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모는 그제야 살기가 가라앉았다.“고통을 맛보게 하겠다고? 너야말로 고통을 맛봐야 하는 거 아니고? 수련 중이었어? 좋아! 너를 괴롭히면서 마음을 어지럽혀야지.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면 죽겠지? 현모 군신! 잘 봐! 내가 너의 왕을 어떻게 괴롭히는지.”선우진웅의 음령 육체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불꽃이 타오르면서 극한의 차가운 기운을 방출했다.현병이 수천 개의 얼음 못으로 응축되어 선우진웅의 조종 아래 일제히 윤구주를 향해 날아왔다.“봉왕팔기! 술자결!”윤구주는 주문을 외치가 맹렬한 불꽃이 타오르면서 얼음 못이 순식간에 모두 녹아버렸다.“좀 하는데? 그런데 이거로는 부족할 거야. 윤구주! 내가 구오 지존일때는 승산이 30%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나도 왕도로 승급했다고. 왕도 천술을 경험해 본 적 있어? 오늘 제대로 보여줄게.”음기가 얼음으로 응집되어 현병이 다시 뼈로 조합되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개의 얼음 해골이 좌우로 나타났다.수백 개의 해골은 하나같이 초입 구오 지존 신급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일시적인 음산한 기운이 윤구주의 기술을 압도했다.“천술? 정말 웃기네. 내가 곤륜 구역에서 수련한 걸 몰랐어? 소위 천술은 하늘의 영기를 자신의 것으로 삼은 것이지. 제가 사용하는 것은 음산한 기운일 뿐 천술이라 말할 수 없어. 봉왕팔기! 신주이화!”윤구주가 한 손으로 인을 만들자 표면에 떠있던 불꽃이 어두운 금색으로 승화하여 불길이 일렁거렸다. 그러다 마치 파도가 치듯이 맹렬한 불꽃이 정점으로 치솟아 천옥 진법을 충격하에 천장의 진법 문자가 드러났다. 전체가 흔들리는 것이 천옥 진법마저 윤구주의 기술을 맞지 못하는 듯했다.“윤구주 안에서 뭘 하는 거지? 나도 이제 천옥 진법을 조종할 수 있는 건가?”천옥 밖을 지키고 있던 수옥인이 상황을 감지하고 천옥 진법을 바로 작동시켰다. 천옥에 있던 비석이 어두운 빛을 발사하면서 수옥인의 환영이 천옥에 나타났다.그는 한눈에 선우진웅을 알아보았지만 임세현은 보이지 않았다.“어르신
금화가 세상을 태우다!선우진웅의 음체는 천화에 의해 타오르며 온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검은 연기는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원래 거대한 음체는 빠르게 축소되고 말았다.“하하. 금화로 음령을 처치하다니. 더군다나 악성 수련자였으니!”수옥인이 깔깔 웃으며 말했다.극전 신급의 가장 큰 장점은 육체가 파괴되더라도 영혼은 계속 수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혼이 천지의 영기를 지속해서 흡수할 수 있다면 계속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고, 어떤 의미에서 불사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하지만 단점도 뚜렷했다. 육체가 없으면 수련 속도가 극히 느려져 몇백 년이 걸려도 동급 수련자가 1년 동안 얻은 수련 성과에 미치지 못했다.형태를 유지하려면 지속해서 천지 영기를 흡수해야 했지만 천지 영기가 음양 두 가지로 나뉘어져 대부분의 영혼은 천지 음기만 흡수했다.천지 양기를 흡수하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양기가 너무 강렬하면 수련에는 유리해도 영혼의 형태를 파괴할 수 있었다.어차피 영혼의 본체가 음기에 속했기 때문이다.금화는 양기에 속하므로 전문적으로 음령 악신을 제압할 수 있었다.“이런 제기랄! 귀신족이 분명 천술이라고 말했는데? 윤구주가 사용한 것은 기술일 뿐인데 천술에 속하지도 않잖아! 그런데 왜 귀술이 쓸모없는 거지?”선우진웅은 속은 것 같았다.“병신. 귀신족의 말도 믿어? 