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이 바로 초상비였다.그런데 초상비와 만났을 때 자신을 알아보지 못해서 방금 떠본 것이었다.한참을 관찰한 결과 그를 모른 척 시치미를 떼는 것은 아니었다.어쩌면 머리라도 다쳐서 정말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그때 멀리서 어떤 손님과 초상비의 말다툼 소리가 들렸다.“손님, 계산하고 가셔야죠!”초상비가 일행의 앞을 막았다.“꺼져! 용하의 새끼. 죽고 싶어?”바이크 조끼를 입고 선글라스를 쓴 뚱뚱한 남자가 으르렁거렸다.뒤에 같은 차림새의 일행이 있는 것을 보니 오스크국의 세력인 폭주족 같았다.“상준, 그만둬.”그때 주방에서 외국 여성이 나와 초상비의 옷자락을 가볍게 당겼다.“카리나, 놈들이 매일 와서 공짜로 먹어. 더는 참을 수 없어. 오늘 반드시 돈을 받고야 말겠어.”초상비는 일행을 노려보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용하의 새끼야, 마누라 예쁘다. 우리가 데려가도 되지?”선글라스를 쓴 남자는 초상비를 옆으로 밀치고 카리나의 손을 잡으려 했다.약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공짜로 얻어먹고 다니는 놈들은 국적을 막론하고 어디 가나 존재하는 것 같았다.“내 아내를 건드리지 마!”열받은 초상비가 주먹을 세게 날리자 남자는 면상을 맞고 문밖으로 날아갔다.‘기운을 사용했어.’익숙한 기운에 염구준은 사장이 초상비가 맞다고 더 확신했다.그런데 그가 사용한 기운이 불안정한 것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보스가 죽었어. 저놈에게 복수하자!”일행은 보스의 상태를 살피더니 금속 막대기를 들고 전부 초상비에게 달려들었다.그런데 초상비는 무공마저 잊어버렸는지 카리나를 부둥켜안고 얻어맞고 있었다.전신지상의 고수는 기운을 끌어내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구타를 견딜 수 있다.“멈춰요. 제발 그만 때려요. 누가 좀 도와주세요!”카리나는 울면서 도움을 청했다.하지만 손님들은 싸움에 말려들까 봐 문 밖에 나가서 지쳐보고 있었다.“씨발 년아, 이게 다 너 때문이야!”한 남자가 금속 막대기를 들더니 카리나의 뒷통수를 내리쳤다.슈우웅!그때 바
초상비는 그가 파견한 것이니 끝까지 책임져야 했다.카리나는 초상비의 몸을 살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상준, 괜찮아?”두 사람은 서로 끔찍이 사랑하는 것 같았다.초상비는 아내가 걱정할까 봐 말을 돌렸다.“당연하지. 나 튼튼해서 맺집이 좋아.”“정말 본인이 누군지 모릅니까?”옆에서 지켜보던 염구준이 다가가더니 다시 초상비에게 물었다.그 말에 카리나는 잔뜩 긴장하면서 초상비의 앞을 막았다.“이 사람 기억을 잃어서 예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해요. 제발 놓아주세요. 부탁할게요.”기억을 잃었다는 해석에 모든 상황이 이해되었다.그래서 오랫동안 연락이 끊기고 이상한 메시지까지 보낸 것이었다.“내가 따라갈 테니까 아내는 해치지 마세요.”초상비가 앞으로 나서며 모든 것을 감당하려 했다.“진정하세요. 우리 한 패예요. 그쪽을 찾으려고 이곳에 왔거든요.”예상치 못하게 오해가 커지자 염구준이 바로 해명했다.그러자 초상비가 반신반의한 표정을 지었다.염구준은 어쩔 수 없이 휴대폰을 꺼내 그동안 받은 메시지를 보여줬다.“그쪽한테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나예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어요?”부부가 염구준이 보여준 메시지를 보더니 서로 눈을 마주쳤다.카리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제가 말할게요. 그런데 그 전의 일은 저도 잘 몰라요. 한 달 전에 해변가에서 조깅을 할 때 온몸이 상처투성인 상준을 발견했어요. 그때는 별생각 없이 데리고 집으로 왔는데 상준이 깨어난 순간, 예전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렸더라고요. 그래서 제 곁에 남기고 가게에서 일하게 했어요.”카리나는 염구준이 사랑하는 남편을 데리고 갈까 봐 마음이 초조했다.그 속내를 알아차린 염구준은 강제로 두 사람을 갈라놓지 않고 선택권을 주었다.“그쪽 진짜 이름은 초상비예요. 전에 나를 도와 많은 일들을 해결했어요. 만약 기억을 되찾고 싶다면 내가 도와주고, 여기서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면 평생 쓸 수 있는 돈을 줄게요.”초상비에게 있어 참으로 어려운 선택이었다.혹시나 본인의 과거에 가정이
