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선생님 도와주세요!”“선생님께서 이 모란밭을 구해 주신다면, 저 안이준은 20억 원을 드릴 수 있고 우리 법기 상점의 모든 물건으로 교환할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안 사장은 감격해서 말했다.“별로 어려운 일 아닙니다! 이따가 제가 풍수지리를 배치하여 지하 음기를 유도하고 음양을 조화시키면 이 모란밭은 다시 만개할 수 있을 겁니다. 사계절이 봄날처럼 아주 활짝 필 수 있을 거예요!”황 대가는 자기 팔자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뭔 말같지도 않은 헛소리야!”안 사장과 다른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날카로운 눈매에 왕의 기운을 내뿜고 있는 범상치 않은 분위기의 윤구주가 서 있었다.낯선 사람이 나타나자 순간 모든 이의 주의를 끌었다.“네 놈, 넌 누구야? 왜 여기 와서 소란을 피워?”모란가의 사장은 성난 목소리로 윤구주를 향해 말했다.이번에 ‘황 대가’를 모시려고 안 사장은 아주 많은 인력과 재력을 들여 겨우 이곳으로 초대할 수 있게 되었다.그런데 지금 갑자기 누군가가 소란을 피우니, 어찌 그가 화를 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사장님, 이놈은 방금 우리 법기 상점에 물건을 사러 온 사람이에요!”한 머슴이 윤구주를 알아보고 외쳤다.“이런! 오늘은 관계자 외에 일체 출입할 수 없게 단속하라고 내가 진작 말했잖아? 당장 끌어내!”안 사장이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잠깐!”이때 도포를 입은 황 대가가 갑자기 안 사장을 제지했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윤구주를 보더니 물었다.“방금 이 젊은이가 나를 보고 헛소리를 한다고 했는데, 어떤 견해를 가졌는지 듣고 싶네요. 혹시 당신도 나랑 같은 업계를 종사하시오? 풍수비학을 배웠소?”그의 물음에 윤구주는 고개를 저었다.“풍수비학도 모르고 같은 업계를 종사하지도 않으면서 왜 근거도 없이 내 말이 헛소리라고 한 것이오?”황 대가가 계속 따져 물었다.“왜냐하면 그쪽 말은 원래 헛소리니까요!”
“네가 구룡점혈이 뭔지, 봉수점금이 뭔지 알아?”황성해는 말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화가 머리끝까지 난 맹호처럼 기세가 등등했다.하지만 윤구주는 움직이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당신이 말한 건 한 권도 읽지 않았지만 난 알고 있어. 당신이 틀렸다는 걸!”윤구주는 말을 마치고 모란밭을 가리켰다.“이곳은 당신이 말한 쇄양지도 아니고, 음양의 조화로 모란꽃을 피울 수 있는 곳도 아니야!”“만약 당신이 정말 그렇게 한다면 이 모란들은 더 빨리 죽게 될 거야!”“못 믿겠으면 어디 한 번 해보든가!”그의 말에 황성해는 철저히 분노했다.“이 녀석이! 네가 감히 나를 의심해? 내가 풍수를 보기 시작했을 때, 넌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어! 오늘 진정한 풍수비술이 무엇인지 내가 똑똑히 보여 주마!”황성해는 재빨리 오른손으로 시든 모란 한 송이를 따더니, 허공에 들고 입으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황 대가님께서 법술을 부리고 계셔. 저기 좀 봐봐!”주위 사람들은 화난 황성해가 마침내 법술을 부리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황성해가 무려 5분 동안이나 주문을 외우고 크게 한번 소리치더니 허공에 들고 있던 모란꽃을 가리켰다. 아니나 다를까, 보이지 않는 현기가 황성해의 지현으로부터 모란꽃으로 들어갔다.“모란꽃이 살아난 것 같아요!”한 머슴이 흥분해서 황성해 손에 있는 시든 모란을 바라보면서 소리쳤다.아니나 다를까 황성해의 법술에 따라 시든 모란이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했다.까무잡잡하던 꽃잎이 서서히 새하얗게 변하고 있었다.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거의 죽어가던 모란꽃이 진짜 살아났다!“살았어!”“정말 살아났어!”“어머, 역시 황 대가님이셔!”이 장면에 현장의 사람들은 모두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특히 모란가의 사장 안이준은 백여 년 동안 조상 대대로 이어온 모란밭을 결코 자기 손에서 망치고 싶지 않았다.모란꽃이 다시 만개한 것을 보고 그는 갑자기 흥분했다.“너 이 녀석, 아직도 할 말이 남았어?”안이준은 화가 나서 윤구주를
