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사노오가 무도 대 무도로 싸우려고 하자 윤구주는 웃었다.“좋아요. 그렇게 말한다면 오늘은 내가 양보해 주죠. 지금부터 난 아무런 술법을 쓰지 않을게요. 우리는 무도 대 무도로 대결하는 거예요!”윤구주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윤구주가 정말로 술법을 쓰지 않겠다고 하자 살아남은 주변의 음양사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저 자식 미친 걸까? 정말로 스사노오님과 무도로만 싸우려는 건가? 설마 저 자식 우리 스사노오님이 불사의 영혼이라고 불렸던 걸 모르는 건 아니겠지?”잿빛 머리의 치히로 신이치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그들이 보기에 윤구주는 이미 확연히 술법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이런 추세라면 스사노오는 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윤구주는 자신의 대단한 술법을 포기하고 스사노오와 무도로만 맞서 싸울 것이라고 했다. 정말로 멍청하기 그지없었다.그들의 예상대로 스사노오는 윤구주의 술법이 조금 두려웠다. 특히 조금 전 윤구주가 시전한 화련금안이 두려웠다.화련금안은 정신력으로 응집된 아주 무시무시한 술법이었다. 이 술법은 악귀를 상대하는데 아주 유용했고, 스사노오 본체가 바로 악귀였다. 천 년 동안 죽지 않은 스사노오도 따져보면 결국 영혼이었기 때문에 조금 전 윤구주가 화련금안을 시전했을 때 스사노오는 너무 두려워서 온몸을 벌벌 떨었다.하지만 다행히도 윤구주는 술법을 쓰지 않겠다고 했다.“하하하하, 화진의 건방진 놈아. 술법을 쓰지 않겠다고? 그렇다면 내가 오늘 단단히 혼쭐을 내주마!”스사노오는 미친 듯이 웃더니 다시금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스사노오의 강한 일격에도 윤구주는 약속을 지켰다. 그는 봉왕팔기를 쓰지 않고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눈을 빛냈다. 핏빛 도끼가 그에게서 1미터 정도 떨어져 있을 때, 윤구주가 갑자기 몸을 움직였다.그는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였고 그 순간 용의 울음소리가 그의 체내에서 들려왔다.그리고 윤구주는 주먹을 뻗었다.주먹이 닿기도 전에 권의가 먼저 도착했다.권의는 맷돌 아래
“세상에, 저 화진 놈이 스사노오님을 쓰러뜨린 거야? 이게 무슨...”주변에 살아있던 음양사들은 그 광경에 넋이 나갔다.심지어 치히로 신이치는 얼굴 근육이 심하게 떨렸다.어쩔 수가 없었다. 윤구주는 너무 강했다.스사노오는 자신이 본체를 드러내면 손쉽게 윤구주를 죽일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윤구주의 실력은 말도 안 될 정도로 강했다.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스사노오 또한 마찬가지였다.그는 바닥에 쓰러진 뒤 빠르게 일어났다.온몸에 짙은 음기를 두른 스사노오는 분노의 불길로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윤구주를 빤히 바라보았다.“인정하마. 넌 내가 천 년 동안 상대했던 사람 중 가장 강한 적수야. 하지만 잊은 건 아니겠지? 여긴 내 땅이고 내 구역이야! 이곳은 나의 원념으로 만들어진 곳이지. 이 신전 또한 내가 장악하고 있어. 그러니 네가 아무리 강해도 한 주먹에 날 죽일 수는 없어. 하하하하하!”스사노오는 우쭐한 얼굴로 크게 웃었다.그의 말은 사실이었다.이곳은 당시 그가 생매장당한 곳으로 그의 천 년 간의 원한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죽인 수많은 아이의 원혼이 있는 곳이었다.그러니 그의 영혼은 이곳에서 아주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불사의 상태에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었다.윤구주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한 주먹에 죽일 수 없다면 열 주먹은요? 백 주먹은요?”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전광석화와도 같은 속도로 빠르게 스사노오에게로 달려들었다.“크릉!”윤구주가 뛰어오르는 순간, 무시무시한 용의 울부짖음이 그의 체내에서 들려왔다.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구양진용기가 용 세 마리로 변했다. 용이 나타나자 윤구주는 스사노오를 향해 주먹을 연속 세 번 휘둘렀다.퍽퍽퍽!엄청난 힘이 스사노오의 도끼 위로 내려앉았다. 처음에는 막을 만했지만 뒤로 갈수록 윤구주의 주먹을 뻗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허공에서는 금빛 주먹이 스사노오를 공격하는 것만 보일 뿐이었다.윤구주의 금빛 주먹이 스사노오를 공격하는 걸 본
