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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7화

Author: 김원호
소채은이 알기론 화진의 구주천왕은 나이가 아주 많은 대영웅이었다.

윤구주처럼 젊고 잘생긴 청년일 수가 없었다.

그건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다.

소채은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자 윤구주는 답답했다.

“채은아, 정말로 내가 화진의 구주천왕이라는 걸 믿지 않는 거야?”

윤구주가 다시 말했다.

“당연히 안 믿지!”

그 말에 윤구주는 정말로 어이가 없었다.

그는 오늘 소채은에게 자신의 진짜 신분을 알려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소채은은 알려줬는데도 전혀 믿지 않았다.

윤구주가 서글퍼 하고 있을 때 소채은은 갑자기 윤구주의 팔에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바보야, 내가 말했었잖아. 네가 누구든 난 널 사랑할 거라고. 뭘 무서워하는 거야?”

윤구주는 그녀가 해주는 말을 들으면서 그녀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왜 굳이 채은이에게 신분을 밝히려고 한 걸까? 내가 화진의 구주천왕이 아니면 뭐 어때?’

그런 생각이 들자 윤구주는 더는 말을 이어 나가지 않았다. 그는 품 안에 그녀를 안은 채 뭇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날 밤 윤구주는 그렇게 줄곧 소채은과 함께 있었다.

그러다 날이 밝기 시작할 때가 되자 그제야 소채은을 데리고 윈워터힐스로 돌아갔다.

방문 앞에 도착하자 소청하 부부가 보였다.

“아빠, 엄마.”

부모님을 본 소채은은 서둘러 그들에게 인사했다.

그러나 소청하와 천희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갑자기 윤구주를 향해 무릎을 털썩 꿇었다.

“어? 아빠, 엄마. 뭐 하시는 거예요?”

부모님이 갑자기 윤구주의 앞에 무릎을 꿇자 소채은은 넋이 나갔다.

심지어 윤구주마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구주천왕을 뵙습니다! 저희가 안목이 없어서 저하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부디 넓은 아량으로 저희를 용서해 주십시오!”

소청하 부부는 윤구주를 향해 용서를 빌면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 광경에 소채은은 어리둥절해졌다.

“아빠, 엄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구주왕이라뇨?”

천희수는 소채은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바보야, 아직도 모르겠어? 구주는 우리 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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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주, 왕의 귀환   제948화

    다음날, 윤구주는 아침 일찍 소채은의 방문 앞에 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채은은 여전히 자신을 방 안에 가둬놓고 있었다.윤구주는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다가 거실로 나왔다.거실로 나오자마자 정태웅이 문 앞에 나타났다.“저하! 형수님 이제 저하의 신분을 알게 된 거죠? 아주 들떠 하고 기뻐하지 않으셨나요?”윤구주가 말했다.“넌 그냥 입 다물고 있어.”“네? 왜 그러세요? 형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셨나요?”정태웅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그는 세상의 그 어떤 여자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천하무적의 왕인 걸 알게 되면 기뻐할 거로 생각했다.“기뻐하긴. 채은이는 아직도 방 안에서 나오지 않고 있어. 내 신분을 받아들이기가 힘든가 봐.”윤구주는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정말요? 형수님은 기뻐서 환호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방 안에서 나오지 않는대요?”“그게 채은이가 다른 여자와 다른 점이 아닐까?”정태웅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휴, 여자 마음은 정말 모르겠네요.”“됐어. 이 일은 그만 얘기하고 현수와 창용 씨는?”윤구주는 자리에 앉은 뒤 말했다.정태웅이 말했다.“아까 밖에 나갔어요. 지금 불러올게요.”“그래.”잠시 뒤, 정태웅이 천현수와 박창용을 데리고 거실로 왔다. 윤구주를 본 그들은 곧바로 깍듯이 말했다.“저하!”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물었다.“현수야, 현재 암부원들 전부 연락이 닿지 않는 거야?”“네. 국방부는 저희를 공격하면서 암부의 모든 통신 수단을 마비시켰어요.”그 말을 듣자 윤구주의 얼굴에 살기가 드러났다.한때 윤구주의 친위대였던 그들이, 화진의 정보기관이었던 암부가 한 명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니.“창용 씨, 국방부의 장군들과 고위직 지휘관들 모두 문씨 일가 편에 선 건가?”윤구주는 박창용을 바라보았다.창용 부대의 총사령관인 박창용은 질문을 받고 서둘러 대답했다.“제가 알기론 대부분이 문씨 일가 편에 섰습니다. 그리고 저항한 사람들은 비밀리에 처형당했습니다.”“그런 일이 있다고?”

