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구주가 신전 대문 쪽으로 걸어가자 반서윤은 서둘러 그를 뒤따랐다.“윤구주 씨, 어디 가는 거예요? 조금 전에 이곳을 지키는 사람들이 신전을 봉쇄했으니 아무도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어요.”윤구주는 웃었다.“걱정하지 말아요. 저는 들여보내 줄 거니까요.”반서윤은 뭐라고 더 말하고 싶었는데 옆에 있던 장윤형이 말했다.“또 허세를 부리네. 자기가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신전 측에서 신전을 봉쇄한다고 했는데 한낱 외부인인 그가 어떻게 들어간다고.”반서윤은 비록 장윤형의 말을 듣고 짜증 났지만 내심 윤구주가 너무 큰소리를 친다고 생각했다.아메 신전은 천 년의 역사를 가진 신전인 데다가 오늘은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금지령을 내리기까지 했다.그런데 윤구주는 굳이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하고 있었다.두 사람은 윤구주가 망신당하는 모습을 기다렸고, 윤구주는 이미 신전 문 앞에 도착했다.그들의 주변에는 아메 신전에 참배하러 온 신도들이 아주 많았기에 윤구주가 신전을 지키고 있는 음양사들과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반서윤은 윤구주가 말을 마치자마자 신전을 지키던 음양사들이 귀신이라도 본 듯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곧 안으로 보고하러 들어가는 걸 보았다.그리고 잠시 뒤, 가리기누를 입고 고모를 쓴 음양사 수백 명이 하나둘 신전 안에서 걸어 나왔다.제일 앞에 선 사람은 아메 신전의 최강자 치히로 신이치였다.걸어 나오는 치히로 신이치의 눈에서 어두운 자줏빛이 번뜩였다.그는 곧 윤구주에게로 시선을 멈추었다.윤구주는 뒷짐을 진 채 마치 신처럼 서 있었다.그는 단지 그곳에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그를 바라볼 때 부성국의 음양사 수백 명 모두 엄청나게 압도적인 기운이 몸을 휘감는 것을 느꼈다.최강 음양사인 치히로 신이치 또한 마찬가지였다.그는 윤구주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물었다.“당신이 바로 우리 부성국 기타가와 신사를 멸문시킨 범인인가요?”“맞아요, 접니다.”윤구주는 아주 깔끔하게 인정했다.치히로 신이치는 윤구주가 이토
그 목소리가 들려온 뒤 스사노오 조각상 뒤에서 부성국 겐지 시대의 귀족들이 입는 긴 옷을 입고 나막신을 신은 회색 망토의 노인 한 명이 걸어 나왔다.노인은 여윈 듯 보였는데 기괴하게도 한 눈에 두 개의 동공을 가지고 있었다.그는 걸어오면서 엄청나게 음산하고 사악한 기운을 온몸에서 내뿜었다.윤구주는 그를 덤덤히 훑어보더니 그의 맞은편에 놓인 방석 위에 조용히 앉았다. 마치 기괴한 노인을 마주하고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듯 말이다.“난 스사노오 료우라고 해. 동쪽에서 귀한 손님이여, 날 찾아온 것이 맞는가?”스사노오 료우라고 자신을 소개한 노인은 미소 띤 얼굴로 눈앞의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스사노오 료우는 화진 말을 아주 유창하게 했지만 말투에서 예스러움이 느껴져서 마치 고대에서 타이슬립해 온 노인 같아 보였다.윤구주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여윈 노인을 보자마자 그가 부성국 최강 귀신의 본체임을 눈치챘다.“맞아요. 전 당신을 만나러 부성국에 온 거예요. 그런데 당신이 이런 귀신의 상태로 천 년 가까이 존재했을 줄은 몰랐네요.”윤구주는 번뜩이는 눈빛으로 눈앞의 여윈 노인을 바라보았다.사실 윤구주의 눈에 눈앞의 여윈 노인은 그저 흐릿한 허상이었다. 그것은 스사노오가 만들어낸 허상이었기 때문이다.“역시 눈치가 빠르군.”여윈 노인은 다시 한번 웃었다.스사노오 료우는 부성국 겐지 시대의 바쿠후 번왕으로 스사노오 왕이라고 불렸었다.천 년 전, 번왕들이 패권을 다투느라 전쟁이 난무하던 시대, 스사노오는 가장 강한 번왕이었다.그는 군대를 이끌고 사방으로 출정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후세에 부성국 궁극의 살신이라고 불렸었다.그뿐만 아니라 그는 천 년 전 그 시대의 가장 강한 음양사였다.그러나 그 뒤로 그는 너무도 많은 살육과 악행을 저질러 부성국 공공의 적이 되어 생매장이라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그러나 무시무시한 스사노오 번왕의 영혼이 너무도 강했던 탓에 그를 생매장하기 전, 부성국 군주는 본국의 가장 강한 70여 명의 음양사들에게 진법을
