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목소리가 들려온 뒤 스사노오 조각상 뒤에서 부성국 겐지 시대의 귀족들이 입는 긴 옷을 입고 나막신을 신은 회색 망토의 노인 한 명이 걸어 나왔다.노인은 여윈 듯 보였는데 기괴하게도 한 눈에 두 개의 동공을 가지고 있었다.그는 걸어오면서 엄청나게 음산하고 사악한 기운을 온몸에서 내뿜었다.윤구주는 그를 덤덤히 훑어보더니 그의 맞은편에 놓인 방석 위에 조용히 앉았다. 마치 기괴한 노인을 마주하고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듯 말이다.“난 스사노오 료우라고 해. 동쪽에서 귀한 손님이여, 날 찾아온 것이 맞는가?”스사노오 료우라고 자신을 소개한 노인은 미소 띤 얼굴로 눈앞의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스사노오 료우는 화진 말을 아주 유창하게 했지만 말투에서 예스러움이 느껴져서 마치 고대에서 타이슬립해 온 노인 같아 보였다.윤구주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여윈 노인을 보자마자 그가 부성국 최강 귀신의 본체임을 눈치챘다.“맞아요. 전 당신을 만나러 부성국에 온 거예요. 그런데 당신이 이런 귀신의 상태로 천 년 가까이 존재했을 줄은 몰랐네요.”윤구주는 번뜩이는 눈빛으로 눈앞의 여윈 노인을 바라보았다.사실 윤구주의 눈에 눈앞의 여윈 노인은 그저 흐릿한 허상이었다. 그것은 스사노오가 만들어낸 허상이었기 때문이다.“역시 눈치가 빠르군.”여윈 노인은 다시 한번 웃었다.스사노오 료우는 부성국 겐지 시대의 바쿠후 번왕으로 스사노오 왕이라고 불렸었다.천 년 전, 번왕들이 패권을 다투느라 전쟁이 난무하던 시대, 스사노오는 가장 강한 번왕이었다.그는 군대를 이끌고 사방으로 출정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후세에 부성국 궁극의 살신이라고 불렸었다.그뿐만 아니라 그는 천 년 전 그 시대의 가장 강한 음양사였다.그러나 그 뒤로 그는 너무도 많은 살육과 악행을 저질러 부성국 공공의 적이 되어 생매장이라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그러나 무시무시한 스사노오 번왕의 영혼이 너무도 강했던 탓에 그를 생매장하기 전, 부성국 군주는 본국의 가장 강한 70여 명의 음양사들에게 진법을
스사노오 료우는 웃으며 말했다.“하늘의 길은 통하지 않으니 불로장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했었지.”“불로장생이라고요? 한낱 귀신 따위가 불로장생을 입에 담은 건가요?”윤구주는 차갑게 웃었다.“내가 틀린 말을 했나? 세상 만물이라면 뭐든 때가 있는 법이지. 하물며 꽃도 필 때가 있고 질 때가 있는 법인데 말이야. 속세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이 세상 풍경을 다 보고 싶어 하는 법이지. 그래서 나는 불로장생을 원했고 말이야. 설마 너는 그걸 원하지 않는 것인가?”스사노오는 계속해 말을 이어갔다.“천 년 전, 나는 번창했던 동쪽 땅에 가본 적이 있어. 그때 화진은 확실히 우리 부성국보다 몇만 배는 더 부유했었지. 동쪽 땅에서 지냈던 시절, 나는 동쪽 땅의 황제가 자신의 불로장생을 위해 수많은 백성을 동원하여 단약을 만들려고 한 걸 본 적이 있어. 그리고 또 화진의 곤륜 성지에 가서 대단한 실력을 갖춘 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불로장생의 방법을 갈구한 적이 있었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은 물처럼 흘러갔고 내가 신급 강자가 되었을 때는 앞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웠어. 아무리 강해져도 신선의 경지가 되기는 어려웠었지...”거기까지 말한 뒤 스사노오는 한숨을 쉬었다.그의 말을 들은 윤구주가 입을 열었다.“당신이 육지의 신선의 경지를 알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요.”“당연히 알고 있지! 화진의 곤륜 성지에, 신급 강자 절정에 다다르게 되어 육지 신선이 된 전설 같은 인물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그들에게 물었을 때 그들은 내게 알려주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불로장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힘들게 찾아봐야 했지. 킥킥, 그리고 이제 그 방법을 찾은 거야!”스사노오는 그렇게 말하면서 기괴하게 웃었다.“당신이 말한 불로장생의 방법이 설마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영혼으로 자기 영혼의 배를 불리는 겁니까?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서 살겠다고요?”윤구주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더니 발밑의 청석판을 가리켰