귀신족이 정말 믿을만하다면 우리 화진도 그들을 멸망시키기 위해 애쓰지 않았겠지.”윤구주가 피식 웃었다.“그 입 다물어! 귀술은 쓸모가 없다지만 내가 부성국 출신인 것은 잊지 마! 나는 부성국 무도 제1인자라고!”선우진웅은 기세가 확 바뀌더니 무인의 기운이 온몸에서 퍼져 나왔다. 그는 본능적으로 칼을 뽑으려 했지만 이미 육체가 없어서 무기도 어디에 잃어버렸는지 몰랐다.선우진웅은 급한 나머지 주먹과 발로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선우진웅이 귀술을 포기하자 금화가 그에게 주는 피해도 줄어들었다. 비록 금화가 여전히 그의 음체를 갉아먹고 있지만 탈출하려면 그 범위를 벗어나거나 윤구주를 죽일
“이걸로 돌파하다니. 솔직히 말해서 넌 곤륜 구역의 어떤 구오 지존도 이길 수 없어. 가장 황당한 것은 네가 돌파하기 전에는 육신도 없었다는 거야. 봉신 시대였다면 너 같은 놈은 산신 중에서도 최하급 신이었을 거야.”수옥인은 무지막지하게 선우진웅을 조롱했다.선우진웅은 그의 말에 철저히 정신을 놓고 말았다.“이런 제기랄! 너 같은 수옥인 주제에 날 평가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선우진웅은 재빨리 잔소리하는 수옥인부터 죽이려 했다.“윤구주! 날 살려줘!”수옥인은 겁을 먹고 윤구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하지만 윤구주는 꿈쩍도 하지 않고 수옥인이 찢기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선우진웅이 분풀이하려고 할때, 조각으로 찢긴 수옥인은 거품으로 변해 사라지고 말았다.“분신인가?”선우진웅은 어안이 벙벙했다.“아니. 그럴만한 실력이 어디 있다고. 이 진법에 의해 펼쳐진 그림자일 뿐이야.”윤구주가 담담하게 말했다.이때 수옥인의 그림자가 다시 모이면서 윤구주가 자신을 외면했다고 탓했다.“첫째, 내가 몇번을 말해. 나를 조상님이라고 부르라고. 둘째, 너의 본체가 진법의 핵심 쪽에 있어서 너를 죽이려면 먼저 진법부터 풀어야 해. 짐승보다도 못한 자식이 너를 해칠 수 있겠어?”윤구주가 입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수옥인은 머리를 긁적이며 뻘쭘한 표정을 지었고, 선우진웅은 얼굴이 창백해지고 말았다.‘아무리 그래도 내가 무신인데 인정하지 못할망정 나를 짐승보다도 못한 놈이라고 했어?’“윤구주! 이 도덕도 없는 자식! 화진 사람들은 도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선우진웅은 긴장한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조용히 해! 너 같은 짐승보다도 못한 놈이 나랑 도덕을 논해? 30만 백성을 학살할 때는 도덕을 개나 줘버렸어?”윤구주의 천둥 같은 외침에 선우진웅을 이리저리 휘청거리며 제대로 서지 못했다.그러더니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잡종 같은 인간들. 우리 용사들도 얼마나 죽었는데 도리를 따질 거 뭐 있어. 이미 항복할 기회를 줬는데 그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지
“윤구주! 네까짓 게 나를 굴복시키려고? 이런 제기랄! 어디 한번 부성국 무술을 보여줘야겠어! 부성국의 무술은 천하무적이거든!”선우진웅은 귀신 소리를 내면서 억지로 음령 사체의 절반을 벗겨냈다.악체를 칼로 삼아 윤구주를 향해 휘둘렀다.“귀무참!”이때 냉기가 몰아치고 차가운 빛이 스며들었다.윤구주는 여전히 검의로 반격했고, 손가락을 휘두르자 검 빛이 반짝거렸다.칼과 검이 맞닿아 청량한 금속 소리를 냈다.쨍그랑!칼과 검이 충돌하는 사이 불꽃이 튀었다.선우진웅의 검도로 만만치 않았으면 확실히 검법은 화진에서 최상급으로 여겨질 정도였다.샤샥!두 사람은 지면에서 하늘로 날아올랐고, 윤구주의 검기는 용처럼 휘몰아치며 긴 무지개를 그렸다.선우진웅의 칼은 독사처럼 잔인했고, 필살기마다 살기가 느껴졌다.두 사람의 움직임 속도가 빠르다면 검과 칼의 속도는 그보다도 더 빨랐다. 심지어 수옥인조차도 두 사람의 움직임을 전혀 볼 수 없을 정도였다.