  • 구주, 왕의 귀환   제949화

    “세가, 종문, 국방부, 문벌, 4대 서열. 돌아가면 내가 전부 후회하게 해주겠어!”...소채은은 윤구주가 천하를 뒤흔든 구주천왕이라는 걸 알게 된 뒤로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그녀는 도저히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구주왕은 화진 백성들 마음속의 신화나 전설 같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그런데 그 신화가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남자라니.다른 사람이었어도 당황스러웠을 것이다.“채은아,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자 화진의 왕이야. 그런데 왜 전혀 기뻐하지 않는 거야?”방 안에서 소청하와 천희수는 멍한 표정의 딸을 바라보다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그래, 채은아. 구주는 우리 화진의 신이야. 네가 구주를 만난 건 우리 소씨 가문의 엄청난 영광이자 복이라고!”소청하도 말했다.그러나 소채은은 여전히 침묵하며 넋을 놓고 있었다.그녀는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아빠, 엄마. 그만 말해요. 사실 전 기쁘지 않은 게 아니에요. 전 그저... 그저 구주가 우리 화진의 신화와도 같은 존재, 구주왕일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해서 그러는 것뿐이에요.”소청하는 웃으며 말했다.“바보야, 그건 우리 집안이 운이 좋다는 걸 증명하는 거야.”“맞아, 맞아. 예전에는 내가 안목이 없어서 구주를 얕봤어. 그런데 지금 보니 정말 그러지 말아야 했어.”천희수는 후회하며 말했다.“하지만 지금은 잘 됐지. 우리 딸은 천하무적의 구주왕과 만나고 있으니 우리 소씨 일가는 평생 영광을 누리게 될 거야. 아니, 앞으로 대대로 영광을 누리게 될 거야.”부모님의 말씀을 들은 소채은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아빠, 엄마. 구주가 정말로 우리 화진의 구주왕이라면... 저랑 구주가 만나는 건, 제게 너무 과분한 일 아닐까요?”소채은은 갑자기 예쁘장한 얼굴을 들고 말했다.‘응?’“그게 무슨 말이야?”천희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예전에 그러셨잖아요. 결혼하려면 집안이 비슷해야 한다고. 그런데 아빠, 엄마도 보셨다시피 구주는... 우리 화진의 구주

  • 구주, 왕의 귀환   제950화

    점심때가 되자 윤구주는 소채은을 보러 왔다.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소청하 부부가 보였다.“아버님, 어머님. 채은이 안에 있나요?”소청하는 서둘러 대답했다.“그래.”“그러면 저 들어가 볼게요.”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방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그런데 그가 문을 열기 직전, 소청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구주야... 너 혹시 우리를 원망하니?”“원망이요?”윤구주는 당황했다.“그래. 우리가 예전에 어리석고 안목이 없어서 널 무시했었잖아. 그래서...”천희수는 용기를 내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구주야, 우리를 원망해도 괜찮아. 우리를 때려도 좋고 욕해도 좋아. 하지만 절대 채은이를 힘들게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채은이는 진심으로 널 사랑하니까!”천희수가 말했다.두 사람의 말을 들은 윤구주는 말문이 막혔다.“아버님, 어머님. 그런 생각하지 마세요. 전 단 한 번도 두 분을 원망한 적이 없어요.”“정말?”천희수가 말했다.“그럼요.”“구주야, 고마워. 예전에는 우리가 어리석었어. 우리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어떤 상황이 생기든 절대 우리 채은이를 원망하지는 말아 줘. 너희 지금처럼 잘 만나기까지 쉽지 않았잖아. 만약 우리 둘 때문에 너희 사이가 멀어진다면 우리가 너무 미안할 것 같아서 그래.”천희수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윤구주는 똑똑했기에 그들의 말을 듣고 대충 그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그는 웃으며 말했다.“아버님, 어머님. 그런 생각하지 않으셔도 돼요. 전 단 한 번도 제 신분 때문에 누군가를 싫어한 적이 없어요. 게다가 전 채은이를 무척 사랑하는걸요.”그 말을 듣자 소청하 부부는 그제야 마음이 한결 놓였다.“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우리도 마음이 놓인다.”윤구주는 소청하 부부와 간단히 대화를 나눈 뒤 문을 열고 소채은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방 안에서 소채은은 혼자 멍하니 창가 옆에 앉아 있었다.미풍이 불어와 그녀의 아름다운 뺨을 쓸었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다.“채은아,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윤구주는

