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전 안.거대한 원형 돌 탁자가 있고 돌 탁자 주변에는 현문의 구진철, 자운각의 현지운 그리고 만불종의 살심 스님 등 사람들이 사방에 흩어져 앉아 있었다.다만 그들 외에 문씨 가문 구성원은 보이지 않았다.“여러분 오늘 6대 종문 회의에 우리 세 종문만 참가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회의를 거행해야 합니다.”먼저 입을 연 사람은 바로 현문의 장로 구진철이었다.현문의 도자 손형재가 함지우의 검에 목구멍이 뚫린 이후로 구진철은 잠시 현문의 제자들을 이끌고 있었다.그의 말을 들은 만불종의 살심 스님은 천천히 말했다.“구 장로님, 구주왕을 상대하기 위해 우리 세 종문만 모여 상의한다면 역량이 부족할 것 같은데요?”그 말을 들은 구진철이 입을 열었다.“살심 스님 걱정하지 마세요! 사실 우리 현문의 4대 선조 님께서 이미 도착하셨습니다.”“네? 정말요?”구진철의 말을 들은 살심 스님의 표정이 밝아졌다.심지어 자운각 쪽 사람들까지 하나둘씩 구진철을 바라보기 시작했다.구진철은 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물론이죠. 내가 어찌 감히 여러분을 속이겠어요? 사실 한 시간 전에 선조님들께서는 이미 서울에 도착하셨습니다. 다만 지금은 문씨 가문 선배님과 회포를 풀고 계세요.”그 말이 나오자 살심 스님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현문이 계속 선조급의 강자를 출동시키지 않는다면 이건 불가능한 싸움이었다.“구 장로님, 만약 현문의 선조 님께서 나섰다면 앞으로 구주왕을 상대하는 건 식은 죽 먹기가 아닙니까?”현지욱이 물었다.“하하. 그거야 당연하죠.”“게다가 우리 선조 님께서 이번에 세상에 나오신 것은 구주왕을 죽이려는 것뿐만 아니라 서요산의 한을 풀기 위함입니다.”구진철이 소리 높여 말했다.도자 손형재의 죽음을 생각하면 구진철은 지금도 분노가 극에 달했다.명색에 현문의 도자가 그렇게 함지우의 일 검에 죽었으니 이건 정말 현문의 체면을 깎는 일이었다.“구 장로님께서는 구주왕을 보신 적이 있나요?”자운각의 현지욱이 갑자기 물었다.종문은 줄곧 윤구주를 상대하려
구용산의 우뚝 솟은 궁전 앞에 도착한 세 사람은 바로 앞에 있는 종문 경비병들을 보았다.종문의 사람을 본 공수이는 함지우를 보며 말했다.“봤지? 우리 비연 누나 말이 사실이지?”함지우는 자기가 틀린 것을 알고 입을 삐죽거리며 귀찮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공수이는 계속 조롱했다.“흥! 왜 우리 누나를 안 믿는 거야? 그러니까 평생 독신으로 사는 거지!”공수이가 말하고 있을 때, 윤구주는 이미 대전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누구냐?”윤구주, 공수이, 그리고 함지우가 갑자기 대전 문 앞에 나타났을 때, 문 앞의 종문 경비병들이 큰 소리로 외쳤다.“문창정 그 놈 당장 불러!”윤구주의 입에서 차가운 말이 흘러나왔다.오늘 그는 반드시 문창정을 죽일 각오로 이곳에 왔다.그리고 그의 할머니도 구출해야 한다.하지만 경비병들은 윤구주가 문창정을 찾는다는 소리를 듣고 갑자기 얼굴빛이 변했다.“누구기에 감히 선배님의 존함을 부르는 거야?”경비병 한 명이 말을 끝내는 순간 공수이의 모습이 잔영으로 변했다.퍽!주먹이 곧장 날아갔고 그 불운한 경비병은 주먹 한 방에 바로 고깃덩어리로 되었다.“젠장, 우리 형님이 말씀하시는데 네까짓 게 감히 토를 달아? 죽으려고 환장했지.”공수이가 한 주먹에 그 경비병을 죽이자 나머지 경비병들은 갑자기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졌다.“얼른 말해. 그 늙은이 대체 어딨어? 말하지 않으면 내가 너희들 하나하나 저승으로 보내준다.”공수이는 입구에 있는 십여 명의 경비병들을 가리키며 엄하게 말했다.살기등등한 그의 모습에 주변의 경비병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저자들을 죽여!”그러자 십여 명이 동시에 공격해왔다.“어라? 이것들이 죽으려고 작정했네? 그래, 그럼 내가 도와주지.”말이 끝나자 공수이가 바로 공격했다.그는 마치 별똥별처럼 한주먹에 한 명씩 해결했고 순식간에 열 명이 넘는 경비병들이 그의 손에 죽었다.공수이가 경비병들을 모조리 죽이고 있을 때, 궁전에서 갑자기 분노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웬 놈이냐?
