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분 후, 소채은은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캐주얼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포니테일을 한 소채은의 모습은 너무 이뻤다.소채은은 걸어 나오면서 윤구주에게 말했다.“구주야. 배 안 고파?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나자가!”마침 배가 고팠던 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이였다.두 사람은 차를 타고 맛있는 대어가 일식집으로 향했다.대어가 일식집은 강성에서 한집만 있는 고급 일식집이고 일반인들은 먹기 힘든 회원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소채은은 VIP룸으로 자리를 잡고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모두 주문했다.소채은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미식은 모든 슬픔과 걱정을 치유할 수 있다.”그래서 오늘 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 소채은은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든든히 채울 계획이었다.음식들로 한 상을 가득 채운뒤 소채은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한 시간 즈음 지났을까, 소채은은 볼록해진 배를 만지며 만족스럽게 말했다.“너무 잘 먹었다. 구주야. 너는?”“나도 너무 잘 먹었어.”윤구주가 대답했다.“그럼 우리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그래!”“저기요. 계산할게요.”여성 웨이터 한분이 주문내역을 들고 걸어왔다.“고객님, 안녕하세요. 총 145만 원입니다.”거액의 식비가 나왔지만 소채은은 덤덤하게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며 웨이터에게 전해줬다.웨이터는 미소를 지으면서 카드를 받고 결제를 하려고 하는 순간 포스기에서 오류가 발생했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고객님, 죄송합니다. 이 카드는 사용불가한 카드라고 뜨는데요.”소채은은 멈칫하더니 별 다른 신경 쓰지 않고 다른 카드를 건네줬다.“그럼 이걸로 다시 결제해 보세요.”소채은은 카드가 워낙 많았다. 프리미엄 카드를 웨이터에게 건네고 결제를 하려는 순간 또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고객님, 죄송합니다. 이 카드도 사용불가네요.”‘뭐지?’소채은은 무척 당황했다.“그럴 리가요? 어제도 제가 이걸로 결제를 했는데!”하지만 웨이터는 고개를 저으며 결제불가라고 거듭 말했다.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소채은은 지갑에
소채은은 한시름을 놓으면서 말했다.“감사합니다!”소채은은 드디어 밥값을 결제할 수 있게 되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소채은이 몰고 왔던 미니 벤츠는 잠시 일식집에 맡겨둬야만 했다.두 사람이 일식집을 걸어 나갈 때 웨이터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이 둘의 옷차림을 보면 돈이 없어 보이지는 않은데? 왜 밥값도 결제 못해서 차를 맡기지?”“하하, 그러게. 이 세상에는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소채은은 이 말들을 들으면서 누구보다 속상해하였다.밖은 이미 어두워졌다.초가을 날씨에 불어오는 찬바람은 제법 쌀쌀하게 느껴졌다.윤구주는 소채은 뒤에서 천천히 길을 걷고 있었다.지금 소채은에게 남은 재산이란 핸드폰이랑 가방 그리고 스카이 가든에 있는 물건들뿐이다.윤구주는 더 말할 나위 없었다.두 사람은 한마디도 없이 사십 분 동안이나 걸어서 스카이 가든으로 돌아왔다.돌아오자마자 소채은은 함부로 땅에 던졌던 돈들을 줍기 시작했다.한참을 주워서 겨우 50만 정도 모았다.널브러져 있는 잔돈들을 보면서 소채은은 절망한 듯 힘 없이 주저앉았다.“어떡해!”“이 정도밖에 없어. 내 차를 다시 가져오기엔 턱도 없다고!”소채은은 울먹거리며 말했다.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집에서는 카드를 정지시키며 중해그룹 조성훈과 결혼하라고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데 소채은은 돌아갈 수가 없었다.‘절대!’“내가 나가서 구걸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다시 돌아가지 않을 거야!”집 밖에서.윤구주는 창밖에 서서 야경을 보면서 중얼거렸다.“채은이를 도와줘야겠어!”잠시 후 소채은은 액세서리 상자를 들고 걸어 나왔다.“구주야. 나랑 같이 가줘!”윤구주는 소채은이 이 시간에 어디를 가려고 하자 놀라면서 물었다.“지금? 어디를?”“전당포!”소채은은 상자를 건네주면서 말했다.윤구주가 상자를 열자 소채은이 평시에 하고 다녔던 액세서리들이 보였다.여성 금시계, 진주 목걸이 그리고 많은 것들이 있었다.윤구주는 갑자기 깨우쳤다.“혹시 이걸 모두 전당포에 맡겨서