  • 구주, 왕의 귀환   제951화

    윤구주가 손을 뻗자마자 소채은은 감전되기라도 한 듯 황급히 몸을 움츠렸다.윤구주는 무서워하는 그녀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소채은은 몸을 움츠리고 말했다.“미안해. 지금은 너무 충격이 커서 당장은 받아들이기 힘들어.”“내 신분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거야? 아니면 그냥 나라는 사람을 받아들이기 힘든 거야?”소채은은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나도 모르겠어. 그냥 내가 지금의 너에게는 안 어울리는 것 같아.”“바보야,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윤구주는 그 말을 듣고 서둘러 말했다.“진짜야. 넌 화진의 왕이지만 난 그냥 평범한 여자일 뿐이잖아. 내가 어떻게 너처럼 대단한 영웅과 어울리겠어?”소채은이 말했다.“채은아, 이러지 마. 네가 그랬잖아. 내가 예전에 누구였든 우리 둘이 만나는 것엔 영향이 없을 거라고 말이야.”“그... 그거랑은 달라. 난 네가 예전에 좀 남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 네가 우리 화진의 왕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고.”소채은의 말은 사실이었다.구주왕은 화진의 영웅이었다.그는 한때 신화였고 전설이었다.그런데 그런 신화 같은 인물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애인이라는데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채은아, 이러지 마. 우리 지금처럼 만나는 거 쉽지 않았잖아. 난 내 신분 때문에 우리 사이에 벽이 생기는 걸 원하지 않아.”윤구주는 중얼거리면서 말한 뒤 소채은의 떨리는 손을 살짝 잡았다.“채은아, 내가 그랬었잖아.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걸 다 너에게 주겠다고. 이젠 그 약속을 지키고 싶어. 지금부터 넌 내 여자야. 평생토록 말이야.”윤구주는 애절하게 말한 뒤 소채은을 품에 안았다.품 안의 소채은은 여전히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그녀는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그녀조차 믿기 어려운 그런 꿈을 꾸는 것 같았다.‘내가 구주왕의 여자라고?’그건 수많은 여자가 꿈에도 바라던 일이었다. 그리고 윤구주는 화진의 수많은 소녀들이 사랑하는 엄청난 영웅이었다.그런데 그녀가 구주왕의 여자가 되었다.이 순간, 소채은