스사노오 료우는 웃으며 말했다.“하늘의 길은 통하지 않으니 불로장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했었지.”“불로장생이라고요? 한낱 귀신 따위가 불로장생을 입에 담은 건가요?”윤구주는 차갑게 웃었다.“내가 틀린 말을 했나? 세상 만물이라면 뭐든 때가 있는 법이지. 하물며 꽃도 필 때가 있고 질 때가 있는 법인데 말이야. 속세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이 세상 풍경을 다 보고 싶어 하는 법이지. 그래서 나는 불로장생을 원했고 말이야. 설마 너는 그걸 원하지 않는 것인가?”스사노오는 계속해 말을 이어갔다.“천 년 전, 나는 번창했던 동쪽 땅에 가본 적이 있어. 그때 화진은 확실히 우리 부성국보다 몇만 배는 더 부유했었지. 동쪽 땅에서 지냈던 시절, 나는 동쪽 땅의 황제가 자신의 불로장생을 위해 수많은 백성을 동원하여 단약을 만들려고 한 걸 본 적이 있어. 그리고 또 화진의 곤륜 성지에 가서 대단한 실력을 갖춘 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불로장생의 방법을 갈구한 적이 있었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은 물처럼 흘러갔고 내가 신급 강자가 되었을 때는 앞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웠어. 아무리 강해져도 신선의 경지가 되기는 어려웠었지...”거기까지 말한 뒤 스사노오는 한숨을 쉬었다.그의 말을 들은 윤구주가 입을 열었다.“당신이 육지의 신선의 경지를 알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요.”“당연히 알고 있지! 화진의 곤륜 성지에, 신급 강자 절정에 다다르게 되어 육지 신선이 된 전설 같은 인물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그들에게 물었을 때 그들은 내게 알려주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불로장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힘들게 찾아봐야 했지. 킥킥, 그리고 이제 그 방법을 찾은 거야!”스사노오는 그렇게 말하면서 기괴하게 웃었다.“당신이 말한 불로장생의 방법이 설마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영혼으로 자기 영혼의 배를 불리는 겁니까?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서 살겠다고요?”윤구주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더니 발밑의 청석판을 가리켰
“당신 헛소리는 다른 사람들을 현혹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전 현혹할 수 없어요!”윤구주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그 말을 들은 스사노오 료우는 눈빛이 어두워졌다.“화진의 젊은이여, 난 좋은 마음으로 얘기해준 것이니 너무 건방지게 굴지는 마.”윤구주가 말했다.“그래요? 조금 전 당신이 말했다시피 귀신이 되어 사람들의 경배를 받는 건 꽤 유혹적이에요. 절 제외한 다른 신급 강자였다면 아마 이런 유혹을 거절하기가 힘들었겠죠.”윤구주의 말은 사실이었다.육신은 죽었지만 영혼은 죽지 않고, 수백 년 뒤 다시 환생할 수 있다면 그건 아주 유혹적인 일이었다. 윤구주에게 살해당한 고진용, 무사시, 류이치 등 사람들 모두 그런 유혹을 거절하지는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스사노오는 한 가지 잘못을 범했다. 