초상비는 카리나의 두 손을 꼭 잡고 얘기했다.“그럴게. 당신이 어디 가면 나도 따라갈게. 근데 용하에서 국적 취득하는 거 엄청 어렵다고 들었어.”카리나는 웃으면서도 여전히 걱정스러웠다.“그런 거라면 나한테 맡기세요. 그보다 두 사람 축하주를 마시지 못했는데 용하에 돌아가면 다시 결혼식을 올려야 해요.”염구준은 두 사람의 일에 기뻐하며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이번 임무에서 초상비는 진화위복으로 아내까지 얻었다.“염구준, 고맙다. 축하주는 당연히 마셔야지!”초상비는 입이 귀에 걸려 다물지 못했다.“휴.”그제야 염구준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초상비가 무사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이젠 왜 기억을 잃었는지 말해줄 수 있어?”초상비는 전신지상 무술인이지만 경공이 뛰어나고 몸놀림이 괴상했다.이런 그에게 중상을 입힐 정도라면 상대방도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갖춘 고수일 것이다.그제야 초상비는 오스크국에 임무를 수행하러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내가 도착했을 때 모든 일이 순조로웠어. 첫날에 바로 단서를 찾았거든. 손중석은 노엘테크놀로지에서 납치해갔어. 그리고 에빈은 다른 세력들이 납치했는데 구체적인 상황은 아직 몰라. 내가 더 깊게 조사하려고 할 때, 행적이 발견되는 바람에 반보천인 고수 두 명에게 쫓기다가 겨우 목숨을 건졌어. 참, 모든 일은 만능 전당포와 관련 있는 거 같아.”“노엘테크놀로지!”염구준의 추측대로 모든 일은 이 회사와 연관이 있었다.그런데 에빈을 납치한 다른 세력은 또 누군지 알 수 없었다.그들이 일을 크게 벌여가면서 여자를 납치할 이유가 무엇인지 아직 생각나지 않았다.“초상비 삼촌, 그럼 우리 아빠와 엄마는 아직 살아 계세요?”제이든이 자기 부모와 관련된 말이 나오자 다급하게 물었다.“난 살아 계신다고 생각해. 그놈들이 엄청 중시했거든. 아니면 납치하지 않고 바로 죽였을 거야.”초상비가 추측한 것도 염구준의 생각과 비슷했다.그러니 지금 대략 확신할 수 있었다.제이든의 부모는 보통 사람들이 아니고 심지어 어떤 세력
중립국인 오스크국에 군대가 없기 때문에 황실 호위대가 가장 강력했다.호위대에서 한 팀이라고 해봤자 고작 20명밖에 안 되었다.“방금 누가 내 사촌형을 살해했어?”호위대 소대장이 인상을 굳히며 말했다.그제야 염구준은 깨달았다.친척이 죽어서 이렇게 빨리 달려온 것이었다.“네 사촌형이 공짜로 먹은 것도 모자라 약한 사람들도 괴롭혔어. 그런 건 왜 따지지 않아?”누군가 나서서 억울함을 호소한다면 누가 더 염치없는지 하나씩 따져볼 것이다.“흥, 사촌형은 정직한 사람이야. 함부로 모함하지 마. 넌 반드시 정의의 제재를 받을 것이다.”소대장은 시비를 가리지 않고 자기 사람의 허물을 감쌌다.겉보기에 의로운 사람 같지만 솔직히 말하면 위선적인 소인배였다.염구준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저런 개소리를 지껄이는 소대장을 쳐다보았다.“소대장님, 저놈이 주먹으로 우리 보스를 죽였습니다.”그때 도망친 폭주족의 부하가 나타나 초상비를 가리키며 고발했다.“전부 체포해! 반항하면 바로 죽여! 용하의 개들은 봐줄 필요 없어!”소대장은 손을 흔들며 거만하게 명을 내렸다.그가 여기 라틴 마을을 장악하고 있으니 폭주족처럼 횡포하는 놈들이 판을 치는 것이다.염구준은 궁금했다.용하 조상들이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오스크국에서 이토록 용하인들을 미워하는지 알 수 없었다.그 장면을 본 초상비가 싸울 기세로 앞으로 나섰다.본인이 일으킨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생각이었다.염구준이 그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네 아내를 데리고 용하로 돌아가. 나머지 일은 내가 처리할게. 가는 길에 어려운 일에 닥치면 바로 연락해.”초상비가 아내 앞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되었다.“알았어.”초상비는 더는 고집을 부리지 않고 아내를 번쩍 들고 바람처럼 사라졌다.워낙 속도가 빨라서 일반인들의 눈에는 갑자기 허공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무술인이야!”정체를 알아차린 호위대 소대장은 미간을 찌푸렸다.하지만 이미 늦었다.병사들은 말리기 전에 벌써 돌진하여 염구준을 공
“조사받기 싫어.”염구준은 제자리에 서서 단호하게 거절했다.“그럼 조사는 없던 걸로 하겠습니다. 편하신 대로 하세요. 우린 철수한다!”호위대 소대장은 한마디만 남기고 바닥에 쓰러진 부하도 상관하지 않고 떠나버렸다.그 순간 날개를 달아서 이곳을 떠나지 못한 것이 원망스러웠다.“거기 서. 너 방금 용하를 모욕했어. 무릎 꿇고 사과해.”염구준은 미약한 기운을 뿜으면서 조건을 제시했다.이미 그를 건드린 이상 이렇게 곱게 보낼 리가 없었다.타닥타닥!호위대 소대장은 걸음을 멈추더니 일그러진 표정으로 염구준을 돌아보았다.“선을 넘지 마세요. 많이 양보하고 참았습니다. 그러니까 호의를 무시하지 마세요.”염구준은 어처구니가 없었다.“참았다고? 실력이 없으면서 착한 사람인 척 연기하지 마.”만약 호위대의 실력이 강했다면 염구준과 초상비는 외국에서 살해당하고 시신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아무리 그래도 우린 황실 호위대 정영병입니다. 선을 넘으면 가만 있지 않습니다.”호위대 소대장의 가식적인 가면이 드디어 벗겨졌다.그는 성난 황소처럼 염구준을 향해 공격했다.상대방의 기운을 감지한 염구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정진왕자 실력이네. 한참이나 멀었어.”말이 떨어지는 동시에 염구준은 허공에 주먹을 날려 소대장을 단번에 쓰러트렸다.소대장의 기세는 대단하지만 실력이 너무 약해서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뭐 하는 짓입니까? 나를 죽이면 사령관님이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염구준이 점점 거리를 좁혀오자 소대장이 위협했다.탁!염구준은 한손으로 소대장의 멱살을 잡고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너 같은 인간 잘 알아. 가서 윗선에 보고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포위하러 오겠지. 그러니까 지금 너희 사령관한테 보고해. 내가 한번에 해결할 수 있게 말이야.”소인배의 복수는 하루에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염구준의 말을 들은 소대장은 어안이 벙벙했다.당당하게 사령관에게 도발하는 사람은 염구준이 처음이었다.라틴 마을, 황실 호위대 소부대의
