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그럼 출발하죠!”제명도, SKP 통신사.오후 한시 반, 통신사가 가장 바쁜 시간이었다. 모든 직원들이 정신없이 업무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때, 사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깔끔한 정장을 입고 책상 위에 있는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모니터 안에 담겨 있는 건 얼마전 황씨 재단에 있었던 폭발 사건에 대한 보고였다. 남자의 시선은 한 인물이 건물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에 고정되어 있었다.“이건… 틀림없어! 전주님이야!”중년 남자는 단번에 그 인물의 정체를 눈치챘다. 비록 사진이 모호하긴 했지만, 틀림없이 염구준의 실루엣이었다. 남자는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비록 어렸을 적 고려에서 자라긴 했지만, 남자는 뼛속까지 용하국 사람이었다. 고려국에도 전신전 인원이 배치되어 있었으며, SKP 통신사 사장은 그저 표면적인 신분에 불과했다.“전주님이 저기서 사고를 당한 게 분명해!”유태은은 하얗게 질린 낯빛으로 중얼거렸다. 화면속 속 찍힌 염구준은 안색이 창백할 뿐만 아니라, 부상을 입었는지 몸에 기력이 없어 보였다. 전신전 전주의 부상이라니, 용하국을 뒤흔들어 놓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당장 전신전 본부에 보고를 올려야겠다고 그는 생각했다.유태은은 다시 한번 컴퓨터 화면을 확인한 뒤, 지체없이 핸드폰을 꺼내 암호화된 채널로 국제 전화를 걸려 했다. 하지만 번호를 누르려던 순간, 사무실 밖에서 여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미리 약속을 잡은 건 아니지만, 대표님 친구라고 하시는데 어떻게 할까요?”그 말을 들은 유태은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지금 어디에 있는데?”그러자 문 너머 여지서의 목소리가 되돌아왔다.“일층 응접실에 있습니다. 경비원들이 그들을 지키고 있는데, 나쁜 사람들 같지는 않다고 합니다.”“알겠어. 가서 일 봐.”유태은은 그 말을 끝으로 모니터 화면을 전화해 응접실 CCTV화면을 볼 수 있는 채널로 바꿨다. 비서의 말 대로 응접실엔 손님으로 보이는 인물 세명이
약 이분 뒤, 비서와 함께 염구준과 손가을, 그리고 한채인이 대표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염 선생님!”비서가 문을 닫고 나가자, 유태은이 매우 열정적인 태도로 염구준을 맞이했다. 물론 표면적으론 절대로 그가 전신전 전주라는 걸 티 내지 않을 채.“정말 오랜만입니다. 염 선생님은 정말 여전히 멋지십니다.”염구준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손가을과 한채인을 이끌고 소파에 앉았다.“이야기가 길어질 텐데, 앉아서 얘기하시죠.”갑작스러운 방문에 유태은이 앉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뚝딱거리고 있자, 염구준이 가벼운 미소와 함께 손짓했다. 그제야 유태은은 공손하게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오늘 온 건, 황씨 재단 때문입니다.”염구준이 유태은의 눈을 마주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황씨 재단 회장 황유길이 신무 옥패 모조품을 가지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어요. 혹시 이 부분에 대해 들은 바가 없나요?”그러자 유태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들은 바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황씨 재단은 황유길이 약 20년전에 설립한 회사로 고려국에서는 꽤 잘나가는 기업 중 하나였다. 고려국엔 약 1600년이라는 매우 유서 깊은 민간 조직이 존재했는데, 그게 바로 화련회였다. 황유길은 매년 막대한 자금을 기부의 명목으로 이 조직에 후원해왔으며, 또한 매년마다 모델이나 삼류 여배우들을 뇌물로 조직 수뇌부들에게 바치고 있다는 얘기도 있었다. 황유길이 고려국에서 빠르게 성장하며 명성을 떨칠 수 있었던 데는 이 조직의 영향이 컸다.“염 선생님, 일단 제가 알고 있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신무 옥패 모조품은 확실히 황씨 성을 가진 인물이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돌긴 했지만, 황씨 재단의 황유길과는 다른 인물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한참 기억을 더듬던 유태은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답했다.“그러나 저도 이 인물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그러자 염구준이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무 옥패를 찾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보다는 화련