“이게 뭐야?”“모란꽃이 또 시들었어?”이 장면을 바라본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은 눈이 휘둥그레졌다.하지만 제일 화가 난 것은 모란가의 사장 안이준이었다.그는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 마치 철천지원수를 보는 듯 윤구주를 향해 으르렁거렸다.“이 나쁜 놈! 대체 뭔 짓을 한 거야? 내 모란꽃이 왜 다시 시들어버린 거야?”옆에서도 윤구주를 향한 비난과 욕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그들은 방금 윤구주가 모란꽃을 시들게 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무식한 놈들!”윤구주는 코웃음을 치며 더 이상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황성해를 쳐다보았다.“당신도 이들과 같은 생각이야?”황성해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방금 자신이 모란꽃을 피운 것이 확실히 속임수였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죽은 꽃을 회생시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나쁜 놈, 우리 조상님의 모란을 망가뜨린 것도 모자라 감히 황 선생님을 협박해? 여봐라, 이 나쁜 놈을 당장 쫓아내!”모란가의 사장이 고함을 지르자 주변에 몇 명의 머슴들이 와서 윤구주를 쫓아내려고 했다.이 무식한 인간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을 보고 윤구주는 한숨을 내쉬었다.“됐어! 나도 눈뜬장님 같은 당신들을 도와줄 마음이 없어! 다만 떠나기 전에, 나의 능력을 똑똑히 보여 주지!”말이 떨어지자 윤구주는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쾅!형언할 수 없는 하늘을 가르는 현기가 사방으로 밀물처럼 밀려들었고, 특히 이미 시들어 떨어진 모란꽃밭으로 가득 몰려들었다.이어서 윤구주가 크게 소리쳤다.“개화!”마치 사신이 명령을 내린 것과 흡사했다.순간, 시들었던 모란꽃밭 전체가 활짝 피었다. 수많은 귀한 모란꽃들이 저마다 아름다움을 다투며 이곳을 다시 꽃바다로 만들었다.“이건... 어떻게...”모란가의 사장을 필두로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놀라서 멍해졌다.하지만 가장 놀란 사람은 바로 황성해였다.그는 두 눈을 힘껏 비비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안돼... 이건... 불
윤구주가 말했다.“걱정하지 마. 그 모란꽃들은 오래 살지 못할 거야!”“그게 무슨 뜻이죠?”“그 모란꽃들은 잠시 살아 있을 수 있지만 얼마 못 가 곧 다시 시들어버릴 거야!”“왜요? 모란꽃들이 모두 살아나는 것을 제 눈으로 분명히 봤는데요?”백경재는 이해되지 않는 표정이었다.“그건 말이야! 모란꽃밭이 시들었던 원인은 땅속에 있기 때문이지!”“땅속에요?”“맞아!”윤구주의 눈빛은 빛나고 있었다.시든 꽃밭을 처음 보았을 때 윤구주는 땅 아래에서 뭔가 뜨거운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을 느꼈다!바로 그 뜨거운 에너지 때문에 이 100년 불패의 모란꽃밭이 시들어 버린 것이다.하지만 구체적으로 그 물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윤구주는 아직 판단할 수 없었다.윤구주가 백경재에게 설명하고 있을 때 뒤에서 함성이 들려왔다.“신님, 가지 마세요!”“신님, 가지 마십시오!”