스사노오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그의 영혼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잠시 뒤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것 같았다.“죽지 않는다고요? 그렇다면 당신이 오늘 어떻게 죽는지 한 번 보죠!”윤구주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그 순간, 그는 두 손을 마주치더니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구용연체!”크릉...용이 울부짖는 소리가 그의 체내에서 들려왔다.소리가 총 아홉 번 났다.윤구주의 체내에서 총 아홉 번의 용 울음소리가 난 뒤, 아메 신전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하치카미 산조차 격렬히 뒤흔들리기 시작했다.맷돌만 한 크기의 바위들, 트럭만 한 크기의 바위들이 굴러떨어지면서 신전을 파괴했다.그리고 부성국의 음양사들도 바위에 깔렸다.수많은 바위가 산에서 굴러떨어져서 아메 신전에 참배하러 온 신도들을 공격했다.“구용!”윤구주는 훌쩍 뛰어올랐다. 눈부신 금빛과 함께 9마리 용이 윤구주의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9마리의 용이 나타나자 하치카미 산이 전부 용으로 뒤덮였다.“죽어!”윤구주가 마치 유성처럼 주먹을 휘두르자 금빛 용 9마리가 아주 거대한 금빛 주먹을 만들어냈다.그 주먹이 나타나는 순간 음양사들을 포함한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음양사들은 윤구주의 9마리 용이 나타나는 걸 본 뒤 몸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흘리다가 그대로 목숨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심지어 치히로 신이치마저 끊임없이 입에서 피를 토하고 있었다.너무도 강했다.그들의 내공으로는 윤구주의 이 파멸적인 공격을 도저히 막아낼 수가 없었다.귀청을 찢는 쿵 소리가 들려왔다.윤구주가 휘두른 주먹이 스사노오의 몸을 강타했다.천 년 가까이 존재한 스사노오는 윤구주의 주먹으로 인해 죽지 않던 그의 몸이 터질 줄은 몰랐다. 게다가 그의 영혼마저 연기처럼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천 년 가까이 모아온 원한이 윤구주의 주먹 대문에 서서히 사라지는 걸 본 스사노오는 완전히 겁에 질렸다.“안... 안 돼... 안 돼... 죽이지 마... 날 죽이지 마...”그는 두 손을 휘적이면서 무릎을 꿇고
스사노오가 죽었다.부성국의 천 년 된 귀신이 이렇게 윤구주의 손에 죽을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스사노오의 영혼이 재로 변하는 순간, 아메 신전 상공을 뒤덮었던 사악한 기운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다.어둠으로 가득 차 있던 하늘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성스러운 햇빛은 폐허가 된 신전을 비추었다.뒤이어 처절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신전 안에서 들려왔고, 곧 수많은 원혼이 신전 밖으로 빠져나갔다.그 원혼들은 과거 스사노오가 집어삼켰던 아이들의 영혼이었다.스사노오에게 삼켜진 만 명에 달하는 아이들의 영혼은 환생하지 못한 채로 영원히 그 신전에 갇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스사노오가 죽은 지금, 아이들의 영혼은 신전을 떠나 자유를 되찾았다.