“당신 헛소리는 다른 사람들을 현혹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전 현혹할 수 없어요!”윤구주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그 말을 들은 스사노오 료우는 눈빛이 어두워졌다.“화진의 젊은이여, 난 좋은 마음으로 얘기해준 것이니 너무 건방지게 굴지는 마.”윤구주가 말했다.“그래요? 조금 전 당신이 말했다시피 귀신이 되어 사람들의 경배를 받는 건 꽤 유혹적이에요. 절 제외한 다른 신급 강자였다면 아마 이런 유혹을 거절하기가 힘들었겠죠.”윤구주의 말은 사실이었다.육신은 죽었지만 영혼은 죽지 않고, 수백 년 뒤 다시 환생할 수 있다면 그건 아주 유혹적인 일이었다. 윤구주에게 살해당한 고진용, 무사시, 류이치 등 사람들 모두 그런 유혹을 거절하지는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스사노오는 한 가지 잘못을 범했다. 그는 눈앞의 윤구주를 잘못 보았고, 그의 실력 또한 잘못 알고 있었다.윤구주는 소매를 휙 털더니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당신은 꽤 많은 말을 했지만 사실은 그냥 내가 당신의 신도가 되길 바랐던 것뿐이에요. 내 육신이 욕심났기 때문이겠죠. 맞죠?”‘응?’윤구주의 말에 스사노오의 동공에서 무시무시한 핏빛이 감돌기 시작했다.“그... 그... 그걸 알아봤단 말이야?”스사노오는 믿기 어려운 눈치였다.스사노오는 윤구주를 처음 본 그 순간부터 그의 육신을 노리고 있었다.윤구주는 젊을 뿐만 아니라 잘생겼고 심지어 신급 강자였다. 이렇게 좋은 육신을 어떻게 탐내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윤구주는 그런 그의 속셈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윤구주는 차갑게 웃었다.“그렇게 덜떨어진 수작이 나한테 먹힐 줄 알았나요? 귀신이 된다면 겉으로 보기에는 수백 년을 존재할 수 있는 것 같겠죠. 하지만 신의 힘이란 그렇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당신은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경배를 받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무고한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방법으로 존재하는 악귀일 뿐이에요. 다른 사람의 영혼을 흡수하여 살아가는 귀신이 어떻게 신령을 감히 입에 담을 수 있죠? 까놓고 말
윤구주가 부성국에 온 이유가 그의 음령 때문이라고 하자 천 년 된 귀신인 스사노오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건방진 것! 난 너에게 기회를 줄 생각이었어. 나의 환생에 쓰일 몸이 될 기회를 말이야. 하지만 너 스스로가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그렇다면 난 네 육신을 빼앗고 네 영혼을 파괴할 것이다. 난 너의 기억을 얻은 뒤 너의 모든 것을 앗아갈 것이야! 킥킥, 그때가 되어서도 지금처럼 건방을 떨 수 있을까?”천 년 된 귀신 스사노오는 윤구주가 단번에 자신의 속셈을 간파하자 결국 본모습을 드러냈다.그는 사실 그저 원혼이었기 때문에 존재하려면 반드시 남의 몸에 빙의해야 했다.신급 강자인 윤구주의 몸을 본 그는 더욱 탐욕스러워졌다.그는 윤구주가 되고 싶었고, 그의 몸을 얻고 싶었다.스사노오는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두 동공에서 핏빛 기운을 내뿜었고 동시에 그의 주위로 엄청난 혈기가 나타났다. 혈기들이 나타나자마자 그는 윤구주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혈기 속에서 아주 거대하고 흉악한 귀신의 발톱이 튀어나왔다. 귀신의 발톱은 엄청난 혈기를 머금은 채로 윤구주를 습격했다.“악귀 따위가 감히 자신을 신이라고 칭하다니, 주제 파악이 안 되나 보네요!”윤구주는 차갑게 코웃음을 치더니 오른손으로 수인을 맺고 검을 든 손으로 공격했다.주변 현기가 10미터쯤 되는 검으로 변했다. 그 검이 나타나는 순간 쿵 소리와 함께 스사노오 료우의 귀신 발톱이 허공에서 부서졌다.“화진 놈, 역시 신급 강자가 된 화진의 강자답군! 하지만 겨우 신급 강자 수준으로 나와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야!”스사노오 료우는 말을 마친 뒤 갑자기 두 손을 휘둘렀다. 그 수간 그의 주변으로 혈기가 교차하면서 다시 한번 엄청나게 거대한 귀신 발톱이 나타났다.귀신 발톱은 아주 거대했다. 그것은 나타나자마자 사방에서 윤구주를 공격해 왔다. 마치 윤구주를 짓눌러서 고깃덩이로 만들려는 듯이 말이다.윤구주는 마치 신처럼 우뚝 서서 꼼짝하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천둥, 번개가 윤구주의