전화를 받은 사람은 강성 제일 갑부 주세호였다. 윤구주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주세호는 공손하게 대답했다.“저하!”“세호 씨! 내가 돈이 조금 필요한데 내일 스카이 가든으로 가져다주세요.”주세호는 이유도 묻지 않고 대답했다.“저하, 알겠습니다! 제가 뭘 또 도와 드리면 될까요?”“그리고 작은 일이 하나 있는데. 지금 SK그룹을 누가 책임지고 잇는지 그리고 SK그룹과 관련된 모른 상황을 다 알아봐 주세요.”윤구주가 말했다.“걱정 마십시오. 저하. 소인이 바로 알아보겠습니다!”“더 길게 말하지 않을게요. 어서 주무세요!”그리고 윤구주는 전화를 끊었다.윤구주는 고개를 들고 아직도 불이 켜져 있는 소채은의 방을 바라보면서 피씩 웃었다.다음날 아침.윤구주는 스카이 가든 문 앞에서 주세호를 기다렸다.이때, 가지런히 줄을 지은 차들이 윤구주 쪽으로 다가왔다.롤스로이스 팬텀을 시작으로 밴형 현금 수송차 네대가 줄을 지어 오고 있었다.이 모습을 본 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렸다.“뭐야 이건 또?”윤구주가 중얼거리고 있는 순간 롤스로이스 차문이 열리더니 주세호가 빠르게 차에서 내려왔다. 주세로는 빠른 걸음으로 윤구주 앞으로 달려왔다.“저하!”강성 제일 갑부인 주세호가 윤구주에게 굽신거리며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하지만 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세호 씨. 돈을 조금만 보내달라고 했는데 왜 차를 몰고 왔어요?”주세호는 으쓱거리며 말했다.“저하! 소인이 어제 깜빡하고 신용카드가 필요한지 현금이 필요한지 물어보지 못해서 그냥 다 가지고 왔습니다.”“저하! 저 네대의 현금 수송차에는 1800억이 있어요!”“저하가 만약 부족하다면 말씀하세요.”1800억이라는 소리를 듣고 윤구주는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미쳤어요? 주세호 씨! 돈을 조금만 보내달라고 했는데! 조금만! 그런데 현금 수송차 네대로? 그것도 1800억을?”“조금만! 조금만! 말을 못 알아들은 거예요?”주세호는 억울해하면서 중얼거렸다.“1800억은 적은 돈 아닌가요...?”윤
주세호는 웃으면서 말했다.“저하를 위해서라면 소인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이 영감탱이가 진짜! 그만 딸랑대고 들어가요 좀! ”윤구주는 주세호를 욕했지만 카드는 받았다.“알았으니깐 이 카드는 일단 받을게요.”윤구주가 블랙카드를 쓰겠다고 하자 주세호는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그리고 내가 SK그룹을 조사해 봐라는 건 어떻게 됐어요?”윤구주는 블랙카드를 넣으면서 물었다.주세호는 얼른 대답했다.“소인이 알아봤는데 지금 소씨 가문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소천홍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SK그룹은 제약을 위주로 하고 있지만 요즘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지금은 엄중한 파산위기에 들이닥쳤다고 합니다.”윤구주는 턱을 만지면서 말했다.“그렇구나!”“세호 씨! 내가 세호 씨더러 SK그룹을 인수해라면 할 수 있겠어요?”“저하! 저를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닙니까? 이런 자그마한 가족기업은 제가 하루에도 수십 개를 인수할 수 있죠!”윤구주는 주세호를 째려보았다.“저하, 그런데 왜 SK그룹에 흥미를 보이세요? 이미 다 죽어가는 기업 같은데.”주세호는 장사꾼으로서 무척 궁금해하였다.“그건 세호 씨가 신경 쓸 거 아니에요. 그냥 지금 빨리 SK그룹을 인수하기만 하세요. 그리고 인수한 다음 회사를 소채은 이름으로 넘겨주세요!”“네?”“소채은이 누군데요?”주세호는 너무 궁금하였지만 윤구주가 눈치를 주자 주세호는 더 묻지 않았다.“저하, 제가 또 도와드릴 것이 있나요?”주세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없어요! 이제 그만 가세요! 일 있으면 또 연락할게요!”윤구주는 손을 흔들며 주세호를 배웅해 주고 스카이 가든으로 돌아왔다.주세호는 90도 인사를 하다가 고개를 들어 스카이 가든을 보면서 투덜거렸다.“저하가 사는 집이 이게 뭐야! 너무 허접한데. 이제 내가 꼭 스카이 부동산을 인수해 버릴 거야! 우리 저하를 이런 곳에 살게 하다니. 말도 안 돼!”한참을 투덜거린 후 주세호는 롤스로이스를 타고 떠났다.집으로 돌아온 윤구주는 어떻게 이 블랙카드를 소채은에게
