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들어온 암부원이 조심스럽게 오소룡에게 물었다.“네가 뭘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이곳이 어떤 곳인 줄 알아?”오소룡은 앞바다를 가리키며 말했다.“그저 바다잖아요?”“그래! 바다지! 하지만 이 바다가 어디로 통하는지 알아?”오소룡이 다시 물었다.“그건 잘...”“내가 알려줄게. 이곳은 죽음으로 향하는 바다야!”뭐?“죽음의 바다!”이 단어를 듣자 부하의 얼굴색은 갑자기 어두워졌다. 그도 분명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그래! 이 바다의 끝자락에서 우리 화진이 10개국 연합군에게 패배했어!”오소룡은 고개를 들어 일망무제한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그 싸움으로 바다는 빨간색이 되고 시체들이 둥둥 떠다녔어! 그리고 그 싸움으로 인해 10개국은 국경 수천 리까지 쫓겨났고 심지어 그 당시 최고 신급 경지에 이른 고수 6명을 잃게 되었어! 또 그 싸움 때문에 우리 화진의 구주 전신이...”여기까지 말하자 오소룡은 목이 멨다. 그는 결말을 말하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당대 최고의 구주 전신이 이 바다에서 사망했다.신화 같던 인물이 여기서 죽었다!이 바다를 바라보며 모두 침묵에 잠겼다!이때 제일 앞에 서있던 암부 3대 지휘사인 호존 민규현이 파도가 철렁거리는 바다를 바라보며 울부짖었다.“당신과 같은 시대에 태어난 걸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세월은 야속하게만 흘러가네요. 제가 제일 존경하는 저하, 잘 계시는지요. 어쩌면 인생은 이렇게 한바탕 취하다가 가는 거겠죠!”“저하! 소인 민규현 살아서는 이제 저하와 함께 싸울 수 없지만 죽어서는 저하를 따라 지하 세계에서 천하를 제패하고 싶습니다! 제가 한 잔 따라드리겠습니다. 저하!”3대 지휘사인 민규현은 술잔을 들고 단숨에 다 마셨다! 독한 술을 삼키더니 그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얘들아!”“네!”모든 사람은 차렷 자세로 민규현을 기다렸다.“술을 가져와!”그러자 그들은 일제히 술 한 잔을 따랐다. 민규현이 독술을 들고 우렁차게 외쳤다.“우
수십 대의 차량이 굉음을 내며 강성 한복판에서 달리며 한 건물로 들어섰다. 이 건물은 강성 암부 본부였다. 널찍한 사무실에는 서울에서 온 3대 지휘자 중 한 명인 민규현가 자료를 보고 있었다.“지휘사 님, 강성 제36부대 대장이 급히 지휘사님을 만날 일이 있다고 합니다!”오소룡이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말했다.“들어오라고 해!”민규현은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네!”그러자, 양복 차림을 한 남자가 방 안에 들어섰다.“제36부대 안영훈이라고 합니다. 지휘사 님께 인사를 올립니다!”안영훈은 들어오자마자 꼿꼿이 정자세로 서있었다.“무슨 일인데?”민규현은 계속 고개를 들지 않았다.“지휘사 님께 아뢰옵니다. 판인국 홍월 경매사에 관한 소식입니다. 저희가 철저히 조사해서 이들이 판인국 블랙 첩보 조직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우리 쪽 사람들은 이미 홍월 경매사의 모든 거점을 장악했고 모조리 잡았습니다.”그제야 민규현은 고개를 끄덕이었다.“그리고 조사한 바에 의하면 죽은 판인국 노인은 블랙 첩보 조직의 B급 첩보원이었습니다.”“B급?”고개를 숙이고 있던 민규현은 드디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블랙 첩보 조직은 판인국 군사첩보조직으로 내부 분업이 명확하고 계급이 분계선이 명확했는데ABC 세 개 등급으로 나뉘어져 있다!이 세 등급에 들어갈 수 있는 첩보원들은 모두 막강한 인물이다. 이들은 암살과 염탐에 능할 뿐만 아니라 막강한 무도 실력을 가지고 있다. 민규현을 놀라게 했던 점은 이런 B급 첩보원이 강성 이 작은 곳에서 쉽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이다.“B급 첩보 고수를 이렇게 쉽게 죽였다고? 게다가 우리 암부 사람도 아닌데 말이야. 이거 정말 재밌는 일이네! 그런데 누가 한 짓인지 알아냈어?”민규현은 고개를 들고 안영훈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알아냈습니다. 조사에 의하면 그 사람은 강성 제일 갑부 주세호와 함께 있었습니다.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CCTV에 찍힌 흐릿한 사진 한 장이 있습니다! 이걸 보세요!”안형훈은 민규현에게 사진을 건