아이들의 영혼은 신전 밖으로 빠져나온 뒤 정갈하게 한 줄로 서서 기괴한 얼굴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그들의 눈빛을 보니 윤구주에게 고마워하는 것 같았다.윤구주가 그들을 구해주었으니 말이다.그러다 아이들의 영혼은 윤구주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윤구주는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가봐.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환생해서 잘 살 수 있길 바랄게.”만 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의 영혼은 윤구주의 말을 들은 뒤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아이들의 영혼이 떠난 뒤 쿵 소리와 함께 엄청난 굉음이 신전 중앙에서 들려왔다.신전 중앙으로부터 시작해서 균열이 생기더니 곧 신전 전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아메 신전뿐만 아니라 하치카미 산의 산꼭대기도 무너질 것 같은 징조를 보였다.조금 전의 전투에서 윤구주와 스사노오의 파괴력이 너무도 강했던 탓에 천 년 가까이 된 신전의 기반이 버티지 못해서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곧 산꼭대기까지 다 무너질 듯했다.신전과 산꼭대기가 무너질 것 같자 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렸다.“무너지려는 건가?”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하치카미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산 아래에는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신도들이 있었다.만약 무너진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윤구주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갑
치히로 신이치가 죽는 순간 또 한 번 쾅 소리가 들려왔다.하치카미 산의 산꼭대기가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그리고 수많은 거대한 바위가 산 아래로 굴러가기 시작했다.신전이 무너지자 하치카미 산꼭대기까지 전부 무너졌다.더욱 놀라운 것은 아직 산 위에 전 세계에서 관광하러 온, 무고한 사람들 수십만 명이 있다는 점이었다.거대한 바위가 굴러떨어진다면 오늘 사상자가 엄청 많이 나올 것이다.수많은 거대한 바위가 굴러떨어지려고 하자 윤구주는 팔을 움직였다. 그 순간 강한 현기가 두 개의 거대한 바위를 강타했다. 하지만 산사태를 어떻게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비록 윤구주가 이쪽은 막았다고 해도 수많은 거대한 바위들이 다른 쪽에서 굴러떨어지고 있었다.거대한 바위들이 굴러떨어지고 있는데 윤구주의 체내에서 엄청난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곧 눈부신 금색 빛줄기가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금색 빛줄기는 하치카미 산의 산꼭대기 상공을 금빛으로 물들였다. 윤구주는 두 손을 움직였고 두 개의 거대한 금빛 손이 하늘에 나타났다. 그 손은 마치 신의 손처럼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거대한 바위들을 내리쳤다. 엄청난 힘 때문에 바위들은 전부 인적 드문 산등성이 쪽으로 굴러떨어졌다.산등성이 쪽은 원시삼림이 있는 곳이라 바위가 떨어져도 사람이 죽을 리는 없었다.윤구주는 두 손바닥으로 수십만 명의 목숨을 구한 셈이었다.산 아래.산꼭대기가 무너질 때, 참배하러 온 수많은 여행객은 모두 겁에 질렸다.“아메 신전이 무너졌어... 세상에... 얼른 도망쳐!”윤구주는 비록 대부분의 거대한 바위들을 막아냈으나 그중 극소수는 여전히 사람들 쪽으로 굴러떨어지고 있었다.거대한 바위가 굴러떨어지자 미처 피하지 못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바위에 깔려서 고깃덩이가 돼버렸다.그리고 바위가 굴러떨어지고 있을 때, 사람들 사이에서 두 명의 대학생이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었다.자세히 보니 그들은 부성국에 여행 온 대학생 반서윤과 장윤형이었다.“서윤아, 얼른 도망쳐! 하치카미 산에 산사태가 일어났어