사방의 절벽에서는 계속해서 낙석이 굴러떨어졌고, 절벽에는 수만 개의 칼과 검의 자국이 새겨져 있었다.“선우결, 질풍참!”선우진웅은 다시 한번 칼 기술을 펼쳤고, 그 기운은 광풍을 일으켰다. 이 폭풍은 순순히 칼의 기운으로 형성된 것으로 한번 폭풍에 휘말리면 순식간에 조각날 수 있었다.“어검술!”윤구주가 손가락을 위로 튕기자 순간적으로 기류를 일으켰다.불타는 기류가 선우진웅의 칼 기술을 막는 동시에 윤구주가 검을 휘두르자 폭풍을 두 동강 내고 말았다.두 동강 난 폭풍 중에 위로 올라간 폭풍은 진법에 의해 막혀버렸고, 아래로 내려간 폭풍은 높이가 10미터 가까이 되는 바위를 산산조각 내고 말았다.“이런 제기랄! 귀륜참!”선우진웅이 한마디 외치자 수백 개의 환영이 나타나 하나같이 칼을 들고 윤구주를 향해 덮쳤다.“이번엔 어떻게 막을지 지켜볼 거야!”선우진웅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지만 그는 바로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윤구주의 검술을 막을 수 없다면 충분히 다른 기술을 사용할 수 있
“임세현도 이것때문에 패배했거든. 너는 이제 구오 지존에 불과한데 어떻게 막으려고 그래? 지금 다른 기술을 사용하려고 해도 이미 늦었어!”선우진웅은 음흉한 눈빛을 하고서 크게 웃었다.“걱정하지 마! 검술만 사용할 거니까! 어검술! 인검합일!”위잉!갑자기 윤구주가 격렬하게 떨기 시작하더니 주변 공간이 어떤 힘에 의해 왜곡되는 것 같았다.샤샥!이어 윤구주의 형체가 흐릿해지면서 수많은 검기가 몸을 뚫고 나왔다.이 장면에 선우진웅을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이게 뭐야! 검으로 변신한 거야? 검의를 장악한 거냐고!”“그것도 알고 있어? 맞아. 이것이 바로 화진 검도에서 말하는 진정한 인검합일이야!”이때 깊은 산속 천옥 진법의 중심에 앉아있던 수옥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무서운 놈이네. 비록 내가 저 현장에 있는 건 아니지만 검의에 압도당할 정도야. 검술이 나오는 순간 나는 이미 죽은 사람으로 변한 기분이었어. 견민기가 자신감이 넘쳤던 이유가 있었어. 윤구주가 바로 믿을 구석이었네! 현재까지 진정으로 검과 하나가 된 사람은 단 세 명뿐인데 한 명은 검도의 검주인 김도현, 다른 한 명은 서해의 검신인 류경표,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구주왕인 윤구주. 그런데 제일 무서운 것은 앞서 두 사람은 최소 오백 년을 수련하여 이미 천하무적이 되어 신들을 조롱할 정도의 인물이잖아. 윤구주가 수련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배 속에 있었던 시간까지 계산해도 30년은 초과하지 않잖아!”견민기는 어떻게 윤구주를 복종하게 되었을까?바로 윤구주와 김도현이 한 판 붙었을 때였다.그때 곤륜 구역을 발칵 뒤집어 수많은 신들이 윤구주의 검의에 겁을 먹었었다.그 결과는 더욱 놀라웠는데 김도현이 미세한 차이로 승리하게 되었다.비록 김도현이 승리하긴 했지만 윤구주가 수련한지 얼마나 되었는가? 윤구주는 패배했어도 영광스러운 패배였다.현재 윤구주가 검과 하나가 된 순간 이미 천하무적이었다.검술이 아직 발휘되지도 않았는데 선우진웅은 이미 패배한 거나 마찬가지였다.“윤구주! 내가 졌어
선우진웅의 동공은 갑자기 삼각형 모양의 뱀 눈동자처럼 변하며 신비로운 빛을 뿜어냈다. 커다란 검은 기운은 하늘로 빠르게 뿜어져 나가 눈 깜짝할 사이에 윤구주 앞에 도달했다. 윤구주가 검은 기운의 영향으로 공중에 멈춰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본 선우진웅은 매우 흥분했다. ‘됐다.’ “이런! 이 늙은 자식, 무덕을 안 지키다니! 검술만 쓰기로 했잖아? 이렇게 비겁한 수를 쓰다니!” 수옥인은 화가 나서 욕을 퍼부었다. ‘이렇게 나온다는 거지?’ “멍청한 놈, 전쟁에서는 속임수를 써도 괜찮아! 이건 너희 화진 사람들의 병법이잖아!” 선우진웅은 낮은 목소리로 외치며 거의 모든 음령사체를 검도로 만들었다. 칠흑 같은 무시무시한 검도가 윤구주를 향해 날아갔다. 