염구준은 일어서서 먹다 남은 과일을 쓰레기통에 툭 던지고 밖으로 나갔다.지인이라는 말에 병사들은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염구준이 사령관과 지인일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밖에 나간 염구준은 전방을 둘러보았다.본부대에서 13명이 출동했는데 전부 사령관 출신들이었다.더 상세하게 말하자면 대장 한 명이 만 명의 병사를 거느렸으니 13만 명이 오스크국의 모든 전력이었다.“염구준?”사령관 네카일이 염구준을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왠지 머릿속이 복잡해 보였다.“제법이야. 당신도 반보천인 고수가 되었네.”염구준은 상대방의 기운을 감지하고 칭찬부터 했다.예전에 전쟁터에서 만난 네카일은 실력이 가장 약했던 일원에 속했다.“사령관님, 이 사람은 누굽니까?”한 대장이 두 사람의 관계가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물었다.“너희들이 상관할 일이 아니다. 저 사람을 건드리면 안된다는 것만 기억해.”네카일은 정영병들이 충격을 먹을까 봐 케케묵은 옛날 이야기는 하지 않고 경고만 주었다.그때는 네카일이 오스크국에 오기 전이었다.어떤 분쟁으로 인해 그가 소속된 세력과 염구준이 전투를 벌였는데 거의 전멸되었다.지금 그는 떳떳한 반보천인 고수로 거듭났지만 감히 그에게 복수하러 가지 못했다.왜냐면 본인도 강해졌는데 상대방이라고 제자리 걸음을 한다는 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염구준은 그들의 대화를 무시하고 말했다.“오늘 확실하게 할 말이 있어서 당신들을 불렀어.”“듣고 있으니까 말해.”네카일은 기운을 거두고 대장들에게 공격하지 말라는 손짓을 보냈다.그에게 염구준이라는 존재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악몽에서 시달리게 한 악마와 같았다.그런데 이런 곳에서 또 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내가 정당방위로 사람 한 명을 죽이고 당신 대신 부하들을 참교육을 했어. 나랑 끝까지 싸우고 싶다면 지금 빨리 끝내자. 지금 싸우지 않겠다면 나중에 내가 떠날 때 귀찮게 할 생각하지 마.”염구준이 어떻게 나올지는 그들의 선택에 달렸다.지금 그는 킬러들에게 감시당하고
그들이 떠난 뒤, 남은 사람들은 두 그룹으로 나누어져 싸우기 시작했다.“적 앞에서 오스타국 황실의 위엄을 도전하는데도 싸우지 않고 물러서다니, 겁쟁이도 아니고 뭐하는 겁니까?” 부사령관은 자신의 뒷배경을 믿고 네카일을 질책하기 시작했다.“그건 오스타국을 위해서 한 행동이었어. 그리고 난 사령관이다. 말투 조심해.” 하지만 네카일은 물러서지 않고 기운을 내뿜으며 상대방에게 위압감을 주었다.그가 외부인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우 따위는 받지 않았을 것이다.“위엄이 대단하시네요, 사령관님. 이 일 황실에 반드시 고발하고 말 테니, 기대하세요.” 이에 부사령관은 더 이상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자신의 편을 데리고 떠났다.한편, 오스타국 황실, 친왕의 성.성 안에는 금빛 궁정 의상을 입은 채로 황금 좌석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며 왕의 기개를 드러내는 노인이 한 명 있었는데, 그가 바로 황실에서 가장 권력 있는 친왕 중 한 명이자, 황실호위대의 책임자인 알렉스 에드로였다.“친왕님, 네카일이 비밀리에 용하국인과 결탁하여 동족을 해쳤습니다. 아마도 배신자인 것 같습니다.”그의 아래에서는 부사령관이 무릎을 꿇고 고자질을 하고 있었는데, 물론 모두 허무맹랑한 말들이었다.“그 용하국인의 이름이 뭐지?” 그러나 에드로는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물었다.그가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든 신중하게 처리하는 성격 때문이었다.“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좀 강해 보이긴 합니다만 두려워할 수준은 아닙니다.” 부사령관은 곧바로 대답했으나 일부 사실은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에드로가 자신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굳이 따로 조사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에드로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런 거짓말을 해도 벌을 받을까 봐 두려워하지 않았다. “역시 외부인은 외부인이군. 그렇게 잘해뒀는데도 배은망덕하기는. 그럼 이젠 네가 그 녀석 대신 사령관을 맡으렴.” 에드로는 말하면서 금빛 명패를 던졌다.부사령관은 재빨리 받으면서 크게 좋아하며 연신 감사인사를