“장윤형...”장윤형이 떠나자 반서윤은 더 깊은 절망에 빠졌다.쿵쿵쿵.맷돌만 한 크기의 바위가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채 백 미터 고공에서부터 반서윤을 향해 떨어졌다.하늘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바위를 본 반서윤은 얼굴이 잿빛이 되었다. 그녀는 부성국에 여행을 왔다가 이곳에서 죽을 줄은 몰랐다.그녀가 절망한 얼굴로 눈을 감은 순간, 바위는 그녀를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반서윤은 자신이 바위에 깔려서 고깃덩이가 될 줄 알았는데 위기일발의 순간 쿵 소리와 함께 금색 빛줄기가 그녀의 미간에서 쏘아졌다. 그 빛줄기는 윤구주가 그녀의 미간에 심어뒀던 방어 술법이었다.금색 빛줄기는 보호막이 되어 반서윤의 몸을 감쌌다.맷돌만 한 크기의 바위는 쿵 소리를 내면서 금빛 보호막을 강타했다. 그러나 보호막은 멀쩡했고 오히려 바위가 충격으로 인해 부서졌다.자신이 틀림없이 죽을 거로 생각했던 반서윤은 조금 전 굉음을 듣고 겁에 질려서 눈을 감고 있었다.그러나 몇 초 뒤 주변이 점차 조용해졌고 그녀는 자신이 멀쩡함을 발견했다.반서윤이 겁에 질린 얼굴로 눈을 떴을 때 놀랍게도 그녀의 눈앞에는 그녀의 몸을 감싼 금빛 보호막이 있었다. 그 보호막은 장벽처럼 그녀를 보호하고 있었다.“나 살아있는 건가? 나 살아남았어?”눈이 휘둥그레진 반서윤은 금색 보호막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녀는 윤구주가 아까 그녀의 몸에 방어 술법을 걸었다고 한 말을 떠올렸다.“설마 정말 윤구주 씨가 한 건가?”금색 보호막을 본 반서윤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아메 신전이 파괴되고 하치카미 산이 무너졌다. 그리고 이 일로 부성국에는 큰 파문이 일었다.부성국 전체가 아메 신전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심지어 전 세계가 이 재앙을 뉴스로 냈다.같은 시각, 화진 강성.용인 빌리지 홀.“세상에, 부성국의 아메 신전이 파괴되고 산까지 무너졌다고...”그 말을 한 사람은 화진 암부의 지휘사 정태웅이었다.그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손에 든 태블릿을 바라보았다. 그는 세계 뉴스를 보면서 놀란 목소리로
“백경재 씨, 일단 기다려봐요. 제가 해외에 있는 우리 쪽 스파이들에게 부성국 상황이 어떠냐고 물어볼게요.”정태웅은 그렇게 말하더니 곧바로 위성 전화를 꺼내 비밀리에 어디론가 연락했다.그가 연락한 곳은 해외에 있는 암부 정보기관이었다.상대가 전화를 받자 정태웅은 서둘러 물었다. 정보기관에서 부성국의 최근 소식을 얘기해주자 정태웅의 살진 얼굴이 흥분으로 떨렸다.약 5분간 통화를 이어 나간 뒤 정태웅은 그제야 전화를 끊었다.“대단해! 우리 저하 진짜 대단해!”정태웅은 전화를 끊은 뒤 흥분에 겨워 그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말했다.아직 상황을 알지 못하는 백경재는 서둘러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정태웅 씨, 어떤 상황입니까?”“하하, 그거 알아요? 저하께서는 부성국에서 가장 유명한 아메 신전을 무너뜨렸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하루 사이에 7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기타가와 신사를 무너뜨렸어요. 심지어 수천 명의 사무라이들과 기타가와 참격으로 불리는 야나가와 류이치 가주를 죽였대요!”‘뭐?’정태웅의 말을 들은 백경재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세상에, 우리 저하께서 정말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고요?”“하하! 드디어 우리 저하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죠? 제가 보기엔 부성국의 그 빌어먹을 놈들이 잘난 척하다가 우리 저하의 심기를 건드린 게 틀림없어요. 쌤통이죠!”백경재는 그 말을 듣고 완전히 넋이 나갔다윤구주는 부성국에 간 지 3일도 되지 않았다.그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그러면 저하께서는 언제쯤 돌아오실까요?”정태웅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곧 돌아올 거예요. 우리 저하는 항상 일 처리가 깔끔하거든요. 기다려보자고요. 저하께서는 그 부성국 악귀의 음령을 손에 넣으시면 바로 돌아올 거예요.”윤구주가 이번에 부성국으로 간 이유가 그 막강한 악귀의 음령 때문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막강한 귀신의 음령을 손에 넣는다면 윤구주의 실력은 전성기 때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두 사람