이 공격에 명중한다면 아무리 강력한 존재라도 죽을 것이다. “구주왕님, 조심해!” 천옥 전법을 지키고 있는 수옥인은 매우 긴장했다. ‘반드시 막아내야 해.’ 검도가 가까워지는데도 윤구주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마치 정말로 이 요술에 묶여 있는 것 같았다. “이건 내 부성 금지술이야. 이 술법은 3분간만 가둘 수 있지. 3분은 짧지만 윤구주를 죽이기에는 충분해!” 선우진웅은 크게 웃었다. 그때 갑자기 음체가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혼체는 거의 투명해져 매우 약해졌다. 이 일격이 성공적으로 윤구주를 죽인다 해도 선우진웅 역시 반쯤 죽은 상태가 될 것이다. “거의 모든 음체를 소모했지만 그 정도의 가치는 있어. 우리 부성국의 무술이 최고야. 화진의 무술은 개돼지만도 못해!” 선우진웅은 윤구주를 빤히 응시하며 그가 죽는 것을 직접 보려고 했다. 검도가 몸에 가까워져 차가운 칼날이 윤구주의 명문에 거의 닿을 때쯤이었다. ‘슈웅!’ 윤구주는 갑자기 손을 들어 선우진웅이 대부분의 음체를 사용해 발사한 검도를 아주 가볍게 막아냈다. 그리고 한쪽으로 튕겨내어 검도를 절벽 쪽으로 날려 보냈다. 폭발음과 함께 100미터 크기의 구덩이가 생겼다. 검도는 윤구주의 부하인 장군이 폐관 중인 곳에서
“네가 하늘의 뜻을 거슬러 오늘 나를 죽인다면 곤륜 구역이 너를 천옥에서 살려둘 것 같아?” 깨어난 선우진웅은 곤륜 구역과 문씨 가문을 향해 욕을 퍼부었다. “곤륜 구역과 문씨 가문은 네가 욕할 대상이 아니야. 지금 당장 엎드려 반성해!” 윤구주는 손을 내리쳤다. 선우진웅은 전성기 때도 윤구주에게 제압을 당했던 터라 지금 같은 상태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그는 쿵 소리와 함께 땅에 얼굴을 박았다. “날 죽이진 말아줘! 복수를 원하는 거 아니었어? 난 문씨 가문이 무슨 꿍꿍이인지 알고 있어. 저 빌어먹을 문씨 가문이 너를 죽인 후 우리 부성국이 화진에 진출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어. 이제 보니 모두 거짓말이었어! 문아름은 이미 우리 부성국 군사 정권의 절반을 장악했어. 그 여자는 일석이조를 노리고 있지. 너를 죽이고 나를 제거해 우리 부성국의 국운을 빼앗으려는 거야. 내 목숨만 살려줘. 나도 어느 정도 막강한 실력을 갖췄으니 내가 너의 복수를 도울 수 있어.” 선우진웅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윤구주에게 목숨을 구걸했다. 그 말을 듣고 윤구주는 웃음을 터뜨렸다. “너희 부성국은 무사도를 숭상한다며? 항복을 수치로 여기지 않아? 왜 네놈의 의지는 이렇게 약해? 아직 죽이지도 않았는데 벌써 겁을 먹었네? 이미 없는 목숨인 주제에 아직도 죽음을 두려워하다니. 넌 원래부터 겁쟁이였어. 약한 자를 괴롭히고 강한 자를 두려워하지. 자기 자신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바로 너희 부성국의 상류층이다. 게다가 부성국은 백 년 전에 전패한 이후로 국운이 남아있기나 해? 온 세상이 너희 부성국이 어떤 놈들인지 알고 있어. 화진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도 너희를 용납하지 않을 거야. 한 나라가 이 지경까지 몰려 세상의 멸시를 받는 건 너희 부성국뿐일 거야.” 선우진웅은 치욕스러웠지만 목숨을 걸고 분노를 억눌렀다. 하지만 윤구주가 말을 마치고 검의 기운을 거두며 더 이상 그를 공격하지 않자 그의 표정이 밝아졌다. ‘흥, 말로는 그럴듯하게 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한 마리의 절세 살수가 깨어났다. 살기가 가득 찼고 천상의 이변이 일어났다. 천옥의 창문을 통해 바라본 밖의 하늘은 짙은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그 먹구름은 네 발 달린 천수의 형상을 이루었고 네 발로 천지를 밟고 있어 꽤 무서웠다. “출관했군.” 