“구준 씨, 일 보러 안 가도 괜찮아?”“가서 이야기하자. 이 며칠동안 되게 드라마틱한 일들이 많았거든.” 염구준은 혹시나 도청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서둘러 말하지 않았다.“응!”손가을은 남편과 함께 하는 게 기뻐 상대방의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습을 보고있던 사람들은 염구준 부부의 애정 과시에 며칠이나 밥을 먹지 않아도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제이든 역시 두 사람 사이에 끼지 않고 얌전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그런데 바로 이때, 두 사람 뒤에서 단정한 옷차림에 비싼 수트를 입고 두꺼운 안경을 쓴 중년 남성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가을 씨, 이 남자는 누구죠?”그의 말투에는 불쾌한 기색까지 담겨 있었다.염구준은 상대방의 말을 듣자마자 화가 나서 손가을이 대답하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저는 가을이의 합법적인 남편입니다. 딸도 있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요.”상대방이 멀리 꺼지게 하기 위해 염구준은 일부러 그의 신경을 건드리며 말했다.이를 눈치 챈 손가을은 잘 협조하기 위해 고개를 염구준의 어깨에 기대며 부부의 화목함을 자랑했다.그녀는 이미 안세환에게 질릴만큼 질렸다. 계속 다가와서 말을 걸어놓고는 또 오만한 태도를 보이니까 말이다.“그쪽은 뭐하는 분이시죠? 가을 씨 같이 좋은 와이프를 얻을 수 있는 분 직업이 궁금해서요.”안세환은 여전히 오만한 태도로 말했는데, 그의 표정에서는 약간의 경멸도 느껴졌다.용하국 신에너지 분야의 탑 연구원으로서 그는 이 업계에서 가장 유명했으며 연봉도 몇십억을 넘었다.“전 일 안하고 집에만 있어요. 다만 가을이는 이런 절 무척이나 사랑한답니다. 짜증나죠?”염구준은 말하면서 한 손으로 손가을의 어깨를 감싸며 친근감을 드러냈다.옆에 있던 주작은 웃음을 참으며 속으로 염구준이 매우 짓궂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이 어떤 점에서 화가 날지 파악하고 일부러 자기 이미지를 구겼으니까 말이다.이 말을 들은 안세환은 역시나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는 두 사람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
스스로 조소하던 로사는 카트 아래에서 가운을 꺼내 몸을 감쌌다.상대방이 이런 취향이 아닌데 계속 이러고 있으면 오히려 반감만 생긴다.솔직히 처음으로 당당하게 남자를 유혹하려 하는데 단번에 거절당해서 매우 부끄러웠다.한참이 지나도 말을 하지 않자 염구준이 소녀의 생각을 추측했다.“내가 대신 복수해줘? 탈출시켜줘, 아니면 무공을 알려줘?”“전부 다요!”로사는 그가 전부 맞힐 줄은 상상도 못했다.염구준은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이 미리 쓴 원고를 던지며 말했다.“거기에 적힌 대로 하면 무공을 터득할 수 있어. 나머지는 너를 도와줄 의무가 없어.”그가 이렇게 호의를 베푸는 것은 소녀가 정말 무공을 배우기에 적합한 인재이기 때문이었다.로사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래도 강요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그럼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어요?”“말해.”마침 염구준도 시간이 있기에 로사의 말을 들어주고 나중에 복수하는 것을 포기시킬 생각이었다.그러면서 음식을 먹는 것을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로사는 일단 생각을 정리하고 조리 있게 말하기 시작했다.“난 고아예요. 아주 어릴 때 고아원에 들어갔었죠. 그곳은 낙원일 줄 알았는데 원장이 나를 신비한 조직에 팔아버렸어요. 나랑 함께 그곳에 간 아이들은 혹독하고 잔인한 훈련을 받으면서 피비린내 진동하는 살인 도구로 살았어요.”“그러다 반 년 전에 내가 조직의 두목을 죽이고 도망쳤어요. 그곳을 이가 갈리도록 원망해요. 선배님은 실력이 강한 무술인이란 걸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어요. 나를 가엽게 여기고 옆에 하인으로 있게 해주면 안 돼요?”예상하지 못한 말에 염구준은 흠칫 놀라더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만약 네 말이 사실이라면 사정이 딱하긴 해. 그렇다고 난 도와주지 않아.”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지만 로사는 용하인이 아니기에 더더욱 도와줄 이유가 없었다.그리고 곁에 하인을 두면 귀찮은 일만 생기기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무공 수련법 한 장을 준 것도 의리를 다한 셈이었다.“그래도 나를 구
