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구주가 나타났다는 말에 노아의 뒤에 있던 검을 든 남자가 나섰다.“노아 씨, 제가 지금 그를 죽이러 갈까요?”노아는 고개를 저었다.“만약 정말로 그가 무사시 사형을 죽인 놈이라면 다카야 씨 실력으로 그를 죽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나요?”그 말에 검을 든 남자는 침묵했다.무사시는 기타가와 신사의 가장 유명한 살인왕이었다.그조차 윤구주의 손에 죽었는데 검을 든 남자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노아 씨, 이제 어떡할까요?”옆에 있던 장경동이 물었다.노아는 검은 고양이를 품에 안은 채로 갑자기 말했다.“그놈은 아직 당신이 첩보원이라는 걸 모르고 있는 거죠?”“네, 절대 모를 겁니다. 전 화진에 수년 동안 잠복해 있으면서 예전의 모든 정보를 말소했습니다. 그래서 화진 사람들은 절대 제 정보를 알아낼 수 없을 겁니다.”장경동은 자신만만했다.“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모리 렌 씨, 날 위해 우리 무사시 사형을 죽인 범인을 만날 수 있게 기회를 만드세요.”노아가 윤구주를 만나려고 하자 장경동은 흠칫했다.“노아 씨, 그놈을 만날 생각입니까?”“네, 우리 무사시 사형도 죽인 놈이 어떤 놈인지 궁금하네요!”노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장경동이 대답했다.“지금 바로 처리하겠습니다.”말을 마친 뒤 장경동은 물러났다....용인 빌리지.암부에서는 빠르게 경동 제약의 모든 상황을 조사해 냈다.“저하, 조사했습니다! 제기랄, 경동 제약의 주주는 부성국 사람이 맞았습니다! 그리고 저하 말씀대로 그들은 부성국이 저희 화진에 심어둔 첩보원들이 맞았습니다.”정태웅은 그렇게 말하면서 윤구주의 앞에 산처럼 쌓인 서류를 내려놓았다.윤구주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마치 모든 걸 예상했다는 듯 말이다.“그 회사 회장은?”윤구주가 물었다.그가 물은 건 경동 제약의 회장 장경동이었다.“저하, 장경동은 저번에 참수 리스트에서 빠진 첩보원이었습니다. 그 자식 저희를 피하려고 국적까지 화진 국적으로 바꿨어요. 그래서 그동안 저희 화진에 잠복해 있는데도 발견하지 못
그래서 지난 이틀 동안, 소채은은 계속 항생제를 억제하는 물질의 출처를 찾고 있었다.드디어 둘째 날 오전, 창고관리원이 단서를 찾아냈다.“소 대표님, 드디어 찾았습니다! 알고 보니 이 항생제는 저희 SK 제약공장에서 만든것이 아니라 교외의 한 작업장에서 저희 제품으로 속여서 만든 거였습니다. 저희가 제품의 공급원뿐만 아니라 SK그룹 것과 똑같이 만든 짝퉁 약병도 찾아냈습니다.”창고관리원은 이렇게 말하며 SK그룹의 약병과 똑같이 만든 약병 등 증거를 꺼냈다.소채은과 소청하는 짝퉁 약품들을 본 뒤,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너무 잘됐네. 대영 씨, 이번에 우리 SK를 위해 큰 공을 세웠어요!”“대표님, 과찬입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유대영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이 증거들이 있으니 더 이상 경동제약에서 고소한다 해도 두렵지 않게 됐어!”소청하는 기쁨에 겨워 말하며 옆에 있던 창고관리원을 바라봤다.“대영 씨, 짝퉁을 만들던 작업장은 찾았어요?”유대영이 대답했다. “이미 찾았습니다. 저희 경비원들이 이미 그 사람들을 잡고 있습니다.”“아주 잘됐네!”“대영 씨, 앞장서요. 