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합니까? 민현 님은 민씨 가문의 최강자입니다. 절대 질 리가 없어요!”그의 대답에 일부는 받아들일 수가 없어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귀찮아. 나보고 말하라고 했으면서 말해도 안 믿을 거면 왜 물어본 거야?’“제가 반보천인이고 공무적이 중상을 입게 만든 게 그 근거입니다.”생각을 마친 그는 짧게 대답한 뒤, 사람들을 무시하고 다시 싸움을 지켜보았다. 격이 달라서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 30분이 더 지나자, 상황이 달라졌다.민현과 대장로가 근접한 거리에서 싸우고 있을 때, 대장로가 갑자기 붉은 끼가 섞인 진기를 내뿜은 것이다.‘저게 사술이 아니면 뭐겠어?’비록 거록 존주만큼은 강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상당한 시간을 들여 수련을 했음은 확실했다.‘헛걸음 안 했네. 내 생각이 맞았어. 민씨 가문에 역시 거록 존주와 결탁한 이가 있었던 거야.’‘그리고 적혈석은 사술과 바꾼 물건이겠지.’생각을 마친 염구준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끝났네.”그는 싸움을 보면서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쾅!대장로는 기운을 최대로 끌어올려 기회를 보고 단 몇 차례의 공격만으로 민현을 쓰러뜨렸는데, 이렇게 빨리 쓰러뜨릴 수 있었던 건 대장로의 공격이 압도적으로 강해서가 아니라 익숙했던 이가 갑자기 공격에 변화를 준 것이 치명적이여서였다.“죽어라!”대장로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상대방을 처리하기 위해 마지막 일격을 날렸고, 민현은 마술 천을 급히 들었으나 대장로의 공격을 막을 수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쾅!그러나 이 위급한 상황에서 염구준이 갑자기 두 사람 사이에 나타나 대장로의 공격을 막았다.“제가 막아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대장로님께서는 일족을 죽인 일로 한평생 후회할 뻔 하셨습니다.”상대방을 죽일 절호의 기회를 이렇게 놓치자 대장로는 표정이 매우 어두워졌지만 그래도 염구준의 말을 이어갔다.“맞습니다. 방금 전에 공격을 멈출 수 없어서 저도 놀랐는데, 덕분에
“그럼 염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무슨 계획이든 제가 전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민현은 겸손하게 말했다.염구준은 이미 마음속으로 세워 둔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을 듣자마자 민현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물었다.“최근 민씨 가문에서 실종된 사람이 있습니까? 특히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 말입니다.”거록 존주와 비슷한 사술을 익히려면 반드시 정혈을 써야 했는데, 무공을 익혀야 하는 은세집안의 사람들의 정혈은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없습니다!”민현은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정리하다가, 다시 말했다.“아, 하지만 최근 대장로가 미친 듯이 사람들을 파견하긴 했습니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건 저 뿐이었고요.”‘이렇게 되면 말이 맞아.’염구준은 대장로의 수법에 감탄했다. 임무를 변명으로 아무도 모르게 사람들을 몰래 숨겼으니까 말이다.“민가진에 사람을 가둘 수 있는, 버려진지 오래된 장소가 있습니까?”대장로에게 당한 사람들은 그를 나락으로 보낼 수 있는 관건적인 요소였다.민현은 머리를 한 대 치며 급히 대답했다. “있긴 있습니다. 마을의 북서쪽에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산 위에 고대에 지어진 지하 감옥이 하나 있습니다.”“그렇다면, 그곳에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수련하기 편리하기 위해 너무 멀리 숨기지는 않았을 테니까요.”염구준은 일어나면서 어두운 바깥을 보며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염 선생님,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이를 본 민현이 빠르게 그의 뒤를 따랐다.“괜찮습니다. 제가 돌아오기 전까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세요.”염구준은 말하며 문을 열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올 때부터, 그는 길을 미리 파악해 두었었다. 민가진의 북서쪽에는 산이 하나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곳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한편, 산파산.덩굴로 가려진 동굴 입구에는 보초를 서는 사람이 두 명 있었는데, 그들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허세를 부리고 있었다.“아이구, 이런 외진 곳에 사람이 올 리가 없는데, 왜 여길 지키고 있으라는 거