  • 구주, 왕의 귀환   제952화

    소채은은 강제로 하려는 듯한 기세로 달려들었다.소채은이 먼저 적극적으로 리드했다.윤구주를 안은 소채은은 호흡이 눈에 띄게 가빠지기 시작했다.소채은의 흰 다리가 윤구주의 허리에 감겼다. 그녀는 마치 뱀처럼 윤구주의 몸 위에 앉았다.“채은아, 정말이야?”윤구주는 소채은이 적극적으로 움직이자 참지 못하고 물었다.소채은은 짧게 대답했다. 곧 그녀의 어깨에서 끈이 흘러내렸다.옥처럼 흰 그녀의 어깨에서 소녀의 체향이 느껴졌다.게다가 소채은은 눈빛이 매혹적이었고 옅은 향기도 났다. 그래서 참기가 힘들었다.그렇게 방 안에서 두 사람은 뜨겁게 불타올랐다.방 밖에서는 소청하 부부가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그들은 바보 같은 소채은이 정말로 구주왕을 거절할까 봐 걱정되었다. 만약 구주왕을 거절한다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그런데 두 사람은 곧 이상함을 느꼈다.방안에서 들려오는 야릇한 목소리와 가쁜 숨소리는 아주 이상하게 들렸다.“여보... 우리 딸 구주랑 뭐 하는 거래요? 우리 딸 이상한 소리를 내는데요?”이상함을 감지한 천희수는 서둘러 소청하에게 말했다.소청하는 문에 귀를 붙였다가 천희수를 끌고 가면서 히죽 웃으며 말했다.“바보 같긴, 눈치 못 챈 거야?”“네? 뭐가요?”천희수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소청하는 천희수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고 천희수는 곧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뭐라고요? 진짜요? 우리 딸이 구주랑... 그런 일을 하고 있다고요?”“그게 아니면 뭐겠어?”소청하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하지만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관계를 가지면 우리 딸이 너무 손해잖아요!”천희수가 말했다.“왜 이렇게 바보 같아? 화진의 구주왕과 하는 건데 우리 딸이 손해 볼 게 뭐가 있어? 잊지 마. 구주는 화진의 구주왕이야!”그 말에 천희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윤구주가 구주천왕이라는 걸 떠올린 천희수는 순간 자기가 어리석게 느껴졌다.이 세상에 구주왕을 만나고 싶어 하는 여자가 얼마나 많겠는가?황실도, 10개국의 공주들

  • 구주, 왕의 귀환   제953화

    윤구주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따지고 보면 윤구주에게 소청하와 천희수는 장인어른, 장모님이었다. 그런데 윤구주와 소채은이 관계를 가졌다는 걸 두 사람이 소문냈다.현재 윈워터힐스에 있는 사람들은 윤구주와 소채은이 관계를 가졌다는 걸 전부 알게 되었다.윤구주가 조금 불쾌해하는 것 같자 옆에 있던 연규비가 앞으로 나서면서 웃으며 말했다.“구주야, 두 분을 탓하지 마. 내 생각엔 두 분 다 너무 기쁘셔서 얘기한 걸 거야.”윤구주가 소청하와 천희수의 속셈을 모를 리가 없었다.하지만 그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뒤이어 윤구주는 천현수와 박창용에게 서울 일을 조사해 보라고 한 뒤 소채은과 함께 있었다.현재 윤구주는 전성기 실력을 회복했다.그러니 이제 속세로 나와야 했다.그날 점심, 천현수는 부랴부랴 달려왔다. 그는 윤구주를 본 뒤 곧바로 말했다.“저하, 조사해 냈습니다! 규현 형님은 정말로 서울 의수 감옥에 있었어요. 저희 지금 출발합니까?”민규현이 잡혀간 뒤로 천현수는 줄곧 걱정했다.그런데 민규현이 서울의 의수 감옥에 갇혀 있다는 걸 알게 되자 빨리 그를 구하러 가고 싶었다.“서울에 가야 하긴 해. 현수야, 가서 준비해. 난 채은이한테 얘기하고 올게.”천현수는 윤구주의 뜻을 이해하고 곧바로 말했다.“네!”부성국에서 돌아온 뒤 윤구주는 소채은과 2, 3일밖에 함께 있지 못했다.그런데 갑자기 서울에 가야 했다. 만약 소채은에게 이 일을 얘기한다면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어쩔 수가 없었다.생사를 함께했던 형제가 위험한 상황인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게다가 민규현을 제외하고도 과거 그와 가장 가까운 사이였던 청룡도 있었다.그래서 윤구주는 반드시 서울로 가서 청룡에게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아봐야 했다.소채은의 방에 도착해 보니 그녀는 연규비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윤구주가 오자 소채은은 미소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구주야, 왔어?”윤구주는 짧게 대답했다.“먼저 얘기 나누고 있어. 난 먼저 가볼게.”연규비는

