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이어 세 명의 피투성이가 된 주씨 가문 경호원이 바닥에 누워 있는 것을 보였는데 숨이 멈춘 것 같았다. 이 장면을 바라보던 주세호의 얼굴은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옆에 서 있던 표태훈도 이 장면을 보자 안색이 어두워졌다.“회장님, 조심하세요!”표태훈은 이렇게 말을 하며 주세호 앞을 재빨리 가렸다.반면 주세호는 창백한 얼굴로 부서진 별장 대문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대문 입구에서 갑자기 귀를 찌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늘 나는 주세호가 진 빚을 받으러 왔다. 죽기 싫은 사람은 당장 꺼져!”듣기 싫고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흘러나온 후 갑자기 한 노파와 아이가 밖에서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이 두 사람은 바로 두씨 가문에서 온 김 노파와 그 어린 소녀였다.그들이 윈워터 힐스로 억지로 들어오자, 주위에 있던 20여 명의 경호원들이 모두 두 사람을 에워쌌다.김 노파는 손에 전부 칼자루를 든 이들을 바라보며 외쳤다.“죽는 게 두렵지 않나 보지? 그래, 그게 너희들 소원이라면 내가 이뤄줘야지.”말이 떨어지자마자 김 노파는 갑자기 검은 그림자로 변하더니 맨 앞에 있는 두 명의 경호원을 향해 날아갔다.주씨 가문의 경호원들도 모두 무술을 괜찮게 하는 사람들이었다.그러나 김 노파의 상대가 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경호원 두 명은 미처 막지 못하고 가슴에 두 개의 피 구멍이 생겼고 처량한 비명 속에 그대로 쓰러져 숨졌다.“어서 가! 회장님을 보호해!”경호원들은 김 노파의 실력을 보고 모두 함께 달려들었다.하지만 김 노파는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드러내며 손에 든 칠흑 같은 지팡이를 아래로 휘둘렀다. 그러자 두 줄기의 검은 북풍이 가장 앞에 있는 경호원에게 소리를 지르며 떨어졌다.“쿵, 쿵!”공포의 북풍이 그 경호원들 몸에 닿자 순간 그들은 일곱 갈래로 피를 흘리며 현장에서 처참하게 죽었다.정말이지 강한 실력이었다.불과 몇십 초 만에 6~7명의 경호원을 죽였으니 말이다.경호원들조차 상대가 되지 않자 한쪽에 서 있던 주세
김 노파가 하는 말을 듣자 주세호는 순간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알고 보니 이 공포스러운 노인은 안현수한테 돈을 받으러 온 것이었다.하지만 안현수는 흑룡상회의 회장님이 아니었던가?안현수가 어떻게 빚이 있는 걸까?그리고 이 노인은 또 누구인가?주세호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렇게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던 주세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안현수는 확실히 저랑 갈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진 빚은 죄송합니다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임 노파는 주세호의 말을 듣고 괴상하게 웃어댔다.“주 회장님, 보아하니 벌어진 일에 대해 잘 모르시나 본데 오늘 저는 당신이랑 얘기를 나누러 온 것이 아닙니다.”말을 끝마친 후.임 노파는 가늘고 주름진 손가락을 내밀고 눈앞에 보이는 윈워터 힐스를 가리키며 말했다.“돈도 많으신 분이 목숨은 아깝지 않나 보군요! 경고하는데 얌전히 우리한테 빚진 임대료 좀 갚으시죠! 아니면 당신이 지금 가진 모든 것과 당신의 목숨까지도 오늘 다 가져갈 것입니다. 지금부터 딱 1분 드릴 테니 잘 생각해보십시오.”기세등등한 김 노파를 묵묵히 바라보던 집사 표태훈이 참지 못하고 나섰다.“이런! 미친 할망구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막무가내로 우리 별장에서 무고한 사람을 죽인 것은 둘째치고 지금 감히 주 회장님까지 협박하려 들어?”그러자 김 노파는 표태훈을 바라보고는 말했다.“왜요? 불만 있으십니까?” “그럼 지금 불만이 없겠습니까?”말을 끝낸 표태훈은 앞으로 한 발짝 성큼 내디뎠다. 이윽고 거대한 내력이 그의 몸에서 폭발해 나왔고 어마어마한 내력에 주세호의 옷가지들이 미친 듯이 떨려왔다.주세호의 집사로 있은 이 몇 년간 표태훈은 단 한 번도 나선 적이 없었다.그가 무술의 대무사라는 사실을 주세호는 알고 있었다.당시 주세호의 사업이 성공 기미가 보이자, 모든 사람들은 그를 없애려고 안달 났었다.그러나 주세호의 곁에 있는 사람 중에 전력이 가장 뛰어날 뿐만 아니라 실력도 대단한 표태훈은 단 한 번도 그가 상처를 입게 하지 않았
