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다면 내가 직접 나서는 수밖에.”염구준이 목소리를 낮게 깔며 슬며시 몸속에 담겨 있던 기운을 방출했다. 무시무시한 압력, 반보천인 중에서도 이 정도로 강한 기운을 내뿜을 수 있는 인물은 정말 흔치 않았다. “흥! 네가 아무리 강해도 내 옆엔 쌍두성사가 있다! 두렵지 않아!”현충이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쌍두성사의 비늘을 자랑스러운 얼굴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러다 문득 뭔가 떠올랐는지, 사악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도발하듯 염구준을 바라봤다.“잠깐, 설마 영단을 원하는 이유, 딸의 독 때문이냐? 하긴 그걸 풀 주술사가 존재할 리 없지.”이미 부하들을 통해 염구준에 대해 보고를 받은 상태라 그는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 말을 내뱉으며, 염구준이 고통스러워하길 바랐다.“말 다 했어?”하지만 염구준은 아픈 곳이 찔렸음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곧 적과 전투를 치러야 하는데, 약점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안 통하나?’현충은 상대가 반응하지 않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때, 염구준이 다짜고짜 기운을 폭발시키며 쌍두성사를 향해 돌진했다. “죽어라!”그렇게 전투가 시작되었다. “쌍두성사, 저놈을 죽여라!”현충이 손가락으로 염구준을 가리키며 명령을 내렸다. “먹이다!”이 한마디와 함께 쌍두성사가 온몸을 비틀며 빠르게 염구준의 공격에 맞서러 나갔다.한편, 현충은 자신이 애지중지 키운 쌍두성사가 크게 활약할 것을 기대하며 자신만만한 얼굴로 둘의 전투를 바라봤다. 쌍두성사가 새빨간 비늘이 뒤덮인 거대한 꼬리를 위협적으로 염구준을 향해 휘둘렀다. 거대한 존재가 주는 위압감과 함께 주변을 뒤흔들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었다. 염구준은 몸에 불꽃을 끌어올리며 최대한 데미지를 줄일 수 있는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전해지는 무시무시한 힘, 과연 전설 속 생물다웠다. 그가 평범한 반보천인이었다면, 버티지 못하고 꼬리에 맞아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염구준은 쌍두성사 못지않은 강한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뱀의 공격을 버티는
염구준이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현충을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정성스레 키운 애완동물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네? 그냥 직접 나서지 그래?”“이 쓸모없는 것!”현충이 분노하며 쌍두성사를 걷어찼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쌍두성사에게 어떠한 아픔도 주지 못했다. 뱀은 오히려 토라진 듯 몸을 웅크릴 뿐이었다.이때, 뱀 지팡이 자매 중 동생 사목이 입을 열었다. “현충, 차라리 우리와 손잡고 저 놈을 해치우는 게 어때?”“손잡자고? 그럼 저놈 손에 있는 옥패를 어떻게 나눌 건데?”현충은 흔들렸지만, 득과 실이 확실하지 않은 이상 움직일 수는 없었다.“저놈을 죽이고 나서 다시 각자 실력대로 가져가면 되지, 안 그래?”사목이 능숙하게 그를 설득했다. 반대편에 당당히 서 있는 염구준을 바라보던 현충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좋아, 받아들이지.”얼마 전까지 치열하게 서로의 목숨을 노리며 싸우던 적이 한순간에 아군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익 앞에선 역시나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었다.뱀섬과 천무산이 임시 동맹을 맺었다. 거기에 무적에 가까운 방어력을 갖춘 쌍두성사까지, 염구준은 이들 모두를 홀로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놈을 죽여라!”서로 눈빛을 주고받은 현충과 자매가 동시에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우선 직접적으로 맞붙기 전에 힘을 빼놓을 생각이었다.“죽이자!”양쪽 세력 모두 전투의 열기가 가시기 전이었고, 살기등등한 기세를 내뿜으며 염구준을 향해 달려갔다. 그 전력이 족히 천 명 가까이 되었다. 이들은 결코 오합지졸들이 아니었다. 모두 각 세력의 실력자들만 모은 정예 부대였다. “흥, 숫자로 몰아붙이려 들다니, 날 너무 무르게 봤군.”하지만 염구준은 한치의 물러남도 없이 당당히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이들을 바라봤다. 쿠웅!그런데 이때, 파도처럼 밀려오던 인원들과 염구준 사이에 폭발음이 들리면서 커다란 구덩이가 생겼다. 그 여파에 모두 놀라 자리에서 멈춰 서고 말았다.휘이잉!모두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에 전투기 두 대가 아주 낮