“정태웅 지휘사님, 소채은 씨는요?”정태웅은 병원을 가리키며 말했다.“제 부하가 말하길 소채은 씨는 지금 응급 처치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뭐?’“응급 처치요?”주세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정태웅은 더 말하지 않고 곧바로 병원 안으로 뛰어 들어갔고, 주세호와 백경재는 그의 뒤를 따랐다.강성제일병원 응급실 밖.정태웅과 주세호, 백경재 등 사람들은 부하들을 데리고 빠르게 달려가다가 저 멀리 있는 소청하 부부를 보았다.천희수는 눈시울이 빨개진 채 눈물을 닦으면서 소청하의 오른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소청하는 근심 어린 표정으로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응급실 문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아저씨,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형수님은 어디 계신가요?”정태웅은 달려간 뒤 곧바로 소청하 부부에게 물었다.소청하는 ‘형수님’이라는 말을 듣고 당황했다. 그는 정태웅이 왜 갑자기 형수님을 찾는 건지 알지 못했다.옆에 있던 주세호가 서둘러 말했다.“소채은 씨를 말하는 겁니다.”소청하는 이해한 뒤 곧바로 말했다.“채은이는 지금 응급실에서 응급 처치를 받고 있어요.”응급 처치라는 말에 정태웅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아서 서둘러 물었다.“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형수님 최근에 괜찮지 않았습니까? 왜 갑자기 쓰러진 거죠?”“저... 저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어요. 채은이는 최근 들어 회사 일로 바빴거든요. 그런데 오늘 회사에서 퇴근하자마자 바로 문 앞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어요.”소청하가 말했다.정태웅은 그 말을 듣더니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불현듯 소채은의 체내에 있는 천시 고충이 떠올랐다.설마 그 천시 고충의 독이 발작한 걸까?다들 무척 걱정하고 있을 때 띡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열렸고 안에서 네다섯 명의 흰 가운을 입고 마스크를 쓴 의사와 간호사들이 나왔다.“의사 선생님, 제 딸은 어떻습니까?”의사들이 나오자마자 소청하 부부는 서둘러 그들에게 다가갔다.선두에 선 사람은 주치의였는데 마스크를 벗더니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단 한 걸음,그 한 걸음만 넘기면, 그는 곧 성급 바로 직전 경지에 이른다.그리고 그 마지막 문턱을 박살내는 순간 반쯤 성인이 된 경지, 반성급이다!지금 이 자리, 그 반성급 경지에 선 자는 바로 인마라고 불리는 무명이었다.“과연... 화진의 인황, 구주왕이라 불릴 자격은 있군. 하지만 너도 알겠지. 지금 네 수준으론 몸을 직접 이 판에 던지지 않는 이상 나랑 맞붙을 자격조차 없어. 네가 그 잘난 원신출체를 어떻게 하겠다는지 구경이나 해보자고. ”무명이 입꼬리를 비틀며 코웃음쳤다.팔기귀일에 도달한 윤구주의 전투력은 이미 황의 지경을 뛰어넘었다.하지만 무명과의 경지 차이는 여전히 너무 컸다.실력은 분명 엄청났지만 격이 다르였다.지금 상태로도 보통의 황자의 경지까지 초월한 상태지만 무명을 상대하긴 아직 한참 부족했다.심지어 무명이랑 싸울 실력은커녕 참마검조차 손에 제대로 못 잡는 게 현실이었다.“팔기로 부족하다면... 제구기는 어때? 구기:적선!”부우우우웅!윤구주의 온몸을 하얀 선기가 감싸는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웃고 있던 무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뭐라고? 