노정연은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좋아요!”“마 선생은 대가가 정말 소중한 인재라는 걸 잘 아시겠죠! 저런 무서운 실력을 사람이 우리 천하회 사람이 된다면 우리한테는 날개를 달아준 셈이죠.”“하지만 그 사람은 너무 무섭고 또 너무 젊어서 응하지 않을까 봐 걱정입니다.”마 선생이 대답했다.“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사람이 되지 않더라도 친구로 지내고 싶네요. 안 그래요?”노정연이 이렇게 말하자 마 선생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리무진은 계속 달려 용인 빌리지에 거의 도착했다. 천하회 노정연 등인이 도착할 즈음, 골목 쪽에 검은색 지프차 세 대가 먼저 정차했다.차 문이 열리자 깔끔하게 옷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차에서 걸어 내려왔다. 그들을 보자 노정연과 마 선생은 미간을 찌푸렸다.“이렇게 많은 무인들이 여기에 웬일로?”마 선생이 말이 끝나자 지프차에서 우람진 체격의 한 남자가 내렸다. 그 사람을 보자 마 선생은 갑자기 긴장하면서 경계했다. 그 남자에게서 범상치 않은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왔다.“강한 카리스마입니다! 당주님, 저 사람 보통 인물이 아니네요!”마 선생은 그 남자를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노정연은 예쁜 눈을 부릅뜨고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그를 쳐다보았다.“빌어먹을! 저 사람은 천하를 뒤흔드는 암무 3대 지휘사 중의 한 명인 호존 민규현인것 같은데?”호존, 민규현!이 이름을 듣자 천하회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저 사람이 바로 호랑이, 범, 늑대 중에 첫째, 호존 민규현입니까?”마 선생은 깜짝 놀라면서 되물었다.“맞아요! 분명 민규현입니다. 틀림없어요!”노정연은 깊은숨을 들이마시면서 말했다.“수년 전 서경에서 설국 반역 조직이 우리 화진에 쳐들어왔는데 바로 저 민규현이 칼을 한번 휘두르면 한 명을 죽였어요. 제가 똑똑히 기억합니다. 설국 천여 명의 반역자를 모두 머리가 없는 시체로 만들어 버렸어요! 그래서 그날부터 민도살이라는 별명을 가졌죠. 도살자!”그 말을 듣자 마 선생의 두 눈을 초점을
민규현은 말을 마치고 부하들을 데리고 용인 빌리지로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산길 입구에 다다르자 이상한 구름과 안개가 허공에 나타나 모두의 시선을 막았다.“지휘사 님, 이 안개가 조금 이상한데요!”한 부하가 경계하며 말했다. 그러자 민규현은 차가운 시선으로 안개를 훑어보더니 말했다.“이 작은 강성에 이런 고수가 있을 줄이야. 이런 진법을 보게 된다니! 모두 뒤로 물러가!”민규현의 명령이 떨어지자 암부 부하들은 일제히 물러섰다. 그리고 그는 안개를 훑어보고는 두 손을 모았다. 그러자 몸에서 강한 회오리 기파가 뿜어져 나왔다.무서운 기파가 터져 나오면서 주위의 공기마저 진동하여 소리를 냈다.역시 암무 3대 지휘자 호존!그리고 그는 손을 크게 휘두르더니 “열려라!”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기파들은 순식간에 광풍으로 변해 안개 쪽을 향해 달려갔다.우르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자욱한 안개 사이로 길이 생긴듯하였다. 민규현이 기파로 안개를 두 조각으로 깨부수었다. 안개가 갈라지면서 산길이 나타났다.민규현은 맹호처럼 뚜벅뚜벅 걸어갔다.용인 빌리지에 발을 내디디려는 순간.뒷산.백경재와 윤구주는 가부좌를 틀고 꿈적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백경재는 윤구주가 준 한기단을 복용한 후 근래 내공이 비약적으로 향상했다! 그리고 바로 오늘 아침, 백경제는 단숨에 통현의 한계를 극복하고 정식으로 귀선 경지에 들어섰다!귀선 경지에 들어선 백경재는 더 이상 예전의 이류 수련자가 아니다!술법을 아는 사람은 백경재를 이제는 백 거장이라고 불러야 한다!두 사람이 수련하고 있을 때 ‘운산 대진’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귀선 경지에 이른 백경재가 갑자기 두 눈을 뜨더니 그의 눈동자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어느 죽일 놈이 감히 우리 구역에 침입해! 저하, 제가 가서 살펴보겠습니다. 도대체 어떤 자식들인지!”윤구주는 눈을 감은 채 그러라고 대답만 했다.휙!백경재는 눈 깜짝할 사이에 그쪽으로 날아갔다.산길 위.민규현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민규현은 더 길게 말하지 않고 그저 웃었다.“못 알아들어도 상관없어! 3일 전에 홍월 경매사에서 주최한 경매에 참가했지?”백경재는 흠칫 놀라면서 대답했다.“그래! 그게 뭐 어때서?”“참가했으면 바로 너일 거야!”민규현은 첩보원을 죽인 사람을 백경재로 착각했다. 백경재는 민규현을 쳐다보고 또 그 뒤에 있던 암부원들을 훑어봤다.“어이, 너희들은 도대체 뭐 하는 자식들이야? 왜 우리 용인 빌리지에 함부로 들어와?”민규현이 웃으면서 대답했다.“우리가 누군지 당신은 알 필요가 없어! 지금 우리랑 같이 본부로 가자. 물어볼 것이 있거든.”따라오라는 말을 듣고 백경재는 피식 웃었다.“씨발, 정말 웃기는 새끼네. 함부로 우리 구역에 침입한 것도 모자라 나더러 너희 따라 어딜 가라고? 지금 내가 만만하다고 생각하는 거야?”백경재는 코웃음을 치더니 부적 세 개를 내던졌다. 