모두가 일어나려고 할 때, 염구준이 손을 들어 막으며 그들을 말렸다.“나가기는 해야 하지만, 대장로를 고발하기에는 아직 이릅니다.”‘이르다고?’염구준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의아해했다. 이런 일에 시기 따위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염구준은 다시 차근차근 그 이유를 설명해주었고, 전부 이해를 한 사람들은 자리에 앉아 기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어두운 지하 감옥에 들어오는 빛은 변하지 않았지만 시간은 조금씩 흘러가고 있었다.날이 화창하게 개이고, 해빛이 반짝이는 정오, 오늘은 민씨 가문에게 있어서 경사날이었다.민씨 가문의 대장로는 오늘 가주 자리에 오르는 취임식을 하기 위해 사당에서 준비하고 있었다.이 모습을 본 일부는 기뻐했고, 또 일부는 슬퍼했으나 민현만은 마치 뜨거운 가마 위의 개미처럼 계속해서 주변을 살피며 염구준의 모습을 찾았다.고개를 들었는데 상대방의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마다, 그의 마음은 점차 가라앉기만 했다.“새 가주님이 오르셨으니, 모두 절을 하시길 바랍니다.”의식은 간단했다. 조상의 신주 앞에서 절을 하고, 가주의 자리에 앉으면 민씨 가문의 새로운 가주가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의식을 마친 대장로는 의자에 앉자마자, 민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민현, 가문의 보물인 적혈석을 내놓아라.”“저에게 있지 않습니다. 염 선생님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민현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민현은 이 핑계로 위기를 넘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대장로가 파놓은 함정이었다.대장로는 곧바로 표정을 굳히고 싸늘하게 말했다. “가문의 임무를 완성하지 못하고 가보를 잃어? 그게 얼마나 무거운 죄인지 아니?”대장로에게 있어서 민현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빨리 제거해야 했다.즉, 조금이라도 꼬투리를 잡을 게 있으면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질 거라는 거다.“저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염 선생님께서 오시면 모든 게 명백해질 겁니다.” 민현은 대장로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조심해!”민현은 대장로의 공격 궤적을 보고 큰 소리로 외치며 입구쪽으로 달려갔으나 이미 늦었음을 직감했다.대장로의 목표는 염구준이 아니라 잡혔다가 나온 민씨 가문 사람들이었다.“하, 내 눈앞에서 증인들을 죽이려고 해? 너무 순진하네.”염구준은 말을 하면서 주먹을 쳐내 대장로의 장풍을 막아냈고, 두 공격이 충돌해 생긴 기운에 사당 안의 사람들 대부분이 제대로 서 있지 못 하고 휘청거렸다.대장로의 계획은 치밀했다. 증인들을 죽인 뒤, 거짓말을 지어내려고 했으니까 말이다.민씨 가문의 사람들은 당연히 그를 믿을 테니 증인들만 없으면 어떻게 말을 지어내도 의심을 살 일이 없었다.“흥, 그렇다면 먼저 너부터 죽여주마!”대장로는 마술 천을 꺼낸 뒤, 가장 강한 진기를 내뿜으면서 염구준을 향해 달려들었다.상대방이 공무적을 중상을 입힌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는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바로 사술을 쓰는 걸 보니, 목숨 걸고 덤벼볼 작정인가 보네.”염구준은 붉은 빛이 맴도는 기운을 보며 마찬가지로 진기를 내뿜으면서 정면으로 돌진했다.대장로가 뿜어내는 진기는 사술을 익힌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거였지만 민씨 가문의 사람들은 이를 모르기 때문에 그저 대장로가 신기한 무공을 익혔을 거라고 여겼다.쾅! 쾅!두 사람의 격돌이 몇 차례 이어지며 강렬한 에너지가 터져나왔고, 사당 안에 있던 사람들 중, 무공이 약한 사람들은 이에 중상을 입게 되었다.“모두 사당 밖으로 물러나!”이를 본 민현은 고함을 치며 중상을 입고 쓰러진 사람 몇을 밖으로 던져낸 뒤, 자신도 사당 밖으로 뛰어나갔다.중상을 입은 몸이라 가까이에서 관전할 담이 없어서였다.기운을 통해 염구준의 전력이 자신과 싸웠을 때보다 더 강해졌음을 깨달은 그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도대체 저 남자의 한계는 어디까지인 거야? 게다가 아직 병기도 사용하지 않았잖아.”전투는 점점 치열해졌고, 몇 번 되지 않는 공방 끝에 대장로는 열세에 몰렸다.염구준은 조금도 봐주지 않고 전력을 다해 날카롭고,