“빌어먹을 화진 놈, 감히 우리 아메 신전까지 찾아와서 우리를 도발하고, 우리 스사노오님을 도발하다니,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꼴이군요!”“저 화진 놈이 무슨 자격으로 저희 스사노오님과 싸운단 말입니까? 제가 보기에는 저희끼리 연합하여 저 건방진 놈을 죽였어야 합니다!”키 크고 마른 음양사 한 명이 사납게 말했다.“주인님이 저 자식을 신전 안으로 들였다는 건 이유가 있어서겠지.”치히로 신이치가 덤덤히 말했다.“설마 주인님께서 저 화진 놈의 육신을 원하는 건 아닐까요?”살짝 통통한 음양사 한 명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치히로 신이치는 기괴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그럴지도 모르지. 생각해 봐. 저 화진 놈은 혼자서 기타가와 신사를 없앴어. 심지어 기타가와 참격의 야나가와 류이치도 죽였지. 저 정도 실력이라면 적어도 신급 강자일 거야. 신급 강자의 육신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하하! 치히로 대사님 말씀이 옳습니다. 저 화진 놈은 지금까지 신급 강자라는 이유로 나대고 다녔겠지만 저희 스사노오님은 이미 일찌감치 신급 강자 수준을 넘어섰죠!”밖에 있는 백여 명의 음양사들이 의논하고 있을 때 엄청난 폭발음이 신전의 오래된 문에서 들려왔다.펑펑펑!폭발음이 연달아 들려왔고 두께가 30cm가 넘는 신전의 문이 쾅 소리와 함께 부서졌다.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온 뒤 곧 형언하기 어려운 무시무시한 번개가 음양사들의 시야에 나타났다.그리고 곧 그들은 짙은 혈기로 감싸인 무언가가 번개에 맞아서 신전 밖으로 나오는 걸 보았다.“아!”그것이 수많은 번개를 맞고 나오는 순간, 모든 음양사가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밖으로 나온 사람이 윤구주가 아니라 그들의 주인 스사노오였기 때문이다.“주인님!”주변에 있던 치히로 신이치와 다른 백여 명의 음양사들 모두 스사노오가 번개에 맞아서 신전 밖으로 나왔을 때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스사노오는 밖으로 나온 뒤 눈으로 서늘한 기운을 내뿜었다.그는 마치 철천지원수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번개를 몸에 휘
그것이 스사노오의 진짜 본체였다.머리에는 뿌리 두 개가 달리고 동공은 두 개인 나찰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입을 쩍 벌린 채 미친 듯이 웃어대더니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쿵!한 걸음 내딛자 그의 체형이 갑자기 한 배가 더 커졌다.쿵!또 한 걸음을 내딛자 몸이 또 한 번 커졌다쿵쿵쿵쿵쿵!스사노오가 연달아 7걸음을 내딛고 나서야 부성국의 천 년 된 귀신의 본체가 완전히 드러났다.그것은 16미터가 넘는 악귀 나찰이었다.16미터가 넘는 거대한 몸이 나타나자 아메 신전 상공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마치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하늘과 땅 모두 크게 놀란 듯이 말이다.“화진의 젊은이여, 너는 비록 신급 강자이긴 하지만 너의 그 볼품없는 육신으로 날 죽일 수 있을 거로 생각하는 것이냐? 하하하하! 무식한 화진의 젊은이여, 난 오늘 너의 육신을 빼앗고 너의 영혼을 망칠 것이다. 그리고 네 영혼을 백 년 동안 지옥 불에 가둘 것이다!”스사노오는 자신의 무시무시한 본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들고 있던 핏빛의 거대한 도끼를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핏빛의 도끼는 허공에서 반월 형태의 빛줄기를 남기며 윤구주를 향해 날아들었다.윤구주는 꼼짝하지 않고 서 있으면서 코웃음을 쳤다.“겨우 당신이 그럴 수 있겠어?”그는 손을 들어 움켜쥐었고 그 순간 그의 주변을 맴돌던 번개가 순식간에 검으로 변했다.그것은 번개로 뭉쳐진 뇌도였다.뇌도가 휘둘러지면서 스사노오의 도끼와 부딪혔다. 무시무시한 충격파가 주위로 뻗어져 나갔고 수십 명의 음양사가 그 충격으로 날아갔다.어떤 이들은 충격 때문에 목숨을 잃기도 했다.그러나 충격파는 여전히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펑펑 폭발음과 함께 신전의 1/4이 망가졌다.폭발로 인한 화염 속에서, 윤구주의 뇌검이 스사노오의 도끼를 막아냈다.“컥!”공격이 먹혀들지 않자 스사노오는 왼손에 들고 있던 검은색의 불타오르는 삼지창으로 윤구주를 찌르려고 했다. 무시무시한 삼지창이 허공에서 검은색 빛을 쏘았고,
스사노오가 무도 대 무도로 싸우려고 하자 윤구주는 웃었다.“좋아요. 그렇게 말한다면 오늘은 내가 양보해 주죠. 지금부터 난 아무런 술법을 쓰지 않을게요. 우리는 무도 대 무도로 대결하는 거예요!”윤구주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윤구주가 정말로 술법을 쓰지 않겠다고 하자 살아남은 주변의 음양사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저 자식 미친 걸까? 정말로 스사노오님과 무도로만 싸우려는 건가? 설마 저 자식 우리 스사노오님이 불사의 영혼이라고 불렸던 걸 모르는 건 아니겠지?”잿빛 머리의 치히로 신이치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그들이 보기에 윤구주는 이미 확연히 술법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이런 추세라면 스사노오는 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윤구주는 자신의 대단한 술법을 포기하고 스사노오와 무도로만 맞서 싸울 것이라고 했다. 정말로 멍청하기 그지없었다.