“날 매장하려고? 웃기지 마!”황씨 재단 건물, 황유길이 새롭게 리모델링 된 사무실에 당당히 앉아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오만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뒤엔 화련회가 있었다!사무실 소파엔 나이가 지긋한 노인 두 명이 앉아 있었는데, 한 명은 남자 한 명은 여자였다. 남자의 얼굴엔 주름이 자글자글했지만, 눈빛만큼은 푸른빛을 띄는 것이 아주 섬뜩했다. 반면, 여자는 전통적인 고려 의복을 입고 있었는데, 머리 또한 옷차림과 어울리는 상투머리를 하고 있었다. 여자는 지루한 표정으로 손톱을 만지작거리며 냉소적인 표정으로 TV에 나오는 뉴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록 두 사람의 겉모습은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가슴 언저리에 막 피어오르는 듯한 금색 연꽃이 수놓아져 있었다. 이들은 바로 오랜 역사를 지닌 화련회의 고위 간부들이었다. 약 1600년을 웃도는 오랜 역사를 가진 화련회는 뿌리가 매우 깊었으며 일반인은 상상치도 못하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황유길이 이토록 자신만만할 수 있는 이유였다. 두 사람은 평온하게 앉아 있었지만, 풍기는 기백은 마치 거대한 산처럼 묵직했다.“녀석들아, 얼른 차 준비시켜!”황유길이 아래 부하들에게 손짓하며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이 두 분이 지키고 있는 이상, 아무리 공격력이라도 날 건드릴 수 없을 것이야!”그러자 방탄 유리를 장착한 고급 세단 차 여섯 대가 황씨 재단 건물 앞으로 줄을 섰다. 오늘이 바로 황유길이 법정에 출정하는 날이었다.한편, SKP 통신사, 대표 사무실.순식간에 하루가 지나갔다. 손가을과 한채인은 자리에 없었고 염구준만이 전신전 비밀 요원들과 함께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황유길이 재판장으로 들어가고 약 두시간 반 정도가 지났을까, 그가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그의 곁에는 정체불명의 노인 두 명이 따르고 있었는데,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곧이어 카메라 화면이 판사들 쪽으로 전환되었는데, 모두 무언가에 취한 듯 멍한 얼굴이었다. “
유태은이 놀라움에 몸을 떨었다.“전주님, 그 뜻은….”“제가 직접 처리할게요!”염구준이 주먹을 쥔 채 자리에 일어나며 위엄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선포했다. “일방적인 방법으로 처리할 수 없다면, 편법을 쓸 수밖에. 판사들을 조종하는데 성공했을지 몰라도, 나까진 어림없지! 안영 도로는 인적이 드물어 손쓰기 딱 좋아요. 황유실은 반드시 자신의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예요!”유태은은 염구준이 내뿜는 기운 때문에 몸이 땀으로 축축 해졌다. 과연 전신전 전주답게 과감하고도 놀라운 선택이었다. 확실히 안영 도로는 누군가를 처리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주변엔 큰 교차로 하나만 있을 뿐, 건물이라고는 사람이 살지 않는 오래된 허름한 아파트 몇 채가 전부였다. 하지만 유태은은 황유길 옆에서 심상치 않는 분위기를 풍기던 두 노인이 걸렸다. 아무리 전신전 전주라도 혼자 가는 건 위험했다.“저도 함께 가겠습니다.”유태은이 책상 서랍장 안에 들어 있던 권총을 꺼내들며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제명도는 제가 책임지고 있는 구역입니다. 이대로 전주님을 혼자서 보낼 수 없습니다. 부디 제 책임을 다하게 해주십시오!”하지만 염구준은 동의할 수 없는지 고개를 저었다. 반보천인 이상의 고수한테는 이정도 권총쯤은 장난감이나 다름없었다. 유태은이 따라가는 건 스스로 저승길에 오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가을과 한채인 씨가 쉬고 있으니, 여기에 남아 둘을 보호해 주세요. 그리고 얼른 주작에게 검을 가져오라고 전달하세요.”염구준은 속에서 전투 의지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가 한번 마음을 굳힌 이상, 다시 굽히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명령입니다. 당장 움직이세요!”명령… 유태은은 걱정됐지만,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고 염구준에게 경례했다.“전주님, 무운을 빕니다! 꼭 승리하십시오!”고려국, 제명도, 안영 도로.황유길은 방탄으로 된 세단을 탄 채 천천히 안영 도로에 진입하고 있었다.“황 대표님, 지금 연달아 빨간 불이 세번이나 걸렸습니다.”조수석에 앉아
“황유길, 나와서 죽음을 받아들여라!”염구준이 번개처럼 빠르게 바닥을 바닥차고 나가더니, 순식간에 자동차를 앞질러 앞쪽에 있는 건물 옥상에 올랐다. 그리고는 멀리서 다가오는 황유길이 탑승하고 있는 세단 행렬을 향해 크게 외쳤다.“목숨은 목숨으로! 살인자의 최후는 죽음뿐이다! 황유길, 네가 비록 법은 피했을지라도 내가 있는 이상 죄의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다! 내가 하늘의 뜻을 대변해 너희 목을 가져가마!”하늘을 대변한다고? 황유길은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조롱 섞인 미소를 지었다. 화련회 고수들이 그를 지키고 있는 한, 그는 염구준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황 대표는 나가지 말고 여기에 가만이 있으시오.”한희선이 차 문을 열며 음침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그리고 우리 둘이 어떻게 이 어린 놈을 처리하는지 질 보시오! 앞으로 그 누구도 황 대표를 함부로 건드릴 수 없을 것이오!”김현도도 반대편으로 내리며 차 문을 닫으며 덧붙였다. 두 사람 모두 이 전투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듯, 매우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였다. 두 사람은 평온한 표정으로 차 양옆에 서서 염구준과 마주보았다. 그들의 눈은 푸른색과 녹색이로 번뜩이고 있었으며, 온 몸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푸른색과 녹색….”반면 옥상에 서 있던 염구준의 눈은 붉은색을 띄고 있었다. 신태우와 전투를 치룬 뒤, 염구준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색깔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신태우가 보여준 황금색은 오행 금의 토에 해당했다. 염구준은 능력은 붉은 빛을 띠며 고온을 내뿜고 있으니, 화에 속한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두 노인은 푸른색과 녹색을 띠니, 오행 중에 목과 수 속성에 속할 것이다. “염구준.”김현도가 차 앞으로 나서며 냉소와 함께 말했다.“너의 자질은 확실히 뛰어나지만, 아직은 이르다. 오늘 분수를 모르고 우리에게 도전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용하국은 확실히 강자가 많지만, 우리는 두렵지 않다. 그래도 무도 선배들이 많은 나라의