대장로는 심란한 눈빛으로 손자를 바라보았다.소년은 깊게 숨을 들이쉰 뒤, 대장로를 바라보며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제 할아버지는 미쳤습니다. 일족의 정혈을 사용해 수련을 했어요. 악마나 다름없죠.”“심지어는 저조차도 가만두지 않았습니다.”소년은 자신이 가장 믿고 존경하던 사람에게 상처를 입은 게 제일 고통스러웠다.지하 감옥에 갇혀 있던 동안, 그는 몇 번이나 목숨을 끊으려고 했지만 자신이 죽고 나면 부모님도 할아버지에게 이용당할까 봐 두려워 자살하려는 생각을 그만 두었다.소년의 말이 끝나자, 다른 피해자들도 하나둘 씩 앞으로 나와 대장로의 죄악을 고발했다. 짧은 몇 분 만에 대장로의 이미지는 완전히 무너졌다. 이제 그는 민씨 가문 사람들의 마음속에 더 이상 자애로운 노인이 아닌 악마로 자리잡혔다.피해자들의 말을 들은 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겁에 질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옆으로 몸을 피했다.“아버지, 이게 정말인가요?”이때, 소년의 아버지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흥! 너희가 뭘 안다고! 가문의 부흥을 위해서 누군가는 희생해야 하는 법이야.”대장로는 자신의 논리를 펼쳐 보였으나 도가 지나칠 정도로 잔인한 수단을 사용한 그의 말에 동의할 사람은 거의 없었다.그의 말은 오히려 소년의 말이 사실임을 증명했다.“이제 당신은 더 이상 제 아버지가 아닙니다.”“당신 같은 악마는 저희 가문의 가주가 될 자격이 더욱 없고요.”“모두 함께 저 악마를 없앱시다!”민씨 가문의 사람들은 대장로를 에워싸고 공격 태세를 취했다. 그의 행위가 이미 용서를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지나쳤기 때문이었다.“좋다, 그렇다면 너희 모두를 죽여주마.”“전부 덤벼라!”대장로는 더 이상 변명하지 않고 큰 소리로 외치며 신호를 보냈다.순식간에 사람들 틈에서 수십 명이 움직이더니 옆에 있던 민씨 가문의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그들은 모두 대장로의 측근으로, 대장로가 어린 시절부터 키운 사사들이었다.그렇게 민씨 가문의 사람들은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내부도
“하하, 염구준, 넌 오늘 이곳에서 죽게 될 거다!”대장로의 웃음소리가 주위에서 메아리쳤다. 그는 고생 끝에 만든 이 기문술에서 누구도 자신을 이기지 못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덤벼!”그러나 염구준은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땅을 강하게 차서 철기둥의 꼭대기로 뛰어올랐다.높은 곳에 올라가면 전체를 조망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철기둥의 높이와 독특한 배열이 시야를 완벽히 차단하여 멀리 볼 수가 없었다. ‘이 기문술, 간단하지 않잖아?’염구준은 생각을 마친 뒤, 기둥 꼭대기를 따라 고속으로 이동하며 모든 기둥을 훑었지만 결과는 허탕이었다.‘설마 도망쳤나?’주위가 너무 조용했기 때문에 염구준은 그가 자신을 붙잡아두고 도망간 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었다.“헛된 짓은 이제 그만둬라! 넌 날 찾을 수 없어!”그러나 이때, 대장로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아직 이곳에 있다는 건 내가 아래에 내려가서 싸우길 바라는 건가?’진법 안에 있어야만 기문술이 그 효과를 발휘할 수 있고, 그래야만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에 대장로는 염구준이 얼른 내려오기를 바랐다.휙.생각을 마친 염구준은 말없이 철기둥에서 뛰어내려 진법 안으로 들어섰다.상대방을 쓰러뜨리려면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방이 원하는 장소에서 붙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쾅!그가 제대로 착지하기도 전에 검은 그림자와 함께 마술천이 공격해왔다.이 마술천은 상황에 따라 부드러울 수도, 단단할 수도 있었는데, 매우 특별한 도구였다.기습에도 불구하고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던 염구준은 주먹을 내질러 공격을 막아냈다.이에 마술천이 갑자기 부드러워지더니, 그 뒤에서 대장로가 모습을 드러내며 연달아 공격을 퍼부었다.그러나 정면 대결에서 대장로는 염구준의 상대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곧바로 열세에 처했다.쾅!염구준은 빈틈을 놓치지 않고 대장로를 향해 연속으로 주먹을 날렸으나 주먹은 대장로가 아닌 철기둥에 부딪혔다.‘사라진 걸 보면 또 마술을 부린 건가?’염구
기문술이 깨지고 은폐물이 사라지자, 대장로는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외부 도구가 파괴되었으니 이제 남은 건 그의 본연의 실력뿐이었다.“내 전력을 보여주마.”대장로는 더는 도망칠 수 없음을 깨닫고, 숨기고 있던 힘을 전부 끌어냈다. 그의 진기는 전보다 더욱 붉어졌는데, 이는 염구준의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염구준은 대장로가 또 무슨 술수를 부릴까 봐 얼른 두 주먹을 꽉 쥐고 전력을 다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빠르다!’대장로는 염구준의 속도에 놀라며 필살기를 보일 시간 없이 급히 상대방의 공격을 막았다.쾅!두 사람의 첫 충돌에서, 대장로는 두 손으로 염구준의 주먹을 막았으나 팔이 떨려와 온전히 막을 수가 없었다.그가 자랑스럽게 여기던 붉은 진기는 겉만 번지르르하고 그가 기대하던 것처럼 강한 힘을 내지 못했다.“이게 네가 전력을 다 한 거냐?”대장로는 몇 걸음 밀려나서야 염구준의 공격을 완전히 막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진기는 이미 절반 이상이 소진된 상태였다.“전력은 아니야. 난 아직 검도 쓰지 않았으니까.”염구준은 대답한 뒤, 오른팔에 진기를 모아 대장로를 강하게 밀어내고는 빠르게 달려가 두 손으로 주먹을 날렸다.이번 공격은 전과 달리, 더 강하고 더 빨랐다.