큰 스님까지 나서자 공수이는 냉소를 짓고 말했다.“내가 스님 말을 믿을 것 같아요? 출가자라고 해서 자기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퉤! 내가 오늘 한마디만 할게요. 만약 순순히 창정 그 늙은이를 내놓지 않으면 내가 당신들을 전부 저승으로 보내 줄 거야!”공수이의 이런 말을 들은 세 종문 멤버들은 공수이의 실력을 두려워하면서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네 이놈! 네가 팔부 동천을 열 수 있다고 해서 뭐든 네 맘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아? 우리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현문의 구진철이 나서서 호되게 말했다.“하! 내가 오늘 당신들을 제대로 혼내 줄 거야. 잘 들어. 만약 창정 그 잡놈을 내놓지 않으면 다들 죽은 목숨이야.”“건방진 놈!”이 순간 구진철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그는 일갈하며 두 손바닥을 휘둘렀다.무홍의 기운을 머금은 공포의 손 그림자가 거대한 파도처럼 공수이를 향해 몰려왔다.공수이는 차갑게 웃었다.“감히 나한테 덤벼?”말이 끝나자 공수이가 한 방 날렸다.하늘을 찌르는 권영이 바로 구진철의 장법 위에 떨어졌다.우르릉 터지는 소리와 함께 현문 구진철은 그 자리에서 공수이에 주먹에 날아갔고 입가에도 새빨간 핏자국이 흘러나왔다.“구 장로님! 조심하세요. 이건 팔부 동천입니다. 절대 방심하시면 안 돼요!”한 현문의 노자가 얼른 구진철을 부축했다.구진철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더 이상 감히 나서지 못했다.공수이의 실력은 확실히 변태적이었다.구진철이 감히 손을 쓰지 못하는 것을 보고 공수이는 조롱하며 말했다.“이봐, 늙은이. 왜 안 덤벼?”“혼자 나설 용기가 없다면 다 같이 덤벼. 어쨌든, 오늘 그 문 씨 성을 가진 잡놈을 내놓지 않으면 당신들 모두 죽은 목숨이야.”공수이는 말하면서 세 종문의 모든 강자를 가리켰다.혼자의 힘으로 세 종문에 맞서다니.공수이가 이렇게 날뛰는 것을 보니, 세 종문이 아무리 성격이 좋아도 절대 참을 수 없었다.“너 이 미친놈!”말하는 사이에 자운각 쪽의
공수이가 곧장 팔부 동천을 열자 세 종문 모두 화들짝 놀랐다.“모두 조심하십시오! 이놈이 팔부 동천을 열었어요!”구진철은 크게 소리치고 오른손을 흔들며 공격을 가했다.자운각과 만불종도 공수이의 변태적인 실력을 잘 알고 있으므로 이 순간 모두 공격에 합세했다.한편 공수이는 마치 수영하는 용의 모습 같았다.팔부 동천이 열리자 그의 속도는 바로 두 배로 증가했다.퍽!공수이의 주먹 한 방에 두 명의 현문 절정의 노자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날아갔다.펑펑.두 사람 모두 공수이의 주먹 한 방에 가슴이 찢어져 그 자리에서 참사했다.공수이는 두 명의 현문 절정을 해결한 후 갑자기 번개처럼 몸을 휙 돌려 자운각 쪽으로 날아갔다.자운각의 한 중년 절정은 공수이가 덮치는 것을 보고 놀란 기색을 보이며 두 손을 모았다. 그러자 긴 창 하나가 허공을 뚫고 나타났고 창으로 공수이의 일격을 막으려 했다.안타깝게도 긴 창이 막 찔렀을 때, 공수이의 몸에서 갑자기 거북이 등껍질 같은 황금빛 갓이 떠올랐다.금강법이었다.금강법이 나타나자 툭 하는 소리와 함께 긴 창은 곧장 금강법에 가로막혔다.이 중년 남자는 재빨리 철수했다.“감히 날 찌르고 도망가? 어림도 없지! 거기 서!”공수이의 몸이 금빛으로 반짝이더니 주먹이 그 중년 남자의 가슴에 떨어졌다.퍽!주먹 한 방이 중년 남자의 가슴을 뚫었다.이 불쌍한 자운각의 강자는 그렇게 공수이의 주먹 한 방에 죽었다.“젠장. 이 자식 너무 강해. 모두 내 명령을 따라 모여!”살심 스님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고함을 지른 그가 손에 든 금빛 지팡이를 땅을 향해 찌르자 강력한 진법의 기운이 순식간에 현장으로 퍼져나갔다.나머지 만불종 스님들도 일제히 인결을 취했고 순식간에 사방에서 하얀 빛줄기가 나타나 공수이를 에워쌌다.“이건 만불종의 항마대진이다. 네 놈이 어떻게 상대하는지 두고 보마.”“공격!”살심 스님의 외침과 함께 하얀 빛줄기에서 순간적으로 눈부신 흰 빛을 반사했다.이 하얀 빛들은 만불종 모든