염구준이 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바닥엔 그을린 발자국이 남았다. 그의 주먹은 마치 곧 폭발할 듯한 불덩어리처럼 점점 온도가 올라갔다.“물용권!”“목룡포!”김현도와 한희선 또한 빠르게 달리며 동시에 오른손을 뻗었다. 보고도 믿기 어려운 현상이 일어난 순간이었다!김현도의 손바닥에서 옅은 파란색 물줄기가 솟아오르더니, 구불거리며 마치 용처럼 허공을 가르고 염구준을 향해 날아갔다. 동시에 한희선의 손에서도 날카로운 가시 덩굴이 뱀처럼 똬리를 틀며 염구준을 향해 쏘아졌다. 그런데 한희선의 무서움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관자놀이가 부풀어 오르더니 기이한 파동을 발산하며 염구준의 미간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이건….”그러자 염구준은 갑자기 시야가 흐려지면서 심장박동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불길한 기운이 온 몸을 덮쳤다!이런 정신적 공격은 반보천인이라 할지라도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염구준은 마치 깊은 늪에 빠진 듯, 정신이 점점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강자의 승패는 정말 찰나에 순간에 난다!염구준의 시야가 흐려지는 순간, 김현도의 물줄기와 한희선의 덩굴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정말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깨어나!”염구준이 크게 외치며 두 발로 힘껏 바닥을 박차고 전신의 힘을 폭발시켰다.힘이 솟구쳤다!염구준의 발 아래로 불꽃이 번쩍이며 순식간에 몸이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결국 김현도와 한희선의 공격은 염구준의 발바닥을 스치며 바닥에 내리 꽂혔다.“아슬아슬했군!”염구준은 공중에 떠오른 채 빠르게 정신을 회복시켰다. 그러자 시야가 다시 맑아지며 반응속도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곧이어 모든 상황이 파악되었다. 지금 거리에선 한희선의 정신 공격은 효과를 볼 수 없었다. 정신 공격이 닿을 수 있는 거리가 매우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김현도와 한희선이 약간 긴장이 서린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과연 전신전 전주, 반응이 빨랐다!“다시 와라!”염구준이 마치 유성처럼 불꽃을 몸에 두른 채 바닥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엔 어느새 검 모
하늘과 땅이 뒤흔들렸다!세 명의 반보천인이 맞붙었다. 김현도의 푸른 물줄기는 염구준의 검에 잘게 부서져 미세한 빗줄기로 변해 사방으로 흩어지고 한희선의 네일 넝쿨도 산산조각 나 여기저기 어지럽게 떨어졌다.염구준의 손에 쥐어진 불검도 물줄기와 넝쿨에 의해 순식간에 흐릿해져 더 이상 살상력이 없었다.그들은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고 결국 무승부가 되었다!“둘이 손을 잡아도 나를 이기지 못하는 걸 보니 그동안 참 헛되이 살았군!”염구준은 방금전 충돌했던 힘으로 백 덤블링을 한 후 바닥에 착지했다. 그의 눈이 날카롭게 반짝였다.“황유길은 오늘 반드시 죽을 목숨인데 그래도 계속 싸울까?”김현도와 한희선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조금 전 그들은 최선을 다했지만 염구준과 막상막하엿다. 다시 말하면 개인 실력으로는 이 전신 전주를 당할 수 없고 두 사람이 힘을 합쳐야 간신히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염구준,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김현도의 주름 잡힌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갑자기 다가서며 가슴을 내보였다.“이게 뭔지 알아?!”염구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그의 가슴에는 화련회의 상징인 금색 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여기는 고려고 우리 영역이다.”김현도는 냉소를 지으며 덧붙였다.“넌 우리와 붙으면 기껏해야 무승부다. 우리는 그저 널 여기에 붙잡고 지원군이 오기를 기다리면 돼! 그때는 아무리 강한 너라도 속수무책일 거야!”염구준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아차!여기는 고려고 비록 잠시 주위의 교통을 폐쇄했지만 싸움이 길어진다면 염구준에게 불리해질 것이다. 한명이서 거뜬히 둘을 상대할 수는 있어도 그들의 지원군이 온다면 상황은 즉시 악화될 것이다!“지금 도망치기엔 이미 너무 늦었어!”한희선은 두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잘린 손톱이 빠르게 자라 다시 염구준의 몸을 옥죄려 했고 그녀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우리가 힘을 합쳐 이 자식을 막아요! 절대 후환을 남겨선 안 돼요!
