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설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닐 거야. 그들이 이명수를 미리 옮길 능력이 있었으면 지금처럼 급하게 돈을 보내진 않았겠지.”“그럼 이명수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송우민은 점점 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계속 찾아. 내가 못 믿겠다는 건 그 사람이 그렇게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는 거야.”남설아의 눈빛은 단호했고 말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한편, 서도현 역시 남설아와 강연찬이 이명수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뭐? 걔네가 지금 이명수 같은 허접한 의사를 찾고 있다고?”부하의 보고를 들은 서도현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누나, 큰일이야! 남설아 쪽에서 이명수를 찾고 있는 것 같아!”서도현은 서유라에게 달려가며 다급하게 말했다.“뭐라고?”서유라는 화장 붓을 떨어뜨릴 뻔하며 얼굴이 굳어졌다.“걔네가 어떻게 이명수를 떠올릴 수 있었지?”서유라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섞여 있었다.“나도 몰라. 뭔가 눈치를 챘나 봐.”서도현은 초조하게 이리저리 움직이며 말했다.“누나, 지금 어떻게 해야 해? 이명수가 잡히면 우리 끝이야!”서유라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남설아가 이렇게 빠르게 정곡을 찔러올 줄은 몰랐다.“안 돼. 절대로 이명수를 그들 손에 넘겨선 안 돼.”서유라는 이를 악물며 차가운 눈빛을 드러냈다.“도현아, 빨리 변호사한테 연락해.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물어봐!”서도현은 즉시 휴대폰을 꺼내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변호사는 서도현의 설명을 듣고 잠시 침묵한 후 조심스레 조언했다.“서도현 씨, 지금 상황이 급박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이명수를 최대한 빠르게 외국으로 내보내는 겁니다. 멀리, 아주 멀리 말입니다.”“외국으로 보낸다고요?”서도현은 잠시 멍해졌지만, 곧 물었다.“근데 그 사람이 말을 들을까요? 도망가긴 해도 자기 맘대로 할 수도 있잖아요.”“돈이면 해결됩니다.”변호사의 목소리는 침착했다.“이명수에게 말하세요. 해외로 나가 잠시 몸을 숨긴다면 더 많은 돈을 지급하겠다고. 그리고 이후
“누나, 돈은?” 이명수의 전화를 끊자마자 서도현이 마치 재촉하듯 서유라 앞에 들이닥쳤다.목소리는 조급했고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다.“10만 원도 아니고 10억이야. 어디 땅 파면 나오는 돈인 줄 알아?”서유라는 은행 이체 화면을 보며 속이 상한 듯 불쾌하게 말했다.10억, 말 그대로 순식간에 사라진 돈이었다.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누나, 지금 돈 아까워할 때야? 그 자식이 뒤집으면 우린 끝이야. 10억이 문제가 아니라 100억을 줘도 못 막아!”서도현은 안절부절못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그는 절대 감옥에 가고 싶지 않았고 모든 걸 잃는 것도 원치 않았다.“알았어, 알았다고! 그만 좀 닦달해!”서유라는 짜증 섞인 말투로 대꾸하면서도 손가락은 계속 화면을 조작하고 있었다.아깝긴 해도 상황은 이해하고 있었다.돈으로 재앙을 막는다, 지금은 그렇게 자신을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빠르게 송금 절차를 마친 서유라는 송금 완료 화면을 캡처해 이명수에게 전송했다.“이 정도면 됐지?”그녀는 휴대폰을 옆으로 툭 던지며 짜증스럽게 말했다.“진짜 이걸로 끝나야 할 텐데.”서도현은 여전히 찜찜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서유라의 휴대폰이 울렸다.이명수에게서 온 답장이었다.[서유라 씨, 안심하세요. 돈은 잘 받았습니다. 바로 자리를 정리하고 떠날 예정입니다.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이 문자를 본 서유라는 비로소 긴장을 조금 풀었다. 오랫동안 조여 있던 신경이 겨우 느슨해졌다.“겨우 처리됐네.”그녀는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피로를 느꼈다.“그 의사 놈, 진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네.”서도현은 여전히 투덜거렸고 그 불신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됐어, 이제 와서 뭐 어쩌겠어. 돈은 이미 보냈고 후회해도 소용없어.”서유라는 그를 날카롭게 쏘아보며 말했다.“이제 중요한 건 다음 수를 어떻게 둘지가 문제야.”한편, 카페 안.남설아는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이명수가 도망치