그는 눈앞의 윤구주를 잘못 보았고, 그의 실력 또한 잘못 알고 있었다.윤구주는 소매를 휙 털더니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당신은 꽤 많은 말을 했지만 사실은 그냥 내가 당신의 신도가 되길 바랐던 것뿐이에요. 내 육신이 욕심났기 때문이겠죠. 맞죠?”‘응?’윤구주의 말에 스사노오의 동공에서 무시무시한 핏빛이 감돌기 시작했다.“그... 그... 그걸 알아봤단 말이야?”스사노오는 믿기 어려운 눈치였다.스사노오는 윤구주를 처음 본 그 순간부터 그의 육신을 노리고 있었다.윤구주는 젊을 뿐만 아니라 잘생겼고 심지어 신급 강자였다. 이렇게 좋은 육신을 어떻게 탐내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윤구주는 그런 그의 속셈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윤구주는 차갑게 웃었다.“그렇게 덜떨어진 수작이 나한테 먹힐 줄 알았나요? 귀신이 된다면 겉으로 보기에는 수백 년을 존재할 수 있는 것 같겠죠. 하지만 신의 힘이란 그렇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당신은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경배를 받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무고한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방법으로 존재하는 악귀일 뿐이에요. 다른 사람의 영혼을 흡수하여 살아가는 귀신이 어떻게 신령을 감히 입에 담을 수 있죠? 까놓고 말
윤구주가 부성국에 온 이유가 그의 음령 때문이라고 하자 천 년 된 귀신인 스사노오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건방진 것! 난 너에게 기회를 줄 생각이었어. 나의 환생에 쓰일 몸이 될 기회를 말이야. 하지만 너 스스로가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그렇다면 난 네 육신을 빼앗고 네 영혼을 파괴할 것이다. 난 너의 기억을 얻은 뒤 너의 모든 것을 앗아갈 것이야! 킥킥, 그때가 되어서도 지금처럼 건방을 떨 수 있을까?”천 년 된 귀신 스사노오는 윤구주가 단번에 자신의 속셈을 간파하자 결국 본모습을 드러냈다.그는 사실 그저 원혼이었기 때문에 존재하려면 반드시 남의 몸에 빙의해야 했다.신급 강자인 윤구주의 몸을 본 그는 더욱 탐욕스러워졌다.그는 윤구주가 되고 싶었고, 그의 몸을 얻고 싶었다.스사노오는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두 동공에서 핏빛 기운을 내뿜었고 동시에 그의 주위로 엄청난 혈기가 나타났다. 혈기들이 나타나자마자 그는 윤구주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혈기 속에서 아주 거대하고 흉악한 귀신의 발톱이 튀어나왔다. 귀신의 발톱은 엄청난 혈기를 머금은 채로 윤구주를 습격했다.“악귀 따위가 감히 자신을 신이라고 칭하다니, 주제 파악이 안 되나 보네요!”윤구주는 차갑게 코웃음을 치더니 오른손으로 수인을 맺고 검을 든 손으로 공격했다.주변 현기가 10미터쯤 되는 검으로 변했다. 그 검이 나타나는 순간 쿵 소리와 함께 스사노오 료우의 귀신 발톱이 허공에서 부서졌다.“화진 놈, 역시 신급 강자가 된 화진의 강자답군! 하지만 겨우 신급 강자 수준으로 나와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야!”스사노오 료우는 말을 마친 뒤 갑자기 두 손을 휘둘렀다. 그 수간 그의 주변으로 혈기가 교차하면서 다시 한번 엄청나게 거대한 귀신 발톱이 나타났다.귀신 발톱은 아주 거대했다. 그것은 나타나자마자 사방에서 윤구주를 공격해 왔다. 마치 윤구주를 짓눌러서 고깃덩이로 만들려는 듯이 말이다.윤구주는 마치 신처럼 우뚝 서서 꼼짝하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천둥, 번개가 윤구주의