우리 그 자식들과 결판을 내러 갑시다. 그 작업장 사람들이 도대체 왜 우리 SK로 속여 경동 제약의 항생제를 만들었는지 물어봐야겠어요.”소청하의 말에 따라 이들은 외곽에 있는 작업장으로 향했다.잠시 후, 소청하가 소채은과 창고 관리원을 차에 태우고 도심과 멀리 떨어진 교외에 왔다.이곳은 재개발 구역이었다.사람이 거의 없었다.낡은 건물 몇 채만 있을 뿐, 황무지와 다를 바 없었다.차에서 내린 유대영이 앞에 있는 낡은 공장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표님, 저깁니다.”소청하가 힐끗 보고 대답했다. “가봅시다!”세 사람이 공장 건물 입구에 도착하자,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가 풍겨왔다.소채은은 저도 모르게 코를 막고 미간을 찌푸리며 안을 들여다봤다.공장 내부는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텅 비어있었다.“대영 씨, 사람들은요?”공장 안으
작업장의 증인들이 모두 죽은 후, SK제약은 진퇴양난에 빠졌다.만약 경동 제약에서 진짜 고소한다면, 소채은 쪽 사람들은 골치 아프게 생겼다.소 씨 가족들이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입구에 고급 차량 세 대가 멈춰 섰다.차 문이 열리고, 경동 제약 사람들이 내렸다.맨 앞에 선 사람은 경동 제약 회장, 장경동이었다.그의 뒤에는 경호원들이 서 있었다.“소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경동 제약 사람들이 왔어요.”하인이 달려와서 마당에 있는 소청하에게 말했다.“뭐? 경동 제약?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온 거야?” 소청하는 두려워하며 말했다.“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경동 제약 사람들이 아가씨를 찾고 있습니다!” 하인이 말했다.“망했구나!”“경동 제약 사람들이 진짜로 우리를 고소하려고 작정했구나!” 소청하의 표정이 더 일그러졌다.“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있잖아요!”이때, 소채은이 마당으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소채은을 본 소청하가 얼른 뛰어오며 말했다. “채은아, 절대 충동적으로 행동하면 안 돼! 너 조금 있다가 경동 제약 사람들이랑 잘 얘기해 봐. 우리가 이미 짝퉁 항생제를 만든 사람들을 찾았으니, 우리를 고소하지 말아 달라고 말이야.”소채은이 짧게 대답했다.“아빠, 시름 놓으세요.”말을 마친 소채은이 밖으로 나갔다.대문 입구.국내에 잠복해 있는 부성국 간첩이 부하들을 데리고 입구에 서 있었다.소채은이 걸어나오자, 장경동이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아가씨, 혹시 실례가 되지는 않았는지요?”소채은이 대답했다. “장 회장님,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대표님 회사의 항생제를 따라 만든 작업장을 저희 SK가 찾아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저희보다 먼저 이들의 목숨을 끊어 입을 막았습니다. 그러니 장 회장님, 그래도 저희를 고소하시겠다면, 저희도 끝까지 싸울 겁니다!”소채은의 말이 끝나자 소청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망했어! 쟤가 왜 저렇게 강하게 나가는 거야?)그런데 예상외로 경동 제약 회장이 웃으며 말했다.“아가씨, 농담도 참.