윤구주와 백경재가 고개를 돌리자, 모란가의 사장이 몇 명의 머슴들을 데리고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갑자기 들이닥친 그들을 보며 백경재는 눈살을 찌푸렸다.“또 이 사람들이야?”달려온 모란가의 사장은 숨을 헐떡이면서 윤구주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며 서둘러 입을 열었다.“신님, 죄송합니다. 전에는 제가 눈이 멀어 오해했습니다. 진심으로 사과 말씀드리겠습니다.”모란가의 사장은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윤구주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안이준이 갑자기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모습에 윤구주가 말했다.“왜, 이제야 자기 잘못을 안 거야?”“네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무식하여 잘못을 범했으니 부디 노여움을 풀어주세요!”모란가의 사장은 애원하듯 말했다.“신님, 제발 우리 가문의 조상 대대로 내려온 꽃밭을 구해 주십시오!”“도와달라고? 꿈 깨!”백경재가 다급히 나섰다.“방금 당신들이 멋대로 떠들어대면서 나랑 저하를 내쫓으려고 하지 않았어? 그러고도 이제 와서 뻔뻔스럽게 부탁하는 거야?”백경재의 말에 모란가의 사장은 면목이 없었다.“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전에는 제가 눈이
윤구주의 말을 듣자 모란가의 사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가문 대대로 내려온 꽃밭에 관해서는 엄격히 비밀이었다. 윤구주의 말대로 안씨 가문에는 확실히 진법사가 한 명 있었다.그 꽃밭 땅속에도 확실히 ‘풍수집재진(재물을 모으는 진법)’이 있었다.풍수 대가 황성해도 눈치채지 못한 비밀이 윤구주의 눈에 띌 줄은 몰랐다.모란가의 사장은 다시 윤구주를 바라보며 완전히 승복한 표정이었다.“왜, 싫어?”윤구주는 모란가의 사장이 망설이는 걸 보고 물었다.“저는... 좋습니다!”모란가의 사장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신께서 우리 가문의 꽃밭을 계속 시들지 않는 불패 신화로 만들어 주신다면 땅속을 파헤쳐 그 물건을 꺼내 드릴 수 있습니다!”“좋아, 그럼 그렇게 하지.”윤구주는 활짝 웃었다.그 꽃밭에 어떤 보물이 숨겨져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 보물이 절대적인 가치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럼 저와 함께 돌아가시지요!”모란가의 사장이 예의 바르게 말했다.그리하여 윤구주는 백경재와 함께 다시 모란가로 돌아왔다.그들이 안뜰에 도착하자, 풍수 대가 황성해는 겁에 질린 얼굴로 윤구주를 향해 공손히 절을 올렸다.“소인이 선배님께 인사 올립니다! 전에는 소인이 눈이 어두워 선배님을 알아뵙지 못했으니 부디 마음에 담지 말아 주세요!”황성해는 진심으로 황송한 표정을 지었다.윤구주도 그를 난처하게 하지 않고 손사래를 쳤다.“괜찮네! 다음번에는 그런 속임수를 써서 망신당하지 말게나!”그 한마디에 황성해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하지만 윤구주와 같은 하늘을 거스르는 신 앞에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둘러 대답했다.“네, 선배님이 주신 교훈은 제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겠습니다!”윤구주는 더 이상 황성해를 상대하지 않고 모란꽃 정원으로 걸어갔다.이 꽃밭은 윤구주의 일념으로 이미 모두 되살아났지만 부활은 잠시 적일 뿐이었다. 모란가 사장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그는 화들짝 놀랐다.“그럼 이제 어떡해야 합니까?”윤구주는 그 꽃밭
