 죽음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런 데 무명은 더 이상 흥분할 수 없었다. “하하! 인황이 뭐라고? 도를 얻은 건 나다. 나는 이미 진정한 길의 끝을 보았다. 내 의지는 구천 현천을 관통한다. 하늘도 날 감당할 수 없어. ”그 순간 하늘과 땅이 동시에 울컥하며 뒤틀렸다. 무언가 말도 안 되는 존재가 깨어나는 기운이었다. 이 작은 진요탑 속 공간조차 그걸 담아낼 수 없어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무명이 눈을 치켜떴다. “또 뭘 하려는 거야? 설마... 윤구주 너 나를 봉인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네 실력으론 날 봉인 못 해. 아니, 가능하다 쳐도 목숨을 걸어야만 가능하지. 하지만 지금 넌 그 목숨을 걸어도 겨우 나를 세 손가락만큼 다치게 할 수 있을 뿐이야. 그 정도 피해라면 기꺼이 감수하지. 와봐, 날 얼마나 벨 수 있나 보자고. 병이 오면 장수로 막고, 물이 오면 흙으로 막는 법이지. 그러니 한번 보자고 구주왕이라는 놈의 마지막 발악이 어떤지. ”무
“인간마가 세상에 나왔는데, 대체 누가 막을 수 있겠냐. 왜 그 무게를 전부 화진이 짊어져야 하는데? 이건 너무 불공평해.”청해는 처음으로 곤륜영역에 혐오감을 느꼈다.그리고 그제야 윤구주가 말했던 위선의 신이라는 말이 단순한 수련의 이야기가 아님을 이해했다.그들은 입만 열면 도덕과 정의를 떠들지만, 정작 하는 짓은 불의 그 자체였다. 위선적이기 짝이 없었다.“아아아!청해무극! 지은살결!!”청해는 모든 정원을 끌어 올렸고, 심지어 음혼까지 태워버렸다.음혼이 하늘의 뇌격을 불러오자, 그의 기운 속에는 놀랍게도 정의로운 황기가 피어올랐다.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는 도에 들어선 것이다.그 수련은 폭발하듯 치솟아 극점 신경 후기에 이르렀고, 잠시나마 이성설과 맞먹는 기세를 뿜어냈다.“카! 이제야 좀 신 같은 포스가 나오네!”백호는 멀리서 엄지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하지만 청해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백호는 원래 미친놈이었으니까.누구든 이 상황이면 절망했을 전황.하지만 백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율로 들떠 있었다.그는 전투를 위해 태어났고, 결국 전장에서 죽을 운명이었다.그게 백호가 택한 길 죽음을 향한 도였다.세 사람 모두 이미 죽을 각오로 싸우고 있었다.살아남을 생각 따윈 없었다.마물들과 함께 미쳐 날뛰며 생사의 끝자락을 오갔다.진요탑.풍무기는 전사했다.이제 남은 건 윤구주 단 한 사람.그가 인간마와 맞서야 할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윤구주! 풍무기는 죽었다. 이젠 네 차례야! 혼을 꺼냈다고 해서 날 이길 수 있다는 뜻은 아니야. 내 육신이 남아있는 이상, 나는 이미 성인의 경지에 올랐다. 지금의 반성 상태만으로도 네 인황 따위가 감당할 수는 없어. 그래, 네 선술은 순수하겠지. 그래서 네 육신엔 손댈 수 없지만 혼을 지워버리면 넌 끝이야. 마도무영,도파무극! 혈음마도, 현세에 나타나라!”그의 손에 한 자루의 절세마도가 출현했다.그 칼끝에서 피의 바다가 솟구치고, 살기는 윤구주의 황기조차 압도했다.이런 마도를 길러내기 위
잠금요탑 밖, 무너졌던 마기가 흩어지자 서요산 검종 제자들 사이에서 울음이 터졌다. 500년 만에 다시 햇살을 본 그 순간 꾹꾹 눌러왔던 감정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서요산은 그 오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도움 없이 혼자서 마를 억눌러왔다. 그 현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났다. “무명이 죽은 건가? ”장인대진인이 순간 멍해졌지만 곧 신념술로 본 광경에 얼굴이 굳어졌다. 귀물들이 미친 짐승처럼 날뛰며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산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이제부터가 진짜다. 무슨 일이 있었든 간에 윤구주가 무명의 목에 칼을 들이댄 건 확실해. 지금이 바로 마지막 승부의 시점이다.”말이 끝나자마자 흩어진 마기가 다시 거칠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마기가 응집되더니 거대한 마영체가 형성됐다. 그 거대한 그림자는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고 대지를 집어삼키려는 듯 광폭하게 움직였다. 그건 이제는 환상이 아니었다. 그 자체로 재앙이었다. 잠금요탑 위로 백장 크기의 마존이 강림했다. “윤구주! 네가 이 정도였다고? 실력만큼은 서요산 시조랑 비교해도 꿀리지 않겠군. 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미 흐름은 정해졌다. 대세는 되돌릴 수 없어. 그 시조가 도력이 하늘을 찌르고 능력이 천하를 뒤흔든다 해도 결국 날 죽이지 못했지. 결국엔 구천을 떠돌며 외도계에서 날 베어낼 무언가나 찾고 있겠지. 외도계엔 나를 죽일 보물이 있을지도 몰라도 이곳 인간계 구주의 오방 안에서는 절대 없어. 너도 마찬가지야, 넌 여기서 끝이다. 죽어라!! 윤구주. 마의 경계는 끝이 없고 마의 바다는 만 리를 삼킨다! ”하늘이 찢기고 무한한 마해가 대지를 뒤덮었다. 잠금요탑은 순식간에 요산으로 변했고 주변은 온통 사기와 혼란으로 뒤덮였다. 무명은 드디어 자신의 사혼체를 드러내며 윤구주와 마지막 일전을 준비했다. 윤구주의 손에 들린 참마검이 떨리기 시작했다. 풍무기의 상태가 이미 한계라는 증거였다. “구주야, 내 양혼신체는 거의 다