저녁 여덟 시.소채은이 약속 시간에 맞춰 한해 호텔에 도착했다.이 호텔은 중식, 양식, 일식이 있었다.장경동은 부성국의 일식을 준비했다.소채은은 차에서 내려 호텔 입구에서 윤구주를 기다렸다.오늘 저녁, 약속 자리에 온 사람은 그녀와 윤구주뿐이었다.잠시 후, 뒤에서 윤구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녀가 고개를 돌려보니 잘생긴 얼굴의 윤구주가 서 있었다.“구주야, 드디어 왔네. 난 또 네가 안 오는 줄 알았잖아!” 소채은이 얼른 뛰어와서 윤구주의 팔을 감싸안았다.“바보, 내가 왜 안 오겠어?”“히히, 네가 옆에 있으니까 마음이 놓이네!” 소채은이 신이 나서 말했다.윤구주가 한해 레스토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 “들어가자. 가서 한 번 만나보지 뭐.”“그래!”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한해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호텔 입구에 도착한 두 사람이 웨이터에게 룸 번호를 알려주자, 웨이터가 윤구주를 데리고 일식당 쪽으로 걸어갔다.“미친! 왜 부성국의 음식을 먹는 거야?”소채은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이 사람들이 부성국 사람들이니까 그렇지!” 윤구주가 담담하게 말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오지 않았을 텐데!”비록 소채은이 부성국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미 온 뒤라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얼마 후, 웨이터가 두 사람을 데리고 커다란 룸 앞에 섰다.윤구주는 주위를 둘러본 뒤, 룸 곳곳에 매복해 있는 10도 무인의 기운을 느꼈다.하지만 그는 그저 차갑게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객님, 두 분께서 식사하실 룸입니다.”웨이터가 예의 있게 얘기한 뒤, 룸문을 열었다.문이 열리자, 경동 제약 회장, 장경동이 보였다.그의 뒤에는 10여 명의 경호원이 서 있었다.“아가씨, 드디어 오셨군요. 어서 앉으세요!”소채은과 윤구주를 보자 장경동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들을 반겼다.하여 윤구주와 소채은은 그의 맞은 켠 자리에 앉았다.“아가씨, 이분이 남자 친구분이신가요? 역시 인물이 뛰어나시군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정장을 입은 남자가 대답했다. “노아 아가씨께 아뢰옵니다. 그자는 잘생긴 외모 외에 어디에서도 무인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응?”“조금도 눈치채지 못했어?” 야나가와 노아가 물었다.“그렇습니다!” 부하가 대답했다.이 말을 들은 야나가와 노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이런, 보아하니 이 화진 사람이 무사시 선배를 죽인 게 틀림없군!” 야나가와 노아가 말했다.“네?”“노아 아가씨는 어떻게 아셨어요?”카타나를 안고 있던 다카야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야나가와 노아가 진지하게 말했다. “예전에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있어. 실력이 강한 사람일수록 몸의 기운을 잘 숨긴다고 말이야. 이 화진 사람의 몸에 무인의 기운이 전혀 없었다는 건, 오직 하나, 이 사람의 실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거지!”다카야는 시큰둥하게 웃으며 말했다. “야노 아가씨가 괜한 걱정 하시는 거 아니세요? 그 화진 사람이 그냥 쓰레기일 수도 있잖아요?”“다카야 군, 방심하면 안 됩니다!”“10개국 간의 전쟁을 잊었어요? 화진의 9주 군신이 한 사람이 군대가 되어 우리 10국과 싸우고, 심지어 기타가와 신사의 전임 주인도 화진 사람의 손에 죽었어요!”“그러니 다카야 군, 절대로 이 화진 사람을 얕보면 안 됩니다!”야나가와 노아의 말을 들은 다카야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말을 마친 야나가와 노아가 정장을 입은 남자 부하에게 명령했다. “잘 지켜보고 있어! 조금이라도 움직임이 있으면 곧바로 나한테 말해!”“네!”말을 마친 부하가 자리를 물렀다.같은 시각!윤구주가 있는 룸에는 이미 웨이터가 한 상 가득 부성국 요리를 내왔다.아쉽게도, 윤구주와 소채은은 젓가락조차 들고 싶지 않았다.“윤 선생, 오늘 처음 뵙는지라 어떤 일을 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이때, 장경동이 윤구주에게 질문을 던졌다.윤구주가 대답했다.“나에 대해 알고 싶다면, 잠시 뒤에 직접 알려줄게! 그 전에 내가 먼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당신 부성국 사람이지?”이 말을 들은 장경동의 눈가가 파