대장로는 최선을 다해 막긴 했으나 속도가 따라가지 못해 결국 몇 번 얻어맞게 되었다.“커헉!”이 맹렬한 공격을 대장로의 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대장로 몸의 모든 구멍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그는 검붉은 피를 토해내면서 뒤에 있는 산벽에 부딪혀 금이 가게 만들었다.전투에서 치명상을 입은 대장로는 숨 쉬기도 어려울 정도로 허약해졌다. 더 이상 도망치기는 글렀다는 거다.“거록 존주의 은신처는 어디지?”염구준은 한 걸음씩 다가가며 싸늘하게 물었다.“내가 말하면, 살려줄 건가?”대장로는 조건을 걸기 시작했다. 푸욱.염구준은 손가락으로 검결을 만들어 검기로 상대방의 오른쪽 어깨를 꿰뚫었다.“당신 따위가 지금 나와 협상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목숨을 위협
“미친, 철기둥 미궁이 이지경이 됐다고?”민씨 가문의 사람들은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철기둥들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철기둥 미궁은 대장로의 비장의 카드로, 가문의 최강자인 민현조차도 이 미궁 안에서는 한 번도 승리한 적이 없었다.다만 단점이 있다면 너무 무거워서 어디든 들고 다닐 수 없다는 것이었다.“염 선생님, 혹시 어디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민현은 서둘러 염구준에게 다가갔다.“별일 없습니다. 다만 민씨 가문의 이런 별난 수법들이 꽤 성가시더군요.”염구준은 진기를 풀며 담담하게 대답했다.만약 마술과 기문술이 아니었다면 대장로의 실력으로는 그와 이렇게 오랫동안 싸울 수 없었을 것이다.“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민가진 내의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습니다. 모두 염 선생님 덕분입니다.”“염 선생님께서 민가진에 방문해 주신다면, 감사의 뜻을 제대로 전하고 싶습니다.”민현은 염구준의 실력을 완전히 인정했기 때문에 진심 어린 태도로 말했다.“그러죠. 마침 저도 물어볼 일이 좀 있습니다.”염구준은 말하며 앞으로 걸어갔다.옥패에 관한 일을 그는 계속 신경 쓰고 있었다.‘물어볼 일이 있다고?’이 말을 들은 민현은 순간 어리둥절했다. 일이 다 해결됐는데, 물어볼게 남았다고 하니까 말이다.그러나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일족에게 대장로의 시신을 수습하라고 지시한 뒤 염구준을 따라갔다.대장로라는 악성 종양이 제거되어 민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기뻐했지만, 대장로파에 있던 사람들은 풀이 죽어 있었다.물론 대장로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잘못된 편에 섰다는 사실이 후회되었기 때문이었다.악마 같은 대장로를 맹목적으로 따르다가 하마터면 죽을 뻔했던 걸 떠올리면 그들은 등골이 오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대장로가 사라지자, 가문의 유일한 반보천인인 민현이 자연스럽게 새로운 가주가 되었다.염구준과 민현은 저녁 연회 후 밀실에서 중요한 대화를 나누었다.“이 물건, 본 적 있으시죠?”염구준은 손을 들어 네 개의
그의 재력이라면 대형 수영장을 만들어 향유고래를 키울 수도 있지만 바다가 고래의 고향이라 그러지 않았다.“선장, 고래가 엄청난데 잡지 않아요?”갑판에서 몸이 건장한 흑인 선원이 불만을 토로했다.눈앞에서 헤엄치며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 돈이니 그럴만했다.“독수리, 주둥이 닥쳐!”선장은 아직도 누군가 향유고래에 미련을 두자 버럭 화를 냈다.염구준이 어디 출신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발산하는 기운은 보는 사람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독수리가 염구준을 힐끗 보고는 어쩔 수 없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나머지 선원들도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선장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저기, 아직 볼일이 남았어요?”선장은 염구준이 조용히 앉아 있자 조심스럽게 물었다.“여기서 가까운 부두로 데려다줘요.”염구준은 끝없는 바다를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이곳은 바닷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일단 상륙한 후에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울 생각이었다.“그게…”선장은 난처한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어려우면 말씀하세요. 그렇다고 폭행을 휘두르면서 강요하지 않으니까.”염구준은 선장의 태도가 이상한 걸 눈치채고 분명하게 말했다.선박은 어부들 것이니 강제로 빼앗지 않을 것이다.그의 말에 선장은 솔직하게 말했다.“우리는 고래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해요. 이제 나와서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이대로 돌아가면 손해가 엄청납니다.”그들은 염구준이 무섭지만 돈을 벌지 못해 가족들이 굶는 것이 더 무서웠다.“그런 거라면 어렵지 않아요. 얼마를 원하세요? 육지에 도착하면 내가 줄게요.”염구준에게 있어 돈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100만 달러.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선장은 믿지 않는지 거액의 가격을 부르면서 떠보았다.듣기에 높은 가격이지만 따져보면 수리비용, 연료, 인건비 등등 모두 제외하면 얼마 남지 않으니 합리적인 가격이었다.“이걸로 담보할게요. 어차피 당신네 선박에 있으니까 도망치지 않아요.”염구준은 상대방이 걱정하는 걸 알아차리고 딸에게 선물하려고 주은 주먹