  • 구주, 왕의 귀환   제954화

    “응? 왜인지는 묻지 않는 거야?”윤구주는 소채은의 태도에 호기심이 생겼다.소채은은 윤구주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바보야, 아까 규비 씨가 나한테 얘기해줬어. 너랑 아주 가까운 사이였던 네 형제에게 문제가 생겼고 반드시 네가 그들을 구하러 가야 한다고 말이야. 난 모두 이해할 수 있어!”윤구주는 그 말을 듣고 곧바로 깨달았다.연규비가 미리 소채은에게 얘기를 해준 것이다.“그래도 미안해. 또 너와 함께 있어 주지 못해서.”윤구주는 고개를 돌려 그윽한 눈빛으로 소채은을 바라보았다.소채은은 고개를 저었다.“넌 화진의 구주왕이잖아. 바쁜 건 당연하지. 그러니까 날 걱정할 필요는 없어. 난 규비 씨한테 얘기했어. 난 앞으로 너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줄 거라고.”소채은이 자신을 이해해 주자 윤구주는 그녀를 꼭 껴안았다.뒤이어 윤구주는 서울로 갈 준비를 했다.거실 안.윤구주는 서울로 가기로 결정한 뒤 사람들을 전부 소집했다.정태웅, 천현수, 원성일, 연규비, 박창용, 남궁서준, 그리고 백경재까지 말이다.다들 윤구주가 서울로 갈 준비를 한다는 걸 알고 본인들도 한바탕 싸울 준비를 했다.그러나 윤구주의 이어진 말에 그들은 곧 실망스러워했다.이번에 서울에는 천현수와 정태웅만을 데려갈 것이고 남은 이들은 전부 강성에 머무르라고 했기 때문이다.그 말에 박창용이 제일 처음 나섰다.“저하, 저도 서울에 갈 수 없단 말입니까?”“창용 씨는 갈 수 없어.”윤구주가 말했다.“무엇 때문입니까?”박창용은 원망스러운 얼굴이었다.“창용 씨는 창용 부대의 총사령관이자 우리 화진 10대 군사 구역 중 하나잖아. 창용 씨가 움직인다면 국방부에서는 분명 알아차릴 거야. 그렇게 되면 창용 씨는 반란하려고 했다는 낙인이 찍히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우리 화진에 어떠한 재앙이 찾아올지 예상이 가지?”그의 말에 박창용은 침묵했다.“저하 말씀이 맞습니다. 박 사령관님은 강성에 남으시죠.”천현수도 그를 설득했다.박창용은 깊게 한숨을 내쉬면서 내키지 않는 표

  • 구주, 왕의 귀환   제955화

    다들 떠난 뒤 거실에는 여신처럼 아름다운 연규비와 윤구주만 남았다.“구주야, 내게 남으라고 한 건 채은 씨에 관해 묻고 싶어서지?”연규비는 아주 똑똑했다. 윤구주가 남으라고 하자 연규비는 예쁜 눈을 들어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정말 너에게는 뭘 숨길 수가 없네.”윤구주는 인정했다.“솔직히 얘기할게. 널 남긴 이유는 너와 채은이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야.”연규비는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너에 관한 일은 채은 씨에게 대충 설명해 줬으니까.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고마워. 그리고 너에게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윤구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화폭을 하나 꺼냈다.그것은 아주 오래된 듯한 화폭이었는데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그걸 꺼내자 연규비는 예쁜 눈을 반짝이면서 궁금한 듯 고개를 돌렸다.“이건 뭐야?”“이건 무도 비법이야. 이름은 접무구변이지. 이건 여자에게 적합한 공법 비법이야.윤구주는 들고 있던 화폭을 연규비에게 건네면서 말했다.“접무구변?”연규비는 화폭을 쓱 훑어보더니 뭔가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이 공법을 채은 씨에게 가르쳐주길 바라는 거야?”연규비는 예쁜 눈을 들어 의아한 표정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고 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너도 알다시피 채은이는 평범한 사람이야. 그래서 난 반드시 채은이를 변화시켜야 해.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주 길 테니까 말이야. 채은이가 이 접무구변을 수련한다면 대가 9품이 안 되는 사람들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야.”윤구주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사실 윤구주는 줄곧 소채은을 신경 쓰고 있었다.그는 화진의 왕이지만 소채은은 그저 평범한 여자였다.윤구주의 말대로 만약 두 사람이 만남을 이어간다면 앞으로 아주 긴 길을 걸어야 했다.그러니 소채은은 반드시 수련하여 실력을 높여야 했다.그래야만 윤구주의 곁에 진정으로 함께 설 수 있고 동시에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연규비는 윤구주의 마음을 깨닫고 말했다.“넌 정말 채은 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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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주, 왕의 귀환   제2028화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 구주, 왕의 귀환   제2027화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 구주, 왕의 귀환   제2026화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 구주, 왕의 귀환   제2025화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 구주, 왕의 귀환   제2024화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