윤구주가 단번에 진짜 신분을 말하자, 모리 렌은 깜짝 놀라서 그대로 얼어버렸다.그는 당황하며 대답했다. “각하께서 혹시...사람을 잘못 보신 거 아닌지요?”“잘못 봤다고?”윤구주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너희 부성국같은 담력으로 감히 우리 대 화진에 잠복을 한 거야? 겁도 없는 새끼들이네.”“뭐야!”윤구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무라이 한 명이 소리를 지르며 몸에 지니고 있던 카타나를 뽑아 들고는 윤구주에게 겨눴다.윤구주는 그 사무라이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손가락을 탁 튕기니 지공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 부성국 사무라이의 미간을 뚫더니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사무라이의 몸이 날아가서 벽에 부딪히더니 그대로 죽어버렸다.윤구주가 손가락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본 모리 렌 뒤에 있던 10여 명의 사무라이들이 하나같이 검을 뽑아 들었다.부성국의 사무라이들이 본색을 드러내자 소채은은 깜짝 놀라서 재빨리 윤구주 뒤로 숨었다.윤구주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채은아, 무서워할 필요 없어! 이 개미 새끼들은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니까. 넌 눈 감고 보지 않으면 돼!”소채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눈을 꼭 감았다.한 편.모리 렌은 신분이 드러나자, 얼굴에 전에 없던 음산함이 드러났고, 그의 눈은 윤구주를 노려보고 있었다.“윤 씨, 당신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내 신분을 어떻게 알아낸 거야?”윤구주가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 같은 사람을 조사하는 건 너무 간단해!”“건방진 소리!”“오늘 내 신분을 알았으니, 당신도 죽어야겠어!”“움직여!”모리 렌의 명령이 떨어지자, 뒤에 있던 10여 명의 부성국 사무라이들이 나섰다.윤구주는 그저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자신을 향해 덮쳐오는 10여 명의 부성국 사무라이들을 보며, 그는 그저 담담히 말했다. “죽고 싶은가 보네!”말을 마친 그는 손을 휘저었다.그의 앞에 놓였던 젓가락이 순식간에 예리한 화살처럼 날아갔다.슉 슉 슉!10여 명의 사무라이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가늘고 긴 젓가락은
야나가와 노아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을 보며 윤구주는 전혀 궁금해하지 않고 계속 자리에 앉아 있었다.야나가와 노아는 고개를 숙이고 땅에 널브러진 시신을 보더니 다시 고개를 들어 윤구주를 바라보았다.“각하의 실력이 참 대단하시네요!”그녀가 부성국 말투로 말하자 윤구주가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난 개소리를 듣는 걸 좋아하지 않아, 그러니 되도록 화진말로 얘기해.”“네 이놈!”야나가와 노아 뒤에 서 있던 다카야가 이렇게 소리쳤다.다카야가 나서려 하자 야나가와 노아가 막아섰다.그리고 그녀는 유창한 화진말로 대답했다. “각하께서 부성국 말을 듣고 싶지 않으시다면 화진말로 얘기하죠!”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검은 고양이를 안은 채 윤구주 앞에 앉았다.“저는 부성국 기타가와 신사의 야나가와 노아입니다. 각하의 존함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야나가와 노아가 자기소개를 하자 윤구주가 대답했다. “이름은 알 필요 없고 본론으로 들어가지.”“내 추측이 맞다면 당신들은 귀무인 때문에 온 거지?”윤구주가 차를 마시며 말했다.야나가와 노아는 순간 뜨끔했다!그녀는 윤구주가 단번에 화진에 잠복한 진상을 말할 줄은 몰랐다.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역시 각하는 대단한 분이십니다. 맞아요. 저희는 무사시 선배 때문에 왔습니다.”“그 귀무인은 내가 죽였어. 그래서 복수하려고?”말을 마친 윤구주가 고개를 들어 앞에 앉은 야나가와 노아를 쳐다봤다.그의 눈빛에 이 기타가와 신사의 제일아가씨는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부성국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을 만났을 때도 야나가와 노아는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하지만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윤구주가 한 번 쳐다봤을 뿐인데 그녀의 마음속에는 공포스러운 감정이 느껴졌다.그 느낌은 마치 마귀를 마주한 것 같았다.야나가와 노아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는 자기 정신력을 모았다.기타가와 신사는 비록 검도로 유명하지만 정신 공법도 수련하고 있었다.정신력을 모은 뒤 그녀는 그제야 아