집사 표태훈이 비참하게 죽는 것을 본 주세호는 멍해졌다.주세호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표태훈의 시체만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노발대발하며 김 노파를 향해 소리쳤다.“도대체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낄낄낄...”김 노파는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었다.“내가 말했지, 난 그냥 밀린 빚을 받으러 왔을 뿐이야.”“너희들이 안현수 그 개자식을 죽였으니 이 빚은 당연히 너희 몫이 되는 거지, 안 그래?”김 노파의 잔인한 말을 들은 주세호가 말했다.“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갚아주기를 원하는 거야?”“아주 쉬워.”“모든 거 다.”김 노파가 말했다.“내 모든 것을 원한다는 거야?”주세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그러자 검은 옷을 입은 노파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우리 두씨 가문의 규칙은 예로부터 이랬어! 네가 누구든 우리에게 빚을 졌다면 반드시 전부 내놓아야 해! 심지어 네 목숨까지도 말이야”말이 끝나자마자 김 노파는 또 이상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주세호를 바라보았다.“그래서 주 회장님, 당신은 당신의 사업을 지키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당신의 목숨을 지키고 싶나요?”이윽고 주세호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그는 김 노파가 이리도 사악한 사람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니 말이다.“당... 당신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주세호는 분에 받쳐 소리 질렀다.비록 그는 오늘 들이닥친 이 재난을 피하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지만, 어쨌든 주세호는 DH 그룹의 회장인데, 어떻게 일생을 바쳐 일군 사업을 남한테 넘겨줄 수 있단 말인가.김 노파는 주세호의 말을 듣고 또 음산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네가 모든 것을 내놓고 싶어 하지 않은 것 같으니, 그럼 네 목숨으로 갚을 수밖에.”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김 노파의 몸은 검은 그림자가 되어 곧장 주세호 앞으로 날아갔다.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갑자기 웬 그림자가 주세호의 앞을 가로막았다.“우리 아빠 몸에 손댈 생각 추호도 하지 마!”소리가 들려오는 곳에는 언제 왔는지도 모르는 주안나가 서 있었다
“언니, 두려워하지마요. 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절대 안 죽이니까.”어린 두나희가 말했다.“너... 너 도대체 어쩌려고 이러는 거야?”주안나는 쭈뼛쭈뼛 거리다가 마침내 물었다.그러자 두나희는 헤헤 웃으면서 가지런하고 하얀 치아를 드러냈다.“할머니가 이미 말했잖아요. 언니 아버지가 우리한테 진 빚만 갚는다면 우리는 놓아줄 거라고.”‘빚?”주안나는 어리둥절해졌다.“네!”“당신들이 안현수 그 사람을 죽였잖아요. 그런데 안현수는 우리한테 빚을 졌고, 그럼 당신들이 갚아야겠어요 안갚아야겠어요?”두나희가 물었다.“헛소리하지마. 우린 안현수를 죽인 적이 없다고!”그러자 주안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어? 당신들이 죽인 게 아니라면 그럼 누가 죽인 거예요?”두나희가 의아해했다.“그... 윤씨가 그런 거야!”이윽고 주안나가 윤구주의 신분을 말하려 하자 옆에 있던 주세호는 노발대발하며 소리쳤다.“주안나, 입 닥쳐!”“아빠, 지금이 언제라고 아직도 윤씨를 지키려 들어요?”“아빠는 저한테 말한 적이 없지만 저 혼자 몰래 조사했어요. 흑룡 상회 안현수의 죽음에 관해서요. 확실히 우리랑 아무 상관이 없었다고요!”“제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 지금 우리 집이 떼죽음 당하게 생겼는데 왜 아직도 윤씨를 지키고 싶어 하는 거예요?”짝!주안나가 말을 끝마치자마자 주세호는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뺨을 맞은 주안나의 입가에서는 피가 흘러나왔고 곧이어 정신도 멍해졌다.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주안나의 손가락조차 아까워 조심히 만지던 아버지가 지금 윤구주를 위해 딸의 뺨을 내리치다니?왜?도대체 뭣 때문에?주안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는 부어오르는 얼굴을 부여잡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오호라? 안현수를 죽인 범인이 또 있나 봐?”김 노파는 음흉하게 웃기 시작했다.“말해봐. 도대체 누가 안현수를 죽인 거지? 걱정 마, 우리 두씨 가문은 은혜와 원망으로 얽힌 관계는 확실하게 나누는 편이니까. 너희들이 죽인 게 아니라면 진범을 내놓아봐