주위 사람들도 잇달아 그 청석 구덩이를 바라보았다.“역시! 이 꽃밭 밑에는 확실히 재물을 모으는 진법이 있었어!”윤구주가 말했다.그의 말에 황성해는 순간 자기 이마를 툭 쳤다.“그래, 바로 이거였어!”“안씨 가문 백년 불패의 모란꽃밭은 바로 이 집재 진법의 보호 덕분에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어! 다만, 이 풍수집재진은 이미 파손된 것 같군. 그래서 꽃밭이 시들어버린 거고!”황성해는 깨달음을 얻은 후 갑자기 숭배하는 얼굴로 윤구주를 향해 말했다.“선배님 말씀이 맞았습니다. 제가 틀렸어요. 전 처음부터 틀렸어요! 이제야 왜 저에게 터무니없는 소리를 한다고 했는지 알았어요. 그리고 선배님이 꽃밭을 왜 파헤쳤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선배님, 제 절을 받으시죠. 이번에는 제가 크게 한 수 배웠어요!”황성해는 흥분한 나머지 윤구주를 향해 공손히 무릎을 꿇었다.윤구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의 시선은 오직 바닥의 뜨거운 기운에 사로잡혀 있었다.그의 몸이 허공에 번쩍이더니 어느새 꽃밭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윤구주는 신념으로 검은 물을 바라보았다.몇 초간 지켜본 뒤 그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이거였구나!”말이 끝나자 그는 손을 들었고 ‘쾅’하는 소리와 함께 중앙의 검은 물이 순식간에 폭발하는 것처럼 사방으로 튀었다.그리고 주먹만 한 크기의 자갈색 돌멩이가 모두의 눈앞에 나타났다.뜨거운 기운은 바로 이 돌 속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었다.그 기괴한 돌을 바라보며 모두가 놀라 멍해졌다.“저게 뭐야?”“돌멩이 같은데?”“아니야. 보통 돌멩이가 어떻게 저런 뜨거운 열기를 뿜어낼 수 있겠어?”주위 사람들은 눈을 부릅뜨고 의아해했다.모란가의 사장도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유독 윤구주만이 그 주먹만 한 갈색 돌멩이를 보자마자 눈을 반짝였다.“그 희귀한 화정석이었어!”“어쩐지 그렇게 뜨거운 기운을 뿜어내더라니!”말을 마친 윤구주는 허공에 손을 뻗었고 ‘휭’하는 소리와 함께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화정석이 순식간에 윤구
주변 사람들은 진법사가 진법을 배치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황성해도, 백경재도 마찬가지였다.그래서 다들 눈을 부릅뜨고 설레는 눈빛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윤구주는 앞으로 다가가 파괴된 풍수집재진을 눈여겨보더니, 곧바로 파괴된 부위가 ‘중궁’의 위치라는 것을 깨달았다.이 중궁의 위치가 너무 오래되어 지맥의 기와 진법이 서로 반동하여 지맥의 기운이 위로 솟구치게 되었다.그 결과, 화정석의 어마어마한 열에너지가 지맥의 기운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해 유출되었고, 이로 인해 백년 불패의 모란꽃밭이 시들어 버렸다.원인을 알게 된 윤구주는 손을 들어 세 가지 진법을 시도했다.순간, 사방에 광풍이 크게 일었고 눈에 보이지 않는 현기가 유동하더니 풍수집재진의 중궁 자리가 저절로 고쳐지기 시작했다!몇 초도 안 돼 윤구주는 다시 한번 손을 크게 흔들었다.“진법, 완성!”이렇게 외치자 풍수집재진이 완전히 복구되었다.그리고 진법이 성공하자 아까 밖으로 뿜어져 나오던 열기도 자취를 감췄다!이를 지켜보던 황성해가 제일 먼저 감격의 목소리를 냈다.거의 30년 동안 풍수를 보아 온 ‘대가’로서, 이렇게 빨리 파괴된 진법을 고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단번에 진법을 성공하다니! 이것이 전설 속의 일념성진(一念成陣)이네요! 세상에, 우리 조상님도 해내지 못한 재주를 선배님은 눈 깜짝할 사이에 완성하네요! 선배님은 역시나 신이세요!”이것은 황성해가 세번째로 윤구주를 신으로 칭찬한 것이다.“안 사장님네 모란가는 복이 많으시네요. 선배님 같은 신이 풍수집재진을 보수해 줬으니, 이제 꽃을 피워 조상을 빛낼 일만 남았네요!”황성해의 말을 들은 모란가의 사장은 의아해하며 물었다.“벌써 다 됐나요?”“당연하죠! 얼른 선배님께 인사 올리지 않고 뭐 해요?”황성해가 말했다.모란가 사장은 그제야 깨닫고 서둘러 윤구주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신이시여!”“감사할 필요 없어. 조건을 걸고 돕기로 했으니까. 이제 일도 완성했으니 난 이만 가볼게