“하, 그 과정에 환자가 겪을 고통은 어쩌려고?”염구준이 냉소를 지으며 현충이 일부러 말하지 않은 부분을 콕 집었다. “하하, 상상하시는 만큼 고통스럽지는 않을 겁니다.”현충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속으론 매우 놀란 상태였다. 아직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시간을 끌면 치료 과정이 고통스러워진다는 걸 상대는 어떻게 알았을까?“헛소리 집어치워. 길게 시간을 들여 이 독을 해결할 거였으면 이곳에 오지도 않았어. 당장 영단을 내놔.”염구준이 현충의 기대를 확실히 끊어내며 못을 박았다.“정말로 협상할 여지 조금도 없습니까?”현충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협상 같은 소리하고 있네!”염구준의 인내심은 이미 바닥난 상태였고, 더 이상 말씨름에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곧장 고개를 돌려 청용에게 명령했다. “목표는 천무산 정상, 나를 중심으로 십 미터 밖, 모두 폭파하라고 알려.”더 이상 협상의 여지는 없었고,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반드시 쌍두성사의 영단을 빼앗을 것이다. 그는 행동으로 현충에게 자신의 의사를 명백히 밝혔다. 바로 앞에 있던 현충도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돌격하라!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자는 전부 몰살한다!”영단은 절대로 넘길 수 없었다. “몰살이다!”약 천 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다시 염구준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전주님께 아룁니다. 공중 전투 1팀, 2팀, 준비 완료했습니다. 언제든지 명령하시면 바로 공격하겠습니다.”청용은 명령을 전달한 뒤, 곧바로 염구준에게 보고를 올렸다. “그럼 공격해!”염구준이 구름 떼처럼 몰려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냉정하게 말했다.‘나를 죽이려 한다면, 본인들도 죽음을 각오해야 할 거야!’쿠구구궁!전투기 두 대가 급하강하며 수많은 폭탄을 인간 구름 떼 위로 떨어뜨렸다. 오직 염구준과 그 주변만 제외한 채, 천무산 정상은 순식간에 연기와 화약 냄새로 뒤덮였다. “하하, 전신전과 맞서려 하다니, 꼴 좋다, 이 잡것들아!”청용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
오랜만에 만나는 강력한 적이었다. “쌍두성사, 넌 정면으로 공격해! 우리 셋은 측면에서 공격할 테니!”현충이 빠르게 작전 지시를 내렸다. 쌍두성사는 정면으로 공격을 몸으로 막고 나머지는 측면에서 공격하는 전술, 과연 전투 경험이 많은 베테랑다웠다. “쉑쉑!”쌍두성사가 서툰 목소리로 대답하며 거대한 몸을 이끌고 앞으로 나섰다.반보천인이 넷이 동시에 공격하는 상황에 아무리 염구준이라도 약점이 생기기 마련일 테니까, 현충은 그것을 노리고 있었다. 펑, 퍼벙!염구준의 무자비하게 주먹으로 쌍두성사를 두들겨 팼다. 그러나 쌍두성사는 뒤로 밀리긴 했지만, 몸이 너무 단단해 비늘이 좀 긁혔을 뿐이었다.“이익, 내 비늘이!”쌍두성사의 말은 서툴렀으나, 그 안에 담긴 분노는 확실했다.뱀은 자기 외모를 꽤 신경 쓰는 편인지, 비늘에 긁힌 자국이 난 것을 못 참는 듯했다. 하지만 염구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쌍두성사가 주춤대는 틈을 타, 현충과 자매의 공격에 맞섰다. 이들의 나이를 모두 합치면 못해도 300세, 쌓아온 세월이 세월인 만큼 무식하게 힘만 센 쌍두성사와는 완전히 격이 달랐다. 염구준이 일반 반보천인과 다르지만, 주먹 두 개로 여섯을 상대하기는 벅찼다. 그는 점점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다. “좋아, 이대로 공격 유지해. 놈을 지치게 해야 해!”전술이 통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현충이 기뻐하며 계속해서 지시를 내렸다. “전주님!”“오라버니!”상황이 염구준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수안과 전신전 사람들이 손을 보태고자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반보천인들의 결투, 결코 범인이 끼어들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결국 이들은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타격을 입고 다시 뒤로 물러섰다. “물어뜯는다!”쌍두성사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분노를 담아 염구준에게 달려들려던 찰나였다. 비늘이 손상 입은 것이 상당이 화가 난 듯했다. 그러나 현충이 앞으로 나서 쌍두성사의 행동을 저지했다. “넌 물러서. 굳이 여기서 너까지 나설 필요 없어.”