  • 구주, 왕의 귀환   제2023화

    백호는 아직도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어느덧 이백오십 계단까지 올라왔다. 이 단계부터는 실체화된 술법이 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바람, 불 번개와 같은 속성의 영기가 점점 강해졌다. 여기서부터는 육신 횡련의 수련자는 강력한 체질로 버티고 술도 재능이 뛰어난 수련자는 천지 영기를 다루는 능력으로 버텨야 했다. 한마디로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갈리는 구간이었다. 어느 한 분야라도 특출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백호는 술도에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강인한 육체 하나로 견디고 있었다.웅!성수의 피가 진동하며 백호의 몸을 지탱했다. 각종 속성의 영기가 몰아쳤지만 백호는 성수혈의 힘을 빌려 억지로 앞으로 나아갔다.수련자에게 있어서 성수의 혈맥이나 법보 등은 모두 신체 외적인 재능으로 간주하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이 꼼수나 편법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천 가지 변화와 만 가지 신통력이 있어도 결국 만법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법기든 혈맥이든 이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천지 영기를 이용한 술법도 결국은 그 힘을 감당할 수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감당하지 못하면 반드시 반작용을 맞게 된다. 따라서 수련의 길에는 애초에 편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성수 혈맥 같은 천지의 보물은 보통 사람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윤구주의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이를 감당하는 건 백호 자신이었다. 성수 혈맥의 힘을 온전히 감당하며 백호는 결국 삼백 계단까지 올라섰다.계단의 꼭대기 근처에는 이미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이 여럿 서 있었다. 서요산 검종은 근대에 들어 삼백 계단을 넘는 인재가 드물었다. 최근 백 년 동안 삼백 계단을 넘은 사람이 고작 열 명 남짓이었고 그중 대부분이 삼백여 계단에서 멈췄다. 그런데 지금 백호는 삼백이십 계단까지 올라선 것이다. 이 정도면 서요산 검종 전체가 떠들썩해질 만한 성과였다.이런 제자가 나타난다면 종문 전체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서요산의 진인들까

  • 구주, 왕의 귀환   제2022화

    “한 사람의 품성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그렇게 많은 수련자를 키워낸다면 결국 천하의 마인을 직접 만들어 내는 꼴이 아니겠어?”청현이 바로 그 실패한 예다. 서요산 검종 종주가 청현의 천재성을 아까워한 나머지 그의 인성을 무시하고 양성한 끝에 결국 역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그럼 저하 서요산에 입문한 무술 무인들은 평균적으로 몇 계단까지 오르는지 아십니까?” 백호가 호기심에 물었다. 윤구주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무술 무인의 정확한 데이터는 모르지만 검종 종주와 잡담할 때 들어보니 검종 제자들의 수준이 갈수록 떨어져서 천 년 전만 해도 평균 삼백 계단 정도였는데 요즘엔 백 계단도 못 오른다고 하더구나. 가끔 삼백 계단을 오르는 자라도 나오면 검종 전체가 몇 년은 떠들썩할 정도라고 했어.”“구백구십구 계단까지 있는 시험인데 천 년 전 전성기에도 겨우 삼백 계단이요?” 백호는 입술을 삐죽이며 서요산 검종의 수준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때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야?” 윤구주는 흥미롭게 백호를 바라보았다. 백호는 당장이라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윤구주의 허락을 구한 뒤 바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계단 두 계단... 오십 계단까지는 아무 어려움도 없었다. 백호는 오십 계단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서요산 검종이 별것 아니라며 놀려댔다. 하지만 육십 계단쯤 올랐을 때 처음으로 압력을 느꼈다. 마치 몸 위에 작은 차 한 대가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백호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백 계단에 도달하자 압력이 갑자기 커졌다. 등에 작은 승용차 대신 소형 트럭이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지만 아직 백호의 한계에도 가지 못했다.“근래 사람들의 평균이 백 계단도 못 넘는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예전의 무인 횡련은 황제도 오를 수 있었지만 요즘 무인 횡련은 죽어라 노력해도 소형 트럭 하나 못 버티는 수준이니 말입니다.”백호는 농담을 던지며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