그들의 예상대로 스사노오는 윤구주의 술법이 조금 두려웠다. 특히 조금 전 윤구주가 시전한 화련금안이 두려웠다.화련금안은 정신력으로 응집된 아주 무시무시한 술법이었다. 이 술법은 악귀를 상대하는데 아주 유용했고, 스사노오 본체가 바로 악귀였다. 천 년 동안 죽지 않은 스사노오도 따져보면 결국 영혼이었기 때문에 조금 전 윤구주가 화련금안을 시전했을 때 스사노오는 너무 두려워서 온몸을 벌벌 떨었다.하지만 다행히도 윤구주는 술법을 쓰지 않겠다고 했다.“하하하하, 화진의 건방진 놈아. 술법을 쓰지 않겠다고? 그렇다면 내가 오늘 단단히 혼쭐을 내주마!”스사노오는 미친 듯이 웃더니 다시금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스사노오의 강한 일격에도 윤구주는 약속을 지켰다. 그는 봉왕팔기를 쓰지 않고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눈을 빛냈다. 핏빛 도끼가 그에게서 1미터 정도 떨어져 있을 때, 윤구주가 갑자기 몸을 움직였다.그는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였고 그 순간 용의 울음소리가 그의 체내에서 들려왔다.그리고 윤구주는 주먹을 뻗었다.주먹이 닿기도 전에 권의가 먼저 도착했다.권의는 맷돌 아래
“세상에, 저 화진 놈이 스사노오님을 쓰러뜨린 거야? 이게 무슨...”주변에 살아있던 음양사들은 그 광경에 넋이 나갔다.심지어 치히로 신이치는 얼굴 근육이 심하게 떨렸다.어쩔 수가 없었다. 윤구주는 너무 강했다.스사노오는 자신이 본체를 드러내면 손쉽게 윤구주를 죽일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윤구주의 실력은 말도 안 될 정도로 강했다.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스사노오 또한 마찬가지였다.그는 바닥에 쓰러진 뒤 빠르게 일어났다.온몸에 짙은 음기를 두른 스사노오는 분노의 불길로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윤구주를 빤히 바라보았다.“인정하마. 넌 내가 천 년 동안 상대했던 사람 중 가장 강한 적수야. 하지만 잊은 건 아니겠지? 여긴 내 땅이고 내 구역이야! 이곳은 나의 원념으로 만들어진 곳이지. 이 신전 또한 내가 장악하고 있어. 그러니 네가 아무리 강해도 한 주먹에 날 죽일 수는 없어. 하하하하하!”스사노오는 우쭐한 얼굴로 크게 웃었다.그의 말은 사실이었다.이곳은 당시 그가 생매장당한 곳으로 그의 천 년 간의 원한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죽인 수많은 아이의 원혼이 있는 곳이었다.그러니 그의 영혼은 이곳에서 아주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불사의 상태에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었다.윤구주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한 주먹에 죽일 수 없다면 열 주먹은요? 백 주먹은요?”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전광석화와도 같은 속도로 빠르게 스사노오에게로 달려들었다.“크릉!”윤구주가 뛰어오르는 순간, 무시무시한 용의 울부짖음이 그의 체내에서 들려왔다.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구양진용기가 용 세 마리로 변했다. 용이 나타나자 윤구주는 스사노오를 향해 주먹을 연속 세 번 휘둘렀다.퍽퍽퍽!엄청난 힘이 스사노오의 도끼 위로 내려앉았다. 처음에는 막을 만했지만 뒤로 갈수록 윤구주의 주먹을 뻗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허공에서는 금빛 주먹이 스사노오를 공격하는 것만 보일 뿐이었다.윤구주의 금빛 주먹이 스사노오를 공격하는 걸 본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
백호는 아직도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어느덧 이백오십 계단까지 올라왔다. 이 단계부터는 실체화된 술법이 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바람, 불 번개와 같은 속성의 영기가 점점 강해졌다. 여기서부터는 육신 횡련의 수련자는 강력한 체질로 버티고 술도 재능이 뛰어난 수련자는 천지 영기를 다루는 능력으로 버텨야 했다. 한마디로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갈리는 구간이었다. 어느 한 분야라도 특출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백호는 술도에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강인한 육체 하나로 견디고 있었다.웅!성수의 피가 진동하며 백호의 몸을 지탱했다. 각종 속성의 영기가 몰아쳤지만 백호는 성수혈의 힘을 빌려 억지로 앞으로 나아갔다.