손바닥에 있는 화정석은 자갈색을 띠고 있어 일반 유리구슬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강한 뜨거운 에너지를 품고 있지만 일반인이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유리 돌멩이라고 생각할 것이다.“이 작은 강성에 이런 보물이 있을 줄이야!”윤구주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손안의 화정석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이 물건은 제기사에게 있어서 아주 귀한 재료였다.이 재료로 고급 법기들을 제련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하지만 지금의 윤구주는 법기보다 여자친구 소채은을 위해 호신품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였다.“그래, 바로 이거야!”“호신용 목걸이를 만들어 채은이 목에 걸어주면 기본적인 상해는 막을 수 있을 거야!”여기까지 생각한 윤구주의 눈이 더 반짝였고 바로 제련을 시작했다.눈앞의 화정석은 주먹만 한 크기였고 겉은 평범한 수정석이지만 속에는 진정한 화염 정혼이 담겨 있었다. 호신 법기를 만들려면 반드시 가장 순도가 높게 제련해야 했다.동시에 부적 도장을 새겨야 효과가 있었다!화정석을 훑어보더니 윤구주는 오른손으로 화정석을 공중으로 던졌다.곧이어 윤구주는 손으로 화정석을 가리켰다.순간 금빛 현기가 화정석에 들어갔다. 현기를 먹은 화정석은 순식간에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뜨거운 열기가 마치 불바다처럼 화정석의 사방팔방에서 퍼져나갔다.뒷산뿐만 아니라 용인 빌리지 전체로 퍼졌다.뜰 안.백경재는 멀리서 뜨거운 열기가 엄습해 온몸이 불에 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저하께서 제련하시고 있나? 너무 뜨거워.”그는 말하면서 얼굴에 흐르는 뜨거운 땀을 닦았다.바로 그때, 한 여자애가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왔다.“불이야! 불이야! 어르신, 뒷산에 불이 난 것 같은데 빨리 가보세요!”뛰쳐나온 어린아이는 바로 두씨 가문의 딸이었다. 그녀는 땀을 뻘뻘 흘리며 겁을 먹고 뛰어나와 백경재를 보면서 말했다.백경재는 이 나쁜 계집애를 좋아하지 않았다.두나희는 백경재가 자신을 보며 시큰둥한 표정을 짓자 참지 못하고 그의 팔을 낚아채며 말했다.“어르신, 귀먹었어요? 뒷산에 불이 났다
단 한 걸음,그 한 걸음만 넘기면, 그는 곧 성급 바로 직전 경지에 이른다.그리고 그 마지막 문턱을 박살내는 순간 반쯤 성인이 된 경지, 반성급이다!지금 이 자리, 그 반성급 경지에 선 자는 바로 인마라고 불리는 무명이었다.“과연... 화진의 인황, 구주왕이라 불릴 자격은 있군. 하지만 너도 알겠지. 지금 네 수준으론 몸을 직접 이 판에 던지지 않는 이상 나랑 맞붙을 자격조차 없어. 네가 그 잘난 원신출체를 어떻게 하겠다는지 구경이나 해보자고. ”무명이 입꼬리를 비틀며 코웃음쳤다.팔기귀일에 도달한 윤구주의 전투력은 이미 황의 지경을 뛰어넘었다.하지만 무명과의 경지 차이는 여전히 너무 컸다.실력은 분명 엄청났지만 격이 다르였다.지금 상태로도 보통의 황자의 경지까지 초월한 상태지만 무명을 상대하긴 아직 한참 부족했다.심지어 무명이랑 싸울 실력은커녕 참마검조차 손에 제대로 못 잡는 게 현실이었다.“팔기로 부족하다면... 제구기는 어때? 구기:적선!”부우우우웅!윤구주의 온몸을 하얀 선기가 감싸는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웃고 있던 무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뭐라고? 이건 네 따위가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잖아! ”그 순간, 무명조차 숨을 삼켰다.이건 상식의 틀을 깨부수는 광경이었다.근대에 들어서면서 도에 대한 수련는 사실상 약해졌다.