이튿날, 미지의 바다에서 향유고래 한 마리가 헤엄치고, 등에 한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그 사람은 바로 염구준이었다.사방에 온통 푸른 바다라 지금 어느 곳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지금은 고래가 바닷가로 데려가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고래야, 잘 부탁한다.”“우웅!”둘은 서로의 말을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수시로 교류했다.염구준이 눈을 감고 운기조식하다가 배고프면 심해의 눈물로 에너지를 보충했다.신기한 것은 한 방울만 먹어도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뿌우우우웅!그때 멀리서 선박 소리가 들렸다. 염구준은 눈을 번쩍 뜨고 소리를 질렀다.“저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목소리에 기운을 담았더니 쩌렁쩌렁한 소리를 지를 때마다 수면이 음파에 진동하는 것 같았다.어디선가 나타난 선박에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슥!그런데 선박에 다가간 순간, 상대방이 고래를 잡는 쇠고랑을 발사하는 것이었다.염구준은 재빨리 검기로 밧줄을 잘라버렸다.선박은 그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향유고래를 잡으러 온 것이었다.생각하지 않아도 고래의 용연향을 얻기 위함일 것이다.스스슥!선박에 있는 사람들은 고장난 줄 알고 이번에 작살을 던졌지만 역시 염구준에게 잘려서 바다 밑으로 들어갔다.상대방과 가까워지자, 염구준은 그들의 선박에 번쩍 뛰어올라 엄숙하게 경고했다.“멈춰. 아니면 무력으로 대응할 거야.”선원들은 대부분 기운이 없는 평범한 어부였다.그들은 염구준이 먼 곳에서부터 뛰어올라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는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여기서는 고래를 잡는 걸 허락해요.”한참 뒤, 선장은 국제 감독기관에서 온 줄 알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이 고래는 내 친구예요. 어떻게 할지 잘 알겠죠?”염구준은 선장을 노려보며 차갑게 되물었다.“알았어요. 이 사람 말을 못 들었어? 당장 작살을 내려놔!”선장은 상대방이 보통이 아니란 걸 눈치챘는지 바로 선원들에게 지시했다.그러자 당황한 선원들은 정신을 차리고 지시대로 작살을 내려놓았다.염구
감히 그의 전우나 다름없는 고래를 잡아먹으려고 하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만약 향유고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지금쯤 심해 밑에서 죽었을 것이다.“염 선생님, 안 돼요!”당황한 노신기 일행이 다급히 나서서 말렸지만 염구준은 듣지 않았다.그는 요트를 타고 서해충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러 공격했다.“당장 토해!”염구준은 두 손으로 검을 들고 번쩍 뛰더니 위에서 서해충을 자르려고 했다.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고래를 살려낼 것이다.“하악!”뿔난 서해충이 나지막하게 울부짖더니 커다란 입을 벌이고 염구준을 통째로 삼키고는 물속으로 들어갔다.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모두 경악하고 말았다.심지어 천기문의 고위층들도 진정할 수 없었다.“염 선생님!”“안 되겠어. 모든 음성탐지기를 던져!”노신기는 당황한 마음에 맞서 싸우려고 명을 내렸다.유동심연의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이번에 오면서 대량의 음성탐지기를 챙겼었다.그러나 워낙 위력이 강한 무기라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염 선생님, 제발 잘 버텨줘요.’촤아악!이제 막 음성탐지기를 내려놓고 가동하려고 할 때 눈앞에서 거센 물보라가 솟구치는 것이었다.해저 지진으로 거센 파도가 밀려오면서 일으킨 쓰나미였다.“다들 선실로 들어가!”위급한 상황에서 노신기는 어쩔 수 없이 먼저 가문을 지켜야 했다.선박 세 척은 쓰나미에 밀려 먼 곳까지 흘러갔다.한편, 바다 밑은 난리도 아니었다.서해충 체내에 들어간 염구준은 선사 시대의 바다 생물과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그가 공격할 때마다 서해충은 심한 고통을 느꼈는지 커다란 몸집을 꿈틀거렸다.실은 서해충이 삼킨 것이 아니라 그것이 도망칠까 봐 염구준이 스스로 잡혀 먹힌 것이었다.한참 공격하면서 돌진했더니 드디어 향유고래가 있는 곳까지 다가갔다.“구자검법! 검일참공!”그는 기운을 폭증시켜 강력한 살술로 서해충의 몸에 길이가 10미터되는 상처를 냈다.잘린 부위에서 바닷물이 역류하여 들어올 때, 염구