그러자 그 부적들은 갑자기 폭발하면서 검은 안개가 순식간에 사방을 뒤덮었다. 그리고 그가 주문 두 개를 외우자 검은 안개 속에서 귀신이 울부짖으며 엉엉 우는 소리가 들렸고 해골 두 개가 갑자기 튀어나와 민규현을 향해 돌진했다!민규현은 백경재의 술법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리고 모든 내력을 왼손으로 모아 손바닥을 앞으로 밀었다! 그러자 엄청난 기파가 일면서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해골 두 개가 허공에서 폭발했다.“어허! 이렇게 강하다고? 그럴 리가!”백경재는 민규현이 손쉽게 자기의 술법을 풀자 이를 악물며 다시 내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귀선 경지에 들어서고 난 후 백경재는 처음으로 진정한 강자를 만났다. 그는 두 손을 움켜쥐고 주문을 외우자 음기가 온몸을 뒤덮었다.백경재의 두 손은 빠르게 허공에 기괴한 주문을 그렸다. 그리고 손을 들어 검은 안개를 누르는 듯했다!“눌러!”분노의 외침과 함께 검은 안개는 거대한 귀신의 손으로 변했다. 귀신의 손은 무서운 기세로 민규현을 향해 덮쳐갔다. 그러자 민규현은 기파를 모으더니 두 주먹으로 귀신의 손을 깨부쉈다. 막을 수 없는 막강한 기세를
민규현이 기화도에 상처 입은 것을 바라보고, 모든 암부원들은 비명을 질렀다. 상대가 얼굴을 드러내지도 않고 당당한 호존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을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휘사 님!”놀란 그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 기세를 보이자 민규현이 손을 뻗어 그들을 막았다.그러고는 어두운 안색으로 뒷산 쪽을 바라보았다.“퉤!”선혈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이곳에 고수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군! 그래, 어디 한번 해보지. 네 실력이 도대체 얼마나 강한지 한번 보겠다 이거야! 모두 제자리에서 대기해! 내 명령 없이는 누구도 제멋대로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민규현을 소리를 지르며 천천히 두 발을 땅에 내려놓고 비장하게 뒷산 쪽으로 날아갔다.뒷산에서!날아가는 그 찰나의 순간, 민규현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왕의 기운이 느껴지면서 괜한 압박감이 들었다.그는 무의식적으로 경계태세를 보이며 온몸에 내력을 돌리기 시작했다.뒤이어 고개를 들어보니 자신을 등지고, 미동 없이 청석 위에 앉아있는 한 남자의 그림자가 보였다.그 모습을 바라보며 암부의 3대 광인 중의 하나라고 불리는 이 호존은 눈썹을 심하게 씰룩거렸다!이와 동시에 엄청난 압박감이 앞에 있는 남자의 그림자로부터 몰려왔다.게다가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쩐지 이 그림자가 민규현은 낯설지 않았다는 것이다!“빌어먹을 젠장! 저 사람은 대체 누구지? 누군데 이렇게 강한 포스를 풍기는 거지?민규현은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덧없이 놀라웠다.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그는 대가의 경지에 이른 암부 지휘사이다!곧이어 민규현은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입을 열었다.“감히 여쭙겠습니다. 조금 전에는 그쪽이 손을 쓰신 겁니까?”청석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윤구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상대방이 침묵하자 민규현은 다시 말했다.“조금 전의 기화도는 거의 만물을 베실 정도였습니다. 이 민규현이 얼마나 감탄했는지 몰라요! 솔직히 말해서 저는 수년 동안 이런 고수를 본 적이 없습니다. 도대체 누구십
“그래, 바로 나다!”윤구주가 담담하게 대답하자 민규현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저하! 정말 저하십니까? 저... 저하... 저하께서는 이미 죽음의 바다에 빠져 순국한 것이 아니었나요? 세간에는 저하가 돌아가셨다는 소문이 자자한데...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그러자 윤구주가 패기 있게 말했다.“내가 죽고 싶지 않다고 하면, 이 세상 누구도 나를 죽일 수 없어!”이 말에 민규현은 갑자기 머리를 땅에 박았다.“저하!!!”왕이 살아있다는 기쁨에, 민규현은 울부짖기 시작했다.그렇게 한쪽으로 저하를 부르며, 한쪽으로는 연신 펑펑 울어댔다!천하의 사람들 모두 윤구주가 죽은 줄 알았다!물론 암부를 포함해서 말이다!그날, 죽음의 바다 1차 대전에서 윤구주의 순국 소식이 서울 암부에 전해지자, 암부의 상하 10만 정예부대가 모두 어리둥절해했다!더군다나 당시, 3대 지휘사는 10만 정예부대를 거느리고 꼬박 3일 밤낮을 기산 아래에 무릎을 꿇었다!