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세상에 흐르는 천지영기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봉신전쟁 당시, 상상을 초월하는 영기가 소모됐고 그 전쟁이 끝난 후 곤륜구역은 세상의 영기 90%를 신계에 봉인해버렸다.거기서 마음껏 영기를 탕진한 것도 모자라 바깥의 산수들까지 무분별하게 빨아들인 탓에세상의 영기는 걷잡을 수 없이 줄어들고 말았다.결국 세상은 고위 수련자가 태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그래서 화진에선 500년에 한 번 황자가 나올까 말까 할 정도이고 황자의 경지에 도달하는 건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었다.임정설이 황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처음부터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윤구주를 돕기 위해 왕
마기가 검종 제자들의 혼백에 침투하자 그 순간 제자들의 몸에서 시커먼 마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이를 목격한 장인 대진인은 망설임 없이 즉시 결단을 내렸다. 오염된 제자들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정화해 버린 것이다.“모든 제자들아, 입문 첫날 내가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서요산은 찬란한 성지 화진 정통의 계승지다. 정은 사악함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정은 사악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은 바로 서요산 제자들이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는 도의였다.입문과 동시에 깨달음을 얻은 그들은 언젠가 반드시 도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저 화진 정통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서였다.그 순간 진요탑 외곽에서는 7대 진인을 중심으로 전 종문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진요탑을 사수하고 있었다.하늘을 뒤덮을 듯한 마기의 기세는 점점 거세져 어느새 검종의 경내 전역을 삼켜버렸다.검종 제자들은 마기를 막아내면서도 동시에 진요탑의 결계를 유지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정도를 지키는 일은 그만큼 고통스럽고 힘든 투쟁이었다.산 아래 상황도 마찬가지로 치열했다.온갖 요괴와 귀신들이 들이닥치는 가운데 임정설은 황운을 등에 업고 이씨 가문의 국운을 모두 모아 홀로 수백만 마기를 막아서고 있었다.백호는 마인으로 완전히 변신해 광란의 충격 속으로 몸을 던졌고, 스스로 마를 품은 채 적진을 난도질했다.청해는 천뢰신술을 펼쳐 수만 개의 천뢰를 무기로 변환시켜 온갖 사도와 악귀를 쓸어내기 시작했다.그 무렵 진요탑 내부에서 풍무극의 기세는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구주야, 내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 내 500년 수련의 혼을 너에게 바치겠다."”풍무극의 준비는 이미 완료되었다.그는 미리 준비해 둔 제천 법기를 꺼냈고 전법이 발동되는 순간 그의 육신은 산산조각 부서졌다.그의 정기와 천지 정기를 모두 품은 찬란한 진신 영혼은 한 자루의 참마검으로 변해 윤구주 앞에 떠올랐다.“풍 종주...” 윤구주는 입술을 깨물었다.슬프고 아쉬