세 사람은 염구준의 변화를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궁지에 몰리니 잠시 정신이 이상해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이때, 염구준의 몸이 진동하듯이 떨려오더니, 무시무시한 기운을 사목을 향해 내뿜었다. 그는 차례차례 한 명씩 제거해 나갈 생각이었다. 이 전술은 염구준이 전투를 시작하기 전부터 계획했던 것이었다.“빨리, 저 놈을 막아!”몸이 저렇게 엉망이 된 상황에도 아직 이런 폭발적인 기운을 내뿜다니,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두 사람은 뒤늦게 막으려 했지만, 에너지만 소모하고 별다른 소득을 보지 못했다. “이 비열한 놈!”상황이 역전되자 현충은 비장의 카드를 소환할 수밖에 없었다.“쌍두성사, 너도 와서 도와!”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던 뱀은 빠르게 전투 현장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청용과 다른 일행들도 앞으로 나서며 뱀의 움직임을 저지하려 했으나, 이번에도 소용없었다. ‘빠르게, 더 빠르게!’염구준은 가까이 오는 쌍두성사의 모습을 보고 점점 공격에 속력을 올렸다. 생사를 가르는 싸움에서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활용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다. 어렵게 얻어낸 방심, 그는 반드시 이번 공격을 성공시켜야 했다. 곧이어 텅, 텅… 맑은 금속이 두 동강 나,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매 중, 동생 사목이 결국 염구준의 맹렬한 주먹 공격에 이기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나가 떨어졌다.드디어 넷 중 한 명이 제거되는 순간이었다. 쌍두성사가 뒤늦게 염구준에게 공격을 날렸지만, 염구준이 몸을 비틀며 피해 버리는 바람에 현충과 사우만 움직임이 꼬이고 말았다. “멍청한 놈!”결국 현충이 참지 못하고 쌍두성사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자신이 기른 생물이긴 하지만, 몸만 키우고 머리를 키우지 못한 것이 뼈저리게 후회됐다. 쌍두성사도 실수를 알아차리고 조용히 몸을 움츠렸다. “다시 덤벼!”반면, 염구준은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혼란한 틈을 타 다시 공격을 넣기 시작했다. 오늘 웃을 수 있는
드디어 염희주의 독을 치료할 방법이 생겼다. 이제 안심이었다.염구준이 안도가 섞인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레 무지개 빛을 띄는 쌍두성사의 영단을 품에 넣었다. 반면, 영단을 빼앗긴 쌍두성사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바닥을 굴렀다. 영단은 영물의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다.“염구준, 이 개 자식!”현충이 크게 표효하며 사우와 함께 공격을 날리며 급히 쌍두성사에게 달려갔다. “아프다, 아파!”쌍두성사가 인간의 말을 내뱉으며 흐느꼈다. 영단이 뽑힌 곳에서부터 끊임없이 피와 함께 내력도 새어 나갔다. 동시에 몸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점점 작아졌다.“괜찮아, 내가 고통스럽지 않게 해 줄게.”현충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쌍두성사를 바라보다 영단이 제거된 복부를 향해 손을 가져다 댔다. “몇 년만 있었다면 천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을 생물인데, 네가 모든 것을 망쳤어!”이 말과 함께 그는 뱀의 몸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남은 쌍두성사의 힘을 빌어 천인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의도였다.“주인님, 안 돼요!”영단을 빼앗길 때보다 더 한 고통을 느낀 쌍두성사가 애원했다.“닥쳐,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남는 게 있어야지.”하지만 현충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에너지를 흡수해 나갔다. 쌍두성사는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쳤지만, 이미 약해지고 작아진 몸으로는 역부족었다. 한편, 현충의 기운은 겉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비열한 자식, 뱀은 너를 부모처럼 따랐을 텐데, 이런 뒤통수를 치다니!”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수안이 분노의 목소리로 외쳤다. 주술사들은 보통 자신이 직접 키우게 된 벌레나 파충류를 자식처럼, 또는 가족처럼 여기곤 했다. 그랬기에 그녀는 도무지 현충의 행동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수안과 달리 염구준은 현충을 나름 기대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인간이 천인이 되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게 될지도 모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강한 상대는 더욱 그를 즐겁게 한다.“후… 됐어! 이제 난 천