주세호는 급히 윤구주한테 전화를 걸었다.그는 지금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왕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그 시각, 윤구주는 용인 빌리지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얼마 뒤,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를 듣고서야 그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여보세요.”핸드폰 너머로 주세호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저하! 저 좀 살려주세요.”그의 목소리를 들은 윤구주는 낯빛이 순간 어두워졌다.“세호 씨, 무슨 일이예요? 지금 어딘데요?”그러자 주세호가 대답했다.“집입니다!”이 말을 듣자마자 그의 안색은 더 급격히 어두워졌다.윤구주는 더는 묻지 않고 바로 말했다.“기다리세요. 곧 가겠습니다.”이내 윤구주의 몸이 번쩍이더니 차가운 살기가 온몸에서 폭발해 나왔다.입구를 지키고 서 있던 태진도의 백경재는 윤구주의 몸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해 하더니 곧장 달려왔다.“선배님, 무슨일이십니까?’윤구주는 차가운 눈동자로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바라보며 대답했다.“어떤 눈치 없는 사람이 세호 씨를 좀 귀찮게 했다네.”“주 회장님이요?”“그래.”백경재는 윤구주의 대답을 듣자마자 바로 욕설을 퍼부었다.“어떤 미친 정신 나간 새끼가 감히 선배님 친구를 건드립니까? 갑시다, 저도 선배 따라 가겠습니다.”말을 끝낸 두 사람은 곧장 윈워터 힐스로 출발했다....예전 휘황찬란했던 윈워터 힐스는 지금 살기만이 가득한 상태였다.안에 들어서면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도 맡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윈워터 힐스 내 제일 큰 거실에는 주세호가 전전긍긍하며 자신의 딸 주안나를 보호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한편.김 노파 그리고 6~7세쯤 돼 보이는 두나희는 거실 정중앙에 거들먹거리며 당당히 앉아있었다.“할머니, 나 사탕 먹고 싶어요.”여리여리하고 앳된 목소리가 두나희의 입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말을 하는 동시에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었다.그러자 그렇게도 잔인했던 김 노파는 소녀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착하지, 오늘 밤
김 노파는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두나희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그리고는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바깥쪽을 바라보았다.어두컴컴한 환경 속, 신과도 같은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만 보였다.곧이어 윤구주는 마치 어둠과 한 몸인 듯 나타나자마자 왕의 기운을 내뿜었다. 그 기운은 온 윈워터 힐스를 감쌌는데 그토록 극악무도한 김 노파조차도 몸이 떨려오게 만들 정도였다.“누구야?”김 노파는 그 그림자를 보자마자 심장이 쫄깃해지는 것 같았다.하지만 그 그림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들어왔고 뒤에는 노란 옷을 입은 무인 백경재도 따라오고 있었다.“저하!”그들의 그림자가 마침내 나타나는 순간 주세호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옆에 있던 주안나도 아름다운 두 눈을 부릅뜨고 갑자기 나타난 윤구주만을 바라보고 있었다.매서운 눈동자.영험한 기운.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왕의 기운이 마치 모든 사람을 정복하려는 것 같았다.윤구주는 나타난 후 먼저 주세호와 주안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이내 두 사람에게 다친 곳이 없단 걸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김 노파와 방금까지 손찌검을 심하게 하려 한 두나희에게 눈길을 돌렸다.“아야, 할머니 나 너무 아파요!”6-7세의 어린 소녀는 울면서 피가 나는 손목을 가리키고 있었다.“무서워하지마, 잠깐만 기다려. 할머니가 복수해줄게!”김 노파는 얼른 그 어린 소녀를 위로했다.그러더니 소녀는 갑자기 나타난 윤구주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외쳤다.“할머니, 죽여버려요! 저 대신 반드시 저놈의 손발을 끊어버려요, 복수해줘요!”“알았어!”뒤이어 김 노파는 고개를 돌려 음흉한 얼굴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녀석 제법 하는구나!”김 노파가 윤구주를 뚫어지라 쳐다보았지만 그는 김 노파를 상대하지도 않고 주세호에게 말했다.“세호 씨, 세호 씨를 건드린 게 이 사람들입니까?”“네, 저하!”“이 두 사람은 흑룡 상회 안현수 때문에 왔습니다. 그리고 표 집사님까지 죽여버렸어요.”죽은 표태훈을 언