한편 전투장.하늘에 가득한 광검은 강력하지만 공수이의 금강법을 뚫지 못했다.항마대진의 광검이 점점 약해지는 것을 본 공수이가 피시 웃더니 말했다.“스님들 실력이 겨우 이 정도야? 만약 그렇다면 당신들은 죽은 목숨이야!”공수이의 말이 떨어지자 갑자기 그의 몸에 있는 팔부 동천이 눈부시게 빛났다.“팔부 동천!”고함소리가 나자 그는 마치 별똥별처럼 곧장 하늘로 날아올랐다.황금빛 권영 하나가 그의 강력한 팔부 수련을 이끌고 이 대진 위에 한 방 퍼부었다.부르릉!항마대진은 마치 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한 손이 찢긴 듯 공수이의 주먹 한 방에 바로 뚫렸다.강력한 주먹의 힘은 이 항마대진을 뚫었을 뿐만 아니라, 주먹 한 방에 십여 명의 만불종 제자들이 입에서 피를 뿜으며 날아갔다.강했다. 너무 강했다.공수이의 압도적인 공격법에 이 세 종문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자. 계속 덤벼!”공수이는 항마대진을 뚫고 하늘을 찌를 듯 당당하게 외쳤다.가엾게도 이 세 종문은 더 이상 감히 나서지 못했다.“내가 마지막으로 묻겠다. 그 문창정 잡놈을 내놓지 않을 거냐?”공수이가 세 종문을 바라보며 엄하게 외쳤다.그들은 여전히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그러자 공수이의 눈에 순간 잔인한 살의가 떠올랐다.“아무도 말하지 않겠다면 다 같이 죽어야지!”“죽어!”공수이는 하늘로 번쩍 날아 올라 떨어지더니 두 주먹이 나타나는 순간, 하늘 가득한권영이 무서운 살의를 띤 채 세 종문 멤버를 덮쳤다.공수이가 살수를 하려는 순간, 하늘에서 갑자기 분노의 소리가 들려왔다.“이놈! 감히 내 종문 앞에서 멋대로 날뛰어?”이 소리가 떨어질 때 갑자기 하늘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손이 나타나 공수이를 잡으려 했다.“응?”머리 위 공포의 거수를 느낀 공수이는 몸을 휙 돌려 하늘을 찌를 듯한 거수에 한 방 날렸다.쿵!팔부 동천의 드넓은 주먹이 거수와 충돌했다.꽈르릉!마치 공간이 폭발하듯 온 하늘의 숨결이 요동치며 흔들리자 세 종문 제자들이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곧이어 하늘
현문의 4대 선조가 나타나자 흐름이 순식간에 바뀌었다.4대 선조는 창현 선조를 수반으로 하고 있었다.무서운 팔부 동천 수행이 나타나자 공간 전체가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그의 팔부 동천은 공수이의 팔부보다 더 강력했다.왜냐하면 공수이의 팔부 동천은 정혈에 의해 움직여서 비로소 팔부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눈앞의 창현 노자는 진짜 팔부였다.더 무서운 건, 그의 옆에 있는 다른 세 선조 중에 팔부가 또 한 명 있었다.나머지 두 선조는 모두 칠살 절정이었다.한꺼번에 몰려든 네 명의 현문 선조 앞에서 공수이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씩 웃었다.“어라? 도우미가 왔네?”공수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을 보았다.그의 말을 들은 구진철이 엄하게 말했다.“이놈! 감히 우리 선조 앞에서 날뛰어? 이제 네 놈이 어떻게 죽는지 두고 보겠어!”공수이는 빙긋 웃었다.“도우미가 오면 내가 너희들을 무서워할 것 같아? 퉤! 어이가 없어!”그러자 살심 스님이 입을 열었다.“이놈이 정말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감히 현문의 선조 앞에서 이렇게 건방지게 굴다니!”“살심 스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이놈은 죽어 마땅합니다.”자운각의 현지욱도 이때 입을 열었다.