정통으로 맞은 공격, 염구준은 팔에 저릿한 고통과 함께 뒤로 몇 발자국 밀렸다.‘이제 천인의 경지에 들어서게 되면 갖게 되는 힘인가? 하지만 천인지력은 쓸 줄 모르는군.’“하하, 한방도 못 견디는 놈이, 잘난 척은!”일격을 성공시킨 현충이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검을 가져와!”염구준이 입가의 피를 닦아내며 주작에게 외쳤다. 이 정도 실력이라면 검을 뽑아도 될 것 같았다.“전주님, 검 받으세요!”주작이 서둘러 검이 담긴 상자를 열더니, 안에 들어있던 검을 염구준 쪽으로 던졌다.“흥! 소용없다!”하지만 현충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검을 든다고 해서 천인의 경지에 이른 그의 힘을 감당해낼 수 없을 거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공격 두어 번 막으면 부러질 쇳덩어리!’그런데 그의 예상과 달리 염구준이 검을 받들어 꺼낸 순간, 갑자기 기세가 바뀌었다. 검에서 푸른 검기가 일어나며, 맨몸으로 공격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날카로움이 뿜어져 나왔다.우웅!염구준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현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현충은 피할 수 없어 재빨리 방어막을 둘렀으나, 이대로 계속된다면 뚫릴 게 분명했다.“말도 안 돼. 나는 천인이다. 무적이라고!”현충이 헝클어진 머리로 미친 사람처럼 외쳤다. “천인? 아니, 넌 어설픈 천인의 흉내를 내는 가짜일 뿐이야.”염구준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힘은 강해진 건 사실이지만, 천인지력을 다룰 줄 모르는 천인이라니, 있을 수 없었다.“아니야, 난 천인이야!”현충은 무시당하자, 분노하며 자신도 허리춤에 있던 검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염구준이 들고 있던 것은 평범한 검이 아닌, 세상에 둘도 없는 구자검이었다. 결국 여러 번 부딪힌 끝에 현충의 검은 처참히 부러지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현충은 쌍두성사에게 물려받은 비늘을 강화해 싸움을 이어갔다. 하지만 염구준은 이번에 검기에 천인지력의 힘까지 담아 불꽃을 피워냈다.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전투는 지속
검에서 빛이 번쩍였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엄청난 기운이 뿜어져 나와 현충의 어깨를 베어냈다.‘천인의 경지란 이런 건가?’그는 순간 자신이 천인의 경지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며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었다.역시 천인의 경지란, 이리 쉽게 도달할 리 없었다.“끄윽!”중상을 입은 현충이 숨이 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저주한다! 평생 네가 불행하길 저주한다!”현충은 이 말을 끝으로 눈을 뒤집으며 숨을 다했다.무리안을 휘어잡았던 전설적인 인물이 그렇게 염구준의 손에 저물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가 자초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먼저 염구준을 건드리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었으니까.“후….”염구준이 깊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전주님!”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달려왔다.“걱정할 것 없어. 좀 지친 것뿐이지, 잠깐 쉬면 괜찮아질 거야.”염구준이 그들을 향해 손을 들어올리며 다가오는 것을 제지했다. 지금 몸 주변에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체가 명확해지기 전까진, 홀로 있는 편이 나았다. 처음 이 기운을 감지했던 게 현충이 죽기 직전 저주를 퍼부었을 때였으니까.“저주의 힘!”주술사였던 수안이 상황을 알아차리곤 먼저 입을 열었다.“음? 너는 뭔가 알고 있는 것 같네. 설명해봐.”염구준은 흥미로웠다.“쌍두성사, 사실 이 뱀에겐 또다른 별칭이 있습니다. 불운의 뱀, 그래서 대부분 다가가는 것조차 꺼려합니다. 어쩌면 현충이 쌍두성사의 힘을 흡수하면서 이것도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있어요.”수안은 솔직하게 자신이 아는 것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발생할 수 있는데?”염구준이 물었다.“불운이 따라다니며, 계속해서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이 일어나게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덩달아 주변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요.”수안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저주의 힘이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는 그녀도 정확히 알지