염구준은 육신이 극한에 도달한 이후로 공격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너… 악!”촤아악!바다의 유령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비수를 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순식간에 뒷목에 서늘한 것이 스치는 것을 느끼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버렸다.나머지 여섯 명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피바다에 고꾸라졌다.“내가 준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자신을 탓해.”염구준은 검을 한바퀴 돌려 피를 털어버리고 검갑에 집어넣었다.그 동작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깔끔했다.“다… 당신 사람을 죽였어.”먼 발치에서 사람이 죽는 장면을 본 선장은 너무 놀라 주저앉았다.로사는 그나마 무덤덤하고 나머지 선원들도 많이 놀랐는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솔직히 일곱 명의 무술인이 어떻게 죽었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은혜도 모르는 놈들 죽어 마땅하지 않아요?”염구준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이런 악당들이 죽으면 아무도 자신들을 해치지 않아서 기뻐해야 할 마당에 선장은 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보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그… 그래도 사람이잖아요.”이제 보니 선장은 그동안 잔인하게 고래를 잡았으면서 사람에게 관대했다.만약 염구준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로사는 비참하게 당했을 거고, 선장 일행은 비참하게 죽었을 것이다.그때 독수리가 기회를 잡고 맞장구를 쳤다.“저 사람들은 당신을 노리고 왔어요. 그러니까 오히려 우리가 억울하게 당한 거라고요. 당장 우리 선박에서 내려요!”“…”독수리의 말에 선원들은 경악하며 쳐다보았다.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정말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촤아악!염구준이 인상을 찌푸리며 날카로운 검기를 내리치자 다들 너무 무서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안 돼요. 아직 아이란 말이에요.”분위기가 살벌해지자 로사가 반쯤 드러난 가슴을 감싸고 독수리의 앞을 막았다.구자검의 검기는 소녀의 옆을 스쳐 바다 표면에 물보라를 일으켰다.염구준은 공격하지 않고 협박투로 말했다.“또 나한테
드디어 구명보트를 탄 일행이 선장의 도움으로 선박으로 올라왔다.모두 여덟 명으로 그동안 먹지를 못했는지 몸은 수척해지고 탈수 증상이 있었다.“주방에서 음식들 갖고 와. 그리고 링겔을 놔줘.”선장은 일행은 관찰한 후 응급처치를 하기 시작했다.“그런데 음식은 그분한테 줘야 하는데요.”염구준을 무서워하는 선원 한 명이 작은 소리로 일깨워주었다.그러자 선장이 엄숙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일단 이 사람들 주고, 다시 만들어서 보내면 돼.”만약 염구준이 있었다면 일행을 전부 알아보았을 것이다.두 시간의 응급처치를 거쳐서 여덟 명은 드디어 혈색이 돌아왔다.아직 몸이 많이 허약하지만 그래도 목숨을 부지해서 참 다행이었다.“큰일은 없으니까 한동안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선장은 웃으면서 선원들에게 안으로 모셔서 쉬게 하라 일렀다.모두 마음이 어진 어부들이라 바다에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보고도 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지금이야!”바로 그때, 돌변상황이 발생했다.구조된 일행 중에서 누군가 소리치자 여덟 명이 동시에 기운을 끌어올려 선원들을 공격했다.평범한 선원들은 저항하지도 못하고 단번에 제압당하고 말았다.“악!”로사는 모두가 방심한 틈을 타 종사지경에도 도달하지 못한 무술인의 목을 베었다.그런데 방금 공격으로 이미 기진맥진했다.“대장, 여자가 있어.”“가만히 있어. 내가 상대할게.”그들은 동료가 죽은 것도 개의치 않고 모두 로사의 몸매만 쳐다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쿵!대장이라는 무술인이 기운을 폭발시키더니 갑자기 덮쳐서 로사를 제압했다.“발버둥쳐. 반항해 봐. 그럴수록 더 흥분되니까. 하하하.”이렇게 혈기왕성한 모습이라니, 방금 전에 죽을 것처럼 시들시들하던 인간 같지 않았다.그 장면을 본 선장은 가슴이 칼로 에이는 것 같았다.지금까지 어부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이런 악당들을 만났다.“너희들 뭐하는 짓이야? 방금 우리가 너희를 살렸어.”선장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놈들의 행위가 이해되지 않았다.“우리를 구했다고?