그 3일 밤낮 동안, 누구도 그들을 설득할 수 없었다.그들은 당시 윤구주가 직접 창설한 “암부”의 일원으로, 윤구주의 친위군과 다름없었으니 말이다!각각 “호랑이”, “곰”, “늑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3대 지휘사는 윤구주가 직접 뽑아 배양한 인재들이었다.이 세 사람의 실력은 윤구주 주변의 4대 살신에 필적할 만했는데, 모두 윤구주 수하의 칠살광인이라 불리기도 했다!그러나 민규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오늘 뜻밖에도 다시 자신이 섬기던 옛 왕을 만나게 될 줄 말이다!그의 울음소리는 그칠 줄 몰랐다. 하지만 그건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닌 기쁨과 흥분으로 흐르는 눈물이었다!“됐어, 인제 그만 울게! 어쨌든 자네도 암부 3대 지휘사 중의 하나인데, 이런 모습을 부하에게 보이면 창피하지 않겠어?”민규현은 콧물과 눈물을 훔치며 감격했다.“창피하긴요! 저하가 살아있는 한, 저는 이깟 체면 하나쯤은 없어져도 상관없습니다!”“지금 자네 모습이 얼마나 웃긴지 한번 보게!”윤구주는 경멸하듯 한마디 했지만,
“네? 이 파렴치한 자식들,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저하, 명을 내려주십시오. 제가 즉시 사람을 데리고 판인국으로 쳐들어가 그 망할 블랙 조직을 잡겠습니다. 부디 허락해 주세요!”민규현이 성난 목소리로 말하자 윤구주가 손사래를 쳤다.“이 일은 그다지 급한 일이 아니야! 작디작은 판인국은, 도저히 두려워할 존재가 아니라는 거네!”“저하의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당시 저하께서 거의 판인국의 씨를 말려버릴 뻔했는데... 개미 같은 놈들이 감히 저희의 국경을 넘을 줄은 생각지 못했네요!”윤구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저하, 궁금한 것이 있는데 물어도 되겠습니까?”민규현이 물었다.“물어봐!”“이리 멀쩡히 살아계신 데, 저하는 왜 서울 군부로 돌아가지 않으십니까? 형제들에게 저하가 살아있다는 걸 알려야죠! 그거 아십니까? 저하의 비보가 서울에 전해진 후, 우리 암부원들이 얼마나 슬퍼했는지... 심지어 둘째는 죽을 각오로 기산 밑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민규현은 말을 하면서 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그 말을 들은 윤구주는 민규현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상황이 조금 복잡해서 그래! 내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누구에게도 알려서는 안 된다는 것만 알아둬!”민규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마음속으로 윤구주가 이렇게 한 이상 틀림없이 그 자신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이번에 강성에 암부원들이 몇 명이나 왔어? 정태웅이랑 천현수는?”윤구주가 물었다.“저하께 아뢰옵니다. 둘째와 셋째는 아직 서울에 있습니다!”“암부에는 별 변화 없지?”“암부는 아직 괜찮습니다만 저하가 순국하셨다는 소식이 들려온 후, 군부에 천지개벽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특히 저하의 밑에 있던 4대 살신, 청용, 백호, 주작, 현무 중에서 현무 형님 혼자 군부에 남아있고 나머지 세 분은 이미 떠났다고 해요! 저하의 자리조차도 문아름 아가씨에 의해 대체되었습니다!”민규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윤구주의 자신의 왕위가 대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결코 많은 분노를 표
선조가 구중현천으로 승천하고 종주였던 풍무극은 죽음을 맞이하며 도마저 끊겼다. 요마도 모두 제거되었으니 이제 서요산은 과연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서요산의 사람들이 방황하고 있을 때 윤구주가 진요탑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구주야!”장인 대장인과 서요산 제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심하게 다친 몸을 이끌고서도 윤구주를 맞이하려고 했다.하지만 눈앞의 윤구주는 눈빛이 텅 비어, 마치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꼭두각시처럼 생기가 없었다. 만약 진인들이 신념으로 윤구주의 기운을 감지하지 못했더라면 이미 마인에게 빙의된 것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아마 전설 속의 원신출교를 쓴 것 같아.”그때 도착한 임정설은 그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신출교는 성인의 경지에 이른 자만이 가능한 일이다.”