오늘 만약 염구준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전부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빨리 항행하라고 하세요. 뭔가 이상합니다.”염구준의 갑작스러운 말에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둥절해졌다. “네, 말하고 오겠습니다!”그러나 눈치가 생긴 사람들은 염구준의 뜻을 알지 못해도 그대로만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어 곧바로 달려갔다.그들은 염구준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염구준은 흡족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면을 바라보며 물었다.“스텔라성의 성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십니까?”이번에 스텔라성의 성주는 두 개의 판을 짰는데, 하나는 겉면으로 보이는 부성주 베르였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숨어있던 노대영이었다. 다른 걸 다 따지고 나서 판을 짠 것만 본다면 정말 훌륭한 계획이었다.그랬기에 염구준은 그를 중시했다.노신기와 아타는 미간을 찌푸리고 서로를 바라본 뒤, 늙은 아타가 입을 열었다. “성주의 이름은 노세입니다. 압도적인 실력의 소유자로, 진 적이 없습니다.”“하지만 지난 20년간, 외부에서는 그의 모습을 본 이가 없습니다. 폐관 중이라는 소문도 있고, 이미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지요.”“그의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라, 저희도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이야기를 들은 염구준은, 오히려 흥분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흐음, 전부 사실이라면 꽤 괜찮은 상대가 되겠군요.”방금, 막 육체의 극한을 돌파한 염구준은 적당한 시험 상대가 필요했다.‘대단해.’주변 고위 간부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염구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만 약간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스텔라성 성주 같은 괴물은, 대부분 기겁하며 피하려 하는데, 정면 승부를 기대한다니까 말이다.“그나저나 염 선생님, 전에 올라오실 때, 인원이 적던데, 혹시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노신기는 다른 걸 얘기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아, 이거 아십니까?”그의 손에는 투명한 비닐에 담긴 작은 물방울이 들려 있었는데, 외부에는 진기가 감돌았다.‘어라?’조금 더
이 독에 중독된 무인은 일시적으로 기운이 흩어지고, 단전이 봉쇄되어, 꼼짝없이 폐인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만약 과다 복용할 경우,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다.“이런 희귀한 독약은 스텔라성 성주가 준 거겠지?”염구준이 흥미롭게 물었다.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진짜 산기봉단을 보았고, 게다가 그 양이 상당했기 때문에 꽤나 관심이 갔다.“맞아. 얼른 저 녀석을 잡아!”노대영은 승리자처럼 손을 휘저으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그는 희귀한 독약인 산기봉단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에휴.”아타 등 사람들은 이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염구준마저 당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이제 구세주가 사라졌으니, 최악의 경우 전부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가서 두들겨 패! 나 아까 진짜 쫄아서 오줌 쌀 뻔했단 말이야!”몇몇이 소리치며 달려들었고, 염구준을 한껏 때려서 화풀이를 하려 했다.반보천인급 고수를 때릴 기회는 흔하지 않으니까 말이다.우웅. 그러나 그 순간, 검광이 번쩍이더니 달려들던 사람들 전부가 쓰러졌다. 그들의 목에는 옅은 혈흔이 있었는데, 상처는 아주 작았지만 모두 목숨을 잃었다.“이 독이 아무리 강해도, 나를 상대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어.”염구준은 조용히 진기를 운용하며, 체내에 남아 있던 독기를 모두 없애버렸다.육신이 이미 반보천인의 극한의 경지에 다다른 탓에 약물 저항성도 엄청나게 강해져 그는 산기봉단 같은 독약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너... 이건 말도 안 돼!”노대영은 절규하듯 외쳤다.희망이 눈앞에서 산산조각 나자, 정신이 붕괴되기 직전이었다.곧 있으면 승리할 수 있었는데, 이젠 그게 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그는 차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스텔라성 성주랑 뭘 꾸민 거지?”염구준은 서두르지 않고 물었다.해독제 같은 건 이제 관심 없었다. 상대가 정직하지 않으니까 말이다.“난 진작 그분의 문하로 들어갔어. 언젠가는 그분이 내 복수를 도와줄 거다!”“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는데, 내가 무슨 잘못이 있어