동물의 감각은 때론 인간보다 훨씬 뛰어났다.특히 바다에서 자란 생물이라면, 웬만한 레이더보다도 훨씬 빨리 감지할 수 있었다.쿠쿵!혹시라도 싸울 수 있기 때문에 다들 몸에서 기운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아래쪽에서 뭔가 빠르게 올라오고 있어.”염구준은 날카로운 눈으로 바다밑을 바라보며 말했다. 작은 검은 점 하나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었다.아직 수면까지 오지도 않았는데, 그 그림자는 이미 성체 향유고래와 맞먹는 크기였다.‘설마, 진짜 서해충이 있는 건가?’“목표가 공격 범위에 진입했습니다. 모든 작살 준비 완료했습니다.”대원들은 지시가 떨어지고 나서 3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내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쏴!”노신기는 참을성 없이 바로 명령을 내렸다.‘망했다!’염구준은 말리려고 했지만 결국 말리지 못했다.물속의 거대한 생물체는 어선보다도 커서 자칫하다간 오히려 배가 끌려갈 수도 있었다.슥! 슥! 슥!고래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세 척의 어선에서 수십 발의 대형 작살이 물밑의 검은 그림자를 향해 발사되었다.타겟의 몸집이 컸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살이 정확하게 꽂힐 수 있었다.“끌어 올려!”노신기는 고래 잡이를 할 때 쓰던 방식을 운용하며 숙련하게 명령을 내렸으나 기계를 최대치로 올려도 타겟을 끌어오리지 못했다.이에 조타실에서 다급하게 소식을 전했다.“큰일입니다. 어선이 저것에 의해 유동심연 쪽 소용돌이로 끌려가고 있어요!”배는 엄청난 속도로 끌려갔다. 배 자체가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속도였다.“밧줄을 끊어!”염구준은 노신기의 무전기를 낚아채고 지휘권을 넘겨받았다.“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꽉 감겨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조타실에서 절박한 답변이 돌아왔다.현대식 어선은 전부 인공지능 시스템이라 이 상황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우웅!염구준은 결국 검기를 날렸고, 날카로운 검광이 연달아 번쩍이며, 단숨에 밧줄들을 잘라냈다.이에 배가 거대한 관성에 휘청이며 흔들렸고, 균
오늘 만약 염구준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전부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빨리 항행하라고 하세요. 뭔가 이상합니다.”염구준의 갑작스러운 말에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둥절해졌다. “네, 말하고 오겠습니다!”그러나 눈치가 생긴 사람들은 염구준의 뜻을 알지 못해도 그대로만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어 곧바로 달려갔다.그들은 염구준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염구준은 흡족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면을 바라보며 물었다.“스텔라성의 성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십니까?”이번에 스텔라성의 성주는 두 개의 판을 짰는데, 하나는 겉면으로 보이는 부성주 베르였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숨어있던 노대영이었다. 다른 걸 다 따지고 나서 판을 짠 것만 본다면 정말 훌륭한 계획이었다.그랬기에 염구준은 그를 중시했다.노신기와 아타는 미간을 찌푸리고 서로를 바라본 뒤, 늙은 아타가 입을 열었다. “성주의 이름은 노세입니다. 압도적인 실력의 소유자로, 진 적이 없습니다.”“하지만 지난 20년간, 외부에서는 그의 모습을 본 이가 없습니다. 폐관 중이라는 소문도 있고, 이미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지요.”“그의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라, 저희도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이야기를 들은 염구준은, 오히려 흥분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흐음, 전부 사실이라면 꽤 괜찮은 상대가 되겠군요.”방금, 막 육체의 극한을 돌파한 염구준은 적당한 시험 상대가 필요했다.‘대단해.’주변 고위 간부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염구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만 약간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스텔라성 성주 같은 괴물은, 대부분 기겁하며 피하려 하는데, 정면 승부를 기대한다니까 말이다.“그나저나 염 선생님, 전에 올라오실 때, 인원이 적던데, 혹시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노신기는 다른 걸 얘기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아, 이거 아십니까?”그의 손에는 투명한 비닐에 담긴 작은 물방울이 들려 있었는데, 외부에는 진기가 감돌았다.‘어라?’조금 더