그야말로 천둥과 같이 맹렬했다. 공포가 윤구주를 향해 올 때 다카야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번졌다.“아직도 안 죽어?”기타가와 신사에서 그는 비록 귀무인의 선배였지만, 예로부터 그의 명성은 자신의 후배에 미치지 못했다.이번에 무사시가 화진에서 살해당했다는 소식은 그가 명성을 떨칠 가장 좋은 기회였다. 만약 그가 윤구주를 죽인다면 그의 명성은 의심할 여지 없이 옛 후배들을 누르고 올라설 것이다.우르릉!거대한 진동 소리가 들려오더니 한순간에 무형의 검에 의해 룸의 벽이 갈라져 버렸다.“빌어먹을! 감히 내 일도류를 막아?”눈앞의 광경을 본 다카야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눈앞의 윤구주가 그의 검을 받아냈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건 윤구주가 일어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치욕!이건 기타가와 신사 최대의 치욕이었다!“대단한 화진의 녀석이군, 내 두 번째 검을 받아낼 수 있는지 한번 지켜보지!”다카야가 포효소리와 함께 두 손으로 검을 꼭 쥐었다. 순간 검은 기운이 그의 주위에서 흘러나오더니 그의 손에 들린 카타나가 순식간에 몇 미터나 늘어났다.“일도류, 귀영!”둥!다카야 손에 들린 검의 그림자가 바뀌더니 검을 휘두르는 순간 룸에서 귀신의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곧이어 귀영이 하나둘 윤구주에게 덮쳤다. 다카야의 검은 장검이 귀영 사이에서 윤구주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윤구주는 꼼짝하지 않고 앉아서 오른손으로 무수한 귀영을 향해 꾹 눌렀다. 그러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미륵보살처럼 거대한 금빛 손바닥이 무수한 귀영들을 전부 산산이 조각내버렸다.심지어 다카야의 귀영장검도 윤구주의 금빛 손에 꽉 잡혔다.‘응?’“내 검?”다카야는 자신의 카타나가 윤구주에게 잡히는 순간 다급히 회수하려 했다.하지만 이미 늦었다.“당신의 일도류는 겨우 이 정도인가?”신마와 같은 목소리가 다카야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그리고 갑자기 웬 그림자 하나가 다카야의 앞에 나타났다.윤구주, 그가 드디어 일어섰다.그가 일어서는 순간 금빛 손이 우지끈 소리를 내며 다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
백호는 아직도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어느덧 이백오십 계단까지 올라왔다. 이 단계부터는 실체화된 술법이 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바람, 불 번개와 같은 속성의 영기가 점점 강해졌다. 여기서부터는 육신 횡련의 수련자는 강력한 체질로 버티고 술도 재능이 뛰어난 수련자는 천지 영기를 다루는 능력으로 버텨야 했다. 한마디로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갈리는 구간이었다. 어느 한 분야라도 특출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백호는 술도에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강인한 육체 하나로 견디고 있었다.웅!성수의 피가 진동하며 백호의 몸을 지탱했다. 각종 속성의 영기가 몰아쳤지만 백호는 성수혈의 힘을 빌려 억지로 앞으로 나아갔다.수련자에게 있어서 성수의 혈맥이나 법보 등은 모두 신체 외적인 재능으로 간주하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이 꼼수나 편법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천 가지 변화와 만 가지 신통력이 있어도 결국 만법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법기든 혈맥이든 이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천지 영기를 이용한 술법도 결국은 그 힘을 감당할 수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감당하지 못하면 반드시 반작용을 맞게 된다. 따라서 수련의 길에는 애초에 편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성수 혈맥 같은 천지의 보물은 보통 사람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윤구주의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이를 감당하는 건 백호 자신이었다. 성수 혈맥의 힘을 온전히 감당하며 백호는 결국 삼백 계단까지 올라섰다.계단의 꼭대기 근처에는 이미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이 여럿 서 있었다. 서요산 검종은 근대에 들어 삼백 계단을 넘는 인재가 드물었다. 최근 백 년 동안 삼백 계단을 넘은 사람이 고작 열 명 남짓이었고 그중 대부분이 삼백여 계단에서 멈췄다. 그런데 지금 백호는 삼백이십 계단까지 올라선 것이다. 이 정도면 서요산 검종 전체가 떠들썩해질 만한 성과였다.이런 제자가 나타난다면 종문 전체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서요산의 진인들까