“당신 따위가 나의 이름을 알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두씨 가문의 수장이 오면 모를까.” 윤구주가 오만한 말투로 말했다. 윤구주의 말을 들은 김 노파는 몸이 떨려왔고 웬일인지 처음으로 윤구주를 봤을 때 부터 알 수없는 공포감이 밀려왔으며 지금은 그 공포감이 더욱 엄습해 왔다. “그쪽의 기를 느껴보니 당신은 두씨 가문의 12 지 살수 중 10번째인 유계이죠?” 윤구주가 물었다. 갑작스러운 명패 공개에 김 노파는 당황스러웠다. 두씨 세가의 십이지 살수는 옛 무도 문파의 사람과 4대 무술 세가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윤구주가 김 노파의 신상과 두씨 가문 살수 중에서 몇 번째인지마저도 알고 있다니, 그녀로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윤구주의 말처럼 김 노파는 두씨 가문의 십이지 살수 중의 10번째인 유계가 맞았고 그녀의 허리에 달고 있는 요패에도 닭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렇게 젊어 보이는 네가 나의 신분을 안다니, 그럴 리가 없어. 설마... 4대 무술세가의 사람인 것이냐?” 김 노파는 윤구주에게 화를 내며 물었다. “4대 무술 세가? 나한테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윤구주는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네 이놈,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구나!” 말을 마친 김 노파는 무섭게 윤구주에게 날아갔다. 두씨 가문의 십이지 살수로써 김 노파의 도력은 대가의 경지에 이르렀다. 김 노파는 윤구주의 머리를 따려고 돌진했고 윤구주는 한 손으로 김 노파의 공격을 가로막았다. “강하군.” 여태껏 윤구주만큼 강한 상대를 만나보지 못한 김 노파는 자신의 기술이 먹히지 않자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휘두르며 높이 날아올랐다. 그러자 사방에서 악한 기운을 풍기는 검은색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윤구주를 덮쳤다. 윤구주가 또 오른손을 휘두르자 한 줄기의 빛과 함께 굉음이 들리더니 김 노파가 땅에 떨어졌다. 손목이 끊어질 듯한 고통과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고통에 김 노파는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몸이 덜덜 떨렸고 알수 없
“걱정말게, 난 어린애는 안 죽이니.” 윤구주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저하.” 말을 마친 김 노파는 두나희를 쳐다보며 웃었다. “나희 아가씨, 죄송합니다. 이젠 이 몸이 아가씨에게 막대 사탕을 사줄 수가 없게 됐습니다.” 이 말을 끝으로 김 노파는 숨을 거두었다. “할머니!” 이렇게 김 노파는 윤구주 손에 죽었고 두나희는 울면서 달려와 김 노파를 안았지만 이미 싸늘한 주검으로 된 후였다. “이 나쁜 오빠!” “우리 할머니를 죽였으니 가만두지 않을 거야!” 두나희는 비수를 꺼내 들고 윤구주를 향해 달려왔다. 그러자 윤구주는 그녀를 본 체도 하지 않고 손가락을 “팅”하자 두나희는 눈앞이 까매지더니 그대로 기절했다. 이렇게 한 차례의 전투가 드디어 끝이났다. 두씨 가문의 십이지 살수 중 하나였던 김 노파는 윤구주의 손에 죽었고 그 여자아이는 기절해 버렸다. 자리에 있던 주세호,주안나와 주씨 가문의 경호원은 멍하니 윤구주를 쳐다보았다. 특히 주안나는 윤구주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보았고 왜서인지 이번에 그의 모습은 그녀의 머릿속에서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괜찮아요, 세호 씨.” 윤구주는 천천히 걸어오며 말하자 주세호는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꿇어앉아 그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저하. 저하께서 우리 가문을 살리셨습니다.” “괜찮습니다, 이번 일은 나 때문에 발생한 거니.” “그럼 여긴 자네가 정리하고 난 이만 용인 빌리지로 가보겠네.” 말을 마친 윤구주가 돌아서 가려고 하자 주세호가 말했다. “저하, 이 꼬마는 어떻게 하죠?” 그제야 윤구주는 두나희의 존재가 생각났고 백경재에게 말했다. “저 꼬맹이도 데려가지.” 백경재는 머리를 끄덕이고는 기절한 두나희를 업고 윤구주를 따라갔다. 깊은 밤. 윤구주가 떠나자 주세호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주안나는 오늘 밤의 사건 때문에 충격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주안나는 주세호에게 물었다. “아빠, 아까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기에 그렇게나 강해요? 그리