“맞아.”염구준은 소녀의 몸에서 악한 기운을 느꼈지만 덤덤하게 말했다.기운만 보아도 사람 몇 명을 살해한 것 같았다.“날 잡으러 왔어요?”로사는 비수를 꽉 쥐고 또 물었다.“아니야. 길이나 안내해.”염구준이 그 사이 소녀를 관찰한 결과, 무술을 배우기에 좋은 재목이었지만 아쉽게도 인도할 스승이 없었다.두 사람은 오늘 처음 만났으니 더는 소녀의 일에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휴, 무례하게 대해서 죄송해요.”그제야 로사는 비수를 넣으며 사과했다.소녀는 앞장서 가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방금 싸우려는 자세만 봐도 건장한 남자를 상대하는 것은 문제없어 보였다.선장 침실에 도착하자 로사는 이불을 바꾸고는 한마디만 하고 떠났다.“쉬세요. 음식이 되면 여기로 가져다 줄게요.”“그래. 볼일 봐.”쿵!염구준은 문을 닫고 침대에 쓰러져서 잠들었다.이런 포근함을 오랜만에 느끼는 것 같았다.그리고 머릿속에 그동안 발생했던 일들을 정리했다.황계웅에게서 옥패의 단서를 발견하고, 유동심연에 도착했을 때 나머지 세력이 따라온 덕에 비슷한 정보를 얻었다는 것을 알아냈다.이 정보는 어쩌면 같은 사람이 흘렸을 수도 있다.그리고 심해에서 봤던 가짜 옥패는 흑풍의 표식을 남긴 것을 보아 틀림없이 그놈의 짓이다.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상황은 이랬을 것이다.몇 년 전에 흑풍이 심해에서 진짜 옥패를 찾았는데 위험한 곳이란 걸 알고 적을 죽이려고 함정을 판 것이다.마침 강적을 만난 그는 시기가 되자 일부러 고대 옥패의 단서를 남겨 죽이려고 했는데, 계획과 다르게 적의 육신이 극한 경지에 도달하게 만들었다.…이런 생각을 하다가 염구준은 잠에 빠졌다.밖에 날씨가 화창하고 바람도 적게 불어 항행하기 딱 좋았다.이번은 선장이 직접 나서서 전속으로 달리고 있었다.지금 그는 빨리 부두에 도착하여 염구준의 돈을 받는 즉시 선박에서 내보낼 생각이었다.어쩐지 그는 사람이 아니라 핵폭탄 같았다.조종석에서 할 일이 없는 몇몇 선원은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잡
그의 재력이라면 대형 수영장을 만들어 향유고래를 키울 수도 있지만 바다가 고래의 고향이라 그러지 않았다.“선장, 고래가 엄청난데 잡지 않아요?”갑판에서 몸이 건장한 흑인 선원이 불만을 토로했다.눈앞에서 헤엄치며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 돈이니 그럴만했다.“독수리, 주둥이 닥쳐!”선장은 아직도 누군가 향유고래에 미련을 두자 버럭 화를 냈다.염구준이 어디 출신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발산하는 기운은 보는 사람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독수리가 염구준을 힐끗 보고는 어쩔 수 없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나머지 선원들도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선장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저기, 아직 볼일이 남았어요?”선장은 염구준이 조용히 앉아 있자 조심스럽게 물었다.“여기서 가까운 부두로 데려다줘요.”염구준은 끝없는 바다를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이곳은 바닷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일단 상륙한 후에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울 생각이었다.“그게…”선장은 난처한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어려우면 말씀하세요. 그렇다고 폭행을 휘두르면서 강요하지 않으니까.”염구준은 선장의 태도가 이상한 걸 눈치채고 분명하게 말했다.선박은 어부들 것이니 강제로 빼앗지 않을 것이다.그의 말에 선장은 솔직하게 말했다.“우리는 고래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해요. 이제 나와서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이대로 돌아가면 손해가 엄청납니다.”그들은 염구준이 무섭지만 돈을 벌지 못해 가족들이 굶는 것이 더 무서웠다.“그런 거라면 어렵지 않아요. 얼마를 원하세요? 육지에 도착하면 내가 줄게요.”염구준에게 있어 돈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100만 달러.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선장은 믿지 않는지 거액의 가격을 부르면서 떠보았다.듣기에 높은 가격이지만 따져보면 수리비용, 연료, 인건비 등등 모두 제외하면 얼마 남지 않으니 합리적인 가격이었다.“이걸로 담보할게요. 어차피 당신네 선박에 있으니까 도망치지 않아요.”염구준은 상대방이 걱정하는 걸 알아차리고 딸에게 선물하려고 주은 주먹