그녀는 옷을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아래층에서 윤구주는 까망이와 놀고 있었다.소채은은 내려온 후 곧바로 윤구주를 향해 말했다.“구주야, 이리 와봐, 물어볼 게 있어.”윤구주가 그녀에게 다가갔다.그러자 소채은은 주머니에서 한 장의 블랙카드와 봉투를 꺼냈다.“이게 뭐야?”윤구주는 블랙카드를 보자 서둘러 말했다.“이건 오늘 아침에 어떤 노인이 당신한테 보낸 거야. 또 이 카드에 돈이 있으니 먼저 쓰라면서 말이야! 그래서 나는 당신이 자는 틈을 타서 문틈에 쑤셔 넣은 거고.”“어떤 노인이 나한테 보낸 거라고?”그 말을 듣자 소채은은 조금 의아해하며 서둘러 물었다.“어떤 노인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봤어?”그러자 윤구주는 제멋대로 지어내어 두루뭉술 둘러댔다.‘어이가 없네, 이른 아침에 누군가 나한테 블랙 카드를 보냈다고? 심지어 돈이 들어있는걸? 이게 무슨 장난이람?’“그럼 그 노인은 지금 어디에 있어?”소채은이 다시 물었다.“이미 일찍이 떠났는데?”손에 든 카드를 보며 소채은은 마구 의심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매우 현실적이고 신중한 사람으로서 아침 일찍 낯선 사람이 자신에게 친절하게 돈을 건넨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그러나 소채은은 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이윽고 그녀는 위층에서 옅은 화장을 한 후에, 액세서리 상자를 안고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왔다.“구주야, 우리 전당포로 가자.”“응? 전당포에는 왜 또 가?”“허튼소리 하지 마, 우리 지금 수중에 50만 원밖에 없거든? 어제 그 밥값도 안 되는 돈이라고, 그러니 전당포에 가서 물건을 좀 맡기고 돈을 바꿔야지, 안 그럼 어떻게 살려고 그래?”“하지만, 아침에 이미 어떤 노인이 돈을 줬잖아!”“주긴 뭘 줘! 구주야 혹시 바보야? 모르는 사람이 괜히 돈을 줄 거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그러자 윤구주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누가 바보라고 그래!”하지만 결국 그는 감히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가자, 구주야.”그렇게 소채은은 윤구주에게 액세서리 상자를 건네준
대어가 일식점의 사장을 보자 소채은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사장님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외상값을 드리려고요. 어제 일은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사장도 아주 좋은 사람이었는지라 선뜻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습니다.”이윽고 그는 종업원에게 포스기와 결제 코드를 가져오라고 명령했다.그러나 소채은은 조금 전 전당포에서 현금을 받아왔기 때문에 온라인 지불을 할 수가 없었다.“사장님, 혹시 현금으로 결제 가능할까요?”그러자 사장이 흠칫하더니 이내 대답했다.“죄송하지만, 저희 식당은 카드나 온라인 결제만 가능해서요!”이 말에 소채은이 난처해하던 그때, 윤구주가 나섰다.“채은아, 그럼 카드로 결제하면 되잖아!”‘카드? 무슨 카드?’윤구주의 말에 소채은은 잠시 얼떨떨해졌다.곧이어 대어가의 사장이 거들어 말했다.“이분 말씀이 맞습니다. 카드 결제가 가장 좋아요!”말을 마치고 나서 그는 포스기를 가져왔다.하지만 소채은은 안색이 순간 어둡게 변하더니 얼른 윤구주를 끌고 한쪽으로 향했다.“윤구주 바보야? 내 은행 카드는 모두 가족들 때문에 정지당했잖아! 지금 무슨 카드가 있다고 그래?!”“오늘 아침에 받은 그 카드 말이야!”“뭐? 낯선 노인이 준 그 블랙 카드 말이야?”“맞아!”소채은은 어이가 없었다.‘미친 거 아니야? 정말 낯선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나한테 돈을 보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그러나 지금 대어가 일식점에서는 현금을 받지 않았고, 오직 카드나 온라인 결제만 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채은은 잠시 동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결국 그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주세호가 보낸 블랙카드를 꺼내 식당 사장에게 건넸다.처음 카드를 받았을 때 사장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카드를 긁으려는 순간, 그는 위에 있는 에르메스의 그림과 함께 새겨진 이상한 흔적을 발견했다.“이건...?”사장은 견식이 넓은 사람이었다.이 카드를 몇 번 더 자세히 살펴보더니, 그의 두 눈이 순간 휘둥그레졌다.“카드 재질이 티타늄 합금 금속 재