장인 대장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수련이 부족한 사람이 억지로 원신출교를 하면 심각한 후유증이 따라오기 때문이다.바로 그때 윤구주의 양혼이 하늘 위로 떠 올랐고 수천 자에 달하는 양혼 성령의 기운이 화진의 절반을 덮었다.“장인 대장인, 지금은 고민할 때가 아닙니다. 당장은 서요산의 미래를 정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일단 지금은 진을 세워 저를 호위해주시고 제 원신을 육체로 돌아가게 한 뒤 얘기합시다. 운이 나쁘면 나중에 혼수에 들어가야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 무명 마인처럼 사도로 들어서야 할지도 모르니까요.”장인 대장인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요산의 존재 여부는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모든 제자는 들어라! 수령진을 세워 구주왕을 호위하라!”멀리서 이 말을 들은 백호는 윤구주가 죽은 줄 알고 울부짖으며 달려와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무덤이라도 파려는 기세였다.“이 자식! 그렇게 내가 죽길 바랐냐?”윤구주의 음성이 들려오자 백호는 또 깜짝 놀라서 얼어붙었다...그 후 며칠 동안 서요산은 윤구주를 보호하며 호법을 세웠다. 그 목적은 단 하나, 서요산의 영기 흐름을 안정시켜 윤구주의 원신이 무사히 육체로 되돌아가게 하기 위함이
인간 세상에서의 수련은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구주왕의 명성을 얻는 것이었고 이 모든 것은 인황번을 제작하기 위함이었다.그때부터 이미 윤구주의 스승들은 그에게 목표를 정해주었다.언젠가 윤구주가 혼자 힘으로 무명의 마인을 죽일 수 있게 되면 그때야말로 진정으로 출사의 날이 온 것이다.인황번은 백성들의 마음을 모아 인간계의 황제 기운을 더하고 ‘반드시 죽이고 반드시 이긴다.’는 굳건한 신념이 실체화된 에너지로 변하여 무명 마인을 향해 쏟아진다.일격으로 마를 처단하는 기술, 이 기술은 인간계에서 가장 강력한 절기라고 할 수 있다.무명의 마기가 무너지며 인황번은 바로 음신사체를 강타했다.만장의 무지갯빛이 무명 마인의 신혼을 단숨에 관통했다.이 모든 과정에서 막강한 반선인 무명은 아무런 반항도 할 수 없었다.“윤구주, 나는 인정 못 해. 왜 화진에서 너 같은 괴물이 나온 거냐. 하늘이 불공평하다.”무명 마인은 수백 년 동안 쌓은 도행을 믿고 있었기에 신혼이 관통당했음에도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그러나 그 마지막 포효가 끝난 후 신혼은 한순간에 무너졌다.윤구주의 말이 또 맞았다.무명은 끝내 도에 들지 못했고 따라서 ‘의지’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몸과 신혼이 무너지면서 의식도 함께 흩어졌다.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신혼을 쓸어가듯 흩어지게 만들며 결국 티끌조차 남기지 않았다.“무명은 평생을 수련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구나.”서요산의 선조가 탄식하며 말했다.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대재앙이 오늘에서야 비로소 해결되었고 그로 인해 산조의 오래된 근심도 마침내 완전히 사라졌다.“선조 님, 정말로 ‘구중현천’이라는 게 존재하나요? 그 위에는 대체 뭐가 있죠?”윤구주가 호기심에 물었다.그 질문에 선조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말했다.“윤구주, 보아하니 이번 여정에 꽤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군. 무명 같은 마인을 처단하는 그 큰 업적을 세우고도 오히려 구중현천이 더 흥미롭다니.”“무명을 죽이는 건 예정된 일이었어요.
그는 다시 한 번 서요산 검종의 선조에게 봉인당할 가능성이 있지만 윤구주의 손에 패배할 가능성은 절대 없었다.딱히 다른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수백 년 동안 수련해 왔는데 고작 윤구주 하나 제대로 제압하지 못한다면 애초에 수련 따위는 하지 않는 편이 낫다.“그래? 근본도 없고 이름도 없는 네가 날 죽이겠다고? 넌 자격 없어.”윤구주는 손가락을 펴 검을 형성했고 만법귀일하더니 선기가 검으로 응집되었다.그가 만들어낸 한 자루의 주선검은 허공을 가르며 떠올랐고 그 검의 날카로움은 서요산 선조조차 압도했다.무명의 마기는 검의 기세에 의해 모두 흩어져 사라졌다.마기가 사라지자 무명의 진면목이 드러났다.소위 반선이라는 자도 결국엔 그저 음신사체일 뿐이었다.예전에 윤구주와 싸웠던 그 사악한 사술들과도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었다.“너 같은 자가... 감히 신선이 되겠다고? 이 길은 너는 오를 자격이 없어.”윤구주가 검을 휘두르니 막강한 선력이 무명을 완전히 억눌렀다.이로써 승부는 분명해졌다. 무명은 잠시 놀라더니 갑자기 미친 듯이 웃어댔다.“네가 날 이긴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데? 