화진에서 수행하는 무인들은 무도에 몸담은 사람으로 간주되며 윤씨 일가 역시 무문 출신이니 당연히 무도에 몸담은 사람이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윤구주가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얘기인데 그 둘은 윤구주의 반응을 보며 비웃고 있었다. 윤구주가 무릎을 꿇지 않더라도 망신을 당할 거라 확신하며 즐기고 있었다.하지만 윤구주는 되려 웃으며 말했다.‘곤륜 지역 이야기를 나에게 한다고?’“너희 혹시 곤륜 지역에서 수련하다 머리를 다친 거냐?”“나를 사신이라 부르는 것도 너희 곤륜 지역 아니더냐. 그 칭호는 내가 수많은 신을 학살하며 얻은 것이다. 아사 신전조차도 내 손에 멸망했는데 너희 같은 광대 둘이 내 앞에서 죽고 싶어 안달인 거냐?”“풋.”그 말에 흑절은 참지 못했고 백살도 얼굴을 찌푸렸다.“좋아, 윤구주. 왕이라 해도 우리 앞에선 개미나 다름없다. 너희 화진의 인황 따위가 뭐 대수냐? 제신들의 아래는 모두 개미일 뿐이다. 너도 마찬가지다.”백살이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더 말이 필요해? 바로 제압하자. 놈의 무릎뼈를 뽑아내서라도 무릎을 꿇리든 엎드리든 하게 해주겠다.”흑절의 귀기가 뿜어져 나오고 음산한 검은 안개가 수백 미터를 덮었고 음산한 귀기가 퍼지는 가운데 수많은 쇠사슬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윤구주! 이건 내 절기인 삼라쇄명결이다. 그 화진 무술의 최강자였던 좌맹주도 이 기술에 죽었다.”흑절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시에 쇠사슬이 윤구주의 몸을 꽁꽁 묶었다. 쓱.흑절은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다가갔고 백살은 뒤에서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윤구주도 별거 아니군. 네가 아사 신전을 멸했다 해도 분명 화진의 금기 무기를 썼겠지. 너희 같은 하찮은 인간들이 그런 변태 같은 무기를 만들어낸 것부터 죽어 마땅한 일이다.”사실 그 무기는 화진만이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화진은 단지 그 무기를 소유한 대국 중 하나일 뿐이며 그 무기를 사용하면 먼 거리에서 정밀한 타격이 가능해 누구라도 피할 수 없었다. 아무리 절정의 선경 대원만의
윤구주는 조심스럽게 묘비를 어루만지며 말했다.“편히 잠드세요. 왕이 반드시 당신들의 원수를 갚아드릴 겁니다.”바로 그때, 숲속에서 갑자기 짙은 안개가 피어올랐고 안개 너머로 검은 그림자들이 윤구주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원수를 갚겠다? 윤구주, 네 목숨은 이미 끝났어!”“이곳에 함께 묻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편히 쉬게 될 것이다.”날카로운 웃음소리와 함께, 안개 속에서 검은색과 흰색의 두 그림자가 나타났다.그들은 큰 도포를 입었고 얼굴에 검은색과 흰색 가면을 쓰고 있었으며 한 명은 혼을 가두는 쇠사슬을 들었고 다른 한 명은 검은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그들은 음산하고 기이한 분위기를 풍겼다. 귀신 같은 분위기와 음산한 안개가 어우러져 마치 저승사자가 목숨을 거두러 온 것 같았다.그 모습을 본 윤구주는 비웃으며 말했다.“누군가 했더니, 흑절과 백살이군.”흑절과 백살은 한때 화진 무술계에서 최고라 불렸던 자들이다.화진 무술계에는 무도 연맹의 총회장이라는 직위가 있었고 그 총회장은 국방부 직속의 강자였다.윤구주가 유명해지기 전에 세 명의 연맹 총회장이 있었는데 모두가 구오 지존의 고수였고 특히 마지막 총회장은 국주 임정설과도 사적으로 친구 사이였다.하지만 그 셋 모두 흑절과 백살 손에 죽었고 둘은 마지막 총회장을 암살한 이후 자취를 감췄다.사람들은 그들이 화진의 국방부와 왕실의 추적을 피해 도망친 줄 알았지만, 사실은 곤륜 지역으로 들어가 수련 중이었다는 것을 윤구주는 알고 있었다.이미 몇 년이 흘렀고 그들은 곤륜 지역에 들어갈 때는 중경 구오 지존이었지만 이제는 출관하여 극 신급 절정에 이르렀다.여전히 재능은 있었다.“윤구주! 넌 당연히 우리를 알 것이다. 오히려 우리에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지. 우리가 그 국주 측근인 무도 총회장을 죽였기에, 국주가 너를 전력으로 키울 수밖에 없었을 테고 그렇지 않았다면 네가 구주왕이 될 수 있었겠어?”백살은 비웃으며 말했다.흑절은 더 나아가 윤구주에게 무릎 꿇고 두 선배에게 절하라고 명령했
청해는 임정설과 같은 곤륜 지역 출신이기에 그의 과거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윤구주라면 가능할지 몰라도 임정설은 절대 해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청해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복수하겠다면서 굳이 본인이 직접 나설 필요가 있냐는 의문이 들었다. 어차피 목표는 원수를 죽이는 것인데 윤구주에게 부탁해도 될 일이었을 텐데 말이다.그에게는 임정설의 이번 행동이 단순히 죽기 위한 길처럼 보였다.“넌 또 움직이지 않겠지. 사람 인생은 어떤 일을 잊을 수도 있고 저버릴 수도 있어.우리 화진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명예조차도 때로는 내려놓을 수 있어.하지만 단 하나, 선조들의 뜻만큼은 절대 저버려선 안 돼.”“국주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은 그 때문에 죽었지. 그 당시 국주는 국사 때문에 그녀를 저버렸어.”“그녀는 국주를 위해, 그리고 국주로 인해 죽었어. 그 일은 국주의 마음속 깊은 병이자 고통이 됐고, 그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앞으로 닥쳐올 시련을 맞이하는데 걸림돌이 될 거야. 