  • 구주, 왕의 귀환   제2021화

    전에 임정설은 구오 지존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나라를 위해 힘쓰며 수모를 견뎌내고 살아남으려 했다.하지만 이제 황제가 된 그는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그 탓에 이번 관문 앞에서 그는 망설였다.살아 있는 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관문이었다.죽음을 마음에 품은 자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관문이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청해만이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생각했다.‘황제가 되면 곤륜 구역에서 최고 경지에 도달하는 건데. 기뻐해도 모자랄 판에 왜 죽음을 택하려는 거지?’“저하, 국주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듯합니다. 저하도 사랑하던 이에게 배신당했어도 결국 극복해 나갔잖습니까.”백호도 이해하지 못했다.그는 여전히 국주보다는 왕이 더 낫다고 여겼다.“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느냐.” 윤구주가 단호하게 말했다.백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는 어리숙하고 말솜씨도 없기에 생각나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내가 문아름에게 배신당한 건 억울한 일이지만 나는 그녀에게 잘못한 게 없다. 오히려 그녀가 날 배신한 거다. 하지만 국주는 그 반대였지. 그가 그녀를 저버린 거야. 정이 깊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지혜가 지나치면 오히려 상처를 입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쓰라린 후회는 가진 뒤 잃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생사를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윤구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만약 소채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도 제정신이 아닐 거라고 느꼈다.“그럼 복수하면 되지 않나요?” 백호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이때 청해가 눈치를 채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상대가 너무 강해서 못 이기는 거지. 황제에 오르기 전까진 제대로 맞붙을 힘도 안 돼. 오르고 나서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 못 하고.”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그 말이 맞았다.“그럼 우리가 국주님 대신 복수해 드리면 되잖아요? 국주님은 제 왕이기도 하지만 제 윗사람이기도 하잖아요.”백호가 고개를 갸웃했다.“하하! 만약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솔직하다면 이런

  • 구주, 왕의 귀환   제2020화

    인간이 나쁜 짓을 거듭해 양심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윤구주를 따라 명예심이 생기면서 죄책감도 느끼게 된 청해에게 이 원한의 전법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물론 곤륜역 한 신전의 부전주로서 정신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사람은 이 원한의 전법도 가볍게 넘어섰다.이때 전법에 관심을 가졌던 임정설이 무언가를 눈치챘다.“구주야, 서요산의 전법은 우연히 들어온 자를 쫓아내는 동시에 수련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어. 서요산은 의지력이 확고한 자들만 끌어들인다는 것을 미리 들어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서요산이 제자를 선발하는 방식인가 보구나.”“그렇습니다. 매년 화진 무도계 사람들이 서요산에 찾아오지만 성공한 자는 극히 드뭅니다. 실패자들 중 십중팔구는 산기슭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어떤 문턱은 넘지 않는 것이 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죠. 현실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법이니까요. 이 관문을 넘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세 번째 전법이 나타났다.첫 번째와 두 번째 전법은 이곳에 들어온 이들을 돌려보내려고 만든 것이지만 세 번째 전법은 달랐다. 이 전법은 살기로 가득 찬 죽음의 전법이었다.평범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곳까지 온 자들도 앞길의 위험을 보고 함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의 길을 보고도 들어가는 자는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자라서 그런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덕을 쌓는 일이었다.하지만 무도로 도를 깨우치려는 수련자라면 이 관문을 넘기 위해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버텨내야만 수도의 길에 들 수 있고 실패하면 그 후과를 받아들여야 한다.전법 안은 살기로 가득했다. 생기와 영기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할지라도 살기와 죽음의 기운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진법 내부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도계에 이름을 날렸던 강자들의 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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