하늘에서 현문의 4대 선조가 모습을 드러내자 장면이 바뀌기 시작했다.“구진철이 선조를 뵙습니다.”그때 하늘에 나타난 네 명의 선조를 바라보며 구진철은 얼른 무릎을 꿇었다.“구진철, 대체 누가 우리 현문의 도자를 죽였느냐?”창현 선조가 천천히 입을 열어 물었다.“선조님께 아뢰옵니다. 우리 도자를 죽인 자는 바로 저놈입니다!”구진철은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뒤에 있는 함지우를 가리켰다.창현은 덤덤하게 함지우를 쓸어보더니 말했다.“감히 우리 현문의 도자를 죽였으니 네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아느냐?”함지우는 냉소를 지었다.“무슨 죄인 지는 모르겠고 그 현문의 도자라는 자식의 실력이 영 형편없다는 건 알아. 어찌나 형편없든지 내 검 하나도 못 받아냈으니까.”“이놈!”그러자 하늘에서 창현의 바로
함지우가 정말 서요산의 제자라는 말을 듣는 순간, 손을 쓴 그 현문 선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그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에 있던 선조, 심지어 창현까지 안색이 어두워졌다.아무도 현문 도자를 죽인 사람이 서요산의 제자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우리 현문은 서요산과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왜 현문의 도자를 죽인 것이냐?”그 선조가 엄하게 묻자 함지우가 웃으며 답했다.“왜냐하면 그 자식이 죽을만한 짓을 했거든.”“너!”함지우의 말에 그 선조는 화가 나서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눈앞에 있는 함지우의 실력은 정말 대단했다. 이는 충분히 그를 참을 수 있게 했다.그때, 선두에 선 창현 선조가 마침내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꼬마야, 난 현문의 5대 진산 선조 중 한 명이다. 말하자면 너희 서요산 검종과도 인연이 있지!”“오늘 내가 어른으로서 네게 묻겠다. 대체 무슨 이유로 현문의 도자를 죽였느냐?”창현의 목소리가 울려 퍼져 함지우의 귀에 들려왔다.“내가 방금 한 말 못 들었어? 혹시 귀가 먹었어?”그의 말에 창현 선조는 순간 안색이 변했다.자신의 이름을 내걸면 이 함지우가 조금이라도 두려워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전혀 먹히지 않았다.“꼬마야, 어른인 내가 충고하는데 서요산의 이름을 내걸고 멋대로 할 수 있다는 착각은 버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절대 섣불리 행동하지 말아라.”창현 선조가 음산한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웬 쓸데없는 말이 그렇게 많아? 싸우고 싶으면 싸우는 거지. 내가 그쪽을 무서워한다고 생각해?”함지우가 직격탄을 날렸다.그가 또 싸우겠다고 하자 옆에 있던 공수이가 말렸다.“지우 손자, 이 늙은 괴물 네 명은 내 거야. 끼어들지 마!”“바보! 이 늙은 괴물 네 명 모두 초극 후삼품 절정이라는 거 모르겠어? 네가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아?”“감히 나를 얕잡아 봐?”공수이가 버럭 화를 냈다.그는 즉시 창현과 다른 세 명의 현문 선조를 향해 외쳤다.“이봐, 늙은이들, 잘 들어. 오늘