“작디작은 고려인데 화련회 지원군이 온다고 해서 내가 겁먹을 것 같아?!”염구준은 우렁차게 소리쳤고 불검을 든 그의 손이 더욱 빨라졌다. 그러자 김현도의 물기둥과 한희선의 네일 넝쿨이 와장창 깨지며 염구준은 순식간에 우위를 점했다.하지만 그것은 찰나의 순간일 뿐이었다!두 반보천인은 재빨리 반응했다. 염구준의 맹렬한 공격을 피하기 위해 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들은 정면충돌을 피고 주위를 뱅뱅 돌며 최대한 시간을 끌고 있었다.1분, 10분, 30분...슉, 슉, 슉!그들의 움직임은 번개같이 신속했고 먼 곳에서 울부짖으며 다가올 때는 굉장한 아우라를 내뿜었다. 역시 반보천인 경지의 초강자들이었다!한 명도 아니고 셋이다!게다가 김현도와 한희선은 이미 화련회의 최강 라인업이었고 고려국의 숨은 5대 고수들 중에 속한 사람들이었다!“지원군이 왔어!”세 동료의 기운이 가까워 지는 것을 느낀 김현도는 비열하게 웃으며 말했다.“염구준, 네가 아무리 날고 뛴다고 해도 우리 다섯 명의 상대는 될 수 없어.”“잡히거나 죽는 것 외에 다른 선택권은 없어!”눈이 가늘어 진 염구준은 굳이 시간을 들여 그들에게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더욱 신속하게 움직이며 용하 고무학을 닥치는 대로 응용해 김현도와 한희선을 다시 한번 물리쳤다.이미 40분이 지났다...J호 전투기의 극한 속도로 전신전의 총사령부에서부터 고려국까지 아마 이 시간쯤이면 도착했을 것이다.슉슉슉!염구준이 잠깐 생각에 잠긴 사이 화련회 3대 고수는 이미 도착했다. 맨 앞에 선 사람은 혈색은 좋아 보이나 등이 굽은 늙은이였다. 그리고 두 왜소한 몸에 전통의상을를 입은 늙은이였다. 각각 빨강, 노랑, 회색, 3색의 기운을 지니고 있었다.오행의 화, 금, 토!고려국의 5대 숨은 강자, 그들은 용하국의 고대 수련 비법을 표절한 자들이었고 오행의 금, 목, 수, 화, 토에 대응했다. 오행이 합심하면 진정한 천인도 싸워 이길 수 있었다!“염구준.”등이 굽은 늙은이의 발은 땅에 닿지 않은 듯 했다. 그는 수
그의 재력이라면 대형 수영장을 만들어 향유고래를 키울 수도 있지만 바다가 고래의 고향이라 그러지 않았다.“선장, 고래가 엄청난데 잡지 않아요?”갑판에서 몸이 건장한 흑인 선원이 불만을 토로했다.눈앞에서 헤엄치며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 돈이니 그럴만했다.“독수리, 주둥이 닥쳐!”선장은 아직도 누군가 향유고래에 미련을 두자 버럭 화를 냈다.염구준이 어디 출신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발산하는 기운은 보는 사람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독수리가 염구준을 힐끗 보고는 어쩔 수 없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나머지 선원들도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선장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저기, 아직 볼일이 남았어요?”선장은 염구준이 조용히 앉아 있자 조심스럽게 물었다.“여기서 가까운 부두로 데려다줘요.”염구준은 끝없는 바다를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이곳은 바닷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일단 상륙한 후에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울 생각이었다.“그게…”선장은 난처한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어려우면 말씀하세요. 그렇다고 폭행을 휘두르면서 강요하지 않으니까.”염구준은 선장의 태도가 이상한 걸 눈치채고 분명하게 말했다.선박은 어부들 것이니 강제로 빼앗지 않을 것이다.그의 말에 선장은 솔직하게 말했다.“우리는 고래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해요. 이제 나와서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이대로 돌아가면 손해가 엄청납니다.”그들은 염구준이 무섭지만 돈을 벌지 못해 가족들이 굶는 것이 더 무서웠다.“그런 거라면 어렵지 않아요. 얼마를 원하세요? 육지에 도착하면 내가 줄게요.”염구준에게 있어 돈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100만 달러.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선장은 믿지 않는지 거액의 가격을 부르면서 떠보았다.듣기에 높은 가격이지만 따져보면 수리비용, 연료, 인건비 등등 모두 제외하면 얼마 남지 않으니 합리적인 가격이었다.“이걸로 담보할게요. 어차피 당신네 선박에 있으니까 도망치지 않아요.”염구준은 상대방이 걱정하는 걸 알아차리고 딸에게 선물하려고 주은 주먹