“빌어먹을 화진 놈, 감히 우리 아메 신전까지 찾아와서 우리를 도발하고, 우리 스사노오님을 도발하다니,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꼴이군요!”“저 화진 놈이 무슨 자격으로 저희 스사노오님과 싸운단 말입니까? 제가 보기에는 저희끼리 연합하여 저 건방진 놈을 죽였어야 합니다!”키 크고 마른 음양사 한 명이 사납게 말했다.“주인님이 저 자식을 신전 안으로 들였다는 건 이유가 있어서겠지.”치히로 신이치가 덤덤히 말했다.“설마 주인님께서 저 화진 놈의 육신을 원하는 건 아닐까요?”살짝 통통한 음양사 한 명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치히로 신이치는 기괴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그럴지도 모르지. 생각해 봐. 저 화진 놈은 혼자서 기타가와 신사를 없앴어. 심지어 기타가와 참격의 야나가와 류이치도 죽였지. 저 정도 실력이라면 적어도 신급 강자일 거야. 신급 강자의 육신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하하! 치히로 대사님 말씀이 옳습니다. 저 화진 놈은 지금까지 신급 강자라는 이유로 나대고 다녔겠지만 저희 스사노오님은 이미 일찌감치 신급 강자 수준을 넘어섰죠!”밖에 있는 백여 명의 음양사들이 의논하고 있을 때 엄청난 폭발음이 신전의 오래된 문에서 들려왔다.펑펑펑!폭발음이 연달아 들려왔고 두께가 30cm가 넘는 신전의 문이 쾅 소리와 함께 부서졌다.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온 뒤 곧 형언하기 어려운 무시무시한 번개가 음양사들의 시야에 나타났다.그리고 곧 그들은 짙은 혈기로 감싸인 무언가가 번개에 맞아서 신전 밖으로 나오는 걸 보았다.“아!”그것이 수많은 번개를 맞고 나오는 순간, 모든 음양사가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밖으로 나온 사람이 윤구주가 아니라 그들의 주인 스사노오였기 때문이다.“주인님!”주변에 있던 치히로 신이치와 다른 백여 명의 음양사들 모두 스사노오가 번개에 맞아서 신전 밖으로 나왔을 때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스사노오는 밖으로 나온 뒤 눈으로 서늘한 기운을 내뿜었다.그는 마치 철천지원수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번개를 몸에 휘
그것이 스사노오의 진짜 본체였다.머리에는 뿌리 두 개가 달리고 동공은 두 개인 나찰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입을 쩍 벌린 채 미친 듯이 웃어대더니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쿵!한 걸음 내딛자 그의 체형이 갑자기 한 배가 더 커졌다.쿵!또 한 걸음을 내딛자 몸이 또 한 번 커졌다쿵쿵쿵쿵쿵!스사노오가 연달아 7걸음을 내딛고 나서야 부성국의 천 년 된 귀신의 본체가 완전히 드러났다.그것은 16미터가 넘는 악귀 나찰이었다.16미터가 넘는 거대한 몸이 나타나자 아메 신전 상공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마치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하늘과 땅 모두 크게 놀란 듯이 말이다.“화진의 젊은이여, 너는 비록 신급 강자이긴 하지만 너의 그 볼품없는 육신으로 날 죽일 수 있을 거로 생각하는 것이냐? 하하하하! 무식한 화진의 젊은이여, 난 오늘 너의 육신을 빼앗고 너의 영혼을 망칠 것이다. 그리고 네 영혼을 백 년 동안 지옥 불에 가둘 것이다!”스사노오는 자신의 무시무시한 본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들고 있던 핏빛의 거대한 도끼를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핏빛의 도끼는 허공에서 반월 형태의 빛줄기를 남기며 윤구주를 향해 날아들었다.윤구주는 꼼짝하지 않고 서 있으면서 코웃음을 쳤다.“겨우 당신이 그럴 수 있겠어?”그는 손을 들어 움켜쥐었고 그 순간 그의 주변을 맴돌던 번개가 순식간에 검으로 변했다.그것은 번개로 뭉쳐진 뇌도였다.뇌도가 휘둘러지면서 스사노오의 도끼와 부딪혔다. 무시무시한 충격파가 주위로 뻗어져 나갔고 수십 명의 음양사가 그 충격으로 날아갔다.어떤 이들은 충격 때문에 목숨을 잃기도 했다.그러나 충격파는 여전히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펑펑 폭발음과 함께 신전의 1/4이 망가졌다.폭발로 인한 화염 속에서, 윤구주의 뇌검이 스사노오의 도끼를 막아냈다.“컥!”공격이 먹혀들지 않자 스사노오는 왼손에 들고 있던 검은색의 불타오르는 삼지창으로 윤구주를 찌르려고 했다. 무시무시한 삼지창이 허공에서 검은색 빛을 쏘았고,