윤구주는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 ‘역시나 나를 실망하게 하지 않네.’ 키가 2미터 20센티미터 정도 되는 한 사람이 동굴에서 걸어 나왔다. 온몸이 푸른색이며 폭발적인 근육은 현철처럼 견고하고 부서지지 않을 듯했다. 이 사람은 단지 모습만 봐도 사람을 겁먹게 할 만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다소 청초했다. 그리고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에는 약간의 음기가 느껴졌다. 그 사람은 한 걸음 내디뎌 동굴을 빠져나오더니 ‘쿵’ 소리와 함께 백 미터 절벽에서 떨어졌다. 그는 땅에 부딪혀 수 미터의 큰 구멍을 냈다.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면 살아있을 사람이 없다. 하지만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구덩이에서 세 걸음 만에 빠르게 걸어 나왔다. 그가 지나가며 일으킨 비린내 나는 바람과 그 살기는 숨을 쉬기조차 힘들게 했다. 천옥 전법의 핵심에 있던 수옥인도 너무 놀라서 바지에 지릴 뻔했다. “젠장! 윤구주의 부하들은 다 살수야. 윤구주만이 이런 괴물들을 다룰 수 있어.” 수옥인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쿵!’ 그 사람은 윤구주 앞에 멈추었다. 이 거인과 비교하자면 윤구주는 키나 체형 모두 그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보였고 약해 보였다. 심지어 기세조차 윤구주를 압도했다. 하지만 그렇게 서 있기만 해도 사람을 겁먹게 할 만한 살수가 윤구주를 보자 주저 없이 한쪽 무릎을 꿇어 경의를 표했다. “구주왕님! 현모가 무능하여 왕께서 직접 나서셔야 했습니다. 제가 발목을 잡았어요.” 현모, 윤구주의 부하인 4대 군신. 전에 윤구주가 왕으로 봉해졌을 때 현모는 화진 남부 전역의 부총장으로 승진하여 대장 계급을 달았다. 그리고 남양 제국들을 견제하는 임무를 맡았다. 하지만 윤구주가 사고를 당한 후 현모도 연
단 한 걸음,그 한 걸음만 넘기면, 그는 곧 성급 바로 직전 경지에 이른다.그리고 그 마지막 문턱을 박살내는 순간 반쯤 성인이 된 경지, 반성급이다!지금 이 자리, 그 반성급 경지에 선 자는 바로 인마라고 불리는 무명이었다.“과연... 화진의 인황, 구주왕이라 불릴 자격은 있군. 하지만 너도 알겠지. 지금 네 수준으론 몸을 직접 이 판에 던지지 않는 이상 나랑 맞붙을 자격조차 없어. 네가 그 잘난 원신출체를 어떻게 하겠다는지 구경이나 해보자고. ”무명이 입꼬리를 비틀며 코웃음쳤다.팔기귀일에 도달한 윤구주의 전투력은 이미 황의 지경을 뛰어넘었다.하지만 무명과의 경지 차이는 여전히 너무 컸다.실력은 분명 엄청났지만 격이 다르였다.지금 상태로도 보통의 황자의 경지까지 초월한 상태지만 무명을 상대하긴 아직 한참 부족했다.심지어 무명이랑 싸울 실력은커녕 참마검조차 손에 제대로 못 잡는 게 현실이었다.“팔기로 부족하다면... 제구기는 어때? 구기:적선!”부우우우웅!윤구주의 온몸을 하얀 선기가 감싸는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웃고 있던 무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뭐라고? 이건 네 따위가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잖아! ”그 순간, 무명조차 숨을 삼켰다.이건 상식의 틀을 깨부수는 광경이었다.근대에 들어서면서 도에 대한 수련는 사실상 약해졌다.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세상에 흐르는 천지영기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봉신전쟁 당시, 상상을 초월하는 영기가 소모됐고 그 전쟁이 끝난 후 곤륜구역은 세상의 영기 90%를 신계에 봉인해버렸다.거기서 마음껏 영기를 탕진한 것도 모자라 바깥의 산수들까지 무분별하게 빨아들인 탓에세상의 영기는 걷잡을 수 없이 줄어들고 말았다.결국 세상은 고위 수련자가 태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그래서 화진에선 500년에 한 번 황자가 나올까 말까 할 정도이고 황자의 경지에 도달하는 건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었다.임정설이 황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처음부터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윤구주를 돕기 위해 왕