남설아는 은은하게 웃으며 커피를 들어 가볍게 한 모금 마셨다.“예상대로야. 배서준이라는 사람, 자만심에 찌들고 어리석어. 한 번 속는 건 실수일 수 있지만 두 번은 바보지. 그런데 같은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반복해서 속아 넘어간다? 그건 그냥 답이 없는 거야.”옆에서 듣고 있던 송우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진짜 답이 없다니까. 남설아, 배서준은 머리를 어디에 떼어놓고 다녀? 서유라 저 여자가 수상한 거야 누가 봐도 뻔한데 그걸 저렇게 철석같이 믿고 있으니.”남설아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창밖을 평온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마냥 바보처럼 어리석은 게 아니야. 그냥 또 속았다는 걸 인정하기 싫은 거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거야.”마치 예전에 그가 스스로가 나은이를 죽게 만든 걸 끝끝내 인정하지 않던 것처럼 말이다.강연찬은 조용히 남설아를 바라보다가 부드럽게 위로했다.“설아야, 화내지 마. 배서준이 지금 저 꼴이 된 건 자업자득이야. 그런 인간 때문에 속상해할 필요 없어.”남설아는 고개를 돌려 따뜻한 눈빛으로 강연찬을 바라보았다.“고마워, 연찬 오빠. 나도 알아.”그러고는 송우민 쪽을 바라보며 웃었다.“민아, 연찬 오빠가 움직이고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송우민은 입을 삐죽 내밀며 어깨를 으쓱였다.“알겠어, 알겠어. 뭐 너희가 다 계획했다니까 더 묻진 않을게. 근데 우리 다음은 뭐야? 그냥 서유라가 계속 설치는 꼴만 보고 있어야 해?”남설아의 눈빛이 차갑게 식어갔고, 입꼬리엔 싸늘한 웃음이 떠올랐다.“당연히 아니지. 진짜 쇼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야. 서유라가 그렇게 아픈 척하는 걸 좋아한다면 우린 그녀가 정말로 병들어가게 해줘야지.”화승 그룹 기술팀.강연찬은 컴퓨터 앞에 앉아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리고 있었다.화면에는 수많은 코드가 마치 폭포수처럼 빠르게 쏟아지고 있었고 그의 기술팀은 정신과 병원의 시스템을 해킹해 삭제된 전자 차트와 약물 처방 기록을 복구하려 애쓰고 있었다.“강 대표님, 1차적으로 시스템 침
배서준이 계속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그건 그의 선택이고 누구도 바꿔줄 수 없을 것이다.천기준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꺼내 또다시 남설아에게 문자를 보냈다.[남 대표님, 배서준은 이제 누구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지금 머릿속에는 서유라밖에 없어요. 정말... 가망이 없어 보입니다.]문자를 보내고 천기준은 핸드폰을 집어넣은 채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며 마음속에 가득 찬 허탈함과 무력감을 씹어 삼켰다.“누나, 들었지? 배서준 그 멍청한 놈, 완전히 누나한테 홀려버렸어.”서도현은 전화를 끊자마자 신이 난 얼굴로 서유라의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서유라는 거울 앞에서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초췌한 얼굴에 불쌍하고 아픈 이미지를 더하기 위해 세심하게 손을 보던 중이었다.서도현의 말에 그녀는 손에 쥔 립스틱을 내려놓고 천천히 돌아서며 입꼬리에 미묘한 웃음을 띠었다.“좀 조용히 해.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서유라는 다정하게 타이르는 듯 말했지만, 그 말투에는 자랑스러움이 스며 있었다.“무슨 상관이야. 지금 이 배 씨 저택에서 우리 남매한테 뭐라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서도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서유라 곁으로 다가갔다.“누나, 진짜 대단해. 말 몇 마디로 그 까다로운 배서준을 완전히 속여버리다니. 정신과 검사도 따라가겠다고 난리고 진짜 웃겨 죽겠어!”서유라는 동생의 칭찬에 속으로 흐뭇했지만, 겉으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직 들뜨긴 일러. 배서준 그 인간, 의심 많기로 유명하잖아. 이번에는 운 좋게 넘어갔지만, 다음은 장담 못 해.”“걱정 붙들어 매. 지금 그 인간은 누나 말이면 무조건 믿잖아. 배건 그룹 다 빼돌려도 눈 하나 깜짝 안 할걸?”서도현은 호탕하게 웃으며 마치 이미 모든 것을 손에 넣은 사람처럼 행동했다.서유라는 그런 서도현을 흘겨보며 경고하듯 말했다.“그러니까 더 조심하라고. 괜히 사고 치지 말고, 내 계획 망치지 마.”“알았어, 누나. 내가 누구야? 누나 동생이라니까. 그럼 다음 단계는