이튿날, 미지의 바다에서 향유고래 한 마리가 헤엄치고, 등에 한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그 사람은 바로 염구준이었다.사방에 온통 푸른 바다라 지금 어느 곳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지금은 고래가 바닷가로 데려가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고래야, 잘 부탁한다.”“우웅!”둘은 서로의 말을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수시로 교류했다.염구준이 눈을 감고 운기조식하다가 배고프면 심해의 눈물로 에너지를 보충했다.신기한 것은 한 방울만 먹어도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뿌우우우웅!그때 멀리서 선박 소리가 들렸다. 염구준은 눈을 번쩍 뜨고 소리를 질렀다.“저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목소리에 기운을 담았더니 쩌렁쩌렁한 소리를 지를 때마다 수면이 음파에 진동하는 것 같았다.어디선가 나타난 선박에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슥!그런데 선박에 다가간 순간, 상대방이 고래를 잡는 쇠고랑을 발사하는 것이었다.염구준은 재빨리 검기로 밧줄을 잘라버렸다.선박은 그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향유고래를 잡으러 온 것이었다.생각하지 않아도 고래의 용연향을 얻기 위함일 것이다.스스슥!선박에 있는 사람들은 고장난 줄 알고 이번에 작살을 던졌지만 역시 염구준에게 잘려서 바다 밑으로 들어갔다.상대방과 가까워지자, 염구준은 그들의 선박에 번쩍 뛰어올라 엄숙하게 경고했다.“멈춰. 아니면 무력으로 대응할 거야.”선원들은 대부분 기운이 없는 평범한 어부였다.그들은 염구준이 먼 곳에서부터 뛰어올라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는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여기서는 고래를 잡는 걸 허락해요.”한참 뒤, 선장은 국제 감독기관에서 온 줄 알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이 고래는 내 친구예요. 어떻게 할지 잘 알겠죠?”염구준은 선장을 노려보며 차갑게 되물었다.“알았어요. 이 사람 말을 못 들었어? 당장 작살을 내려놔!”선장은 상대방이 보통이 아니란 걸 눈치챘는지 바로 선원들에게 지시했다.그러자 당황한 선원들은 정신을 차리고 지시대로 작살을 내려놓았다.염구
감히 그의 전우나 다름없는 고래를 잡아먹으려고 하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만약 향유고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지금쯤 심해 밑에서 죽었을 것이다.“염 선생님, 안 돼요!”당황한 노신기 일행이 다급히 나서서 말렸지만 염구준은 듣지 않았다.그는 요트를 타고 서해충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러 공격했다.“당장 토해!”염구준은 두 손으로 검을 들고 번쩍 뛰더니 위에서 서해충을 자르려고 했다.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고래를 살려낼 것이다.“하악!”뿔난 서해충이 나지막하게 울부짖더니 커다란 입을 벌이고 염구준을 통째로 삼키고는 물속으로 들어갔다.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모두 경악하고 말았다.심지어 천기문의 고위층들도 진정할 수 없었다.“염 선생님!”“안 되겠어. 모든 음성탐지기를 던져!”노신기는 당황한 마음에 맞서 싸우려고 명을 내렸다.유동심연의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이번에 오면서 대량의 음성탐지기를 챙겼었다.그러나 워낙 위력이 강한 무기라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염 선생님, 제발 잘 버텨줘요.’촤아악!이제 막 음성탐지기를 내려놓고 가동하려고 할 때 눈앞에서 거센 물보라가 솟구치는 것이었다.해저 지진으로 거센 파도가 밀려오면서 일으킨 쓰나미였다.“다들 선실로 들어가!”위급한 상황에서 노신기는 어쩔 수 없이 먼저 가문을 지켜야 했다.선박 세 척은 쓰나미에 밀려 먼 곳까지 흘러갔다.한편, 바다 밑은 난리도 아니었다.서해충 체내에 들어간 염구준은 선사 시대의 바다 생물과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그가 공격할 때마다 서해충은 심한 고통을 느꼈는지 커다란 몸집을 꿈틀거렸다.실은 서해충이 삼킨 것이 아니라 그것이 도망칠까 봐 염구준이 스스로 잡혀 먹힌 것이었다.한참 공격하면서 돌진했더니 드디어 향유고래가 있는 곳까지 다가갔다.“구자검법! 검일참공!”그는 기운을 폭증시켜 강력한 살술로 서해충의 몸에 길이가 10미터되는 상처를 냈다.잘린 부위에서 바닷물이 역류하여 들어올 때, 염구