수련자에게 있어서 성수의 혈맥이나 법보 등은 모두 신체 외적인 재능으로 간주하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이 꼼수나 편법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천 가지 변화와 만 가지 신통력이 있어도 결국 만법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법기든 혈맥이든 이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천지 영기를 이용한 술법도 결국은 그 힘을 감당할 수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감당하지 못하면 반드시 반작용을 맞게 된다. 따라서 수련의 길에는 애초에 편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성수 혈맥 같은 천지의 보물은 보통 사람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윤구주의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이를 감당하는 건 백호 자신이었다. 성수 혈맥의 힘을 온전히 감당하며 백호는 결국 삼백 계단까지 올라섰다.계단의 꼭대기 근처에는 이미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이 여럿 서 있었다. 서요산 검종은 근대에 들어 삼백 계단을 넘는 인재가 드물었다. 최근 백 년 동안 삼백 계단을 넘은 사람이 고작 열 명 남짓이었고 그중 대부분이 삼백여 계단에서 멈췄다. 그런데 지금 백호는 삼백이십 계단까지 올라선 것이다. 이 정도면 서요산 검종 전체가 떠들썩해질 만한 성과였다.이런 제자가 나타난다면 종문 전체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서요산의 진인들까
“한 사람의 품성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그렇게 많은 수련자를 키워낸다면 결국 천하의 마인을 직접 만들어 내는 꼴이 아니겠어?”청현이 바로 그 실패한 예다. 서요산 검종 종주가 청현의 천재성을 아까워한 나머지 그의 인성을 무시하고 양성한 끝에 결국 역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그럼 저하 서요산에 입문한 무술 무인들은 평균적으로 몇 계단까지 오르는지 아십니까?” 백호가 호기심에 물었다. 윤구주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무술 무인의 정확한 데이터는 모르지만 검종 종주와 잡담할 때 들어보니 검종 제자들의 수준이 갈수록 떨어져서 천 년 전만 해도 평균 삼백 계단 정도였는데 요즘엔 백 계단도 못 오른다고 하더구나. 가끔 삼백 계단을 오르는 자라도 나오면 검종 전체가 몇 년은 떠들썩할 정도라고 했어.”“구백구십구 계단까지 있는 시험인데 천 년 전 전성기에도 겨우 삼백 계단이요?” 백호는 입술을 삐죽이며 서요산 검종의 수준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때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야?” 윤구주는 흥미롭게 백호를 바라보았다. 백호는 당장이라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윤구주의 허락을 구한 뒤 바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계단 두 계단... 오십 계단까지는 아무 어려움도 없었다. 백호는 오십 계단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서요산 검종이 별것 아니라며 놀려댔다. 하지만 육십 계단쯤 올랐을 때 처음으로 압력을 느꼈다. 마치 몸 위에 작은 차 한 대가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백호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백 계단에 도달하자 압력이 갑자기 커졌다. 등에 작은 승용차 대신 소형 트럭이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지만 아직 백호의 한계에도 가지 못했다.“근래 사람들의 평균이 백 계단도 못 넘는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예전의 무인 횡련은 황제도 오를 수 있었지만 요즘 무인 횡련은 죽어라 노력해도 소형 트럭 하나 못 버티는 수준이니 말입니다.”백호는 농담을 던지며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
전에 임정설은 구오 지존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나라를 위해 힘쓰며 수모를 견뎌내고 살아남으려 했다.하지만 이제 황제가 된 그는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그 탓에 이번 관문 앞에서 그는 망설였다.살아 있는 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관문이었다.죽음을 마음에 품은 자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관문이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청해만이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생각했다.‘황제가 되면 곤륜 구역에서 최고 경지에 도달하는 건데. 기뻐해도 모자랄 판에 왜 죽음을 택하려는 거지?’“저하, 국주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듯합니다. 