이튿날, 미지의 바다에서 향유고래 한 마리가 헤엄치고, 등에 한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그 사람은 바로 염구준이었다.사방에 온통 푸른 바다라 지금 어느 곳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지금은 고래가 바닷가로 데려가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고래야, 잘 부탁한다.”“우웅!”둘은 서로의 말을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수시로 교류했다.염구준이 눈을 감고 운기조식하다가 배고프면 심해의 눈물로 에너지를 보충했다.신기한 것은 한 방울만 먹어도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뿌우우우웅!그때 멀리서 선박 소리가 들렸다. 염구준은 눈을 번쩍 뜨고 소리를 질렀다.“저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목소리에 기운을 담았더니 쩌렁쩌렁한 소리를 지를 때마다 수면이 음파에 진동하는 것 같았다.어디선가 나타난 선박에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슥!그런데 선박에 다가간 순간, 상대방이 고래를 잡는 쇠고랑을 발사하는 것이었다.염구준은 재빨리 검기로 밧줄을 잘라버렸다.선박은 그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향유고래를 잡으러 온 것이었다.생각하지 않아도 고래의 용연향을 얻기 위함일 것이다.스스슥!선박에 있는 사람들은 고장난 줄 알고 이번에 작살을 던졌지만 역시 염구준에게 잘려서 바다 밑으로 들어갔다.상대방과 가까워지자, 염구준은 그들의 선박에 번쩍 뛰어올라 엄숙하게 경고했다.“멈춰. 아니면 무력으로 대응할 거야.”선원들은 대부분 기운이 없는 평범한 어부였다.그들은 염구준이 먼 곳에서부터 뛰어올라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는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여기서는 고래를 잡는 걸 허락해요.”한참 뒤, 선장은 국제 감독기관에서 온 줄 알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이 고래는 내 친구예요. 어떻게 할지 잘 알겠죠?”염구준은 선장을 노려보며 차갑게 되물었다.“알았어요. 이 사람 말을 못 들었어? 당장 작살을 내려놔!”선장은 상대방이 보통이 아니란 걸 눈치챘는지 바로 선원들에게 지시했다.그러자 당황한 선원들은 정신을 차리고 지시대로 작살을 내려놓았다.염구
감히 그의 전우나 다름없는 고래를 잡아먹으려고 하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만약 향유고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지금쯤 심해 밑에서 죽었을 것이다.“염 선생님, 안 돼요!”당황한 노신기 일행이 다급히 나서서 말렸지만 염구준은 듣지 않았다.그는 요트를 타고 서해충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러 공격했다.“당장 토해!”염구준은 두 손으로 검을 들고 번쩍 뛰더니 위에서 서해충을 자르려고 했다.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고래를 살려낼 것이다.“하악!”뿔난 서해충이 나지막하게 울부짖더니 커다란 입을 벌이고 염구준을 통째로 삼키고는 물속으로 들어갔다.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모두 경악하고 말았다.심지어 천기문의 고위층들도 진정할 수 없었다.“염 선생님!”“안 되겠어. 모든 음성탐지기를 던져!”노신기는 당황한 마음에 맞서 싸우려고 명을 내렸다.유동심연의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이번에 오면서 대량의 음성탐지기를 챙겼었다.그러나 워낙 위력이 강한 무기라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염 선생님, 제발 잘 버텨줘요.’촤아악!이제 막 음성탐지기를 내려놓고 가동하려고 할 때 눈앞에서 거센 물보라가 솟구치는 것이었다.해저 지진으로 거센 파도가 밀려오면서 일으킨 쓰나미였다.“다들 선실로 들어가!”위급한 상황에서 노신기는 어쩔 수 없이 먼저 가문을 지켜야 했다.선박 세 척은 쓰나미에 밀려 먼 곳까지 흘러갔다.한편, 바다 밑은 난리도 아니었다.서해충 체내에 들어간 염구준은 선사 시대의 바다 생물과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그가 공격할 때마다 서해충은 심한 고통을 느꼈는지 커다란 몸집을 꿈틀거렸다.실은 서해충이 삼킨 것이 아니라 그것이 도망칠까 봐 염구준이 스스로 잡혀 먹힌 것이었다.한참 공격하면서 돌진했더니 드디어 향유고래가 있는 곳까지 다가갔다.“구자검법! 검일참공!”그는 기운을 폭증시켜 강력한 살술로 서해충의 몸에 길이가 10미터되는 상처를 냈다.잘린 부위에서 바닷물이 역류하여 들어올 때, 염구