이 독에 중독된 무인은 일시적으로 기운이 흩어지고, 단전이 봉쇄되어, 꼼짝없이 폐인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만약 과다 복용할 경우,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다.“이런 희귀한 독약은 스텔라성 성주가 준 거겠지?”염구준이 흥미롭게 물었다.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진짜 산기봉단을 보았고, 게다가 그 양이 상당했기 때문에 꽤나 관심이 갔다.“맞아. 얼른 저 녀석을 잡아!”노대영은 승리자처럼 손을 휘저으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그는 희귀한 독약인 산기봉단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에휴.”아타 등 사람들은 이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염구준마저 당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이제 구세주가 사라졌으니, 최악의 경우 전부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가서 두들겨 패! 나 아까 진짜 쫄아서 오줌 쌀 뻔했단 말이야!”몇몇이 소리치며 달려들었고, 염구준을 한껏 때려서 화풀이를 하려 했다.반보천인급 고수를 때릴 기회는 흔하지 않으니까 말이다.우웅. 그러나 그 순간, 검광이 번쩍이더니 달려들던 사람들 전부가 쓰러졌다. 그들의 목에는 옅은 혈흔이 있었는데, 상처는 아주 작았지만 모두 목숨을 잃었다.“이 독이 아무리 강해도, 나를 상대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어.”염구준은 조용히 진기를 운용하며, 체내에 남아 있던 독기를 모두 없애버렸다.육신이 이미 반보천인의 극한의 경지에 다다른 탓에 약물 저항성도 엄청나게 강해져 그는 산기봉단 같은 독약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너... 이건 말도 안 돼!”노대영은 절규하듯 외쳤다.희망이 눈앞에서 산산조각 나자, 정신이 붕괴되기 직전이었다.곧 있으면 승리할 수 있었는데, 이젠 그게 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그는 차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스텔라성 성주랑 뭘 꾸민 거지?”염구준은 서두르지 않고 물었다.해독제 같은 건 이제 관심 없었다. 상대가 정직하지 않으니까 말이다.“난 진작 그분의 문하로 들어갔어. 언젠가는 그분이 내 복수를 도와줄 거다!”“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는데, 내가 무슨 잘못이 있어
염구준은 주머니를 집어 들어 곁에 있던 그레이에게 휙 던져주며 분부했다.“먼저 기운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독제를 나눠줘.”“네.”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노대영을 흉악하게 노려보았다.반보천인으로서 이런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게 조금 창피해서였다.노대영은 사태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흘러가는 걸 감지하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할 말이 있습니다.”“해.”염구준은 싸늘한 표정으로, 단 한 마디만 툭 내뱉었다.그레이와 다른 이들이 힘을 회복하고 나면, 그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기에 곧 죽을 이의 유언쯤은 들어줄 수 있었다.노대영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얼른 말을 이었다.“자식으로서 아버지의 원수에게 복수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그래.”염구준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딱히 다른 변수가 없다면, 이 말을 부정할 이유가 없어서였다.‘어라?’이에 주변 사람들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말투로만 보면, 염구준이 노대영의 편을 들어주려는 것 같아서였다.그러나 방금 전에는 또 그들을 구해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염구준이 무슨 생각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노대영은 염구준의 마음을 돌린 줄 알고 속으로 기뻐하며 바로 말을 이었다.“이 도리를 알고 계시니, 그럼 행동에 옮겨도 되겠죠.”노대영은 혹여나 다른 변수가 있을까 두려워 단검을 꽉 쥐고 중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노신기에게 달려들었다.그레이 등이 조금 있다가 어떻게 나올지는 크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복수를 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말이다.쾅!하지만 달려가자마자 염구준의 발에 얼굴을 맞아서 옆으로 나가떨어졌다.그의 코와 입에서는 순식간에 피가 줄줄 흘렀다.“날 가지고 노는 거냐, 염구준!”“허, 내가 나설지 안 나설지 짐작이 안 됐나봐?”염구준은 비웃으며 말했다.그는 노대영의 말을 부정하진 않았지만 상대방의 행위를 몹시 혐오했다.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대놓고 복수하는 건 괜찮지만, 그 아비가 악행을 일삼던 사람이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방식에,