저하도 사랑하던 이에게 배신당했어도 결국 극복해 나갔잖습니까.”백호도 이해하지 못했다.그는 여전히 국주보다는 왕이 더 낫다고 여겼다.“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느냐.” 윤구주가 단호하게 말했다.백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는 어리숙하고 말솜씨도 없기에 생각나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내가 문아름에게 배신당한 건 억울한 일이지만 나는 그녀에게 잘못한 게 없다. 오히려 그녀가 날 배신한 거다. 하지만 국주는 그 반대였지. 그가 그녀를 저버린 거야. 정이 깊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지혜가 지나치면 오히려 상처를 입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쓰라린 후회는 가진 뒤 잃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생사를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윤구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만약 소채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도 제정신이 아닐 거라고 느꼈다.“그럼 복수하면 되지 않나요?” 백호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이때 청해가 눈치를 채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상대가 너무 강해서 못 이기는 거지. 황제에 오르기 전까진 제대로 맞붙을 힘도 안 돼. 오르고 나서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 못 하고.”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그 말이 맞았다.“그럼 우리가 국주님 대신 복수해 드리면 되잖아요? 국주님은 제 왕이기도 하지만 제 윗사람이기도 하잖아요.”백호가 고개를 갸웃했다.“하하! 만약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솔직하다면 이런
인간이 나쁜 짓을 거듭해 양심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윤구주를 따라 명예심이 생기면서 죄책감도 느끼게 된 청해에게 이 원한의 전법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물론 곤륜역 한 신전의 부전주로서 정신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사람은 이 원한의 전법도 가볍게 넘어섰다.이때 전법에 관심을 가졌던 임정설이 무언가를 눈치챘다.“구주야, 서요산의 전법은 우연히 들어온 자를 쫓아내는 동시에 수련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어. 서요산은 의지력이 확고한 자들만 끌어들인다는 것을 미리 들어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서요산이 제자를 선발하는 방식인가 보구나.”“그렇습니다. 매년 화진 무도계 사람들이 서요산에 찾아오지만 성공한 자는 극히 드뭅니다. 실패자들 중 십중팔구는 산기슭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어떤 문턱은 넘지 않는 것이 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죠. 현실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법이니까요. 이 관문을 넘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세 번째 전법이 나타났다.첫 번째와 두 번째 전법은 이곳에 들어온 이들을 돌려보내려고 만든 것이지만 세 번째 전법은 달랐다. 이 전법은 살기로 가득 찬 죽음의 전법이었다.평범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곳까지 온 자들도 앞길의 위험을 보고 함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의 길을 보고도 들어가는 자는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자라서 그런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덕을 쌓는 일이었다.하지만 무도로 도를 깨우치려는 수련자라면 이 관문을 넘기 위해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버텨내야만 수도의 길에 들 수 있고 실패하면 그 후과를 받아들여야 한다.전법 안은 살기로 가득했다. 생기와 영기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할지라도 살기와 죽음의 기운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진법 내부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도계에 이름을 날렸던 강자들의 유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