그런 상황에서 국주가 생사를 신경이나 쓰겠어?”“이번 고비를 넘긴다면 국주에게도 살길이 조금은 열릴 것이다.”“세상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지. 내가 황제 자리에 오르고 성인의 경지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임씨 일가의 쇠퇴와 임정설 황제의 몰락이었다. 그러나 나는 화진의 옛 왕이며 현재는 황제이다. 얼마나 많은 선조가 지켜보고 있는가? 나라를 위한 대의, 화진의 부흥 앞에서는 개인의 영광과 치욕, 가문의 흥망도 모두 민족 앞에서는 물러서야 한다.”“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자면 우리 화진은 의리와 정을 중히 여긴다. 큰 뜻도 중요하지만 작은 정과 의리 또한 반드시 지켜야 한다. 국주의 이번 선택은 자기 자신을 위한 길이었고 아주 조금은 사적인 욕망을 위한 것이었지. 나는 그의 제자로서 그 뜻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 나 역시 개인적인 감정과 욕망이 있기에 그를 말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윤구주는 한숨을 내쉬었다.이것이 바로 화진인이다.살아
무명 마인이 처단된 지 한 달 후가 될 무렵 서요산의 수령대진은 오랜 침묵 끝에 마침내 반응을 보였다.자줏빛이 도는 붉은 광채가 마치 우산처럼 윤구주의 육체 위로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이 모습을 본 서요산 장인 대장인은 망설이지 않고 전력을 다해 영기를 지키며 윤구주의 진령을 지켰다.그 자줏빛 광채는 조금씩 윤구주의 몸속으로 스며들었고 마지막 한 줄기 미세한 빛까지 모두 들어가자 윤구주의 육체는 마침내 생기를 되찾았다.“윙!”윤구주는 마치 다시 태어난 것처럼 부활했다.윤구주가 눈을 뜨는 순간, 눈에서 나온 황금빛 광채는 화진의 경계 넘어까지 한눈에 꿰뚫어 보는 듯했다.하늘과 땅의 정수를 느끼고 천지의 조화를 거머쥐며 구중현천을 향해 비상한다.이것이 바로 전설 속의 성경이었다.“돌파한 겁니까?”장인 대장인은 놀랍고도 기뻤다.만약 윤구주가 정말로 돌파에 성공했다면 이는 화진에 또 하나의 성인이 탄생했다는 의미였다.고작 20년 남짓 수련한 수련자가 성인에 도달하고 또 게다가 육신으로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이건 고금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그야말로 윤구주는 전무후무한 존재가 된 것이다.정신을 차린 윤구주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경지는 도달했지만, 아직 수련이 조금 부족해요. 아무래도 수련 기간이 너무 짧았으니까요. 충분히 축적할 필요가 있어요. 지금 저에게 필요한 건 제대로 된 수련이에요. 지금이라도 몇 년간은 수련을 할 수 있을 거예요.”윤구주는 분명히 돌파하긴 했지만, 성인의 문턱은 넘지 못했고 대원만 경지의 정점에 도달했으니 지금의 그는 최강의 황자라 불릴 만하다.윤구주의 원신이 육체로 돌아왔다는 소식은 곧바로 서울로 전해졌다.육도진은 윤구주가 1년 반 정도 지연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설령 원신이 몸으로 돌아왔다고 해도 출교를 이유로 다시 1년 반 정도 수련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하아... 윤구주가 출관했다면 이제는 국주를 막을 자는 없겠구나.”“국사는 국주가 감당해야 하는데.
선조가 구중현천으로 승천하고 종주였던 풍무극은 죽음을 맞이하며 도마저 끊겼다. 요마도 모두 제거되었으니 이제 서요산은 과연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서요산의 사람들이 방황하고 있을 때 윤구주가 진요탑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구주야!”장인 대장인과 서요산 제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심하게 다친 몸을 이끌고서도 윤구주를 맞이하려고 했다.하지만 눈앞의 윤구주는 눈빛이 텅 비어, 마치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꼭두각시처럼 생기가 없었다. 만약 진인들이 신념으로 윤구주의 기운을 감지하지 못했더라면 이미 마인에게 빙의된 것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아마 전설 속의 원신출교를 쓴 것 같아.”그때 도착한 임정설은 그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신출교는 성인의 경지에 이른 자만이 가능한 일이다.”장인 대장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수련이 부족한 사람이 억지로 원신출교를 하면 심각한 후유증이 따라오기 때문이다.바로 그때 윤구주의 양혼이 하늘 위로 떠 올랐고 수천 자에 달하는 양혼 성령의 기운이 화진의 절반을 덮었다.“장인 대장인, 지금은 고민할 때가 아닙니다. 당장은 서요산의 미래를 정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일단 지금은 진을 세워 저를 호위해주시고 제 원신을 육체로 돌아가게 한 뒤 얘기합시다. 