넌 날 죽일 수 없어!”“수련이 부족하다면 네가 아무리 선도를 미리 깨달았다 해도 경지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넌 날 죽일 힘이 없어.”“서요산 늙은이, 너도 날 다시 봉인하려는 생각은 접어. 내가 이 세상을 뒤엎지 못한다면 차라리 이 세상과 함께 죽어버리겠다.” 마기가 다시 한 번 폭발하듯 분출되고 위험을 감지한 서요산 선조는 즉시 나서려 했다.“윤구주, 저 녀석 지금 자폭하려 하고 있다. 만약 이 자가 자폭에 성공한다면 세상이 멸망하지 않더라도 우리 화진 9주 중 최소 세 개 주의 생명이 몰살될 것이다.”“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화진의 국운 역시 큰 타격을 입게 된다.”이에 소요산 선조도 더는 손을 놓고 있을 수 없게 되었다.“하지만 인간 세계의 시비는 나 윤구주가 직접 심판하겠다. 무명은 인간 세계의 마이니 반드시 내가 처단할 것이다.”윤구주의
임정설과 청해는 하늘의 호천경 하나가 백만 마리의 요괴들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이것이 바로 전설 속...”임정설의 지금까지 믿어왔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신의 경지를 넘는 존재가 진짜로 존재한다고? 인간이 정말 신선이 될 수 있단 말인가?’서요산 검종의 장인 대장인과 제자들이 하늘을 향해 절을 올렸다.“서요산 선조님께 인사 올립니다.”백호는 제자리에서 얼어붙었다.늘 미치광이 같던 그에게 있어서는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 요괴들은 다 어디로 간 거지? 설마 저 거울이 재앙의 근원이었던 건가?”백호는 눈을 부릅뜨며 당장이라도 하늘로 솟아올라 거울을 부수려 했으나 청해가 간신히 그를 막았다.한편 진요탑에서는 서요산 선조의 법신이 강림하며 온몸에 감도는 선기로 무명을 억누르고 있었다.“서요산의 늙은이, 네놈 아직도 죽지 않았어? 구현천도 널 죽이지 못했단 말이냐!”무명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누가 알았겠는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또다시 이 성가신 서요산의 늙은이가 나타날 줄이야.“나는 하늘과 함께 움직이며 하늘의 도를 대신해 정의를 집행한다.네가 죽지 않으면 하늘의 재앙이 끝나지 않는다. 너를 죽이지 않고서야 어찌 구현천도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겠느냐!”선인의 목소리가 온 세상을 뒤흔들었다.그 선기는 무명을 억제하는 동시에, 이번에는 윤구주를 돕기 위한 것이 확실했다.“구주야, 마음껏 싸워라! 만약 네가 이 마귀를 죽이지 못하면 그때는 내가 나서겠다.”이보다 더 확실한 지원군이 있을까. 누구라도 이런 말 한마디면 충분할 것이다.그러나 윤구주는 하늘이 내린 영광을 지닌 자이자 천하의 구주, 오방의 통치자로서 절대적 존재이다.“선조님의 말씀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오늘 선조님께서 오지 않으셨어도 저는 아마 그를 반드시 죽였을 것입니다.”“저 윤구주가 어떻게 이 자를 베어버리는지 지켜보십시오.”윤구주의 기세 넘치는 말에 서요산 선조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임정설이 일으킨 이씨 가문의 기세조차 마물들에게 잠식당해 사라지고 있었다.청해는 말 그대로 처참한 상태였다. 이젠 자기 몸 하나 제대로 지킬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나마 임정설이 죽을 각오로 지켜주지 않았다면 진작에 목숨이 끊겼을 터였다. 결국, 화진의 국주가 자신의 목숨을 지켜준 것이다. 이 순간만큼은 죽는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음 생이 있다면... 화진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줘. 그게 아니라면. 그냥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게 해줘... ”청해는 하늘을 향해 처절하게 외쳤다. 임정설은 고개를 번쩍 들고 한 번 더 울부짖었다. 그 울음은 황자의 기운을 불러왔고 서요산 일대의 천기와 섞여 거대한 진룡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황도기운과 진룡을 하나로 모든 요마를 베어낸다! ”그 역시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대로 더는 버틸 수 없다면 풍무기처럼 자신의 마지막 의지를 국운에 녹여야 할 것이다. 진요탑 안. 이 일대 세계 전체가 마기에 잠식되어 만물은 스스로 죽음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런 데 무명은 더 이상 흥분할 수 없었다. “하하! 인황이 뭐라고? 도를 얻은 건 나다. 나는 이미 진정한 길의 끝을 보았다. 내 의지는 구천 현천을 관통한다. 하늘도 날 감당할 수 없어. ”그 순간 하늘과 땅이 동시에 울컥하며 뒤틀렸다. 무언가 말도 안 되는 존재가 깨어나는 기운이었다. 이 작은 진요탑 속 공간조차 그걸 담아낼 수 없어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무명이 눈을 치켜떴다. “또 뭘 하려는 거야? 설마... 윤구주 너 나를 봉인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네 실력으론 날 봉인 못 해. 아니, 가능하다 쳐도 목숨을 걸어야만 가능하지. 하지만 지금 넌 그 목숨을 걸어도 겨우 나를 세 손가락만큼 다치게 할 수 있을 뿐이야. 그 정도 피해라면 기꺼이 감수하지. 와봐, 날 얼마나 벨 수 있나 보자고. 병이 오면 장수로 막고, 물이 오면 흙으로 막는 법이지. 그러니 한번 보자고 구주왕이라는 놈의 마지막 발악이 어떤지. ”무