이건 네 따위가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잖아! ”그 순간, 무명조차 숨을 삼켰다.이건 상식의 틀을 깨부수는 광경이었다.근대에 들어서면서 도에 대한 수련는 사실상 약해졌다.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세상에 흐르는 천지영기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봉신전쟁 당시, 상상을 초월하는 영기가 소모됐고 그 전쟁이 끝난 후 곤륜구역은 세상의 영기 90%를 신계에 봉인해버렸다.거기서 마음껏 영기를 탕진한 것도 모자라 바깥의 산수들까지 무분별하게 빨아들인 탓에세상의 영기는 걷잡을 수 없이 줄어들고 말았다.결국 세상은 고위 수련자가 태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그래서 화진에선 500년에 한 번 황자가 나올까 말까 할 정도이고 황자의 경지에 도달하는 건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었다.임정설이 황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처음부터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윤구주를 돕기 위해 왕
마기가 검종 제자들의 혼백에 침투하자 그 순간 제자들의 몸에서 시커먼 마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이를 목격한 장인 대진인은 망설임 없이 즉시 결단을 내렸다. 오염된 제자들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정화해 버린 것이다.“모든 제자들아, 입문 첫날 내가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서요산은 찬란한 성지 화진 정통의 계승지다. 정은 사악함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정은 사악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은 바로 서요산 제자들이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는 도의였다.입문과 동시에 깨달음을 얻은 그들은 언젠가 반드시 도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저 화진 정통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서였다.그 순간 진요탑 외곽에서는 7대 진인을 중심으로 전 종문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진요탑을 사수하고 있었다.하늘을 뒤덮을 듯한 마기의 기세는 점점 거세져 어느새 검종의 경내 전역을 삼켜버렸다.검종 제자들은 마기를 막아내면서도 동시에 진요탑의 결계를 유지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정도를 지키는 일은 그만큼 고통스럽고 힘든 투쟁이었다.산 아래 상황도 마찬가지로 치열했다.온갖 요괴와 귀신들이 들이닥치는 가운데 임정설은 황운을 등에 업고 이씨 가문의 국운을 모두 모아 홀로 수백만 마기를 막아서고 있었다.백호는 마인으로 완전히 변신해 광란의 충격 속으로 몸을 던졌고, 스스로 마를 품은 채 적진을 난도질했다.청해는 천뢰신술을 펼쳐 수만 개의 천뢰를 무기로 변환시켜 온갖 사도와 악귀를 쓸어내기 시작했다.그 무렵 진요탑 내부에서 풍무극의 기세는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구주야, 내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 내 500년 수련의 혼을 너에게 바치겠다."”풍무극의 준비는 이미 완료되었다.그는 미리 준비해 둔 제천 법기를 꺼냈고 전법이 발동되는 순간 그의 육신은 산산조각 부서졌다.그의 정기와 천지 정기를 모두 품은 찬란한 진신 영혼은 한 자루의 참마검으로 변해 윤구주 앞에 떠올랐다.“풍 종주...” 윤구주는 입술을 깨물었다.슬프고 아쉬