운이 나쁘면 나중에 혼수에 들어가야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 무명 마인처럼 사도로 들어서야 할지도 모르니까요.”장인 대장인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요산의 존재 여부는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모든 제자는 들어라! 수령진을 세워 구주왕을 호위하라!”멀리서 이 말을 들은 백호는 윤구주가 죽은 줄 알고 울부짖으며 달려와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무덤이라도 파려는 기세였다.“이 자식! 그렇게 내가 죽길 바랐냐?”윤구주의 음성이 들려오자 백호는 또 깜짝 놀라서 얼어붙었다...그 후 며칠 동안 서요산은 윤구주를 보호하며 호법을 세웠다. 그 목적은 단 하나, 서요산의 영기 흐름을 안정시켜 윤구주의 원신이 무사히 육체로 되돌아가게 하기 위함이
인간 세상에서의 수련은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구주왕의 명성을 얻는 것이었고 이 모든 것은 인황번을 제작하기 위함이었다.그때부터 이미 윤구주의 스승들은 그에게 목표를 정해주었다.언젠가 윤구주가 혼자 힘으로 무명의 마인을 죽일 수 있게 되면 그때야말로 진정으로 출사의 날이 온 것이다.인황번은 백성들의 마음을 모아 인간계의 황제 기운을 더하고 ‘반드시 죽이고 반드시 이긴다.’는 굳건한 신념이 실체화된 에너지로 변하여 무명 마인을 향해 쏟아진다.일격으로 마를 처단하는 기술, 이 기술은 인간계에서 가장 강력한 절기라고 할 수 있다.무명의 마기가 무너지며 인황번은 바로 음신사체를 강타했다.만장의 무지갯빛이 무명 마인의 신혼을 단숨에 관통했다.이 모든 과정에서 막강한 반선인 무명은 아무런 반항도 할 수 없었다.“윤구주, 나는 인정 못 해. 왜 화진에서 너 같은 괴물이 나온 거냐. 하늘이 불공평하다.”무명 마인은 수백 년 동안 쌓은 도행을 믿고 있었기에 신혼이 관통당했음에도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그러나 그 마지막 포효가 끝난 후 신혼은 한순간에 무너졌다.윤구주의 말이 또 맞았다.무명은 끝내 도에 들지 못했고 따라서 ‘의지’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몸과 신혼이 무너지면서 의식도 함께 흩어졌다.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신혼을 쓸어가듯 흩어지게 만들며 결국 티끌조차 남기지 않았다.“무명은 평생을 수련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구나.”서요산의 선조가 탄식하며 말했다.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대재앙이 오늘에서야 비로소 해결되었고 그로 인해 산조의 오래된 근심도 마침내 완전히 사라졌다.“선조 님, 정말로 ‘구중현천’이라는 게 존재하나요? 그 위에는 대체 뭐가 있죠?”윤구주가 호기심에 물었다.그 질문에 선조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말했다.“윤구주, 보아하니 이번 여정에 꽤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군. 무명 같은 마인을 처단하는 그 큰 업적을 세우고도 오히려 구중현천이 더 흥미롭다니.”“무명을 죽이는 건 예정된 일이었어요.
그는 다시 한 번 서요산 검종의 선조에게 봉인당할 가능성이 있지만 윤구주의 손에 패배할 가능성은 절대 없었다.딱히 다른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수백 년 동안 수련해 왔는데 고작 윤구주 하나 제대로 제압하지 못한다면 애초에 수련 따위는 하지 않는 편이 낫다.“그래? 근본도 없고 이름도 없는 네가 날 죽이겠다고? 넌 자격 없어.”윤구주는 손가락을 펴 검을 형성했고 만법귀일하더니 선기가 검으로 응집되었다.그가 만들어낸 한 자루의 주선검은 허공을 가르며 떠올랐고 그 검의 날카로움은 서요산 선조조차 압도했다.무명의 마기는 검의 기세에 의해 모두 흩어져 사라졌다.마기가 사라지자 무명의 진면목이 드러났다.소위 반선이라는 자도 결국엔 그저 음신사체일 뿐이었다.예전에 윤구주와 싸웠던 그 사악한 사술들과도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었다.“너 같은 자가... 감히 신선이 되겠다고? 이 길은 너는 오를 자격이 없어.”윤구주가 검을 휘두르니 막강한 선력이 무명을 완전히 억눌렀다.이로써 승부는 분명해졌다. 무명은 잠시 놀라더니 갑자기 미친 듯이 웃어댔다.“네가 날 이긴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데? 넌 날 죽일 수 없어!”“수련이 부족하다면 네가 아무리 선도를 미리 깨달았다 해도 경지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넌 날 죽일 힘이 없어.”“서요산 늙은이, 너도 날 다시 봉인하려는 생각은 접어. 내가 이 세상을 뒤엎지 못한다면 차라리 이 세상과 함께 죽어버리겠다.” 마기가 다시 한 번 폭발하듯 분출되고 위험을 감지한 서요산 선조는 즉시 나서려 했다.“윤구주, 저 녀석 지금 자폭하려 하고 있다. 만약 이 자가 자폭에 성공한다면 세상이 멸망하지 않더라도 우리 화진 9주 중 최소 세 개 주의 생명이 몰살될 것이다.”“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화진의 국운 역시 큰 타격을 입게 된다.”이에 소요산 선조도 더는 손을 놓고 있을 수 없게 되었다.“하지만 인간 세계의 시비는 나 윤구주가 직접 심판하겠다. 무명은 인간 세계의 마이니 반드시 내가 처단할 것이다.”윤구주의