“인간마가 세상에 나왔는데, 대체 누가 막을 수 있겠냐. 왜 그 무게를 전부 화진이 짊어져야 하는데? 이건 너무 불공평해.”청해는 처음으로 곤륜영역에 혐오감을 느꼈다.그리고 그제야 윤구주가 말했던 위선의 신이라는 말이 단순한 수련의 이야기가 아님을 이해했다.그들은 입만 열면 도덕과 정의를 떠들지만, 정작 하는 짓은 불의 그 자체였다. 위선적이기 짝이 없었다.“아아아!청해무극! 지은살결!!”청해는 모든 정원을 끌어 올렸고, 심지어 음혼까지 태워버렸다.음혼이 하늘의 뇌격을 불러오자, 그의 기운 속에는 놀랍게도 정의로운 황기가 피어올랐다.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는 도에 들어선 것이다.그 수련은 폭발하듯 치솟아 극점 신경 후기에 이르렀고, 잠시나마 이성설과 맞먹는 기세를 뿜어냈다.“카! 이제야 좀 신 같은 포스가 나오네!”백호는 멀리서 엄지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하지만 청해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백호는 원래 미친놈이었으니까.누구든 이 상황이면 절망했을 전황.하지만 백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율로 들떠 있었다.그는 전투를 위해 태어났고, 결국 전장에서 죽을 운명이었다.그게 백호가 택한 길 죽음을 향한 도였다.세 사람 모두 이미 죽을 각오로 싸우고 있었다.살아남을 생각 따윈 없었다.마물들과 함께 미쳐 날뛰며 생사의 끝자락을 오갔다.진요탑.풍무기는 전사했다.이제 남은 건 윤구주 단 한 사람.그가 인간마와 맞서야 할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윤구주! 풍무기는 죽었다. 이젠 네 차례야! 혼을 꺼냈다고 해서 날 이길 수 있다는 뜻은 아니야. 내 육신이 남아있는 이상, 나는 이미 성인의 경지에 올랐다. 지금의 반성 상태만으로도 네 인황 따위가 감당할 수는 없어. 그래, 네 선술은 순수하겠지. 그래서 네 육신엔 손댈 수 없지만 혼을 지워버리면 넌 끝이야. 마도무영,도파무극! 혈음마도, 현세에 나타나라!”그의 손에 한 자루의 절세마도가 출현했다.그 칼끝에서 피의 바다가 솟구치고, 살기는 윤구주의 황기조차 압도했다.이런 마도를 길러내기 위
잠금요탑 밖, 무너졌던 마기가 흩어지자 서요산 검종 제자들 사이에서 울음이 터졌다. 500년 만에 다시 햇살을 본 그 순간 꾹꾹 눌러왔던 감정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서요산은 그 오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도움 없이 혼자서 마를 억눌러왔다. 그 현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났다. “무명이 죽은 건가? ”장인대진인이 순간 멍해졌지만 곧 신념술로 본 광경에 얼굴이 굳어졌다. 귀물들이 미친 짐승처럼 날뛰며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산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이제부터가 진짜다. 무슨 일이 있었든 간에 윤구주가 무명의 목에 칼을 들이댄 건 확실해. 지금이 바로 마지막 승부의 시점이다.”말이 끝나자마자 흩어진 마기가 다시 거칠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마기가 응집되더니 거대한 마영체가 형성됐다. 그 거대한 그림자는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고 대지를 집어삼키려는 듯 광폭하게 움직였다. 그건 이제는 환상이 아니었다. 그 자체로 재앙이었다. 잠금요탑 위로 백장 크기의 마존이 강림했다. “윤구주! 네가 이 정도였다고? 실력만큼은 서요산 시조랑 비교해도 꿀리지 않겠군. 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미 흐름은 정해졌다. 대세는 되돌릴 수 없어. 그 시조가 도력이 하늘을 찌르고 능력이 천하를 뒤흔든다 해도 결국 날 죽이지 못했지. 결국엔 구천을 떠돌며 외도계에서 날 베어낼 무언가나 찾고 있겠지. 외도계엔 나를 죽일 보물이 있을지도 몰라도 이곳 인간계 구주의 오방 안에서는 절대 없어. 너도 마찬가지야, 넌 여기서 끝이다. 죽어라!! 윤구주. 마의 경계는 끝이 없고 마의 바다는 만 리를 삼킨다! ”하늘이 찢기고 무한한 마해가 대지를 뒤덮었다. 잠금요탑은 순식간에 요산으로 변했고 주변은 온통 사기와 혼란으로 뒤덮였다. 무명은 드디어 자신의 사혼체를 드러내며 윤구주와 마지막 일전을 준비했다. 윤구주의 손에 들린 참마검이 떨리기 시작했다. 풍무기의 상태가 이미 한계라는 증거였다. “구주야, 내 양혼신체는 거의 다