“한 사람의 품성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그렇게 많은 수련자를 키워낸다면 결국 천하의 마인을 직접 만들어 내는 꼴이 아니겠어?”청현이 바로 그 실패한 예다. 서요산 검종 종주가 청현의 천재성을 아까워한 나머지 그의 인성을 무시하고 양성한 끝에 결국 역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그럼 저하 서요산에 입문한 무술 무인들은 평균적으로 몇 계단까지 오르는지 아십니까?” 백호가 호기심에 물었다. 윤구주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무술 무인의 정확한 데이터는 모르지만 검종 종주와 잡담할 때 들어보니 검종 제자들의 수준이 갈수록 떨어져서 천 년 전만 해도 평균 삼백 계단 정도였는데 요즘엔 백 계단도 못 오른다고 하더구나. 가끔 삼백 계단을 오르는 자라도 나오면 검종 전체가 몇 년은 떠들썩할 정도라고 했어.”“구백구십구 계단까지 있는 시험인데 천 년 전 전성기에도 겨우 삼백 계단이요?” 백호는 입술을 삐죽이며 서요산 검종의 수준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때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야?” 윤구주는 흥미롭게 백호를 바라보았다. 백호는 당장이라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윤구주의 허락을 구한 뒤 바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계단 두 계단... 오십 계단까지는 아무 어려움도 없었다. 백호는 오십 계단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서요산 검종이 별것 아니라며 놀려댔다. 하지만 육십 계단쯤 올랐을 때 처음으로 압력을 느꼈다. 마치 몸 위에 작은 차 한 대가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백호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백 계단에 도달하자 압력이 갑자기 커졌다. 등에 작은 승용차 대신 소형 트럭이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지만 아직 백호의 한계에도 가지 못했다.“근래 사람들의 평균이 백 계단도 못 넘는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예전의 무인 횡련은 황제도 오를 수 있었지만 요즘 무인 횡련은 죽어라 노력해도 소형 트럭 하나 못 버티는 수준이니 말입니다.”백호는 농담을 던지며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
전에 임정설은 구오 지존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나라를 위해 힘쓰며 수모를 견뎌내고 살아남으려 했다.하지만 이제 황제가 된 그는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그 탓에 이번 관문 앞에서 그는 망설였다.살아 있는 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관문이었다.죽음을 마음에 품은 자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관문이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청해만이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생각했다.‘황제가 되면 곤륜 구역에서 최고 경지에 도달하는 건데. 기뻐해도 모자랄 판에 왜 죽음을 택하려는 거지?’“저하, 국주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듯합니다. 저하도 사랑하던 이에게 배신당했어도 결국 극복해 나갔잖습니까.”백호도 이해하지 못했다.그는 여전히 국주보다는 왕이 더 낫다고 여겼다.“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느냐.” 윤구주가 단호하게 말했다.백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는 어리숙하고 말솜씨도 없기에 생각나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내가 문아름에게 배신당한 건 억울한 일이지만 나는 그녀에게 잘못한 게 없다. 오히려 그녀가 날 배신한 거다. 하지만 국주는 그 반대였지. 그가 그녀를 저버린 거야. 정이 깊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지혜가 지나치면 오히려 상처를 입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쓰라린 후회는 가진 뒤 잃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생사를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윤구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만약 소채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도 제정신이 아닐 거라고 느꼈다.“그럼 복수하면 되지 않나요?” 백호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이때 청해가 눈치를 채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상대가 너무 강해서 못 이기는 거지. 황제에 오르기 전까진 제대로 맞붙을 힘도 안 돼. 오르고 나서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 못 하고.”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그 말이 맞았다.“그럼 우리가 국주님 대신 복수해 드리면 되잖아요? 국주님은 제 왕이기도 하지만 제 윗사람이기도 하잖아요.”백호가 고개를 갸웃했다.“하하! 만약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솔직하다면 이런