칠살 현문 선조는 공수이의 실력이 이렇게 강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는 즉시 온몸의 내공을 동원하여 공수이의 주먹과 맞부딪쳤다.쿵!거대한 파도가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주변의 푸른 돌들이 산산조각이 났다.충격을 받은 그 현문 선조는 몸을 굽히고 몇 걸음 물러섰다. 늙은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자, 늙은이 계속 덤벼!”공수이는 환하게 웃으며 현문 선조를 마주했다.현문 선조가 다시 물러서자 창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묵현 사제!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되네. 이 내공은 이미 팔부 동천에 들어섰어!”창현의 말에 방금 물러난 절정 노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그는 오늘 정말 운이 없었다.방금 함지우의 비검에 찔려 죽을 뻔한 것도 모자라 지금은 공수이에게 크게 한 방 먹었다.명색에 현문 선조인 자신의 신분을 생각하니 그는 정말 머리를 박아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네 놈 실력이 꽤 괜찮네. 자, 내가 한 수 가르쳐주마!”이번에 말한 사람은 장검을 메고 있던 키가 작은 사람이었는데 그 역시 현문 선조 중 한 명이었다.게다가 진정한 팔부 동천의 내공을 가진 자였다.그는 말하면서 손가락을 하늘로 뻗었다.슉!등에 업힌 장검이 칼집에서 튀어나와 그의 손에 놓였다.사방이 갑자기 끝없는 검기로 가득 찼다.그가 장검을 한 번 쓱 휘두르자 하늘 가득한 검기가 검은 폭풍으로 변하여 바로 공수이를 감쌌다.공수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로 훌쩍 날아올랐고 곧이어 두 주먹을 동시에 날렸다.퍽퍽!두 개의 권영이 상대방의 검 끝에 떨어졌지만 상대방의 검 그림자는 약간 흔들리더니 이내 공수이를 다시 찔렀다.두 개의 그림자가 하늘에서 교차했다.키 작은 현문 선조의 실력이 공수이를 능가한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설한검술! 공격!”쿵!키 작은 현문 선조의 장검이 하늘로 치솟자 순식간에 극도로 찬 기운이 감돌았다.그 한기가 공간을 얼린 것 같고 심지어 땅에 서리가 내렸다.공수이는 한기에 휩싸여 몸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그러자 그는 서둘
단 한 걸음,그 한 걸음만 넘기면, 그는 곧 성급 바로 직전 경지에 이른다.그리고 그 마지막 문턱을 박살내는 순간 반쯤 성인이 된 경지, 반성급이다!지금 이 자리, 그 반성급 경지에 선 자는 바로 인마라고 불리는 무명이었다.“과연... 화진의 인황, 구주왕이라 불릴 자격은 있군. 하지만 너도 알겠지. 지금 네 수준으론 몸을 직접 이 판에 던지지 않는 이상 나랑 맞붙을 자격조차 없어. 네가 그 잘난 원신출체를 어떻게 하겠다는지 구경이나 해보자고. ”무명이 입꼬리를 비틀며 코웃음쳤다.팔기귀일에 도달한 윤구주의 전투력은 이미 황의 지경을 뛰어넘었다.하지만 무명과의 경지 차이는 여전히 너무 컸다.실력은 분명 엄청났지만 격이 다르였다.지금 상태로도 보통의 황자의 경지까지 초월한 상태지만 무명을 상대하긴 아직 한참 부족했다.심지어 무명이랑 싸울 실력은커녕 참마검조차 손에 제대로 못 잡는 게 현실이었다.“팔기로 부족하다면... 제구기는 어때? 구기:적선!”부우우우웅!윤구주의 온몸을 하얀 선기가 감싸는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웃고 있던 무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뭐라고? 이건 네 따위가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잖아! ”그 순간, 무명조차 숨을 삼켰다.이건 상식의 틀을 깨부수는 광경이었다.근대에 들어서면서 도에 대한 수련는 사실상 약해졌다.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세상에 흐르는 천지영기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봉신전쟁 당시, 상상을 초월하는 영기가 소모됐고 그 전쟁이 끝난 후 곤륜구역은 세상의 영기 90%를 신계에 봉인해버렸다.거기서 마음껏 영기를 탕진한 것도 모자라 바깥의 산수들까지 무분별하게 빨아들인 탓에세상의 영기는 걷잡을 수 없이 줄어들고 말았다.결국 세상은 고위 수련자가 태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그래서 화진에선 500년에 한 번 황자가 나올까 말까 할 정도이고 황자의 경지에 도달하는 건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었다.임정설이 황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처음부터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윤구주를 돕기 위해 왕