스사노오가 무도 대 무도로 싸우려고 하자 윤구주는 웃었다.“좋아요. 그렇게 말한다면 오늘은 내가 양보해 주죠. 지금부터 난 아무런 술법을 쓰지 않을게요. 우리는 무도 대 무도로 대결하는 거예요!”윤구주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윤구주가 정말로 술법을 쓰지 않겠다고 하자 살아남은 주변의 음양사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저 자식 미친 걸까? 정말로 스사노오님과 무도로만 싸우려는 건가? 설마 저 자식 우리 스사노오님이 불사의 영혼이라고 불렸던 걸 모르는 건 아니겠지?”잿빛 머리의 치히로 신이치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그들이 보기에 윤구주는 이미 확연히 술법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이런 추세라면 스사노오는 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윤구주는 자신의 대단한 술법을 포기하고 스사노오와 무도로만 맞서 싸울 것이라고 했다. 정말로 멍청하기 그지없었다.그들의 예상대로 스사노오는 윤구주의 술법이 조금 두려웠다. 특히 조금 전 윤구주가 시전한 화련금안이 두려웠다.화련금안은 정신력으로 응집된 아주 무시무시한 술법이었다. 이 술법은 악귀를 상대하는데 아주 유용했고, 스사노오 본체가 바로 악귀였다. 천 년 동안 죽지 않은 스사노오도 따져보면 결국 영혼이었기 때문에 조금 전 윤구주가 화련금안을 시전했을 때 스사노오는 너무 두려워서 온몸을 벌벌 떨었다.하지만 다행히도 윤구주는 술법을 쓰지 않겠다고 했다.“하하하하, 화진의 건방진 놈아. 술법을 쓰지 않겠다고? 그렇다면 내가 오늘 단단히 혼쭐을 내주마!”스사노오는 미친 듯이 웃더니 다시금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스사노오의 강한 일격에도 윤구주는 약속을 지켰다. 그는 봉왕팔기를 쓰지 않고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눈을 빛냈다. 핏빛 도끼가 그에게서 1미터 정도 떨어져 있을 때, 윤구주가 갑자기 몸을 움직였다.그는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였고 그 순간 용의 울음소리가 그의 체내에서 들려왔다.그리고 윤구주는 주먹을 뻗었다.주먹이 닿기도 전에 권의가 먼저 도착했다.권의는 맷돌 아래
단 한 걸음,그 한 걸음만 넘기면, 그는 곧 성급 바로 직전 경지에 이른다.그리고 그 마지막 문턱을 박살내는 순간 반쯤 성인이 된 경지, 반성급이다!지금 이 자리, 그 반성급 경지에 선 자는 바로 인마라고 불리는 무명이었다.“과연... 화진의 인황, 구주왕이라 불릴 자격은 있군. 하지만 너도 알겠지. 지금 네 수준으론 몸을 직접 이 판에 던지지 않는 이상 나랑 맞붙을 자격조차 없어. 네가 그 잘난 원신출체를 어떻게 하겠다는지 구경이나 해보자고. ”무명이 입꼬리를 비틀며 코웃음쳤다.팔기귀일에 도달한 윤구주의 전투력은 이미 황의 지경을 뛰어넘었다.하지만 무명과의 경지 차이는 여전히 너무 컸다.실력은 분명 엄청났지만 격이 다르였다.지금 상태로도 보통의 황자의 경지까지 초월한 상태지만 무명을 상대하긴 아직 한참 부족했다.심지어 무명이랑 싸울 실력은커녕 참마검조차 손에 제대로 못 잡는 게 현실이었다.“팔기로 부족하다면... 제구기는 어때? 구기:적선!”부우우우웅!윤구주의 온몸을 하얀 선기가 감싸는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웃고 있던 무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뭐라고? 이건 네 따위가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잖아! ”그 순간, 무명조차 숨을 삼켰다.이건 상식의 틀을 깨부수는 광경이었다.근대에 들어서면서 도에 대한 수련는 사실상 약해졌다.