동물의 감각은 때론 인간보다 훨씬 뛰어났다.특히 바다에서 자란 생물이라면, 웬만한 레이더보다도 훨씬 빨리 감지할 수 있었다.쿠쿵!혹시라도 싸울 수 있기 때문에 다들 몸에서 기운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아래쪽에서 뭔가 빠르게 올라오고 있어.”염구준은 날카로운 눈으로 바다밑을 바라보며 말했다. 작은 검은 점 하나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었다.아직 수면까지 오지도 않았는데, 그 그림자는 이미 성체 향유고래와 맞먹는 크기였다.‘설마, 진짜 서해충이 있는 건가?’“목표가 공격 범위에 진입했습니다. 모든 작살 준비 완료했습니다.”대원들은 지시가 떨어지고 나서 3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내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쏴!”노신기는 참을성 없이 바로 명령을 내렸다.‘망했다!’염구준은 말리려고 했지만 결국 말리지 못했다.물속의 거대한 생물체는 어선보다도 커서 자칫하다간 오히려 배가 끌려갈 수도 있었다.슥! 슥! 슥!고래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세 척의 어선에서 수십 발의 대형 작살이 물밑의 검은 그림자를 향해 발사되었다.타겟의 몸집이 컸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살이 정확하게 꽂힐 수 있었다.“끌어 올려!”노신기는 고래 잡이를 할 때 쓰던 방식을 운용하며 숙련하게 명령을 내렸으나 기계를 최대치로 올려도 타겟을 끌어오리지 못했다.이에 조타실에서 다급하게 소식을 전했다.“큰일입니다. 어선이 저것에 의해 유동심연 쪽 소용돌이로 끌려가고 있어요!”배는 엄청난 속도로 끌려갔다. 배 자체가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속도였다.“밧줄을 끊어!”염구준은 노신기의 무전기를 낚아채고 지휘권을 넘겨받았다.“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꽉 감겨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조타실에서 절박한 답변이 돌아왔다.현대식 어선은 전부 인공지능 시스템이라 이 상황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우웅!염구준은 결국 검기를 날렸고, 날카로운 검광이 연달아 번쩍이며, 단숨에 밧줄들을 잘라냈다.이에 배가 거대한 관성에 휘청이며 흔들렸고, 균
오늘 만약 염구준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전부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빨리 항행하라고 하세요. 뭔가 이상합니다.”염구준의 갑작스러운 말에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둥절해졌다. “네, 말하고 오겠습니다!”그러나 눈치가 생긴 사람들은 염구준의 뜻을 알지 못해도 그대로만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어 곧바로 달려갔다.그들은 염구준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염구준은 흡족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면을 바라보며 물었다.“스텔라성의 성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십니까?”이번에 스텔라성의 성주는 두 개의 판을 짰는데, 하나는 겉면으로 보이는 부성주 베르였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숨어있던 노대영이었다. 다른 걸 다 따지고 나서 판을 짠 것만 본다면 정말 훌륭한 계획이었다.그랬기에 염구준은 그를 중시했다.노신기와 아타는 미간을 찌푸리고 서로를 바라본 뒤, 늙은 아타가 입을 열었다. “성주의 이름은 노세입니다. 압도적인 실력의 소유자로, 진 적이 없습니다.”“하지만 지난 20년간, 외부에서는 그의 모습을 본 이가 없습니다. 폐관 중이라는 소문도 있고, 이미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지요.”“그의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라, 저희도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이야기를 들은 염구준은, 오히려 흥분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흐음, 전부 사실이라면 꽤 괜찮은 상대가 되겠군요.”방금, 막 육체의 극한을 돌파한 염구준은 적당한 시험 상대가 필요했다.‘대단해.’주변 고위 간부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염구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만 약간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스텔라성 성주 같은 괴물은, 대부분 기겁하며 피하려 하는데, 정면 승부를 기대한다니까 말이다.“그나저나 염 선생님, 전에 올라오실 때, 인원이 적던데, 혹시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노신기는 다른 걸 얘기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아, 이거 아십니까?”그의 손에는 투명한 비닐에 담긴 작은 물방울이 들려 있었는데, 외부에는 진기가 감돌았다.‘어라?’조금 더