인간이 나쁜 짓을 거듭해 양심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윤구주를 따라 명예심이 생기면서 죄책감도 느끼게 된 청해에게 이 원한의 전법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물론 곤륜역 한 신전의 부전주로서 정신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사람은 이 원한의 전법도 가볍게 넘어섰다.이때 전법에 관심을 가졌던 임정설이 무언가를 눈치챘다.“구주야, 서요산의 전법은 우연히 들어온 자를 쫓아내는 동시에 수련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어. 서요산은 의지력이 확고한 자들만 끌어들인다는 것을 미리 들어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서요산이 제자를 선발하는 방식인가 보구나.”“그렇습니다. 매년 화진 무도계 사람들이 서요산에 찾아오지만 성공한 자는 극히 드뭅니다. 실패자들 중 십중팔구는 산기슭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어떤 문턱은 넘지 않는 것이 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죠. 현실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법이니까요. 이 관문을 넘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세 번째 전법이 나타났다.첫 번째와 두 번째 전법은 이곳에 들어온 이들을 돌려보내려고 만든 것이지만 세 번째 전법은 달랐다. 이 전법은 살기로 가득 찬 죽음의 전법이었다.평범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곳까지 온 자들도 앞길의 위험을 보고 함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의 길을 보고도 들어가는 자는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자라서 그런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덕을 쌓는 일이었다.하지만 무도로 도를 깨우치려는 수련자라면 이 관문을 넘기 위해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버텨내야만 수도의 길에 들 수 있고 실패하면 그 후과를 받아들여야 한다.전법 안은 살기로 가득했다. 생기와 영기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할지라도 살기와 죽음의 기운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진법 내부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도계에 이름을 날렸던 강자들의 유해
네 사람은 비석을 지나자마자 환각의 전법에 부딪혔다. 이 전법은 우연히 들어오거나 경고를 무시한 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결국 서요산 밖으로 나가게 만드는 것이었다.의지력으로 환각의 전법을 통과하면 다음 전법이 기다리고 있었다.당연히 네 사람에게 환각의 전법은 통하지 않았다. 윤구주와 임정설은 물론, 백호와 청해도 곤륜에서 강자로 존경받는 존재들이었다.다음은 섭혼 전법이었다.전법에 들어가기 전부터 하늘을 찌를듯한 원한의 기운이 밀려왔다.그 기운을 느낀 임정설이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수년간 왕궁에서 비술을 연구해서 알아본 건데. 이곳은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진 거야. 반경 수천 리 이내의 원한의 기운이 모두 이곳에 모여있어. 내 치하에서도 억울하게 죽은 자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그걸 내가 몰랐다니.”그는 깊은 자책에 빠졌다.“국주님, 인간이 있는 곳에는 분쟁은 끝나지 않습니다. 근대에 들어 큰 전쟁은 사라졌지만 소규모 충돌은 끊이지 않았죠.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게다가 이곳에 모여진 원한의 기운은 억울한 죽음뿐만 아니라 극형을 받은 흉악범들의 원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은 죽어도 사라지지 않죠. 사랑 때문에 미워하고, 미움 때문에 미쳐버리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윤구주의 말을 듣고 임정설이 한마디 물었다.“구주야, 너는 문아름을 미워하지 않느냐?”문아름의 이름을 들은 윤구주의 눈에서 짙은 살기가 번뜩였다.“당연히 미워하죠. 저 윤구주는 순수하게 사랑하고 미워하는 인간입니다. 사랑은 사랑, 증오는 증오에요. 그녀를 위해 변명 같은 건 하지 않겠습니다. 문아름이 저를 배신했으니 저에게 당연히 미워할 권리가 있죠. 하지만 문아름을 사랑한 걸 후회하지는 않아요. 문아름이 제게 사랑이 무엇인지, 인심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으니깐요. 가려는 길이 다르면 미래를 함께할 수 없죠. 저희는 처음부터 다른 길을 걸었어요. 저희의 만남 자체가 잘못이었지만 문아름이 저를 구주왕으로 만든 것도 사실이죠. 그리고 제가 문아름을