임정설과 청해는 하늘의 호천경 하나가 백만 마리의 요괴들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이것이 바로 전설 속...”임정설의 지금까지 믿어왔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신의 경지를 넘는 존재가 진짜로 존재한다고? 인간이 정말 신선이 될 수 있단 말인가?’서요산 검종의 장인 대장인과 제자들이 하늘을 향해 절을 올렸다.“서요산 선조님께 인사 올립니다.”백호는 제자리에서 얼어붙었다.늘 미치광이 같던 그에게 있어서는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 요괴들은 다 어디로 간 거지? 설마 저 거울이 재앙의 근원이었던 건가?”백호는 눈을 부릅뜨며 당장이라도 하늘로 솟아올라 거울을 부수려 했으나 청해가 간신히 그를 막았다.한편 진요탑에서는 서요산 선조의 법신이 강림하며 온몸에 감도는 선기로 무명을 억누르고 있었다.“서요산의 늙은이, 네놈 아직도 죽지 않았어? 구현천도 널 죽이지 못했단 말이냐!”무명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누가 알았겠는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또다시 이 성가신 서요산의 늙은이가 나타날 줄이야.“나는 하늘과 함께 움직이며 하늘의 도를 대신해 정의를 집행한다.네가 죽지 않으면 하늘의 재앙이 끝나지 않는다. 너를 죽이지 않고서야 어찌 구현천도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겠느냐!”선인의 목소리가 온 세상을 뒤흔들었다.그 선기는 무명을 억제하는 동시에, 이번에는 윤구주를 돕기 위한 것이 확실했다.“구주야, 마음껏 싸워라! 만약 네가 이 마귀를 죽이지 못하면 그때는 내가 나서겠다.”이보다 더 확실한 지원군이 있을까. 누구라도 이런 말 한마디면 충분할 것이다.그러나 윤구주는 하늘이 내린 영광을 지닌 자이자 천하의 구주, 오방의 통치자로서 절대적 존재이다.“선조님의 말씀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오늘 선조님께서 오지 않으셨어도 저는 아마 그를 반드시 죽였을 것입니다.”“저 윤구주가 어떻게 이 자를 베어버리는지 지켜보십시오.”윤구주의 기세 넘치는 말에 서요산 선조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임정설이 일으킨 이씨 가문의 기세조차 마물들에게 잠식당해 사라지고 있었다.청해는 말 그대로 처참한 상태였다. 이젠 자기 몸 하나 제대로 지킬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나마 임정설이 죽을 각오로 지켜주지 않았다면 진작에 목숨이 끊겼을 터였다. 결국, 화진의 국주가 자신의 목숨을 지켜준 것이다. 이 순간만큼은 죽는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음 생이 있다면... 화진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줘. 그게 아니라면. 그냥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게 해줘... ”청해는 하늘을 향해 처절하게 외쳤다. 임정설은 고개를 번쩍 들고 한 번 더 울부짖었다. 그 울음은 황자의 기운을 불러왔고 서요산 일대의 천기와 섞여 거대한 진룡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황도기운과 진룡을 하나로 모든 요마를 베어낸다! ”그 역시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대로 더는 버틸 수 없다면 풍무기처럼 자신의 마지막 의지를 국운에 녹여야 할 것이다. 진요탑 안. 이 일대 세계 전체가 마기에 잠식되어 만물은 스스로 죽음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런 데 무명은 더 이상 흥분할 수 없었다. “하하! 인황이 뭐라고? 도를 얻은 건 나다. 나는 이미 진정한 길의 끝을 보았다. 내 의지는 구천 현천을 관통한다. 하늘도 날 감당할 수 없어. ”그 순간 하늘과 땅이 동시에 울컥하며 뒤틀렸다. 무언가 말도 안 되는 존재가 깨어나는 기운이었다. 이 작은 진요탑 속 공간조차 그걸 담아낼 수 없어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무명이 눈을 치켜떴다. “또 뭘 하려는 거야? 설마... 윤구주 너 나를 봉인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네 실력으론 날 봉인 못 해. 아니, 가능하다 쳐도 목숨을 걸어야만 가능하지. 하지만 지금 넌 그 목숨을 걸어도 겨우 나를 세 손가락만큼 다치게 할 수 있을 뿐이야. 그 정도 피해라면 기꺼이 감수하지. 와봐, 날 얼마나 벨 수 있나 보자고. 병이 오면 장수로 막고, 물이 오면 흙으로 막는 법이지. 그러니 한번 보자고 구주왕이라는 놈의 마지막 발악이 어떤지.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