‘선술? 크하하하!’무명이 미친 듯 웃었다.“네가 황자면 뭐 어쩌라고? 결국에는 한순간 스쳐 지나가는 인간 세상의 유성일 뿐이지.”“나는 무명이다.하늘은 이미 내 발 아래 있다.세상의 법? 그런 건 내가 정하는것이다.”“윤구주! 과연 네놈이 날 어떻게 상대할지 두고 보겠다!”‘원신출체도 못 한 놈이 선술을 깨달았다고? 어이없네.’무명의 눈에는 윤구주란 놈은 선술의 겉껍데기나 훔쳐본 수준에 불과했다.입만 산 허세쟁이 꼬맹이였지 그딴 놈은 애초에 눈에 들어올 가치조차 없었다.게다가 진짜 선술을 논하려면 그 참마검조차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하는 주제에.하지만 윤구주는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신의 경지에 머물던 시절,우연히 소요산에 들렀을 때 그때 이미 선술의 근본을 깨달았지.”윤구주의 눈이 빛났다.“지금, 네게 그걸 보여주마.”“구기신통 , 등선!”부우우우웅!!윤구주의 몸을 감싸고 있던 하얀 기운이 순식간에 실체의 불꽃으로 응결되었다.기운이 ‘기’에서 ‘힘’으로 승화된 것이다.무명의 눈동자가 순간 가늘어졌다.이게 뭔지 무명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이제 윤구주는 몸 자체에서 영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솔직히 말해서 마음만 먹으면, 주변 땅의 기운조차 자기 위주로 바꿔버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윤구주는 이제 한 종파의 시조로 불릴 자격이 있는 존재였다.더 이상 강자를 넘어서 자신만의 도를 세우고, 전설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무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저건, 설마 성력?!”그 힘은 그렇게 압도적이진 않았지만 문제는 진짜였다. 가짜가 아닌, 순도 100%의 성력이었다.“말도 안 돼...저놈이 어떻게...”무명의 내면이 갈기갈기 찢어졌다.수행자에겐 한 단계 한 단계가 천벽과도 같다.특히 성의 경지에 이르기 까지는 그야말로 하늘과 하늘 사이를 걷는 자들만이 갈 수 있는 길이 였던것이다그리고 지금 윤구주는 그 문턱을 스스로 넘고 있었다.“무명! 넌 반성자일뿐! 육신만 있었으면 성인이 됐을지도 몰라.하지만 지금 넌 가짜
단 한 걸음,그 한 걸음만 넘기면, 그는 곧 성급 바로 직전 경지에 이른다.그리고 그 마지막 문턱을 박살내는 순간 반쯤 성인이 된 경지, 반성급이다!지금 이 자리, 그 반성급 경지에 선 자는 바로 인마라고 불리는 무명이었다.“과연... 화진의 인황, 구주왕이라 불릴 자격은 있군. 하지만 너도 알겠지. 지금 네 수준으론 몸을 직접 이 판에 던지지 않는 이상 나랑 맞붙을 자격조차 없어. 네가 그 잘난 원신출체를 어떻게 하겠다는지 구경이나 해보자고. ”무명이 입꼬리를 비틀며 코웃음쳤다.팔기귀일에 도달한 윤구주의 전투력은 이미 황의 지경을 뛰어넘었다.하지만 무명과의 경지 차이는 여전히 너무 컸다.실력은 분명 엄청났지만 격이 다르였다.지금 상태로도 보통의 황자의 경지까지 초월한 상태지만 무명을 상대하긴 아직 한참 부족했다.심지어 무명이랑 싸울 실력은커녕 참마검조차 손에 제대로 못 잡는 게 현실이었다.“팔기로 부족하다면... 제구기는 어때? 구기:적선!”부우우우웅!윤구주의 온몸을 하얀 선기가 감싸는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웃고 있던 무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뭐라고? 이건 네 따위가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잖아! ”그 순간, 무명조차 숨을 삼켰다.이건 상식의 틀을 깨부수는 광경이었다.근대에 들어서면서 도에 대한 수련는 사실상 약해졌다.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세상에 흐르는 천지영기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봉신전쟁 당시, 상상을 초월하는 영기가 소모됐고 그 전쟁이 끝난 후 곤륜구역은 세상의 영기 90%를 신계에 봉인해버렸다.거기서 마음껏 영기를 탕진한 것도 모자라 바깥의 산수들까지 무분별하게 빨아들인 탓에세상의 영기는 걷잡을 수 없이 줄어들고 말았다.결국 세상은 고위 수련자가 태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그래서 화진에선 500년에 한 번 황자가 나올까 말까 할 정도이고 황자의 경지에 도달하는 건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었다.임정설이 황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처음부터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윤구주를 돕기 위해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