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세상에 흐르는 천지영기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봉신전쟁 당시, 상상을 초월하는 영기가 소모됐고 그 전쟁이 끝난 후 곤륜구역은 세상의 영기 90%를 신계에 봉인해버렸다.거기서 마음껏 영기를 탕진한 것도 모자라 바깥의 산수들까지 무분별하게 빨아들인 탓에세상의 영기는 걷잡을 수 없이 줄어들고 말았다.결국 세상은 고위 수련자가 태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그래서 화진에선 500년에 한 번 황자가 나올까 말까 할 정도이고 황자의 경지에 도달하는 건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었다.임정설이 황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처음부터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윤구주를 돕기 위해 왕
마기가 검종 제자들의 혼백에 침투하자 그 순간 제자들의 몸에서 시커먼 마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이를 목격한 장인 대진인은 망설임 없이 즉시 결단을 내렸다. 오염된 제자들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정화해 버린 것이다.“모든 제자들아, 입문 첫날 내가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서요산은 찬란한 성지 화진 정통의 계승지다. 정은 사악함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정은 사악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은 바로 서요산 제자들이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는 도의였다.입문과 동시에 깨달음을 얻은 그들은 언젠가 반드시 도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저 화진 정통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서였다.그 순간 진요탑 외곽에서는 7대 진인을 중심으로 전 종문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진요탑을 사수하고 있었다.하늘을 뒤덮을 듯한 마기의 기세는 점점 거세져 어느새 검종의 경내 전역을 삼켜버렸다.검종 제자들은 마기를 막아내면서도 동시에 진요탑의 결계를 유지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정도를 지키는 일은 그만큼 고통스럽고 힘든 투쟁이었다.산 아래 상황도 마찬가지로 치열했다.온갖 요괴와 귀신들이 들이닥치는 가운데 임정설은 황운을 등에 업고 이씨 가문의 국운을 모두 모아 홀로 수백만 마기를 막아서고 있었다.백호는 마인으로 완전히 변신해 광란의 충격 속으로 몸을 던졌고, 스스로 마를 품은 채 적진을 난도질했다.청해는 천뢰신술을 펼쳐 수만 개의 천뢰를 무기로 변환시켜 온갖 사도와 악귀를 쓸어내기 시작했다.그 무렵 진요탑 내부에서 풍무극의 기세는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구주야, 내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 내 500년 수련의 혼을 너에게 바치겠다."”풍무극의 준비는 이미 완료되었다.그는 미리 준비해 둔 제천 법기를 꺼냈고 전법이 발동되는 순간 그의 육신은 산산조각 부서졌다.그의 정기와 천지 정기를 모두 품은 찬란한 진신 영혼은 한 자루의 참마검으로 변해 윤구주 앞에 떠올랐다.“풍 종주...” 윤구주는 입술을 깨물었다.슬프고 아쉬