마기가 검종 제자들의 혼백에 침투하자 그 순간 제자들의 몸에서 시커먼 마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이를 목격한 장인 대진인은 망설임 없이 즉시 결단을 내렸다. 오염된 제자들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정화해 버린 것이다.“모든 제자들아, 입문 첫날 내가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서요산은 찬란한 성지 화진 정통의 계승지다. 정은 사악함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정은 사악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은 바로 서요산 제자들이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는 도의였다.입문과 동시에 깨달음을 얻은 그들은 언젠가 반드시 도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저 화진 정통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서였다.그 순간 진요탑 외곽에서는 7대 진인을 중심으로 전 종문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진요탑을 사수하고 있었다.하늘을 뒤덮을 듯한 마기의 기세는 점점 거세져 어느새 검종의 경내 전역을 삼켜버렸다.검종 제자들은 마기를 막아내면서도 동시에 진요탑의 결계를 유지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정도를 지키는 일은 그만큼 고통스럽고 힘든 투쟁이었다.산 아래 상황도 마찬가지로 치열했다.온갖 요괴와 귀신들이 들이닥치는 가운데 임정설은 황운을 등에 업고 이씨 가문의 국운을 모두 모아 홀로 수백만 마기를 막아서고 있었다.백호는 마인으로 완전히 변신해 광란의 충격 속으로 몸을 던졌고, 스스로 마를 품은 채 적진을 난도질했다.청해는 천뢰신술을 펼쳐 수만 개의 천뢰를 무기로 변환시켜 온갖 사도와 악귀를 쓸어내기 시작했다.그 무렵 진요탑 내부에서 풍무극의 기세는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구주야, 내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 내 500년 수련의 혼을 너에게 바치겠다."”풍무극의 준비는 이미 완료되었다.그는 미리 준비해 둔 제천 법기를 꺼냈고 전법이 발동되는 순간 그의 육신은 산산조각 부서졌다.그의 정기와 천지 정기를 모두 품은 찬란한 진신 영혼은 한 자루의 참마검으로 변해 윤구주 앞에 떠올랐다.“풍 종주...” 윤구주는 입술을 깨물었다.슬프고 아쉬
윤구주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국운의 기운이 그의 발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그가 진요탑의 문에 도달했을 무렵 모든 국운이 윤구주에게 집중되었다.윤구주의 주변으로는 천인신광이 펼쳐져 있었다.이 순간만큼은 그가 천지의 주재자 화진의 영겁을 관통한 유일한 존재였다.윤구주는 홀로 진요탑 안으로 들어섰다.겉보기에 거대한 산 같았던 진요탑의 내부는 참혹한 말세의 풍경이었다. 땅은 끝없이 펼쳐진 용암으로 뒤덮여 있었고 하늘에서는 강줄기가 거꾸로 흘러내리고 있었다.