“두 귀빈분께 죄송합니다, 전에는 저희 식당의 불찰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일단 두 분을 대기실로 모실 테니 편히 쉬고 계시는 동안 저희가 이번 실수에 대한 보상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보상?’그 말을 듣고, 소채은은 다시 한번 경악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보상은 무슨 보상?”소채은이 의아해하며 답답해하자 윤구주가 피식 웃었다.“채은아, 우리는 일단 대기실로 가자고!”옆에 있던 사장은 그가 승낙하는 것을 보고 얼른 몸을 굽혀 말했다.“두 분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곧이어 사장은 서둘러 소채은과 윤구주를 데리고 식당의 가장 호화로운 대기실에 도착했다.그런 다음, 사장은 또 웨이터더러 얼른 좋은 커피 두 잔을 내오라고 하고, 과일 쟁반에 간식을 많이 담아 왔다!모든 준비를 마친 다음 그는 공손하게 자리를 떴다.사장의 이런 행동에 소채은은 어리둥절해졌다.“구주야,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사장님이 왜 갑자기 이상해지신 거지?”하지만 윤구주는 웃기만 할 뿐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장이 또 그들을 찾아왔다.다만, 이번에 그의 손에는 정교하게 포장된 선물 세트가 하나 들려 있었고, 또한 소채은의 차 키도 들려 있었다.“귀하신 여사님, 죄송합니다. 어제는 저희가 뭘 모르고 여사님의 차를 담보로 받았네요. 보상의 의미로 어제의 식비는 모두 면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여사님께서 저희 식당에 오신다면 가장 호화로운 룸, 가장 존귀한 자리에서 만찬을 즐기실 수 있으며, 동시에 모든 소비는 저희 식당이 부담할 것입니다!”“네?”소채은은 순간 멍해지고 말았다!‘이게 뭐야 대체! 나는 그냥 밥값 내러 왔을 뿐인데, 갑자기 면제해 주겠다고 하지를 않나, 심지어 앞으로 언제든 공짜로 밥을 먹을 수 있다고? 미쳤나 봐!’“사장님, 진심이세요? 어제 저희가 분명 외상 했었잖아요!”그러나 사장은 오히려 더욱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여사님, 정말 너무 겸손하십니다. 여사님께서 저희 식당에 오신다는 것만으로도
이 장면은 대어가 일식점의 종업원조차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사장님, 왜 저 사람들을 무료로 해주시는 거예요? 우리 대어가 일식점은 개업한 이래로 가장 귀한 VIP 손님조차에게도 이런 대우를 한 적이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왜 우리 가게의 마스코트인 황금 고래까지 선물로 주세요?”그러자 사장이 말했다.“너희가 뭘 알아? 방금 그 두 사람은 우리 가게의 재물신이라고, 재물신!”“재물신이요?”종업원은 멍해지고 말았다.“그래! 하하, 잘 봐둬, 오늘부터 우리 식당은 아주 유명해질 테니까! 아메리칸 엑스프레스 카드를 가진 귀한 손님이 우리 식당에 와서 밥을 먹는 다라, 이 일을 홍보하기만 하면 우리 식당은 수십억의 광고비를 절약한 거나 다름없다고! 부자야 부자, 이제 우리 가게는 돈방석에 앉을 거야!”사장은 미친 듯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하지만 종업원들은 그 블랙카드가 무엇인지, 더욱이 조금 전 그 두 사람이 도대체 무슨 큰 인물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대어가 일식점을 떠난 후에도 소채은은 아직 머리가 멍했다.자신의 차 안에 앉아서 손에 든 24K 황금 고래와 블랙카드를 힐끗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에는 여전히 의아함이 가득했다.한편 윤구주는 느긋하게 그녀의 곁에 앉아 있었다.한참이 지나자, 소채은은 머리를 힘껏 젓더니 다시 자신을 꼬집었다.“구주 씨, 나 지금 이거 꿈꾸는 거지? 대어가 일식점의 사장 정말 미친 거 아니야? 식비도 면제해 줘, 게다가 황금 고래도 줘... 이거 봐, 진짜 순금이라니까? 몇십억은 훨씬 넘을 가치라고!”소채은이 묵직한 황금 고래를 들어 올리면서 말하자 윤구주가 피식 웃었다.“그 사람들, 일 좀 할 줄 아네!”“일 좀 할 줄 안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소채은은 이해하지 못했다.“이건... 잠시동안은 설명이 어려워! 그저 장사꾼은 절대 밑지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만 명심해.”그러자 소채은은 알듯 말 듯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일단 집에 가자!”“응!”그렇게 소채은은 자신의 미니 벤츠를 타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