이 독에 중독된 무인은 일시적으로 기운이 흩어지고, 단전이 봉쇄되어, 꼼짝없이 폐인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만약 과다 복용할 경우,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다.“이런 희귀한 독약은 스텔라성 성주가 준 거겠지?”염구준이 흥미롭게 물었다.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진짜 산기봉단을 보았고, 게다가 그 양이 상당했기 때문에 꽤나 관심이 갔다.“맞아. 얼른 저 녀석을 잡아!”노대영은 승리자처럼 손을 휘저으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그는 희귀한 독약인 산기봉단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에휴.”아타 등 사람들은 이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염구준마저 당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이제 구세주가 사라졌으니, 최악의 경우 전부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가서 두들겨 패! 나 아까 진짜 쫄아서 오줌 쌀 뻔했단 말이야!”몇몇이 소리치며 달려들었고, 염구준을 한껏 때려서 화풀이를 하려 했다.반보천인급 고수를 때릴 기회는 흔하지 않으니까 말이다.우웅. 그러나 그 순간, 검광이 번쩍이더니 달려들던 사람들 전부가 쓰러졌다. 그들의 목에는 옅은 혈흔이 있었는데, 상처는 아주 작았지만 모두 목숨을 잃었다.“이 독이 아무리 강해도, 나를 상대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어.”염구준은 조용히 진기를 운용하며, 체내에 남아 있던 독기를 모두 없애버렸다.육신이 이미 반보천인의 극한의 경지에 다다른 탓에 약물 저항성도 엄청나게 강해져 그는 산기봉단 같은 독약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너... 이건 말도 안 돼!”노대영은 절규하듯 외쳤다.희망이 눈앞에서 산산조각 나자, 정신이 붕괴되기 직전이었다.곧 있으면 승리할 수 있었는데, 이젠 그게 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그는 차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스텔라성 성주랑 뭘 꾸민 거지?”염구준은 서두르지 않고 물었다.해독제 같은 건 이제 관심 없었다. 상대가 정직하지 않으니까 말이다.“난 진작 그분의 문하로 들어갔어. 언젠가는 그분이 내 복수를 도와줄 거다!”“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는데, 내가 무슨 잘못이 있어
염구준은 주머니를 집어 들어 곁에 있던 그레이에게 휙 던져주며 분부했다.“먼저 기운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독제를 나눠줘.”“네.”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노대영을 흉악하게 노려보았다.반보천인으로서 이런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게 조금 창피해서였다.노대영은 사태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흘러가는 걸 감지하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할 말이 있습니다.”“해.”염구준은 싸늘한 표정으로, 단 한 마디만 툭 내뱉었다.그레이와 다른 이들이 힘을 회복하고 나면, 그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기에 곧 죽을 이의 유언쯤은 들어줄 수 있었다.노대영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얼른 말을 이었다.“자식으로서 아버지의 원수에게 복수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그래.”염구준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딱히 다른 변수가 없다면, 이 말을 부정할 이유가 없어서였다.‘어라?’이에 주변 사람들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말투로만 보면, 염구준이 노대영의 편을 들어주려는 것 같아서였다.그러나 방금 전에는 또 그들을 구해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염구준이 무슨 생각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노대영은 염구준의 마음을 돌린 줄 알고 속으로 기뻐하며 바로 말을 이었다.“이 도리를 알고 계시니, 그럼 행동에 옮겨도 되겠죠.”노대영은 혹여나 다른 변수가 있을까 두려워 단검을 꽉 쥐고 중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노신기에게 달려들었다.그레이 등이 조금 있다가 어떻게 나올지는 크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복수를 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말이다.쾅!하지만 달려가자마자 염구준의 발에 얼굴을 맞아서 옆으로 나가떨어졌다.그의 코와 입에서는 순식간에 피가 줄줄 흘렀다.“날 가지고 노는 거냐, 염구준!”“허, 내가 나설지 안 나설지 짐작이 안 됐나봐?”염구준은 비웃으며 말했다.그는 노대영의 말을 부정하진 않았지만 상대방의 행위를 몹시 혐오했다.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대놓고 복수하는 건 괜찮지만, 그 아비가 악행을 일삼던 사람이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방식에,