그러나 몸속에 독이 퍼진 탓에 기운을 끌어올릴 수가 없어 모두 답답하게 속만 태울 수밖에 없었다. 노대영이 혓바닥을 자르려고 할 때, 멀리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대영 문주님, 염구준인 것 같습니다!”이름을 듣자마자, 노대영의 얼굴에서 희열이 싹 사라지고, 이내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기습에 성공한 후 바로 도망쳤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고래를 타고 쫓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염구준 한 사람만으로 충분히 그들을 몰살할 수 있었다.“어서 고래잡이 작살이랑 그물 그리고 멀리에서 공격할 수 있는 무기들을 준비해.”노대영의 가슴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급속히 퍼져갔다.허겁지겁 지시를 내리긴 했지만 겨우 쇳조각 몇 개로 염구준을 막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휙휙!염구준은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는 작살, 그물, 조명탄 따위를 보며 입꼬리를 비웃듯이 끌어올렸다.아직 사격거리에도 들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공격을 했기 때문이었다.‘적지 않게 겁을 먹었나 보네.’그는 생각했다. 역시나 첫 번째 공격은 전부 허탕이었다.염구준은 거대한 향유고래를 타고 빠르게 이동했고, 이윽고 두 번째 공격이 시작됐다.커다란 작살 하나가 고래의 머리를 향해 곧장 날아들었는데, 맞으면 죽지 않더라고 심각한 부상을 입을 게 뻔했다.우웅!염구준은 검기 한 줄기를 내보내 날아오던 작살을 두 동강 낸 뒤, 작살에 묶인 쇠사슬 위로 몸을 던져, 빠르게 어선으로 돌진했다.풍덩!향유고래는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속으로 잠수했다.노대영은 염구준이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걸 보자마자 다급히 소리쳤다.“어서, 어서 배에 못 올라오게 사슬을 끊어!”그도 자신이 염구준과 맞서봤자, 단 한 줌의 승산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구자검법, 검일참공!”염구준은 배 위 인원들의 움직임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강한 검술을 발동해 검기를 날렸다.제대로 검기를 축적하진 못했기에, 완벽하게 완성된 검일참공은 아니었고, 약간의 반동
파악!곧이어 물기둥이 하늘로 솟구치며 거대한 향유고래가 염구준과 멀지 않는 곳에 떨어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마치 떠나기 아쉬워하는 듯했다.촤악!염구준은 몸을 날려 향유고래의 머리 위로 뛰어오른 뒤, 세 척의 어선 쪽으로 진기를 날려 물보라 일게 했다.이에 향유고래는 곧장 방향을 틀고, 어선을 향해 빠르게 헤엄치기 시작했다.말이 통하지 않아 이런 방식으로 밖에 교류할 수 없었지만 별로 큰 문제는 없었다.그 시각, 1호 어선은 다른 어선보다 조금 더 시끌벅적했다.노대영은 배의 지휘권을 장악한 뒤, 끝까지 저항한 소수만을 제거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포로로 붙잡아두었다.물론 그가 자비로워서가 아니었다.그저 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어떻게 복수하는지 지켜보게 하기 위해서였다.“대영 문주님, 준비 완료됐습니다. 언제든 시작 가능합니다.”노대영에게 붙은 아첨꾼 하나가 다가와 공손하게 말했다. 이번에 출정한 천기문 문도 중 절반 이상이 이미 노대영 편이었다.쿵!노대영은 부도 갑옷을 입은 채로 웃으면서 팔을 휘둘러 노신기를 바닥에 내던졌다.“악독한 놈. 네가 내 아버지를 죽였으니 난 오늘 아버지의 복수를 할 거다.”며칠 전에 대의를 위해서라면 혈연관계는 얼마든지 끊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은 그저 노신기를 안심시키기 위함에 불과했다. 그의 가슴 속에 맺힌 복수심은 한순간도 식지 않았었다.“하아...”노신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의 창백한 얼굴엔 깊은 후회가 서려 있었다.‘그때 불쌍해 보인다고 해서 검은 머리 짐승을 거두는 게 아니었는데.’그는 생각했다. “모든 일은 내가 벌인 거니까 찢어죽이든, 뭘하든 나한테만 해.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 건드리지 말고.”지금 이런 상황에 이른 이상, 그는 더 도리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전에 이미 노대영에게 그의 출신을 말해주며 그의 아버지가 눈 깜빡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변태 악마라고 말해주었으나 그는 전혀 듣지 않았기 때문에 말해봤자 쓸모가 없다는 걸 알아서였다.스승과 제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