동물의 감각은 때론 인간보다 훨씬 뛰어났다.특히 바다에서 자란 생물이라면, 웬만한 레이더보다도 훨씬 빨리 감지할 수 있었다.쿠쿵!혹시라도 싸울 수 있기 때문에 다들 몸에서 기운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아래쪽에서 뭔가 빠르게 올라오고 있어.”염구준은 날카로운 눈으로 바다밑을 바라보며 말했다. 작은 검은 점 하나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었다.아직 수면까지 오지도 않았는데, 그 그림자는 이미 성체 향유고래와 맞먹는 크기였다.‘설마, 진짜 서해충이 있는 건가?’“목표가 공격 범위에 진입했습니다. 모든 작살 준비 완료했습니다.”대원들은 지시가 떨어지고 나서 3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내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쏴!”노신기는 참을성 없이 바로 명령을 내렸다.‘망했다!’염구준은 말리려고 했지만 결국 말리지 못했다.물속의 거대한 생물체는 어선보다도 커서 자칫하다간 오히려 배가 끌려갈 수도 있었다.슥! 슥! 슥!고래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세 척의 어선에서 수십 발의 대형 작살이 물밑의 검은 그림자를 향해 발사되었다.타겟의 몸집이 컸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살이 정확하게 꽂힐 수 있었다.“끌어 올려!”노신기는 고래 잡이를 할 때 쓰던 방식을 운용하며 숙련하게 명령을 내렸으나 기계를 최대치로 올려도 타겟을 끌어오리지 못했다.이에 조타실에서 다급하게 소식을 전했다.“큰일입니다. 어선이 저것에 의해 유동심연 쪽 소용돌이로 끌려가고 있어요!”배는 엄청난 속도로 끌려갔다. 배 자체가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속도였다.“밧줄을 끊어!”염구준은 노신기의 무전기를 낚아채고 지휘권을 넘겨받았다.“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꽉 감겨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조타실에서 절박한 답변이 돌아왔다.현대식 어선은 전부 인공지능 시스템이라 이 상황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우웅!염구준은 결국 검기를 날렸고, 날카로운 검광이 연달아 번쩍이며, 단숨에 밧줄들을 잘라냈다.이에 배가 거대한 관성에 휘청이며 흔들렸고, 균
오늘 만약 염구준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전부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빨리 항행하라고 하세요. 뭔가 이상합니다.”염구준의 갑작스러운 말에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둥절해졌다. “네, 말하고 오겠습니다!”그러나 눈치가 생긴 사람들은 염구준의 뜻을 알지 못해도 그대로만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어 곧바로 달려갔다.그들은 염구준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염구준은 흡족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면을 바라보며 물었다.“스텔라성의 성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십니까?”이번에 스텔라성의 성주는 두 개의 판을 짰는데, 하나는 겉면으로 보이는 부성주 베르였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숨어있던 노대영이었다. 다른 걸 다 따지고 나서 판을 짠 것만 본다면 정말 훌륭한 계획이었다.그랬기에 염구준은 그를 중시했다.노신기와 아타는 미간을 찌푸리고 서로를 바라본 뒤, 늙은 아타가 입을 열었다. “성주의 이름은 노세입니다. 압도적인 실력의 소유자로, 진 적이 없습니다.”“하지만 지난 20년간, 외부에서는 그의 모습을 본 이가 없습니다. 폐관 중이라는 소문도 있고, 이미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지요.”“그의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라, 저희도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이야기를 들은 염구준은, 오히려 흥분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흐음, 전부 사실이라면 꽤 괜찮은 상대가 되겠군요.”방금, 막 육체의 극한을 돌파한 염구준은 적당한 시험 상대가 필요했다.‘대단해.’주변 고위 간부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염구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만 약간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스텔라성 성주 같은 괴물은, 대부분 기겁하며 피하려 하는데, 정면 승부를 기대한다니까 말이다.“그나저나 염 선생님, 전에 올라오실 때, 인원이 적던데, 혹시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노신기는 다른 걸 얘기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아, 이거 아십니까?”그의 손에는 투명한 비닐에 담긴 작은 물방울이 들려 있었는데, 외부에는 진기가 감돌았다.‘어라?’조금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