“서준아, 나 아직도 너무 피곤해.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유라는 마치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배서준은 즉시 손을 멈추고 그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어디가 안 좋아? 병원에 연락할까?”서유라는 고개를 저으며 살며시 배서준의 손을 잡았다.“아니야, 괜찮아. 그냥 마음이 허전해. 무언가 빠져 있는 기분이야.”그녀의 눈빛은 흐릿했고 그 안에는 알 수 없는 공허함과 연약함이 서려 있었다.배서준은 그녀를 꼭 끌어안으며 부드럽게 달랬다.“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 항상 네 곁에 있을게.”서유라는 그의 품에서 고개를 끄덕였고 동시에 아무도 모르게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천기준의 마음은 복잡했다.그는 손에 쥐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배서준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배 대표님, 회사 쪽에 처리해야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유라 씨는 제가 잠시 돌볼 수 있으니 대표님은 먼저 업무를 봐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배서준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천기준을 불쾌한 듯 바라봤다.“회사 일은 잠깐 미뤄도 돼. 지금은 유라의 몸이 더 중요해.”그의 말투에는 천기준이 상황 파악을 못 한다는 듯한 책망이 담겨 있었다.천기준은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도 다시 용기를 내어 말했다.“배 대표님, 저도 유라 씨 건강이 중요하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회사의 일도 소홀히 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다음 주 예정된 그 협력 건은 회사의 미래와도 관련된 중요한 건이라서...”“그만, 나도 알아.”배서준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을 끊었고 목소리는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회사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나가봐. 나랑 유라는 좀 쉬어야겠어.”천기준은 잠시 얼어붙었다. 배서준에게 이런 식으로까지 불쾌한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그는 오랜 세월 배서준 곁에서 함께해 왔고 아무리 성격이 까칠해도 지금처럼 자신을 날카롭게 대하지 않았다.‘정말 배서준은 서유라에게 완전히 빠져버린 걸까? 이성적인 판단력마저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서유라 씨,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안으로 들어와서 함께 보시죠.”서유라는 배서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서준아, 나랑 같이 들어가 줄래?”배서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서유라와 함께 진료실로 들어갔다.천기준도 묵묵히 뒤를 따랐고 그의 마음속에는 깊은 혐오와 허탈감이 뒤섞여 있었다.그는 알았다. 지금부터 또 하나의 치밀하게 짜인 연극이 펼쳐질 것이며 배서준은 그 연극의 관객이자 어쩌면 공범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진료실 안, 정신과 의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배 대표님, 서유라 씨, 검사 결과에 따르면 서유라 씨는 우울증이 재발한 상태고 그 정도도 꽤 심각합니다. 추가적인 치료가 필요합니다.”이 말을 들은 서유라는 곧바로 눈물을 쏟으며 흐느꼈다.“선생님, 저 정말 어떻게 해야 하죠? 저 정말 무너질 것 같아요...”배서준은 얼른 그녀를 안고 위로했다.“걱정하지 마, 유라야. 나랑 같이 치료받자. 항상 곁에 있을게.”정신과 의사는 안경을 고쳐 쓰며 눈빛에 잠깐 비치는 비웃음을 감췄다.또 한 명의 사랑에 눈먼 바보일 뿐이다.그는 병력 지에 빠르게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서유라 씨, 약을 처방해 드릴 테니 제시간에 복용하시고 정기적으로 내원해 주세요. 곧 괜찮아질 겁니다.”서유라는 흐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해요...”배서준도 의사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믿음직스럽습니다.”의사는 웃으며 말했다.“제 일일 뿐입니다. 환자분이 회복하시는 게 저에게 가장 큰 보람이지요.”천기준은 그 모든 위선적인 장면을 바라보며 속이 뒤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간신히 구토감을 참아내며 조용히 진료실을 빠져나왔다.배서준은 진단서 사본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해명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라도 얻은 듯한 얼굴이었다.“봐, 유라야. 의사 선생님도 말했잖아. 너 우울증이 재발한 거야.”그의 목소리에는 안도