염구준은 주머니를 집어 들어 곁에 있던 그레이에게 휙 던져주며 분부했다.“먼저 기운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독제를 나눠줘.”“네.”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노대영을 흉악하게 노려보았다.반보천인으로서 이런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게 조금 창피해서였다.노대영은 사태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흘러가는 걸 감지하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할 말이 있습니다.”“해.”염구준은 싸늘한 표정으로, 단 한 마디만 툭 내뱉었다.그레이와 다른 이들이 힘을 회복하고 나면, 그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기에 곧 죽을 이의 유언쯤은 들어줄 수 있었다.노대영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얼른 말을 이었다.“자식으로서 아버지의 원수에게 복수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그래.”염구준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딱히 다른 변수가 없다면, 이 말을 부정할 이유가 없어서였다.‘어라?’이에 주변 사람들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말투로만 보면, 염구준이 노대영의 편을 들어주려는 것 같아서였다.그러나 방금 전에는 또 그들을 구해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염구준이 무슨 생각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노대영은 염구준의 마음을 돌린 줄 알고 속으로 기뻐하며 바로 말을 이었다.“이 도리를 알고 계시니, 그럼 행동에 옮겨도 되겠죠.”노대영은 혹여나 다른 변수가 있을까 두려워 단검을 꽉 쥐고 중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노신기에게 달려들었다.그레이 등이 조금 있다가 어떻게 나올지는 크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복수를 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말이다.쾅!하지만 달려가자마자 염구준의 발에 얼굴을 맞아서 옆으로 나가떨어졌다.그의 코와 입에서는 순식간에 피가 줄줄 흘렀다.“날 가지고 노는 거냐, 염구준!”“허, 내가 나설지 안 나설지 짐작이 안 됐나봐?”염구준은 비웃으며 말했다.그는 노대영의 말을 부정하진 않았지만 상대방의 행위를 몹시 혐오했다.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대놓고 복수하는 건 괜찮지만, 그 아비가 악행을 일삼던 사람이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방식에,
그러나 몸속에 독이 퍼진 탓에 기운을 끌어올릴 수가 없어 모두 답답하게 속만 태울 수밖에 없었다. 노대영이 혓바닥을 자르려고 할 때, 멀리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대영 문주님, 염구준인 것 같습니다!”이름을 듣자마자, 노대영의 얼굴에서 희열이 싹 사라지고, 이내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기습에 성공한 후 바로 도망쳤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고래를 타고 쫓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염구준 한 사람만으로 충분히 그들을 몰살할 수 있었다.“어서 고래잡이 작살이랑 그물 그리고 멀리에서 공격할 수 있는 무기들을 준비해.”노대영의 가슴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급속히 퍼져갔다.허겁지겁 지시를 내리긴 했지만 겨우 쇳조각 몇 개로 염구준을 막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휙휙!염구준은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는 작살, 그물, 조명탄 따위를 보며 입꼬리를 비웃듯이 끌어올렸다.아직 사격거리에도 들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공격을 했기 때문이었다.‘적지 않게 겁을 먹었나 보네.’그는 생각했다. 역시나 첫 번째 공격은 전부 허탕이었다.염구준은 거대한 향유고래를 타고 빠르게 이동했고, 이윽고 두 번째 공격이 시작됐다.커다란 작살 하나가 고래의 머리를 향해 곧장 날아들었는데, 맞으면 죽지 않더라고 심각한 부상을 입을 게 뻔했다.우웅!염구준은 검기 한 줄기를 내보내 날아오던 작살을 두 동강 낸 뒤, 작살에 묶인 쇠사슬 위로 몸을 던져, 빠르게 어선으로 돌진했다.풍덩!향유고래는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속으로 잠수했다.노대영은 염구준이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걸 보자마자 다급히 소리쳤다.“어서, 어서 배에 못 올라오게 사슬을 끊어!”그도 자신이 염구준과 맞서봤자, 단 한 줌의 승산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구자검법, 검일참공!”염구준은 배 위 인원들의 움직임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강한 검술을 발동해 검기를 날렸다.제대로 검기를 축적하진 못했기에, 완벽하게 완성된 검일참공은 아니었고, 약간의 반동