윤구주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국운의 기운이 그의 발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그가 진요탑의 문에 도달했을 무렵 모든 국운이 윤구주에게 집중되었다.윤구주의 주변으로는 천인신광이 펼쳐져 있었다.이 순간만큼은 그가 천지의 주재자 화진의 영겁을 관통한 유일한 존재였다.윤구주는 홀로 진요탑 안으로 들어섰다.겉보기에 거대한 산 같았던 진요탑의 내부는 참혹한 말세의 풍경이었다. 땅은 끝없이 펼쳐진 용암으로 뒤덮여 있었고 하늘에서는 강줄기가 거꾸로 흘러내리고 있었다.불과 물이 충돌할 때마다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거꾸로 흐르는 강물 위에 한 노인이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백발이 성성한 그 인물은 다름 아닌 서요산 검종의 종주였다.밖에서 보이던 강건한 중년의 모습은 단지 화신에 불과했으며, 본체는 수백 년 전부터 이 진요탑에서 마인을 봉인해 왔다.서요산 검종 종주는 극도로 지쳐 있었고 이제는 마지막 호흡으로 버티고 있었다.“드디어 왔구나.” 서요산 검종 종주는 허약한 전음으로 말을 건넸다.“오백 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종주님.” 윤구주는 고개를 숙였다.풍무극은 현 서요산의 종주이자 당대 최고의 영웅, 화진 제일 검으로 불리던 남자였다.원래는 풍속을 다루는 수련자로 젊은 시절엔 검 하나로 화진을 호령한 사내로 알려졌다.그의 검은 아무도 궤적을 볼 수 없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500년 전 마인이 봉인되고 서요산의 조사가 승천한 후, 풍무극은 서요산의 거자로서 종주의 자리를 이어받았다.그날 이후 진요탑에 몸을 묻고 마인과의 싸움을 500년간 지속해 왔다.풍을 다루던 그였지만 지속적인 봉인을 위해 익숙하지 않은 수속까지 수련하며 지금까지 버텨왔다.그가 마도에 빠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이었다.“그래도 괜찮다. 다행히 이 시대에 또다시 인황이 나왔으니. 화진은 연달아 두 명의 인황을 배출했다. 임정설이 인황에 등극한 지금 쇠락하던 이씨 가문의 국운이 다시 살아났다. 그가 천지의
마인이 출현하면 곤륜 구역조차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서요산 검종의 진요탑은 이미 오백 년 동안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이는 곧 그 마인이 오백 년 동안 진요탑 안에 봉인되어 있었음을 의미했다.“우리가 가진 유일한 이점은 저 마인이 지난 오백 년간 수련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 오백 년 동안 분명 무언가를 '깨달았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정도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도가 존재하는 법입니다. 만약 그가 이곳을 벗어나 다시 한번 돌파에 성공하여 진정한 성인의 경지에 오른다면…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 우리 종문의 선대 종주께서 이 마인을 직접 봉인하셨습니다. 하지만 선대 종주께서는 진요탑만으로는 그를 완전히 봉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아셨지요. 그래서 마침내 구천으로 비상하셔서 바깥 세계에 존재한다는 신기를 찾기 위해 떠나신 것입니다.”장인 대진인이 비밀을 털어놓자 임정설은 왜 그 옛날 서요산 검종을 창립한 선조가 갑자기 사라졌는지 이해했다.“구천을 비상했다고? 전설 속 그 이야기 설마 전부 사실이었단 말인가? 이 세상 위에 더 위대한 세계가 있다는 건가?” 임정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들은 바로는 성인이란 육지에서 신선이 된 자를 이르는 말이고 준성은 그보다 한 단계 아래 반쯤 신선이 된 존재라 하더군요. 우리보다 더 풍부한 영기의 세계가 과연 존재하는지는 이 몸 역시 감히 짐작할 수 없습니다.” 장인 대진인은 고개를 저었다.그때였다.진요탑이 거칠게 흔들렸고 모든 호법 제자의 얼굴이 딱딱해졌다.수련이 부족한 제자 몇몇은 그 자리에서 마기의 침식으로 피를 토했다.“모든 제자에게 고한다. 나와 함께 현문을 수호하라.” 장인 대진인이 친히 자리에 앉아 온 종문의 기운을 모아 마인을 억제하기 시작했다.마인은 일시적으로 제압되었지만 산 밖의 요괴들과 악귀들은 마기의 부름을 받아 사방팔방에서 서요산으로 몰려들고 있었다.임정설은 이제 자신이 이곳에 온 진짜 이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