‘선술? 크하하하!’무명이 미친 듯 웃었다.“네가 황자면 뭐 어쩌라고? 결국에는 한순간 스쳐 지나가는 인간 세상의 유성일 뿐이지.”“나는 무명이다.하늘은 이미 내 발 아래 있다.세상의 법? 그런 건 내가 정하는것이다.”“윤구주! 과연 네놈이 날 어떻게 상대할지 두고 보겠다!”‘원신출체도 못 한 놈이 선술을 깨달았다고? 어이없네.’무명의 눈에는 윤구주란 놈은 선술의 겉껍데기나 훔쳐본 수준에 불과했다.입만 산 허세쟁이 꼬맹이였지 그딴 놈은 애초에 눈에 들어올 가치조차 없었다.게다가 진짜 선술을 논하려면 그 참마검조차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하는 주제에.하지만 윤구주는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신의 경지에 머물던 시절,우연히 소요산에 들렀을 때 그때 이미 선술의 근본을 깨달았지.”윤구주의 눈이 빛났다.“지금, 네게 그걸 보여주마.”“구기신통 , 등선!”부우우우웅!!윤구주의 몸을 감싸고 있던 하얀 기운이 순식간에 실체의 불꽃으로 응결되었다.기운이 ‘기’에서 ‘힘’으로 승화된 것이다.무명의 눈동자가 순간 가늘어졌다.이게 뭔지 무명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이제 윤구주는 몸 자체에서 영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솔직히 말해서 마음만 먹으면, 주변 땅의 기운조차 자기 위주로 바꿔버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윤구주는 이제 한 종파의 시조로 불릴 자격이 있는 존재였다.더 이상 강자를 넘어서 자신만의 도를 세우고, 전설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무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저건, 설마 성력?!”그 힘은 그렇게 압도적이진 않았지만 문제는 진짜였다. 가짜가 아닌, 순도 100%의 성력이었다.“말도 안 돼...저놈이 어떻게...”무명의 내면이 갈기갈기 찢어졌다.수행자에겐 한 단계 한 단계가 천벽과도 같다.특히 성의 경지에 이르기 까지는 그야말로 하늘과 하늘 사이를 걷는 자들만이 갈 수 있는 길이 였던것이다그리고 지금 윤구주는 그 문턱을 스스로 넘고 있었다.“무명! 넌 반성자일뿐! 육신만 있었으면 성인이 됐을지도 몰라.하지만 지금 넌 가짜
단 한 걸음,그 한 걸음만 넘기면, 그는 곧 성급 바로 직전 경지에 이른다.그리고 그 마지막 문턱을 박살내는 순간 반쯤 성인이 된 경지, 반성급이다!지금 이 자리, 그 반성급 경지에 선 자는 바로 인마라고 불리는 무명이었다.“과연... 화진의 인황, 구주왕이라 불릴 자격은 있군. 하지만 너도 알겠지. 지금 네 수준으론 몸을 직접 이 판에 던지지 않는 이상 나랑 맞붙을 자격조차 없어. 네가 그 잘난 원신출체를 어떻게 하겠다는지 구경이나 해보자고. ”무명이 입꼬리를 비틀며 코웃음쳤다.팔기귀일에 도달한 윤구주의 전투력은 이미 황의 지경을 뛰어넘었다.하지만 무명과의 경지 차이는 여전히 너무 컸다.실력은 분명 엄청났지만 격이 다르였다.지금 상태로도 보통의 황자의 경지까지 초월한 상태지만 무명을 상대하긴 아직 한참 부족했다.심지어 무명이랑 싸울 실력은커녕 참마검조차 손에 제대로 못 잡는 게 현실이었다.“팔기로 부족하다면... 제구기는 어때? 구기:적선!”부우우우웅!윤구주의 온몸을 하얀 선기가 감싸는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웃고 있던 무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뭐라고? 이건 네 따위가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잖아! ”그 순간, 무명조차 숨을 삼켰다.이건 상식의 틀을 깨부수는 광경이었다.근대에 들어서면서 도에 대한 수련는 사실상 약해졌다.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세상에 흐르는 천지영기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봉신전쟁 당시, 상상을 초월하는 영기가 소모됐고 그 전쟁이 끝난 후 곤륜구역은 세상의 영기 90%를 신계에 봉인해버렸다.거기서 마음껏 영기를 탕진한 것도 모자라 바깥의 산수들까지 무분별하게 빨아들인 탓에세상의 영기는 걷잡을 수 없이 줄어들고 말았다.결국 세상은 고위 수련자가 태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그래서 화진에선 500년에 한 번 황자가 나올까 말까 할 정도이고 황자의 경지에 도달하는 건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었다.임정설이 황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처음부터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윤구주를 돕기 위해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