윤구주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국운의 기운이 그의 발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그가 진요탑의 문에 도달했을 무렵 모든 국운이 윤구주에게 집중되었다.윤구주의 주변으로는 천인신광이 펼쳐져 있었다.이 순간만큼은 그가 천지의 주재자 화진의 영겁을 관통한 유일한 존재였다.윤구주는 홀로 진요탑 안으로 들어섰다.겉보기에 거대한 산 같았던 진요탑의 내부는 참혹한 말세의 풍경이었다. 땅은 끝없이 펼쳐진 용암으로 뒤덮여 있었고 하늘에서는 강줄기가 거꾸로 흘러내리고 있었다.불과 물이 충돌할 때마다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거꾸로 흐르는 강물 위에 한 노인이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백발이 성성한 그 인물은 다름 아닌 서요산 검종의 종주였다.밖에서 보이던 강건한 중년의 모습은 단지 화신에 불과했으며, 본체는 수백 년 전부터 이 진요탑에서 마인을 봉인해 왔다.서요산 검종 종주는 극도로 지쳐 있었고 이제는 마지막 호흡으로 버티고 있었다.“드디어 왔구나.” 서요산 검종 종주는 허약한 전음으로 말을 건넸다.“오백 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종주님.” 윤구주는 고개를 숙였다.풍무극은 현 서요산의 종주이자 당대 최고의 영웅, 화진 제일 검으로 불리던 남자였다.원래는 풍속을 다루는 수련자로 젊은 시절엔 검 하나로 화진을 호령한 사내로 알려졌다.그의 검은 아무도 궤적을 볼 수 없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500년 전 마인이 봉인되고 서요산의 조사가 승천한 후, 풍무극은 서요산의 거자로서 종주의 자리를 이어받았다.그날 이후 진요탑에 몸을 묻고 마인과의 싸움을 500년간 지속해 왔다.풍을 다루던 그였지만 지속적인 봉인을 위해 익숙하지 않은 수속까지 수련하며 지금까지 버텨왔다.그가 마도에 빠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이었다.“그래도 괜찮다. 다행히 이 시대에 또다시 인황이 나왔으니. 화진은 연달아 두 명의 인황을 배출했다. 임정설이 인황에 등극한 지금 쇠락하던 이씨 가문의 국운이 다시 살아났다. 그가 천지의
마인이 출현하면 곤륜 구역조차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서요산 검종의 진요탑은 이미 오백 년 동안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이는 곧 그 마인이 오백 년 동안 진요탑 안에 봉인되어 있었음을 의미했다.“우리가 가진 유일한 이점은 저 마인이 지난 오백 년간 수련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 오백 년 동안 분명 무언가를 '깨달았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정도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도가 존재하는 법입니다. 만약 그가 이곳을 벗어나 다시 한번 돌파에 성공하여 진정한 성인의 경지에 오른다면…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 우리 종문의 선대 종주께서 이 마인을 직접 봉인하셨습니다. 하지만 선대 종주께서는 진요탑만으로는 그를 완전히 봉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아셨지요. 그래서 마침내 구천으로 비상하셔서 바깥 세계에 존재한다는 신기를 찾기 위해 떠나신 것입니다.”장인 대진인이 비밀을 털어놓자 임정설은 왜 그 옛날 서요산 검종을 창립한 선조가 갑자기 사라졌는지 이해했다.“구천을 비상했다고? 전설 속 그 이야기 설마 전부 사실이었단 말인가? 이 세상 위에 더 위대한 세계가 있다는 건가?” 임정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들은 바로는 성인이란 육지에서 신선이 된 자를 이르는 말이고 준성은 그보다 한 단계 아래 반쯤 신선이 된 존재라 하더군요. 우리보다 더 풍부한 영기의 세계가 과연 존재하는지는 이 몸 역시 감히 짐작할 수 없습니다.” 장인 대진인은 고개를 저었다.그때였다.진요탑이 거칠게 흔들렸고 모든 호법 제자의 얼굴이 딱딱해졌다.수련이 부족한 제자 몇몇은 그 자리에서 마기의 침식으로 피를 토했다.“모든 제자에게 고한다. 나와 함께 현문을 수호하라.” 장인 대진인이 친히 자리에 앉아 온 종문의 기운을 모아 마인을 억제하기 시작했다.마인은 일시적으로 제압되었지만 산 밖의 요괴들과 악귀들은 마기의 부름을 받아 사방팔방에서 서요산으로 몰려들고 있었다.임정설은 이제 자신이 이곳에 온 진짜 이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