파악!곧이어 물기둥이 하늘로 솟구치며 거대한 향유고래가 염구준과 멀지 않는 곳에 떨어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마치 떠나기 아쉬워하는 듯했다.촤악!염구준은 몸을 날려 향유고래의 머리 위로 뛰어오른 뒤, 세 척의 어선 쪽으로 진기를 날려 물보라 일게 했다.이에 향유고래는 곧장 방향을 틀고, 어선을 향해 빠르게 헤엄치기 시작했다.말이 통하지 않아 이런 방식으로 밖에 교류할 수 없었지만 별로 큰 문제는 없었다.그 시각, 1호 어선은 다른 어선보다 조금 더 시끌벅적했다.노대영은 배의 지휘권을 장악한 뒤, 끝까지 저항한 소수만을 제거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포로로 붙잡아두었다.물론 그가 자비로워서가 아니었다.그저 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어떻게 복수하는지 지켜보게 하기 위해서였다.“대영 문주님, 준비 완료됐습니다. 언제든 시작 가능합니다.”노대영에게 붙은 아첨꾼 하나가 다가와 공손하게 말했다. 이번에 출정한 천기문 문도 중 절반 이상이 이미 노대영 편이었다.쿵!노대영은 부도 갑옷을 입은 채로 웃으면서 팔을 휘둘러 노신기를 바닥에 내던졌다.“악독한 놈. 네가 내 아버지를 죽였으니 난 오늘 아버지의 복수를 할 거다.”며칠 전에 대의를 위해서라면 혈연관계는 얼마든지 끊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은 그저 노신기를 안심시키기 위함에 불과했다. 그의 가슴 속에 맺힌 복수심은 한순간도 식지 않았었다.“하아...”노신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의 창백한 얼굴엔 깊은 후회가 서려 있었다.‘그때 불쌍해 보인다고 해서 검은 머리 짐승을 거두는 게 아니었는데.’그는 생각했다. “모든 일은 내가 벌인 거니까 찢어죽이든, 뭘하든 나한테만 해.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 건드리지 말고.”지금 이런 상황에 이른 이상, 그는 더 도리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전에 이미 노대영에게 그의 출신을 말해주며 그의 아버지가 눈 깜빡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변태 악마라고 말해주었으나 그는 전혀 듣지 않았기 때문에 말해봤자 쓸모가 없다는 걸 알아서였다.스승과 제자의
염구준을 향해 날아오는 것은 엄청난 기운을 내뿜고 있는 금강 방망이 한 개 뿐이었다. 기운의 량으로 보아 세 명의 힘이 전부 들어있는 게 분명했다.이건 베르 일행이 전력을 건 최후의 일격이었다.쾅!한 자루의 검과 한 개의 방망이가 충돌하며 눈부신 불꽃을 일으켰다.폭발적인 에너지가 주변에 퍼져나가며 양측은 잠시 균형을 이루었다.세 사람의 실력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막았다! 얼른 보트 준비해, 후퇴한다!”베르의 창백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비틀거리며 일어나 부하들에게 소리쳤다.루카와 슈카 역시 서로 부축하며 일어섰다.이미 힘이 고갈된 지라 그들의 얼굴엔 혈색도 없었고, 기운조차 미약했다.더 이상의 싸움은 무리였다.“하압!”염구준은 팔에 힘을 주어 금강 방망이를 밀어내려 했지만, 방망이가 꼼짝도 하지 않는 걸 발견했다. 이 전법은 오묘했다. 상대방이 시전하고 조종하지 않아도 타겟을 쫓아 움직이는 것처럼 홀로 움직였으니까 말이다.이대로라면, 몸이 먼저 나가떨어질 판이었다.베르는 떠나기 전에 염구준을 보며 독한 말을 남겼다.“염구준, 자만하지 마라. 스텔라성은 아직 남아 있으니까. 돌아가서 강자들을 전부 불러와 널 죽여주지.”“돌아갈 수 없을 겁니다.”얼음처럼 차가운 염구준의 목소리에 모두가 몸을 살짝 떨었다.이미 흑풍의 사태로 배운 바가 있었기 때문에 염구준은 적을 쉽게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흥, 말은 누구나 하지. 하지만 나중에 지키지 못하면, 네 얼굴에 침 뱉는 꼴이 될 걸?”베르는 비웃으며 염구준의 말을 맘 속에 담아두지 않았다. 자신의 필살기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염구준은 검을 쥔 양손을 살짝 옆으로 움직이며, 손을 놓았다.우웅!그러자 구자검은 더 이상 금강 방망이와 대치하지 않고, 잔상을 남기며 쏜살같이 전방을 향해 날아갔다.같은 시각에 금강 방망이 역시 미친 듯한 속도로 염구준의 왼쪽 가슴을 향해 돌진했다.이건 자신의 목숨으로 적의 목숨을 바꾸는 방식이었다.꽈악!염구준
“염 선생님, 저희가 가서 막을까요?”노신기는 갈등하며 조심스레 물었다.비록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염구준 덕분에 얻은 것이 많았기에 돕고 싶어서였다.“아니요. 그냥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염구준은 단호하게 거절하며 대형 방패를 계속 내리쳤다.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노신기 일행의 실력으로는 개입해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염구준은 잘 알고 있었다. 가봤자 죽을 게 분명하다는 것도 말이다.한편, 전장의 중심에 선 세 사람은 자신들이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해있으며, 살려면 스스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죽을 각오로 덤벼!”쾅!베르의 눈엔 살기가 가득했다. 손에 쥔 대형 방패는 마침내 한계에 도달하며 산산이 부서졌다.그의 피로 물든 두 손에는 어느새 짧은 단검이 들려 있었고, 그는 그것으로 염구준의 가슴을 향해 휘둘렀다.하지만 날카로운 칼날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건 얕은 두 줄의 상처뿐, 역시 깊이 파고들지는 못했다.일반적인 공격은 염구준에게 통하지 않았다. 과거, 염구준이 육체의 한계를 돌파한 리아성전의 전주를 쓰러뜨린 것도 필살기와 정제된 진기 덕분이었었다. 심지어 한 번에 쓰러뜨린 것도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싸웠었다.