그러나 몸속에 독이 퍼진 탓에 기운을 끌어올릴 수가 없어 모두 답답하게 속만 태울 수밖에 없었다. 노대영이 혓바닥을 자르려고 할 때, 멀리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대영 문주님, 염구준인 것 같습니다!”이름을 듣자마자, 노대영의 얼굴에서 희열이 싹 사라지고, 이내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기습에 성공한 후 바로 도망쳤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고래를 타고 쫓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염구준 한 사람만으로 충분히 그들을 몰살할 수 있었다.“어서 고래잡이 작살이랑 그물 그리고 멀리에서 공격할 수 있는 무기들을 준비해.”노대영의 가슴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급속히 퍼져갔다.허겁지겁 지시를 내리긴 했지만 겨우 쇳조각 몇 개로 염구준을 막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휙휙!염구준은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는 작살, 그물, 조명탄 따위를 보며 입꼬리를 비웃듯이 끌어올렸다.아직 사격거리에도 들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공격을 했기 때문이었다.‘적지 않게 겁을 먹었나 보네.’그는 생각했다. 역시나 첫 번째 공격은 전부 허탕이었다.염구준은 거대한 향유고래를 타고 빠르게 이동했고, 이윽고 두 번째 공격이 시작됐다.커다란 작살 하나가 고래의 머리를 향해 곧장 날아들었는데, 맞으면 죽지 않더라고 심각한 부상을 입을 게 뻔했다.우웅!염구준은 검기 한 줄기를 내보내 날아오던 작살을 두 동강 낸 뒤, 작살에 묶인 쇠사슬 위로 몸을 던져, 빠르게 어선으로 돌진했다.풍덩!향유고래는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속으로 잠수했다.노대영은 염구준이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걸 보자마자 다급히 소리쳤다.“어서, 어서 배에 못 올라오게 사슬을 끊어!”그도 자신이 염구준과 맞서봤자, 단 한 줌의 승산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구자검법, 검일참공!”염구준은 배 위 인원들의 움직임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강한 검술을 발동해 검기를 날렸다.제대로 검기를 축적하진 못했기에, 완벽하게 완성된 검일참공은 아니었고, 약간의 반동
파악!곧이어 물기둥이 하늘로 솟구치며 거대한 향유고래가 염구준과 멀지 않는 곳에 떨어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마치 떠나기 아쉬워하는 듯했다.촤악!염구준은 몸을 날려 향유고래의 머리 위로 뛰어오른 뒤, 세 척의 어선 쪽으로 진기를 날려 물보라 일게 했다.이에 향유고래는 곧장 방향을 틀고, 어선을 향해 빠르게 헤엄치기 시작했다.말이 통하지 않아 이런 방식으로 밖에 교류할 수 없었지만 별로 큰 문제는 없었다.그 시각, 1호 어선은 다른 어선보다 조금 더 시끌벅적했다.노대영은 배의 지휘권을 장악한 뒤, 끝까지 저항한 소수만을 제거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포로로 붙잡아두었다.물론 그가 자비로워서가 아니었다.그저 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어떻게 복수하는지 지켜보게 하기 위해서였다.“대영 문주님, 준비 완료됐습니다. 언제든 시작 가능합니다.”노대영에게 붙은 아첨꾼 하나가 다가와 공손하게 말했다. 이번에 출정한 천기문 문도 중 절반 이상이 이미 노대영 편이었다.쿵!노대영은 부도 갑옷을 입은 채로 웃으면서 팔을 휘둘러 노신기를 바닥에 내던졌다.“악독한 놈. 네가 내 아버지를 죽였으니 난 오늘 아버지의 복수를 할 거다.”며칠 전에 대의를 위해서라면 혈연관계는 얼마든지 끊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은 그저 노신기를 안심시키기 위함에 불과했다. 그의 가슴 속에 맺힌 복수심은 한순간도 식지 않았었다.“하아...”노신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의 창백한 얼굴엔 깊은 후회가 서려 있었다.‘그때 불쌍해 보인다고 해서 검은 머리 짐승을 거두는 게 아니었는데.’그는 생각했다. “모든 일은 내가 벌인 거니까 찢어죽이든, 뭘하든 나한테만 해.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 건드리지 말고.”지금 이런 상황에 이른 이상, 그는 더 도리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전에 이미 노대영에게 그의 출신을 말해주며 그의 아버지가 눈 깜빡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변태 악마라고 말해주었으나 그는 전혀 듣지 않았기 때문에 말해봤자 쓸모가 없다는 걸 알아서였다.스승과 제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