불과 물이 충돌할 때마다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거꾸로 흐르는 강물 위에 한 노인이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백발이 성성한 그 인물은 다름 아닌 서요산 검종의 종주였다.밖에서 보이던 강건한 중년의 모습은 단지 화신에 불과했으며, 본체는 수백 년 전부터 이 진요탑에서 마인을 봉인해 왔다.서요산 검종 종주는 극도로 지쳐 있었고 이제는 마지막 호흡으로 버티고 있었다.“드디어 왔구나.” 서요산 검종 종주는 허약한 전음으로 말을 건넸다.“오백 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종주님.” 윤구주는 고개를 숙였다.풍무극은 현 서요산의 종주이자 당대 최고의 영웅, 화진 제일 검으로 불리던 남자였다.원래는 풍속을 다루는 수련자로 젊은 시절엔 검 하나로 화진을 호령한 사내로 알려졌다.그의 검은 아무도 궤적을 볼 수 없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500년 전 마인이 봉인되고 서요산의 조사가 승천한 후, 풍무극은 서요산의 거자로서 종주의 자리를 이어받았다.그날 이후 진요탑에 몸을 묻고 마인과의 싸움을 500년간 지속해 왔다.풍을 다루던 그였지만 지속적인 봉인을 위해 익숙하지 않은 수속까지 수련하며 지금까지 버텨왔다.그가 마도에 빠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이었다.“그래도 괜찮다. 다행히 이 시대에 또다시 인황이 나왔으니. 화진은 연달아 두 명의 인황을 배출했다. 임정설이 인황에 등극한 지금 쇠락하던 이씨 가문의 국운이 다시 살아났다. 그가 천지의
마인이 출현하면 곤륜 구역조차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서요산 검종의 진요탑은 이미 오백 년 동안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이는 곧 그 마인이 오백 년 동안 진요탑 안에 봉인되어 있었음을 의미했다.“우리가 가진 유일한 이점은 저 마인이 지난 오백 년간 수련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 오백 년 동안 분명 무언가를 '깨달았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정도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도가 존재하는 법입니다. 만약 그가 이곳을 벗어나 다시 한번 돌파에 성공하여 진정한 성인의 경지에 오른다면…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 우리 종문의 선대 종주께서 이 마인을 직접 봉인하셨습니다. 하지만 선대 종주께서는 진요탑만으로는 그를 완전히 봉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아셨지요. 그래서 마침내 구천으로 비상하셔서 바깥 세계에 존재한다는 신기를 찾기 위해 떠나신 것입니다.”장인 대진인이 비밀을 털어놓자 임정설은 왜 그 옛날 서요산 검종을 창립한 선조가 갑자기 사라졌는지 이해했다.“구천을 비상했다고? 전설 속 그 이야기 설마 전부 사실이었단 말인가? 이 세상 위에 더 위대한 세계가 있다는 건가?” 임정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들은 바로는 성인이란 육지에서 신선이 된 자를 이르는 말이고 준성은 그보다 한 단계 아래 반쯤 신선이 된 존재라 하더군요. 우리보다 더 풍부한 영기의 세계가 과연 존재하는지는 이 몸 역시 감히 짐작할 수 없습니다.” 장인 대진인은 고개를 저었다.그때였다.진요탑이 거칠게 흔들렸고 모든 호법 제자의 얼굴이 딱딱해졌다.수련이 부족한 제자 몇몇은 그 자리에서 마기의 침식으로 피를 토했다.“모든 제자에게 고한다. 나와 함께 현문을 수호하라.” 장인 대진인이 친히 자리에 앉아 온 종문의 기운을 모아 마인을 억제하기 시작했다.마인은 일시적으로 제압되었지만 산 밖의 요괴들과 악귀들은 마기의 부름을 받아 사방팔방에서 서요산으로 몰려들고 있었다.임정설은 이제 자신이 이곳에 온 진짜 이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