육체가 극한으로 강해진 상대를 쉽게 이긴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염구준은 베르를 걷어차 밀어낸 뒤, 곧바로 루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세 명을 상대할 때 가장 확실한 방식은, 하나씩 쓰러뜨리는 것이었다.“젠장!”염구준이 갑자기 타겟을 바꿀 줄 몰랐던 루카는 급히 막아섰지만 한 칼에 밀려났고 이어진 두 번째 공격에 부상을 입고 말았다.강자들의 승부는 한 수, 한 수가 치명상이라 조금의 방심도 용납되지 않았다. 자칫하다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베르는 상황이 좋지 않음을 직감하고 이를 악물며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삼절진을 쓰자!”두 형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베르 뒤로 이동한 뒤, 손을 그의 등에 얹었다.이 필살기에 승패가
베르 세 사람을 포함해 이 싸움을 지켜보던 반보천인들조차 염구준이 쓰는 게 무슨 전술인줄 몰라 어리둥절해졌다.방어를 완전히 포기하고 정면으로 달려드는 행위는 자살이나 다름없으니까 말이다.“건방지긴!”“내가 막을 테니 너희는 죽을 힘을 다해 공격해!”이에 베르의 일그러진 얼굴에는 약간의 기쁨이 섞였다. 그는 달려오는 염구준을 보며 포효하듯이 명령을 내렸다. 해저에서의 전투 경험에 의하면, 그는 자신이 특별히 제작한 대형 방패로 염구준의 공격을 최소 서른 번은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쾅!그러나 시작에 불과한 염구준의 첫 공격에 베르는 몇 걸음이나 밀려났고, 방패엔 반 치 정도 깊이의 칼자국이 선명히 새겨졌다.이 방패는 염구준의 공격을 막기 위해 베르가 특별히 주문 제작한 거라 다른 것보다 더욱 단단하고 두꺼웠다.텅텅!루카와 슈카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동시에 염구준의 옆구리를 향해 칼을 박아넣었다.손목에 힘을 잔뜩 실은 터라 염구준의 호체진기를 가뿐히 뚫었지만 몸에는 옅은 상처밖에 내지 못했다.아무리 힘을 더 실어도, 더 깊숙이 찌를 수가 없었다.“육체의 극한까지 도달했다고?”싸움을 지켜보던 반보천인들은 일제히 감탄을 내뱉었다.두 명의 최강 반보천인의 공격을 오직 맨몸으로 버텼다는 것부터 염구준의 육체가 이미 극한까지 도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쾅! 쾅!염구준은 루카 형제의 공격을 거의 무시한 채, 계속해서 베르에게 맹공을 퍼부었다.공격이 계속 되면서 방패에는 칼자국이 점점 더 많아졌고, 베르도 연달아 밀려났다. 이 엄청난 충격력에 그의 손바닥은 결국 찢어져 버렸고, 상처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공격 안 해? 밥 안 먹었어?”베르는 체내의 기혈이 요동치는 것을 느끼며 방패를 들고 소리쳤다.그제야 그는 그가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 했음을 깨달았다.‘방패가 30번의 공격을 버틴다고 해도 내가 버티지 못해.’염구준의 몸이 반보천인의 극한에 다다른 이후, 방어력 뿐만 아니라 힘도 강해져서 전보다 공격이
모두가 향유고래의 위를 보고 눈이 커졌다.기뻐하는 사람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었다.사람과 고래가 마음을 합쳐 수많은 고난을 뚫고 마침내 위험천만한 해저 심연에서 빠져나온 거다.그 과정의 험난함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노신기는 드디어 마음이 놓였다는 듯, 기뻐하며 입을 열었다. “염 선생님, 돌아가시지 않으셨군요?”말을 내뱉은 후, 그도 이상함을 느꼈지만, 이미 말을 마친 후라 뭐라고 바꿀 수도 없었다. “어... 네, 살아있긴 합니다.”염구준은 대수롭지 않게 답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냈다.솔직히, 좀 웃긴 질문이었다.조금 떨어진 곳에서, 완전히 멀쩡한 염구준을 본 베르는 숨이 턱 막혔다.“염구준, 너...”깊고 깊은 바다 밑에서 화산 폭발과 함께 대지진이 일어난 상황에, 잠수 장비도 없다는 건 그냥 죽음을 의미했다.하지만 염구준은 그 위기 속에서 향유고래를 몰아 드라마처럼 살아 돌아왔다.베르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다.“진정해, 나이도 있는데 괜히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와서 그 자리에서 죽으면 곤란하잖아.”염구준은 베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로 열받아서 죽어버리길 바라는 눈치였다.서로 죽이려 드는 사이끼리 예의는 사치일 뿐이었다.“흥! 바다 밑에선 겨우 살아남았을지 몰라도, 여기선 끝이다.”“루카, 슈카! 저 녀석을 죽여라!”베르는 참지 못하고 이를 악물고 염구준을 가리켰다.휙휙.하지만 그 두 형제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빠르게 몸을 뒤로 빼며 보트를 밟고 전함 위로 훌쩍 올라가 버렸다.“부성주님, 저 녀석은 강하니 부성주님께서 직접 나서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입에 발린 소리로 한껏 띄워주니 베르도 그들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셋이 하나를 상대하는 상황임에도 정작 그의 마음속엔 불안감만이 가득했다.염구준의 강함이, 그에게 공포로 다가왔기 때문이다.염구준은 검을 들고 베르를 향해 겨누었다.“이제 끝을 보자.”이제 거의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으니, 갚을 원한은 갚고, 끝낼 일은 끝낼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