마기가 검종 제자들의 혼백에 침투하자 그 순간 제자들의 몸에서 시커먼 마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이를 목격한 장인 대진인은 망설임 없이 즉시 결단을 내렸다. 오염된 제자들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정화해 버린 것이다.“모든 제자들아, 입문 첫날 내가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서요산은 찬란한 성지 화진 정통의 계승지다. 정은 사악함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정은 사악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은 바로 서요산 제자들이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는 도의였다.입문과 동시에 깨달음을 얻은 그들은 언젠가 반드시 도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저 화진 정통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서였다.그 순간 진요탑 외곽에서는 7대 진인을 중심으로 전 종문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진요탑을 사수하고 있었다.하늘을 뒤덮을 듯한 마기의 기세는 점점 거세져 어느새 검종의 경내 전역을 삼켜버렸다.검종 제자들은 마기를 막아내면서도 동시에 진요탑의 결계를 유지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정도를 지키는 일은 그만큼 고통스럽고 힘든 투쟁이었다.산 아래 상황도 마찬가지로 치열했다.온갖 요괴와 귀신들이 들이닥치는 가운데 임정설은 황운을 등에 업고 이씨 가문의 국운을 모두 모아 홀로 수백만 마기를 막아서고 있었다.백호는 마인으로 완전히 변신해 광란의 충격 속으로 몸을 던졌고, 스스로 마를 품은 채 적진을 난도질했다.청해는 천뢰신술을 펼쳐 수만 개의 천뢰를 무기로 변환시켜 온갖 사도와 악귀를 쓸어내기 시작했다.그 무렵 진요탑 내부에서 풍무극의 기세는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구주야, 내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 내 500년 수련의 혼을 너에게 바치겠다."”풍무극의 준비는 이미 완료되었다.그는 미리 준비해 둔 제천 법기를 꺼냈고 전법이 발동되는 순간 그의 육신은 산산조각 부서졌다.그의 정기와 천지 정기를 모두 품은 찬란한 진신 영혼은 한 자루의 참마검으로 변해 윤구주 앞에 떠올랐다.“풍 종주...” 윤구주는 입술을 깨물었다.슬프고 아쉬
윤구주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국운의 기운이 그의 발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그가 진요탑의 문에 도달했을 무렵 모든 국운이 윤구주에게 집중되었다.윤구주의 주변으로는 천인신광이 펼쳐져 있었다.이 순간만큼은 그가 천지의 주재자 화진의 영겁을 관통한 유일한 존재였다.윤구주는 홀로 진요탑 안으로 들어섰다.겉보기에 거대한 산 같았던 진요탑의 내부는 참혹한 말세의 풍경이었다. 땅은 끝없이 펼쳐진 용암으로 뒤덮여 있었고 하늘에서는 강줄기가 거꾸로 흘러내리고 있었다.