“저하와 생사를 함께할 수 있다니. 그건 제 영광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만약 전하와 제가 정말로 서요산에서 죽게 되면 청룡이 돌아온다 해도 성수가 한자리 비게 되는 건데 그분을 어떻게 소환하시렵니까?”백호가 의혹이 담긴 표정으로 물었다.윤구주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그걸 설명하려면 너를 실험체로 삶고 실험을 진행할 때부터 얘기해야 해. 정확히 말하면 청룡, 현모, 주작의 몸속에는 네 피가 흐르고 있어. 네가 성수의 피를 융합한 첫 번째 수련자야. 예로부터 지금까지 오직 너만이 진정한 융합에 성공했지. 네 피를 빌려 그들에게 성수의 정수를 주입했던 거야.”“백호, 내가 너를 이렇게 만든 거다. 네가 이런 괴물 같은 모습이 된 건 전부 내 탓이야. 그러니 나를 원망해도 좋아.”백호는 웃으며 대답했다.“제가 어떻게 저하를 원망하겠습니까? 게다가 당시 저하께서는 제 목숨을 구하려고 그러신 거였잖아요. 제가 고마워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첫 번째로 융합에 성공한 수련자는 제가 아닐건데요? 저하께서도 성수의 피를 다루시지 않았습니까?”그 말을 들은 윤구주가 고개를 저었다.“아니. 달라. 그건 그냥 성수의 피를 통제하는 것 뿐이야. 진짜 융합했으면 나도 네 꼴이 됐을 거야.”백호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됐다. 옛날얘기는 그만하고 얼른 서요산으로 떠날 준비나 해.”며칠 후, 윤구주는 임정설 국주, 청해, 백호와 함께 서요산으로 향했다.비 오는 밤, 연기를 뿜는 수송기가 짙은 구름을 뚫고 산을 향해 돌진했다.비행기가 산에 충돌하기 직전, 수많은 바람의 부적이 나타나 비행기를 강제로 선회시켜 간신히 산기슭에 착륙했다.비행기가 막 착륙하자 비행기 문이 누군가의 주먹 한 방에 박살 났다. 멀미로 비틀거리던 청해가 나오더니 몸을 움츠린 채 구토를 멈추지 못했다. 뒤이어 내린 임정설도 배를 움켜쥐며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억지로 참는 모습이었다.그들과 달리 윤구주는 멀쩡한 상태로 내려와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백호의 질문에 윤구주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네가 진짜라 믿는다면 그것은 진짜야. 초심을 잃지 않아야 길이 열리는 법이지.”이 말은 백호에게만이 아닌 자신에게도 하는 것이었다.서울의 위기는 해결되었지만 윤구주는 이 모든 것이 문씨 가문의 그 여자의 계획 중 하나임을 알고 있었다.“국주님, 이제 서요산으로 갈 때입니다.”그가 임정설을 바라보며 말했다.“서요산을 지키려는 거니? 마인이 나타날 거란 말이야?”임정설이 눈살을 찌푸렸다. 진요탑 아래에는 천년 동안 갇힌 수많은 마인들이 있었다.“맞아요. 서요산의 지맥 영기가 거의 고갈되었습니다. 만약 진요탑이 무너지면 큰 재앙이 찾아올 것입니다.”윤구주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요탑이 붕괴하여 마인들이 쏟아져 나오면 윤구주라도 그들을 처리하기 힘들 것이다.“좋아. 내가 같이 가주마. 이 늦은 재앙은 언젠가 닥칠 운명이니 우리가 짊어져야 해. 지금의 희생은 후손들을 위한 것이야.”임정설의 눈빛이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화진을 위해, 백성들을 위해 그는 언제든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다.윤구주는 현모에게 연락을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뭐라고요? 저하께서 서요산으로 가신다고요? 그렇다면 저희도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현모와 주작의 목소리에서 초조함이 느껴졌다. 특히 주작은 서요산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천년 동안 축적된 재앙을 겨우 수십 년 수련한 윤구주 혼자서 떠맡기엔 버거웠다.“괜찮아. 너희에게는 따로 시킬 일이 있어. 내가 서요산에 있는 동안 너희는 국경을 지켜줘. 청룡의 행방은 잠시 접어두고 내가 시킨 일에 몰두해. 난 문아름을 그 여자를 잘 알고 있어. 문아름은 일이 내 뜻대로 되게 놔두지 않을 거야.”“추가로 부탁이 있는데 만약 내가 전사한다면 그때쯤 청룡이 모습을 드러낼 거야. 청룡을 불러내는 게 복인지 화인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그 상황이 오면 너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거야. 문아름이 결정을 내리겠지. 그러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둬.”유언을 남기는 듯한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