윤구주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국운의 기운이 그의 발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그가 진요탑의 문에 도달했을 무렵 모든 국운이 윤구주에게 집중되었다.윤구주의 주변으로는 천인신광이 펼쳐져 있었다.이 순간만큼은 그가 천지의 주재자 화진의 영겁을 관통한 유일한 존재였다.윤구주는 홀로 진요탑 안으로 들어섰다.겉보기에 거대한 산 같았던 진요탑의 내부는 참혹한 말세의 풍경이었다. 땅은 끝없이 펼쳐진 용암으로 뒤덮여 있었고 하늘에서는 강줄기가 거꾸로 흘러내리고 있었다.불과 물이 충돌할 때마다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거꾸로 흐르는 강물 위에 한 노인이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백발이 성성한 그 인물은 다름 아닌 서요산 검종의 종주였다.밖에서 보이던 강건한 중년의 모습은 단지 화신에 불과했으며, 본체는 수백 년 전부터 이 진요탑에서 마인을 봉인해 왔다.서요산 검종 종주는 극도로 지쳐 있었고 이제는 마지막 호흡으로 버티고 있었다.“드디어 왔구나.” 서요산 검종 종주는 허약한 전음으로 말을 건넸다.“오백 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종주님.” 윤구주는 고개를 숙였다.풍무극은 현 서요산의 종주이자 당대 최고의 영웅, 화진 제일 검으로 불리던 남자였다.원래는 풍속을 다루는 수련자로 젊은 시절엔 검 하나로 화진을 호령한 사내로 알려졌다.그의 검은 아무도 궤적을 볼 수 없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500년 전 마인이 봉인되고 서요산의 조사가 승천한 후, 풍무극은 서요산의 거자로서 종주의 자리를 이어받았다.그날 이후 진요탑에 몸을 묻고 마인과의 싸움을 500년간 지속해 왔다.풍을 다루던 그였지만 지속적인 봉인을 위해 익숙하지 않은 수속까지 수련하며 지금까지 버텨왔다.그가 마도에 빠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이었다.“그래도 괜찮다. 다행히 이 시대에 또다시 인황이 나왔으니. 화진은 연달아 두 명의 인황을 배출했다. 임정설이 인황에 등극한 지금 쇠락하던 이씨 가문의 국운이 다시 살아났다. 그가 천지의
마인이 출현하면 곤륜 구역조차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서요산 검종의 진요탑은 이미 오백 년 동안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이는 곧 그 마인이 오백 년 동안 진요탑 안에 봉인되어 있었음을 의미했다.“우리가 가진 유일한 이점은 저 마인이 지난 오백 년간 수련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 오백 년 동안 분명 무언가를 '깨달았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정도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도가 존재하는 법입니다. 만약 그가 이곳을 벗어나 다시 한번 돌파에 성공하여 진정한 성인의 경지에 오른다면…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 우리 종문의 선대 종주께서 이 마인을 직접 봉인하셨습니다. 하지만 선대 종주께서는 진요탑만으로는 그를 완전히 봉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아셨지요. 그래서 마침내 구천으로 비상하셔서 바깥 세계에 존재한다는 신기를 찾기 위해 떠나신 것입니다.”장인 대진인이 비밀을 털어놓자 임정설은 왜 그 옛날 서요산 검종을 창립한 선조가 갑자기 사라졌는지 이해했다.“구천을 비상했다고? 전설 속 그 이야기 설마 전부 사실이었단 말인가? 이 세상 위에 더 위대한 세계가 있다는 건가?” 임정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들은 바로는 성인이란 육지에서 신선이 된 자를 이르는 말이고 준성은 그보다 한 단계 아래 반쯤 신선이 된 존재라 하더군요. 우리보다 더 풍부한 영기의 세계가 과연 존재하는지는 이 몸 역시 감히 짐작할 수 없습니다.” 장인 대진인은 고개를 저었다.그때였다.진요탑이 거칠게 흔들렸고 모든 호법 제자의 얼굴이 딱딱해졌다.수련이 부족한 제자 몇몇은 그 자리에서 마기의 침식으로 피를 토했다.“모든 제자에게 고한다. 나와 함께 현문을 수호하라.” 장인 대진인이 친히 자리에 앉아 온 종문의 기운을 모아 마인을 억제하기 시작했다.마인은 일시적으로 제압되었지만 산 밖의 요괴들과 악귀들은 마기의 부름을 받아 사방팔방에서 서요산으로 몰려들고 있었다.임정설은 이제 자신이 이곳에 온 진짜 이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