불과 물이 충돌할 때마다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거꾸로 흐르는 강물 위에 한 노인이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백발이 성성한 그 인물은 다름 아닌 서요산 검종의 종주였다.밖에서 보이던 강건한 중년의 모습은 단지 화신에 불과했으며, 본체는 수백 년 전부터 이 진요탑에서 마인을 봉인해 왔다.서요산 검종 종주는 극도로 지쳐 있었고 이제는 마지막 호흡으로 버티고 있었다.“드디어 왔구나.” 서요산 검종 종주는 허약한 전음으로 말을 건넸다.“오백 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종주님.” 윤구주는 고개를 숙였다.풍무극은 현 서요산의 종주이자 당대 최고의 영웅, 화진 제일 검으로 불리던 남자였다.원래는 풍속을 다루는 수련자로 젊은 시절엔 검 하나로 화진을 호령한 사내로 알려졌다.그의 검은 아무도 궤적을 볼 수 없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500년 전 마인이 봉인되고 서요산의 조사가 승천한 후, 풍무극은 서요산의 거자로서 종주의 자리를 이어받았다.그날 이후 진요탑에 몸을 묻고 마인과의 싸움을 500년간 지속해 왔다.풍을 다루던 그였지만 지속적인 봉인을 위해 익숙하지 않은 수속까지 수련하며 지금까지 버텨왔다.그가 마도에 빠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이었다.“그래도 괜찮다. 다행히 이 시대에 또다시 인황이 나왔으니. 화진은 연달아 두 명의 인황을 배출했다. 임정설이 인황에 등극한 지금 쇠락하던 이씨 가문의 국운이 다시 살아났다. 그가 천지의
마인이 출현하면 곤륜 구역조차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서요산 검종의 진요탑은 이미 오백 년 동안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이는 곧 그 마인이 오백 년 동안 진요탑 안에 봉인되어 있었음을 의미했다.“우리가 가진 유일한 이점은 저 마인이 지난 오백 년간 수련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 오백 년 동안 분명 무언가를 '깨달았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정도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도가 존재하는 법입니다. 만약 그가 이곳을 벗어나 다시 한번 돌파에 성공하여 진정한 성인의 경지에 오른다면…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 우리 종문의 선대 종주께서 이 마인을 직접 봉인하셨습니다. 하지만 선대 종주께서는 진요탑만으로는 그를 완전히 봉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아셨지요. 그래서 마침내 구천으로 비상하셔서 바깥 세계에 존재한다는 신기를 찾기 위해 떠나신 것입니다.”장인 대진인이 비밀을 털어놓자 임정설은 왜 그 옛날 서요산 검종을 창립한 선조가 갑자기 사라졌는지 이해했다.“구천을 비상했다고? 전설 속 그 이야기 설마 전부 사실이었단 말인가? 이 세상 위에 더 위대한 세계가 있다는 건가?” 임정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들은 바로는 성인이란 육지에서 신선이 된 자를 이르는 말이고 준성은 그보다 한 단계 아래 반쯤 신선이 된 존재라 하더군요. 우리보다 더 풍부한 영기의 세계가 과연 존재하는지는 이 몸 역시 감히 짐작할 수 없습니다.” 장인 대진인은 고개를 저었다.그때였다.진요탑이 거칠게 흔들렸고 모든 호법 제자의 얼굴이 딱딱해졌다.수련이 부족한 제자 몇몇은 그 자리에서 마기의 침식으로 피를 토했다.“모든 제자에게 고한다. 나와 함께 현문을 수호하라.” 장인 대진인이 친히 자리에 앉아 온 종문의 기운을 모아 마인을 억제하기 시작했다.마인은 일시적으로 제압되었지만 산 밖의 요괴들과 악귀들은 마기의 부름을 받아 사방팔방에서 서요산으로 몰려들고 있었다.임정설은 이제 자신이 이곳에 온 진짜 이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